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 황금만능, 주의 (1)
늦은 오후, 최병훈의 오피스텔.
일반적인 직장인들은 퇴근을 기다리며 피로에 지쳐 있을 시간이었지만, 활동 시간대가 다른 최병훈은 오히려 지금이 가장 활기가 찬 때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
그와 달리 집을 찾은 두 친구는 약간 지친 표정이었다.
이경복과 박주호는 양규리와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고 바로 변리사를 만나 상담을 받았다.
“조금 애매하다.”
“애매하다니?”
박주호의 대답에 최병훈이 눈을 찌푸렸다. 그 옆에 있던 이경복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도움이 되긴 했잖아?”
“뭐야, 어느 쪽이 맞는 건데?”
미팅 내용만 전해 들었던 최병훈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박주호는 안경을 고쳐 쓰며 짧게 한숨을 뱉었다.
“그 말대로야. 도움이 되긴 했어. 우리랑 유사한 사례에 대한 경험도 들었고, 그에 따른 조언도 받았지. 그것도 무료로.”
“그래? 근데 표정이 왜 그러는데?”
최병훈은 코끝을 찡그렸다. 그 대답은 옆에 있던 이경복이 대신했다.
“사례가 너무 다양해서 문제였어.”
“엉? 다양하면 참고할 게 많아서 좋잖아?”
“아니, 그것도 어디까지나 비슷한 사례군이 있어야 의미가 있어. 근데 이번에는 스펙트럼이 너무 넓었어.”
박주호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해외에서는 성우가 아니더라도 배우들이 연기를 직접 하는 경우도 있더라. 아무튼 그런 식으로 인플루언서의 부류도 다양해.”
“그래서 우리가 스트리머 사례만 보고 싶다고 했지.”
“그것도 최대한 동급인 걸로만. 그런데 이렇게 제한해도 게임 쪽이 또 다양해. 장르 특성상 나레이션이 또 중요시되는 게임들도 있으니까.”
게임의 장르와 소비층, 그리고 게임사의 규모 등등 여러 변수에 따라 계약 조건이 다양하게 변했다.
“그래도 찾아보면 비슷한 사례가 있지 않냐?”
“당연히 그렇게 했지, 인마. 그런데 이번에는 또 보이스 팩 가격에 따라 비율이 달라지더라고.”
이경복이 실소를 흘리며 답했다.
“일단 추려 보니 로열티 비율은 최소 0.5%에서 최대 10% 선에서 결정됐다.”
“어우, 나는 복잡해서 듣다가 포기했다니까. 다행히 변리사님은 믿을만한 사람이더라.”
“음, 확실히 좋은 분이셨다. 급하게 약속 잡았는데도 꽤 친절하셨고.”
그 말에 최병훈이 웃음을 흘렸다.
“인간 감별사가 할 일이 그거지 뭐. 그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냐?”
“이 자식이 또 감별사 드립치네.”
“그럼 휴먼 스캐너라고 해 줄까?”
두 친구가 실없는 소리를 나누자 박주호가 끼어들었다.
“아무튼 정리하면, 일단 사측에서 제시하는 보이스 팩 가격 기준에 맞춰서 경우의 수를 생각해 두기로 했다.”
“결정에 참고할 자료가 있으니까 기준이 잡히네. 뭐, 그 정도면 대비는 충분하지 않겠어?”
“그래, 이게 최선이겠지.”
박주호의 대답에 이경복도 속으로 동의했다.
‘뭔가 문제다 싶으면 내가 알게 될 거고.’
그는 자신의 신기를 신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기의 판단을 넘어 원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자칫 불길한 쪽으로 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때는 다시 물러나면 될 일이었다.
다행히 신기는 여전히 평온했다.
“그래도 이번 일로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는 걸 느꼈다.”
그리 생각하는 사이 박주호가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보완?”
“우리 취약점을 발견한 거지. 특히 법 쪽 부분이 약하잖아.”
