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128화 (128/491)

128화 - 곳간에서 인심난다 (3)

늦은 밤, 지놈의 방송.

“드디어 깼다! 이 개같은 게임!”

갑옷을 걸친 지놈은 크게 소리치며 등에 짊어지고 있던 꿩을 집어 던졌다.

-엌ㅋㅋ 이걸 결국 깨버리네

-38트만에 성공!

-진짜 게임 빡치게 만들긴 했음ㅋㅋㅋ

-오로지 플레이어를 고통받게 만들기 위한 목적!

시청자들은 웃으며 그의 성공을 축하했다. 지놈은 바로 게임을 종료하고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그는 지친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어우…… 장독대 게임도 그렇고 이런 게임은 왜 자꾸 나오냐 진짜.”

-보는 우리가 즐거우니까 괜찮은 거 아닐까?

-아 ㅋㅋ 컨텐츠로는 딱이자너

-ㄹㅇㅋㅋ 오늘 나온 소스만 해도 얼마냐고

-트최추답게 추한 모습 너무 많았고 ㅋㅋㅋㅋㅋㅋㅋ

지놈은 채팅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 아무튼 이번 ‘ALTTAP’게임은 클리어 성공! 오늘 방송은 이쯤하고 하나 공지하나 할게.”

지놈의 말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연달아 올라왔다.

“내가 원래 갑자기 이러는 스타일은 아닌데, 내일은 휴방이야.”

-엥? 휴방? 무엇?

-않이;; 월차 쓰시려면 미리 결재부터 받으셔야지!

-오늘 알탭하다가 혈압 오른 거 아님? ㅋㅋㅋㅋ

-표정 보면 나쁜 일은 아닌 듯?

-뭐야? 여친 생긴 거야? 그런 거야?

-트최추와 연애? 마더 테레사인가?

-테레사 ㅇㅈㄹ ㅋㅋㅋㅋ

-5252, 방송 일정도 안 지키다니 어디까지 추해질 셈이냐구웃!

-뭔 사정이 있곘지 ㅋㅋㅋㅋ

갑작스러운 휴방 얘기에 시청자들은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하지만 지놈은 그 기저에 깔린 걱정을 알 수 있었다.

“무슨 문제 생긴 건 아니고, 내일 퍼지데이 뒤풀이가 잡혀서.”

그의 발언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됐다.

-헐? 퍼지데이 뒤풀이라고!?

-와씨 ㅋㅋㅋㅋ 오프라인에서?

-ㅁㅊㄷㅁㅊㅇ

-아! 왜 우리 없는데서 노냐고오!

-같이 좀 놀자고!

-즉.시.야.방

-야방할 때까지 숨 참읍니다!

시청자들은 즉각 야외방송을 요구했다. 지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애들아. 뭔 야방 드립을 치고 있냐? 우리 멤버들 다 얼공 안 하는 거 알면서.”

-치사하게 팩트를 내세우다니……!

-그만큼 보고 싶으시다는 거지

-왜 내가 좋아하는 스머들은 다 얼공을 안 하냐……

-근데 이건 킹쩔수 없긴 해

-갓직히 나는 얼굴 상관없는데

-ㄴㄴ 사람인 이상 외모 영향 안 받을 수가 없음

채팅창은 이내 아쉬움으로 가득해졌고, 자연스럽게 얼굴 공개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갔다.

-늙병추인 형이야 그렇다고 해도 갓플은 공개할만하지 않나?

-ㄹㅇㅋㅋ 캡슐 언박싱 보니까 몸은 개쩔던데

-몸만 좋은 게 아님 ㅋㅋㅋ 머리도 완전 작았음

-그렇게 좋은 조건인데 얼공을 왜 안하지?

-그만큼 콤플렉스가 있는 거겠지

그 와중에 나온 퍼플의 얼굴에 대한 채팅. 지놈은 그걸 보며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경복이가 얼굴 까면 진짜 뒤집어지겠네.’

실물을 본 그로서는 시청자들의 채팅이 코미디나 다름없었다.

