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 기만에도 급이 있지 (4)
무사히 마친 전투에 시청자들은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건 흥분이 가라앉은 뒤였다.
-어? 근데 왜 아라크네가 셋임?
-뭐지? 환영 사라진 거 아님?
-설마 원래 아라크네가 셋이었던 거?
죽어 있는 가짜 듀란테 사이로 쓰러져 있는 아라크네는 하나가 아니라 셋이었다.
“이거, 아라크네가 자기도 복제품을 만들어 뒀던 모양이네요?”
이경복의 말에 시청자들도 상황을 파악했다.
-오 ㅋㅋ 맞네
-무친 ㅋㅋㅋ 그럼 갓플이 한 번에 다 처리한 거였네
-어쩐지 기만군주 치고 맷집이 상당하더라니 ㅋㅋㅋㅋ
-알고 보니 한 방 컷이었쥬?
-유일검이라는 게 한 번만 휘두르면 된다는 뜻이었음?
-ㄹㅇㅋㅋ 단 칼이면 유일검이지
페이즈 2에 진입 후 보여 준 3번의 검격.
그것만으로 보스전을 클리어했다는 사실은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 번 놀라움을 선사했다.
-근데 왜 컷신 안 나옴?
-직접 구하러 가야 되는 거?
-혀엉! 얼른 성녀눈나 찾으러 가자구!
-???: 퍼란테, 퍼란테 좀 갖다주시오!
-???: 내가 죽는다구요!
-도랐ㅋㅋㅋ 눈나한테 그 밈을 왜 붙여!
베아트리체를 구하러 가자는 재촉에 이경복은 걸음을 옮겼다.
이내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니 고치 하나가 보였다.
-이건 왜케 큼?
-딱 봐도 중요한 고치쥬?
-여기 백퍼 눈나 들어있다
-얼른 꺼내달라구웃!
-이 수술은 갓플이 집도한다!
그러나 그 크기는 이전에 봐 왔던 고치보다 더 비대했다. 이경복은 즉시 대검으로 그 고치를 갈라냈다.
아니나 다를까, 고치에서 풀썩 쓰러지는 베아트리체를 이경복이 잡았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안심 대신 의문을 표했다.
-??????
-뭐야?
-왜 눈나가 둘임?
-어뜨케 된 겨 어뜨케 된겨!
이경복의 양팔에 각기 베아트리체가 축 늘어져 있었다. 시청자들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두 사람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떠졌다.
“아……”
“여긴……”
목소리마저 똑같았다.
이내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크게 눈을 떴다.
“무슨……!”
“이게 대체?!”
기겁하듯 놀라는 표정마저 완벽히 일치했기에 채팅창은 혼란으로 가득해졌다.
-이런 무친ㅋㅋㅋㅋㅋ
-둘 중 하나만 진짜 눈나네
-보스전에서 상대했던 아라크네 전부 짜가였네 ㅋㅋㅋㅋ
-와씨 ㅋㅋ 상상도 못했다 진짜
-기만의 군주 컨셉 지렸다
환영과 함께 덤벼든 아라크네는 시간끌기용이 분명했다. 진짜 기만의 군주는 고치 안에서 베아트리체를 ‘소화’하고 있던 것이다.
“속지 마세요!”
“제가 진짜예요!”
두 베아트리체도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소리 높였다. 하지만 이경복은 조용히 그 두 사람을 번갈아 볼 따름이었다.
-와…… 이건 진짜 모르겠는데
-이건 아무리 신의 눈이라도 어쩔 수 없다 ㅋㅋㅋ
-않이;;; 맞추려면 힌트라도 줘야 되는 거 아님?
-ㄹㅇㅋㅋ 이번에는 옷도 찐으로 똑같음
-이렇게 된 이상 만해의 힘으로 결정한다!
-아 ㅋㅋ 50%면 그냥 맞추지
-그러다가 성녀 눈나가 죽으면 어쩌냐구!
-일단 저장 ㄱ?
우후죽순 채팅이 올라왔다. 그러나 이경복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바로 그때.
“선택해 주세요. 듀란테 님이라면 누가 진짜인지 아실 거예요.”
“맞아요. 달리… 아니……!”
