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159화 (159/491)

159화 - 기만에도 급이 있지 (3)

알리를 만난 통로를 지나자 거대한 공동이 나왔다. 이경복은 슬쩍 주변을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새끼 거미들이 나오더니, 진짜 거미굴이네요.”

평범한 공동이 아니었다.

바닥은 물론 벽면 곳곳에 거미줄로 만들어진 고치가 붙어 있었다.

-이거 무적권 보스전에서 짜바리들 나온다 ㅋㅋ

-ㄹㅇㅋㅋ 고치에서 튀어나오는 거 안 봐도 큐튜브자너

-기만의 군주라서 자체 전투력은 약할 듯?

-킹리적 갓심 바로 나오쥬?

이 고치들이 단순히 배경은 아닐 터였다. 시청자들도 대부분 같은 감상을 표했다.

이경복은 공동으로 발을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통제권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여기는……”

듀란테가 주변을 슬쩍 훑고는 얼굴을 굳혔다. 이내 그는 깨져있는 고치의 안을 살폈다.

-헐?

-어씨;;;

-듀란테가 왜 여깄누?

-이건 또 뭐임 ㅎㄷㄷ

-이것도 구라성녀처럼 구라듀란테인 듯?

-않이;;; 그래도 옷은 입혀줘야지!

-숭하다 숭해

그 안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듀란테가 쓰러져 있었다. 그러나 가짜 베아트리체와 달리 아무런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이게 전부?”

듀란테는 굳은 표정으로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고치를 대검으로 갈라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도 가짜 듀란테가 들어 있었다.

“뭔가 기분이 더러운데.”

듀란테는 자신의 모습을 똑 닮은 가짜들을 보며 혀를 찼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가짜들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눈꺼풀을 뒤집어 봐도 눈동자는 공허했고, 어떤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또 그 느낌이다.’

그 사이 이경복의 신기가 위협을 감지해 냈다. 그 숫자로 미루어 보아 새끼 거미들이 분명했다.

그 예상대로 벽면에서 새끼 거미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씨! 또 나왔네

-숫자 너무 많은 거 아니냐구웃!

-거미공포증 생길 것 같네 ㅅㅂ

-큰 놈들 보다 오히려 이런 군집체가 더 징그러움

-화염병 마렵네 진짜ㅋㅋㅋㅋ

-또 츠쿠요미 쓰나?

새끼 거미들은 이내 거미줄을 쏘아 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번에는 녹색 거미줄이 아니었다.

으레 알고 있는 하얀 색 거미줄이 공중에서 뒤엉켜 얽히기 시작했다.

“아아, 듀란테 님……!”

이어 위쪽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란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은 공중에서 만들어진 거미줄 발판을 딛고 내려와 모습을 드러냈다.

창백한 피부와 상반되는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 거미줄로 직조한 새하얀 로브를 입은 여성이었다.

-기만의 군주가 여캐였음?

-의외로 착한 편일수도?

-나 거미 좋아했네.

-않이 ㅋㅋㅋ 바로 넘어가는 거 뭔데!

-빛보다 빠른 타락속도 무엇?

-쟤는 성녀눈나 납치범이라구웃!

순간 혹한 시청자들과 달리 듀란테는 바로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연이은 총성과 함께 날아간 탄환. 그러나 그것은 기만의 군주에게 닿지 못했다.

어느새 그 앞에 펼쳐진 거미줄의 장막이 총알을 붙잡고 있었다.

“여전히 장난이 심하시다니까.”

기만의 군주는 여유롭게 웃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반면 듀란테는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네가 기만의 군주인가?”

“으흠, 처음 만났다는 설정인가요? 아무리 듀란테 님이라도 그런 장난은 좋아하지 않아요.”

“장난 같은 건 하지 않는데.”

“알았어요. 이번만 어울려 드릴게요.”

그녀는 슬쩍 걸음을 멈추고 다소곳한 태도로 인사를 했다.

“반가워요. 기만의 군주, 아라크네에요.”

익숙한 이름에 시청자들이 바로 반응했다.

