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 지옥 입장 (3)
이경복은 고민했다.
‘왜 싸울 수 있도록 만든 거지?’
조력자로 느껴지는 캐릭터와 전투를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오? 컷신 끝남?
-이 악마쉑 잡아야 되는 듯?
-가오 겁나 잡는데 이제 끔살각이쥬?
-아 ㅋㅋ 퍼란테 앞에서는 못 버티지
-악확찢! 악확찢! 악확찢!
안드로가 조력자라는 걸 모르는 시청자들은 즉시 처형을 원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ㄴㄴ 안드로 우리 편임!
-전투본능 보소 ㅋㅋㅋ 무슨 사이어민이냐고 ㅋㅋㅋ
-안드로는 콘솔판에서 착한 놈이었다구!
콘솔판의 경험을 토대로 처형을 반대하는 올드비들의 의견이 올라왔다.
-아재요……
-않이 ㅋㅋㅋ 그건 콘솔판 얘기잖슴?
-ㄹㅇㅋㅋ 개껌이면 그거 이용해서 뒤통수 칠 듯
-통수는 바크에서 이미 실컷 맞았다 이 말이야
-추억 말고 현실을 직시하세욧!
하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그 숫자도 논리도 조금 부족했다. 다른 시청자들의 반박에 오히려 올드비들도 의견이 갈렸다.
-의외로 킹능성 있는데?
-하긴 이건 리부트니까 틀린 말은 아닌 듯?
-혹시 시퀄인 건?
-콘솔판 엔딩에서 듀란테가 지옥 봉인한다고 남았잖슴
-ㅇㅇ 안드로 보니까 시퀄일 킹능성 있음
-뭐래 ㅋㅋㅋ 그럼 콘솔판 동료들 다 어디갔누
안드로와의 전투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자 이경복은 잠시 게임을 멈추었다.
이대로는 어느 쪽 의견을 따르든 불만이 나올 상황이었다.
이에 그가 선택한 건.
[게임이 저장되었습니다.]
바로 ‘수동’ 저장이었다.
-엉?
-뭐임?
-오 ㅋㅋㅋ 나 갓플이 저장하는 거 처음 봄
방송하면서 처음으로 한 수동저장인 만큼 시청자들의 주의를 대번에 끌었다.
“자, 여러분들 싸우실 필요 없습니다. 둘 다 하면 되잖아요?”
-아 ㅋㅋ 맞네
-세이브 로드 신공이면 안전하지!
-지금까지 갓플이 자동 세이브만 해서 깜빡했누 ㅋㅋㅋ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저장 시점을 불러와서 되돌리면 된다. 그가 내세운 해결책에 시청자들은 안심하고 전투를 기대했다.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경복은 게임을 재개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안드로는 담담히 안내역을 자처했다. 이경복은 걸음을 떼는 대신 등에 맨 대검을 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급습.
시청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친 속도 ㅎㄷㄷ
-이게 바로 퍼펙트-발검?
-않이;;; 근데 저걸 어케 막았누?
-유일검의 검을?
이경복이 검을 휘두른 속도도 속도였지만, 안드로가 멀쩡히 그 대검을 받아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 들린 묵색 단검은 족히 그 크기가 갑절인 대검에도 밀리지 않았다.
“역시 이렇게 되는군요.”
웃음기를 지운 안드로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행동으로 신뢰를 얻어내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안드로의 몸이 흐릿해졌다. 잔상이 남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돌아온 반격이었다.
-헐?
-개빠름;;
-알고 보니 보스?!
그야말로 속수무책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놀랐을 뿐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 재밌네요.”
그 상대는 이경복이 아닌가.
그는 태연히 반격을 받아낸 건 물론.
“의외로 붙는 맛이 있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 패링까지 성공해 안드로의 자세를 흔들었다. 여유로운 멘트와 함께 다시 잡은 주도권.
-아 ㅋㅋ 유일검한테는 안 되지!
-이게 천상계의 재미?
-오랜만에 장난감을 찾은 갓플, 이건 무척 귀하네요.
-???: 즐기시게 냅둬
-최고개껌아 고맙다!
시청자들은 그 상황에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이경복의 표정은 금방 굳었다.