그에게 결정을 맡기려는 듯 말하던 두 사람이 극명히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 어어!
-지금 달링이라고 하려던 거 맏찌?
-아 ㅋㅋㅋ 힌트 너무 명확하고
-개껌쉑 ㅋㅋㅋ 선택 못하니까 떠먹여주는 거 보소
-킹직히 신선하긴 했다 ㅋㅋㅋ
순간 멈칫하며 당황하는 베아트리체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아닌가.
이경복도 마찬가지였다.
“네, 결론이 나왔네요.”
이미 신기로 아라크네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찌를 수 없어 힌트가 나오길 기다렸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는 곧바로 검을 찔렀다.
“어째서……?!”
제 몸을 관통한 칼날을 보며 경악한 모습.
그러나 시청자들은 그 결과에 통쾌해 할 수 없었다.
-???????
-혀엉…?
-않이;;; 반대잖슴!
-갓플이 이걸 실수한다고?
-대놓고 달링이라고 불렀는데?
그의 결정은 시청자들의 예상을 뒤엎었다. 쓰러진 건 달링이라 부르려다가 당황한 쪽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베아트리체는.”
이경복은 이에 담담히 말했다.
“듀란테를 부를 때 ‘님’자를 붙인 적이 없습니다.”
그 한 마디에 채팅창이 요동쳤다.
-헐? 그랬나?
-무친 ㅋㅋㅋ 그걸 세세하게 기억한다고?
-생각해보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5252! 설마 눈나 말에도 떡밥이 숨어 있었냐구웃!
-않이;; 무슨 떡머크냐구!
-어딜 봐도 떡밥이 보여요!
그런 사소한 말투까지 세세하게 기억하는 시청자는 없었다. 그렇기에 확신은 없었지만 그들은 그 판단을 받아들였다.
-아 ㅋㅋㅋ 갓플 말은 무적권이지
-ㄹㅇㅋㅋ 찾아보면 바로 나옴
-우리 형이 허튼 소리 할 사람이 아니라 이말이야
-나는 못 믿어도 갓플은 믿지
-나믿퍼믿도 아니고 나못믿퍼믿ㅋㅋㅋ
이경복의 플레이에 향한 시청자들의 신뢰는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부족했나? 제대로 학습을 못 한 모양인데.”
이경복의 결정과 동시에 컷신이 시작됐다. 듀란테가 쓰러진 베아트리체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이 여자는 동등한 ‘협력’ 관계를 좋아해서 ‘님’이라는 존칭은 안 써 주더라고.”
이어지는 대사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흘렸다. 이경복의 판단이 옳았다는 인증이나 다름없었다.
“이럴… 수는……”
이내 숨이 멎은 그녀의 모습이 서서히 아라크네의 것으로 바뀌었다.
듀란테는 검을 회수하고 진짜 베아트리체를 돌아봤다.
“괜찮나?”
“조금, 어지러워요. 기억이……”
그녀는 이마를 감싸 쥐며 비틀거렸다. 듀란테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붙들었다.
-자연스러운 스킨쉽 무엇?
-역시 최상조합답게 노빠꾸였누 ㅎㄷㄷ
-저 정도가 무슨 스킨쉽이야 ㅅㅂㅋㅋㅋㅋ
-아 ㅋㅋ 모쏠이면 ㄹㅇㅋㅋ만 치라고
-ㄹㅇㅋㅋ
-채팅창에 마구니가 가득하구나!
-딱 봐도 그 소화 때문에 기억이 뒤섞인 거자너 ㅋㅋㅋ
가까워진 두 사람의 거리에 시청자들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분위기는 심각했다.
“아라크네의 영혼이, 저와 연결됐었어요. 그녀의 기억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라요.”
“베아트리체?”
이내 화면은 그녀의 눈동자를 클로즈업했다. 마치 눈동자에 빠져들 듯 검게 변해 버린 화면.
이내 갑자기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화면이 멀어지더니 검은 옷감을 비롯해 여러 색색의 옷감과 직물이 쌓인 가판대를 비추었다.
-?????
-갑자기 시장 한복판?
-엌ㅋㅋ 중간 광고 나오는 줄 ㅋㅋㅋㅋ
-아직도 구독을 안했다고?
