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134화 (134/491)

134화 - 악마는 퍼플을 입는다 (1)

데몬 머스트 크라이의 귀환.

그 충격적이면서도 기쁜 소식은 모두의 감정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살다 살다 데머크가 가상현실로 나올 줄이야!

-그렇게 대단한 겜임?

-앉아봐라 지금부터 개쩌는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킹직히 데머크는 지금 콘솔로 해도 개꿀잼임 ㅋㅋㅋㅋ

-액션이 개쩐다? 그러면 일단 데머크에서 먼저 했을 가능성이 높음ㅋㅋㅋㅋ

-아아, 그게 바로 ‘멋’이라는 것이다

그 소식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됐지만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이 더 기뻐하는 건 단 한 사람 때문이었다.

-그 개쩌는 게임을 개쩌는 스머가 한다 이말이야!

-퍼지컬로 데머크 플레이? 이거 못 참지 ㅋㅋㅋㅋ

-진짜 ㅋㅋㅋ 갓플이 하면 상상초월일 듯

-얼른 플레이 해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개껌 문열어! 개껌 문열어! 개껌 문열어!

-(기뻐서)어질어질하다 그죠?

이경복은 이미 여타 게임에서도 ‘스타일리쉬’라고 할만한 플레이를 선보여 왔다.

그런데 작정하고 ‘스타일리쉬 액션’을 표방하는 게임을 플레이 한다면 어떨까.

시청자들은 도통 그 기대를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시청자들만큼이나 떨림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 또 있었다.

“그, 그…… 그럼 지금, 지금 바로 체험이 가능한가요?”

신혜림은 어떻게든 침착하려 했지만 흔들리는 목소리는 도통 안정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카타르시스에 젖어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특종, 그것도 기자로서 살면서 한 번 접할까 말까한 빅뉴스가 아닌가.

‘여기에 체험 영상까지 공개가 된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인생역전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일이 될 터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직원은 그녀의 기대를 배신했다.

“아하하, 아직 체험 빌드의 공개는 이릅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공개’는 메타게이머와 갓플 님이 세계 최초이자 독점입니다만 ‘플레이’는 오롯이 갓플 님께 맡길 예정이라서요.”

“아… 그러시군요……”

신혜림은 방송 중인 것도 잊을 만큼 노골적으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하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엌ㅋㅋㅋㅋ 기자 눈나 시무룩

-킹직히 메타게이머는 콩고물 먹는 거자너~

-ㄹㅇㅋㅋ 이정도도 완전 혜자임

-개껌이 바라는 ‘진짜’는 갓플 뿐이라구웃!

-어허! 감히 누가 버르장머리 없이 개껌이라 폄하하는가!

-맞말인게 ㅋㅋㅋ 이정도면 킹껌이라고 불러줄 만함

-갓껌까지는 안 됨?

-아 ㅋㅋ 갓은 이미 갓플이 쓰고 있자너

-반박불가추 ㅋㅋㅋ

그리 흥겨운 분위기였지만 이경복은 그저 옅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뒤늦게 이를 확인한 직원이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아! 물론 이 모든 예정은 갓플 님의 동의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 말에 신혜림이 홱 고개를 돌렸다. 말은 안했지만 눈빛만으로 그 의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현장의 팬들 1만여 명, 그리고 6만이 넘는 시청자들까지.

모두가 그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거절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경복은 웬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제안, 딱히 걸리는 건 없다.’

그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적으로 내재된 신기는 이 일을 ‘흉’이나 ‘화’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이경복은 짧게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골랐다.

“먼저, 저를 우선으로 생각해 주신 CAP COMPANY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가 운을 띄웠다.

그 한 마디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부스 안의 소음은 물론 현장 팬들도 숨을 죽였다.

“바이오 크라이시스, 바크는 제게 첫 게임이었습니다. 비단 스트리밍만이 아니라 처음으로 접하는 가상현실 게임이었죠. 그만큼 저한테는 의미가 깊은 게임입니다.”

