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 타임워페어 - 퍼지데이 내전
지놈이 사라진 사이 이클립스도 비슷하게 퍼플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오! 이클도 왔음!
-이제부터 이벤트 시작합니다^^
-자~ 잠시 소란이 있었어요~
-아니 시끄러운 쥐가 있었다니깐!?
-팀 퍼지데이? 그거 3인 스쿼드 아니냐?
-1:1:1 구도 바로 나오고 ㅋㅋㅋ
-쥐놈 기록말살형 ㅋㅋㅋㅋ
시청자들이 흥을 내세웠다.
그 사이 삼각형 구도로 자리를 잡은 세 사람.
“아까도 말했지만 티밍하셔도 전 상관없습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이경복이었다.
“본인도 말했듯 그럴 생각은 없소. 그러니 그대부터 처리를 해야겠군.”
이클립스는 뉴턴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모두의 예상을 벗어났다.
“아니, 순서는 양보하지.”
“양보?”
“괜히 힘 낭비할 생각은 없거든.”
그녀는 코웃음과 함께 물러나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차피 당신 혼자서는 퍼플을 이길 수 있을 리도 없고.”
“불가능하다 하여 포기한다면 도전조차 하지 않았을 거요. 그대 같은 불한당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이클립스는 그리 대답하고는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같은 팀 맞음?
-분위기 살발하다 살발해 ㅋㅋㅋ
-또갓격파보다 이게 더 긴장감 넘치누 ㅎㄷㄷ
-강대강 미쳤고 ㅋㅋㅋ
순서가 정해지자 이경복은 레이저 소드를 다시 들었다.
“한 번 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소!”
“즐겁게 마무리하죠.”
이윽고 두 사람이 인사를 마치고 맞붙으려는 순간, 뉴턴좌가 레일건을 들고 이클립스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뭣……!”
평소라면 충분히 대응했을 이클립스지만 모든 신경이 이경복에게 쏠려 있었던 터라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뉴턴좌 >>Railgun>> 이클립스]
광선이 적중하며 이클립스의 몸이 재로 변해 사라졌다. 이경복은 그녀 쪽으로 눈을 돌렸다.
“힘을 낭비하지 말아야 하는 건 그쪽도 마찬가지야.”
순식간에 두 사람이 탈락했다.
이 상황에 정소윤과 해설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아, 뉴턴좌 선수가 경쟁자들을 모두 처리해 버렸습니다!”
“이클립스 선수, 많이 억울할 것 같습니다! 뒤통수를 맞았어요! 하지만 룰 자체는 프리 포 올이거든요? 반칙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이 바뀔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일종의 독점욕이라고 봐야할까요!? 퍼플 선수 인기가 대단합니다!”
-진짜 이건 이클립스가 너무 안일했다ㅋㅋㅋ
-확실하게 1:1 상황을 만들었어야 되는데 ㄲㅂ
-그걸 믿었음? 뉴턴킥!
-뉴눈나는 기사가 아니었습니다!
-엘든소울 결투만 해서 그런거여 ㅋㅋㅋㅋ
시청자들도 해설에 동의했다. 이에 정소윤은 빠르게 중계를 이어갔다.
“결국 이렇게 퍼플 선수와 뉴턴좌의 리매치가 진행이 되네요. 과연 어느 쪽이 최종 우승자가 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이경복은 뉴턴좌를 향해 미소 지었다.
“아쉽게도 총은 보스전에서 망가져서 말이죠. 예전처럼 무기를 던져줄 겁니까?”
“아니,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갈 거야.”
“다른 방식?”
뉴턴좌는 들고 있던 레일건을 뒤로 던졌다. 그리고 양손을 올리며 격투 자세를 취했다.
“아직 검술로도 이길 수 없다는 건 잘 알아. 그러니까 격투로 승부를 보자고.”
“오? 격투기도 배웠어요?”
그 말에 이경복은 흥미를 보였다. 맨손격투를 하자는 제안은 예상 외였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 호신술로 배워 뒀지.”
“어릴 적에? 아, 하긴……”
이경복은 뒷말을 속으로 삼켰다.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시긴 했겠지.’
아이돌이 될 정도의 외모가 아닌가. 피겨 스케이팅으로 진로를 잡았으니 신체단련 겸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좋습니다. 재미있겠네요.”
이경복도 웃으며 레이저 소드를 치웠다. 뉴턴좌와 달리 그는 가벼운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그에게 익숙한 복싱 스텝이었다.
-여기서 격투를?
-갑자기 분위기 UFC
-근데 재미있을 거 같은 게 함정 ㅋㅋㅋ
-GGG : 저희 총겜인데요……?
-않잌ㅋㅋㅋ 왜 거너 그라운드인데 총을 안 쓰냐고!
-???: 시키는 대로 하기 싫어!
-아 ㅋㅋ 꼬우면 다른 사람 섭외하시든지
시청자들이 흡족해하는 사이 두 사람이 맞붙었다.
