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 분노조절잘해 (2)
예약 구매 진행 일정 공표.
광고주가 나섰으니 이경복도 한 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말했듯 게임 자체가 정말 재미있으니까 예약 구매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예약 구매 하시면 특전도 따라오잖아요?”
-아 ㅋㅋ 예구하는데 특전은 필수지
-ㄹㅇㅋㅋ 무적권 구매각이긴 한데 특전 없으면 그냥 발매일에 사는 게 낫지
-이번엔 뭐 주려나?
-보통 피규어 같은 굿즈나 아트북은 기본 아님?
-전용 무기 스킨이나 복장도 많이 주던데
-DLC 나오려나? 그거 있음 시즌패스도 끼어줄 듯
특전이라는 말에 시청자들은 여타 게임의 사례를 떠올렸다. 하지만 방송의 시청자들 대부분이 퍼플의 팬이었던 바.
-퍼플 관련 굿즈는 안 줌?
-아 ㅋㅋ 퍼지컬 모드도 끼워달라고
-트수는 퍼지컬 줘도 센스 개같이 멸망이잖슴!
-엌ㅋㅋ 붕란테 확정이쥬?
-근데 킹직히 하나 만들어줄 만하지 않나?
-ㄹㅇㅋㅋ 세계최초 공개인데 대우 받을 만하지
-그냥 공개도 아니고 버그도 발견해줬자너 ㅋㅋㅋ
이어지는 채팅에서는 그와 관련된 특전 요청이 올라왔다.
이경복은 그 채팅에 흡족해하면서도 이내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보이스 팩은 아직 결정된 사안이 아니니까.’
괜히 나온다는 뉘앙스로 말했다가 기대만 부풀 터였다. 그리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법, 구태여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자, 충분히 쉰 것 같습니다. 다음 얘기를 안 들어 볼 수 없겠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아 ㅋㅋ 스토리는 못 참지
-데몬하트 출처 듀란테설 뭐냐구웃!
-퍼집중 ON!
시청자들은 금방 주의를 돌렸다. 이경복이 바로 컷신을 재개했다.
커졌던 듀란테의 눈이 매서워졌다.
“내가 데몬하트를 넘겼다고?”
그 표정에서는 불쾌함이, 그 눈빛에서는 불신이 느껴졌다. 애당초 아약스의 말이 진실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뭔가 좀 이상하군요. 당신, 정말 듀란테 님이 맞습니까?”
이번에는 아약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역시 듀란테와 비슷한 감정을 내비쳤다.
이와 함께 이경복의 신기도 변화를 감지했다.
‘적으로 돌아서고 있다.’
기분 좋은 오싹함이 섬뜩한 예기로 바뀌었다. 호의가 아닌 적의가 분명했다.
듀란테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오히려 잘됐네. 네 말대로라면 이야기가 쉽지.”
그는 무기를 거두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인간은 죽이지 않는다. 데몬하트가 내 것이었다면, 다시 넘겨라.”
그 요구에 아약스는 헛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보스전이네.’
이경복은 확신했다.
아약스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짐에 따라 그에게서 느껴지는 적의가 팽창했다.
-웃는데 뭔가 무섭누 ㅎㄷㄷ
-???: 야야, 쟤 조커 된다
-???: 듀란테, 당신은 제 말을 듣지 않는군요?
-듀레이냐고 ㅋㅋㅋ
-역시 순순히 내놓을 각이 아니쥬?
시청자들도 곧 그 상황을 눈치챘다. 아약스의 웃음에는 분노와 광기가 뒤섞여 있었다.
이윽고 뚝하고 웃음이 멎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약스가 눈을 치켜뜨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악다문 입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마치 짐승이 그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힘을 주겠다, 날 영웅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한 건 바로 당신이야.”
아약스가 등에 메고 있던 방패를 잡았다. 그와 함께 투기장으로 연결된 수로를 통해 악마의 피가 콸콸 쏟아졌다.
이윽고 쾅하는 소리와 함께 투기장의 문이 모두 닫혔다.
-분위기 보소;;;
-보스전 무대 바로 나오고 ㅋㅋ
-인간 맞지? 그치?
-딱 봐도 이미 타락 완료했음 ㅋㅋㅋ
뒤이어 쿵하는 둔중한 울림과 함께 바닥에 세워진 방패. 그것은 건장한 아약스의 몸을 전부 가릴 정도로 컸으며, 그 표면은 빛 하나 반사하지 않는 듯 검은색이었다.