-바로 집중모드?
-퍼집중 ON!
-찐으로 즐길 셈인 듯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이경복이 전투에 집중한 거라 판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인의 눈으로는 따라잡기도 힘들 정도의 공방이 이어지지 않나.
이경복은 한 손으로 대검을 휘두르면서 다른 손으로는 권총을 다뤘다.
칼날이 맞닿는가 싶으면 총구가 근거리에서 불을 뿜었다. 쇳소리와 총성이 어우러지며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전투가 펼쳐졌다.
-와씨 ㅋㅋㅋ 개미쳤네
-개껌쉑들 AI 수준 좀 치누 ㅋㅋㅋ
-근데 악마쉑 왜케 안 죽음?
-갓플이 평가 끝내면 바로 죽을 듯
공방이 더 이어졌지만 시청자들은 곧 끝을 직감했다. 이경복이 그간 보여준 압도적인 실력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안드로는 쓰러지지 않았다.
“포기하십시오. 당신은 제가 알던 듀란테 님에 못 미칩니다.”
오히려 안드로 쪽에서 포기를 종용할 정도로 여유를 부렸다.
-뭐지? 개꿀잼 몰카인가?
-갓플이 못 이긴다고?
-혀엉! 이제 장난 그만치라구!
-아 ㅋㅋ 그만 좀 즐기라니깐!
-갓플 표정 보니까 이거 찐인데?
-진짜 이기기 힘든 거라고?
시청자들은 충격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고전하는 모습은 처음이 아닌가.
이내 이경복은 게임을 멈추었다. 설마 진짜 포기하는 것일까?
시청자들이 무어라 채팅을 치기도 전에 그의 입이 열렸다.
“이거, 시스템으로 막힌 것 같은데요.”
그 한 마디에 무수한 물음표가 솟구쳤다. 이경복은 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음, 일종의 ‘무적’ 설정인 것 같습니다. 보시면 첫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예 캐릭터에 변화가 없어요.”
-오?
-듣고 보니 너무 멀쩡하네
-ㄹㅇㅋㅋ 그렇게 싸웠는데 완전 처음이랑 복붙 수준
이경복은 채팅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제가 싸우면서 실험도 해 봤습니다만 몸은 물론이고 입고 있는 옷자락 하나도 달라지지가 않더라고요.”
이경복의 기대와 달리 그들이 놀란 건 안드로의 ‘무적’에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ㅔ?
-조금 전까지 싸우면서 실험까지 했다고?
-무친ㅋㅋㅋㅋ 그 와중에 하나하나 체크 하면서 싸운 거임?
-역시 옥타코어 보유자답누 ㅋㅋㅋㅋㅋ
시청자의 눈에는 격전처럼 보였던 장면들이 이경복에게는 실험에 불과했다.
탄사와 허탈함이 섞인 반응이 빠르게 올라왔다.
[‘CAP 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퍼플 님 말이 옳습니다! 해당 캐릭터인 안드로말리우스는 데미지가 ‘미적용’되도록 설정되어 있거든요!]
그때 후원으로 개발진의 해명이 전해졌다.
[‘CAP 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또한 신체능력과 행동패턴은 지난 미션에서 축적되는 플레이어 데이터를 반영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잘 싸우는 안드로는 저도 처음 봅니다 ㅎㅎ;]
연달아 전해진 해명에 이경복도 시청자들도 상황을 파악했다.
-와씨 ㅋㅋㅋ 어쩐지 갓플이랑 호각으로 싸우더라.
-데미지 미적용 설정 뭔데!
-까고 보니 진짜 무적이었고 ㅋㅋ
-이게 찐 ‘공략불가능’ 설정이잖슴!
-근데 왜 싸울 수 있도록 만든 거? 킹받으라고?
이해와 동시에 의문도 같이 떠올랐다. 무적인 캐릭터라면 왜 싸울 수 있게 만들었단 말인가.
“해 보니까 필요한 전투기는 합니다.”
그 해답은 개발진이 아니라 이경복에게서 나왔다.
“일단은 이길 수 없는 상대로 설정이 됐잖아요? 그런데 적극적으로 공격해 오지도 않았어요.”