‘게임 천재, 방송 천재, 그리고 얼굴 천재까지 쌉가능인데.’

이경복이 얼굴을 공개한다면 스트리머 업계가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일 게 분명했다.

지놈은 그가 왜 얼굴을 공개 안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뭐,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건 자신이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아무리 친해졌다지만 이경복의 내력을 속속들이 아는 사이도 아니지 않나.

“얘들아, 선 지켜라. 이런 식으로 얼공 요구했다가 접은 스머들 많은 거 알지?”

지놈은 채팅이 과해지지 않도록 경고를 전했다. 이에 시청자들은 즉시 반응했다.

-고건 또 맞지

-게놈들 눈치챙기자^^

-그냥 ㄹㅇㅋㅋ만 치라고 ㅋㅋ

-혀엉! 그럼 나중에 썰 풀어주는 거다!

“일단 가서 생각해 볼게. 자, 그럼 다들 좋은 밤 되시고! 트바!”

지놈의 인사와 함께 화면이 암전됐다. 시청자 숫자가 줄어들었지만 아직 채팅창에는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야방 안 하는 거 너무 아쉽고 ㅠ

-갓플 직접 보는 건 부럽긴 해 ㅋㅋㅋ

-이클립스는 원래 휴방일이었네

이내 잦아들기 시작하는 채팅.

방송을 켜둔 채 잠든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떠났을 터였다.

그렇게 채팅이 끊기는가 싶은 순간.

-근데 퍼지데이 뒤풀이면 설마 뉴턴좌도 오나?

한 시청자가 던진 물음에 채팅창은 다시금 활발해졌다.

-어? 생각해 보니 그르네?

-설마 ㅋㅋㅋ 뉴턴좌가 오프 모임에 나오겠냐곸ㅋㅋ

-근데 킹능성 있지 않음? 팀으로 섭외까지도 했는데?

-킹능성은 무슨 ㅋㅋㅋ 셋이서 노는 거겠지

-만약 오면 진짜 대박일 듯 ㅋㅋ

-뉴눈나 완전 갑부 아닌가? 오면 막 다 사주는 거 아님?

-그럼 뭐하냐고! 볼 수가 없는데!

-어느 쪽이든 승리자는 지놈인가……

-갑자기 킹받네?

시청자들은 다시금 부러움을 표출했다.

*       *       *

다음날, 이른 저녁.

매니저는 슬쩍 뒷좌석에 앉은 윤나라를 쳐다보았다.

‘별일이네.’

평소 휴일에는 윤나라가 이렇게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녀는 대부분 숙소 방에 머물렀으니까.

‘마스크랑 안경까지 쓴 걸 보면 누굴 만나러 가기는 하는 것 같은데.’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마스크와 이미지 체인지를 위한 동글이 안경까지 썼다. 마스크에 선글라스는 오히려 더 주목받기에 도수 없는 안경을 구비해 두었다.

‘일반인 친구는 아닐 테고……’

이유는 몰랐지만 실제로 윤나라는 데뷔 이후 일반인 친구를 만난 적이 없었다.

스위티즈 매니저가 되면서 받은 교육 중 하나가 윤나라의 연예계 데뷔 이전, 피겨스케이팅 준비할 때의 이야기는 묻지 말라는 것이었다.

‘에이, 운전이나 잘하자.’

매니저는 호기심이 들었지만 표시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보좌하는 역할이라고 해도 사생활까지 침범할 수는 없었다.

호기심의 당사자인 윤나라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냥 놀러 나온 건 정말 오랜만이네.’

출발하기 전까지는 나름 즐거웠지만 지금은 심정이 복잡했다. 방송 외적으로 모임에 참여하는 건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래되었다.

그녀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피겨 스케이팅을 준비하면서 친해진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나라, 걔 좀 재수 없지 않냐?’

‘내 말이. 꿀팁 좀 알려달라니까 그냥 연습만 했다잖아.’

‘어우, 진짜 가증스럽다니까.’

‘솔직히 얼굴 빨이 더 크지.’

‘진짜. 그러면서 맨날 존나 노력하는 척. 존나 역겹다니까.’