이어지는 그 말에 채팅창이 요동쳤다.

-와씨 ㅋㅋㅋ 나 찐 감동먹음

-아 ㅋㅋ 이게 바로 바통령이지!

-바통령께서 우리를 잊지 않았다!

-어라? 왜 나 눈물이?

-근본을 잊지 않는 스머가 이따?

-바크리트들 바로 성불각 보는 거 보소 ㅋㅋㅋㅋ

-이건 무적권 받는 각이쥬?

가장 먼저 생긴 팬층으로 그를 애정하는, 그렇기에 언급되지 않아도 이해했던 바이오 크라이시스의 팬들이었다.

“그리고 그 게임을 개발해 준 CAP COMPANY에 대한 마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

직원은 반색했다.

그러나 이경복의 뒷말은 모두의 예상과 달랐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서는 거절의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네요.”

그 한 마디에 신혜림의 안색은 파리해졌고 직원은 불안을 내비쳤다.

채팅창에는 연신 물음표가 올라왔다.

-ㅔ?

-이걸 거절한다고?

-이, 이게 무슨……!?

-각하! 각하 대체 왜?!

-개껌쉑들 이전에 숙제 줄 때 실수한 거 아님?

-킹리적 갓심 발동!

-엌ㅋㅋ 킹껌에서 바로 다시 개껌 복귀

그리 격한 반응에 이경복은 헛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안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같이 컨텐츠를 꾸리는 데 더 신중히 접근하고 싶다는 거죠.”

“그 말씀은……?”

“방송은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요. 자세한 이야기는 저희 매니저와 편집자랑 상의를 거치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지는 그 설명에 모두가 작게 탄사를 내뱉었다.

-와 ㅋㅋㅋ 이게 맞긴 하지

-생각해 보니까 그르네 ㅋㅋㅋ

-다른 스머였으면 바로 절하고 받았을 텐데 ㅋㅋㅋ

-누가 봐도 거절하기 어려운 환경이쥬?

-ㄹㅇㅋㅋ 1초 만에 바로 칼답하지

-진짜 탈압박 장인인 듯

-이게 바로 블랙기업 사장의 위용?

-아 ㅋㅋ 사장 아무나 못하지

-직원들 의사 존중해주는데 왜 블랙이냐고 ㅋㅋㅋㅋ

-아무튼 블랙임ㅋㅋㅋ

그의 대답에 시청자들도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러나 감탄은 더욱 커졌다.

이렇게 많은 관심은 때로 압박이 되기도 할 터였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혹은 눈앞의 기회를 놓칠까 덥석 하겠다고 답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경복은 달랐다.

-게임에서만 상황판단 개 쩌는 줄 알았더니 ㅋㅋㅋㅋ

-대체 담이 얼마나 큰 거냐구웃!

-이게 바로 ‘퍼펙트-담’인가?

-접두사 밈은 진짜 찰떡이네 ㅅㅂㅋㅋㅋ

-분위기도 안 흐리고 개껌도 올려치고 바크리트도 존중하고 ㅋㅋㅋ

웬만큼 경력 있는 스트리머도 당황할 상황이지만 그는 깔끔하게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그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대처를 2개월 차 스머가?

-아아, 그것이 바로 ‘완벽’이니까

-진짜 갓플은 진국이다……

-???: 보아라,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의 완성이다.

-ㄴㄷㅆ 쳐내!

-그게 씹덕인지 트수는 어찌 아시오?

-아뿔싸……!

-아뿔싸 ㅇㅈㄹㅋㅋㅋㅋ

직원은 그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물론입니다! 당연히 이 자리에서 즉답을 요청 드린 건 아닙니다. 정식으로 계약 제안을 드릴 예정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자리에서 계약을 체결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개발사 측에서 이경복에게 압박을 주려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을 포함, 저희 게임을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밝힐 정도로 본사 의지가 강하다는 점. 그것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개발사 쪽에서 노린 건 ‘타 게임사’의 견제였다.

