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 악마는 퍼플을 입는다 (3)
새로 나타난 첫 번째 그래프.
[퍼펙트플레이 큐튜브 평균 영상 조회수 추이 분석]
사측에서는 구독자뿐만 아니라 영상의 조회수까지 분석해 온 것이었다. 그래프 아래에는 붉게 강조된 글자로 ‘인기 급상승 순위’가 표기되어 있었다.
“저희는 보다 정확한 대우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퍼플 님의 채널을 분석했습니다.”
[퍼펙트플레이 트라이 채널 팔로워 추이 분석]
[퍼펙트플레이 트라이 채널 시간대별 시청자 숫자 추이 분석]
그래프가 더 늘어났다.
“그 결과 현재 지표로는 퍼플 님의 가치를 책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모든 그래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히려 현재 지표가 ‘저평가’되어 있으니까요.”
모습은 차이가 있지만 모두 우상향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 사실은 퍼플 님, 그리고 팀 퍼펙트에서 더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남직원은 그리 말하고는 슬쩍 여직원에게 눈짓했다. 이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퍼플 님과 본사의 첫 계약 대금은 300만 원이었습니다.”
“그랬죠.”
“네, 당시에는 구독자가 약 13.5명이셨고, 저희는 15만 명 기준으로 가치를 책정했습니다.”
바이오 크라이시스 광고 계약 당시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긴장했는지 마른 침을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와 같이 저희는 퍼플 님의 가치를 폄하할 의도는 없습니다. 언제든 조율이 가능하다는 점 먼저 말씀드리며, 이번에 본사에서 책정한 금액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주호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앞에 세 사람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공개 선언의 부담인가.’
혹여나 이 계약이 어그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분명했다. 이경복과 박주호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이정도면 2,500으로 기준을 높여도 괜찮을지도……’
박주호가 속으로 다시 계산하는 사이 홀로그램 서류가 나타났다.
거기에 적힌 대금을 본 그는 눈을 크게 떴다.
“3천만 원……?”
당초 예상보다 무려 1천만 원이나 높았다. 박주호는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반면 이경복은 놀라움보다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어떻게 이런 금액이 나왔는지 궁금한 것이라.
그 기대를 읽었는지 여직원이 빠르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저희는 채널 성장만으로 퍼플 님의 가치를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이전 계약의 효과를 다시 분석했습니다.”
그녀의 말과 함께 새로운 도표가 나타났다.
“퍼플 님의 바이오 크라이시스 플레이 전후를 비교한 도표입니다. 평균 6천과 7천 대 사이를 유지하던 트라이 채널 시청자 숫자는 다음날 3만을 돌파했습니다.”
무려 5배의 성장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후 퍼플 님의 플레이로 진 엔딩이 공개되고 계약은 완수됐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졌지요.”
당연한 일이었다.
기존 엔딩만 플레이했던 플레이어들이 진 엔딩에 도전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더불어 판매량 역시 상승, 이후 본사의 난이도 업데이트 예고 후에는 판매량이 기존 판매량의 약 4배 넘게 증가하였습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판매량이 상승했다. 퍼플의 플레이를 통해 개발사가 진입장벽을 낮추기로 결정한 덕분이었다.
중년인은 그녀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저희 내부 분석을 종합해 판단한 결과, 퍼플님 큐튜브 채널은 근시일 내에 구독자 100만을 돌파할 것이고 이번 공개 방송으로 얻을 수 있는 판매량 상승효과 또한 여느 인플루언서 못지않다고 여겨집니다.”
박주호는 눈을 껌뻑였다.
‘생각보다 더 파급력이 대단했던 건가……!’
그에게는 회사 측이 보유한 내부 데이터가 없었기에 생긴 오차였다.
‘경복이가 이미 150만 큐튜버에 준하다는 판단을 내린 거로군.’
첫 계약과 비교하면 그 가치가 10배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여기까지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은.
‘2개월 만에 이 정도까지……’
정확히 말하면 꽉 채운 2개월도 아니었다. 거의 1개월 반 만에 몸값이 10배가 뛴 것이었다.
박주호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머리가 저릿저릿했다.
‘이게 진짜 천재의 가치겠지.’
그는 친구를 돌아봤다.
정작 당사자인 이경복은 은은한 미소만을 짓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듣는 건 또 처음이네요.”
그는 감사를 표하고 시선을 돌렸다.
“잠시 매니저와 상의를 하고 와도 괜찮을까요?”
“아, 네네! 물론입니다. 저희가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세 사람은 곧바로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다.
둘만 남게 되자 이경복이 물었다.