‘얼굴 개빻았으면 이미 나락 갔을 텐데.’

‘확 그냥 실수인 척 스케이트 날로 그어버릴까?’

‘오! 그게 진짜 꿀팁이지!’

관계는 무너졌다.

자리를 비운 사이 우연히 들은 ‘친구’들의 본심. 그들은 그녀가 생각한 친구가 아니었다.

그 대화를 들은 이후로 그녀는 슬럼프에 빠졌다. 연습 중에도 그들이 다가오면 몸이 움츠러들었다.

교우관계도 성적도 하락세였다. 결국 그녀는 어릴 적부터 준비해 온 길을 포기해야 했다.

극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시간은 그녀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나는 타고난 재능 같은 걸로 성공하지 않았어.’

삶을 완성하는 건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증명해 왔다.

부모님 덕분에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그 과정은 오롯이 그녀의 노력이 이루어 낸 성과였다.

‘그런 사람들은 아닐 거야. 하지만……’

과거를 곱씹던 그녀는 퍼지데이 팀원들을 떠올렸다. 퍼플과 지놈, 그리고 이클립스가 그 ‘친구’들과 다른 성품을 지녔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는 여전히 걱정이 남아 있었다. 그들의 이면에 또 다른 얼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조금씩 알아가는 거야.’

그녀가 매니저과도 말을 편하게 하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는 이유기도 했다.

같은 스위티즈 멤버들을 믿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그나마 연습생 시절부터 희노애락을 함께해왔으니 다른 이들보다는 쉬운 편이었다.

“도착입니다.”

그 사이 차량은 네비게이션이 찍힌 위치에 도착했다.

“아, 감사해요.”

윤나라는 가볍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고 문을 열었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용무 마치면 연락 주세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의 대답과 함께 매니저는 차량과 함께 사라졌다. 윤나라는 슬쩍 주변을 살펴보고는 스마트 링크를 조작했다.

‘정말 뒤풀이할 수 있는 곳이 있나……?’

의심 반, 호기심 반.

그녀는 이경복이 전해 준 위치를 다시금 확인했다. 차량으로는 진입할 수 없는 곳이라 걸어가야 했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도를 따라 걷던 윤나라는 슬쩍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봐도 식사할 곳은 아닌데.’

약간 후미진 뒷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 하지만 그녀의 마음에 걸리는 건 건물의 외관이 아니었다.

‘방탈출 카페는 왜?’

윤나라는 순간 갈등했다.

혹시 뭔가 해코지라도 하려는 걸까? 지금이라도 그냥 돌아가는 편이 나을까?

‘퍼플이 그럴 사람은 아니지.’

그 의심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믿기로 했다. 경계와 의심은 명백히 별개였으니까.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윤나라는 더욱 의문이 들었다.

‘아무도 없어?’

문소리가 멈추자 정적이 찾아왔다.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카운터에는 직원도 없었다.

대신 그 위에는 실리콘 가면과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가면을 쓰고 방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P-]

이경복이 남긴 메시지가 분명했다. 그걸 확인하자 윤나라는 걱정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무슨 테스트 같은 건가?’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건 ‘이스케이퍼스’였다. 스위티즈로 홍보대사로 참여했다는 건 그 역시 알고 있을 터였다.

‘어둠 속에 나 홀로라.’

입장 가능한 테마는 하나뿐이었다. 윤나라는 입꼬리를 실룩이고는 가면을 썼다.

“어우……”

이내 들어선 테마는 이름 그대로였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방을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네.’

문이 닫히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더듬었다. 시각이 제한 당하니 다른 감각이 서서히 예민해졌다.

‘일단 출구 위치부터 파악해 둬야지. 그리고 열쇠로 쓸 수 있는 물건을 찾는 걸 테고.’

그녀도 나름 경험이 있었기에 능숙히 행동순서를 정했다. 그리 벽을 짚어가기를 잠깐.

‘누군가 있어?’

예민해진 감각이 인기척을 잡아냈다. 순간 섬뜩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순식간에 돌아선 그녀는 곧장 대응할 자세를 취했다.

