119화 - 타임워페어 – 각개격파(3)
정소윤 캐스터와 해설진, 그리고 시청자들 모두 퍼플의 상황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주최 측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아! 지금 바로 카메라 돌아갑니다!”
“퍼플 선수? 지금 상황이 어떨까요!?”
순식간에 화면이 전환됐다.
옵저버 캠이 비추는 장소는 꽤 커다란 건물이었다.
“아, 군수창고입니다!”
“군사기지의 파밍 요충지죠?”
“아니, 퍼플 선수! 지금 상황이 매우 곤란해 보입니다!”
옵저버 캠이 천장을 뚫고 내부를 비추자 해설진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아니, 이게 대체 뭔가요! 전부 라이플로 무장했습니다!”
“게다가 숫자도 너무 많습니다! 11명, 11명을 상대해야 해요!”
“아무래도 파밍을 위해 이쪽으로 사람들이 몰린 모양입니다. 근데 이렇게 아이템이 몰린 경우는 또 드물거든요!?”
군수창고 내에 있는 사람들의 장비 수준이 상당했다. 개중에는 방탄복과 헬멧까지 갖춘 이들도 있었다.
-미쳤네 진짜 ㅎㄷㄷ
-원래는 여기서 바로 초반 격전인데
-합법티밍이라 그런지 다들 쌩쌩하누 ㅋㅋㅋㅋ
-ㅅㅂ 갓플은 권총 하나만 들고 있는데?
-않이;;; 이걸 다 처리하겠다고?
-일단 빼고 팀원들이랑 합류하는 게 낫지 않나?
시청자들은 걱정을 표했다.
아무리 이경복이라고 해도 이런 조건이라면 힘들지 않겠나.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다른 선수들이 퍼플 선수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다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지금 이미 전부 견착을 하고 주변을 훑고 있어요. 보이면 바로 쏴 버리겠다, 이런 뜻이거든요?”
적들은 경직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며 창고를 수색 중이었다.
“다른 팀원들 지원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아, 어렵습니다. 안 그래도 각 팀원들이 사방으로 퍼졌는데 군수 창고는 거리가 또 멀어요!”
“도착했어도 이미 결과가 나온 상황일 겁니다.”
다른 팀원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다. 그 사실에 채팅창이 다시금 술렁였다.
-운빨개망겜 수듄 나오쥬?
-어쩐지 착지할 때 운수가 좋더라니 ㅠ
-무슨 퍼첨지냐구 ㅋㅋㅋㅋ
-누군가를 태워준다는 점에서 맞긴 하지
-이 상황에도 드립 욕심내는 퍼청자들 보소 ㅋㅋㅋ
-그래도 난 갓플 믿어!
-ㄹㅇㅋㅋ 갓플이면 어떻게든 한다
하지만 이내 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아! 지금 퍼플 선수 탄창을 확인하는데요!”
“예비 탄창이 없는 것 같습니다! 몇 발 남았죠?!”
“하나, 둘 셋……11발, 11발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한 발당 한 명씩 처리해야 됩니다!”
공교롭게도 남은 탄환과 처리해야 할 상대의 숫자가 일치했다. 해설진은 회의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퍼플 선수의 실력, 정말 뛰어나지만 이게 될까요……?”
“어렵습니다. 너무 어려워요. 한 발이라도 빗나가면 사실상 탈락으로 봐도 무리가 없거든요?”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라면 그나마 희망이라도 가지겠는데, 상대가 다들 한가락 하는 분들입니다.”
높았던 텐션도 급격히 떨어졌다. 채팅창 분위기도 비슷했지만 그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해설진이 아직 뭘 모르네 ㅋㅋ
-11명에 11발이 남았다? 무적권 가능이지 ㅋㅋㅋ
-ㄹㅇㅋㅋ 또샷또킬은 바크 때부터 이어진 근본이자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어렵지 않나?
-지금이라도 최대한 엄폐해서 빠져나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아 ㅋㅋ 그냥 보시라구욧!
낙관과 비관이 어우러진 와중 이경복이 결단을 내렸는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퍼플 선수! 과연!”