안드로는 방어와 대응에 집중했지 공세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무적인 설정을 이용하면 방어를 도외시하는 게 오히려 유리할 터였다.
“아마 진짜 해칠 의도가 없다는 걸 느끼게 해 주려는 거겠죠. 그리고 중간에 떡밥까지 흘렸잖아요?”
-오? 그러네?
-플레이어가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든 구성인가봄
-죽일 수 있는데 안 죽임 = 나 네 편임
-아 ㅋㅋ 그러면 킹정하지 ㅋ
-대사도 보면 안드로는 기억상실 이전의 듀란테에 알고 있는 거
-그럼 진짜 같은 편?
-그래서 못 죽이게 해놓은 거였누
-이러면 갓플도 어쩔 수 없지 ㅋㅋㅋ
-찐으로 공략불가능이쥬?
이경복의 설명에 시청자들은 바로 개발진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한마디가 뒤에 붙었다.
“아뇨, 공략 자체는 가능해요.”
앞에서 설명한 것과는 상반되는 멘트였다. 당연히 채팅창에는 물음표와 의문으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이 말의 저의가 궁금한 건 비단 시청자들만이 아니었다.
[‘CAP 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네? 해당 캐릭터는 패러사이트 블로썸과는 경우가 달라요. 그래서 본사에서도 테스트 항목에 포함시키지 않았는데요?]
첫 테스트의 대상이었던 악마와 다르게 안드로는 ‘죽음’자체가 설정되지 않았다. 당연히 개발사도 테스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다시 들어온 후원에 채팅창에 웃음이 번졌다.
-퍼소리 ON!
-광고주도 화들짝!
-??? : 광고하라니까 지금 뭔 소리 하는 거야?
-근데 갓플이 된다고 하면 뭔가 있을 것 같음 ㅋㅋㅋ
-ㄹㅇㅋㅋ 그래서 테스트 맡긴 거 아님?
시청자 채팅을 읽은 것인지 혹은 자체적인 결정인지.
[‘CAP 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뭔가 찾으셨다면 버그일 수도 있습니다. 시도하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 후원에 이경복은 밝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설명은 좀 지지부진하니까 직접 보여드릴게요.”
-나왔다! 퍼펙트류 설명!
-상남자특) 행동으로 보여줌
-아 ㅋㅋ 보여주면 되는데 왜 입을 털겠냐고
-이게 진짜 공략이 된다고?
-게말콘 일발 장전!
시청자들의 기대와 함께 게임이 재개됐다.
이경복은 짧게 호흡을 골랐다.
‘실험은 끝났다.’
시청자들은 곧바로 펼쳐지는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들숨과 날숨.
고작 한 호흡 만에 기도가 뒤바뀌었다. 이경복의 공세는 이전과는 비할 바 없이 강렬해졌다.
-같은 사람 맞음?
-어떻게 이렇게 바뀌누 ㅎㄷㄷ
-와 ㅋㅋㅋ 설마 실험 때문에 봐주고 있던 거?
-찢었다!
-아 ㅋㅋ 이거지! 이게 갓플이지!
실험할 때는 소낙비처럼 쇄도했다면 지금은 그 자체로 폭풍과도 같았다.
“저는 당신을 해할 생각이 없……”
안드로는 말조차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이전에 축적된 데이터와 지금 눈앞에 이경복이 보여 주는 행동의 차이가 극명한 탓이었다.
연이은 타격에 안드로의 몸이 덜컥거렸다.
-오히려 이렇게 되니까 진짜 무적인 거 실감 나네
-ㄹㅇㅋㅋ 저렇게 당하는데 완전 멀쩡하자너
-갓플 말대로 옷자락 하나 안 바뀜ㅋㅋㅋ
-진짜 무적 아니었으면 이미 안/드/로 됐다
-이름 자른 거 뭐냐곸ㅋㅋㅋㅋ
-근데 이러면 결국 공략 불가 아닌가?
시청자들은 경탄하면서도 여전히 의아했다. 공세가 더 강해졌다고 해도 정작 안드로는 멀쩡하지 않나.
그럼에도 이경복은 검으로 안드로를 몰아붙이고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윽고 서서히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퍼펙트-스마일 떴다!