-오? 이거 아라크네 배경 이야기인 듯?
-아 맞네ㅋㅋㅋ 아직 아라크네는 안 나왔었네
그 예상대로 화면은 가판대를 지키는 아라크네의 모습을 비추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에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아니, 이건 분명!”
크게 소리를 높이며 과장스럽게 상품을 들어 보였다.
“이 패턴과 자수! 신과 길쌈 대결을 해서 이겼다는 그분이십니까!?”
갑자기 소리를 높여지니 시선이 모였다. 하지만 신과의 대결이라니 이에 조소를 흘린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그때 한 젊은 여성이 다가와 관심을 표했다.
“길쌈 대결이요?”
“정말 모르십니까? 기술이 너무 뛰어나 신도 질투할 정도라고 소문이 자자했는데요.”
“확실히…… 남다른 옷감이긴 한데.”
“이거는 돈 주고도 못 살 물건입니다! 저, 이거 얼마입니까!? 아니, 이거 다 드릴 테니 하나만 팔아 주십시오!”
남자는 묵직한 돈주머니를 내밀며 호소했다. 아라크네는 아무 말 없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옷감 하나를 내주었다.
“저, 저도요! 저는 이거, 이것 좀 팔아주세요! 하나밖에 안 남았네!”
옆에 있던 여성도 다급한 어조로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그렇게 되니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다가와 물건을 살폈다.
“세상에……”
“정말 대단한 솜씨로군.”
“설마 진짜로 신과 대결했다는 말인가?”
허름한 가판대와 달리 물건의 질은 월등했다. 이를 확인한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거! 이거 하나만 내주십시오!”
“잠깐! 그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제게 파십시오!”
순식간에 구매 경쟁이 붙었다. 가판대의 물건은 순식간에 동났다.
-역시 그 아라크네가 맞긴 하네
-근데 모티브랑은 확실히 다름ㅋㅋㅋ
-아테네 안 나오나?
이윽고 뒤바뀐 화면.
마을을 빠져나온 아라크네는 두둑한 주머니를 내던지며 얼굴을 찡그렸다.
“어우, 이렇게까지 많이 버니까 진짜 무겁다.”
“고생했어, 달링.”
이내 그녀 앞에 나타난 건 조금 전 먼저 소리친 남자였다. 그는 아라크네를 포옹하며 미소 지었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잖아? 이제 우리는 부자라고!”
“신과 승부했다는 이야기를 하니 멍청이들이 돈을 몇 배를 더 주네요.”
이어 그 뒤에서 나온 건 그다음으로 구매한 여자였다. 그녀는 이죽이며 아라크네의 어깨를 주물렀다.
“물론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게 만들 정도로 우리 언니 솜씨가 대단하니까 가능한 거지만요!”
시청자들은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엌ㅋㅋㅋ 사기단이었누
-바람잡이 ㅅㅂ ㅋㅋㅋㅋ
-무친 ㅋㅋ 이걸 이렇게 비틀어버리네
남자는 매어둔 말에 금화주머니를 싣고는 손짓했다.
“자자, 그럼 얼른 다른 마을로 가자고. 괜히 꼬투리 잡히면 좋을 게 없어.”
그렇게 마을에서 멀어지는 세 사람을 보여 주며 뒤바뀐 화면.
조금 전과 같이 시장에서 가판대를 열고 사기행각을 벌이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꼬리 잡혔쥬?
-ㄹㅇㅋㅋ 더치터에 등록된 듯
-더치터 ㅇㅈㄹ ㅋㅋㅋㅋㅋ
-뭔ㅋㅋㅋ 중고월드냐구!
-사기꾼쉑들 참교육 타임!
손님들만이 아니라 무장한 병사들이 가판대를 포위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세 사람은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도망칠 길은 없었다.
“꺄악!”
새된 비명과 함께 감옥에 던져진 아라크네.
그녀는 덜덜 떨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벌레와 거미들이 득실거리는 열악한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으, 으아아……!”
아라크네는 기겁하며 벽에 붙었다. 질겁한 그녀의 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 전부 괜찮을 거야.”