정소윤 캐스터의 한마디와 더불어 모두가 숨을 죽였다. 오히려 해설과 멘트가 시청에 방해가 되리라는 걸 모두 직감한 덕분이었다.
이경복은 엄폐를 유지한 채 총구를 겨누었다. 그가 노린 목표는 창고 내 철제 선반을 밟으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가 짧게 호흡을 고르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하는 격발음과 함께 불똥이 튀었다.
“뭐, 뭐야!?”
“어디야!?”
“저쪽!”
상대는 쓰러지지 않았다.
놀란 그는 다급히 몸을 낮추며 제 몸을 훑었지만 상처 하나 없었다.
이내 그는 총성이 들린 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이경복이 그곳에 있었다.
‘천하의 퍼플도 실수를 하네.’
퍼플을 상대로 킬을 따낸다?
그것만으로 자신의 이름값은 수직 상승할 터였다. 그는 행복한 상상과 함께 방아쇠를 당기려했다.
기기긱하는 기괴한 소리가 발밑에서 들려오지만 않았다면 성공했을 터였다.
“뭣……!”
그를 지탱하던 철제 선반이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중심을 잃은 그는 속절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왜?!’
추락 직전 그는 억울함과 더불어 의문을 떠올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단순히 운이 나빠서였을까.
그 답은 사망 뒤 관전모드로 들어간 뒤에야 알 수 있었다.
“퍼플 선수! 일부러 선반을 노렸던 건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탄환이 정확히 선반의 이음새, 그것도 녹슨 이음새를 가격했어요!”
“정말 놀라운 사격 솜씨! 하지만 굳이 이렇게 처리한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 소음에 이끌려 다른 선수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음새를 맞췄다고? 그 작은걸?
-아 ㅋㅋ 갓플이면 쌉가능이지
-ㄹㅇㅋㅋ 수류탄 핀도 맞추는데 저건 오히려 너무 큰 거 아님?
-않이;;; 근데 지금 좋아할 때가 아니잖슴!
-어씨 바로 몰려드는 거 보소 ㅎㄷㄷ
-ㅁㅊ 완전 포위됐는데?
-뭔가, 뭔가 노림수가 있을 거임!
-ㄹㅇㅋㅋ 갓플이 아무 생각 없이 플레이 하겠냐고
상황은 급박해졌다.
위치가 노출되자 다른 10명의 적들이 더욱 긴장한 채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정작 포위대상인 이경복은 그런 상황과 무관하다는 듯 담담했다.
아니, 그 얼굴 위로 옅은 미소까지 지어졌다.
“아! 퍼플 선수! 수세에 몰리는데 웃고 있어요!”
“타개책이 있다는 걸까요!?”
“제가 나름 해설 경력에 자부심이 있지만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걸 어떻게 빠져나가나요!”
해설진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리기라도 한 걸까. 이경복은 즉각 행동을 개시했다.
하지만 그 방향은 모두의 예상과는 달랐다.
“저기 있다!”
“쏴요!”
“잡아!”
이경복의 신형을 따라 탄환이 빗발쳤다. 하지만 그는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노리지 않았다.
대신 그가 향한 곳은 무너진 선반, 낙사한 시체가 있던 지점이었다.
이내 거리를 좁힌 그는 앞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러자 마치 접착제라도 붙은 듯 시체가 그의 등에 업혔다.
“퍼플 선수?! 지금 시체를 업었습니다!?”
해설이 이어질 틈도 없었다.
이어지는 총격이 이경복을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다수의 탄환은 그가 짊어진 시체에 박혔다.
“이게 뭔……!”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다급히 총구를 내리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이경복이 빨랐다.
그는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가 움직인 것은 손목과 손가락뿐이었다.
놀랍게도 엉성해 보이는 조준이었지만 결과는 정확했다.
[퍼펙트플레이 >>P1911>> 개강한(HEAD SHOT!)]
[퍼펙트플레이 >>B92F>> 레이더송(HEAD SHOT!)]