이경복은 몰랐지만 V-STAR 비즈니스 센터에는 CAP COMPNAY의 직원도 있었다.

점유율 변동과 함께 시작된 ‘퍼플 섭외’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비장의 카드를 꺼낸 것이다.

“충분히 전해졌습니다.”

이경복은 그 말에 웃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자, 그럼 저희가 준비한 티저 영상의 관람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직원은 가볍게 손뼉을 치며 스마트 링크를 조작했다.

그와 함께 데몬 머스트 크라이의 부활을 알리는 짧은 영상이 재생됐다.

* * *

파란만장했던 게임쇼 탐방이 모두 끝났다.

그러나 이경복과 친구들은 쉴 시간이 없었다. 세 사람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장소는 현실에서 만날 시간도 아까워 가상현실 스튜디오로 잡았다.

“발표 끝나고 바로 메일이 왔다.”

박주호가 진중한 표정으로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안건은 당연하게도 데몬 머스트 크라이였다.

하지만 그가 말을 잇기 전에 최병훈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잠깐.”

“뭔데?”

“급한 일인 건 아는데…… 그 아바타 좀 바꾸면 안 되냐?”

최병훈이 박주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그는 여전히 스위티즈 굿즈로 무장한 채였다.

“아니, 집중이 안 되잖아.”

박주호는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스마트 링크를 조작했다. 그와 함께 기본 프리셋인 세미 정장 차림으로 돌아왔다.

“크흠, 마저 설명하면 그쪽에서 원하는 건 FGT다.”

“FGT? 그게 뭔데?”

이경복은 갑자기 등장한 생소한 용어에 코끝을 찡그렸다.

“FGT는 포커스 그룹 테스트(Focus Group Test)의 준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FGT와도 조금 차이가 있지.”

“야야, FGT가 뭔지 설명부터 해야 일반적인 게 어떤 건지 알지.”

이경복의 말에 최병훈이 끼어들며 첨언했다.

“너 베타 테스트는 알지?”

“아, 그건 알지.”

“그거랑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돼. 근데 여기에 포커스 그룹, 개발사에서 특정 기준으로 구분한 테스터에게서 데이터를 뽑아내는 거야.”

“그 기준은 성별이나 나이가 될 수도 있고 실력이 될 수도 있지. 아마 너는 실력으로 뽑힌 걸 거다.”

박주호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두 친구의 설명에 이경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데 좀 이상한 게 보통 FGT는 비공개로 하거든.”

“비공개면 클베?”

“어. 만약 공개되면 다른 그룹이 그 테스트를 보고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방송으로 공개해도 된다니 좀 이례적이긴 해.”

최병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면 박주호는 안경을 고쳐 쓰며 눈을 빛냈다.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말에 두 친구의 시선이 돌아갔다. 박주호는 간단히 스마트 링크를 조작해 큐튜브 채널을 띄웠다.

그리고 홀로그램으로 비춰진 영상 리스트.

“나는 영상으로만 봤지만 너희들은 직접 경험했으니 기억하겠지.”

그것은 바로 바이오 크라이시스 영상 리스트였다.

“저들은 이미 바크에서 이슈를 겪었다. 난이도 조절 실패, 그리고 플레이와 컷신의 괴리, 이 두 가지가 문제가 됐지.”

개발사 측은 이경복의 플레이를 보고 난이도 하향 패치를 진행했다. 또한 이경복이 로켓 런처를 얻지 않았음에도 컷신에서는 해당 무기를 들고 있는 해프닝이 벌어졌었다.

보는 사람이야 웃고 넘어갈 일이지만 개발사의 입장은 달랐을 터였다.

“이런 문제가 또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었을 거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당사자인 경복이를 지목한 거지.”

“오……! 맞네! 웬만한 QA 테스터는 따라 하지도 못할 테니까!”