“휴브리스? 당신이에요!?”
절망 속에서 들려온 연인의 목소리에 그녀는 벽에 귀를 붙였다.
“우리는 죄가 없어.”
“그, 그렇죠? 제가 짠 옷감은 싸구려가 아니에요. 정말, 정말 정성을 들였다고요.”
“그래, 맞아. 우리는 금방 풀려날 거야.”
“아아, 휴브리스. 당신마저 없었다면 나는……”
아라크네는 울음을 삼켰다.
어두운 감옥에서 그녀가 의지할 것은 목소리뿐이었다.
-전형적인 사기꾼 마인드누
-ㄹㅇㅋㅋ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네
-지옥 간 거부터 이미 참교육 확정임 ㅋㅋㅋ
감옥에서 밖을 볼 수 있는 작은 철창에 밤과 낮이 빠르게 뒤바뀌었다.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한 아라크네는 초췌한 몰골로 벽에 귀를 붙이고 있었다.
“휴브리스……? 제발, 무사하다고 말해줘요.”
때가 낀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선명했다. 그녀는 벽을 긁으며 웅얼거렸다.
“너무 무서워요… 한 마디, 한 마디라도 좋으니까……”
시청자들은 그 대사만으로 상황을 유추했다.
-남친 처형당한 듯?
-아 ㅋㅋ 정의구현 좋으면 개추
-ㄹㅇㅋㅋ 일단 나부터!
그러나 그 추측은 바로 뒤집혔다.
“정말 고생했어.”
재차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 아라크네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 소리가 나는 건 벽이 아니었다.
그녀는 홀린 듯이 철창으로 다가갔다. 그 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모두의 예상과는 달랐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내가 말했잖아. 괜찮을 거라고.”
바람잡이 역이었던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포옹하며 입맞춤을 나누었다.
-여기서 갑자기 NTR이?
-ㅁㅊ 설마 남친이 했던 말이 아라크네한테 한 게 아니었던 거?
-와씨;;; 전개 맵누
-이러면 흑화한 거 킹정이지
-얀라크네 각성 ㅎㄷㄷ
-바람잡이가 다른 바람이었네
-무친 ㅋㅋㅋ 라임보소 ㅋㅋㅋ –야잌ㅋㅋ 합격목걸이 가져가라
이내 화면은 재판장으로 바뀌었다. 웅웅거리는 소음만이 들려왔다.
반쯤 정신이 나간 아라크네의 귓가에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증언에 따르면 그 두 사람은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른 것이라고만 했소.”
“……뭐라고요?”
“돈을 벌게 해 줄 테니 유언비어를 퍼트리게 했다고. 당신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하던데.”
“아니, 아니야.”
아라크네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다가 재판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하지 말라고!”
“겨, 경비! 경비병!”
대기하던 병사들이 바로 그녀를 제압해 바닥에 짓눌렀다. 재판관이 노성을 터트렸다.
“신을 모욕한 것도 모자라 이런 난동까지 피우다니! 논의할 가치도 없소! 이 불경한 자를 화형에 처할 것이오!”
판결과 함께 그녀는 다시 감옥에 갇혔다. 아라크네의 정신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래, 꿈을 꾸는 거야. 모든 게 거짓이야. 이건 현실이 아니야……”
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 옷감을 짜야 되는데. 그래야 그이가 좋아하는데……”
그녀는 넋이 나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하게도 감옥에는 도구는커녕 실도 없었다.
하지만 그 비슷한 건 있었다.
“거미줄…… 그래, 이걸로 증명할 수 있어. 아무리 신이라도 거미줄로 옷감은 만들 수 없을 거야.”
그녀는 웃음을 흘리며 거미줄을 그러모았다.
“나는, 나는 신과 승부해서 이겼어. 그걸 알게 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휴브리스, 달링 조금만 기다려요.”
그러나 거미줄이 실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손을 대는 족족 거미줄은 쉽게 끊어졌다.
“왜, 왜 안 되는 거야! 왜!”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광증은 더욱 심해졌다.
“아, 그래……! 신이 날 질투하는 거구나? 그치? 내 실력이 너무 뛰어나니까 빼앗아 간 거구나?”