-아라크네면 그 아라크네인가?

-마이다스랑 아약스 사례 보면 신화 모티브겠지

-어쩐지 거미가 넘치더라니 ㅋㅋ

-아라크네 눈나ㅏㅏㅏ

-무친ㅋㅋㅋ 아무나 누나냐고!

-거미단 쳐내!

듀란테는 그녀의 인사에 혀를 찼다.

“마이다스는 내가 복수의 대상이었고, 아약스는 힘을 줬다고 했지. 그럼 너에게는 나는 뭘 했나?”

비꼬는 투로 던진 물음.

그러나 아라크네의 반응이 이상했다.

“정말…… 그걸 제 입으로 직접 말하라는 건가요?”

수줍은 듯 피한 눈길과 입가에 어린 미소. 듀란테는 물론 시청자들도 황당해했다.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기만의 군주라 미인계 쓰는 거 아님?

-엌ㅋㅋㅋ 킹능성 있누

-ㄹㅇㅋㅋ 이미 걸린 트수들 보이자너

-5252, 최상남자에게 그런 술수는 통하지 않는다구웃!

-아 ㅋㅋ 성녀눈나로 이미 면역이라고

채팅창은 아라크네가 듀란테를 방심시키기 위해 연기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경복의 생각은 달랐다.

‘이건 진짜 애정이 있는 것 같은데.’

신기에 잡히는 아라크네의 느낌은 다른 새끼거미들과는 180도 반대였다.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었다. 아약스 역시 스토리 진행에 따라 태도가 변하지 않았던가.

“하긴 생각해 보니 오랫동안 이렇게 부르지 못했네요.”

아라크네는 이내 미소 짓다가 힐끔힐끔 듀란테를 훔쳐보더니 말했다.

“어서 와요, 달링”

고작 두 음절의 단어였지만 파급력은 대단했다.

-?

-지금 뭐라고?

-달링? 다아아알리이이잉?

-5252, 설마 양다리였던 거냐구웃!

-감히 우리 성녀눈나 포지션을 넘봐?

-이런 히로인은 인정할 수 없어!

-ㄹㅇㅋㅋ 히로인 스택도 없이 갑툭튀? 이건 안 되지!

-데붕이들 무슨 장인어른 모드냐고 ㅋㅋㅋㅋ

-그 누구보다 히로인 선택에는 엄근진한 트수들 ㅋㅋㅋ

시청자들은 득달같이 반발했다. 하지만 그 반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달링이라고?”

“그럼요, 달링. 그동안 오지 않아서 제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셨나요?”

아라크네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그녀는 자랑스럽게 양팔을 펼쳤다.

“제가 얼마나 달링을 그리워했는지 보셨잖아요? 만들다 보니 좀 많이 만들긴 했지만요.”

그 말에 듀란테의 시선이 가짜 듀란테에서 다른 고치들로 옮겨졌다. 족히 수백 개는 넘어 보이는 고치들이 공동을 뒤덮고 있었다.

-않이;;; 많아도 너무 많잖슴!

-알고 보니 피규어 수집가였쥬?

-1:1 등신대 피규어는 못 참지!

-뭔 피규어 ㅇㅈㄹ ㅋㅋ

아라크네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간도 달링을 잊지 않았어요. 머리카락 한 올부터 발끝까지 전부 되새기는 게 제 낙이었죠.”

미소는 일그러져 더욱 기괴해졌다.

“하지만 이 껍데기들은 진짜 달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어요. 망가진 죄인들로는 달링의 사랑을 흉내조차 내지 못하니까요.”

그 말에 채팅창 분위기는 일변했다.

-뭔가 싸하다 싶었는데 ㅋㅋㅋㅋ

-무친;;; 얀데레였누

-얀라크네 ㅎㄷㄷ

-역시 제정신이 아닐 줄 알았다 ㅋㅋㅋ

-이게 안 좋은 거라고? 관심을 주는데? 무시보다는 낫잖아!

