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 공략 (불)가능 (2)
사람들이 천재라고 일컫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해력’이다.
천재들은 어떤 일에 통달하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경험 혹은 지식과 같은 요구 사항들이 일반인보다 적었다.
이러한 현상은 ‘진짜’ 천재인 이경복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음, 이번에는 큐브 튜토리얼을 겸해서 그런지 쉬운 것 같습니다. 아마 기생당한 설정도 그래서 넣은 게 아닌가 싶어요.”
그가 본격적으로 돌파에 나섰다.
앞을 가로막은 타락 성기사 중에 10초를 채운 경우가 없었다.
-당신한테만 쉬운 거라고!
-진짜 이건 타락 성기사들 입장도 들어봐야 된다 ㅋㅋㅋ
-???: 않이;; 공격하실 틈을 주셔야죠;;;
-갈고리로 잡아서 순삭 > 변형시간 남아돌음 > 다시 순삭 ㅋㅋ
적응 완료는 물론 최적화까지 끝마친 덕이었다. 그의 공격은 물 흐르듯 끊임이 없었고, 타락 성기사들은 모두 순번을 기다린 것처럼 죽음을 맞이했다.
-그나마 기생종이니까 덤볐지 ㅋㅋㅋ 지성 있으면 바로 튀었음
-ㄹㅇㅋㅋ 신 앞에서 악마가 어케 버팀?
-엌ㅋㅋㅋ 반인반마가 아니라 반인반신이었쥬?
-듀란테에 갓플이 빙의했다 이말이야
-나였으면 한 30분 걸렸을 거 같은데 10분도 안 지난 듯 ㅋㅋㅋ
-전투보다 이동 시간이 더 오래 걸림ㅋㅋㅋㅋ
시청자들은 그의 실력과 진행속도에 경탄을 표했다.
이경복은 웃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직접 해 보시면 아실 텐데 아쉽네요. 나중에 발매되면 꼭 해 보시길 바랍니다!”
-틈새 숙제 무엇?
-아 ㅋㅋ 예구 언제 뜸?
-테스트 빌드도 좋으니까 얼른 내놔!
-적어도 시청자 숫자만큼은 완판할 듯 ㅋㅋㅋ
이경복은 미소와 함께 주의를 돌렸다.
“자, 이제 데이터 센터가 코앞입니다.”
카론이 말했던 데이터 센터가 무너진 잔해 너머로 보였다. 이경복은 가뿐하게 잔해를 뛰어넘었다.
“아, 컷신이네요.”
착지와 동시에 통제권이 사라졌다.
듀란테는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살폈다. 데이터 센터 앞에는 악마들과 성기사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어우;;; 엄청 죽었네
-격리시설 바로 옆이라서 그런 듯?
-ㅇㅇ 악마들도 많은 만큼 보안인원들도 많은 거자너
-이정도면 지부 붕괴 수준 아님?
듀란테는 익숙하다는 듯 시체들을 앞두고도 별반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데이터 센터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엿 같은 상황이군.”
그의 말과 함께 화면은 데이터 센터를 비추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지만 가까이서 보니 건물 곳곳에 균열이 벌어져 있었다.
-이거 무너지는 거 아님?
-헐? 무너지면 데이터는?
-부실공사 뭔데!
-아니 ㅋㅋㅋ 이 난리에 버틴 거면 오히려 설계 잘한 거 아님?
-고건 맞짘ㅋㅋㅋ
-근데 이건 아무리 듀란테라도 어쩔 수가 없는데?
-ㄹㅇㅋㅋ 부수는 거는 잘해도 고치기는 힘들자너
건물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시청자들은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듀란테… 들리십……>
그때 어디선가 미약하게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듀란테는 곧바로 한 성기사의 시체를 뒤적였다.
피로 물든 통신장비 하나가 그 안에서 나왔다.
“카론인가.”
<아! 다행입니다! 뒤늦게 통신장비를 드리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거든요. 감시카메라로 도착하신 걸 보고 제가 방법을 찾……>
“용건만.”