-큰 거 온다! 큰 거 온다! 큰 거 온다!
-오이오이, 또 살생을 저질러버리는 거냐구웃!
-설마 무적마저 공략하는 기적을 선보일 셈인 거냐아아앗!
-퍼라클 ON!
-제발 해…! 이러다가 쟤만 죽어……!
-다죽어 기출변형 뭐냐곸ㅋㅋㅋ
애청자들에게는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미소였다. 채팅창에 기대심이 급속도로 차올랐다.
그리고 그 미소를 약간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었다.
[‘CAP 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어…… 퍼플 님? 진짜로 찾으셨나요?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이쯤 되니 뭔가 결과가 나올 것 같다.
하지만 그 결과는 개발진 입장에서는 ‘버그’가 확실했다. 그런데 지금 멈추자니 그 버그의 정체가 알 수 없지 않나.
혼란스러워하는 개발진의 후원에 시청자들은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이제 거의 다 됐습니다.”
이경복은 환하게 웃으며 안드로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쏘아진 탄환을 안드로가 잡아내는 사이 그는 도약해 위치를 바꾸었다.
이어 그의 손에 쥐어진 건 건틀렛에서 변형된 가시채찍이었다.
-채찍?
-갑자기 마비 시도?
-데미지 미적용이라 안 통하지 않음?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아 ㅋㅋ 갓플이면 아무튼 해낼 거라니깐!
-ㄹㅇㅋㅋ 일단 보고 갈고리 올려도 됨
-보고 나서도 갈고리 올라올 것 같긴 함 ㅋㅋㅋㅋ
솟구치는 의문에 이경복은 가볍게 입을 열었다.
“안드로의 상태는 유지되는데, 다른 건 변하더라고요.”
그 말과 함께 채찍이 날아들었다. 안드로는 특유의 속도로 회피하려 했지만.
‘딱 맞네.’
이미 신기로 그 동작마저 읽어냈기에 채찍은 단단히 안드로를 휘감았다.
그는 그대로 허리를 크게 틀며 안드로를 뒤쪽에 있는 벽을 향해 꽂았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석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무너진 벽 너머로는 까마득한 무저갱이 드러났다.
그제야 시청자들은 이경복의 공략법을 알 수 있었다.
-와씨 ㅋㅋㅋ 이런 식으롴ㅋㅋㅋ
-저기 떨어지면 못 올라오지 않음?
-못 죽이니까 퇴장시켜버리누 ㅋㅋㅋㅋ
-근데 저렇게 벽이 쉽게 무너짐?
-총으로 균열 만들어둔 거 ㅋㅋ
-안드로는 총알까지 잡는데 왜 자꾸 쏘나 했는데 ㅅㅂㅋㅋㅋ
-진짜 ㅁㅊㄷㅁㅊㅇ
이제 채찍을 풀면 안드로는 그대로 무저갱으로 떨어질 터였다. 하지만 이경복은 그럴 수 없었다.
[‘CAP 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잠시만요!]
단 4글자로 들어온 후원.
이경복은 그 다급함을 느끼고 잠시 게임을 멈추었다.
[‘CAP 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이걸 진짜로 해내시네 ㅠ 안드로는 스토리 필수 캐릭터에요! 살려 주세요 젭라!]
-젭라 등판ㅋㅋㅋㅋ
-이건 찐 당황이다 ㅋㅋㅋ
-아 ㅋㅋ 그러게 갓플이 할 수 있다고 했을 때 믿었어야지!
-살려달라는 게 안드로인가요, 직원님인가요?
-엌ㅋㅋㅋㅋㅋ 둘 다 아님?
얼마나 급하게 썼는지 오타까지 나왔다. 시청자들은 그 반응에 폭소를 터트렸다.
“네, 안 할게요. 진정하시고, 그럼 일단 공략 가능한 걸로 인정하시는 거죠?”
이경복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는 거였지, 광고주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서윗퍼플 나와버리고 ㅋㅋ
-아 ㅋㅋ 지금은 자본주의 모드라니깐!
-서윗(자본주의)
-이번 한 번만 봐드리는 겁니다?