-관심을 받아봤어야 뭐가 심한지를 알지……

-아 ㅋㅋ 또 나만 진심이었지

-채팅창이 사실 기만의 영역이다 이말이야

-트수 찐텐 나오는 거 개웃기네 ㅋㅋㅋ

아라크네가 본색을 드러내니 오히려 상황은 정리됐다.

듀란테는 그 태도에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기억이 없어도 너 같은 여자에게 마음 갈 일은 없어.”

“……달링?”

“베아트리체는 어디에 있지?”

그 질문에 아라크네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조금 전까지 수줍게 웃고 있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표정이었다.

-발작버튼 ON!

-얀데레 앞에서 다른 여자 얘기?

-아 ㅋㅋ 제대로 돌아버리쥬?

-이게 바로 최상남자식 강행돌파지!

-어디 스택도 없는 게 까불어!

차갑게 굳은 표정 위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나 그 종류가 사뭇 달랐다.

억지로 비틀린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거부감이 들게 했다.

“달링, 장난이 지나쳐요. 아무리 그래도 제 앞에서 다른 여자를 찾다니. 아, 그런 거군요. 질투심을 유발하시려고?”

아라크네의 입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크게 뜨인 눈은 듀란테에게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이해해요. 달링처럼 좋은 짝을 만나려면 노력이 필요하죠. 베아트리체? 그 여자가 좋다면 저도 어쩔 수 없죠.”

-와…… 그냥 사람 얼굴인데 무서운 건 처음이네

-ㄹㅇㅋㅋ 지금까지 나온 악마들 보다 더 무서움

-근데 의외로 순순히 포기하네?

-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나?

-ㄴㄴ 절대 포기 안함 ㅋㅋㅋㅋ

-진짜 ㅋㅋ 무적권 뭔가 이따

몇몇 시청자들이 혹시 베아트리체를 풀어주려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대다수 시청자들은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짐작했다.

그 짐작대로 아라크네가 돌발적인 행동을 취했다.

“이건……?”

새끼 거미들이 일제히 거미줄을 쏘았다. 그런데 그 대상은 듀란테가 아니라 아라크네였다.

순식간에 고치로 변한 아라크네, 이윽고 그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더니 고치가 옆으로 벌어졌다.

이윽고 보이는 광경에 채팅창은 물음표로 물들었다.

“베아트리체?”

듀란테 역시 의문을 표했다.

고치에서 나온 사람은 아라크네가 아니라 바로 베아트리체였다.

“이 모습이 좋으신 거죠? 그렇죠?”

모습은 물론 목소리 또한 베아트리체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대사와 전후 상황을 보면 그녀가 아라크네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아직 소화하기까지는 시간이 남았거든요.”

“소화라고?”

“네.”

아라크네는 슬쩍 뒤를 바라보고는 웃음을 흘렸다.

“이 여자, 베아트리체의 기억과 영혼을 흡수하면 달링이 바라는 짝이 될 수 있겠죠. 아라크네라는 이름도 포기할 거예요.”

그녀는 생각만 해도 황홀하다는 듯 양손으로 제 뺨을 감싸며 말을 이었다.

“제가 당신만의 베아트리체가 될게요.”

시청자들은 기겁했다.

-무친 ㅅㅂ!

-와씨 ㅋㅋㅋ 전개 왜케 맵누

-광기, 내 오랜 친구여!

-지금 성녀눈나한테 빨대 꽂았다는 거?

-그냥 빨대도 아니고 영혼 빨대임

-영혼 빨대는 뭔데 ㅅㅂㅋㅋㅋㅋ

-않이;;; 우리 눈나 괴롭히지 말라고!

-설마 이거 타임어택인가?

-아 ㅋㅋ 갓플이면 무적권 구함 ㅋㅋㅋ

-나믿퍼믿!

채팅창은 흥분으로 가득했지만 아직 컷신은 끝나지 않았다.

듀란테는 그런 아라크네를 향해 혀를 차며 말했다.

“미친 소리.”

“……네?”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관계는 달라지지 않아.”

