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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166화 (166/491)

166화 - 컨셉은 중대사다 (1)

체험 방송이 무사히 끝났지만 광고주, CAP Company는 안심할 수 없었다.

광고방송의 주목적이자 본론, 예약구매는 지금부터였다.

때문에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한국 유통사의 사옥은 여전히 밝았다.

“지사장님! 트, 트래픽 초과로 서버 다운됐습니다!”

팀장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지사장은 당황하지 않았다. 본래 예약구매가 시작되면 서버가 마비되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의 표정에 떠오른 감정은 당황이 아니라 놀라움이었다.

“오, 생각보다 무척 빠르군요. 그래도 대비한다고 대비한 건데 30분 만에 마비라니.”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번 체험 방송 반응이 무척이나 호평이었기에 다른 예약구매 진행보다 더 넉넉하게 대비를 해두었던 터였다.

그럼에도 오히려 다른 때보다 더 빠르게 서버가 터져 버렸다.

“일단 예정대로 정상화 진행하세시고, 판매량 보고도 바로 올려 주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바로 판매량 보고서가 올라왔다. 홀로그램 서류를 바라보는 지사장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고작 30분 동안 진행된 판매였지만.

‘한정판은 전량 완판인가.’

수량이 제한된 한정판은 모두 판매가 완료됐다.

[‘임모탈’ 에디션 – 1000/1000 (01:17)]

실물 듀란테 피규어와 아트북이 포함된 한정판은 약 1분 만에 매진됐다. 32만 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동이 난 것이다.

[‘헬게이트’ 에디션 – 10000/10000 (03:47)]

피규어는 없이 아트북만 제공되는 한정판도 약 4분이 되지 않아 매진됐다.

그러나 그 보다 지사장의 눈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었다.

[‘퍼펙트’ 에디션 – 40,756 (29:53)]

한정 특전 없이 판매되는 일반적인 판매 모델, 추가 구성품은 오직 ‘퍼펙트 보이스’ DLC의 100% 할인코드뿐인 상품.

서버가 마비되기 전까지 약 30분간 그 일반판의 판매량이 4만을 넘은 것이다.

‘이건 대체?’

기쁜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의구심이 들었다.

본 방송 채널의 최고 시청자수가 2만을 넘었었다. 그런데 한정판을 포함해 한국 지사의 판매량이 30분 만에 5만을 넘었다.

‘시청자들이 모두 샀다고 해도 30분 만에 3만이라는 숫자는 너무 격차가 큰데.’

실상 시청자들이 바로 구매에 동참한다는 것도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그는 잠시 눈을 굴리다가 대기하는 팀장을 다시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지사장이 상황에 대해 묻자 팀장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되팔, 아니 리셀러들이 아닐까요?”

리셀러, 한정판을 판매 목적으로 사들이고 비싼 값에 되파는 이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확실히 이번 예약구매에 그런 이들이 꼬였을 터였다.

“하지만 리셀러들이 일반판을 살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지사장은 여전히 의아했다.

한정판이 전부 매진된 시점에는 서버가 정상이었다. 리셀러들이 다시 팔지도 못하는 일반판을 살 이유는 없을 터였다.

“아, 지사장 님. 트래픽 초과 원인이 파악됐습니다. 해외 접속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해외 접속?”

지사장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예약구매는 한국 지사가 도맡아서 하는 게 아니었다. 북미 지사와 일본 본사에서도 각기 따로 판매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해외 직구로군요.”

북미와 일본은 패키지 시장이 활발한 만큼 한정판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일부 사람들이 국제 배송을 이용하더라도 비교적 경쟁이 덜한 한국 쪽을 노린 게 분명했다.

“국외 접속 기록 중에 한정판 구매에 성공한 계정만 따로 뽑아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팀장이 나가자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가볍게 옷매무시를 가다듬은 그가 스마트 링크를 조작했다.

<다들 오신 것 같네요.>

북미지사와 일본 본사의 임원들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예약구매 상황 보고를 위한 미팅이었다.

<서버가 마비 됐을 때는 어쩌나 싶었습니다만, 그 전에 한정판은 모두 판매 완료가 됐습니다.>

<다행입니다. 이걸로 준비된 한정판은 모두 소진됐네요.>

이어지는 그들의 설명에 지사장은 다른 나라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나 말씀 드릴 게 있습니다.”