듀란테는 그의 말을 잘랐다. 짧은 헛기침 소리와 함께 카론의 대답이 돌아왔다.
<건물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데이터는 괜찮을 겁니다.>
“겉만 멀쩡하고 속은 아작이 난 거 같은데.”
<물론 그럴 겁니다. 하지만 센터 내부에 백업 장치가 있어요!>
“백업?”
<예! 지금처럼 비상사태로 돌입하면 보안등급이 높은 데이터부터 백업이 시작됩니다. 듀란테 님이 원하는 자료 역시 보안등급이 높죠.>
듀란테의 시선이 이내 건물 쪽으로 돌아갔다.
“그러니 백업 데이터를 가져와 달라?”
<그렇습니다. 물론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백업 데이터에는 문명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자료들도 가득합니다!>
애처로운 카론의 목소리에 듀란테는 실소를 흘렸다.
“난 건물 붕괴 따위로는 죽지 않아.”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로군요! 제가 바로 건물 지도를 전송해드리겠습니다. 백업 데이터는 안전 금고에 보관 중입니다.>
카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와 함께 듀란테의 스마트 링크가 홀로그램 지도를 투사했다.
<되도록 조심스럽게 접근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안전 금고야 붕괴에 버티겠지만, 케이블이 절단되면 다른 데이터의 백업이 중단될 테니까요.>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예? 아니, 그 자료들은……>
듀란테는 뒷말을 더 듣지 않았다. 그는 통신장비를 움켜쥐어 부숴 버렸다.
-상남자특) 명령을 듣지 않음
-여윽시 최고의 나쁜 엉덩이!
-ㅁㅊ ㅋㅋㅋ 배드애스 직역하지 말라고!
-아 ㅋㅋ 일해라절해라 하지 마시라고요
-저렇게 공짜로 부려먹으려고 하니까 모근 노조도 파업한 거임
-ㅁㅊ 모근 노조는 또 뭐냐고 ㅋㅋ
-그럼 공짜 좋아하면 머머리가 된다는 말이 HOXY?
-너희들은…… 진짜 나빴다ㅋㅋㅋㅋ
시청자들이 그의 태도를 흡족해하는 사이 장면이 전환됐다.
“아, 센터 내부로 들어왔네요.”
데이터 센터는 검붉은 색의 비상등만 들어와 있었다. 간헐적으로 깜빡거리는 기계의 불빛을 제외하면 시야가 매우 어두웠다.
-갑자기 분위기 호러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바크 아트 팀이 동원된 것인가?
-정보) 실제로 데머크는 콘솔판 바크 기획 중 개발된 작품이다
-아닠ㅋㅋㅋ 이왜진?
시청자들이 그 분위기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듀란테는 다시 홀로그램 지도를 켰다.
“안전금고는 건물 중앙에 위치해있네요. 심약자분들은 화면을 좀 밝게 해두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괜히 플레이 가능 지역은 아닐 테니까요.”
통제권이 돌아오자 이경복이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백퍼 뭔가 있을 거 같다
-당연히 악마겠지 ㅋㅋㅋㅋ
-그런데 여기서 싸우면 건물 바로 붕괴될 거 같은데?
-누가 이런 거에 놀라겠냐고 ㅋㅋㅋ
-상남자특) 어두워도 조명 안 킴
-데머크가 곰보겜도 아닌데 뭘ㅋㅋㅋ
-갓플의 의도 : 조심요 / 트수가 받아들인 것 : 님들 쫄?
-왜곡 전문 트수 답쥬?
시청자들의 반응에 이경복은 실소를 흘렸다. 예측하듯 말했지만 이미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느껴지는 수준으로 보면 전투는 아닌 것 같지만.’
장소 진입과 더불어 육감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위협을 감지한 덕이었다.
이경복은 걸음을 옮겼다.
위협을 피해가려면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뭐가 있는지는 보여 줘야지.’