최병훈이 번쩍 눈을 뜨며 맞장구를 쳤다.

“정식 발매 후 생긴 문제는 오점이 되지만, 발매 전 테스트로 문제를 찾는 건 신뢰와 직결된다. 또한 경복이 플레이와 시청자 반응으로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난이도 체감도 확인할 수 있을 테고.”

“이야, 개발사가 머리 좀 많이 굴렸는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복이는 이 게임에 있어서 최적의 인플루언서다.”

“최적? 뭐가 더 있어?”

박주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데머크는 ‘스타일리쉬 액션’이 핵심이지. 경복이라면 그들이 예상하는, 아니 그 이상을 보여 줄 수 있을 거다. 여러모로 개발사가 공개 선언의 리스크를 감수할 만해.”

“햐, 듣고 보니 또 맞말이네. 이 자식 이거, 하여간 머리 굴리는 건 아주 대단하다니까.”

최병훈은 헤벌쭉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주호는 코웃음을 치고는 이경복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정도로 고평가해 주니 좋긴 하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비즈니스니까. 일단 메리트를 확인해야지.”

이경복은 흡족하면서도 공과 사의 구분을 잊지 않았다. 그 말에 친구들도 적극 동의했다.

“계약 조건은 직접 미팅에서 확인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공개 선언까지 했으니 예상보다 좋은 조건일 확률이 다분하지.”

“돈도 돈인데 나는 다른 이유로도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세계 최초’와 ‘독점’ 컨텐츠? 그것도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CAP COMPANY의 데머크를? 야, 이거 진짜 돈 주고도 얻기 힘든 기회다.”

두 친구의 말과 기대하는 표정에 이경복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혹시라도 거절하는 사람 있으면 설득하려고 했는데.”

그는 회의가 잡히기 전에 이미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현장 반응이 장난이 아니었거든. 그래서 꼭 해 보고 싶었어.”

스트리머는 시청자들의 관심이 최우선, 이경복은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했던 그들을 보자 욕구가 샘솟았다.

“만장일치네. 바로 미팅 일정 잡자.”

“맡겨둬.”

“오케이! 좋고 좋고!”

그 결정에 친구들 역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

“햐, 이거 오늘 또 잠 못 자겠네.”

“왜? 작업할 게 많아?”

“매드맨한테 의뢰해야 되나?”

최병훈의 말에 두 친구가 되물었다. 하지만 그는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자식들아. 그게 아니라 반응을 생각해 봐라.”

“반응?”

“그래! 이미 커뮤에서는 난리가 났을 건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메타게이머 쪽 기사야.”

최병훈은 말하면서도 올라간 광대가 내려오지 않았다.

“지금 해외 웹진도 애가 탈 걸? 독점 공개라고 못 박아서 따로 기사를 못 내니까. 그런데 메타게이머 기사가 완성돼서 올라간다?”

이 정도로 큰 뉴스가 해외에 퍼지지 않는 게 이상할 터였다.

“이게 엘든 소울 때랑은 또 다르거든.”

이미 이경복은 ‘엘든 소울’ 클리어와 함께 밝혀진 ‘다크 룬 리마스터’ 소식 공개 때 해외에 이름이 알려졌었다.

“그때는 그 자식들이 지들 입맛 맞춰서 이름도 빼거나 바꿔서 편집했잖냐.”

다만 당시에는 ‘퍼플’의 이름을 각 웹진의 편집부에서 취사선택했다. 실제로 일본 쪽 웹진은 아예 그의 이름을 생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근데 이번에는 자기들이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인용’밖에 못할 테니까.”

국내 웹진인 메타게이머의 기사에는 ‘데몬 머스트 크라이’와 ‘퍼플’의 이름이 나란히 헤드라인에 오를 터였다.

“역시 천재는 드러날 수밖에 없다니까.”

그리고 해외웹진은 그 기사를 단 한 글자도 바꿀 수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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