…
연달아 떠오르기 시작한 킬 메시지. 남은 10명이 시체가 되어 쓰러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털썩 쓰러지는 시체들과 함께 이경복도 짊어진 시체를 놓았다.
쿵하는 소음과 함께 내려앉은 정적. 그러나 그 소리는 지켜보던 이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저, 저저…… 전멸입니다! 퍼플 선수 생존했습니다!”
“원샷원킬! 퍼플 선수, 다시 이름값을 해냅니다! 이게 바로 퍼펙트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이건 진짜 미쳤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죠? 차라리 가상현실에서 통용되는 핵이 개발됐다는 게 더 신빙성이 있을 겁니다!”
해설진이 화들짝 놀라며 말을 쏟아냈다.
아무리 그래도 핵이라니?
정소윤이 그런 그들을 자제하며 화제를 돌렸다.
“자, 너무 흥분하신 것 같아요. 순식간이긴 했지만 해설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 상황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어요. 특히 퍼플 선수가 시체를 방패로 삼은 동작은 놀라웠거든요?”
“맞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런 걸 레인저 롤(Ranger Roll)이라고 하거든요!? 전장에서 부상자를 긴급히 대피시키는 방법입니다.”
“퍼플 선수가 이걸 어디서 배웠는지 궁금해지네요. 이게 진짜 어려운 동작입니다. 숙련된 교관들도 실수를 자주 해서 여러 번 도전해서 보여 주는 건데, 지금은 너무 완벽했어요.”
그 설명에 시청자들 중 동감하는 의견이 올라왔다.
-ㄹㅇㅋㅋ 이거 진짜 어려움
-부상자 위로 몸 던지면서 허벅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팔을 잡아서 고정시켜야 됨
-바로 검색하니까 소방관 운반이라고 나오는데 이건 뭐임?
-원래 부상자 운반하면서 한 손은 자유롭게 쓰는 자세임 ㅋㅋㅋ
-근데 갓플은 그 한 손으로 권총을 쏴버렸쥬?
-않잌ㅋㅋ 사람 하나 들쳐업고 어떻게 저렇게 정확하게 사격을 하냐구웃!
-아아, 그것이 바로 퍼펙트-슈팅이니까
우후죽순 올라오는 채팅에 트래픽이 부담이 됐는지 채팅창이 또 버벅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캐스터와 해설진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황이라 이를 신경 쓰지 못했다.
“지금 채팅으로도 설명이 나왔는데 난이도가 상당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실수를 해서 시체를 흘렸거나, 조준이 빗나가면 그대로 벌집이 될 거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퍼플 선수에게는 그 ‘만약’이 없었습니다.”
“네! 말씀 주신 것처럼 정말 놀라운 일이네요. 이렇게 퍼플 선수가 완벽하게 상황을 정리하면서 팀 퍼지데이의 첫 번째 작전, 각개격파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성공으로 마무리 됐습니다!”
정소윤이 능숙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덕분에 모두의 주의도 그쪽으로 돌아갔다.
-킹갓격파를 진짜로 해버리네 ㅋㅋㅋ
-아 ㅋㅋ 이정도면 스킨 확정이쥬?
-정배는 승리한다! 정배는 승리한다! 정배는 승리한다!
-아빠! 아빠는 왜 이벤트 스킨이 없어? 퍼지데이 안 믿었어?
-엌ㅋㅋㅋ 역배들 우는 소리가 들린다 들려!
-소윤이모! 모두의 예상이라니욧! 저는 퍼지데이 승리에 걸었다구욧!
-그 머시냐, 숙청각이네, 숙청각!
-팀 퍼지데이는 진짜 전설이다 ㅋㅋ
-시작부터 이런 레전드? 오직 퍼지데이만이 가능합니다
팀 퍼지데이의 생존이 확정됐으니 시청자들 모두가 안심하고 기뻐했다.
그러나 곧 그들의 관심은 또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전투지역이 축소됩니다! 서두르세요!]
붉은 경고 메시지.
정소윤과 해설진도 바로 자세를 가다듬었다.