그는 일부러 위협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곳에는 시체가 있었다.
-이 사람은 성기사 아닌 듯?
-데이터 관리 직원이었는가 봄
-갑자기 봉변 당해버렸누 ㅎㄷㄷ
그 복장으로 미루어 보아 일반인이 분명했다. 시청자들이 그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출하는 사이 이경복이 그에 접근했다.
이어 쩍하는 소리와 함께 시체의 몸이 갈라지며 덩굴이 이경복을 덮쳤다.
물론 미리 알고 있던 그는 곧바로 건틀렛으로 덩굴을 낚아채 찢어버렸다.
-어씨!
-무친;; 이미 기생 당해버렸네
-육성으로 비명지름 ㅅㅂㅋㅋㅋ
-깜놀 없다며! 깜놀 없다며! 깜놀 없다며!
-하남자들 많누 ㅋㅋㅋ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시청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투라기보다는 함정으로 보면 되겠네요. 나중에 플레이하실 때, 시체를 피해서 돌아가세요.”
이경복이 담담히 설명하자 채팅창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 ㅋㅋ 상남자는 이런 거 안 피한다고
-듀란테는 조금 전처럼 잡아 찢는 게 어울림
-ㄹㅇㅋㅋ 이게 정석이지
-나도, 나도 듀란테 할 거야!
-정발하면 데붕이들 기겁하는 게 눈에 보인다 보여!
-진짜 ㅋㅋㅋ 안 봐도 블루레이임
-블루레이 ㅅㅂㅋㅋㅋ 데붕 아재요!
-세대를 들켜버린 데붕쿤!
그 반응에 이경복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나아갔다.
다행히 센터 내에 준비된 기믹은 그와 같은 함정뿐이었다. 덕분에 이경복이 안전 금고에 도착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로 컷신이네요.”
통제권이 사라졌다.
듀란테는 작은 방 하나 크기의 금고문 앞에 섰다. 그의 시선은 이내 문 옆에서 빛을 발하는 패널로 옮겨졌다.
[PASS CODE]
[___________]
아무래도 금고를 열려면 비밀번호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엥? 갑자기 비번?
-카론이 알려줬었나?
-말 끝나기도 전에 통신장치 부숴버렸자너 ㅋㅋㅋ
-그럼 아까 돌아다닐 때 찾았어야 되는 거 아님?
-킹능성 이따.
시청자들의 추론이 빠르게 올라왔다. 그러나 이경복은 그에 동의하지 않았다.
‘만약 있었다면 내가 먼저 알았겠지.’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면 그의 신기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 생각이 옳다는 듯 듀란테는 바로 행동에 나섰다.
“만능 패스코드가 하나 있지.”
그 한 마디와 함께 대검이 패널을 관통했다. 파직하는 스파크가 연달아 튀어 오르며 안쪽에서 철컥 소리가 났다.
-캬 ㅋㅋㅋ 이거지!
-숫자를 맞추는 건 하남자나 하는 일이라구웃!
-안녕? 이건 대검이야, 문을 열지
-아 ㅋㅋ 만능키가 있는데 왜 패스코드를 찾냐고
-이 남자! 엉덩이가 나쁘다!
-않잌ㅋㅋㅋ직역드립 좀 그마내!
경쾌한 채팅들이 올라왔다.
그러나 이어지는 상황에 분위기가 일변했다. 듀란테가 문을 열자 들려오는 한 발의 총성.
-!?
-뭐임?
-헐?
시청자들의 주의는 곧바로 컷신으로 집중됐다.
듀란테의 뒷모습을 비추던 카메라가 이내 정면으로 돌아왔다.
그는 주먹 쥐고 있던 건틀렛을 가볍게 폈다. 그러자 툭하고 우그러진 탄환이 바닥에 떨어졌다.
-금고에 함정이 있던 거?
-바닥에 핏자국이 있는데?
-어뜨케 된겨 어뜨케 된겨!
시청자들의 의문은 곧바로 해결됐다.