[‘CAP 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감사, 압도적 감사! 해당 부분은 버그로 인정하겠습니다. 사내 테스트에서는 이렇게 오래 싸운 적도 없고, 벽을 노린 플레이도 없어서 발견을 못 했습니다 ㅠ 아니, 애당초 가시 채찍을 얻은 경우가 없었죠!]
여론이 뒤바뀔세라 바로 답변이 돌아왔다.
[‘CAP Company_kor’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발매 후 정식 빌드에서는 이런 문제점이 없도록 수정될 예정입니다! 버그를 발견해 주신 것이니 테스트 항목으로 판단, 감사금을 드립니다!]
체험 방송의 취지에 걸맞은 행동이었다. 이에 개발사도 정당한 보상을 전했다.
-이제부터 갓플 앞에서는 함부로 ‘불가능’이라는 단어 못 쓸 듯 ㅋㅋㅋ
-개발진도 예상 못한 버그를 찾은 스머가 이따!?
-아 ㅋㅋ 이게 진짜 ‘퍼펙트-테스트’지
-숙제방송이라더니 광고주가 숙제를 받누 ㅋㅋㅋㅋ
-???: 버그 맞죠? 고쳐오세요.
-숙제역전세계 뭔데!
-5252, 퍼플 코인 타는 게 쉬운 줄 알았냐구웃!
바로 태도를 바꾸는 광고주의 모습을 시청자들은 놓치지 않았다. 즉각 개발사를 놀리는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러분, 이거 진짜 대단한 거예요.”
이경복은 잠시 상황을 지켜보다가 멘트를 쳤다.
“이렇게 바로 버그 고치는 개발사가 흔치 않습니다. 이런 피드백 속도면 믿고 사도 되겠죠?”
-여기서 포장을?
-즉.시.포.장
-포장각 보는 실력 무쳤눜ㅋㅋㅋ
-이정도면 갓플이 자본주의 그 자체 아니냐?
-아 ㅋㅋ 이집 바이럴 잘하네(진짜임)
-종겜스가 아니라 종광스였자너 ㅋㅋ
-종합 광고 스트리머냐고 ㅋㅋㅋ
-킹직히 이정도로 해주면 숙제 가성비 개미친 거 ㅋㅋㅋㅋ
그 한마디로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이경복은 가볍게 손뼉을 쳐 주의를 환기시켰다.
“자, 궁금증도 풀렸으니 다시 로드해서 정상 진행하겠습니다.”
그는 세이브 파일을 불러왔다.
이번에는 순순히 안드로의 안내를 따라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넓은 홀이었다.
-오잉?
-지옥문이 또 있네
-않이;; 3개나 더 있누
-같은 건 아닌 듯?
-ㅇㅇ 디자인이 다 다름
그 중앙에는 서로 다른 형태의 지옥문 3개가 삼각 구도로 세워져 있었다.
“아, 다시 컷신이네요.”
통제권이 사라지고 화면이 돌아갔다.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지옥이 아닙니다. 지옥의 문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안드로는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문턱?”
“예, 림보라고 부르는 공간입니다. 인간의 말로 비유하자면, 지옥과 지옥을 이어주는 허브라 생각하시면 되겠군요.”
-무슨 지옥 교차로 같은 건가?
-교차로 비유 찰떡이눜ㅋㅋㅋ
-아닠ㅋㅋㅋ 갑자기 현실 대입하지 말라고!
-지옥 교차로라고 하니까 진짜 없어보이넼ㅋㅋㅋㅋ
-ㄹㅇㅋㅋ 왠지 길 막힐 것 같음
-꼬리 물기 멈춰!
시청자들은 농담을 던졌지만 컷신 속 분위기는 심각했다.
“지옥의 개수가 3개라는 건가?”
“영역이라는 단어가 더 알맞겠군요.”
안드로는 그리 말하며 지옥문의 뒤편을 돌았다.
“탐욕, 분노, 기만. 셋으로 나누어진 지옥의 영역은 각기 그 군주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 셋이 현재 패권을 다투고 있죠.”
가볍게 한 바퀴를 돈 안드로는 다시 듀란테 앞에 섰다.