“뭐해?”

그러나 이윽고 어둠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는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 목소리는 익히 아는, 이경복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뭐하긴, 출구를 찾는 중이지.”

“출구를 찾아?”

“……출구 찾는 게 아니야?”

그 대답에 이경복은 웃음을 흘렸다.

“아니, 손님으로 초대했는데 왜 고생을 시키겠어. 이쪽이야.”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윤나라는 민망함을 숨기지 못했지만 다행히 어둠은 여전했다.

그녀는 이경복의 목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그래도 보이지는 않았기에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잡아.”

그런 그녀 앞에 불쑥 뭔가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윤나라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이경복의 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순간 그녀는 머뭇거렸지만.

‘무슨 애들도 아니고.’

남자와 손잡는 정도야 팬 사인회에서도 많이 하는 일 아닌가. 그리고 이경복도 팬(?)이니 거부감은 금방 사라졌다.

‘생각보다 더 따뜻하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이벤트 도중 이경복이 그녀를 구하며 이미 손길을 느껴본 바 있었다.

하지만 가상현실과 현실의 온기는 차이가 있었다.

윤나라는 이경복의 손을 잡고 어둠을 헤쳐 나갔다.

“조금 눈부시니까 조심하고.”

이경복의 주의에 그녀는 다른 손으로 눈을 가렸다. 출구가 열리는지 밝은 빛이 새어 나왔다.

살짝 눈살을 찌푸린 그녀는 이경복에게 불평하려 했다.

‘야시경 같은 게 있으면 그냥 주면 되지.’

그러나 그녀는 그 생각을 말로 옮길 수 없었다.

“다 좋은데 이게 좀 불편하더라고.”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건네는 이경복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맨 얼굴을 본 윤나라의 동공이 크게 확대됐다.

이미 팬사인회에서 본 바, 그 마스크 아래에 가려진 얼굴이 준수하다는 것쯤은 예상했던 바였다.

물론 그 예상보다 잘생기긴 했지만 그녀가 놀란 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야시경도 없이 거기를 아무렇지 않게?’

어떻게 맨눈으로 그 어둠 속에서 모두 구분할 수 있던 걸까. 대체 얼마나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란 말인가?

그 사이 이경복은 가볍게 그녀의 가면을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흠칫하는 그녀에게 이경복이 벽에 위치한 거울을 가리켰다.

“이건……?”

무심코 돌아본 거울.

그 속에는 그녀와는 전혀 다른, 하지만 위화감 없이 정교한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얼굴이 떠올랐다.

“일본 쪽에서 개발된 특수분장용 마스크야. 직접 만지지만 않으면 쉽게 분간할 수 없지. 실리콘 재질이라서 움직임도 자연스럽고.”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의외의 대답에 이경복은 눈이 크게 뜨였다.

“일본의 아이돌, 정확히는 버추얼 아이돌이 사용하는 물건이거든. 나름 같은 업계니까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어.”

“버추얼 아이돌?”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이거 꽤 비싼 물건으로 아는데? 이벤트 상금으로는 감당할 가격이 아니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그녀의 말에 이경복은 멋쩍게 웃었다.

“준비는 내가 직접 한 게 아니라서.”

양규리 이모님께 맡긴 일이었기에 자세한 내막까지는 몰랐다.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물건에 대한 설명만 들어뒀을 뿐이었다.

윤나라도 더 캐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복도를 넘어 다른 방에 도착했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에 중앙에 놓인 원탁, 그리고 그곳에는 먼저 온 손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와, 진짜 온 거야? 잘 생각했습니다!”

“오셨습니까.”

지놈과 이클립스가 둘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 역시 같은 가면을 썼는데 그 얼굴은 가상현실 속 모습과 같았다.

맨 얼굴인 건 이경복뿐이었다.

“역시 그걸 썼네요. 혹시나 얼굴 볼 수 있나 했는데.”

지놈의 말에 윤나라는 고개를 내저었다.

“얼굴을 밝힐 정도면 이런 장소에 모이지도 않았지. 그쪽도 마찬가지 아니야?”

