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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150화 (150/491)

150화 - 좋은 제안, 더 나은 계획

CAP Company 한국 지사 사옥.

“이렇게 빨리 다시 올 줄은 몰랐는데.”

“그만큼 방송 반응이 좋다는 거겠지.”

이경복과 박주호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이곳을 다시 찾았다.

“근데 추가 프로모션 할 게 있나?”

“나도 그게 의문이다. 아무리 대외비라지만 이번에는 너무 비밀스러워.”

주차를 마친 박주호가 미간을 찡그리며 내렸다. 이경복은 이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뭐, 이제 곧 알게 되겠지.”

두 사람은 이전 방문 때와 같이 회의실로 안내를 받았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아, 어서 오세요.”

약간 나이가 지긋한 중년인이었다. 그 외에 다른 직원은 없었다.

‘고위직이다.’

박주호는 그를 보자마자 직감했다.

중년인의 행동부터 말투까지 느껴지는 여유는 의식적으로 꾸며낸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외부인사일수도 있겠어.’

메일의 ‘추가 프로모션’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가능성이었다.

게임에 대한 프로모션은 진행하고 있으니 추가로 게임 외적인 부분을 노린 게 아닐까.

그러나.

“반갑습니다. CAP Company 한국 지사를 맡고 있는 프랭크 최입니다.”

이어지는 그의 소개에 박주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지사장이 직접?’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외부인사가 아니라 사내 핵심이 아닌가.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한 그와 달리 이경복은 환하게 웃으며 지사장의 손을 잡았다.

그의 신기로 미루어 보아 지사장은 ‘화’가 될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네, 반갑습니다. 스트리머 퍼플입니다. 이쪽은 제 매니저고요.”

그 목소리에 박주호는 정신을 수습하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지사장은 허허롭게 웃으며 자리를 가리켰다.

“갑자기 연락 드렸는데 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단 앉으시지요.”

이에 세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사장은 두 사람의 맞은편이 아니라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지사장이라는 직책상 습관적으로 앉은 건가 싶었는데.

“아, 오늘 미팅은 저희 쪽이 아니라 북미 지사에서 주도할 겁니다.”

의외의 설명이 튀어나왔다.

“북미요?”

“예. 저는 혹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중개를 맡게 됐죠. 바로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그 물음에 이경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사장이 스마트 링크를 조작하자 회의실 중앙에서 홀로그램이 투사됐다. 이어 두 사람의 맞은편에는 반투명한 외국인이 등장했다.

‘설마 해외지사와 하는 계약일 줄이야!’

준비성이 출중한 박주호였지만 이런 식으로 미팅이 진행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겉으로는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입술이 바짝 마르고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지사장이 통역을 전담하면 미팅이 불리해질 수도 있는데……’

나름 공부머리는 자부하지만 영어회화는 결이 달랐다. 그것도 비즈니스 회화라면 더더욱.

이런 상황이면 대화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사측에 넘어가지 않겠나.

그리 머릿속이 혼잡해진 박주호였지만 정작 결정권자인 이경복은 태연했다.

아니, 태연한 걸 넘어서.

“처음 뵙겠습니다. 스트리머 퍼플입니다.”

스스럼없이 먼저 북미 관계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행동에 박주호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반갑습니다!>

북미 관계자의 입에서 능숙한 한국어가 돌아왔다. 그제야 박주호는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멍청하긴……! 지사장이 단순히 통역으로 올 리가 없는데.’

외국인은 한국어를 못 한다, 외국인과의 중개는 통역일 것이다 등등. 선입견이 이래서 무서운 것이었다.

편견을 걷어내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한국어에 능통한 관계자를 배치했다? 그만큼 이 계약에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겠지.’

걱정이 사라지며 업무 모드로 돌아간 박주호는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퍼플 님의 시간을 많이 빼앗을 생각은 없습니다. 바로 계약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 사이 소개를 마친 북미 관계자가 계약서를 전송했다. 이경복과 박주호는 눈앞에 나타난 계약서를 빠르게 훑었다.

