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 황금만능, 주의 (3)
설명이 끝나고 본격적인 공략의 때가 왔다. 이경복은 느슨했던 감각을 바짝 조였다.
‘간단하네.’
의지에 따라 신기가 발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많은 분신들 사이로 본체로 향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었고, 덕분에 그중 하나를 선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덕이었다.
이경복은 그저 그 경로 중 하나를 택하면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이 속도 무엇?
-교수님 실습 모드 ON!
-아 ㅋㅋ 강의랑 개인연구는 완전 다르지
-킹반인 눈높이 맞춰주다가 바로 본실력 꺼내버리기 ㅋㅋㅋ
-마이다스 쉑들 쪽수만 많쥬?
이경복은 순식간에 분신들 사이를 주파했다. 물론 놈들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다.
바로 옆까지 다가온 그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돌아온 건 날카로운 쇳소리였다.
-나왔다! 퍼펙트류-흘리기!
-무친;; 저걸 달리면서 흘려버린다고?
-분신들 상대해봐야 시간낭비라니깐!
-갓직히 에이든보다 허접한데 되겠냐고 ㅋㅋㅋㅋ
-착한 퍼청자는 다른 게임 언급 검지검지~
수많은 분신들이 그 앞을 막았지만 단 한 걸음은 물론 그 속도도 전혀 줄일 수 없었다.
오히려 이경복은 더욱 탄력이 붙은 듯 총알처럼 포위를 돌파했다.
“어리석은 것!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이 나의 소유로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마이다스가 일제히 소리를 높였다. 이윽고 분신들의 몸이 허물어지며 엉겨 붙기 시작했다.
-뭐임?
-벽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은데?
-악마쉑 답게 치졸하게 나오쥬?
천장과 바닥이 이어지고 그 사이의 빈틈을 분신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분신의 숫자를 줄이더라도 본체를 보호하며 싸우겠다는 뜻.
그러나 이경복은 그 뻔히 보이는 수에 당할 정도의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짙어졌다.
“길이 바로 열렸네요.”
그 한마디와 함께 이경복은 채찍을 휘둘렀다. 그것은 수없이 움직이는 분신들 사이를 정확히 파고들며 본체의 허리를 휘감았다.
-헐?
-여기서 로프이동을?
-중간에 하나도 안 걸리는 거 무엇?
-무친 컨트롤 ㅎㄷㄷ
이경복은 채찍을 잡아당기며 몸을 던졌다. 아슬아슬하게 메워지는 황금의 벽을 통과한 그는 곧바로 본체를 붙잡았다.
“응?”
그러자 사라지는 통제권.
보스를 처단할 때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컷신으로 돌입했다.
“이거 처리하는 게 아닌가 보네요?”
-뭐여 ㅋㅋㅋ 잡기만 하면 끝인거였나
-처형씬 ON!
-보스전이 심심하게 끝나버리누
-님은 이렇게 심심하게 끝낼 수 있음?
-ㄹㅇㅋㅋ 방송 몰입은 좋은데 구분은 똑바로 해야지
-복창합니다! 하나에 ‘트수는’! 둘에 ‘퍼란테가 아니다’!
시청자들도 그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보스전 치고는 클리어 조건이 이전에 비해 너무 간단하지 않나.
[‘CAP 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원래 마이다스 보스전은 페이즈 2가 있습니다! 분명 그랬는데…… 시작 도중에 퍼플님께서 그냥 통과해 버리셨네요;;;]
그때 들어온 개발사의 해명.
이경복도 시청자들도 그 해명을 보고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게 뭔솔?
-페이즈 2가 있는데 스킵했다는 거?
-엌ㅋㅋㅋ 원래 황금벽 통과하는 게 아닌 듯?
-않이 ㅋㅋㅋ 여기서 또전드가 나온다고?
이내 시청자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경복도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저는 통과각이 보여서 그냥 넘어온 건데 이렇게 됐네요.”
-???: 페이즈 2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광고주 당황잼ㅋㅋㅋㅋㅋㅋㅋ
-마이다스 패싱 해명해!
-패싱 ㅇㅈㄹ ㅋㅋㅋㅋ
-근데 이러면 다시 해야 되는 거 아님?
-않이;; 맥 끊기게 뭘 또 다시 함?
-그래도 숙제방송이잖슴
기꺼워하는 채팅 사이로 몇몇 우려를 내비치는 시청자들이 있었다.