“아, 벌써 자기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40명이 사망했어요!”
“그렇죠. 지금 군사기지에서만 32명이 사망했거든요? 저희가 여기서 눈을 못 뗐는데 다른 곳에서도 교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기장이 끝이 아닙니다!”
해설진의 말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그 아래 새로운 메시지가 출력됐다.
[자기장이 미지의 파장과 공명합니다!]
[타임 포탈이 형성됩니다!]
채팅창이 물음표로 가득해지자 정소윤이 신속히 설명을 붙였다.
“이번 이벤트 모드의 핵심이죠? 킬러노이드의 등장이 시작됩니다.”
“아, 마침 지놈과 뉴턴좌, 이클립스 선수들이 퍼플 선수와 만났습니다.”
“지금 선수들이 지도를 확인하고 있는데요. 안전구역과 더불어 타임 포탈 형성지점이 별도로 표기가 됐네요!”
이경복을 제외한 세 사람은 군사기지 내부 상황을 훑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혼자서 이걸 다 처리하다니……”
“역시 퍼플 경이오. 부단히 더 수련해야겠소.”
“괜찮습니까? 일단 회복템은 있는데.”
제각기 다른 반응에 이경복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포탈이 형성됐다는데 이제부터 어떡할까요?”
킬러노이드를 만나 보고 싶다.
그의 물음에 담긴 저의를 눈치 빠른 지놈이 모를 리가 없었다.
“킬러노이드가 얼마나 강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눈을 이리저리 굴린 지놈은 이내 웃으며 말을 맺었다.
“지금 보니 저희 팀보다 강할 것 같진 않네요. 가까운 포탈로 목적지를 잡죠.”
“그거 잘 됐네요. 안 그래도 여기 계신 분들이 열심히 장비를 모아 주셨거든요.”
이경복은 그가 쓰러뜨린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벤트 모드에서 기만숨결이?!
-아 ㅋㅋ 역시 빠질 수 없지
-사망자들 졸지에 아이템 셔틀행
-졌으면 할 말 없지 ㅋㅋㅋㅋ
-ㄹㅇㅋㅋ 억울하면 살았어야지
이에 시청자들이 흡족해했다.
그의 말에 팀원들 모두가 시체에서 장비를 수거했다.
“킬러노이드한테는 이것보다 더 좋은 무기들이 나온다는 거지?”
“미래 무기가 나온다니까요.”
“그러면 더 승리가 쉬워지겠네. 다른 사람들한테 뺏기기 전에 서두르자고.”
뉴턴좌는 낮은 웃음을 흘리며 먼저 밖으로 나섰다. 이클립스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본인 생각보다 더 전투가 흥미롭구려. 퍼플 경을 따라오길 잘했소.”
“즐겁다니 다행입니다.”
이경복은 그리 대답하고 아직도 시체를 뒤적거리는 지놈에게 손짓했다.
“슬슬 가시죠, 팀장님.”
“네? 아니, 잠깐! 다들 회복템도 좀 챙기세요!”
“에이, 안 맞으면 되죠 뭐.”
이경복이 어깨를 으쓱이며 나갔다.
“아니, 님들 내가 이상한 거 아니죠? 일단 저라도 잘 쟁여두겠습니다. 잠깐, 좀 같이 가요!”
지놈은 황망한 얼굴로 멘트를 치고는 그들을 따라나섰다.
-우리 형 왜케 안쓰럽누 ㅋㅋㅋㅋㅋ
-화합이 잘 되는 거야 뭐야 ㅋㅋ
-팀장(회복셔틀)
-팀 퍼지데이에게 상식이란?
-보고 있자니 나도 헷갈ㄴ ㅋㅋ 원래 스쿼드전 이렇게 하는 건가?
-혼란하다 혼란해!
-근데 또 실력은 개 쩌는 게 함정ㅋㅋㅋㅋ
-킬러노이드 상대로는 어떠려나?
-어느 쪽이든 개꿀잼각임ㅋㅋㅋ
시청자들은 즐거워하며 그들의 다음 활약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