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122화 (122/491)

122화 – 타임워페어 - VS 팀 킬러노이드 (3)

세찬 바람에 흙먼지가 휘몰아쳤다. 무너진 건물과 도처에 즐비한 잔해가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그 가운데 붉은 빛을 내뿜는 두 개의 플라즈마 칼날. 하나는 얼굴 없는 기계, 다른 하나는 순진한 아이처럼 미소 짓는 청년의 것이었다.

마치 정지화면인 것처럼 어느 쪽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바람결에 돌가루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두 개의 붉은 섬광이 하나가 됐다.

“어나힐레이터와 퍼플 선수의 접전이 시작됐습니다!”

“엄청납니다! 강렬한 공세를 펼치는 어나힐레이터! 민첩하고 예리한 공격이 날아듭니다!”

“이게 정말 거너 그라운드인가요!? 현대전만 잘 만드는 줄 알았더니 SF감성도 아주 좋습니다!”

플라즈마 칼날이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튀었고, 이를 보는 사람의 눈에는 강렬한 잔상이 남았다.

변화무쌍(變化無雙).

어나힐레이터와 이경복의 경합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을 터였다.

-와씨 ㅋㅋㅋ 진짜 화려하네

-않이 ㅋㅋㅋ 보는 건 좋긴 한데 저걸 어케 잡냐고!

-갓플은 다 막는데?

-갓플 기준이면 못 막는 게 있음?

-엌ㅋㅋㅋ 맞말추

-ㄹㅇㅋㅋ 엘든유일검을 왜 기준으로 잡음?

-그 와중에 해설진 은근슬쩍 거그 올려치기 ㅋㅋㅋ

-아 ㅋㅋ 먹고는 살아야지

어나힐레이터의 지칠 줄 모르는 검격에도 이경복은 무던히 대응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미묘했다.

“퍼플 선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는데요!?”

“아, 역시 최종보스인가요! 퍼플 선수마저 버겁게 느껴질 수준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또 이상합니다. 지금 여유가 없어 보이지는 않거든요? 오히려 버거운 건 저희 눈입니다! 움직임이 너무 빨라요!”

이경복은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그것은 해설진의 생각과 달리 대응이 힘겨워서가 아니었다.

‘이상하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움직임은 좋은데 검술이 왜 이 모양이지?’

생각보다 너무 쉬워서 실망감이 표정에 드러난 것이었다.

어나힐레이터의 피지컬 자체는 준수한데 검을 쓰는 방법이 어설프게 느껴졌다.

그래도 인공지능이니 상대 스타일에 따라 달라지는 건 아닐까 여러 차례 변초를 섞어 보기도 했다.

‘이건 그냥…… 못하는 건데?’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이경복은 공격을 받아내면서도 다른 생각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그 덕분에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계약시점이 엘든소울 플레이 전이었지.’

GGG에 개인 데이터를 양도하기로 계약할 당시에는 엘든소울을 접하기 전이었다.

물론 그때도 근접전은 잘했지만 이클립스와의 대결 이전과 이후는 천지차이였다.

지금 이경복은 이클립스로부터 검술을 익힌 반면, 어나힐레이터는 순수 피지컬로만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이클 님이 가장 먼저 승리한 것도 그런 이유겠네.’

다른 킬러노이드는 어나힐레이터의 열화판이었다. 최종보스인 어나힐레이터의 검술 수준이 이런 수준이니 킬러노이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클립스가 접근만 하면 승부는 바로 결정됐을 터였다.

정리를 마친 이경복은 실소와 함께 날아드는 검을 쳐 냈다. 그리고 외팔이가 된 어나힐레이터처럼 한 손은 뒷짐을 졌다.

“아니, 이게 지금 어떻게 된 거죠? 퍼플 선수 여유를 되찾았나요!?”

“아! 나왔습니다! 퍼플 선수의 트레이드 마크! 퍼기만이 나왔어요! 한 손으로 상대해도 충분하겠다는 거거든요!?”