그는 대검을 들어 아라크네에게 겨누었다.

“너와 나는 사냥꾼과 사냥감일 뿐이다.”

-캬! 이거지 ㅋㅋㅋ

-악마적 거리두기 ON!

-거리두기 ㅇㅈㄹ ㅋㅋㅋㅋ

-아 ㅋㅋ 아무리 애써도 안 된다니깐?

-???: 제가 누굴 좋아한다는 게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잖아요

-???: 지금은 누구랑 사귈 생각이 없어.

-???: 반드시 사귑니다! 당신이 아닌 누군가와!

-그마내! PTSD 그마내!

-아라크네가 아니라 트수들이 피해를 보누 ㅋㅋ

듀란테의 단호한 대답에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어떻게……”

아라크네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오로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이 지옥에서 기다렸어!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일그러진 아라크네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기괴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 당신도 나를 버리겠다는 거지? 아니, 그럴 수 없어. 누구도 날 버릴 수 없어!”

찢어지는 듯한 고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동굴 속 고치들이 갈라졌다.

벽에 붙어 있던 새끼 거미들이 그 안으로 파고들자 이윽고 거미줄에 휘감긴 가짜 듀란테들이 밖으로 나왔다.

“흐흐흐, 껍데기라면 얼마든지 있어. 달링, 달링의 영혼만 손에 넣으면……”

광기어린 웃음을 흘리는 아라크네가 눈을 뒤룩뒤룩 굴렸다.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거야.”

그 말과 함께 아라크네가 거미줄을 타고 공중으로 사라졌다. 위쪽은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어둠에 가려져 있었다.

“역시 이렇게 되네요.”

이경복은 통제권이 돌아오는 걸 느끼며 멘트를 쳤다.

-와…… 광기 미쳤고 ㅎㄷㄷ

-공포영화 보는 줄 ㅋㅋㅋ

-ㄹㅇㅋㅋ 갑자기 분위기 호러

-이렇게 연애가 무서운 겁니다

-아 ㅋㅋ 무서워서 안하는 거임! 아무튼 무서움!

-트수들은 ‘안’과 ‘못’의 사용을 정확히 해주세욧!

시청자들 반응에 이경복은 옅은 웃음을 흘리고는 전투에 돌입했다.

가짜 듀란테들이 일제히 덤벼들기 시작하자 이경복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까다로운 건 새끼 거미들 쪽이겠네요.”

가짜 듀란테들의 움직임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거미줄을 쏘아대는 새끼 거미들 쪽이었다.

사방에서 하얀 거미줄이 날아들어 그를 얽어매려 했다.

“이렇게 아약스 방패로 막으셔도 좋은데.”

이경복은 설명하며 시범을 보였다. 아약스 방패를 전개하자 생성된 보호막이 거미줄을 차단했다.

“아시다시피 이게 지속시간이 있거든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아끼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는 이내 권총을 꺼내며 말을 덧붙였다.

“방패 대신 이렇게 대처해도 좋아요.”

이어 그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연달아 들리는 총성이 공동에서 메아리쳤다.

그리고 그 결과.

-?????

-지금 거미줄을 총알로 맞춘 거?

-교수님! 저는 그냥 방패 쓸게요……

-이게 바로 ‘퍼펙트-절약정신’?

-우리는 아끼똥이라구욧!

날아드는 거미줄과 총알이 얽히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경복은 채팅창 반응을 확인하고는 웃음을 흘렸다.

“막상 해 보면 안 어렵습니다. 그리고 방패는 따로 쓸 데가 있어요.”

시청자들이 물어보기도 전에 이경복은 바로 방패의 사용처를 알려 주었다.

그가 다가온 가짜 듀란테를 베어내자 갈라진 절단면에서 체내에 우글거리던 새끼거미들이 튀어나왔다.

이경복은 즉각 방패를 전개, 보호막에 달라붙은 새끼거미들은 바닥으로 쳐냈다.

팝콘 튀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바닥이 녹색으로 범벅이 됐다.

