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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126화 (126/491)

126화 - 곳간에서 인심난다 (1)

자욱한 수증기에 거울이 뿌옇게 변했다. 그 위로 물이 쏟아지자 수증기가 걷히고 한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흐음……”

그는 바로 이경복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침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마친 그는 자신의 몸을 점검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쉬면 근육이 줄어들 테니 조심해야겠어.’

남들이 보기에는 부러워마지 않는 몸매였지만 그의 눈은 엄격했다.

가상현실에서 격하게 움직인다고 현실의 몸이 자극을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캡슐에 오래 누워 있으니 근육량은 감소하지 않겠나.

정리를 마치고 샤워실에서 나온 그는 바로 프로틴 쉐이크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스마트 링크로 트나잇 팬페이지를 살폈다.

[<공지> 오늘은 휴방입니다.]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공지에는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아니잇! 이 무슨 잔학한 처사란 말인가?!]

[-5252, 블랙기업 시절이 돌아와 버린 거냐구웃!]

[-이런 현실 받아들일 수 없어!]

[-갑자기 퍼손실 뭔데에엑!]

아쉬움을 성토하는 댓글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댓글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않이 ㅋㅋㅋ 직원들 때문에 휴방하는데 무슨 블랙기업이냐구]

[-킹직히 퍼튜브 업로드 속도 보면 강행군이긴 했지 ㅋㅋㅋ]

[-ㄹㅇㅋㅋ 타임워페어 끝나자마자 하이라이트 영상 올라옴]

[-메이킹 필름 인터뷰 영상 체크도 매니저님이 다 했다자너!]

[-갓플이 직접 공지 쓸 정도면 이미 말 다했지]

[-두 분 다 푹 쉬고 오라구욧!]

이번 공지는 편집자 겸 채널관리자, 최병훈이 쓴 게 아니라 이경복 본인이 직접 작성했기 때문이었다.

‘쉬라고 해도 들을 놈들이 아니지.’

어젯밤, 메이킹 필름에 넣을 인터뷰를 마치고 이경복은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최병훈과 박주호는 늦게까지 GGG와 협업을 이어갔다.

‘병훈이야 원래 야행성이라지만 주호는 좀 빡셌을 거야.’

이에 그는 친구들이 잠에 든 사이 독단적으로 휴방을 결정했다. 정작 친구들은 이 결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뭐, 내가 사장인데.’

어디까지나 ‘팀 퍼펙트’의 중심은 그였다. 그는 웃으며 단백질을 보충했다.

바로 그때, 스마트 링크가 세차게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인데.”

처음 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였다. 보통은 스팸이라 생각하고 무시할 터였지만.

‘스팸이면 어플이 경고메시지를 띄웠을 텐데?’

스팸으로 신고된 번호는 내장 어플이 바로 알려 줄 터였다. 이에 이경복은 스마트 링크를 조작해 신고 내역을 확인했다.

[응답자 중 99%가 ‘ML은행’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이윽고 떠오른 홀로그램 메시지에 이경복은 눈을 껌뻑였다. 은행에서 갑자기 왜 전화가 왔을까?

일단 스팸은 아니니 전화를 받아보기로 했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Make Lich, ML은행의 이미영입니다. 실례지만 이경복 고객님 번호가 맞으실까요?>

나긋나긋하면서도 정중한 말투였다.

“예, 맞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구요. 다름이 아니라 혹시 이경복 고객님께서 큐튜브와 트라이 채널에서 방송을 하고 계신가요?>

은행직원의 말에 이경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은행 쪽에서 그가 방송을 하는지 대체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순간 당황했지만.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이경복이 간단히 수긍하자 직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네, 확인 감사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큐튜브와 트라이 측에서 정산금이 고객님 계좌로 입금 됐는데요. 두 회사 모두 해외에 본사를 두고 있어서 달러로 송금이 됐습니다. 그래서 환전을 하시면 환율이 적용되시거든요.>

“정산금이요?”

<네네. 그런데 저희 은행에서 이경복 고객님과 같은 크리에이터 분들을 위한 전용 계좌를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환율 우대 항목이 있어서 환전하시기 전에 안내를 드리려고 연락 드렸어요.>

“아……”

이경복은 그 설명과 함께 친구들의 말을 떠올렸다. 큐튜브와 트라이 모두 매월 중순에 지난달 수익을 정산해 준다고 하지 않았나.

‘벌써 그렇게 된 거구나.’

그는 잠시 눈을 굴리다가 답했다.

“안내 감사합니다. 일단 더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당장 급할 건 없었다. 어쩌면 다른 은행에서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었다.

이경복은 통화를 끊고 바로 은행 어플을 열어 계좌를 확인했다.