“그렇습니다! 저만 보이나요?!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짤이 제 눈에 보입니다!”

해설진이 그 변화에 즉각 반응하자 이에 채팅창 쪽도 활기가 돌았다.

-엌ㅋㅋㅋㅋㅋ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닼ㅋㅋㅋ

-갑자기 최종보스가 안쓰러워지누 ㅠㅠ

-않이! 해설진이 드립을 다 치면 우린 뭘 먹고 사냐구!

-파악 끝나니까 바로 티배깅ㅋㅋㅋㅋ

-로봇이라 다행이지 감정 있었으면 레이저 소드보다 얼굴 붉어질 듯 ㅋㅋㅋㅋ

-솔직히 지금 과부하 되고 있을 듯

-과부하 ㅇㅈㄹ ㅋㅋㅋㅋ

어나힐레이터는 기계답게 흐트러짐 없이 공격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오히려 이경복의 동작은 정적으로 변했다.

가벼운 손목 스냅과 두 걸음 안팎의 움직임만으로도 그 모든 검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더 볼 게 없네.’

이경복은 어나힐레이터의 밑천이 드러났음을 깨달았다.

‘애당초 위험했던 건 무기 쪽이었나.’

이온캐논을 막았을 때부터 신기가 감지하던 위협수준이 떨어진 이유가 있었다.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검을 세웠다. 다시금 두 칼날이 부딪치며 튀어 오른 불꽃이 흩어지려는 찰나.

“어!?”

“아니……!”

“무기를 놓쳤습니다!?”

해설진이 놀라 소리쳤다.

순간 붉은 섬광이 번쩍이더니 어나힐레이터의 레이저 소드가 하늘로 치솟았다.

이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 사이, 이경복은 검을 내렸다.

웅웅거리던 플라즈마 칼날은 이내 손잡이로 들어가듯 사라졌다.

“퍼플 선수? 갑자기 검을 거둡니다?”

“어떻게 된 거죠!? 무기에 무슨 이상이라도 생겼나요?”

“지금 어나힐레이터 쪽도 움직임이 없…… 아니이이이이!”

이후 벌어진 상황에 해설진이 기겁하며 소리 질렀다.

어나힐레이터의 몸에 붉은 실선이 여럿 생기더니 그 선을 따라 몸체가 스르륵 흘러내리는 게 아닌가.

[퍼펙트플레이 >>Laser Sword>> 어나힐레이터]

그와 함께 나타난 킬 메시지.

시청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

-뭐야? 뭔데?

-설마 아까 다 베어버렸다고?

-않이;;;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어뜨케 된겨 어뜨케 된겨!

-리플레이 해줘잉!

채팅창에 요청이 올라오기도 전에 화면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정소윤 캐스터와 해설진은 눈을 부릅뜨고 리플레이 장면을 확인했다.

“지금 0.25배속으로 조금 전 장면이 재생되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게 정녕 인간의 속도입니까!? 0.25배속인데 왜 정속인거 같죠?!”

“지금 하나, 둘, 셋…… 총 6번의 궤적이 그려졌어요! 어나힐레이터가 조각케이크가 되었습니다!”

믿기지 못할 속도의 공격.

시청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않이;;; 진짜 인간을 넘어서 버렸네

-탈인간이 아니라 초인간이었고 ㅋㅋㅋㅋ

-엘든유일검! 엘든유일검! 엘든유일검! 엘든유일검!

-아아, 이게 바로 유일검류 쾌검이라는 것이다

-Robot 불만 있어요? 당신의 body, 분리형으로 대체되었다. 항상 감사하십시오.

-진짜 검성 퍼길동이네 ㅋㅋㅋㅋ

희소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뉴턴좌 >>Railgun>> 킬러노이드]

[이클립스 >>Laser Sword>> 킬러노이드]

리플레이 영상을 살펴보는 사이 다른 팀원들의 승전보가 전해졌다.

“아, 지금 뉴턴좌와 이클립스 선수가 킬러노이드를 처리했습니다!”