그는 조금 전 발견한 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본사 임원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졌다.

<흠…… 그건 좀 곤란하네요. 이번 한정판은 어디까지나 ‘국가별’로 수량을 정했으니까요.>

그는 잠시 눈동자를 굴리다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우회 구매자들은 판매를 취소해주세요. 그리고 그 취소분은……>

본사 임원은 은은한 미소와 함께 말을 맺었다.

<체험방송으로 큰 공로를 쌓아 주신 퍼플 님에게 이벤트 상품으로 나누어 주는 걸로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오, 그거 정말 좋은 방안입니다.>

지사장은 바로 수긍했고 북미 지사도 흡족해 했다.

미팅의 분위기는 더 없이 즐거웠다. 서버가 마비 됐음에도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럼 ‘스트림’의 판매량을 보도록 하죠.>

스트림(Stream).

명실상부 세계 최대 가상현실 게임 플랫폼의 이름이었다.

예약구매 페이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실물’이 포함된 한정판의 판매가 주였다. 그곳에서 구매한 일반판 역시 스트림에 게임을 등록하는 형식이었다.

[Demon Must Cry]

[Stream Unit – 1,070,479]

현재 전 세계 게임 보유자의 수는 100만이 넘었다. 구매가 시작 된지 1시간도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 숫자를 보자마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고무적인 결과입니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밀리언셀러라니!>

<정말 상상 이상이군요. 제 기억으로 바이오 크라이시스가 ‘첫날’ 판매량이 40만이었던 것 같은데……>

임원들은 기쁨을 숨길 수 없었다. 자사의 다른 대표 게임보다도 월등한 성적이었다.

그것도 같은 기간이 아니라 고작 1시간 만에 그 격차가 벌어졌다.

“이렇게 되면 엘든 소울의 기록을 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사장의 말에 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기세라면 첫날 판매량 기록은 가뿐하게 넘어설 겁니다.>

<엘든 소울이 총판매량이 1,500만이었죠? 확실히 무난히 넘어가겠군요.>

그리 너털웃음이 터진 와중 지사장의 눈에 이례적인 기록이 잡혔다.

“이건 또 정말 특이한 경우로군요.”

그가 슬쩍 스마트 링크를 조작해 기록을 확대했다.

[Demon Must Cry, ‘Perfect Voice’ DLC]

[Stream Unit (Without Game) – 51,479]

그것은 게임 본편을 구매하지 않고 DLC만 구입한 계정의 숫자였는데 퍼플의 보이스 팩만 산 사람들이 무려 5만 명이 넘었다.

<아무래도 할인을 기다리는 고객님들인 것 같군요.>

<이건 정말 이례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저 5만 명 모두 잠재적인 고객님이 되겠군요.>

당장 게임을 사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DLC만 먼저 구입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이유가 없었다.

한정판매도 아니었고 할인을 기다린다면 DLC 할인도 같이 기다리는 게 논리적이지 않나.

그럼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퍼플 님의 팬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오로지 팬심 하나만으로 먼저 구입을 결정한 것이다.

<이것만 봐도 체험방송의 효과가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네요.>

<마침 잘 됐습니다. 한국 지사에 전해드릴 좋은 소식이 있거든요.>

“좋은 소식이요?”

지사장의 눈이 크게 뜨이자 다른 임원들은 모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스트리머 퍼플의 섭외와 원활한 방송 진행, 그 효과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논공행상은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사 임원은 가볍게 스마트 링크를 조작해 서류를 전송했다.

“이건?”

<본사 결정입니다. 판매량과는 무관하게 한국 지사 임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하며 특별 성과급 지급이 결정되었습니다.>

체험 방송이 진행되면서 본사 쪽에서는 이미 성과급 지급을 확정했었다. 그만큼 방송에 깊은 인상을 받은 터였다.

<새삼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판단이 드는군요.>

“감사합니다. 모두에게 큰 선물이 될 겁니다.”

<하하, 아닙니다. 대신……>

본사 임원이 살짝 말끝을 흐리자 지사장은 긴장했다. 성과급을 핑계로 다른 요구가 또 있는 건 아닐까.

<아무쪼록 앞으로도 퍼플 님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십시오.>

“아, 물론입니다.”

이어지는 그 말에 지사장은 웃음을 흘리며 확언했다.

“한정판 취소분은 물론 감사도 확실히 전달토록 하겠습니다.”

