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 근본을 아는 스트리머
이른 새벽.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자리를 청하지만 인터넷 방송계에서는 ‘황금시간대’로 여겨지는 시간대였다.
그만큼 많은 스트리머들이 방송을 하고 있었고, 지놈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 이렇게 뱀파이어 서베일런스! 신 캐릭이랑 신 맵, 그리고 새로 나온 템까지 전부 확인 끝!”
그는 1부 방송의 마무리 멘트를 던지고 게임을 종료했다.
-큐바!
-편집자님 여기서 끊으시면 됩니다^^
-아 ㅋㅋ 이걸 사네
-정배들 정신이 들어? 정배들 정신이 들어?
-킹직히 운빨로 깼다 ㅇㅈ?
-ㄹㅇㅋㅋ 마지막 상자깡에서 템 5개 나온 거 때문에 살았다
-ㄴㄴ 박쥐놈이라 뱀파이어들이 봐준거
-엌ㅋㅋㅋㅋㅋ 쥐놈 클라스
스튜디오로 돌아온 지놈은 채팅창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어, 계속 억까해봐. 정배한테 포인트 주면 그만이야!”
오히려 비꼬듯이 시청자들을 놀린 그는 포인트 베팅 정산을 마치고 시간을 확인했다.
“근데 생각보다 좀 빨리 깼네. 2부까지 좀 시간이 뜬다?”
-밥 묵자!
-노가리 타임 ON!
-영상 도네 열어!
-아 ㅋㅋ 추놈 리믹스 딱 대!
2부 시작 전의 막간을 시청자들은 놓치지 않았다. 지놈을 놀릴 생각에 신이 난 채팅창에 갑자기 사람이 몰린 건 그 직후였다.
-난민 받아라!
-오? 1부 벌써 끝남?
-수동 호스팅 ON!
-뭐임? 뱀서 공략한다더니 포기함?
-엌ㅋㅋㅋ 딱 맞춰 왔네
급증하는 시청자들과 채팅에도 지놈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미 익숙한 상황이었다.
“오, 난민들 어서 오고. 데머크 방송 꿀잼각?”
그의 팬과 이경복의 팬의 교집합은 그 비중이 상당했다. 때문에 이경복의 방송이 끝나면 지놈의 방송을 바로 이어보는 시청자들이 많이 있었다.
-오늘도 갓플이 갓플했다 이말이야
-퍼문철 TV였쥬?
-아 ㅋㅋ 매번 레전드라구웃!
-흑흑 맛있었다. 오늘 방송은.
-킹걸전 드립 ㅋㅋㅋㅋ
-근데 진짜 개쩔긴 했엌ㅋㅋㅋ
지놈의 물음에 감상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이에 스튜디오 책상에 앉은 그가 탄식했다.
“야, 또전드인 거야 당연하지! 어제 올라온 것만 봐도 미쳤드만! 내가 이걸 라이브로 못 보는 게 진짜 한이다 한이야.”
그는 자신의 방송 일정이 있기에 이경복의 방송을 시청할 수 없었다. 대신 큐튜브에 올라온 영상으로 그 아쉬움을 달랬다.
-아 ㅋㅋㅋ 그럼 방송 접든가
-속보) 추놈, 갓플 방송 보려 은퇴 결심
-엌ㅋㅋㅋ 바로 프로 트수 전향ㅋㅋㅋ
-늙고 병든 우리형 ㅠㅠ 은퇴할 때 됐지
시청자들은 이때다 싶어 장난스럽게 그를 몰아갔다. 지놈은 그 반응에 조소를 흘렸다.
“진짜 은퇴해 버려? 아, 퍼플 님한테 자리 하나만 마련해달라고 해야겠다. 방송 접고 현실 퍼플 버스 타면서 옆에서 직관? 크! 이거 못 참지!”
-?
-은퇴하면서도 빨대 각을 본다고?
-쥐하다 추놈아…
-5252, 어디까지 추락할 셈이냐구웃!