거미들이 그녀의 주위로 모였다. 아라크네는 납작 엎드려 거미들을 향해 눈을 굴렸다.
“다시, 다시 돌려줘. 응?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제발 다시 돌려줘……!”
거미들이 서서히 옆으로 흩어졌다. 이윽고 드리워진 그림자에 그녀의 고개가 서서히 올라갔다.
“아아……!”
작은 탄사와 더불어 화면이 암전됐다. 클로즈업됐었던 베아트리체의 눈동자가 다시 드러났다.
-와씨…… 광기 미쳤네 진짜
-악마랑 계약한 거?
-또 여기서 끊어버리네 ㅋㅋ
-근데 이번에는 죽는 장면은 안 보여줌?
-결국 화형당하고 끝난 듯?
베아트리체는 마른 침을 삼키고 질끈 눈을 감았다. 이내 그녀가 눈을 깜빡거리자 동공이 제 자리를 찾는다.
“이제…… 이제 괜찮아졌어요.”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듀란테는 몸을 돌렸다.
“가지.”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뒤로 베아트리체가 굳은 표정으로 따라왔다.
곧바로 전환된 배경.
림보였다.
“두 분 모두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안드로가 두 사람을 보고 넙죽 허리를 숙였다. 이내 그는 듀란테를 보며 말했다.
“데몬 하트는……?”
듀란테는 대답 대신 아라크네의 데몬하트를 꺼내 보였다. 녹색의 결정은 이내 큐브와 공명을 시작했다.
-아 ㅋㅋㅋ 배경 이야기 때문에 깜빡했네
-성녀 눈나가 기억 되새기는 동안 챙긴 듯
-아라크네는 무슨 능력 주려나?
시청자들은 결과물을 기대했다.
이윽고 공명이 잦아들며 큐브가 변형됐다. 피라미드 형태의 프리즘이 그 손에 들려 있었다.
채팅창에 물음표가 나오는 순간 프리즘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
-뭐임?
-능력 쓴 건가?
-바뀐 게 없는데?
-플래시뱅임?
-엌ㅋㅋㅋ 눈뽕이 능력이었고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했지만 듀란테와 동기화 된 이경복은 어떤 능력인지 알 수 있었다.
“성능이 좋군.”
“듀란테?”
베아트리체가 흠칫 놀랐다.
화면 속 듀란테의 위치가 아니라 안드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
이내 그녀 옆에 있던 듀란테의 모습이 먼지처럼 흩어지고, 안드로 옆에 듀란테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청자들은 바로 그 기능을 파악했다.
-오 ㅋㅋ 이거 디코이랑 은신이네
-미끼 만들고 통수각?
-올ㅋ 이거 쓸 만할 듯?
-붕란테한테는 필수 아니냐 ㅋㅋ
안드로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고개 숙였다.
“확실히 데몬하트 셋을 전부 모으셨군요. 이제 최심부로 향하는 지옥문을 열 수 있습니다.”
듀란테는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기만의 영역에서 기억의 일부를 되찾았다. 동생, 알리에 대한 기억이지.”
“동생이요……?”
베아트리체의 물음에 듀란테의 시선이 돌아갔다.
“모르는 척인가? 아니면 진짜로 모르나?”
“듀란테?”
“교단은 대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지?”
무감정한, 그래서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베아트리체만이 아니라 시청자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뭐임? 갑자기 뭐임?
-우리 눈나 왜 괴롭히냐구!
-아니 ㅋㅋㅋ 동생이 교단에서 흑화 했는데 의심하는 건 당연한 거지
-설마 성녀눈나 흑막설이?
-그건 진짜 아님! 아무튼 아님!
베아트리체는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계획이라니요. 교단은 악마들의 습격에 대처하고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그녀는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순식간에 다가온 대검이 그녀의 목 앞에서 멈추었다.
“지옥문을 열려면 악마의 피가 필요하다. 그냥 악마의 피가 아니라 ‘살아 있는’ 악마의 피를 흘려야 하지.”
듀란테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넌 어떻게 바로 날 뒤따라왔지?”
그 물음에 채팅창이 요동쳤다. 이경복도 작게 탄사를 흘렸다.