“나는 영웅이다.”
아약스의 목소리와 함께 화면이 방패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줌인 했다.
이윽고 전환된 화면.
검은 방패였던 바탕에 별빛이 수놓아지고 그 아래로 황량한 대지 위에 막사가 세워져 있었다.
-뭐지?
-아약스가 왜 분노의 군주가 된 건지 알려주는 듯
-ㅇㅇ 마이다스처럼 배경 얘기인 듯
시청자들의 추측대로 화면에는 아약스의 모습이 나왔다. 그는 조금 전과는 달리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빌어먹을! 아약스 오늘도 너 때문에 내 모가지가 붙어 있다고!”
“이번 전쟁에서도 아약스와 붙어있으면 걱정 없지.”
“대체 뭘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강해지는 거야?
“오! 아약스, 뭐 필요한 거 없어!?”
지나가며 만난 병사들이 그를 환대했다. 타고난 무력 덕분에 그는 전쟁영웅처럼 추앙 받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처럼’에 불과했다.
“아킬레우스 님이시다…!”
“오오, 신이 내린 영웅이시여!”
“혼자서 수십 명을 해치우셨다지?”
“그런데도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오셨잖아.”
진짜 신의 축복을 받은 영웅은 따로 있었다. 아약스는 다른 병사들처럼 그를 향해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과 달리 아킬레우스를 향한 그의 눈빛에 담긴 것은 존경심이 아니었다.
-??? : 너 눈을 왜 그렇게 떠?
-아약스쉑 열폭해버리쥬?
-이거 완전 갓플 보는 저격러들 아니냐?
-엌ㅋㅋㅋ 아약스 뱁새였네
그리 전쟁이 지속되던 어느 날.
아약스는 항상 보던, 그를 환대해 주던 병사들이 막사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이에 그는 다른 병사들에게 물은 끝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킬레우스!”
눈이 뒤집힌 채 고함을 내지르며 막사로 쳐들어간 아약스.
경비병들이 놀라 그를 막으려 했지만 타고난 장사였던 그를 저지할 수는 없었다.
결국 병사들이 무기를 든 순간.
“되었다.”
아킬레우스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눈에 핏발이 선 아약스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어떻게 된 거요!? 당신은 영웅이잖습니까? 그들을 지킬 수 있었잖습니까!”
아킬레우스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깊이 호흡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약스, 승리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네. 나도 정말 유감이야.”
모두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아킬레우스의 결정을 이해했다.
단 한 사람, 아약스만을 제외하고.
“그러고도 당신이 영웅이란 말인가!”
아약스는 노성과 함께 아킬레우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장사라고 해도 신의 축복을 받은 그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만 떠나게. 이곳은 자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패배한 아약스는 전장에서 추방당했다. 끌려가는 그를 향해 다른 병사들이 모멸의 시선을 쏟았다.
“제기랄, 덩치만 커서 더럽게 무겁네.”
“이런 버러지 같은 놈.”
“아킬레우스 님의 자비에 감사해라.”
아무도 그의 곁에 남지 않았다. 황량한 대지에 남겨진 그는 절뚝거리며 일어섰다.
그러나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했다.
“내게도, 내게도 신의 축복이 있었다면……!”
털썩 무릎을 꿇은 아약스는 울분을 토했다.
악다문 입은 찢어져 피가 새어 나왔고 핏발 선 눈은 결국 혈관이 터진 듯 붉게 물들었다.
“신이여! 나의, 아약스의 분노를 노래하소서!”
하늘이 어두워졌다.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지며 시야가 사라졌다. 아약스는 어둠 속에 홀로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멈추어 정적이 내려앉은 그때, 아약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다, 당신은……”
그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하지만 화면 밖이라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구지?
-악마 아님?
-마이다스랑 계약한 악마일 듯 ㅋㅋㅋ
채팅창에 추측이 올라오길 잠시.
화면은 다시 뒤바뀌었다.
“어, 어떻게 아킬레우스 님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끝이다…… 이제 전부 끝이야!”
경악한 병사들의 표정이 클로즈 업 됐다. 영웅 아킬레우스 사망에 사기는 급격히 떨어졌고 병사들은 패퇴하기 시작했다.
적군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패잔병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망치는 병사들 사이 전장으로 향하는 인물이 있었다.