<이번 퍼플 님의 체험 방송 반응이 무척 좋습니다. 이에 논의 결과 체험 방송이 종료되는 대로 예약 구매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리고 예약 구매 특전에 제 보이스 팩을 포함시키고 싶다는 거네요.”

이경복의 말에 한국 지사장이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그 대가로 6천만 원, 조사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문 성우의 1년 연봉입니다.”

<내부 논의 결과 산정한 금액입니다. 이번 DMC와 같은 패키지 게임의 수명을 고려한 값이죠.>

“수명이라 하신다면?”

사측의 설명에 이경복이 되물었다.

“온라인 컨텐츠가 없는 패키지 게임의 수명은 짧으면 3개월, 길어야 1년입니다. 물론 향후 추가 DLC를 발매한다면 그 수명은 연장되겠지만 아직은 논의된 바가 없습니다.”

<더욱이 이번 계약은 바로 게임을 즐기고자 하시는 ‘예약구매’ 고객님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바로 플레이를 원하시는 분들이니 1년이 아니라 반년으로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1년 연봉으로 산정했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그 설명에 이경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측에서는 보이스 팩의 효용이 반년이라 판단했지만 그 2배를 지급할 생각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넙죽 계약을 체결할 수는 없었다. 박주호가 슬쩍 이경복과 시선을 교환했다.

“이처럼 귀사에서는 퍼플의 목소리가 가치 있는 자산이라 평가했습니다.”

박주호가 북미관계자와 한국지사장에게 눈길을 주며 말문을 열었다.

“이 자산에 대한 보호책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가령, 예약구매자 중 누군가 퍼플의 목소리를 추출해 재판매 혹은 무료 배포하게 되면 문제가 될 테니까요.”

그 말에 지사장은 눈에 이채를 띄었다.

“예리한, 그리고 필요한 질문이십니다. 좋은 매니저를 두셨네요.”

그는 이경복을 바라보며 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우려는 저희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래서 북미 지사를 통해 계약하는 면도 있지요.”

<한국의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보통 저희 쪽 법이 더 엄격하다고들 하시더군요.>

북미 관계자가 말을 받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런 일이 없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와 관련한 조항은 계약서 11페이지를 보시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그는 두 사람이 굳이 찾아보지 않도록 해당 페이지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예약구매를 마친 고객님들에게는 암호화된 식별코드가 부여됩니다. 만약 우려하신 사태가 벌어지시면 저희 쪽에서 이 코드를 추적, 즉시 법적으로 대응할 지침입니다.>

“북미 지사를 통한 계약이기에 한국이 아닌 미국의 법에 따라 판결이 납니다. 오히려 법정 배상금이 대금보다 클 수도 있겠네요.”

지사장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농담을 건넸다. 하지만 100% 농담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박주호는 관련 조항을 살펴보고 이경복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문제없겠다는 신호.

‘확실히 문제가 없긴 할 거 같은데.’

이경복 역시 그에 동감했다. 그의 신기는 이 계약에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선뜻 서명하지 않았다.

“좋은 제안입니다. 다만, 들어보니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네요.”

“더 나은 방법이요?”

그의 말에 상대는 물론 박주호도 눈썹이 올라갔다.

“예약구매를 하시는 분들이 모두 제 팬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중에는 분명 제 팬들이 있긴 하겠죠.”

<겸손하시네요. 저희는 예약구매자 중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할 거라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더욱 고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경복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제 팬들이 분쟁에 휘말리는 걸 원치 않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한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평소에는 선량한 사람도 순간의 욕심에 양심을 외면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문제가 발생하는 건 제 보이스 팩이 특전, ‘한정판’이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구하기 힘들수록 불법적인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이경복은 다른 제안을 꺼냈다.

“그것보다는 상시 구매할 수 있는 방향은 어떻습니까? 예약구매자에게는 기본 지급하고요.”

선택권을 준다면 불법적인 방법을 결정하는 비율이 줄어들 터였다. 그럼에도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 처벌하면 될 일이었다.

박주호는 그 대담한 제안에 놀라 입을 벌렸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 말씀은 보이스 팩을 DLC로?>

“흠…… 이거 꽤 흥미롭네요.”

