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 컨셉은 중대사다 (2)
이른 오후, 도심의 번화가.
약속장소에 도착한 지놈은 힐끗 시간을 확인했다.
‘먼저 들어가 있기에는 좀 애매한 시간이네.’
잠시 고민한 그는 조금 더 시간을 때우기로 하고 스마트 링크를 잡았다.
인터넷에 접속한 그가 찾은 곳은 바로 메타게이머였다.
[과거와 현재의 ‘퍼펙트’한 세대교체]
메인 기사로 떡하니 올라온 것은 다름 아닌 데몬 머스트 크라이의 기사였다.
[콘솔, 이제는 그립게까지 느껴지는 용어입니다.
캡슐의 등장으로 인한 가상현실 게임의 재미와 비교한다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게이머들에게는 추억과 애정으로 다가오는 시절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소위 ‘근본’으로 손꼽히는 여러 게임들이 있었습니다.
데몬 머스트 크라이, 데머크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기사의 서두는 옛 추억을 자극하는 문장으로 시작됐다.
이어지는 내용에는 이경복의 플레이 장면이 삽입되어 이번에 공개된 신작에 대한 찬사가 주를 이루었다.
[스크린 속 폴리곤으로 이루어져 있던 듀란테는 가상현실에서 생생한 캐릭터로 되살아났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저와 같이 콘솔을 추억하는 게이머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게임사는 더 많은 걸 담아 주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스토리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넘어가 주세요)]
[스포일러 내용 열기/접기]
해당 부분을 열자 짤막한 클립이 나왔다. 두 명의 듀란테가 나누는 대화의 컷신이었다.
[과거, 콘솔판의 듀란테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너는 나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됐다.”
스토리 상 중요한 대사기도 하지만, 저는 이 대사가 개발사의 메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의 시간은 여기까지다.”
이어지는 듀란테의 대사입니다. 이제 과거, 콘솔 속의 듀란테는 사라지고 지금의 듀란테만이 남게 됩니다.]
그 아래에는 또 다른 클립이 준비되어 있었다. 최종보스전 이후의 컷신이었다.
[서로 양립하고 있던 두 명의 듀란테 중 하나만이 남았습니다. 가상현실의 등장으로 콘솔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한 거죠.
그러나 그럼에도 듀란테는 이렇게 말합니다.
“악마는 울지 않으니까.”
콘솔판 듀란테는 눈물을 흘립니다.
이 장면은 두 명의 듀란테를 알고 있는 저에게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느끼셨을 겁니다.
이 눈물은 슬픔이나 고통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입니다.
그는 지금의 듀란테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며 그에게 자신의 역할을 무사히 넘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스포일러 부분이 끝났다. 그 아래에는 스트리머 퍼플, 이경복의 모습이 나왔다.
[스트리머 퍼플.
이분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단순히 스토리로만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그 감동은 반감됐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데머크의 정체성은 ‘스타일리쉬’니까요.
아무리 가상현실, 최첨단 기술로 듀란테가 재탄생해도 그 정체성을 구현하지 못했다면 아무도 이런 메시지에 공감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어 첨부된 영상은 퍼플 큐튜브에 올라온 액션 하이라이트 모음집이었다.
[보다 더 나은 듀란테, ‘퍼펙트 듀란테’가 있었기에 우리는 더 그 메시지에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체험방송에서 저를 비롯해 많은 시청자들이 ‘완벽’한 듀란테의 귀환이라고 평가할 정도였으니까요.
만약 다른 사람이 데머크를 공개했다면?
글쎄요, 아마도 저는 이렇게 반응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건 듀란테가 아니야!”]
안경을 쓴 남자가 캡슐을 박차고 나오는 그림이 아래에 첨부되어 있었다.
메타게이머에서 자체적으로 준비한 일러스트였다.
[다행히 듀란테의 부활은 게임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성공했습니다.
CAP Company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예약구매 수량이 벌써 300만 장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분명 이런 호황에는 퍼플 님의 목소리가 담긴 DLC도 한 몫 했을 겁니다.