“뭐……”
병사를 베어낸 적군은 갑자기 드리워진 그림자에 고개를 돌렸다. 그 위로 거대한 방패가 떨어졌다.
“도망치지 마라.”
그르렁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방패 뒤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약스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웃고 있었다.
“영웅, 아약스가 돌아왔으니.”
그와 함께 전장의 격변이 일어났다. 사방에 널린 시체에서 희뿌연 연기 같은 것이 솟아나더니 그의 방패로 모여들었다.
“이, 이게 무슨?!”
“으아아아아아!”
다른 이유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방패를 통과한 연기는 이내 분노의 망령이 되었고 순식간에 주변으로 확산됐다.
망령들은 도망치던 아군의 몸으로 파고들어 몸을 잠식했다. 그들은 이내 방향을 바꾸어 적진을 향해 돌격을 시작했다.
-헐;;;
-광전사로 만들어 버렸누
-ㅁㅊㄷㅁㅊㅇ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 그리고 넘쳐흐르는 귀기(鬼氣)에 전세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그러나 아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망령에 홀린 광전사들은 어떤 상처에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이대로는 모두 죽고 말 겁니다!”
“신이시여……”
아직 정신이 멀쩡한 아군들 중 누군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여타 병사들과는 다른 듯 덮쳐오는 망령들을 피하며 아약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허억!”
망령들에 집중하고 있던 아약스는 뒤에서 날아오는 칼날을 막지 못했다.
그는 돌아서서 칼날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오디세우스? 대체, 왜?”
오디세우스는 대답 대신 검을 비틀었다. 상처를 더욱 깊게 파고들자 아약스가 쓰러졌다.
“나는, 영웅이……”
“닥쳐라, 이 악마야.”
오디세우스가 그를 향해 말했다.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다니……! 너는 지옥에서 영원히 썩을 것이다.”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화면이 어두워졌다.
-아킬레우스랑 오디세우스?
-이거 트로이 전쟁 모티브로 각색한 듯?
-오! 아약스가 아이아스네!
-이거 완전 미친 놈이었누 ㅎㄷㄷ
검게 물든 화면은 멀어지면서 방패로, 그리고 다시 투기장으로 돌아왔다.
수로를 따라 흐르는 피가 그를 향해 모여들고 검은 망령들이 그와 함께 뒤섞여 갑주의 형태를 이루었다.
“영웅은 전쟁을 통해 태어난다.”
솟아난 뿔과 가시들, 그 형상이 마치 악마와도 같았다. 아약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듀란테를 내려 보았다.
“끝없는 전쟁, 이곳이야말로 영원한 영웅의 요람이오. 내가 바로 그 영웅이라.”
그는 방패를 앞세우며 그르렁거렸다.
“데몬하트는, 절대로 넘겨줄 수 없다.”
듀란테는 변해 버린 그를 보더니 실소를 흘렸다.
“베아트리체 말이 옳았군. 악마 같은 인간이라더니.”
이내 정색한 그는 대검을 쥐며 얼굴을 굳혔다.
“철칙을 좀 수정해야겠어.”
-5252, 성녀 눈나 말도 복선이었던 거냐구!
-아니 ㅋㅋㅋ 뭐 흘려 넘길 게 하나도 없누
-???: 나는 악마(+같은 인간)만 죽인다.
-ㄹㅇㅋㅋ 아약스쉑 영웅이 아니라 그냥 전쟁광이자너
-마이다스랑 대비 무엇?
-트루 참회자 빛이다스 ㅠ
컷신이 끝나자 시청자들이 곧바로 반응했다.
통제권을 되찾은 이경복은 빠르게 움직였다.
“일단 어떤 기믹인지 붙어볼게요.”
그는 순식간에 아약스와 거리를 좁히며 대검을 휘둘렀다. 탐색을 위한 것이기에 그리 날카롭지는 않았다.
아약스는 그 거대한 방패로 검격을 막아냈다.
그러자 쩡하는 쇳소리와 더불어 방패에서 스산한 비명이 울렸다.
-비명 뭔데;;
-컷신서 보여준 그거네
-칼날 잡기 뭔데 ㅅㅂ
-망령들 튀어 나옴!
-상태이상 거는 듯?
방패 표면에서 망령들의 손이 뻗어 나와 칼날에 뒤엉켰다. 이어 다른 부분에서는 망령들이 새어 나와 이경복에게 쇄도했다.