재차 듀란테의 등 뒤로 돌아간 카메라는 금고 내부를 비췄다.
“악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당신일 줄이야.”
짧게 숨을 끊으며 말하는 이는 성기사였다. 그러나 하얀 제복이 검붉게 보이는 건 비단 비상등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제복은 피투성이였고 팔 하나가 없었다.
듀란테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금고문 뒤에 잘린 팔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팔 주변에는 말라비틀어진 덩굴이 붙어 있었다.
-Aㅏ
-기생당하기 전에 자기 팔 자른 거?
-와씨;;; 무쳤네;;;
-판단력 무엇?
시청자들은 바로 상황을 눈치챘다. 그 사이 성기사가 숨을 몰아쉬며 듀란테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상처 하나, 없는 건가. 확실히 대단하군……”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손을 뒤로 돌렸다. 듀란테는 그저 그를 내려다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만약 당신이, 기생종과 싸웠다면, 붕괴가 가속됐겠지. 아마도, 백업은 중단됐을 거야.”
그 말에 시청자들이 즉각 반응했다.
-헐? 함정에 걸리면 분기가 갈리는 거?
-맞네! 카론이 케이블 뭐시기 했었음!
-하지만 퍼란테는 전부 통과해버렸쥬?
-ㄹㅇㅋㅋ 덩굴 나와도 걍 찢어버림
-그럼 함정 발동이 아니라 기생체 습격이 성공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갈리나보다
-와 ㅋㅋㅋ 이건 무적권 기억해둬야겠누
채팅창이 감탄으로 물드는 사이 성기사가 덜덜 떨리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건 메모리칩이었다.
“덕분에 백업은, 완료됐다. 이걸 지부장님께, 부탁한다.”
듀란테는 메모리칩을 받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성기사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구해달라고 하지 않는 건가.”
그 물음에 성기사는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슬쩍 제 목깃을 옆으로 내렸다.
절단된 어깨 위로 검은 선들이 퍼지고 있었다.
“기생은 늦췄지만, 이미 죽은 목숨이다.”
-헐…… 절단으로는 못 멈추는 거였누
-난 또 듀란테가 악마라고 도움 안 받는다고 말할 줄
-나도 ㅋㅋㅋ 교단의 신실함? 뭐 이런 거 보여주는 씬인줄
-와…… 그럼 마지막까지 데이터 지키려고 버티고 있던 거?
-뭔가 씁쓸하누 ㅠ
성기사는 짧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들었다.
“당신에게 의뢰를, 부탁하지.”
“의뢰?”
“그래. 이대로는 나도, 악마가 되어 버리겠지.”
검붉은 피가 그의 입가로 흘러내렸다.
”내 아내와 아이를 죽인…… 그 저주받을 존재가 될 수 없다.”
성기사는 무심하게 피를 훔쳐내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악마가 되기 전에, 나를 죽여다오.”
어깨 위로 퍼지는 검은 선은 이내 목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듀란테는 메모리칩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거절한다.”
“……뭐?”
“나는 악마 사냥꾼이지, 인간 사냥꾼이 아니니까.”
놀란 성기사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흔들리는 동공에 듀란테의 얼굴이 비쳤다.
“반인반마가 된 기분이 어떤가?”
“그게 무슨……”
“인간으로 죽을지, 악마로 죽을지.”
듀란테는 그가 옆에 놓아둔 권총을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그건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그 말을 끝으로 듀란테는 몸을 돌렸다. 성기사가 황망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목을 뒤덮은 검은 선들은 어느새 얼굴을 따라 올라왔다. 이어 눈동자가 서서히 검게 물들었다.
성기사는 눈을 감았다.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이 그 미소를 지나 바닥에 떨어졌다.
이내 화면은 걸음을 옮기는 듀란테를 비추었다. 그 뒤로 들려오는 단발의 총성.
-와…… 분위기 미쳤누
-이제 숨 쉬어도 됨?
-약간 하드보일드 느낌 나는데?