이경복이 그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박주호와 달리 그는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야, 급할 거 없어. 지놈 형이 소개시켜 준 세무사에 이번에는 변리사까지 얼굴을 텄잖아? 이런 식으로 규모를 확장시켜도 충분해.”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즐겁게 여겨진 덕이었다.
“진짜 한 달 전에는 이런 건 생각도 못했잖아. 우리 사업이 점점 커지는 게 느껴지지 않아?”
그 물음에 최병훈은 물론 굳어 있던 박주호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야야, 그것보다 수입 늘어나는 게 더 직관적이지. 난 채널 수익창 보면서 매 순간 느끼고 있거든!”
“확실히 즐겁긴 하지. 수입도 수입이지만, 개고생하면서 남의 배 불려 주던 시절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다.”
이경복은 친구들의 대답에 더욱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러니까 우리가 잘하는 거에 집중하자고.”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
그렇기에 더욱 힘 쏟을 가치가 있었다.
“방송 시작 해야지.”
* * *
데몬 머스트 크라이 체험 방송 5일 차.
“트하! 반갑습니다!”
이경복의 인사 한마디에 기다리고 있던 1만여 명의 시청자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퍼하콘)(퍼하콘)(퍼하콘)
-퍼손실 보충 ON!
-기다리는 동안 몸이 줄줄 흐르고 눈물이 벌벌 떨리는데 나만 그래?
-퍼단증상 뭐냐고 ㅋㅋㅋ
-개껌은 지금 뭐하는 거냐고! 숙제 조건에 12시간 방송을 넣으라고!
-하루가 긴 거 왜 때문?
-자전속도가 느려서 그럼 ㅋㅋ
-아 ㅋㅋ 지구쉑 빠져가지고!
-킹직히 지구도 갓플 방송 봤으면 전력으로 돌았다
-ㄹㅇㅋㅋ 트리플 악셀 바로 나옴
-퍼청자들 시작하자마자 퍼드립 보소 ㅋㅋ
-천체학자들 오열 ㅋㅋㅋ
솟구치는 채팅에 이경복은 웃음 지었다.
[‘중독관리지원센터’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퍼튜브로도 퍼손실이 회복되지 않으면 ‘퍼절임’ 중증입니다]
[‘멤버십찍먹후기’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혀엉! 외국어로 더빙 들으니까 오히려 내용을 몰라서 더 듀란테 같더라!]
[‘트위티웨건’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콘솔판 교단이랑 안드로 관계 트윗 번역 짤 봤음?]
이어 한 박자 늦게 쏟아지는 후원들. 이경복은 가볍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퍼튜브로 퍼손실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여러 번 보시면 되지 않을까요?”
-않이! 방송시간을 더 늘려달라구욧!
-아 ㅋㅋ 조회수나 올리라니깐!
-5252, 상대는 자본주의 그 자체라구웃?
방송 켠 직후였기에 이경복은 가볍게 후원에 대한 답변을 이어갔다.
“더빙 영상은 저도 봤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트위티는 제가 SNS를 안 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전 정보 없이 플레이하는 게 조건이었습니다.”
-엌ㅋㅋ 더빙까지 찾아보누
-찐청자 무엇?
-근데 진짜로 내용 모르고 들으면 더 멋있게 들리긴 할 듯 ㅋㅋ
-갓플은 SNS 왜 안함? SNS하면 퍼손실 채울 수 있는 거 아님?
-생각해보니까 그르네 ㅋㅋㅋ
-보통 얼공 안하는 스머들도 SNS는 하지 않나?
-즉.시.개.설
-트위티나 스텔라그램 ㄱㄱ
-얼공 안 해도 되니까 일상 내놔!
-ㄴㄴ DM으로 찐따들 꼬일 듯
-미친놈들은 사진으로도 위치 찾는다니깐!?
-아 ㅋㅋ 갓플이 어련히 알아서 한다고!