슬슬 ‘퍼플 코인’이 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재미있는 게임과 완벽한 플레이어의 조합.
기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기쁜 나날입니다.
(관련기사)
<악마는 ‘퍼플’을 입는다.>
<국적은 달라도 한마음, ‘퍼펙트 듀란테’의 등장!>
<‘퍼펙트보이스’를 라이브로! DLC 출시 예고>]
지놈은 기사를 마지막까지 읽고 웃음을 흘렸다.
‘요약하면 퍼플이 퍼플했다는 거지.’
기사 댓글을 열어보니 그와 비슷한 평가가 다수였다.
[-와 ㅋㅋㅋ 내 이야기인줄]
[-기자님 데붕아재들의 표본이신 듯 ㅋㅋㅋ]
[-콘솔판 듀란테 복장 나올 때부터 좀 울컥했다 이말이야]
[-진짜 공감되는 게 퍼란테 아님 욕먹었음 ㅋㅋㅋ]
[-붕란테 보여주면서 부활 ㅇㅈㄹ 떤다? 개같이 멸망이쥬?]
[-우리는 갓플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제발 데머크 예구합시다!]
지놈은 실소를 흘리며 댓글을 보다가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아이고,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도저히 20대로 보이지 않는 얼굴의 소유자, 이클립스가 웃으며 다가왔다.
“아뇨, 아뇨! 저도 막 왔습니다. 한 3분 됐나?”
그가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시간 까지는 아직 10분이나 남아 있었다.
“어? 다들 일찍 도착하셨네요?”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에 두 사람이 눈을 돌렸다. 이경복이 해맑게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조금 전에 왔습니다.”
“다들 비슷하게 도착했네. 야, 근데 진짜 점심 여기서 괜찮아?”
이클립스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지놈은 마주 웃다가 턱짓으로 가게를 가리켰다.
그들이 만난 장소는 패스트 푸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장소를 정한 건 이경복이었다.
“괜찮다니까. 원래 치팅데이 때는 이런 게 더 땡겨.”
“음음, 저도 그 마음 이해합니다.”
“거참, 이래서야 생색도 못 내겠네.”
이클립스까지 동감하니 지놈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세 사람은 가게로 들어가 주문을 마친 뒤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근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미스틱 리그 합방은 언제 하기로 한 거야? 이클 님은 저번 회식 때 잠깐 이야기를 하시긴 했었는데.”
“아, 저번에 이클 님이랑 브스타 같이 가기로 하면서 얘기가 나왔었어.”
“예, 맞습니다. 이왕 도전해보는 거, 혼자 하는 것보다는 더 나을 것 같아서요.”
이경복에 대한 근황은 달리 얘기할 게 없었다.
“퍼플 님 영상 보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미스틱 리그 하면서 적용해보려는 부분도 있었고요.”
“미스틱 리그에요?”
“예, 가이엔이 마침 대검을 써서 많은 참고가 됐습니다.”
이클립스는 물론.
“와, 나는 네 영상 보면서 진짜 고민 많이 했잖아.”
“고민? 무슨 고민?”
“아무리 봐도 너처럼 퍼펙트 엔딩까지는 못 갈 거 같더라고. 그래서 발매되면 나는 다른 컨셉으로 가기로 결정했지.”
“어떻게 하려고?”
“퍼펙트 엔딩이 있으면 워스트 엔딩도 있어야 할 거 아니냐. 일부러 최악의 선택을 찾아내 보는 거지.”
지놈 역시 그의 방송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아, 이거 왠지 좀 미안하네요.”
“뭐가 미안해?”
“왜 그러십니까?”
두 사람이 의아해하자 이경복은 머쓱하게 웃었다.
“아니, 저만 뭔가 생각보다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서……”
“아, 난 또 뭐라고. 야야, 전혀 미안할 필요 없어. 그렇죠, 이클 님?”
“예, 물론입니다.”
두 사람은 마음이 통한 것처럼 바로 손사래를 쳤다.