“지놈 선수 죽지 않았네요! 작전대로 무사히 시간을 벌었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팀 퍼지데이, 다시 한 번 불가능한 일을 해냈어요!”

해설진은 즉각 전환된 화면을 보며 멘트를 날렸다.

“퍼지데이 팀과 킬러노이드 팀의 4:4 스쿼드 매치! 실상 스쿼드전이라고 보기는 좀 무리가 있었지만, 퍼지데이 팀이 완벽한 승리를 거둡니다!”

“감격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 거너 그라운드 역사에 남을 이벤트가 아니었나 싶거든요?! 이런 플레이는 다시는 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오늘 방송 봐주신 여러분들 정말 운이 좋은 겁니다! 물론 저도 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해설을 떠나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이미 목소리가 다 쉬었음에도 해설진은 마지막까지 목청을 높였다. 이에 시청자들 또한 기꺼워하며 채팅을 쳤다.

-진짜 개꿀잼 ㅇㅈ이쥬?

-스킨 잘 먹고 갑니다^^7

-역배들 개같이 멸망 해버리기ㅋㅋㅋ

-퍼플코인 타기만 하면 되는데 이걸 놓치네?

-아니! 스킨이 복사가 된다니깐!

-어우퍼는 사이언스라는게 또 입증되어버리고 ㅋㅋㅋㅋ

-아 ㅋㅋ 아무튼 우승하게 되어 있다니깐?

-이거 완전 슈뢰딩거의 고양이네 ㅋㅋㅋ

-갑분슈뢰딩거 무엇?

-이벤트에 퍼플이 관측되면 어우퍼가 적용되기 때문

-양자 : 인정합니다

-양자 ㅇㅈㄹㅋㅋㅋㅋㅋ

흥겨워하는 채팅창을 본 정소윤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그렇습니다. 퍼지데이 팀에 투표해 주신 시청자분들은 방송이 끝나고 쪽지를 확인하시면 선물코드가 도착할 예정이고요. 그런데 놀랍게도, 아직 이벤트가 끝난 건 아닙니다.”

“네?”

“정소윤 캐스터님?”

해설진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돌렸다. 채팅창에도 물음표가 줄을 지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체 또 뭐가 있단 말인가?

“원래는 기획에 없던 이벤트인데, 퍼지데이 팀이 특별히 준비한 게 있습니다.”

“퍼지데이 팀이요?”

“아, GGG가 아니라요? 이거 무척 궁금한데요?”

해설진들이 눈치껏 바람을 잡았다.

“정말 실력도 대단하지만 자신감 역시 엄청난 팀인데요. 만약 퍼지데이 팀이 우승하면, 마지막에 팀원끼리 서로 승부를 가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최종 1인이 우승 상금을 모두 수령하는 거죠!”

“아! 퍼지데이 팀원끼리 내전을?! 최후의 승자는 오직 하나다! 라스트 맨 스탠딩! 어쩐지 승리 화면이 안 나와서 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그러니까요! 이건 정말 예상치 못한 결전입니다! 하지만 너무 기대가 되는데요. 우승상금 2천만 원의 행방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옼ㅋㅋㅋㅋ 갓플이 말한 게 이거였넼 ㅋㅋㅋ

-그럼 이미 그때부터 1등 예상했다는 거?

-맞네 ㅋㅋㅋ 애초부터 우승 확정하고 있었네

-진짜 한결같은 퍼자감!

-짜릿해! 늘 새로워! 퍼자감이 최고야!

-이게 진짜 퍼지데이지 ㅋㅋㅋ

-자기편까지 숙청해버리기 ㅋㅋㅋ

그렇게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이벤트가 진행됐다. 팀에서 이제 각자도생의 상황이 됐으니 네 사람 모두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선수들 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하네요!”

“자, 이게 일반 대전과 다르게 시스템상으로는 팀이 유지되고 있어서 위치가 지도에 다 드러나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역시 집중 견제 대상은 퍼플 선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세 팀원이 협력해서 퍼플 선수를 먼저 견제할 가능성이 높아요!”