“굳이 다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컷신 나오는 걸 보니 어차피 페이즈 2를 진행해도 클리어 조건은 본체를 붙잡는 거잖아요.”
이경복은 그 의견을 놓치지 않았다.
“저는 오히려 놀랐습니다. 이렇게 페이즈를 스킵했는데 매끄럽게 컷신으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버그가 발생하지 않았죠? 이게 진짜 잘 만든 게임이라는 뜻이거든요.”
그 멘트에 채팅창에 바로 웃음꽃이 폈다.
-퍼포장 또 가동하나요 ㅋㅋㅋ
-이거 포장이 아주 습관이야 습관!
-가성비마저 퍼펙트한 스머가 이따!?
-근데 듣고 보면 맞는 말이라는 게 또 함정 ㅋㅋㅋㅋ
-과대 포장? 그것은 ‘완벽’하지 않아
-질소 하나 없는 퍼펙트-포장 무엇?
-과자업계 보고 있나?
-K-과자는 갓플 보고 배우라구웃!
이경복의 멘트 하나로 분위기가 바로 부드러워졌다. 개발사로서는 이때를 놓칠 수 없었다.
[‘CAP 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저희 CAP Company는 플레이어 여러분의 자유도를 보장해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 ㅋㅋ 이집 처신 잘하네
-ㄹㅇㅋㅋ 퍼플 코인 확실히 타버리기
-확실히 테스트 빌드인데 멈춘 적이 없긴 함 ㅋㅋ
이경복은 가볍게 손뼉을 쳐 주의를 환기시켰다.
“자, 그럼 마이다스의 페이즈 2는 여러분의 몫으로 맡기고 다시 컷신으로 가 보겠습니다!”
-엌ㅋㅋㅋ 킹러분의 갓으로 맡깁니다
-근데 이게 맞긴 함 ㅋㅋ
-맥 안 끊고 퍼펙트 이어가버리기~
-아 ㅋㅋ 궁금하면 사서 하라니깐!?
-아잇! 판매를 해야 사지!
개발사 후원으로 잠시 멈추었던 화면이 재생됐다.
듀란테는 본체의 황금을 건틀릿으로 벗겨내고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어서, 어서 저를 죽이십시오! 저 악마를 단죄해 주소서!”
그 흉흉한 상황에도 마이다스는 오히려 듀란테를 재촉했다.
“자, 잠깐! 잠깐!”
그때 황금 마이다스, 탐욕의 악마는 다급히 양손을 들었다. 싸울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 주려는 게 분명했다.
“협상, 협상을 하지!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내어줄 테니!”
“악마의 꾐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두 마이다스가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듀란테는 어느 한쪽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둘 다 닥쳐라.”
이어 그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에 두 마이다스가 움찔 몸을 떨었다.
-으음! 이 상남자 스멜!
-아 ㅋㅋ 악마고 뭐고 일단 입 다물라고
-마이다스쉑 ㅋㅋㅋ 꼼짝도 못하쥬?
듀란테는 짧게 혀를 찼다.
그는 본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악마 사냥꾼이다. 인간을 죽이지 않는 게 내 철칙이지.”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었다.
탐욕의 악마를 제거하려면 본체를 죽여야 했다. 이에 황금 마이다스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떠오르는 찰나.
“그렇다면 더욱 쉽습니다……!”
본체가 불쑥 소리를 높였다.
“저는,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잘못된 선택으로 모두를 타락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한 죄를 지었습니다. 이런 제가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정신 나간 소리로다!”
탐욕의 악마는 기겁하며 부정했다.
“저 덩어리의 말이 맞다.”
의외로 듀란테가 그 의견에 동조했다. 채팅창에 물음표가 솟구치는 사이 그의 말이 이어졌다.
“악마는 울지 않으니까.”
본체는 자신을 악마라 지칭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듀란테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널 데리고 지옥에서 나갈 거다. 그러면 너에게서 비롯된 저놈은 존재를 유지할 수 없겠지.”
시청자들은 바로 탄복했다.
-크으! 데몬 네버 크라이!
-오…… 이런 식으로 해법을?
-와 ㅋㅋ 배경 스토리 컷신에서 눈물 줌 인한 이유가 있었누
-개껌쉑들 좀 머리 썼누 ㅋㅋㅋ
-난 당연히 마이다스 죽일 줄 ㅋㅋㅋ
-이래서 컷신으로 진행하는 거였네 ㅋㅋㅋ
그렇게 상황은 해결될 것이라 모두가 예상했다. 하지만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마이다스가 침통한 목소리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 채팅창에 무수한 물음표가 솟아났다.