“그런 생각 하면 오히려 불편해져. 이런 식으로 방송 모니터링을 의무로 느낀다? 그러면 관계가 오래 못 가요.”
“저도 동의합니다. 퍼플 님 방송은 그냥 보고 싶어서 본 거지, 제 방송도 봐달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진심이 담긴 대답에 이경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후, 그가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아, 형 혹시 통번역 쪽에 아는 사람 있어?”
“통번역?”
“그게……”
이경복은 사정을 설명했다.
큐튜브 멤버십 전용 영상 제작을 위해서 영어와 일어 번역이 필요했다.
박주호가 찾아본다고 하긴 했지만 전부 맡기는 건 좀 미안했다.
“으음, 이쪽은 나도 잘 모르는데. 이클 님은 혹시 아십니까?”
“아뇨, 저도 잘 모릅니다.”
애당초 세 사람 중 통번역이 필요한 경우는 이경복이 처음이었다.
지놈은 잠시 눈을 굴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원한다면 내 MCN 쪽에 물어볼 수는 있긴 한데. 쯧, 괜히 그쪽에서 이걸 빌미로 너한테 집적거릴 것 같아서 웬만하면 마지막 수로 남겨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아, 그러면 됐어. 그냥 매니저 친구가 찾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가볍게 물어본 거니까.”
그 대답에 지놈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도 통번역 실력만 보고 뽑지는 마.”
“왜?”
“원래 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르잖아. 한국말로도 편집하는데 센스가 중요한데 외국어는 더 그렇지. 되도록 개인방송에 익숙한 사람 찾는 게 좋지 않겠어?”
“음, 그건 그렇네.”
“아니면 퍼플 님 구독자 중에서 찾아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클립스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는 시선이 모이자 마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구독자면 퍼플 님과 관련된 밈에도 익숙하고 느낌도 잘 알 테니까요. 제 편집자님도 구독자분이셨습니다.”
“아, 확실히 그것도 좋겠네요.”
이경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전 이스케이퍼스 이벤트 때 보니 구독자 중에서도 똑똑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가.
“조언 감사합니다. 친구한테 전해둬야겠네요.”
그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식사를 전부 마쳤다. 하지만 본론은 지금부터였다.
“뭐, 회의 좀 해 보자고 했지만 사실 큰 줄기는 이미 정해져 있지.”
지놈이 먼저 미스틱 리그 진행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웃으면서 이경복을 바라보았다.
“네가 오더하고 우리가 따른다. 그리고 이긴다. 심플하잖아?”
“퍼플 님 오더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죠. 5:5 게임도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이클립스도 동감하듯 미소를 지었다.
“오더야 자신 있지.”
이경복도 이에 동의했다.
지놈은 감자튀김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찍어 먹으며 물었다.
“혹시 뉴턴좌는 못 온데?”
한 차례 팀업을 했던 만큼 이번에도 합류하면 반응이 좋을 터였다. 그러나 그녀와 소통할 수 있는 건 이경복뿐이었다.
“아, 안 그래도 오전에 물어봤었는데.”
이경복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바, 아침 일찍 이야기를 전해두었다.
‘야외 예능 촬영 때문에 힘들다고 했지.’
그러나 이번에는 시간을 낼 수 없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 속사정을 두 사람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일이 좀 바빠서 힘들다네.”
“그래? 흠…… 아쉽네.”
“뭐,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싫어하는 건 아니었어. 여건이 안 된 거지.”
지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크…… 뉴턴좌 사격 솜씨 보면 원딜로 딱인데.”
“나중에 또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보다 챔피언 픽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는 계속 가이엔으로 가려고 하는데……”
이클립스는 슬쩍 이경복의 눈치를 살폈다.
만약 그가 다른 챔피언을 지목하면 언제든 바꿀 마음이지만, 그래도 익숙한 걸 하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아, 두 분 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하시면 됩니다.”
그 걱정이 무색하게 이경복은 곧바로 답했다. 이에 두 사람은 흡족한 표정으로 서로 시선을 나누었다.