이윽고 내역에 적힌 금액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이게 첫 달 정산금이라고?’

그는 눈을 껌뻑거리며 자릿수를 세었다.

[QOOGLE ASIA PACIFIC]

[입금 – 16,791.9$]

[환전 금액 – 20,303,239원]

[TRY INTERNATIONAL]

[입금 – 24,886.7$]

[환전 금액 – 30,090,736원]

이경복은 헛숨을 삼켰다.

큐튜브는 약 2천만 원, 트라이는 약 3천만 원에 달했다.

‘총합하면 약 5천만 원.’

그 현실감 없는 금액에 이경복은 잠시 멍하니 화면만을 쳐다보았다.

그래서일까.

기쁨보다는 의문이 앞섰다.

‘이거 제대로 들어온 건가? 병훈이가 보통은 큐튜브 수익 쪽이 더 높다고 했는데?’

대다수의 개인방송인들은 큐튜브 쪽 수익이 높다.

조회수로 수익이 결정되는 큐튜브와 달리 트라이는 시청자의 후원금과 중간 광고, 그리고 시청자들의 구독료로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영상 시작부터 광고를 보여 주는 큐튜브와 달리 트라이는 시청자들을 일정시간 붙잡아 두어야 했다.

‘아, 첫 달은 트라이가 더 많겠구나.’

그리 되짚어 보던 이경복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정산된 금액은 스트리머 생활을 시작한 첫 달로 한정된다.

‘큐다리랑 뉴턴좌가 후원을 좀 많이 했었지.’

방송 초기 큐다리의 퀘스트를 통한 백만 원대의 후원, 그리고 뉴턴좌가 실력 평가와 가르침을 받기 위해 후원한 금액이 상당하지 않았나.

‘잠깐…… 내가 첫 달에 번 게 이것만 있는 게 아니잖아?’

이경복은 그리 첫 달의 활동을 되짚어 보다 눈을 번쩍 떴다.

‘광고 계약도 좀 했었는데? 내가 대체 얼마를 번 거지?’

파노라마처럼 첫 달의 행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첫 게임인 바이오 크라이시스로 ‘캡 컴퍼니’와 3백만 원, ‘GGG’와 데이터 계약으로 2천만 원, ‘리얼리티’와 캡슐 언박싱으로 1천5백만 원에 커스텀 캡슐 약 3천만 원까지.

“와……”

이경복의 머리는 숫자로 가득해졌다. 끝내 그는 탄사와 함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한 달 만에 1억이라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산금과 외부 광고 계약까지 합하니 억 단위가 나왔다.

연봉 1억도 부러운데 월 1억이라니?

‘아니지. 이게 전부 순이익은 아니잖아.’

하지만 그는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그가 계산한 금액은 어디까지나 ‘매출’에 해당한다.

실제로 그에게 떨어지는 금액은 ‘비용’을 계산해 봐야 했다.

‘일단 두 녀석한테 월급이랑 인센티브를 지급해야겠지. 그리고 보조 편집자로 일해 준 매드거너가 있고, 지놈 형이 소개시켜 준 세무사 수수료도 있네. 아, 이모티콘 외주도 있었지? 그러고 보니 주호가 음료랑 식사도 비용처리가 된다고……’

머릿속에 나열되는 비용에 해당하는 항목들, 그리고 거기에 부과되는 세금도 있을 터였다.

이경복은 그것들을 전부 떠올리고는 이내 코끝을 찡그렸다.

“에이!”

암산이나 계산기를 두드린다고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주호가 나중에 보기 좋게 정리해 주겠지.”

그리고 그걸 하기로 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래도 절반은 내가 먹겠지 뭐.’

아무리 비용이 빠져도 매출의 절반 정도는 그의 손에 떨어지지 않겠나.

‘한 달에 5천만 해도 어디야. 완전 대박이지.’

절반만 해도 약 5천만 원에 달한다. 연봉으로 따지면 6억이 아닌가?

이경복은 새삼 대박이 났다는 걸 자각했다. 하지만 흡족해하던 그의 표정은 일변했다.

‘……근데 이 돈을 어디다가 쓰지?’

목돈이 생긴 건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돈이라는 건 버는 것보다 쓰는 게 중요한 법.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일단 감사한 사람들을 위해 쓰자.’

이경복은 은행 어플을 끄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       *       *

도심에 위치한 한 고급 호텔.

그곳의 36층에 위치한 프렌치 파인 레스토랑.

이경복은 그곳에 자리를 잡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무리 평일이라지만 당일 예약이 될 만한 곳이 아닌데?’

오기 전에 검색해 보니 미식 평가로 유명한 ‘위슐랭’ 2스타를 받은 곳이기도 했다.