“이 황금 속에 갇혀, 저는 끊임없이 제 과오와 탐욕이 만들어 낸 결과를 봐왔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진심으로 저의 죄를 후회하고 용서를 바랐습니다.”
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저를 용서해 줄 이들은 모두 꼭두각시 악마가 되었습니다. 죄인이 스스로를 용서할 수는 없으며, 제가 지은 죄는 이곳을 나가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그들은 모두 제 탐욕에 몸을 맡긴 것이노니! 네 잘못이 아니로다!”
탐욕의 악마가 놀라 끼어들었다.
악마가 오히려 변호를 자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그러나 마이다스의 의지는 확고했다.
“나와 모두의 영혼을 구할 길은 오직 하나.”
어느새 상반신 모두 황금이 벗겨졌다. 마이다스는 손을 들어 듀란테의 권총을 잡았다.
이에 경악한 탐욕의 악마가 다급히 몸을 던지며 그 몸을 장악하려 했지만.
“소멸뿐이라.”
한 발의 총성과 함께 마이다스의 몸이 쓰러졌다. 동시에 탐욕의 악마는 순식간에 조각나 바닥에 쓰러져 박살이 났다.
이어 샛노란 황금들이 서서히 새까만 돌덩이로 변하기 시작했다.
“와.”
이경복은 작게 탄사를 흘렸다. 시청자들도 그와 비슷한 감상을 표출했다.
-무친 전개 ㅎㄷㄷ
-액션 게임인데 스토리 힘 준 거 무엇?
-개껌쉑들 진짜 이 악물고 개발했누 ㅋㅋㅋㅋ
-근데 다 맞말이긴 해
-ㄹㅇㅋㅋ 이게 진짜 참회지
-세탁기 돌리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 ㅋㅋㅋㅋ
예상을 뒤엎는 전개에도 거부감은 없었다. 그러나 아직 컷신은 끝나지 않았다.
듀란테는 담담히 가루처럼 변해 버린 마이다스의 몸을 내려 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그는 짧게 혀를 차고는 총을 홀스터에 채웠다.
“……데몬하트.”
이어 그는 가루에 묻혀 있던 데몬하트를 발견했다. 그것은 첫 번째와는 달리 황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것도 공명하는군.”
듀란테가 셀레스티얼 큐브, 건틀릿으로 붙잡자 변형이 시작됐다. 그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디서 많이 보던 디자인인데?
-모티브는 일단 마이다스의 손인 듯 ㅋㅋㅋ
-강철남에 나오는 리펄서 아님?
-엌ㅋㅋ 그거랑 비슷하네
매끄러운 장갑에 손바닥에는 거울 같은 작은 원이 부착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인기 있는 히어로의 장비를 떠올렸다.
듀란테는 슬쩍 변형된 장비를 둘러보더니 팔을 뻗었다.
이어 손바닥에 응축된 금빛 광선이 직선으로 날아갔다. 그 끝에 있던 돌멩이는 곧바로 황금으로 변했다.
하지만 이내 광선을 거두자 돌멩이는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새 바이크를 사려면 더 의뢰를 받아야겠군.”
듀란테는 짧게 혀를 차며 일어났다. 이어 서서히 암전되는 화면.
-일시적으로 황금으로 만드는 능력?
-않이! 왜 일시적인 거예요!
-뭐야! 내 황금 돌려줘요!
-이건 어디다 쓰라고 만든 거여 ㅋㅋㅋㅋ
그 장면에 시청자들이 바로 반응했다.
-혹시 퍼즐용 장비 아님? 빛을 이용한 퍼즐이라든지
-올ㅋ 킹능성 있쥬?
-아니면 다른 지옥에 못 가는 길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오 ㅋㅋㅋ 나도 이 생각함 ㅋㅋ –ㄹㅇㅋㅋ 용암이나 강 같은 거 황금으로 만들어서 건너면 되자너
-전투용으로도 쓸 수 있긴 하지
-마비독 안 통하는 놈들 광선으로 맞춰서 고정시킬 수 있을 듯 ㅋㅋㅋ
-근데 그러면 한 손을 못 쓰잖슴?
-그 정도는 페널티지 ㅋㅋㅋ
새로 얻은 장비의 사용처에 대한 추론이 채팅창에 가득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화면이 밝아지자 시청자들은 컷신에 집중했다.
“바로 돌아왔네요.”