“크으! 이게 바로 퍼펙트 야미의 여유? 그럼 나는 조합 보고 유동적으로 골라볼게.”
“확실히 퍼펙트 야미라면 어떤 경우라도 안심이 되죠.”
그러나 그 미소는 이내 의문으로 바뀌었다.
“어, 저 이번에 야미 안 할 건데요?”
“……뭐?”
“야미를 안 하신다고요?”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이내 그 눈빛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이경복이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분명 따로 준비한 게 있을 터.
“이번에는 이렇게 가 보려고요.”
아니나 다를까 이경복은 플레이 할 새로운 챔피언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 두 사람의 광대가 올라갔다.
“와, 너 진짜 천재냐? 이거 진짜 그림 좋은데?
“확실히 무척 재미있는 조합이 될 것 같습니다.”
게임 플레이로서도 방송으로서도 좋은 선택이기 때문이었다.
* * *
그날 저녁.
지놈의 방송시간이 가까워졌다.
-지사장! 얼른 문 열어!
-아 ㅋㅋ 방송 시간 칼같이 지키는 거 킹받네
-지금 줄 선 사람들 안 보이냐구웃!
-와씨 ㅋㅋㅋ 근데 진짜 개많아졌네
-대기인원이 2만 명? 우리 형 방송 맞나?
-진짜 이 형은 빨대각은 제대로 본다니까 ㅋㅋㅋㅋ
-ㄹㅇㅋㅋ 이클 님 합방도 1만이었는데
지놈이 유명한 스트리머긴 했지만 단독으로 1만이 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이클립스와 합방을 진행하면서 평균 시청자 숫자가 1만을 웃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퍼플과의 합방이 공표되자마자 그 숫자가 2배에 달하게 된 것이었다.
그 이유는.
-미스틱 리그 잘 모르지만 갓플 보러 옴 ㅎㅎ
-모르는 데 어케 보쉴?
-킹치만, 퍼단증상 해결하려면 어쩔 수 없는 걸?
-아 ㅋㅋ 대체제가 없다니깐!?
-퍼란테는 어디서든 스타일리쉬할 거라 이말이야
-ㄹㅇㅋㅋ 퍼튜브 보면 알쥬?
-아직도 그립읍니다ㅠㅠㅠ
패키지 게임만 즐기는 시청자 층도 합류한 덕이었다.
-근데 여기에 도네하면 갓플한테도 돌아가는 거 있음?
-데붕아재들 벌써 과금 생각하는 거 보소 ㅋㅋㅋ
-몰?루?
-아마 나눠가지지 않을까?
-아 ㅋㅋ 휴방 중에도 후원할 수 있게 좀 해달라고!
-근데 이건 휴방이라고 하긴 뭐하잖슴 ㅋㅋㅋㅋ
-휴방이랑 합방을 동시에 하는 스머가 이따?
-블랙기업특) 출근 안 찍고 주말근무 시킴
-이게 바로 블랙기업식 휴방?
-근데 사장이 왜 그런 일을 하냐고 ㅋㅋㅋㅋ
더욱이 ‘휴방’ 공지가 올라온 터라 퍼플의 채널로 분산되지도 않았으니 시청자 숫자는 갈수록 늘어날 따름이었다.
이윽고 예정된 방송시간이 되자.
“트하! 유전자 레벨로 입 터는 남자, 지놈입니다!”
지놈이 인사 멘트와 함께 등장했다.
-갓플 왔다고 소개멘트 바로 바꾸는 거 보소 ㅋㅋㅋㅋ
-유전자 레벨로 갈아타는 쥐놈 ㅇㄷ?
-트최추! 트최추! 트최추! 트최추!
-아 ㅋㅋ 됐고 얼른 갓플이랑 이클 님 데려오시라고요
-지손실 마렵네
시청자들은 바로 그를 놀려댔다. 하지만 지놈은 여유로웠다.
“자, 오늘은 오랜만에 돌아온 퍼지데이! 여러분, 나와 주세요!”
“트하! 반갑습니다!”
“오늘도 진심전력을 다하겠소!”