“아, 그쵸. 뭐, 사실 대단할 거 없는 얼굴이긴 한데.”

“흉이 지거나 화상이 있을 수도 있죠. 각자에게는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얼굴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달라는 거지요.”

날 선 대답에 지놈이 멋쩍게 웃자 이클립스가 나섰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걸까.

지놈은 잠시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 일단 앉읍시다!”

윤나라에게 자리를 안내한 이경복은 환하게 웃으며 설명했다.

“자, 다들 바쁜데 와 줘서 고마워요. 메뉴는 키오스크에서 원하시는 거로 주문하시면 됩니다.”

이동형 키오스크에는 한식은 물론 일식과 중식, 양식 등 다양한 종류의 음식 카테고리가 나열되어 있었다.

“아니, 이거 전부 다 주문되는 거야?”

그 가짓수에 지놈이 놀라 물었다. 이경복은 이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처음이긴 한데 다 된다고 하더라고요. 주문하시면 바로 조리 들어가고, 요리는 서빙로봇이 갖다 줄 겁니다.”

요리를 준비하는 쉐프도 손님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주문 받은 음식만을 만들면 될 뿐.

윤나라는 그 설명에 긴장이 조금 더 풀렸다.

“대체 이런 장소는 어떻게 안 거야?”

“아니, 내 말이.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또 처음 알았네.”

“퍼플 경 덕분에 또 견문이 넓어집니다.”

세 사람의 반응에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인맥이라는 게 이래서 또 좋더라고요. 원하시는 만큼 주문하시면 됩니다.”

*       *       *

주문한 요리는 금방 나왔다.

“미친! 퀄리티 장난 아닌데?”

“음, 나쁘지 않네.”

“미각의 저변이 확대되는 느낌입니다.”

요리 수준은 만족을 넘어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이경복은 흡족해하는 세 사람을 보며 웃었다.

그렇게 식사와 함께 이어지는 대화. 주제는 네 사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타임워페어’ 이벤트였다.

“솔직히 저는 마지막에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설마하니 뉴턴좌께서 뒤를 노릴 줄이야.”

다시금 팀 퍼지데이의 성공을 곱씹다가 이클립스가 꺼낸 말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지놈과 이경복은 슬쩍 윤나라의 눈치를 보았다. 그녀는 담담히 이클립스의 시선을 마주했다.

‘이런 비난이야 예상 못 한 건 아니니까.’

이곳에 오기로 했을 때부터 각오해 두었던 일이었다. 이클립스의 입장에서는 화가 나기야 하겠지만 그녀는 떳떳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가운 건 아니었다. 괜히 분위기가 불편해질 수도 있지 않나.

“덕분에 제 안일함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전장마다 다른 룰이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저도 참, 머리가 굳어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 세 사람은 눈이 크게 뜨였다. 걱정과 달리 이클립스는 생각이 없는 인물이 아니었다.

“역시 다양한 경험이 머리를 유연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스틱 리그도 해 볼까 생각 중이죠.”

그는 호기롭게 웃으며 윤나라를 향해 눈을 빛냈다.

“다음에는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 그렇죠. 이클립스 님 정도로 우물, 아니지 원전을 파냈으면 이제 다른 곳 파도 되죠!”

지놈이 얼른 끼어들며 농담을 던졌다. 덕분에 분위기는 다시금 부드러워졌다.

윤나라는 조용히 연어 스테이크를 씹어 넘겼다.

‘다음이라……’

그녀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뉴턴좌’는 비난과 악감정에 대응해 왔다. 그녀를 응원한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녀를 방패로 삼아 분탕을 치던 이들이었다.

‘다음에도 나랑 같이 게임을 하겠다는 걸까.’

그러나 이들은 달랐다.

이클립스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배척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한 번 만나고 끊어질 관계가 아니라는 의미기도 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그랬지.’

처음으로 꺾지 못한 상대, 지금까지 일회성이었던 관계에서 유일하게 지속성을 가진 사람.

퍼플과의 만남으로 변화가 시작됐다.

‘재미있네.’