트위티 언급에 화제가 SNS 쪽으로 쏠렸다. 그냥 방송이라면 별 상관이 없겠지만 광고였기에 이경복은 바로 주의를 돌리기로 했다.
“그럼 오늘은 바라시는 대로 게임 시간을 늘리기 위해 후원 바로 닫겠습니다. 밀려 둔 후원만 보고 바로 시작할게요.”
-방송 때문에 후원을 닫는 스머가 이따!?
-속지마라! 퍼갈량의 함정이다!
-ㄹㅇㅋㅋ 어차피 후원 대기열 한계 있어서 이미 다 찼을 듯
-헐? 후원 대기열도 있음?
-대기열… 끼룩끼룩… 으윽! 머리가…!
-아 님들 때문에 플라시보 효과 깨졌잖슴!
-???: 이래서 눈치 빠른 녀석들은 싫다니깐!
-진짜 ㅋㅋ 저 채팅 안 봤으면 체감 시간 늘어났다.
-플라시보 ㅇㅈㄹㅋㅋㅋㅋ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경복은 빠르게 후원을 읽어나갔다. 그렇게 모두가 고대하던 시간이 돌아왔다.
“자, 그럼 다시 체험 시작하겠습니다!”
게임 로고와 함께 배경이 뒤바뀌었다.
“안드로랑 베아트리체 관계는 안 알려 줄 모양이네요.”
컷신 속 화면은 지옥문을 여는 듀란테의 모습으로 시작했다.
-않이! 어떡계 이럴 수가 이써!
-개껌쉑들 진짜 킹받게 하는 데 재능 있다니까 ㅋㅋㅋㅋ
-아 ㅋㅋ 그만큼 중요한 떡밥이시라는 거지
-어제 그렇게 끝내놓고 이러기 있냐구!
-우리 성녀 눈나는 착함! 아무튼 착함!
시청자들의 아우성에 이경복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러한 반응들은 이내 사라졌다.
듀란테가 문을 열고 나오자 보이는 풍경 덕분이었다.
“와.”
이경복도 놀라 탄사를 뱉었다.
눈앞에 보이는 광활한 대지와 산맥, 그리고 언덕과 봉우리는 모두 반짝이는 금은보화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흐르는 강과 하천에는 물이 아니라 달콤한 꿀과 향기로운 술이 흘렀다.
도저히 지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광경이었다.
-자본주의 ON!
-무친 ㅋㅋㅋ 컨셉 확실한 거 보소
-아 ㅋㅋ 탐욕의 영역이면 이 정도는 돼야지
-보석도 종류별로 넣어서 색감도 잘 살림
-루비랑 에메랄드, 사파이어, 저건 토파즈인가?
-아트팀 열일 하는 거 보소 ㅋㅋㅋㅋ
-이 정도면 지옥이 아니라 지상낙원 아님?
-제가 찾던 에덴동산, 여기 있었네요^^
-트수들 타락 속도 뭐냐고 ㅋㅋ
시청자들의 반응과 달리 듀란테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는 쓱 주변을 훑어보고는 한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과시욕이 있는 놈이로군.”
그 목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시선을 따라갔다. 화면에 잡힌 건 찬란한 황금빛을 내뿜는 성이었다.
-너무 직관적이쥬?
-딱 봐도 탐욕의 군주가 있을 각 ㅋㅋㅋㅋ
-킹직히 콘솔판처럼 헤매게 만들면 개빡치자너 ㅋㅋㅋ
-ㄹㅇㅋㅋ 저렇게 딱 잘 보이게 박아두면 킹정이지
시청자들 모두 그곳이 듀란테의 목적지가 될 것을 직감했다. 그 예상을 따르듯 듀란테가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나아가기를 잠깐.
‘적인가.’
이경복의 육감에 끈적거리는 듯한 불쾌함이 잡혔다.
이윽고 그 방향에 있던 둔덕이 우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 진동에 각종 보석들이 파도처럼 물결쳤다.
“허?”
듀란테는 그 파도를 가뿐하게 도약해서 피해냈다.