평소와 달리 그는 뜸 들이지 않고 바로 이경복과 이클립스를 스튜디오로 불러들였다.
-?
-이렇게 빨리 나온다고?
-뭐지? 드디어 쥐놈이 지놈이 된 것인가?
-뜸을 안 들인다?
-5252, 밥통이 고장 난 거냐구웃!
평소와 다른 그 행동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떠오르자 지놈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선보였다.
“아니, 원하는 대로 해 줬는데 왜 갈고리야? 뭐, 문제 있어?”
진행을 빨리 이어나간 이유는 하나였다.
‘시청자가 모일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지.’
이전에는 시청자 유입을 위해 시간을 들였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경복이 합류한다는 소식만으로 시청자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지 않나.
-아 ㅋㅋ 갓플 오니까 이 형 신났네 진짜
-이게 그 호가호위 그거냐?
-당당한 모습 보기 좋아서 지튜브 구독 한 번 더 눌러드렸습니다^^
-바로 구독 취소해버리기 ㅋㅋ
-트라이는 왜 스머 별 음소거 버튼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지?
시청자들은 여느 때와 같이 장난스럽게 반발했다. 지놈은 가볍게 손뼉을 쳐서 주의를 돌렸다.
“자자, 귀하신 분들이 시간 내주셨으니까 잡담 끝! 이클 님, 오늘 방송 잠깐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이클립스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어제부로 3:3 라인전은 졸업하기로 결정했소. 퍼플 경께서 합류하셨으니 5:5에 도전해 볼 것이오.”
“하지만 아직 이클 님은 5:5 경험이 없으시거든. 그래서 일단 첫 게임은 가볍게 일반게임으로 진행할 거야. 그리고 그 결과가 좋다? 오늘 바로 3인큐로 제로백 버스 타는 거지!”
지놈이 뒷말을 빠르게 받으며 슬슬 방송 텐션을 올렸다.
-옼ㅋㅋ 한 번에 바로 랭겜 진입?
-큐튭각 바로 나오쥬?
-아 ㅋㅋㅋ 갓플이 운전하면 무적권 한방이지
-한의사협회 : ㅇㅈ합니다
-무친 ㅋㅋㅋ 한의사협회가 왜 인정하냐고!
-아아, 그게 바로 ‘퍼펙트-한방’이니까
-그 한 방이 한방이 아니잖슴ㅋㅋㅋ
-이래서 띄어쓰기가 중요하다 이말이야
채팅창 분위기는 지놈의 속도와 목청에 이끌리듯 고조됐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게임은 어려워야 재미있거든요? 뭔가 잃을 게 있어야 재미가 커지는 법입니다.
그 사이 이경복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연습 한판 끝내고, 제가 책임지고 이클 님에게 랭겜의 재미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당당한 선언에 채팅창이 웃음으로 물들었다.
-5:5 생초짜 데리고 랭겜 제패?!
-으음! 아주 신선한 퍼자감이야
-아 ㅋㅋ 퍼손실 보충 확실하고
-갓플의 퍼펙트-캐리 선언!
-셀프 스포 뭐냐구웃!
-제로백 버스 타고 재미가 없을 수가 없쥬?
그것으로 방송 안내가 끝났다. 지놈은 크게 박수 소리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좋습니다! 머뭇거릴 틈이 없죠? 바로 버스 탑승 가 보겠습니다!”
게임을 시작하니 배경이 뒤바뀌었다. 미스틱 리그 로비에 모인 세 사람.
“바로 큐 돌리죠! 비바 퍼지데이!”
설명한 대로 시작된 5:5 일반 게임 매칭, 시청자들은 이에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숙청! 숙청! 숙청!
-퍼지데이 밸류 무엇?
-상대팀에게 X를 눌러 JOY를 표하십시오
-이거 막 닷지 겁나 나오는 거 아님? ㅋㅋㅋㅋ
-일반게임이라 그냥 할 듯?
-ㄹㅇㅋㅋ 퍼지데이랑 같이 게임할 기회가 얼마나 되겠음
매칭은 금방 잡혔다.