-헐 ㅋㅋ 구라듀란테에 함정이 있었네

-구라듀란테는 기니까 구란테로 합시다

-구란테 ㅇㅈㄹㅋㅋㅋ

-기만의 군주라고 기만전술 쓰는 거 보소 ㅋㅋㅋㅋ

-순간대응속도 미쳐버렸고 ㅋㅋㅋ

-붕란테는 그냥 상시 방패 전개해야겠누 ㅋㅋㅋ

-않이;; 그것도 문제인 게 아직 아라크네랑 싸워보지도 않았음

-ㅇㅇ 아라크네랑 직접 싸울 때는 또 뭐가 어케 될지 모름

-근데 아라크네는 어떻게 불러내냐

시청자들이 그 대응에 깨달음과 동시에 의문을 떠올렸다. 정작 처리해야 할 아라크네가 숨어 버렸으니 이대로는 불리한 형국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경복은 걱정하지 않았다.

“간단합니다.”

그는 가짜 듀란테들을 처치하면서도 여유롭게 답했다.

“내려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면 되겠죠.”

싱긋 미소 지은 그는 대검에서 알리의 검을 분리시켰다. 그렇게 양손에 쥐어진 두 개의 검.

그 하나만으로 채팅창에는 웃음이 가득해졌다.

-5252! 저질러 버리는 거냐구웃!

-유일검류 쌍검술? 이건 못 참지!

-아 ㅋㅋㅋ 구란테들 다 뒤졌다.

-구란테들 싹 쓸어버리면 내려온다는 거쥬?

-한 손에는 중검, 한 손에는 쾌검 찢었다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이경복은 언제나 그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두 개의 검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의 주변에 접근해 오는 가짜 듀란테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도륙이 났다.

-새끼 거미들도 풍압에 그냥 날아가 버리네 ㅋㅋㅋㅋ

-않이;; 이러면 방패도 필요 없잖슴!

-교수님! 강의랑 실습이 전혀 다른데욧!

-캬 ㅋㅋ 거미쉑들 대검으로 찍어버리는 거 개시원

-이게 진짜 순삭? 내가 봐왔던 순삭은 도대체?

시청자들은 그 화려한 무위에 경탄을 표했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잊고 있었다.

이경복은 언제나 기대 ‘이상’을 보여주는 스트리머라는 것을 말이다.

-헐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지금 본 게 맞아? 날아가는 대검을 채찍으로 잡았다고?

-아 ㅋㅋㅋ 덤비는 거 기다릴 시간도 아깝다고

-대검으로 중거리 스플뎀 + 소검으로 근접처리

-아아, 이게 바로 ‘퍼펙트-이도류’라는 것이다.

주변을 정리했지만 이경복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멀리 있는 적을 향해 대검을 던져 적중시키고 그 손잡이를 채찍으로 잡아 휘둘렀다.

그 궤적에 걸린 가짜 듀란테는 그대로 양분됐다. 그 틈에 반대쪽에서 다른 놈들이 덤벼들었지만 단 일격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라스트네요.”

이경복은 그리 말하며 마지막 남은 하나에게 알리의 검을 던졌다.

“아라크네가 잘 알 수 있게 신호를 줄게요.”

쐑하는 파공성과 함께 회전하며 날아간 검.

그 뒤로 이경복이 망설임 없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칼날이 마지막 한 놈의 머리에 박힌 순간, 그 뒤를 따라온 탄환이 손잡이를 쳤다.

멈췄던 칼날이 그 충격에 머리를 관통하고, 마지막 가짜 듀란테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피날레 뭐냐고 ㅋㅋㅋㅋㅋㅋ

-퍼포먼스에 진심인 남자!

-무슨 콘서트 보러온 줄 ㅋㅋㅋ

-나도 하루만 퍼지컬 가져봤으면 ㅠ

-진짜 이형 게임 재밌게 한다니까 ㅋㅋㅋㅋ

이경복은 웃으며 채찍으로 검을 회수했다.

‘바로 내려오네.’

정리를 마치자마자 신기가 아라크네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어? 녹색 연기 이거?