“이런 식이네요.”
물론 이경복에게는 별 소용이 없는 반격이었다.
그는 미끄러지듯 칼날을 빼내며 날아오는 망령들을 광선으로 황금으로 만들었다. 이어 회수한 대검이 황금이 된 망령을 박살냈다.
대응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컷신을 참고해 보면……’
빈틈을 노린 이경복의 검이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이에 아약스가 방패를 옮긴 순간 검로가 틀어졌다.
긴 자상과 함께 검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엌ㅋㅋ 훼이크였쥬? 속았쥬?
-유일검 수듄 ㅋㅋㅋㅋ
-않이 ㅋㅋㅋ 대검인데 속도 뭔데!
-망령 원툴인 아약스쉑이랑은 비교도 안 되지 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은 감탄과 함께 만족을 표했다. 하지만 이경복은 조금 다른 의미로 미소를 지었다.
‘위협이 강해졌어?’
상처를 입힌 순간 신기가 감지하던 위협 수준이 증폭됐다. 그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아약스가 반격해 왔다.
물론 이경복은 그런 공격을 허용할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속도와 기세에 시청자들도 변화를 눈치챘다.
-?????
-렉인가?
-ㄴㄴ 갑자기 빨라짐
-망령들 숫자도 늘어났는데?
이어지는 공방.
이경복의 공격이 일방적으로 성공했지만 시청자들은 안심할 수 없었다.
-피해 입으면 강해지는 거 같은데?
-아약스쉑 광전사 특성 찍었네
-망령 불어난 거 뭐냐구!
-근데 갓플은 싸우면서 다 피함ㅋㅋㅋ
아약스의 능력 자체도 향상되는 건 물론 이경복을 노리는 망령들도 배가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재생까지 달아주는 거 무엇?
-선 넘는 게 아주 습관이야 습관!
-않이;; 재생은 그렇다 쳐도 회복되면 다시 원상복귀 해야지 ㅅㅂ
-왜 버프가 유지 되냐구웃!
투기장에 흐르는 악마의 피가 아약스의 상처를 재생시켰다. 그런데 상처가 아물어도 아약스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시청자들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러면 어떻게 깨라는 거?
-한 방에 죽이라는 뜻인가?
-아 ㅋㅋ 갓플은 할 수 있어도 데붕이는 못한다고!
-야! 예구 뽕 다 죽는다!
-ㄹㅇㅋㅋ 지금 예구 생각 싹 사라짐
채팅창 분위기가 급격히 냉각됐다. 개발사와 이경복, 그리고 시청자들 스스로도 바라지 않을 상황이었다.
“나름 흥미로운 기믹인데요.”
이경복은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물음표가 올라오는 채팅창에 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버프가 어느 정도까지 될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ㅔ?
-않이;; 지금도 테스트 생각을 한다고?
-바보! 광고주만 아는 바보!
-5252, 자본주의 파동으로 대응하는 거냐구웃!
그 물음에 변하기 시작한 분위기. 이경복은 대답 대신 행동으로 그 흐름을 이어나갔다.
강화된 아약스를 압도하는 속도로 검격이 쏟아졌다.
-와씨 ㅋㅋㅋㅋ 멀쩡한 곳만 골라서 베어내는 거 보소
-무친 ㅋㅋㅋ최대한 상처 회복 동시에 진행시키려고 ㅋㅋ
-아약스 쉑 바로 모르모트 행ㅋㅋㅋ
-이미 떠난 가붕이가 생각나는 건 왤까
-??? : 뭐? 후임이 들어왔다고!?
-갓플에게 재생 = 실험체
순식간에 늘어나는 상처에 시청자들은 환호를 쏟아냈다.
* * *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이경복은 아약스가 강화 한계에 도달했음을 직감했다.
‘이제 더 안 세지네.’
신기에 잡히는 위협 수준이 더 이상 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경복은 속으로 아쉬움을 내비쳤다.
‘역시 최종보스급은 아니라는 건가.’
시청자들의 텐션을 올리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강적과 붙고 싶은 호승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약스에게서 느껴지는 위협은 엘든 소울의 에이든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시청자들은 충격에 빠져 있었다.
-이렇게까지 버프빨이 선다고?
-않이;;; 뭐가 이렇게 빠른데!
-원래 힘캐는 느린 거 아니었음?