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같은 팀의 두 플레이어들은.
[>어?]
[>헐? 찐이신가?]
접속과 동시에 놀라움을 표출했다.
[>지놈에 갓플 님이랑 같은 팀?]
[>ㅁㅊ 지금 방송 중이에요?]
[>오더만 내려주세요! 무조건 따릅니다!]
[>저도요! 시키는 대로 다합니다!]
이내 상황을 파악했는지 두 사람은 ‘순종’하겠다며 빠르게 의사를 밝혔다.
그 채팅에 시청자들은 더욱 흡족해졌다.
-이게 일반게임 채팅창이라고? 내가 봐왔던 건 대체……?
-ㄹㅇㅋㅋ 탑신병자 ㅇㄷ?
-진짜 트롤 없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임
-그 와중에 갓플한테만 님 붙이는 클라스 ㅋㅋㅋ
-상황판단 능력 합격!
-이클 님은 왜 못 알아보냐고!
-킹직히 이클 님은 아직 미스틱 리그에서는 무명이나 다름 없자너 ㅋㅋㅋ
-고것도 맏찌
-이번 게임 리플레이 평생 소장각ㅋㅋㅋ
지놈은 슬쩍 이클립스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인지도에서 밀리는 걸 신경 쓰지는 않을까.
“퍼플 경, 그럼 저는……”
“아, 네네. 괜찮다고 하시니까 그대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걱정이 무색하게 이클립스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기쁜 듯이 바로 챔피언을 선택했다.
“두 분은 포지션이 어떻게 되세요?”
이경복은 음성채팅으로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저희는 원래 바텀라인으로 연습했습니다.]
[>저는 서폿이고 이 자식이 원딜이에요]
[>그래도 오더 주시면 다른 라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자식이랑 꼭 안 붙여주셔도 됩니다 ㅎㅎ]
곧바로 돌아온 답에 시청자들은 상황을 눈치챘다.
-오 ㅋㅋㅋ 3인큐랑 2인큐가 같이 잡힌 거네
-이러면 더 편하지 ㅋㅋㅋ
-ㄹㅇㅋㅋ 모르는 사람 둘이면 합 맞추기 빡센데
-찐친인가 ㅋㅋ 바로 버려버리누
-엌ㅋㅋ 서로 안 아쉬워하는 게 킬포네
-??? : 그걸 믿었음? 프렌드킥!
이경복은 지놈을 돌아봤다. 그가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굳이 합 맞으신데 가를 필요는 없죠. 제가 미드로 가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저는 정글가고, 다들 챔피언 택해주세요.”
지놈은 이전에 이경복과 맞붙었던 챔피언인 ‘디스토디드 데스티니’, 통칭 ‘DD’를 택했다.
다른 두 플레이어도 챔피언 선택을 마치고 모두의 시선이 이경복에게 집중됐다.
-갓직히 퍼펙트 야미만 나와도 게임 씹어먹지 ㅋㅋㅋ
-아 ㅋㅋ K-호카게 ON!
-아잇! 고대인술 맛 좀 볼래!?
-올공템 백도어는 올타임 레전드였자너 ㅋ
시청자들은 옛 기억을 되새기며 이경복이 야미를 고르리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가 챔피언을 선택하자 바뀐 복장은 검은 도복이 아니었다.
-?
-바르잔 2세?
-여기서 왕위계승자가?
황금색 갑옷에 그의 키보다 커다란 장창, 그리고 등에 부착된 커다란 깃발.
그것이 ‘왕위계승자’, 바르잔 2세를 나타내는 코스튬이었다.
순간 물음표로 가득했던 채팅창은 이내 ‘ㅋㅋㅋ’로 물들기 시작했다
-엌ㅋㅋ 컨셉 제대로 잡았네
-이클 님이랑 맞춘 거자넠ㅋㅋㅋ
-응애! 나 애기 데붕! 설명 해줘!