-환영 가스다!

-가스가스가스!

-MOPP 4단계!

-화생방하냐고 ㅋㅋㅋㅋㅋ

동굴 안에 자욱하게 깔리기 시작하는 녹색 안개.

이미 한 차례 경험해 본 바 그 용도가 무엇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에 이경복은 물론 시청자들도 뭔가가 바뀔 거라 예상했지만.

“……그대로네요?”

주변 풍경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청자들 역시 어리둥절했지만 주의는 금방 돌아갔다.

베아트리체의 모습을 빌린 아라크네가 이경복을 향해 쇄도해 왔기 때문이었다.

-참교육 드가자!

-이걸 그냥 덤빈다고?

-역시 기만군주라서 전투력 형편없쥬?

-아 ㅋㅋㅋ 바로 순삭각이고

-???: 저돌맹진! 저돌맹진!

-ㄴㄷㅆ 쳐내!

-귀멸의 화살 정도면 킹반인 용인데?

-빼앗긴 아싸에도 봄은 오는가!

시청자들은 안심했다.

비단 이경복에 대한 믿음 때문만이 아니라 아라크네의 공격이 너무 직선적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조금 전 보여준 이경복의 무위는 압도적인 바, 승리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아라크네가 지척까지 와도 그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걸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형?!

-무하는 거냐구!

-느슨해진 채팅창에 긴장감을 주는 갓플!

-트수 조련 멈춰!

-왜 이러시는 거냐구욧!

뒤늦게 놀란 시청자들이 채팅을 쏟아내는 순간.

이경복의 검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 방향은 아라크네 쪽이 아니었다.

-???

-뭐야?

-이건 또 뭔?!

-왜 허공에서 피가 나와?

칼날이 날아든 곳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공간이 갈라지며 검붉은 핏물이 튀어 올랐다.

이경복은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페이즈 2인 모양입니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게 다르네요.”

아라크네가 달려오는 방향과 발소리가 들린 방향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안도하고 있던 시청자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항이었다.

-ㅔ?

-무친;;; 지금 보는 게 다 환영인 듯?

-와씨 ㅋㅋㅋㅋ 이걸 바로 알아차린다고?

-않이;;; 이거 무슨 스텔스처럼 뭉그러져 보이는 것도 아니잖슴?

-순수 소리로만 찾는 거?

-단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는 남자……!

-아아, 이게 바로 ‘퍼펙트-경계’라는 것이다.

경탄하는 채팅을 보며 이경복은 실소를 흘렸다.

“이건 초심자에게는 좀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장소 특성상 소리가 울리니까 신경을 더 쓰셔야 되거든요.”

동굴이라는 점에서 소리가 웅웅 울렸다. 웬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정확히 방향을 파악하기 힘들 터였다.

시청자들이 그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전에 이경복은 방패를 전개했다.

캉하는 쇳소리와 함께 보호막에 뭔가 부딪쳤다. 그와 동시에 소검이 허공을 찔렀다.

“힘드시면 이렇게 방패로 먼저 막고 반격하시는 걸 추천 드릴게요.”

멘트와 더불어 허공에서 흐르는 검붉은 피.

-???

-멘트 다 치면서 방향 파악 무엇?

-힘들다면서! 힘들다면서!

-??? : 내 얘기 아닌데?

-아 ㅋㅋㅋ 교수님이 어렵다고 하면 학생들한테 어렵다는 거지

-ㄹㅇㅋㅋ 남 얘기자너

-이게 진짜 스타일리쉬지 ㅋㅋㅋ

시청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공략법을 시연해 보이는 이경복에게 찬사를 쏟아냈다.

“아무래도 반격에 성공하면 단계가 높아지는 구성인 것 같습니다.”

아라크네의 환영은 물론 발소리가 늘어났다. 시청자들은 이에 다시금 놀랐다.

-뭐야? 발소리 하나만 쫓는 게 아닌 거?