그녀는 슬쩍 이경복을 돌아봤다. 그는 처음 만난 그때처럼 순수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편하고.’

스위티즈의 리더, 윤나라에게는 짊어질 책임이 있다. 그러나 뉴턴좌에게는 그런 책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하는 게임이, 그리고 이 자리가 즐거운 이유를 깨달았다.

“아, 줄곧 궁금한 게 있었는데. 뉴턴좌님은 혹시 방송하실 생각 없어요?”

그사이 웃으며 떠들던 지놈이 대화의 방향을 돌렸다.

“흡……!”

그 말에 이경복은 고개를 돌리며 웃음을 참았다. 진짜 연예인 앞에서 방송할 생각이 없냐니, 이 무슨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윤나라는 슬쩍 그를 향해 눈을 흘기고는 대답했다.

“스트리밍은 생각 없어. 관심 받으려고 게임 하는 게 아니니까.”

“아니, 그냥 캐릭터가 확실하셔서요. 하면 잘 될 것 같아서 물어봤습니다. 야, 너는 뭐 별일 없어?”

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지놈은 멋쩍게 웃으며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지목당한 이경복은 눈을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마침 안 그래도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나, 이번에 메타게이머랑 게임쇼 공동 진행하게 됐어.”

“게임쇼 말입니까?”

“어?! 설마 브스타?”

“브스타에……?”

이경복의 말에 세 사람 모두 관심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지놈이 가장 큰 반응을 보였다.

“와! 진짜 축하한다야. 내가 또 브스타 진행 한 번 해 봤거든. 이게 진짜 스트리머한테 좋은 기회에요.”

“어, 안 그래도 편집자랑 매니저도 그 얘기 하더라.”

“그래, 이게 콩고물이 또 꽤 떨어지거든. 참여사에서 이벤트 때문에 뿌리는 게 있어요. 그거 받으려고 시청자들이 엄청 몰려든다? 이게 유입이 아주 그냥, 크으……!”

경험자인 지놈은 옛 생각을 곱씹듯 탄사를 연발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클립스가 그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시청자 유입이 아니었다.

“게임쇼라…… 그렇다면 더 다양한 게임을 즐겨 보시겠군요.”

“그래서 좀 기대가 되긴 합니다.”

“확실히 좋은 기회 같습니다. 저도 개인 자격으로 한 번 둘러봐야겠네요.”

“오! 그러면 같이 다닐까요?”

지놈이 슬쩍 끼어들며 합방각을 보았다. 두 사람이 그리 대화를 나누는 사이 윤나라가 이경복에게 물었다.

“……그거 확정된 거야?”

“응? 아, 확정했지. 안 됐으면 말 못 하지.”

이경복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건 왜?”

윤나라는 되묻는 이경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만 내저었다.

이경복은 의아했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그렇게 마무리에 접어든 식사. 네 사람 모두 풍족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우, 생각 없이 너무 많이 먹었나…… 퍼플 덕분에 진짜 배 터지게 먹은 것 같다야.”

“저는 딱 적당한 수준입니다. 음식도 맛있고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고생했어. 설마 자리를 마련할 줄은 몰랐는데.”

세 사람의 인사에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다들 괜찮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아, 여기 규정상 온 순서대로 한 사람씩 나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제일 먼저네요. 그럼 다음에 또 봐요!”

그렇게 네 사람은 차례대로 자리를 떠났다. 미리 연락해 둔 윤나라는 매니저가 기다리는 차량으로 향했다.

“숙소로 갈까요?”

“네,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그리 대답하고 창밖을 응시했다.

이내 윤나라의 눈이 이리저리 돌아가더니 매니저에게로 시선이 돌아갔다.

“저, 다음 주 스케줄 변경 없죠?”

“변경이요? 네, 저는 못 들었습니다.”

매니저의 금시초문이라는 얼굴에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내 그녀는 스마트 링크로 스케줄 표를 불러왔다.

‘그러면 다음은 그때인가.’

그녀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V-STAR 온라인 축하 공연&이벤트]

게임쇼 개장 첫날.

스위티즈도 참여가 예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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