“아, 지옥 진입 컷신 때 보여 준 걸 말하는 것 같네요.”
-ㅇㅇ 그거 맞는 듯?
-ㄹㅇㅋㅋ 듀란테는 자기 몸 째버렸자너
-설마 그것도 떡밥이었다고?
-않이;;; 왜 다 떡밥이에요!
-진짜 하나도 넘길 게 없누 ㅋㅋㅋㅋ
-근데 듣고 보니까 듀란테 말이 맞지 않음?
-눈나는 어케 문 열고 왔지?
시청자들도 듀란테와 같은 의문을 내비쳤다. 베아트리체는 당황한 듯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속일 생각은 마라. 거짓말을 통하지 않아.”
듀란테는 무미건조한 어투로 경고했다.
“헬게이트는 전부 내가 직접 닫았다. 살아있는 악마는 없었지. 교단에서 포획한 악마를 데려온다고 해도 시간이 맞지 않아.”
그의 말은 시청자들에게 또 하나의 깨달음을 주었다.
-오? 이거 결과에 따라 또 갈린 스토리인 듯?
-엌ㅋㅋ 전부 닫았다는 거 보면 무적권임
-와씨 ㅋㅋㅋ 타임어택 스노우볼이 여기까지?
-교단이 개입했으면 나올 수 없는 대사네ㅋㅋㅋ
베아트리체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간단해. 진실을 말해라.”
“듀란테, 저는……”
그녀의 입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뒷말을 이어지지 않았다.
베아트리체는 질끈 눈을 감았다.
“성기사들에게는 악마의 냄새가 난다.”
그녀의 목을 겨눈 검 끝에 핏방울이 맺혔다.
“악마의 피로 큐브를 활성화하기 위해 피를 휴대하니까.”
듀란테는 굳은 표정으로 검을 뺐다.
“하지만 너는 다르다.”
그리고 건틀렛으로 검 끝에 맺은 핏방울을 훑었다.
이윽고 웅웅대며 공명하는 건틀렛.
시청자들은 그 모습에 충격에 빠졌다.
-??????
-뭐야? 왜 눈나 피에 반응함?
-무친…!
-눈나 피가 악마의 피라고?
-와 ㅋㅋㅋㅋ 베아트리체도 반인반마네
-설마 머리카락이 비슷한 은발인 게?
-와씨 ㅋㅋ 떡밥을 아예 첫 만남부터 뿌려뒀네
-이건 진짜 지렸다 ㅋㅋㅋㅋ
그러나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반인반마, 그건 나와 내 동생뿐이다. 사태가 벌어지기 전, 현세로 나온 악마는 아버지뿐이었으니까.”
듀란테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있을 리 없는’ 존재가 내 앞에 있다. 그럼 가능성은 하나뿐이지.”
목소리만큼 차가운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교단에서는 인위적으로 반인반마를 만들고 있나?”
그 물음과 함께 카메라가 돌아갔다. 놀라 커다래진 베아트리체의 눈동자.
카메라는 그 안으로 뛰어들며 암전됐다.
[Mission 6. ‘Who are You?’ End]
이어 나타난 미션 종료 문구.
채팅창은 그대로 폭발했다.
-않이!!!!!!!
-왜 또 여기서 끊는데에에에에!
-인공반인반마? 레알루?
-야잌ㅋㅋ 성녀가 반인반마 ㅋㅋ
-클리셰 제대로 비틀어버리기 ㅋㅋㅋㅋ
-눈나가 아니라 교단자체가 흑막인거?
-이거 안드로도 연관 된 거 아님?
-킹능성은 있는데 ㅋㅋㅋㅋ
-와씨 ㅋㅋㅋ 전혀 예측이 안 되네
-이정도면 데머크가 아니라 데몰?루 아니냐?
-근데 또 모름ㅋㅋ 떡밥 미리 깔렸을 수도 ㅋㅋㅋㅋ
-진짜 뭐가 복선인지 방심할 수가 없다 ㅋㅋㅋㅋㅋ
쉬이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시청자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나머지 일부라고 멀쩡한 건 아니었다.
-즉.시.속.행
-제발 속행해줘! 나 미칠 거 같아!