<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만 아니었으면 직접 이 자리에 초빙이라도 했을 텐데 말이죠.>

<직접 감사를 전해드리는 게 가장 좋겠지만, 아무래도 주무실 시간이겠지요.>

<또 좋은 기회가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지사장은 두 임원의 반응에 미소를 지었다.

평소 심각한 미팅과는 다르게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 * *

한편, 이경복의 집.

임원들의 생각은 다르게 그는 아직 잠에 들지 않고 있었다.

“후우……”

말끔히 샤워를 마치고 나온 이경복은 스마트 링크를 확인했다.

[>일주일간 고생했다 ㅋㅋ]

[>내일은 휴방임]

샤워 전,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톡 아래로 친구들의 답이 달려 있었다.

[>고생이야 네가 제일 많이 했지]

[>휴방하는 김에 나는 통번역 쪽 좀 알아볼게]

[>푹 자고 쉬어라.]

[>최병훈, 너는 마저 고생하고.]

박주호가 남긴 톡에 이경복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쉬라니까 뭘 자꾸 일을 해.”

그는 스크롤을 조금 더 내려 최병훈이 남긴 톡을 확인했다.

[>ㅇㅋ 다들 고생했다]

[>나도 오늘은 일찍 잘 거]

[>엔딩 파트가 길어서 편집은 오히려 쉬움 ㅋㅋ]

[>ㅅㄱ!]

최병훈은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업무시간이었다. 이경복은 가볍게 남은 물기를 털어내고 침대에 누웠다.

이대로 잠을 청할까 싶었지만.

‘아, 지놈 형 요즘 뭐하나 좀 볼까.’

방송 끝내고 지놈에게 연락 한 번 하기로 생각했던 바, 최근 뭘 하는지 알아두는 편이 좋을 터였다.

그는 바로 지놈의 방송을 확인했다.

[우당탕탕! 폭풍을 부르는 적응 대작전! ‘이지 타임’]

[GENOME]

[Mystic League]

방제와 게임을 확인한 그는 실소를 흘렸다.

‘이클 님이랑 합방이네?’

그는 바로 방송을 확인했다.

이클립스의 적응을 위해서인지 랭크 게임은 아니었다.

‘이게 그 3:3 라인전인가……’

하물며 5:5 게임도 아니었다.

각 플레이어가 탑과 미드 그리고 바텀 라인만을 맡는 3:3 일반 게임이었다.

<이클님? 이클님! 제발 좀!>

지놈의 간곡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에 이경복은 바로 관전모드로 바꾸어 이클립스를 찾았다.

“이거 참……”

이경복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육중한 갑옷을 입은 이클립스의 챔피언, 정의기사 ‘가이엔’은 탑 라인에서 상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리 승세가 확실함에도 지놈이 애원하는 이유는 하나.

<스킬, 스킬 좀 쓰시라니까요!>

이클립스가 챔피언의 스킬 하나 사용하지 않고 검술만으로 상대를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럴 가치가 없는 상대인지라.>

이에 돌아온 이클립스의 답에 채팅창이 웃음으로 가득해졌다.

-???: 나는 나보다 약한 상대에게 스킬을 쓰지 않는다.

-아 ㅋㅋ 센 놈 데려오라니깐!?

-뭐라 못하는 게 진짜 피지컬이랑 평타로만 잡아버림 ㅋㅋㅋ

-이클 님이라서 가능한 무친 플레이!

-킹직히 우리 가붕이 좋은 챔이거등요!?

-ㄹㅇㅋㅋ 파일럿이 누구냐에 따르다 다르다 이말이야

-오늘도 고통 받는 지놈ㅋㅋㅋㅋ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 시청자들은 그 상황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클 님답긴 한데.’

이경복 역시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들었다.

탑 라인의 승부는 주로 1:1로 이루어진다. 지놈도 그 사실을 알기에 3:3 라인전임에도 이클립스를 탑으로 보냈을 터였다.

성격으로 보나 스타일로 보나 그는 탑라이너가 딱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탑라이너라고 해도 이러면 랭겜에서 적응을 못할 텐데.’

그러나 미스틱 리그는 명백히 ‘팀플레이’가 필요한 게임이었다. 1:1 승부에 아무리 능숙하다고 해도 팀이 밀리면 패색이 짙어질 터였다.