-아 ㅋㅋㅋ 지구 내핵까지는 거뜬하게 갈 듯
-이건 갓플 입장도 들어봐야 되는 거 아니냐 ㅋㅋㅋㅋ
-킹직히 블랙기업이라도 거를 듯
-ㄹㅇㅋㅋ 이런 승차거부면 킹정이지
그리 시청자들과 티키타카를 하는 와중이었다.
[‘이것만봐도형자리없음’ 님이 ‘10,000’원의 영상을 후원하셨습니다.]
한 시청자가 영상을 후원했다.
재생되는 영상은 이경복의 데머크 체험 방송 중 아라크네와의 결전이었다.
눈을 감은 채 아라크네를 처치하는 그 모습에 지놈이 화들짝 놀라며 급히 손을 움직였다.
-?
-뭐야? 왜 안 나와?
-영도 씹는 거 무엇?
-만원을 날로 먹는 스머가 이따!?
-5252! 은퇴 전에 바짝 땡기는 거냐구!
재생되려던 영상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채팅창에는 물음표가 올라왔다.
“아니, 얘들아. 내가 말했잖아. 플레이 장면은 괜찮아도 컷신은 안 된다니까? 이거 퍼플님 독점 공개라서 잘못하면 저작권 위반 될 수가 있어.”
현재 데몬 머스트 크라이는 ‘독점’으로 공개가 되는 와중이었다. 그런 만큼 다른 방송에서 관련된 내용이 송출되면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지놈의 설명에 채팅창이 ‘ㅋㅋㅋ’로 물들기 시작했다.
-킹ㅋㅋㅋ작ㅋㅋㅋ권ㅋㅋㅋ
-암살시도인줄 알았다 이 말인가?
-아 ㅋㅋ 근데 모르고 보면 오해할 수 있긴 해
-ㄹㅇㅋㅋ 완전 퍼란테자너
-찐으로 당황해서 더 웃기네 ㅋㅋㅋ
-퍼지조합만 나오면 큐튭각이 바로 나오쥬?
채팅 반응에 지놈은 눈을 껌뻑였다. 그도 방송 경력이 있는지라 어떤 상황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그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뭐야? 설마 방금 그게 퍼플 님이 직접 플레이한 거? 진심? 나 암살하려는 거 아니고?”
-않이;; 암살을 왜 하겠냐구웃!
-ㄹㅇㅋㅋ 지금 형 방송 아니면 볼 거 없는데
-아 ㅋㅋ 안심하고 얼른 다시 틀라고요
-킹부러! 도네 더 받으려고!
-5252, 벌써부터 블랙기업 인재상에 맞추는 거냐구!
이에 지놈은 멈췄던 후원 영상을 재생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발도와 더불어 공간을 찢는 듯한 장면.
“와씨, 미쳤다 진짜. 이렇게 깔끔하다고? 이게 컷신이 아니면 뭐야?”
절로 탄사가 흘러나왔다.
단순히 방송을 위한 과장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반응이었다.
“아니, 근데 이 개쩌는 걸 영도로 스포해? 팍씨! 3일 밴 맛 좀 볼래?”
물론 방송의 재미도 잊지 않았다. 그의 장난스러운 협박에 채팅창에 웃음이 넘쳤다.
[‘엔딩분석ON’ 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혀엉! 내일 데머크 엔딩이래! 끝나면 엘소처럼 분석 방송 해줘잉!]
자연스럽게 화제는 데몬 머스트 크라이 방송으로 넘어갔다.
지놈은 후원 메시지에 헛웃음을 흘렸다.
“얘들아. 이거 아직 미발매야, 미발매. 아니, 게임을 해 봤어야 뭘 비교 분석이라도 하지!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하겠어?”
-엌ㅋㅋㅋ 미발매 게임 분석ㅋㅋ
-이건 킹직히 게놈이 잘못했다.
-킹치만…… 분석 방송을 핑계로 갓플을 초청할 수 있는걸!
-오? 너 천재냐?
-퍼지데이 그립읍니다ㅠㅠㅠ
-다시 합방각 안 보냐구웃!
지놈은 채팅에 쇄도하는 요청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야, 나도 당연히 하고 싶지. 솔직히 제로백 버스 타본 내가 더 타 보고 싶겠냐, 옆에서 보기만 한 너희들이 더 보고 싶겠냐? 진짜 그 승차감은 잊을 수가 없어요.”