-이걸 진짜 어케 깨누 ㅎㄷㄷ
-아 ㅋㅋ 데붕이들은 이렇게 강화 못 시키는데 왜 걱정함?
-ㄹㅇㅋㅋ 그전에 끔살각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진 아약스의 모습, 그러나 그것보다 더 채팅창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혀엉? 뭐가 보이긴 하는 거야?!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거냐구!
-아예 망령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누 ㅋㅋㅋㅋ
-이 정도면 그냥 현대예술 수준임 ㅋㅋ
어느 시점부터 이경복은 망령 처리를 귀찮아했다. 하나둘씩 붙기 시작한 망령은 어느새 그의 눈을 제외한 전신을 뒤덮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망령으로 이루어진 갑옷을 걸친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경복은 상태이상 효과가 전혀 없다는 듯 완벽한 대응을 선보이고 있지 않나.
-이거 진짜 상태이상 맞음? 그냥 이펙트 아님?
-아 ㅋㅋ 알았다! 사실 망령이 갓플 편이었던 거임!
-이게 맏따 ㅋㅋㅋㅋ 바로 갈아탔네
-쥐놈식 대응 무엇?
-쥐놈은 갑자기 왜 때리냐고 ㅋㅋㅋ
-자, 이제 누가 망령의 주인이지?
-아약스쉑 망령 뺏겨서 더 빡친 거 아님?
-분노의 군주가 아니라 화병의 군주가 될 덧
-화병 ㅇㅈㄹㅋㅋㅋㅋ
격전 속에서도 이경복은 채팅창을 확인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텐션도 적절한 것 같네.’
그는 속으로 미소 지으며 날아드는 방패를 튕겨냈다.
“이게 풀 파워 같습니다. 이제 클리어할게요.”
그와 함께 나온 선언.
채팅창의 분위기가 다시금 뒤바뀌었다.
-바로 공략한다고?
-엌ㅋㅋㅋ 이미 공략법 파악 끝?
-아 ㅋㅋ 진짜로 농락 중이었던 거였고
-교수님 논문 제출 하신답니다!
-깰 방법이 있긴 했어?
-퍼펙트류 공략 간닷!
그의 행동이 곧 설명인 바, 이경복은 즉시 공략에 나섰다.
커다란 대검이 살아 있는 것처럼 방패를 빗겨나가 아약스의 몸을 갈랐다.
마치 한순간에 생겨난 것처럼 벌어지는 상처, 그와 더불어 재생을 위해 밀려드는 대량의 피.
이경복이 노린 것은 그때였다.
-Aㅏ!
-오 ㅋㅋ 이거네
-골든 블러드!
-수혈이 바로 수금이 되어버렸쥬?
-역시 수금박사 ㅎㄷㄷ
마이다스의 손에서 뻗어 나온 광선이 혈액을 황금으로 변형시켰다.
아약스는 급히 물러나 황금과 거리를 두었다. 그와 함께 재생 역시 중단됐다.
-마! 함 무바라! 쥑인다! (진짜죽음)
-아 ㅋㅋ 금수저 각을 이렇게 피하네
-어디 헌혈도 안 해본 놈이 수혈을 받으려고!
-ㄹㅇㅋㅋ 헌혈증이 있어야 비용할인이 되는데
-수혈 우선권 주는 거 아니었음?
-ㄴㄴ 그거 가짜뉴스임
-퍼청자 채팅 유익한 거 무엇?
이경복은 주춤거리는 아약스에게 쇄도했다. 놈은 최후의 저항처럼 방패를 휘둘렀지만 쇳소리와 함께 대번에 튕겨 나가버렸다.
훤히 드러난 몸통, 이경복은 그 심장 부분으로 대검을 밀어 넣었다.
“커허억……”
짧은 신음과 함께 망령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클리어네요.”
사라지는 통제권과 함께 이경복이 상황을 전달했다.
-분노의 군주도 갓플 앞에서는 분노조절 잘해가 되어버리쥬?
-아약스쉑 버프 빼니까 물몸이었자너 ㅋㅋㅋ
-진짜 ㅋㅋ 뱁새 특성 다 가졌네
-하남자특) 열등감+노실력+템빨
-역시 하남자는 최상남자를 이길 수 없다 이말이야
-앞으로 너는 아약스가 아니라 하약스여!
-하약스 ㅅㅂ ㅋㅋㅋㅋ
깔끔한 마무리에 쏟아지는 찬사.