-뭐지? 산사태 같은 건가?
-지옥관리청 뭐하냐구! 낙석주의 안 붙이냐구!
-엌ㅋㅋ 보석도 돌이긴 하짘ㅋ
-아닠ㅋㅋ지옥관리청은 또 어딘데 ㅋㅋㅋ
-보석이 저렇게 밀려오니까 오히려 무섭누 ㅎㄷㄷ
-엥? 뭐가 나오는데?
착지와 더불어 둔덕이 무너진 이유가 드러났다.
보석에 가려져 있던 황금 덩어리가 마치 액체처럼 뭉그러지더니 후덕한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다.
“듀란테!”
그것은 흉성을 터트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적의였다.
듀란테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곧바로 황금인간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연이은 총성과 함께 날아간 탄환이 황금인간의 몸을 때렸다.
-상남자특) 대답 대신 총 쏨
-않이 ㅋㅋㅋ 그건 상남자가 아니잖슴!
-어차피 악마뿐이니까 바로 선공하는 거 보소 ㅋㅋㅋ
-황금인데 왜케 딴딴하누?
요란한 쇳소리가 울렸지만 황금인간의 몸은 건재했다. 듀란테는 짧게 혀를 차고는 권총을 홀스터에 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대검을 뽑아 덤벼들려는 순간이었다.
“너는 뭐냐? 듀란테는 어디에 있지!?”
주의가 끌린 황금인간의 입에서 나온 말.
듀란테는 물론 이경복과 시청자들도 동시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ㅔ?
-듀란테 앞에서 듀란테 찾기 ㅋㅋㅋㅋㅋ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화내는 타입인가?
-개민폐잖슴 ㅋㅋㅋㅋ
-아아, 그게 바로 악마니까(끄덕)
시청자들은 어처구니가 없었고 듀란테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그 안에 뇌가 들어 있지는 않을 것 같군.”
그는 조소를 흘리며 대검을 빼들었다.
“무엄하도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느냐!”
듀란테의 대답이 그 화를 돋운 모양이었다.
“나는 황금의 주인이요, 재물의 패왕! 그 이름도 찬란한 마이다스노니!”
황금인간, 마이다스가 소리를 높이며 손을 뻗었다.
“영역에 발을 들이는 자! 모두 나의 소유가 될지어다! 오라, 젬 미니언이여!”
그 외침과 함께 주변의 보화들이 우르르 떨리며 솟구쳤다. 그 아래에서 각종 보석에 몸이 잠식당한 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이다스면 그 마이다스의 손에 그건가?
-ㅇㅇ 모티브는 그쪽인 듯?
-엌ㅋㅋㅋ 어떻게 악마 이름이 잼 미니언?
-젬민이들 뭔데 ㅋㅋㅋ
-Gem minion으로 쓰면 나쁘지 않은데 ㅅㅂㅋㅋㅋㅋㅋ
-아 ㅋㅋ 젬민이들 참교육 각이쥬?
한국 한정으로는 그 이름의 의미가 약간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악마들이었다.
채팅창에 웃음이 퍼지는 사이 젬 미니언들이 빠르게 듀란테를 포위했다. 마이다스는 그 상황에 의기양양해져 목소리를 높였다.
“듀란테는 어디에 있느냐? 솔직히 말하면 보화 중에서도 가장 값진 것으로 너를 바꾸어 주마!”
“듀란테는 왜 찾는 거지?”
악마들의 포위에도 듀란테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당연히 복수다! 지옥의 악마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이노니!”
“허, 복수 대상이 누군지도 모르고 복수를 하나?”
“무어라?”
“사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널 보니까 실수한 것 같긴 하군. 사과하지.”
그 발언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연신 올라왔다. 듀란테가 사과를 하다니?
그러나 이내 듀란테는 마이다스를 향해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번에는 실수 없이 소멸시켜 주마.”