이경복은 벼락처럼 날아드는 그녀의 손길을 피해냈다. 그는 가볍게 반격을 개시하며 그녀의 기량을 파악했다.
“두 선수!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역시 반사신경의 뉴턴좌에요! 엄청납니다! 바로 눈앞에서 피하고 있어요!”
“퍼플 선수는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분명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안 맞았어요! 마치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이런 게 진짜 가능한가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느 누가 이길지 모를 격전이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달랐다.
“시선 처리가 능숙해졌네요. 많이 연습하셨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속겠어요.”
“집중해!”
그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뉴턴좌는 노성을 터트렸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인간이야!?’
그 말대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훈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꽤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정작 목표인 퍼플의 반응은 어떠한가.
‘칭찬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고?’
그녀는 진심전력으로 상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경복은 마치 성과를 점검해주는 듯한 태도가 아닌가.
-와씨 ㅋㅋㅋㅋ 진짜 압도적이네
-저렇게 싸우는데 멘트를 치네 ㅎㄷㄷ
-대놓고 돌리는 인성 수듄ㅋㅋㅋㅋ
-뉴눈나도 겁나 빠른데 ㅋㅋㅋ
-진짜 클라스 차이 너무 심하고
-청출어람 언제 되냐? 그때 올란다
-아 ㅋㅋ 제자가 스승 넘는 클리셰 이제 안 먹힌다고
시청자들 역시 그녀와 비슷한 감상을 표했다. 이경복은 이에 억울한 듯 코끝을 찡그렸다.
“아니, 진짜 놀라서 그런 겁니다. 단시간에 엄청 발전했어요. 센스가 좋다니까요?”
“이게 진짜!”
이경복의 말에 그녀는 더욱 성을 냈다. 칭찬은 그래도 참을 만 했지만 시청자와 소통이라니?
그간의 피나는 노력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화를 좀 줄이셔야지. 몸에 힘이 들어가잖아요?”
이경복은 그녀를 향해 속삭였다. 분노를 터트리며 자신도 모르게 동작이 커진 것이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빈틈.
이경복이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뉴턴좌는 뒤늦게 아차 싶었지만.
‘이런……!’
턱이 돌아가며 시야가 뒤흔들렸다. 이윽고 풀썩 그녀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당신의 ‘주먹’을 사용한 헤드샷으로 ‘뉴턴좌’가 기절했습니다]
-나왔다! 매콤 주먹!
-아 ㅋㅋ 불닭주먹은 못 참지
-ㅁㅊ 이걸 한 방에 정리해버리네
-캬! 이게 바로 KO지!
-저저, 살인미소 저거!
이경복은 떠오른 메시지를 치우며 말했다.
“다시 일어나는 걸 기다리는 게 오히려 실례겠죠?”
기절한 그녀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경복은 이내 지놈의 시신, 잿더미가 남은 자리를 뒤적였다.
이윽고 그의 손에 들린 건 다름아닌 수류탄이었다.
“피날레를 부탁드릴게요.”
이경복은 환한 웃음과 함께 핀을 뽑고 뉴턴좌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퍼펙트플레이 >>Frag Grenade>> 뉴턴좌]
폭발과 함께 떠오른 마지막 킬 메시지.
[퍼펙트플레이]
[승리했소! 오늘 저녁은 한우로 하겠소!]
[랭킹#1 / 킬 14]
그와 함께 최종 우승자가 결정됐다.
“아! 이렇게 결국 최종 우승자는 퍼플 선수가 됩니다! 축하드립니다!”
“우승상금 2천만 원의 주인공이 결정됐습니다! 역시나 어우퍼, 어차피 우승은 퍼플! 다시금 증명이 됐네요!”
“이번 이벤트 모드는 정말 역대 이벤트 중 최고네요! 시청자 여러분, 이렇게 재미있는 ‘타임 워페어’가 내일부터 여러분 곁을 찾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업데이트와 이벤트 모드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소윤과 해설진의 멘트에 채팅창은 박수 이모티콘으로 점철되었다.
-어우퍼! 어우퍼! 어우퍼!
-퍼지데이로 시작해서 퍼플만이 남은 이벤트
-이거 완전 OTP 아니냐?
-와 ㅋㅋㅋ 2천만 원 개부럽다 진짜
-게임 한판에 2천을 땡기는 스머가 있다!?
-GGG 입장에서는 갓직히 2천이 아깝지 않을 듯 ㅋㅋㅋㅋ
-근데 이벤트는 너무 어렵지 않나?
-ㄹㅇㅋㅋ 소윤 이모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벤트는 좀 빡세긴 해
-아 ㅋㅋ 우린 퍼플 보러 온 거라구욧!
* * *
이벤트가 마무리된 후.
퍼지데이 팀은 다시 대기실에 모였다.
“오늘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지놈이 쾌활하게 손뼉을 치며 운을 띄웠다.
“다들 수고하셨소.”
“그래, 뭐……”
“아, 근데 정말 제가 상금 다 가져도 됩니까?”