“아이고, 우리 경복이! 먼저 와있었나!”

의아해하는 그 뒤에서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경복은 바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양규리 이모님.”

“아이고야, 뭐 그리 격식을 차리나. 내가 먼저 나올라켔는데 일찍도 왔다야.”

“아니에요. 제가 갑자기 연락드렸는데요 뭘.”

이경복이 감사해야 할 사람.

그 첫 번째는 양규리 이모님이었다.

“에이, 괜찮다니까. 어쩐지 어제 꿈자리가 좋고 오늘은 쉬어야겠다는 예감이 있었다 안 카나.”

그녀는 쾌활하게 웃으며 자리를 잡았다. 이경복도 옅은 미소와 함께 앉았다.

“지금 보니까 다 이 자리 때문이었네. 여기 좀 마음에 드나? 좋은 곳 좀 소개시켜 달라케서 예약했는데 괜찮나?”

“네네, 풍경도 좋고 요리도 맛있을 것 같아요.”

“맞나? 혹시라도 마음에 안 들믄 어쩌나 싶었지. 그래도 돈 값하는 곳은 맞다.”

양규리의 말에 이경복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아유,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전화로도 말씀드렸잖아요. 이전에 이모님이 해 주신 말씀이 큰 도움이 됐다니까요.”

“글나? 그래도 진짜 대박이긴 한 갑다야.”

“막상 돈이 들어와도 쓰려니까 막막하더라고요. 이참에 이모님께 감사도 전하고 돈 쓰는 법도 배우려고요.”

“아이고, 우리 경복이 말도 참 예쁘게 하네. 잘 컸네, 아주 잘 컸어.”

“아니에요. 이 정도로 뭘……”

이경복이 멋쩍게 웃었다.

양규리는 훈훈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은은한 미소로 말을 이었다.

“사실, 좀 그랬다 안 카나. 저번에 내 입장만 전해서 괜히 부담만 준 거 아닌가 신경이 많이 쓰였거든.”

자신을 가족처럼 여긴다는 그 말을 뜻하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이렇게 우리 경복이가 먼저 찾아 주니 감격스럽다야.”

“전혀 부담 아니에요. 종종 연락드릴게요.”

“맞나. 그래, 그래. 니도 무슨 문제 있음 언제든지 연락해라. 아, 이제 음식 나오는 갑다.”

그리 담화를 나누는 사이 주문해 둔 코스요리가 서빙되기 시작했다.

‘랍스터랑 푸아그라는 그래도 들어봤는데 끄넬이라는 요리는 또 처음이네.’

스타터부터 시작해서 이어지는 고급 요리의 향연.

‘돈 많은 사람들은 이런 걸 먹는구나.’

이경복은 그 생소한 요리와 진한 풍미에 놀랐다. 식사 사이사이 가벼운 대화를 이어나가는 도중 양규리가 물었다.

“그래, 그럼 이제 다른 고민은 없나?”

“아, 이제는……”

이경복은 잠시 뒷말을 흐렸다.

고민은 없었지만 신경 쓰이는 건 있었다.

“고민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닌데요.”

그가 꺼낸 주제는 퍼지데이 팀의 뒤풀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물론 뉴턴좌의 정체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엄메야, 그런 경우도 있나? 아예 정체를 숨겨야 된다꼬?”

“네, 좀 특이한 상황이긴 해서요. 그냥 다른 셋이서 어울리라고 말하긴 했는데, 이왕이면 다 같이 즐거운 게 좋잖아요.”

그 말에 양규리는 웃음을 흘렸다.

“우리 경복이가 다 큰 거 같아도 아직 얼라구나 얼라야.”

“네?”

“그런 건 고민거리도 아니지. 내한테 다 방법이 있다 안 카나.”

“방법이요?”

이경복이 눈을 크게 뜨자 그녀는 다시금 웃었다.

“세상에 그렇게 프라이버시를 챙기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나? 그놈에 이미지 챙긴다꼬 점사는 꼭 봐야 되는데 내를 못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이. 그런데도 내가 다 점사를 봐줬지.”

“어떻게요?”

“이게 수요라는 기 있으믄 공급이 생기는 기라. 생각보다 이런 은밀한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 많다. 그 콧대 높은 양반들 점사 봐 줄라고 내가 출장 간 적이 을매나 많은데.”

양규리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경복이, 니랑 같이 논 얼라들이랑 얘기 해가 날짜랑 취향 같은 거만 딱 정해 놔라. 그카믄 내가 장소부터 쉐프까지 다 준비해 줄 테니께.”

“이모님이요?”

“왜? 내 말 못 믿겠나?”

이경복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믿죠.”

방법이란 때로 행동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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