“어때?”
“대박이지.”
박주호는 그리 말하면서도 표정을 유지했다.
“사측에서 내부 분석 지표까지 공개했다는 건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이지.”
“으흠…… 그럼 칼자루는 우리가 쥐고 있는 거네?”
“그런 셈이야. 하지만 나는 그 칼자루, 굳이 휘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
“물론 우리가 요구하면 들어주긴 할 거야. 하지만 회사 쪽에서도 적정선이 있다. 지금 상황이라면 그 선을 무리해서 넘어갈 수 있긴 하지만……”
박주호는 살짝 코끝을 찡그렸다. 이경복이 그 표정을 보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괜히 욕심부리다가 아예 연이 끊어질 위험도 있다는 거네.”
“결국 기업은 비용 대비 이익을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이라도 눈앞에 손실이 커지면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거다.”
이경복은 잠시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추가 협상 없이 가는 게 좋겠어.”
그는 친구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당장 4천만 원을 받고 끝내는 것보다 지금 3천만 원 받고 다음에 5천만 원 받는 게 낫잖아?”
“확실히, 성장세를 본다면 네 몸값은 앞으로도 오를 테니까.”
그 대답에 박주호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단기적 이익보다는 장기적 이익을 택한 친구의 결정이 흡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리 논의를 마친 두 사람은 다시 직원들을 불러들였다.
“감사합니다!”
이경복이 그대로 제안을 수용하자 직원들의 얼굴에 꽃이 폈다.
“아,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가능한지 확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이경복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가 말한 조건을 들은 직원들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역시 방송만 생각하시네요.”
“이러니까 다들 퍼플 님 방송을 보는 거 아니겠어요?”
그들로서도 거절할 필요가 없는 조건이었다.
* * *
공개 방송 당일.
기다림만큼이나 사람들의 행동은 빨랐다.
-와씨 ㅋㅋㅋ 벌써 8천이 넘는다고?
-방송 보려고 애들 바로 재웠음ㅋㅋㅋ
-ㅉㅉ 월급 루팡 솜씨가 미숙하네
-야근 신청하고 수당 받아먹으면서 방송 보는 게 개꿀인디 ㅋㅋ
-난 내가 사장이라 상관없음^^
-않이;; 갑자기 나이대 높아진 거 뭔데!
-콘솔 아재들 다 몰려왔누 ㅎㄷㄷ
-야! 아재도 게이머야! 게이머!
채팅창은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해졌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근데 챗창이 왜케 클린함?
-클린한 게 좋은 거 아님?
-않이;; 외국인들 몰려올 줄 알았는데
-ㄹㅇㅋㅋ 마음의 준비 다 해놨는데
-다 데머크 까먹은 거 아님?
-그 말 취소해!
-느그들이 데머크를 알어!?
-아재들 바로 버럭잼ㅋㅋㅋㅋ
-붐머크 데는 온다…!
그리 떠드는 와중 방송 인트로가 재생됐다. 시청자들의 주의는 곧바로 돌아갔다.
“트하!”
이어 반가운 인사와 함께 나타난 이경복의 모습에 채팅창이 폭발했다.
-퍼하!퍼하!퍼하!
-숙제 받아줘서 너무 고맙고 ㅠ
-갓플 강림!갓플 강림!갓플 강림!
-큰 사람 왔다! 큰 사람 왔다! 큰 사람 왔다!
-퍼렐루야! 퍼렐루야!
광고를 받아왔다고 찬양하는 진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찬양은 비단 채팅으로 끝나지 않았다.
[‘데붕이머스트크라이’님이 ‘3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학생 고마워^^]
[‘야우냐?’님이 ‘5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데머크 부활에 악마도 울고 나도 울고 전 세계가 울었다ㅠ]
[‘이게그전설맞죠?’님이 ‘2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전설의 게임과 전설의 스트리머와 함께하는 전설의 순간]
쏟아지는 고액 후원에 이경복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엌ㅋㅋㅋ 갓플 갑작스런 돈방석에 깜놀
-와 ㅋㅋ 콘솔 아재들 과금력보소
-후원 금액 단위가 아예 달라져버리네 ㅋㅋㅋㅋㅋㅋ
-아 ㅋㅋ 이러면 아재가 아니라 어르신들이지
-ㄹㅇㅋㅋ 지갑 열면 참어른 맏따
-이게 바로 사회생활?
채팅창에 웃음이 번졌다.