-진짜 ㅋㅋ 여기서 담배 한 대만 물면 하드보일드 완성임
-콘솔판 듀란테는 약간 가벼운 느낌이 있었는데 이건 진짜 묵직하네
-초반에 성기사들 멕인 거 보면 그 성격을 아주 버린 것도 아님 ㅋㅋ
-ㄹㅇㅋㅋ 완급조절 좀 치누
-킹직히 이거 갓플 목소리빨도 있다 ㅇㅈ?
-듀란테 : ㅇㅈ합니다
-엌ㅋㅋ본인 인정은 닥추지 ㅋㅋ
시청자들은 숨이 트인 것처럼 채팅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경복은 이게 끝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온다……!’
불현듯 느껴진 위협이 급격히 팽창했다. 터지기 직전의 풍선과 같았던 그 느낌이 최고조에 도달한 순간.
쾅하는 굉음과 함께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
-ㅁ웋먼얗
-뭐임? 대체 뭐임!?
-결국 무너지는 거?
예고 없는 충격에 놀란 시청자들이 쓴 외계어가 채팅창을 메웠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 모두가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집중했다.
반파된 건물 바깥으로 무너진 격리시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덩굴줄기 식물의 모습.
-설마 보스?
-않이;;; 이거 너무 크잖아!
-무친ㅋㅋㅋ 건물 크기 무엇?
-ㅅㅂ 이건 가붕이랑 차이가 너무 심한데
-개껌쉑들 머리에 뭐가 들은 거냐구웃!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시청자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건 게임 내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듀란테 님! 어서, 어서 도망치십시오!>
사이렌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카론이었다.
<메모리칩이 손상되면 모두 끝입니다! 얼른 탈출하세요!>
그제야 시청자들은 안도했다.
-아 ㅋㅋ 탈출미션이었누
-난 또 직접 싸우는 건줄 ㅋㅋ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바크 때 뭐 배웠냐 이 개껌쉑들아 라고 할 뻔^^
-그 정도면 이미 다 한 거 아니냨ㅋㅋㅋ
-고소장 오면 올 것이 왔구나 하십쇼
예상외의 상황이 예상의 범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안도는 극히 짧았다.
[‘CapCompany_kor’님이 퀘스트를 제안합니다!]
[조건 – 현 시점 공략 불가능 정도로 설정해 둔 보스, ‘패러사이트 블로썸’ 공략에 도전]
[성공 – 500,000원]
[실패 – 500,000원]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퀘스트 제안, 그것도 개발사 측의 제안이었다.
시청자들이 반응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않이;; 이게 말이야 마굿간이야
-공략 불가능 설정인데 공략하라고?
-아 ㅋㅋ 개껌쉑들 또 선 넘네
-방송 잘하다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구웃!
-진짜 ㅋㅋ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근데 왜 성공이랑 실패 둘 다 상금이 걸려있냐?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뜻?
-갓플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ㄹㅇㅋㅋ 난 꿀잼일 것 같은데?
분노 혹은 호기심, 그리고 기대 등. 급속도로 올라오는 채팅은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이에 이경복은 잠시 게임을 멈추었다. 시청자들의 주의는 다시 그에게 쏠렸다.
의외로 당사자인 이경복은 담담했다.
“자, 여러분들 조금 진정해 주시고요. 앞서 말씀드렸듯 이번 체험 방송은 테스트 빌드입니다. 이름 그대로 ‘테스트’가 필요한 부분이 있거든요.”
이번 방송은 단순히 공개를 위한 게 아니라 FGT, 특정 플레이어 층을 대상으로 하는 테스트의 목적이 있었다.
“저희 광고주께서 방송의 재미를 위해 테스트 사항은 이렇게 퀘스트로 전달 주시기로 했습니다. 물론 보시는 것처럼 강제성은 없습니다. 제가 거절해도 방송에는 전혀 지장이 없어요.”
그 설명에 채팅창 분위기가 바로 누그러졌다.