-은근슬쩍 자랑 무엇?
-아 ㅋㅋ 갑자기 심술나네
-근데 왜 합방 안 잡냐구웃!
-숙청! 숙청이 필요하다!
-매니저님? ㅎㅎ 아시죠?
지놈은 카메라 쪽을 바라보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근데 퍼플 님 입장도 생각해 봐야지. 지금 한창 바쁠 시기야. 너희 브스타 생각 안 나? 나랑 이클님이랑 같이 3채널 뚫으려다가 대기열 걸렸잖아.”
-엌ㅋㅋㅋㅋ 그거 개웃겼는데
-??? : 퍼플님한테 잠깐 가서 인사라도 하죠
-이클님한테 당당하게 말하고 바로 대기열 3천번대 걸려버리기~
-잠깐(대기 30분 후 런)
-우리 형이 어쩌다가 줄 서야 하는 입장이 됐냐 ㅠㅠㅠ
-한때는 우리 형도 초청받아서 갔는데……
-늙병추ㅠㅠㅠ
지놈은 그 반응에 웃음 짓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건 이클님이 더 기다려 보자고 해서 그런 거고! 아니 그보다 얘들아,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업계쪽에서 또 듣는 얘기들이 많아요. 나 아직 안 죽었다?”
그 말과 태도에 시청자들이 바로 호기심을 표했다. 지놈은 마치 누가 듣기라도 할 듯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혹시라도 문제 될까 자세히 얘기는 못 하는데, 지금 퍼플 코인이 상한가를 치는 중이거든.”
이어 그는 턱을 괸 채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장난이 아니라 찐으로 바쁘실 거라니까? 어떤 숙제부터 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만 해도 시간 꽤 걸릴걸. 근데 그런 상황에서 합방을 제안한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거거든. 사람이 염치가 있지.”
-추놈에게 염치가 이따!?
-세상에 그딴 일이 제보 각이다 ㅋㅋㅋ
-그래도 맞말이긴 할 듯 ㅋㅋㅋ
-진짜 브스타에서도 완전 씹어 먹었는데
-내가 게임사라도 섭외 마렵긴 할 듯 ㅋㅋㅋ
-ㄹㅇㅋㅋ 지금 데머크만 봐도 개쩔자너
-킹직히 우리 형 몸값으로는 어림도 없을 듯
-5252, 갓플의 시간은 비싸다구?
-아아, 그것이 바로 ‘퍼펙트-타임’이라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표하지만 지놈의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 퍼플과의 합방만큼은 아니지만 대체재가 있긴 했다.
“아, 슬슬 시간 됐다.”
지놈은 다시 시간을 확인하고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가 미스틱리그를 실행하자 시청자들도 주의를 돌렸다.
-큐하!
-이클립스 지놈 조합도 괜찮긴 해 ㅋㅋㅋ
-이클님은 오늘도 정의기사 가이엔을 하실 것인가……
-아 ㅋㅋ 기사 아니면 안한다고
최근 지놈 방송의 정기 컨텐츠.
“자, 오늘도 돌아온 ‘이지 타임’! 이클립스 님의 미스틱 리그 적응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이클립스와 함께하는 미스틱 리그 듀오, ‘이지 타임’이 2부 방송이었다.
* * *
다음 날, 이른 오후.
이경복과 친구들은 번화가의 한 스터디 룸에 자리를 잡았다.
평소에 갔던 단골 카페가 아니라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
“오늘로 데머크 방송은 종료, 이제 다음 컨텐츠를 정할 때다.”
광고 방송을 끝낸 뒤, 그 이후의 방송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박주호는 스마트 링크를 조작해 회의실과 싱크로를 마쳤다. 널따란 벽면에 각양각색의 게임 목록이 투사됐다.
“브스타 이후로 들어온 광고 요청이야.”
“이렇게나 많이 들어왔다고?”
이경복은 벽을 가득 메우는 목록에 눈을 껌뻑였다.
최병훈은 옆에서 실실 웃음을 흘렸다.