-혀엉! 더 해줄 거지! 우리 안 버릴 거지!?
-트수들 얀라크네화 ㅋㅋㅋ
-ㄹㅇㅋㅋ 악마가 계약하자면 바로 할 듯 ㅋㅋㅋ
-님은 안함?
-무적권 하지! 악마쉑들 왜케 느리냐구! 얼른 오라구!
-끼에에에엑! 이 무슨 반인륜적인 구성!
바로 플레이를 이어가는 걸 원하는 요청이 채팅창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에 이경복이 어떻게 답할까 말을 고르는 와중이었다.
[‘CAP 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오늘도 정말 ‘퍼펙트’한 체험이었습니다! 시청자분들 모두 즐겁게 즐겨주신 만큼 플레이 요청이 쇄도하네요! 하지만 이다음은 기다리던 엔딩 파트입니다! 마지막 클라이막스인 만큼 딱! 하루만 더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발사 후원이 그보다 앞서 사태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아 ㅋㅋ 엔딩각 맞누
-그래도 그냥 오늘 끝내면 안 되나?
-이 늦은 시간에 1.7만 명이 깨어있는데? 그냥 간다고?
-클라이막스라고 하니까 좀 혹하긴 하네 ㅋㅋㅋ
-마지막은 좀 길 수도?
-킹직히 광고주 입장에서는 바로 끝내기 아깝긴 할 듯 ㅋㅋ
-트수 입장은 왜 생각 안 해주냐구웃!
-숙제방송이라 떼쓴다고 될 일이 아니자너 ㅋㅋㅋㅋ
-아 ㅋㅋ 그만큼 보고 싶단 거지
다들 진정하는 듯했지만 아쉬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건 내가 끊어야겠지.’
이경복이 이에 개발사를 거들어 방송을 마무리하려 할 때였다.
[‘CAP 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의 요청에 기쁘면서도 안타깝습니다ㅠ 하지만! 그 기다림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희 쪽에서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지만 결정이 내려졌거든요!]
다시 들어온 후원에 이경복은 물론 시청자들도 의아해했다.
-예측 못한 결과?
-아 ㅋㅋ 갓플 플레이는 예측이 어렵긴 하지
-근데 뭔 결정이 내려 왔다는 거?
-큰 거 오나? 큰 거 오나?
-ㄹㅇㅋㅋ 뭔가 있는 것 같은데
-큰 거 냄새 난다! 큰 거 냄새 난다!
-않이;;; 그렇게 말하니까 화장실 같잖아요
-야잌ㅋㅋ그 냄새가 아니잖아!
-미쳤냐고 ㅋㅋㅋㅋ
그리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이어지는 후원 메시지.
[‘CAP 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첫 체험 방송에 공개해도 될지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만 그대로 진행하기로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번에 보시게 될 엔딩은 개발진이 마련한 ‘진엔딩’이자 ‘최상’의 엔딩일 거라 자부합니다!]
개발사의 스포일러(?)에 분위기는 격변했다.
-ㅔ? 진엔딩?
-세계최초 독점방송에서 진엔딩이 나온다고?
-무친ㅋㅋㅋ 또전듴ㅋㅋㅋㅋㅋ
-최상의 엔딩은 또 무엇?
-와 ㅋㅋㅋ 이거 진엔딩도 여러 버전이 있는 것 같은데?
-그중에서도 베스트가 나왔다?
-아아, 그게 바로 ‘퍼펙트-엔딩’이니까.
-이러면 하루는 그냥 참지!
-진짜 ㅋㅋㅋ 퍼펙트-엔딩은 퍼펙트-컨디션으로 봐야 되는 거 아님?
-혀엉! 얼른 방종 안 하고 뭐 하냐구!
-즉.시.방.종
-와 ㅋㅋ 잠 못 자겠네ㅋㅋㅋ
처음으로 접해 보는 방송 종료 요청이었지만 이경복은 웃음이 나왔다.
“와, 이렇게 말해 주시니 정말 저도 기대가 되네요. 그럼 오늘도 방송 봐주셔서 감사하고, 저는 내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는 멘트를 마치고 밝게 손을 흔들었다.
“퍼펙트한 꿈꾸시길! 트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