-엌ㅋㅋㅋㅋ
-맞네 ㅋㅋ 저런 놈을 살려둔 건 실수지
-듀란테 더티토크 수준 보소 ㅋ
-이제 퍼란테가 쓱삭하면 끝이쥬?
-근데 이렇게 빨리 보스랑 만나나?
시청자들은 바로 전투가 이어질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아직 컷신은 끝나지 않았다.
마이다스는 멍하니 듀란테를 바라보다가 광소를 터트렸다.
“듀란테? 지금 네놈이 듀란테라 말하는 것이더냐?”
이어지는 그 물음에 듀란테가 눈을 찌푸렸다.
“괜한 시간 낭비만 했도다. 분명 듀란테의 영혼이 느껴졌거늘……”
마이다스는 그리 말하고는 다시 액체처럼 뭉그러지며 사라졌다. 이에 듀란테가 뒤쫓으려 했지만 젬 미니언들이 그 길을 가로막았다.
“어? 이것도 떡밥 같은데요.”
이경복의 말에 시청자들이 즉시 동조했다.
-ㅇㅇ 이거 무적권 뭔가 있다.
-듀란테가 듀란테가 아니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않이;; 스토리가 도통 감이 안 잡히누
-어뜨케 되는 겨 어뜨케 되는 겨!
-마이다스 쉑 잡으면 좀 밝혀질 듯?
-혀엉! 젬민이들 얼른 잡아줘잉!
그것으로 컷신이 끝나며 통제권이 돌아왔다. 이경복은 대검을 잡고 젬 미니언들을 돌아봤다.
이윽고 주저 없이 움직이는 신형.
그의 돌격에 적중당한 젬 미니언은 쇳소리와 함께 바닥을 굴렀다.
-타격감 무엇?
-배팅센터 온 줄 ㅋㅋㅋ
-ㄹㅇㅋㅋ 깡소리 너무 찰졌쥬?
-이정도면 홈런 각 아니냐?
시청자들은 이에 흡족함을 표했지만 이경복은 달랐다.
“이것들, 방어력 몰빵 타입이네요.”
그의 말과 함께 피격당한 젬 미니언이 일어섰다. 놀랍게도 그 몸체를 구성하는 보석의 표면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
-잡몹 방어력 뭔데!
-피해가 전혀 없다고?
-이러면 권총도 안 통할 거 같은데?
-않이;;; 이거 뭐 어쩌라는 거
-혹시 싸우는 게 아니라 탈출해야 되는 건?
-일단 큐브로 상쇄부터 해보자구웃!
채팅창에 빠르게 올라오는 의견들. 그중에는 이경복이 하고자 했던 것도 있었다.
“도망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그는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젬 미니언들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그 동작이 검술이 아니라 마치 야구 배트를 때리는 듯했다.
연달아 들리는 쇳소리가 쩡쩡하게 울려 퍼졌다.
-와씨 ㅋㅋ 타격감은 개지리네
-이거 따로 미니게임으로 뽑아줬으면 좋겠다.
-ㄹㅇㅋㅋ 그냥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개좋을 듯
-이거로 연주하는 큐튜버 무적권 나온다 ㅋㅋㅋㅋ
시청자들이 그 모습에 경쾌해 하는 사이 이경복은 마지막으로 돌격해오는 젬 미니언을 붙잡았다.
그렇게 흡수한 능력을 키워드로 발현하니.
“이것도 패시브네요.”
건틀릿의 표면이 젬 미니언의 몸처럼 보석 결정이 뒤섞인 형태로 변했다.
-오? 방어력 상승인거?
-않이;;; 지금 방어력 올려서 뭐하냐구!
-대검은 안 변하는데?
-뭐지? 건틀릿으로만 뭘 막아야 되는 건가?
그러나 이전처럼 속성 부여는 아닌지 다른 장비는 변화가 없었다.
시청자들은 이게 뭔가 싶었지만 이경복은 바로 그 활용법을 떠올렸다.
“아, 이거네요.”