“야, 그때 채널 마비된 걸 생각해 봐라. 다른 채널 다 멀쩡한데 네 것만 포화였잖아. 웬만큼 규모 되는 곳은 다 넣었을걸?”
“그 말대로 소규모 게임사는 아무래도 부담이 됐겠지. 한 번 쭉 살펴봐라.”
이경복은 빠르게 눈을 굴렸다.
그 중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게임이 하나 있었다. 아주 익숙한 게임이었다.
“거너 그라운드 전속 광고 모델?”
GGG사에서 온 제안서였다.
이경복을 전속 광고 모델로 섭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타임워페어 끝나고 미팅 기억나지? 마케팅 팀장이 따로 불러내서 말했었잖아.”
“당연히 기억나지. 근데 이게 진짜로 통과가 됐다고?”
갑작스러운 제안은 아니었다.
메이킹 필름 제작 전에 마케팅 팀장이 지나가는 듯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솔직히 널 안 쓸 이유가 없겠지. 네 덕분에 이벤트 매치도 완전 떴잖냐.”
“게다가 브스타에서 모바일 버전인 쇼다운도 꽤 주목을 받았지.”
두 친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경복은 그 반응에 실소를 흘리며 다른 게임들을 살폈다.
“흠…… 나머지는 전부 모바일 게임이네.”
“뭐, 직접 봐서 알겠지만 국내 게임사는 캡슐용 게임을 많이 만들지 않으니까.”
이경복은 찬찬히 목록을 훑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는 ‘이거다’ 하는 느낌이 오는 제안이 없었다.
“딱히 끌리는 건 없는데……”
“만약에 한다면 2개씩 묶어서 해야 될 거야.”
“2개씩?”
“어. 모바일 게임은 볼륨도 적으니까 하루치 방송으로 편성하기도 좀 힘들거든.”
그리 설명하며 최병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보여 줄 것도 사실 별 게 없어. MMORPG면 수동 사냥 좀 하다가 뽑기로 갈 거고, 캐릭터 수집형 게임이면 스테이지 좀 밀다가 막혔을 때 뽑을 거고……”
“장르 특성상 플레이 방식도 비슷해 사실상 뽑기가 주 방송 컨텐츠가 되겠지.”
“아, 물론 그게 재미없다는 건 아니야. 실제로 뽑는 재미로 모바일 게임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괜히 모바일 게임이 많이 나오는 게 아니에요.”
이경복은 두 친구의 설명을 듣다가 스마트 링크를 조작했다.
그 역시 회의실과 싱크로를 마치고 손을 움직였다.
“응?”
“이경복?”
벽면에 투사됐던 제안서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두 친구는 의아한 듯 이경복을 돌아봤다.
그는 친구들과 차례로 눈을 마주치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보면서 생각을 해 봤는데.”
뒷말은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순간 회의실에 찾아온 정적에 두 친구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느냐는 물음이 담긴 시선.
하지만 양쪽 모두 같은 시선을 보냈기에 의문은 오히려 커졌다.
그때 이경복이 답을 내놓았다.
“당분간 광고는 쉬는 게 좋겠다.”
작게 벌어진 입과 크게 뜨인 눈.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한창 주가가 오르고 일감이 넘칠 때인데 오히려 쉬자니?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안 좋은 예감이라도 든 건가?’
하지만 두 친구는 반발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경복의 ‘감’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광고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야. 이번 데머크는 특히 그렇지. 세계 최초에 독점, 그리고 바크도 재미있었으니까 데머크도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
이경복은 담담하게 설명했다.
“실제로 게임은 기대 이상이었고, 시청자들도 즐거워 보였어.”
두 친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정작 광고를 쉬자는 이유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근데 이 ‘광고’라는 것 자체가 좀 제약이 되는 것 같더라.”
“제약?”
“자유롭게 해도 된다고 했는데?”
이경복은 옅은 미소와 함께 손을 내저었다.
“아, 내가 제약이 있다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 말이야.”
그가 신경을 쓰는 건 바로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물론 심각한 건 아니고, 장난식으로 반응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시청자들이 마음 놓고 채팅을 치지 못하는 게 보이더라고.”