이경복은 웃으며 컷신에 집중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아약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가, 내가 영웅이 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듀란테를 바라보는 그의 동공과 턱이 덜덜 떨렸다. 상처에서 새어 나오는 피가 투기장의 수로로 스며들었다.
“이 지옥은, 악을 단죄하는 곳이라고… 분명 나는 단죄하는 쪽이었을 텐데……”
듀란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약스의 몸이 마이다스와 마찬가지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 가루 사이로 검은 데몬하트가 보였다.
듀란테는 묵묵히 건틀릿으로 데몬하트를 잡았다.
“……내가 이걸 넘겼다고?”
마이다스의 것과 같이 이번에도 공명하는 셀레스티얼 큐브를 보며 듀란테가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이 없는 사이에 대체 뭔 일이 있던겨 ㅋㅋㅋ
-그게 가장 중요한 떡밥일 듯?
-ㄹㅇㅋㅋ 아마 최종보스전에서나 나올 듯
-갓플이 다 알려줄 거임!
이내 공명을 마친 큐브는 듀란테의 상반신을 가릴 정도의 커다란 방패가 되었다.
-마이다스의 손에 이어 아약스의 방패인가!
-근데 저 방패는 능력이 뭐임?
-몰?루
-HOXY 그냥 방패는 아니겠지?
-마이다스의 손은 그래도 좀 유명한데 감이 안 잡히네 ㅋㅋㅋ
-아 ㅋㅋ 당연히 알려주겠지.
그 예상처럼 바로 활용법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아약스와 마찬가지로 가루가 되어가던 검은 방패에서 망령 하나가 튀어나왔다.
듀란테가 반사적으로 방패를 세우자 그 앞에 반투명한 보호막이 형성되며 망령을 소멸시켰다.
-오? 쓸만한 듯?
-에너지 쉴드 같은 느낌?
-하이테크 악마 뭔데!
-공격용으로는 못 쓰려나?
채팅창 반응은 양호했지만 이경복은 달랐다.
“음, 생김새대로네요. 공격도 되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방어용 아이템은 사실 쓸 일이 없어서……”
그가 약간 아쉽다는 투로 방패를 평하자 채팅창에 웃음이 차올랐다.
-않이 ㅋㅋㅋ 님만 방어가 필요 없다구욧!
-킹반인에게는 생존템입니다만?
-아 ㅋㅋ 망령 빙의 당해도 다 막는데 왜 필요하냐고
-퍼손실 보충도 2배! 퍼기만도 2배!
-ㄹㅇㅋㅋ 오늘 2배 이벤트 완전 개혜자자너
다시 흥겨워진 채팅에 이경복도 만족감이 차올랐다.
그러나 컷신 속 듀란테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지옥이 악을 단죄한다는 건 무슨 말이지?”
아약스가 죽기 전 했던 말을 곱씹은 그는 이내 혀를 찼다. 하지만 답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돌아서자 화면이 서서히 암전됐다.
-굳이 다시 언급했다? 이것도 떡밥?
-킹능성 ㅋㅋㅋㅋ
-여기까지 오니 다 떡밥 같아 보이누
-어디서 복선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이 말이야
-???: 1%의 복선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복선탈출 넘버원이냐고 ㅋㅋ
주의는 금방 돌아왔다.
화면은 다시 3개의 지옥문, 림보로 바뀌었다.
“돌아오셨습니까.”
이전처럼 안드로가 그를 맞이했다.
“아약스의 방패, 이번에도 성공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축하에도 듀란테는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경직된 표정으로 안드로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못하게 할 기세였다. 그러나 그는 곧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서두르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뭐라고?”
“묻고 싶은 게 많으신 건 압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한 것 같군요.”
안드로는 굳은 표정으로 마지막 문을 돌아봤다.
“듀란테 님이 데몬하트를 2개나 회수하실 정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만……”
그 시선은 다시 듀란테 쪽으로 돌아왔다.
“베아트리체 님께서 돌아오시지 않는군요.”
“……베아트리체?”
듀란테의 눈이 크게 뜨였다.
예상 밖의 이름이 언급되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어 순식간에 눈으로 빨려드는 카메라와 어둠 속에서 발하는 네온사인.
[Mission 5. ‘Who Am I?’ End]
미션 종료를 알리는 문구였다.