-않이;; 또 선 넘네

-조금 전까지는 흉내라도 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ㅠ

-ㄹㅇㅋㅋ 소리 하나만 쫓는 건 붕란테라도 노력하면 될 텐데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늘어난 환각 중 오직 하나만이 진짜일 터였다. 시청자들로서는 그걸 구분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경복의 생각은 달랐다.

“아뇨,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미소 짓고는 눈을 감은 채 납검했다. 손잡이에 올라간 손은 그대로였다.

그 자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청자들은 알 수 있었다.

-유일검류 발도술 장전!

-그냥 가만있어도 간지가 흐르는 거 무엇?

-퍼집중 ON!

-아 ㅋㅋ 이건 끝났다 ㅋㅋㅋ

-살인미소에 퍼집중 모드까지? 이건 못 참지 ㅋㅋㅋㅋ

이경복은 느낄 수 있었다.

영악하게도 개발사는 단순히 가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니었다.

그의 신기에 잡히는 아라크네의 위치는 시시각각 바뀌고 있었다. 알리의 환영과 마찬가지로 순간이동 기믹을 재활용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지.’

신기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었다.

시각을 차단하니 다른 감각이 세밀해졌다. 가느다란 실처럼 뻗어져 나간 감각이 주변 정보를 끌어 모았다.

이곳은 아라크네의 거미굴이었지만.

‘온다.’

이경복의 육감이라는 거미줄에 걸린 건 오히려 아라크네 쪽이었다.

‘지금……!’

그의 손이 움직였다.

과장된 동작은 없었다. 그저 양손에 들린 검으로 가로와 세로, 한 번씩 그었을 뿐이었다.

다만 시청자들의 눈에는 그 검이 뽑힌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

-언제 뽑음?

-방송렉?

-무친 속도 ㅎㄷㄷ

허공에 붉은 십자가가 그어진 건 그다음이었다.

마치 공간 자체를 베어버린 듯한 모습과 그 뒤로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웃고 있는 이경복.

시청자들의 뇌리에는 그 장면 하나만이 강렬하게 자리 잡았다.

이어 철퍽하는 소리와 함께 환영이 깨졌다. 가짜들이 사라지고 바닥에는 갈라져 4등분된 아라크네의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무친 ㅋㅋ찢었다 ㅋㅋㅋㅋ

-그 와중에 정확한 4등분 무엇?

-???: 이건 눈감고도 하겠다 (진짜함)

-맹인검객 퍼토이치 ㅎㄷㄷ

-ㅅㅂ 이건 컷신으로 써도 위화감이 없을 듯 ㅋㅋㅋ

-진짜 저 불안함 하나 없는 표정ㅋㅋ 듀란테에 딱이쥬?

-평소의 퍼자감입니다만?

-캬 ㅋㅋ 이게 스타일리쉬지!

-5252, ‘진짜’는 묵직하다구?

-어디가 묵직하다는…?

-최상남자는 중심이 바로 서있다니깐!

-않이 ㅋㅋㅋ 일상생활 가능?

이경복은 눈을 뜨자마자 작게 웃었다. 채팅창에 쏟아지는 극찬과 느껴지는 희열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별로 어려운 건 아닙니다. 단순한 소거법이에요. 불필요한 감각을 배제하는 거죠.”

그는 칭찬에 겸손하고자,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공략법에 대해 설명하려 한 말이었지만.

-아 ㅋㅋ 이집 코스요리 잘하네

-ㄹㅇㅋㅋ 퍼기만 후식도 바로 챙겨주자너

-보스전에 시각이 필요 없는 스머가 이따!?

-아아, 이것이 바로 ‘퍼펙트-심안’의 경지라는 것이다.

-역시 유일검 대협이오!

-트수맨, 눈뜨고도 못 보는 우리는 뭘 할 수 있죠?

-우린 구경만 한다. 후원지갑이나 충전해라 데붕!

-팝콘 드립 뭐냐고 ㅋㅋㅋㅋ

-근데 맞말이자너 ㅋㅋㅋㅋ

그 겸손조차 시청자들에게는 월등한 경지였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