해설진의 예상은 적중했다.

“여러분, 냉정하게 생각합시다. 일단 퍼플 님부터 같이 제끼고 저희끼리 1등을 가려보죠!”

지놈이 발 빠르게 선수를 쳤다. 뉴턴좌와 이클립스를 포섭해 이경복을 견제하려는 속셈.

하지만 그 대답은 기대와 달랐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결투, 기사도에 따라 퍼플 경과는 정당하게 승부를 할 것이오! 지놈 경의 제안은 거절하겠소이다.”

이클립스는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지놈은 흠칫하며 이동했다.

이클립스는 킬러노이드를 처리하기 위해 그와 가장 가까운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뉴, 뉴턴좌 님은 제 말 이해하시죠!?”

“이런 식으로 퍼플을 꺾어 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어. 자신 없으면 자살이라도 하지 그래? 아니면……”

뉴턴좌를 향해 가던 지놈은 우뚝 멈추더니 다급히 몸을 날렸다. 한 박자 늦게 광선이 그 자리를 지나갔다.

“아니, 아니! 합리적으로 좀 생각해 봐요! 퍼플 님이랑 무슨 1대1을 해!?”

지놈은 황망한 표정으로 소리를 높였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혀엉! 지금 이거 5만 명이나 보고 있다구!

-지하다 추놈아!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우리 형ㅠ

-티밍 작전 바로 실패 ㅋㅋㅋ

-근데 사실 저게 이성적인 거긴 한데 ㅋㅋㅋㅋ

-하지만 다른 둘이 너무 비이성적이었고 ㅋㅋㅋㅋ

지놈은 신속히 도망쳤다.

“에이, 이렇게 된 이상……!”

그리고 그 방향에는 이경복이 있었다.

“퍼플 님! 힘을 합칩시다! 저 둘부터 처리하고 승부를 가리죠!”

그 광경에 채팅창의 반응은 더욱 격렬해졌다.

-여기서 퍼플한테 붙는다고?

-방금 전까지 무슨 1:1이냐며!

-이거 완전 지적지 아니냐?

-ㄴㅇㄱ 상상도 못한 발상의 전환

-야! 너무 빨라서 환승 인식도 안 되겠다!

-않잌ㅋㅋㅋ 어디까지 추해질 거냐곸ㅋㅋㅋ

-???: 바닥에는 더 바닥이 있다는 것을!

-이거 완전 박쥐놈이네

-그냥 쥐놈으로 하자

-엌ㅋㅋㅋ 쥐놈ㅋㅋㅋㅋㅋ

-쥐놈의 입지 : 트최피 > 트최입 > 트최추

-트최추 미쳤냐고 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은 이때다 싶어 지놈을 놀려먹었다.

이경복은 채팅창과 더불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지놈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미소가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건 아니었다.

“저는 세 분 모두 상대해도 상관없는데.”

“아니, 그러지 마시고……!”

지놈은 이를 악물었다. 이내 그는 총을 잡고 소리쳤다.

“에이씨! 이렇게 된 이상 다 덤벼! 나도 트최피 소리 들은 사람이라 이거야!”

-응~ 늦었어~ 이미 바닥 다 보여줬어~

-다 버림받으니까 급수습 티나자너 ㅋㅋㅋㅋ

-ㄹㅇㅋㅋ 명예로운 죽음으로 위장하려고 ㅋㅋㅋ

-차라리 동료들에게 무기를 겨눌 수 없다고 하지 ㅉㅉ

-엌ㅋㅋ 진짜 그게 낫겠다

채팅을 보던 지놈이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전우를 내 손으로 죽일 수……”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뉴턴좌 >>Railgun >> GENOME]

광선에 재가 되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쥐놈 컷!

-쥐소리 컷!

-뉴눈나 나이스샷!

-아 ㅋㅋㅋ 개쪼겠네 진짜

-그 와중에 채팅창 컨닝ㅋㅋㅋㅋ

그러나 그를 동정하는 시청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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