“그 군주들이 가진 데몬하트, 그것을 모두 손에 넣어 주십시오.”
그 말에 듀란테는 코웃음을 쳤다.
“악마가 악마사냥을 의뢰하겠다? 어처구니가 없군.”
그러나 그 웃음기는 삽시간에 사라졌다.
“그 군주들을 끌어내리면 그 자리 모두 네 몫이 되겠군.”
날카롭게 변한 눈빛은 당장에라도 안드로를 꿰뚫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안드로는 두려운 기색 없이 머리를 흔들었다.
“분수를 알아야 하는 건 인간이나 악마나 같습니다. 저는 군주가 될 그릇이 못 됩니다.”
“그렇다면 어째서지? 분명 군주들이 사라지면 얻는 게 있을 텐데.”
“지금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 제안이 도움이 된다는 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안드로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지옥 최심부, 이런 지옥문으로는 갈 수 없는 영역.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데몬하트를 모아야 합니다.”
그는 슬쩍 옆으로 물러나 듀란테에게 길을 열어주며 말을 이었다.
“이미 느끼고 계실 겁니다. 당신이 찾는 것은 그 최심부에 있다는 사실을요.”
이에 듀란테는 걸음을 옮겼다. 그는 안드로 앞에 멈춰 서서 그를 내려 보았다.
“악마의 거래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르지.”
낮게 깔린 그 음성에는 적의가 다분히 실려 있었다.
“누구 밑에서 일하는지 몰라도 전해라.”
순식간에 튀어나간 그의 손이 안드로의 팔에 감겨있던 검은 뱀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시종일관 여유로웠던 안드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 역시 반은 악마라는 걸 잊지 말라고.”
“……물론입니다.”
듀란테가 손을 떼고 나서야 안드로는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이어 듀란테는 가장 가까이 있던 지옥문, ‘탐욕’의 영역으로 향하는 문으로 들어섰다.
그와 함께 암전되는 화면.
-듀란테 박력 보소 ㅎㄷㄷ
-반인반마 활용 스펙트럼 뭐냐고 ㅋㅋㅋ
-ㄹㅇㅋㅋ 눈나랑 있을 때는 꿀 떨어지는 소재였는데
-이걸 이렇게 쫄깃하게 살리네
-몰입도 진짜 미쳤다 ㅋㅋㅋㅋ
-이건 진심 갓플 아니어도 살만하다 ㅋㅋ
-근데 갓플이니까 더 사야겠쥬?
-트수들 개껌 영업사원이냐고 ㅋㅋㅋ
시청자들은 그제야 숨이 트인 듯 채팅을 쳤다.
-이거로 미션 끝인 듯?
-이번에도 떡밥 좀 많이 나왔네
-안드로 뒤에 흑막 분명 이따 ㅋㅋ
-그래서 듀란테가 지옥 최심부가는 이유가 뭔데에!
-아 ㅋㅋ 딱 보면 최종보스전이자너
-ㄹㅇㅋㅋ 안드로가 아는 거 보면 각 나오지
-지옥군주 호로록하고 최종보스 호로록 하고 이제 성녀눈나랑 재회해서 해피엔딩 땅땅!
-지옥말이 국수 맛있지
-뭔 소리야 ㅅㅂㅋㅋㅋㅋ
-아니 방송 보기 전에 드립 예습하고 오냐고 ㅋㅋㅋ
긴장이 풀린 덕인지 채팅창이 떠들썩해졌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어? 아직 안 끝났네요?”
화면이 전환되며 다시 밝아졌다.
장소는 여전히 지옥문이 있는 홀이었고, 안드로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셨군요.”
혼잣말은 분명 아니었다.
‘어?’
이경복은 느껴지는 감각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일단 그 정체를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듀란테 님은 먼저 떠나셨습니다.”
그 말과 함께 180도로 돌아가는 화면, 이어 안드로와 마주한 인물의 모습이 잡혔다.
그곳에 있는 건 바로.
-헐?
-눈나...?
-성녀 눈나가 왜 나와?
-대체 뭐임? 이게 뭐임?
디바인 에이전시의 성녀, 베아트리체였다.