이경복이 상황을 보고 말했다.
지옥문을 열고 림보로 돌아온 듀란테, 그 앞에 안드로가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숙였다.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이내 그의 시선은 듀란테가 착용한 변형된 장갑으로 향했다.
“마이다스의 손입니까. 역시 듀란테 님이라면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그 축하의 말에도 듀란테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오히려 더 경직된 얼굴로 안드로에게 다가갔다.
“알고 있었나?”
“무엇을……?”
“모르는 척 마라.”
듀란테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안드로를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탐욕의 군주가 악마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 그걸 알고서도 내게 의뢰를 했나?”
그 냉랭한 목소리에도 안드로는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그 질문을 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알고 있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지옥의 악마들은 모두 알고 있죠.”
차분한 목소리로 나온 대답.
그러나 듀란테는 분노할 수 없었다.
“지옥의 군주가 될 수 있는 건 악마가 아니라 인간뿐이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듀란테는 물론 시청자들도 놀랐다.
-헐?
-이건 또 뭔 소리여!
-무친 ㅋㅋㅋ 어제 안드로 대사에 복선이 있었네
-복선? 그런 게 있었다고?
-아! 맞네 ㅋㅋㅋㅋ
-그래서 그게 뭔데에에에!
-데붕이들 얼른 알려달라구웃!
채팅창이 번잡해지기 전에 안드로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말씀드렸지요. 군주가 될 수 없다는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인간과 악마의 그릇은 다르니까요.”
그 내용에 이경복과 시청자도 어제의 방송을 떠올렸다. 듀란테가 안드로의 목적을 다그쳤던 때 나온 말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평범한 인간이 아닙니다. 애당초, 지옥에 오는 인간이 평범할 리가 있겠습니까.”
듀란테는 얼굴을 굳혔다.
시청자들은 그 이유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건 듀란테도 했던 말 아님?
-ㅇㅇ 성녀눈나 마비시키고 했던 말이랑 비슷함
-이걸 이렇게 연결 해버리네 ㅋㅋㅋ
-근데 또 맞말이자너 ㅋㅋㅋ
-ㄹㅇㅋㅋ 지옥 입국 심사 까다로운 거 다 아는데
-입국 심사는 뭔데 ㅅㅂㅋㅋㅋ
-근데 트수는 프리패스 아니냐?
-아 ㅋㅋ 나태의 군주 하나 만들어 달라고 ㅋㅋ
-현실 대입 멈춰!
-ㅅㅂ 나태해서 만들어달라는 디테일 보소 ㅋㅋㅋㅋ
그 사이 듀란테는 안드로를 등졌다.
“그들이 과연 ‘인간’에 속할지는 듀란테 님의 판단에 따라 다르겠지요.”
뒤에서 들려온 말에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듀란테는 다음 영역인 ‘분노’의 지옥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렇다면 네 뒤에 있는 존재도 인간인가?”
안드로의 배후에 관한 질문.
시청자들은 바로 관심을 보였지만.
“쯧, 도망갔나.”
듀란테가 고개를 돌리니 안드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충분한 대답이군.”
그 행동도 답이라는 듯 듀란테는 지옥문을 밀어젖혔다. 이 어둠 속에 먹히는 것 같은 그 뒷모습을 따라간 화면은 이내 새까맣게 물들었다.
이어 그 위에서 툭 떨어지듯 걸린 네온사인이 지직거리며 빛을 발했다.
[Mission 4. ‘Demon Never Cry’ End]
끝을 알리는 문구에 채팅창이 시끌시끌해졌다.
-떡밥 풀면서 떡밥 던지기 ㅋㅋㅋㅋ
-이거 보면 안드로는 거짓말을 못하는 듯?
-오 ㅋㅋ 자리 떠난 거 보면 킹능성 높다
-헐? 그럼 흑막이 진짜 인간인거?
-성녀흑막설이 사실이라고?!
-아니야! 우리 눈나가 그럴 리 없어!
-성녀단 악재인가요?
-아 ㅋㅋ 이거 딱 봐도 개미털기쥬?
-개미 ㅇㅈㄹㅋㅋㅋ
-마이다스랑 계약한 악마도 뭔가 떡밥 이따
-오 ㅋㅋㅋ 일부러 탐욕군주 만들려고 꼬신 거 아님?
그리 난립하는 채팅을 보며 이경복은 다른 고민에 빠져 있었다.
‘오늘은 시간이 좀 많이 남았네.’