‘3:3 게임에서는 한타도 제대로 안 될 거고, 스킬 운용도 연습을 거의 안하시는 것 같은데.’

이경복의 눈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몸에 배인 습관처럼 게임 속 전황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지놈 형 의도는 알겠는데……’

능력치가 존재하는 엘든 소울과 레벨 개념도 없는 미스틱 리그는 체감이 완전히 다르다. 지놈은 말 그대로 ‘적응’이 우선이라 판단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경복의 생각은 달랐다.

‘이클 님은 어차피 현실에서도 검술을 연습하셨던 분이니까 이런 적응은 불필요하지.’

처음부터 이클립스는 몸을 쓰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새삼 ‘동작’에 관한 적응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보다는 미스틱 리그만의 특성인 팀플레이와 스킬 운용을 익히는 게 나았다.

‘이러면 오히려 문제점 개선이 느려질 수밖에 없어.’

사람은 본래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안 그래도 1:1에 능숙한 이클립스인 만큼, 3:3 라인전으로만 연습하면 오히려 안 좋은 습관이 붙을 수도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제외하고도 이경복이 제일 우려하는 건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러면 재미를 제대로 못 느끼실 거고.’

이경복은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전 이클립스의 말투에서 권태가 묻어나왔다. 그 역시 자신처럼 강한 상대, 아슬아슬한 승부를 즐기는 쪽이었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미스틱 리그 자체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었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본 결과 랭크 게임까지는 아니더라도 5:5 일반 게임으로 연습하는 게 옳았다.

‘근데 이거…… 내가 좀 주제넘는 거 아닌가?’

그러나 무턱대고 훈수를 둘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이 방송의 주인은 지놈이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지놈이 구상해둔 컨텐츠가 있을 테니 방해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재미있으면 좋겠는데.’

이경복은 잠시 말을 골랐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뒤 신기를 가늠해 보았다. 그가 개입하는 게 혹여나 ‘흉’이나 ‘화’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으음……”

반동으로 약간의 두통이 찾아오긴 했지만 그리 강하지는 않았다. 먼 미래를 내다본 것도 아니었고, 확인하고자 하는 게 두루뭉술한 덕이었다.

그 반동과는 별개로 신기가 알려준 느낌은 평온했다.

이에 이경복은 가볍게 채팅을 쳤다.

-3:3도 꿀잼이긴 한데 5:5는 안 하시나요?

직접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 완곡한 물음이었다.

그런데 그 채팅 하나가 방송의 분위기를 일순간에 변화시켰다.

-미드 미아 아님?

-미아 아닌데?

-구라핑 그마내!

-형은 이리저리 붙지 말고 자기 라인이나 잘 지키라고!

-쥐놈 본능 나와버리쥬?

-?

-방금 뭐임?

-헐? 찐임?

-엌ㅋㅋㅋㅋㅋ 몰래 찾아온 손님

-자는 거 아니었냐구웃!

-퍼손실 충전을 이렇게 해주네 ㅋㅋ

지놈의 플레이를 놀리는 채팅에서 갑자기 주의가 그에게 집중됐다.

그렇게 주의가 돌아간 건 시청자들만이 아니었다.

<어? 뭐야? 퍼플 님 오셨다고?>

<퍼플 경께서 오셨단 말이오!?>

지놈과 이클립스가 순식간에 라인을 장악하고 목소리를 냈다.

<오! 퍼하! 이번 데머크 체험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 편 올라오죠?>

<퍼플 경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법!>

지놈이 안부를 전하는 사이 이클립스는 상대를 향해 쇄도했다. 갑자기 바뀐 공세에 놀란 상대가 타워로 도망쳤지만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엌ㅋㅋㅋㅋㅋ

-갓플 버프 무엇?

-등장만으로 버프를 주는 스머가 이따!?

-이클 님 텐션 올라가는 거 보소 ㅋㅋㅋㅋ

-그 와중에 쥐놈은 바로 타워 허깅 ㅋㅋㅋㅋ

-쥐하다 추놈아……

이경복의 등장으로 채팅창의 텐션도 달라졌다.

<아니, 이미 거의 다 이긴 게임이니까 좀 쉬는 거지! 아무튼, 퍼플 님 주무실 시간 아니에요? 요즘 바쁘셔서 컨디션 관리 잘하셔야 할 텐데.>

지놈의 물음에 이경복은 다시 채팅을 쳤다.