채팅창에 무수한 물음표가 올라오는 순간 그녀의 입술이 달싹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채 나오기 전에 팟하고 시야가 암전되더니.
[Mission 3. ‘The Limbo’ End]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네온사인이 떠올랐다.
-야!!!!!!!!!
-미쳤어!? 미쳤냐고?!
-이걸 여기서 끊는다고?
-와 ㅋㅋ 이거 선 넘네 진짜
-<관리 봇이 삭제한 메시지입니다 (경고 1회)>
-모두 키보드에서 손 떼!
-아니 ㅅㅂ 경고 달게 받는데 좀 너무하잖슴!
-지금 중계채널 채팅 터짐ㅋㅋㅋ 렉으로 멈춤ㅋㅋㅋㅋ
채팅창이 순식간에 번잡스러워졌다. 이경복은 육감으로 한발 앞서 눈치챘지만 그 역시 충격을 받았다.
“와, 이건 진짜 파격적인 전개네요.”
그 목소리에 시청자들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개껌 통수 어디 안 가쥬?
-설마 눈나가 안드로 배후인 거?
-그 말 취소해!
-취소
-바로 취소 뭔데 ㅋㅋㅋㅋ
-우리 히로인 눈나가 그럴 리 없음 ㅋㅋㅋ
-ㄹㅇㅋㅋ 이거 듀란테 걱정돼서 바로 따라온 거자너
-아니면 사실 누나가 아닌 거 아님?
-그건 또 뭔 소리여 ㅅㅂ
-흑막한테 변신 능력 같은 거 있을 수도?
-오 ㅋㅋ 그것도 킹능성 있네
채팅창은 이내 갖가지 추론으로 뒤덮였다. 놀랍게도 플레이 속행을 원하는 채팅은 극히 적었다.
이전 경험으로 다들 예상하고 있던 덕분이었다.
“정말 어떻게 될지 도통 감이 안잡히네요. 그래서 더 재미있는 거겠죠?”
마무리를 암시하는 이경복의 멘트가 이어졌다.
-킹직히 재미있긴 햌ㅋㅋㅋㅋ
-해피엔딩만 되면 상관없어!
-아 ㅋㅋ 해피엔딩은 우리 갓플이 다 해줄 거라고
-오늘 방송도 진짜 알찼다
-1줄요약) 퍼펙트-테스트
-요약추 ㅋㅋㅋㅋㅋ
-ㄹㅇㅋㅋ 타임어택이랑 찐 공략불가능까지 전부 발라버림
이경복은 채팅을 확인하고 미소 지었다.
“다들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갈수록 흥미가 더해지는 데머크! 많은 기대 부탁드리며 저는 내일 방송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퍼바콘)(퍼바콘)(퍼바콘)
-트바! 큐바! 퍼바!
-오늘도 퍼펙트 해버렸다!
-혀엉! 잘 자고 내일 봐!
이경복의 인사와 함께 방송이 꺼졌다. 그러나 채팅창에 모인 시청자들의 숫자는 아주 천천히 줄어들었다.
-왜 하루는 24시간인 거지?
-그래도 하루하루 갓플 방송 기다리는 맛이 있자너ㅋㅋ
-??? : 퍼플의 방송 일정이 나오면, 나는 전날부터 행복할 거야
-여기서 킹린 왕자가?
-진심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라 퍼블로프의 개가 되고 있음 ㅋㅋ
-퍼블로프는 또 뭐냐고 ㅋㅋㅋ
채팅창에는 시청자들의 감상이 올라왔다. 방송의 여운을 나누는 것도 실시간 시청의 메리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경복의 방송은.
-스토리 떡밥 때문에 데붕이들 잠 못 잘듯ㅋㅋ
-아 ㅋㅋ 이런 건 프롬 겜이나 그런 줄 알았는데
-프롬뇌 가동하는 엘붕이들 이해가 되누 ㅋㅋㅋㅋ
-방종했으니까 이제 곧 퍼튜브 멤버십 열릴 듯?
-무친ㅋㅋㅋ 외국 데붕이들 난리 나겠누
-리딧 반응 보고 좋으면 찍먹해봐야지 ㅋㅋㅋ
언제나 즐거운 느낌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