-그럼 ㅇㅈ이지 ㅋㅋㅋ
-강제 아니면 개꿀이자너 ㅋㅋㅋ
-난 또 평소의 개껌인줄^^
-근데 그러면 도전 하는 거?
-안 해도 되는데 굳이?
-난 정석 루트 보고 싶은 맘도 좀 있음 ㅋㅋㅋ
-왠지 갓플이면 공략할 것 같다 ㅋㅋㅋ
-5252, 개껌! 승리 후에 컷신은 준비해둔 거냐구!
채팅창 주제는 도전하느냐 안 하느냐로 바뀌었다.
“잠시만 생각 좀 해 볼게요.”
이경복은 이번 퀘스트의 성공 가능성을 가늠해 보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Your_first_fanboy’님이 퀘스트 보상금을 추가합니다.]
[누적 보상금 – 500,000원+30$]
[‘PerfectDurante’님이 퀘스트 보상금을 추가합니다.]
[누적 보상금 – 500,000원+130$]
[‘Must_see_this’님이 퀘스트 보상금을 추가합니다.]
[누적 보상금 – 500,000원+200$]
갑자기 연달아 뜨는 메시지에 이경복과 시청자들은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달러……?”
보상금에 추가된 금액의 단위가 달랐다. 그리고 그 단위는 하나가 아니었다.
[‘やっちゃえ!’님이 퀘스트 보상금을 추가합니다.]
[누적 보상금 – 500,000원+200$ + ¥1,000]
[‘逃げるな’님이 퀘스트 보상금을 추가합니다.]
[누적 보상금 – 500,000원+200$ + ¥6,000]
[‘面白いねwww’님이 퀘스트 보상금을 추가합니다.]
[누적 보상금 – 500,000원+200$ + ¥16,000]
곧이어 일본 엔화까지 추가 되었다. 이쯤 되면 상황을 모르는 게 이상했다.
-무친ㅋㅋㅋ 중계채널 화력 뭐냐고!
-와씨 ㅋㅋ 나 국가별로 보상금 적립되는 거 처음 봄
-쇄국정책 중인데 외화벌이 무엇?
-근데 이놈들은 도네하면서도 한글 쓸 의지가 없누 ㅋㅋㅋ
-일본 쪽 아이디는 해버려!/ 도망치지마 / 재밌네 ㅋㅋㅋ 임
-이제 나작스 퍼플은 없는 거지! 그런 거지!
-아니 언젯적 나작스냐고 ㅋㅋㅋ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우리 갓플은 하늘이 주신 세계적인 월클이 맞습니다.
-모든 스트리머의 꿈이고! 삶이고! 행복이고!
-여기서 쏘니 아부지 밈을 ㅋㅋㅋ
-들린다! 들려!
-아 ㅋㅋㅋ 내수가 질 수 없지!
외화가 쌓이는 와중 한 시청자가 반격(?)의 포문을 열었다.
[‘해외자본잠식멈춰!’님이 퀘스트 보상금을 추가합니다.]
[누적 보상금 – 600,000원+320$ + ¥19,000]
[‘신토불이가최고임’님이 퀘스트 보상금을 추가합니다.]
[누적 보상금 – 650,000원+350$ + ¥21,000]
[‘갓플보유국세금납부’님이 퀘스트 보상금을 추가합니다.]
[누적 보상금 – 750,000원+390$ + ¥25,000]
마치 경쟁이라도 붙은 것처럼 치솟기 시작하는 단위별 금액.
이경복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절로 미소가 나왔다.
쌓여가는 금액도 금액이지만.
‘다들 정말 날 좋아해 주는구나.’
시청자들이 보내주는 애정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덕이었다.
“응원 감사드립니다! 그 응원에 힘입어……”
그 기대를 어떻게 저버릴 수 있을까.
“이 도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경복은 모두 앞에서 선언했다.
비단 그 감사함 때문만이 아니라.
‘공략할 수 있다.’
그에게는 자신과 그 자신을 뒷받침하는 실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