-잘려고 누웠죠 ㅋㅋㅋ

-잠깐 보려는 건데 미스틱 하셔서 물어본 거예요 ㅋㅋ

-그리고 이제 숙제 끝내서 안 바쁨 ㅎㅎ

그 채팅에 지놈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어? 숙제 더 안 하세요? 완전 과목별로 쌓여 있을 건데?>

-과목별 ㅇㅈㄹㅋㅋㅋㅋ

-갓플 오니까 슬슬 트최입 본능 나오쥬?

-이클님 타워 철거 속도 무엇?

-둘 다 버프 제대로 받네 ㅋㅋ

<아니, 얘들아. 너희들이 진짜 몰라서 그래. 지금 업계에 대세는 블루칩이 아니라 퍼플칩이라고 소문이 다 났다니까?>

-무친 ㅋㅋㅋ 퍼플칩은 또 뭔데-아 ㅋㅋ 본인이 이제 안 바쁘다고 하잖슴!

-아아, 그것이 바로 ‘퍼펙트-스케줄’이라는 것이지.

-흐흥! 안 바쁘면 같이 놀든가!

-츤데레 뭐냐고 ㅋㅋㅋㅋ

-말투 개 같아서 신고 눌렀습니다

-ㄴㄷㅆ 얼른 쳐내!

곧바로 이어지는 티키타카에 이경복은 웃음이 나왔다.

-당분간은 하고 싶은 거 할 거예요 ㅋㅋㅋ

-근데 이거 두 분이서 하는 컨텐츠 아니에요?

그가 다시금 채팅을 치자 또다시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아니, 아니아니! 그럼 진짜 잘 됐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1:1로 이클 님 이기는 사람이 없었어요. 괜찮으시면 와서 퍼펙트 훈수 한 번 해 주세요!>

<퍼플 경의 가르침이라면 무슨 말이든 따를 것이오!>

지놈이 목소리를 높였고 이클립스는 타워를 박살낸 뒤에 높이 검을 들었다.

-무친? 퍼지데이 각?

-퍼지데이! 퍼지데이! 퍼지데이!

-핫하! 숙청 파티다!

-지금 바로 한다고?!

-아 ㅋㅋ 오늘 잠 다 뒤졌다

이어 흥분한 채팅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경복은 이에 고민했다.

‘당장 하겠다는 건 아니었는데?’

같이 노는 거야 환영할 일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참여할 수는 없었다.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안 그래도 조금 전 친구들에게 휴방을 고지하지 않았던가.

지금 합방을 하면 친구들의 부담이 가중 될 터였다.

이에 어떻게 거절할까 고민하는 와중이었다.

<얘들아, 급발진한다고 너희가 제로백 버스 되는 거 아니거든? 퍼플 님 방송 끝낸 지 얼마나 됐는지 몰라? 이것들이 아주 미쳐 가지고.>

지놈이 먼저 시청자들을 진압했다.

<지놈 경의 말이 옳소이다. 이런 식으로 부탁하는 건 기사도 이전에 예의가 아니오. 다들 경거망동 마시오.>

이클립스가 이에 말을 덧붙이자 채팅창도 금방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 ㅋㅋ 고건 맏찌

-퍼란테 최종보스전 못 봤냐구웃!

-ㄹㅇㅋㅋ 완전 개쩔었자너

-퍼지데이면 무적권 기다리지 ㅋㅋㅋ

-않이;; 근데 쥐놈은 먼저 합방 말 꺼내놓고 우리 탓만 하는 것 실화?

-진짜 ㅋㅋ 자기만 쏙 빠지는 거 보소

-추놈이 또 추해버렸다 이말이야

시청자들은 장난스럽게 타겟을 지놈으로 돌렸다.

<어? 이 자식들이 지금 데머크 스포하려고? 이클 님 검술보다 무서운 칼질 좀 보여줘?>

지놈도 자연스럽게 주의를 돌렸다. 이경복은 그 흐름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역시 이런 맛이지.’

광고 방송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분방한 기분이었다. 이경복은 슬쩍 시간을 확인하고 마지막 채팅을 쳤다.

계속 봤다가는 정말 방송에 방해가 될 지도 몰랐다.

-그럼 자세한 건 내일 얘기하죠!

-트바!

그는 잠을 청하며 새삼 확신했다.

‘미스틱 리그 합방, 재미있겠네.’

방송이란 역시 재미가 최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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