-어르신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바로 정색 뭔데 ㅋㅋㅋㅋ
-정보) 스토리상 바르잔 2세는 가이엔이 섬기는 주군이다
-정보추
-왕과 기사? 이건 못 참지 ㅋㅋ
이번 방송의 주목적이 이클립스의 적응이기에 이경복이 준비한 챔피언이었다.
“정당한 왕에게 영광을! 거짓된 군주에게 죽음을!”
이어 기다렸다는 듯 이클립스가 검을 들며 소리 높였다. 보이스 채팅을 꺼두었을 때 재생되는 ‘NPC’ 가이엔의 대사였다.
-아 ㅋㅋ 이게 기사지!
-무친 ㅋㅋㅋ 왜 어울리는데!
-그저 기사도! 그저 정의! 그저 간지!
-이클 님은 가이엔 원챔만 해도 ㅇㅈ임 ㅋㅋㅋ
그 대사 하나만으로 분위기가 들떴다. 이내 상대팀 쪽도 모두 챔피언 선택을 마쳤다.
이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퍼르잔! 퍼르잔! 퍼르잔!
-랭겜까지 정벌 가즈아!
-왕과 기사, 낭만있다 그죠?
-그럼 쥐놈은 머임?
-아 ㅋㅋ 보면 모름? 딱 봐도 팡머잖슴
-카드 마술하는 광대냐고 ㅋㅋㅋ
-엌ㅋㅋ 벌써부터 꿀잼 예약이쥬?
-이게 퍼지데이지 ㅋㅋㅋㅋㅋ
환호하는 시청자들을 바라보며 이경복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이클 대리는 아주 파이팅이 넘쳐서 좋다니까.”
불쑥 튀어나온 호칭에 채팅창에 ‘?’로 물들었다.
그러나 이경복은 아랑곳하지 않고 창을 가볍게 돌렸다. 그의 키보다 큰 장창이었지만 그 움직임이 무척이나 매끄러웠다.
“자, 그럼 오늘 실적 확실히 내보자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 시청자들도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무친ㅋㅋㅋㅋ 블랙기업 사장 컨셉이냐구웃!
-오늘 완전 갈아버릴 작정이다 이말인가?
-블랙기업특) 사장이 왕임
-왕이 그 왕이였냐구웃!
이번 합방에서 이경복이 자신에게 붙은 밈인 ‘블랙기업’으로 컨셉 플레이를 하기로 한 것이 분명했다.
-갓플이 미스틱에 자본주의를 풀었다!
-아! 너무 무섭다!
-근데 그럼 이클 님이 대리면 쥐놈은 머임?
-그래도 호스트니까 차장 정도는 달아주지 않을까?
이어지는 시청자들의 물음에 이경복은 지놈을 돌아봤다.
“근데 지 사원은 이클 대리 보면서 뭐 느끼는 거 없어요?”
-헉!
-숨이 턱!
-무친ㅋㅋㅋ 사원이었냐고ㅋㅋㅋ
-알고 보니 능력제 회사였쥬?
-아 ㅋㅋ 능력 순이면 사원이지
-그래도 인턴 아니고 정규직이네ㅋㅋㅋ
이미 사전 회의 때 결정한 컨셉이었던 바, 지놈은 넙죽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아니, 지 사원.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그래?”
“아, 그럼 안 죄송합니다!”
지놈이 굽힌 허리를 펴며 다시 답했다. 자기가 말하고도 웃긴지 앙다문 입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에 시청자들은 새삼 깨달았다.
-웃참 ㅅㅂㅋㅋㅋㅋㅋㅋ
-야잌ㅋㅋ 안 죄송합니다 ㅇㅈㄹ
-이거 완전 개폐급이자넠ㅋㅋㅋ
-이쪽은 또 컨셉이 추놈이넼ㅋㅋ
-컨셉이 아니라 본성입니다만?
-트최입 자리가 그렇게 지키고 싶었냐구웃!
-게임 시작 전부터 큐튭각 날카롭곸ㅋㅋㅋ
팀 퍼지데이, 이 조합이라면 믿고 볼 수 있는 방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