이경복은 공손하게 감사를 표하며 말을 이었다.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광고 방송이라 전부 확인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경복은 이전처럼 후원창을 늘려 확인했지만 도통 후원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미 시청자 숫자가 1만을 돌파한 덕분에 후원의 양도 상당했다. 후원을 전부 보면 광고 시간이 밀릴 우려가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오늘은 데몬 머스트 크라이, 데머크의 최초 플레이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제가 플레이하는 건 최종 발매용이 아니라 테스트용 빌드! 향후 출시됐을 때와 다를 수 있다는 점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거 무적권 달라짐 ㅋㅋㅋㅋ
-ㄹㅇㅋㅋ 바크 생각하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컷신 안 맞는 거 아니냐고 ㅋㅋㅋ
-아 ㅋㅋ 그때 몰입감 와장창 개 빡쳤는데
-개껌쉑들 한 번 당해보니까 정신 차렸쥬?
-오늘은 테스트 빌드니까 봐줌^^
이경복은 채팅창 반응을 확인하고 바로 다음 안내로 이어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지금 제 방송에 접속이 안 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거든요?”
채팅창은 이내 물음표로 가득해졌다.
-???
-트라이 채널에 문제 생김?
-아닌데? 멀쩡한데?
-갓플 채널만 접속이 안 된다고?
-어뜨케 된 겨 어뜨케 된 겨!
-혹시 방송 중간에 멈추고 그러는 거 아니지?
-그러면 트라이 나락간다 ㅋㅋ
-문제 생기면 바로 트럭 모금 간다 ㅅㅂ
퍼플 방송만 접속이 안 된다면 트라이 자체 문제는 아닐 터였다. 이에 시청자들은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경복은 이에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채널 문제는 아닙니다. 만약 지인분 중에 그런 증상이 있으시면 언어를 ‘한국어’로 바꾸시면 된다고 전해 주세요.”
이어지는 설명에도 채팅창에 물음표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이 늘어났다.
-한국어?
-갑자기 웬 언어 설정?
-어?
-HOXY?
-헐ㅋㅋㅋㅋ 설마?
몇몇 시청자들은 그 의도를 눈치챘다. 이경복은 환하게 웃으며 사정을 설명했다.
“방송 전에 광고주님과 따로 협의를 끝냈습니다. 제 본방송에는 ‘한국어’로 언어 설정된 분들만 접속이 가능하고, 다른 언어가 편하신 분들은 회사 공식 채널을 통해 중계방송을 보시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경복이 사측에 내건 조건이었다.
왜 그럴 필요가 있었는가.
“생각보다 해외의 관심이 뜨겁더라고요. 물론 그분들 모두 제게 소중한 시청자가 될 수 있겠지만, 누구보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 절 응원해 주신 여러분들입니다. 쾌적한 시청을 위해 결정한 사항이니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이유를 밝히자 채팅창은 격동했다.
-헐ㅋㅋㅋ 나 찐감동먹음
-바보! 시청자밖에 모르는 바보!
-무친ㅋㅋㅋ 어쩐지 사람이 적다 했네
-와…… 외국인들 모으면 갓직히 4만은 거뜬할 텐데
-이게 2개월 차 스머의 마인드?
-트수들 노는 거까지 배려해 주는 스머가 이따!?
-킹직히 인생 2회 차지? 맏찌!?
-이건 뭐 ㅋㅋ 퍼며드는 게 아니라 퍼절임 수준인데?
-퍼절임 미쳤냐고 ㅋㅋㅋ
-이 남자, 방송태도마저 ‘퍼펙트’ 해버렸다!
-그저 갓, 그저 빛, 그저 완벽하다!
-겁나 카리스마 있어! 이러니까 트수들이 뻑이가지!
감격과 열광으로 가득한 채팅이 무수히 올라왔다. 이경복은 새삼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가졌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다 이말이야
-이제부터 갓조선 ㅇㅈ합니다
-아무리 헬조선해도 퍼플보유국이면 참을 만하자너 ㅋㅋㅋㅋ
-아 ㅋㅋ 외국인들은 한국어 몰라서 본방 못 보쥬? 킹받쥬?
-한국 기업들은 갓플 좀 보고 배워라 ㅅㅂ
-ㄹㅇㅋㅋ 내수용>수출용이 상식 아님?
-쇄국정책 무냐구 ㅋㅋㅋ
-퍼플대원군 효과 지리고
-퍼플대원군ㅋㅋㅋ도랏ㅋㅋㅋㅋ
시작부터 치솟는 텐션.
이경복은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감사합니다! 이제 설명은 끝났고, 바로 게임 시작하겠습니다.”
세계 최초 독점 공개.
그 타이틀의 주인공이 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