“아, 베아트리체가 나왔다 왜 갑자기 없어졌나 싶었는데……”
이경복의 작은 탄사와 함께 채팅창이 격렬하게 올라왔다.
-눈나가 기만의 영역으로 갔다고?
-역시 흑막이 아니었던 거임!
-듀란테 걱정돼서 따라온 게 맞다니깐!
-직접 군주 하나 호로록하러 간 게 분명함ㅋㅋㅋㅋ
-아 ㅋㅋ 지옥면치기는 못 참지
-뭔 면치기야 ㅅㅂㅋㅋㅋ
-성녀 코인 안 탄 흑우 없제?
-역시 개미털기였다 이 말이야
정황상 베아트리체는 흑막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시청자들은 안도를 표했다.
-끊는 시점 뭔데!
-그래서 눈나는 무사한 거지?!
-않이;;; 그럼 지금 위험한 거 아님?
-아 ㅋㅋ 설마 히로인을 죽이기야 하겠어
-괜히 또 클리셰 비튼다고 그러지 마라 진짜 ㅋㅋㅋㅋ
-배드 엔딩은 클리셰 비틀기가 아닙니다!
-개껌 보고 있나?
-혹시 그렇게 했으면 얼른 고쳐! 당장 고쳐!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컷신의 마지막이 대놓고 불안함을 조장한 덕분이었다.
이에 시청자들은 당장에라도 다음을 보고 싶었지만, 플레이 속행 요구는 없었다.
-아…… 이걸 또 내일까지 기다려야되누 ㅠㅠ
-무친 ㅋㅋㅋ 시간 왜케 빠름?
-지구쉑 빨리 돌라고 할 때는 안 돌더니!
-갓직히 지구도 갓플 방송 볼 수 있게 달에다가 대형 홀로그램 설치해야 됨
-NASA : 킹정합니다.
-나사가 뭔 킹정이야 ㅅㅂㅋㅋ
-NASA : Kingdmit
-무친ㅋㅋㅋㅋ영어로 바꾼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방종각 잡히니까 트수들 바로 퍼단증상 보이쥬?
시청자들 모두 원래 끝났을 방송을 연장했다고 받아들인 덕이었다.
-그래도 갓플이 2부까지 했줬자너
-ㄹㅇㅋㅋ 갓플이 개껌 설득한 건 신의 한수였음
-그저 빛! 그저 갓! 그저 퍼펙트!
-방송 끝나고 잠시 동안만 한국어 까먹었음 좋겠다 ㅋㅋㅋ
-엌ㅋㅋㅋ 더빙판으로 다시 보려고?
-너 천재냐?
-아씨 ㅋㅋ 영어 공부하는 셈치고 멤버십 질러버려?
-갓플 목소리면 의외로 효과가 있을지도?
더욱이 시간도 평소보다 더 늦어진 터라 채팅창은 재촉보다 감사가 더 많았다.
이경복은 그 시청자들 반응에 웃음 지으며 가볍게 손뼉을 쳤다.
“자, 매일 매일 게임이 흥미진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2배 이벤트를 진행해 봤는데요. 충분히 즐거우셨기를 바랍니다.”
-아 ㅋㅋㅋ 꿀잼꿀잼!
-재미없던 적이 없어서 비교가 안 되는데요?
-ㄹㅇㅋㅋ 비교군이 부족하다 이말이야
-아아, 그것이 바로 ‘완벽’이니까(끄덕)
-그립읍니다ㅠㅠ
-혀엉! 덕분에 오늘도 즐거웠어!
-(퍼바콘)(퍼도장콘)
-덕분에 매일 밤이 퍼펙트-나잇이고 ㅋㅋㅋ
시청자들 역시 아쉬움보다는 즐겁게 받아들이는 방종.
이경복은 흡족한 마음으로 손을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저는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다들 퍼펙트 슬립 하세요!”
팟하며 바뀐 검은 화면.
-엌ㅋㅋㅋ 퍼펙트-슬립!
-꿀잠자야 내일도 꿀잼이라 이말이야
-근데 갓플 방송 보면 기운이 좀 넘쳐서 ㅋㅋㅋ
-ㄹㅇㅋㅋ 조금 더 늦게 자게 됨
-오 ㅋㅋ 이상하게 덜 자도 안 피곤하자너
방송이 끝났지만 모두가 즐거웠다.
-자~ 다들 내일 봅시다잉!
-트바!
다시 이 기쁜 시간이 찾아오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