사측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결정을 내리기는 힘든 사안이로군요. 일본 본사와도 논의를 해야 하고, 판매방식을 바꾸면 자연스럽게 계약 조건도 변경해야 하니까요.”

이경복은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자세한 사항은 다음 미팅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하죠.”

<네,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렇게 미팅을 마무리하고 두 사람은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박주호는 바로 시동을 걸지 않았다.

“하…… 미안하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사과에 이경복은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뭐가?”

“미팅 내용 파악도 그렇고, 개선점 제안도 그렇고…… 이건 내가 미리 준비를 했어야 되는 건데.”

오늘 그가 이경복에게 도움을 준 건 운전뿐이었다. 이래서야 매니저가 아니라 운전기사일 뿐이지 않나.

이경복은 친구의 사과를 받지 않았다.

“아니, 오기 전까지 계약 내용도 몰랐는데 뭘 어떻게 준비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박주호는 여전히 씁쓸함을 내비쳤다.

“이런 면에서는 역시 소속사가 필요하긴 한 것 같다.”

“소속사?”

“결국 기업 입장에서 보면 우리도 그냥 개인에 불과하다는 거지.”

개인사업자를 냈다지만 기업에서 보면 팀 퍼펙트는 ‘사업자’보다는 ‘개인’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대외비라는 명목으로 계약서를 보여 주지 않는 거겠지. 너도 알겠지만 진짜 B2B였으면 미팅 전에 서로 계약서 검토하고 조율 준비를 하잖아?”

“뭐, 그렇긴 한데.”

이경복은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급하게 생각할 건 없어. 전에도 그랬지만 칼자루는 우리가 쥐고 있으니까. 먼저 하자고 한 건 저쪽이잖아?”

박주호는 친구의 대답에 헛웃음을 흘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넙죽 받았을 계약이었다. 흔치 않은 기회였고 놓치기 힘든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에게는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나 이경복은 달랐다.

능력 있는 자에게는 기회가 자주 찾아오는 법이요, 안달이 난 건 그 능력을 갈구하는 이들이었으니.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래도 이번 일은 전문가 도움이 좀 필요하겠어.”

당당한 친구의 태도에 박주호는 걱정을 잠재웠다.

다시 업무 모드로 돌아간 그는 운전을 시작하며 현 상황에서의 대응책을 떠올렸다.

“네 목소리는 디지털 자산이다. 그것도 너만의 고유한 자산으로 취급 될 테니 저작권이나 특허 같은 개념으로 적용되겠지.”

“아, 그렇게 되려나?”

“자세한 건 상담을 해 봐야지. 변호사보다는 변리사를 찾아보는 게 좋겠다. 지놈 님에게 한 번 물어볼게.”

박주호는 지놈을 떠올렸다.

이미 이전에 세무사로 도움을 받았던 터였고, 경력이 있으니 지금과 유사한 경험을 했을 수도 있었다.

이경복은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눈을 굴렸다.

“변리사면 좀 회사 사람들이랑 자주 부딪치겠지?”

“아마 그렇겠지. 상표나 특허는 개인보다 기업체가 더 많이 낼 테니까. 근데 그건 왜?”

돌아온 물음에 이경복은 웃음 지었다.

“잠깐 기다려 봐.”

그는 스마트 링크로 톡을 보냈다. 박주호는 바로 지놈에게 연락을 하는가 싶었지만.

“아, 톡이 아니라 전화를 하시네.”

이어지는 이경복의 통화에서 들려온 음성은 지놈의 것이 아니었다.

<어, 경복아.>

“안녕하세요, 이모님. 식사 하셨어요?”

그녀는 바로 양화보살, 양규리 이모님이었다.

<아이고야, 내 출장 나와 점사 본다꼬 아직 안 묵었다. 니는?>

“아, 저도 아직이에요.”

그리고 그녀의 인맥은.

<그래? 글면 점심이나 한 끼 하자. 변리사는 내 아는 양반들한티 함 물어볼 테니께 걱정은 말고.>

“네, 감사해요. 곧 찾아뵙겠습니다.”

곧 이경복의 인맥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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