이경복이 슬쩍 손을 들며 물었다. 다른 세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난 애당초 상금 따위는 관심이 없어서.”
뉴턴좌가 퉁명스럽게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본인도 상관없소. 이번 경험이 더 값지니 충분히 만족했소이다.”
“나도 괜찮아. 이번 대회에서 또 밈이 많이 생겼거든. 한동안은 영상도네로 짭짤하게 챙길 것 같다야.”
이클립스와 지놈도 같은 의견이었다. 이경복은 약간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저 혼자 다 챙기는 건 좀 그렇긴 한데.”
“그럼 뭐, 나중에 뒤풀이 회식이라도 하면 되지.”
“음음, 그거 좋겠구려.”
“아, 그럴까요?”
지놈의 제안에 이경복이 웃다가 이내 아차 싶은 표정으로 눈을 돌렸다. 그제야 다른 두 사람도 그 시선을 쫓았다.
그 끝에는 뉴턴좌가 있었다.
정체를 숨기는 그녀와 뒤풀이가 되겠는가.
“……난 신경 쓰지 말고 셋이서 하든가.”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럽니까.”
“방법이 없는데 어쩔 수 없지.”
그녀의 대답에 이경복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혹시 뒤풀이를 하고 싶은 건가?’
싫다면 단칼에 잘라냈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 말하는 걸 보니 ‘의향’이 아니라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지 않나.
“먼저 가야겠어. 퍼플, 약속은 꼭 지키고.”
그 사이 그녀가 작별을 고했다. 지놈과 이클립스가 눈치를 보는 사이 이경복이 일어섰다.
“방법을 찾으면?”
“뭐?”
“찾으면 올 거지?”
이경복의 물음에 다른 두 사람이 그녀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뉴턴좌는 이경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홱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이내 사라졌다.
“에헤이, 거참 쌀쌀맞기는.”
“아니야, 형. 그래도 재미는 있었나 봐.”
지놈이 혀를 차자 이경복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다른 사람들은 작아서 못 들은 것 같았지만 그는 그녀가 중얼거리는 걸 들었다.
남은 세 사람도 이내 인사를 마치고 자리를 비웠다. 이경복 역시 게임을 종료하려는 순간이었다.
[>경복아 잠깐만]
불쑥 튀어나온 메시지.
매니저, 박주호의 것이었다.
이경복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GGG쪽에서 미팅을 요청했어]
[>괜찮다면 지금 보자는데?]
[>아, 그냥 직원은 아니고 사업실장이 요청한 거야]
[>이건 그쪽에서 보내준 초대코드]
이어지는 메시지에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갑자기 왜? 이벤트 잘 끝난 거 아냐?”
굳이 메시지로 답신하지 않아도 모니터링 중이니 들을 수 있을 터였다.
갑작스러운 요청이니 불쾌할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의문이 앞섰다.
“게다가 실장이 직접?”
팀장도 아니고 실장이 아닌가.
꽤 높은 직급이니 허튼 이야기는 아닐 터였다.
[>나도 자세한 내용은 전달 못 받았다]
[>실장이라서 갑질하는 걸지도]
[>일단 거절할까?]
이경복은 눈을 굴렸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일단 만나 보기는 하자.”
뭔가 안 좋은 일이라면 신기에 걸리는 게 있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경고는 없었다.
“시간은 여유가 있으니까.”
이벤트 매치 하나만 진행했기에 평소 방종 시점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알았어]
[>최병훈은 영상편집 중이니까 나만 접속할게]
* * *
이경복은 박주호를 대동하고 프라이빗 라운지로 이동했다.
뉴턴좌, 윤나라의 그것과 같이 고층 라운지 바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 어서 오십시오!”
그들이 등장하자 대기하고 있던 사업실장이 환한 웃음과 함께 넙죽 허리를 숙였다.
“정말 훌륭한 활약이셨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진행한 이벤트 중 최고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두 퍼플 님 덕이죠!”
그는 약간 고조된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이경복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감사를 표했다.
“저야 재미있게 하려던 것뿐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갑자기?”
“아, 네네!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실례인 걸 알면서도 급한 일이라서요.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사업실장은 두 사람을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는 직급에 맞지 않게 저자세로 일관했다.
“혹시 원하시는 주류가 있으십니까?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사양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권유를 거절하자 사업실장은 대신 물을 꺼냈다. 뭐라도 건네야 마음이 편한 모양이었다.
“퍼플 님을 모신 건 다름이 아니라 마케팅에 관해서입니다.”
“마케팅이요?”
“네. 처음에도 말했지만 퍼플 님 활약이 이번에 워낙 뛰어나셔서요. 원래는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사업실장은 그리 웃으며 눈을 빛냈다.
“킬러노이드 제작에 퍼플 님 데이터를 이용했다는 걸 공개하려 합니다.”
“제 데이터를?”
“네. 바이럴 마케팅으로요.”
GGG는 깨달았다.
이경복, 스트리머 퍼플은 그냥 이벤트 한 번으로 끝내기에는 아까운 인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