광고 방송에서는 해당 광고대상에 대한 표현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시청자들이 그리 조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게 혹시라도 나한테 불이익이 돌아올까 조심하는 게 보인단 말이지.”
무엇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트리머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유입이 있긴 했어도 다들 네 팬인데.”
“그만큼 너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문제가 될 건 아니지 않아?”
친구들 말에 이경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고맙지. 근데 이게 ‘즐겁다’라는 느낌은 아니더라고.”
누군가 자신을 걱정해주는 건 ‘기쁜’ 일이지만 ‘즐겁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경복의 원칙은 언제나 하나였다.
“물론 수입이 늘어나는 건 좋지. 그런데 나한테는 방송이 즐거운 게 최우선이거든. 솔직히 조금 전에 보여준 광고 리스트 중에서 내가 ‘즐겁게’ 플레이할 게임은 하나도 없는 것 같더라. 시청자들도 별로 즐거워할 것 같지도 않고.
어느 하나 끌리는 게 없었고 거너 그라운드 전속 모델은 플레이와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으음, 이게 사장으로서는 좀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는데……”
그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 이유였다.
‘사실상 운영은 이 녀석들에게 믿고 맡긴 거니까.’
방송에 힘써주는 친구들은 그와 원하는 바가 다를 수 있었다. 기회가 있을 때 잡는 걸 원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경복은 말을 맺었다.
“당장은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좋겠다 싶어.”
그 선언에 두 친구는 다시금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고.
“이거 참……”
“하여간 난 놈이라고 해야 되나.”
웃었다.
생각 외의 반응에 이경복이 눈을 크게 떴다.
“햐, 역시 넌 천상 스트리머다. 실력으로나 성격으로나!”
최병훈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원래 반짝하고 사라지는 애들은 우선순위를 모르거든. 지 잘난 맛에 취해서 방송의 근간이 뭔지 까맣게 잊어먹어요.”
“근간?”
“그래 인마! 방송이라는 게 쌍방향이거든. 아무리 네가 잘나봐야 보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시청자가 없는 방송은 그저 기록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기록으로서도 무의미했다.
“확실히 그 말대로지. 그리고 너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
“자격이라니?”
박주호의 맞장구에 이경복이 시선을 돌렸다.
“보통 광고가 들어오면 광고주가 갑, 스트리머가 을이다. 이건 스트리밍만이 아니라 미디어 업계 전반적으로 통용되지.”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스마트 링크를 조작했다. GGG의 제안서가 벽면에 투사됐다.
목록에 기재된 간략화 된 문서가 아니라 상세한 내용이 담긴 제안서였다.
“보다시피, GGG측에서는 광고 일정을 ‘협의’로 정해 두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지.”
“참,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니까.”
최병훈이 추임새처럼 감탄하며 웃었다.
“광고 일정에 네가 맞추는 게 아니다. 네 일정에 계획을 잡겠다는 거지.”
전속 모델로 점찍어 놓은 만큼 GGG는 모든 일정을 이경복에게 맞추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박주호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짙어졌다.
“전에도 말했지만, 칼자루를 쥔 건 너다. 그리고 이 많은 회사들이 너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지.”
“그러니까, 내가 갑이다?”
갑을관계의 역전.
두 사람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마. 너는 대체불가야, 대체불가. 시청자들이 유일등급 스트리머라 부르는 게 단순히 밈이 아니에요.”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난 널 지지한다.”
이경복은 두 친구의 대답에 웃음을 흘렸다.
문득 그의 뇌리 속에 떠오른 말이 있었다.
‘퍼플 님 정도면 세상에 맞출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세상이 퍼플 님에게 맞춰지죠.’
지놈과의 첫 합방을 마치고 그가 회식 때 했던 말.
세상은 천재에게 맞춰진다.
‘끝나고 지놈 형한테 연락 한번 해야겠네.’
방송과 보이스 팩 발매에 집중한 터라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터였다.
“좋아, 그럼 그렇게 결정하고.”
이경복은 흡족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이번 방송, 완벽하게 마무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