그는 대검을 거두었다.
채팅창에 물음표가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이내 그들도 이경복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가 복싱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젬 미니언 하나가 재차 그를 향해 덮쳐왔다. 그러나 이경복은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회피, 뻔히 보이는 빈틈을 향해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그 타격음은 이전과 달리 쩡쩡한 소리가 아니라 명백한 파열음이었다.
-캬! 이거지!
-이쪽도 타격감 좋은데?
-스트레스 해소 스테이지냐구!
-젬민이들 꿀밤 마렵자너~
-저 젬민이들 얘기 하는 거 맞지?
머리가 반파되며 박살난 보석 조각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러나 이경복은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 처리를 해야 된다는 건데……”
피해는 입었더라도 젬 미니언은 쓰러지지 않았다.
“처음 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하시고, 저는 좀 다르게 갈게요.”
이경복은 이러한 방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흡수하고 공격, 이걸 반복하는 거 약간 지루할 것 같거든요.”
-ㅔ?
-지루하다고요?
-아 ㅋㅋ 갓플의 눈으로는 지루하긴 할 듯
-ㄹㅇㅋㅋ 우리가 하면 붕쯔붕쯔하면서 스릴 느낄 텐데
-너무 잘나서 재미를 못 느끼는 스머가 이따!?
-근데 다른 방법이 없잖슴?
무기 사용 없이 격투로 근접전을 펼쳐야 했다. 일반 플레이어라면 스릴과 집중, 그리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이경복은 달랐다.
“이 파트는 빨리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이 즐겁지 않으면 시청자들도 즐겁지 않다. 그것은 이경복이 진행하는 방송의 대전제였다.
그는 큐브의 키워드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가 발현한 것은 젬 미니언의 능력이 아니었다.
-????
-채찍?
-젬민이들 보석이라 마비도 안 될 것 같은데?
-그냥 빠져나가려는 듯?
-여긴 가로등 같은 거도 없어서 로프 이동도 안 되자너
솟구치는 물음표에 이경복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내 그가 휘두른 채찍이 젬 미니언 하나를 붙들었다.
“같은 소재로 피해를 줄 수 있다면 큰 걸 써야죠.”
멘트와 함께 그가 허리를 크게 돌렸다. 그 힘에 이끌려 붙잡힌 젬 미니언이 크게 타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 궤적에 이경복을 노리고 덤벼드는 젬 미니언들이 있었다.
충돌과 함께 연달아 들려오는 파열음.
-무친ㅋㅋㅋㅋㅋ
-아 ㅋㅋ 뭐 하러 하나씩 패냐고
-젬민이로 젬민이 패기 무엇?
-아 ㅋㅋ EEJ는 킹정이지
-이게 바로 이젬제젬?
-77ㅓ억! 개 시원하쥬?
그 연중 추돌에 무기로 사용된 젬 미니언은 순식간에 분해가 되었다.
“아, 망가졌네……”
아쉽게도 하나로는 남은 전부를 처리할 수 없었다.
-킹가졌네 ㅋㅋㅋㅋㅋㅋ
-악마조차 도구로 삼는 그는 대체……!?
-악마(소모품)
-블랙기업 인성 바로 나오쥬?
-5252! 악마도 블랙기업에 걸리면 바로 갈려 버린다구?
그 상황에 기다렸다는 듯 몰아가는 시청자들. 하지만 이경복도 경험이 쌓인 바.
“괜찮습니다. 하나 더 쓰면 되죠.”
-이걸 이렇게 받는다고?
-히익! 악마! 우리 지옥에서 어서 나가!
-아닠ㅋㅋㅋ 악마인데 왜 지옥에서 내쫓냐곸ㅋㅋㅋ
-???: 인간의 바닥조차 없는 악의를……!
-이정도면 사탄이 노조 만들 듯 ㅋㅋ
-제발 악마 노동법을 준수해주세요 ㅠㅠㅠ
그는 오히려 그런 채팅을 즐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