탐욕의 영역은 생각보다 플레이 타임이 짧았다. 일반인 기준으로는 꽤 시간이 걸릴 만한 구성이었지만 이경복에게는 달랐다.
쾌속 돌파는 물론 보스전에서는 페이즈 하나를 생략해 버리지 않았나.
‘좀 더 진행하는 편이 좋으려나?’
시청자들이 알았다면 환호할 만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에게는 독심술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이경복의 침묵을 평소와 같이 받아들였다.
-이 적막…… 썰릴 때가 온 것인가
-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방종각?!
-인간이 아니니까 그렇지 ㅋㅋ
-진짜 방종각도 탈인간급ㅋㅋㅋㅋ
-않이! 킹직히 오늘은 좀 더해줘야 되는 거 아님?
-ㄹㅇㅋㅋ 진심 오늘은 진짜 짧았다구웃!
-아직 퍼손실 더 보충해야 됨! 아무튼 해야됨!
-좀 만 더 해줘잉!
하지만 평소보다 이른 시점이라는 건 충성층들도 모두 느끼는 바였다.
이에 이경복도 결정을 내렸다.
‘그래, 더 하자. 대신……’
그의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
그냥 속행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방법이 떠오른 덕이었다.
“저도 시청자분들과 같은 마음입니다. 조금 아쉽거든요?”
그는 가볍게 운을 띄워 시청자들의 주의를 끌었다.
“솔직한 말로 원래는 하루에 한 미션씩 클리어하는 게 홍보효과가 더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더 나아가 버리면 광고주님이 손해 보시는 거나 다름없거든요.”
-Aㅏ……
-그건 맞긴 하지 ㅠ
-홍보 기간 늘어나면 개꿀이긴 할 듯 ㅋㅋㅋㅋ
-어쩔 수 없는 거냐구웃!
-떼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말이야
그 설명에 채팅창 분위기는 축 가라앉았다. 이경복이 바라는 대로였다.
“하지만 오늘, 오늘만큼은 예외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게이머의 마음을 알아주는 캡 컴퍼니라면 다르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냥 속행하는 것보다는 개발사도 띄워 주겠다는 의도.
이어지는 그의 멘트에 채팅창 분위기가 일변했다.
-아 ㅋㅋ 세계 탑 클라스 게임명가 캡 컴퍼니는 당연히 다르지
-ㄹㅇㅋㅋ 킹갓퍼니라고 괜히 부르는 게 아님
-무친ㅋㅋㅋ 트수들 태세전환보소 ㅋㅋ
-캡 컴퍼니 아십니까? 킹갓트루 월클 개발사입니다^^
-데머크 테스트 빌드만 봐도 알 수 있쥬? 문제없이 완벽하쥬?
-??? : 분명 개껌이라는 채팅이 많았는데?
-조용히 하세욧!(깡)
-그 뭐시냐…… 숙청! 숙청각이네!
-소비에트식 채팅 무엇? ㅋㅋㅋ
-채팅창이 붉게 보이는데 정상인가요?
-찬양하시오! 당신도!
-무친 ㅋㅋㅋ 지금 중계 채널도 난리 남ㅋㅋㅋㅋㅋ
채팅창을 메우는 개발사 찬양에 이경복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들 귀엽다니까.’
그냥 속행해도 상관없지만 개발사를 띄워 줄 필요도 있지 않겠나.
당사자인 개발사 역시 이 흐름에 올라타지 않을 수 없었다.
[‘CAP Company_kor’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저희 캡 컴퍼니는 언제나 게이머의 바람을 이루어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먼저 부탁드려야 할 일이었는데 역시 퍼플님이십니다ㅎㅎ 체험 방송은 계속 됩니다!]
“아, 역시! 여러분, 이렇게 광고주님이 너그러워요.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들어온 후원과 이경복의 멘트로 채팅창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WA! 2부 방송!
-속보) 퍼손실 보충 2배 이벤트 개최! 콩콩절 못지않은 열기 선보여
-아 ㅋㅋ 2배 이벤은 못 참지
-야식도 2배 찬스!
-그건 그냥 과식입니다만?
-핫하! 개껌은 이제 필요 없어!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갓플 뿐이었다!
-히히! 개껌은 나가! 우리는 갓플이랑 놀 거야!
-역시 타락전문 트수들 답누 ㅋㅋㅋㅋ
-그걸 믿었음? 트수킥!
그리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경복은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광고라도 재밌어야지.’
모두 그의 생각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