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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170화 (170/491)

170화 - 상성 is 뭔들 (1)

엘리펀트는 무덤덤한 눈으로 무너지는 상대편의 템플을 바라보았다.

<승리!>

누구나 바라는 두 글자가 그 앞에 나타나자 그와 같은 팀원들은 양팔을 번쩍 들었다.

“와! 진짜 정말 대단했습니다!”

“역시 엘리펀트 님이시네요!”

“이게 프로게이머구나……”

“덕분에 승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쏟아지는 감사와 환호에도 그는 담담히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게임 재밌었습니다.”

언뜻 겸손해 보이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본인이 느끼는 감정은 그와 멀었다.

게임이 끝나고 로비로 돌아온 엘리펀트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씨, 돌겠네 진짜……”

그는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주저앉았다. 게임은 이겼으나 스트레스는 더욱 쌓여 있었다.

‘왜 이렇게 엉망이야?’

이전에 한 게임보다 게임의 양상이 더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찌푸려졌던 얼굴은 이내 자조적인 미소로 바뀌었다.

‘내가 지금 누굴 탓하냐.’

이유는 본인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본래 그랜드 마스터였던 티어는 마스터로, 이제는 다이아까지 떨어졌다.

다이아 티어의 게임이 만족스러울 리 없었다.

‘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지?’

코치와 팀원들 모두 괜찮다고 위로하지만 그 이유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은 기복이 심했다.

“그놈의 ‘찐막’……”

이유 없는 부진은 없었다.

문제는 그의 강박과도 같은 징크스 때문이었다. 팬과 커뮤니티 사이에서는 ‘찐막증후군’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엘리펀트 왜 저럼?]

[-전적 검색하니까 막겜 별로였던 듯 ㅋㅋㅋ]

[-또 찐막증후군 도짐?]

[-이거 안티들이 일부러 저격하는 거 아님?]

[-풀컨엘리 언제 오냐? 그때 올란다]

그에 대해 남겨진 댓글들이 떠올랐다.

엘리펀트의 실력은 의외로 본 시합보다 그 전의 게임 결과에 영향을 받았다. 그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게임을 즐기게 되면 그다음 시합에서도 기량이 유지가 됐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반대, 게임에 만족스럽지 못하면 기량이 떨어졌다. 이에 그는 중요한 시합을 앞에 두면 만족스러울 때까지 게임을 했다.

‘애들한테 부탁해야 되나?’

오늘은 별로 만족스러운 게임이 없었다. 이에 다른 팀원들과 함께 게임을 할까 했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부탁도 한 두 번이지.’

컨디션을 관리해야 하는 건 본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하는 게임 스케줄에 팀원들을 끌어들이면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었다.

‘이러다 플레까지 떨어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결국 그는 혼자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팀 운에 따라 패배와 승리를 거듭했고 그 결과 티어가 낮아졌다. 그나마 다인큐인 자유랭크에 끼는 게 다른 팀원들의 합이 맞았다.

‘오늘은 늦게 자면 안 되는데.’

엘리펀트는 힐끗 시간을 확인했다. 설령 고생 끝에 ‘찐막’을 해내도 그 게임의 수가 많아지면 본 시합에서 컨디션이 나빠 제 실력을 못 내는 때도 많았다.

점점 쌓여가는 마음의 짐에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정글에서는 코끼리가 최강이다.”

하지만 그도 프로였던 바, 멘탈 관리는 능숙했다. 짝 소리가 나도록 제 뺨을 친 그는 벌떡 일어섰다.

“내일, 나는 다시 1군으로 간다.”

1군 승격 심사가 예정되어 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매칭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게임이 찐막이 되기를!’

이내 매칭이 잡히고 그는 챔피언 선택 창으로 돌아왔다.

“티어원의 엘리펀트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는 정중하게 팀원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다행히 그가 쌓은 정글러로서의 명성은 헛되지 않았다.

팀원들의 감사와 응원 속에서 그는 슬쩍 상대 팀을 훑었다. 근데 그중에서 친숙한 아이디가 보였다.

“퍼플……?”

퍼펙트플레이.

스트리머에 큰 관심이 없는 그로서도 들어본 이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커뮤니티에서 무척 회자되었던 인물이었다.

프로는 물론 랭크 게임, 그리고 일반 게임에서도 잊힌 챔피언인 야미를 재발굴하지 않았던가.

그 역시 정글러였던 바 ‘퍼펙트 야미’를 본 적이 있었다.

[>헐? 찐 퍼플님임?]

[>지놈 님도 있는 거 보면 맞는 듯]

[>와;; 이번 겜 빡세겠다]

[>우리는 엘리펀트님 계시잖슴ㅋㅋㅋ]

팀원들도 이내 그를 발견하고 채팅을 쳤다.

‘지놈은 누군지 모르겠지만 퍼펙트 야미라면……!’

엘리펀트의 눈에 활기가 돌았다. 영상으로만 봤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퍼펙트 야미의 주인, 퍼플의 실력은 진짜였다.

‘이번 게임, 찐막이 될 수도 있다!’

챔피언 비공개 룰로 매칭을 잡았기에 뭘 고를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야미를 안 고를 이유가 있겠나.

기대심에 부푼 엘리펀트는 자신의 주력 챔피언인 ‘발톱추적자’, 라그넬을 선택했다.

그의 모습이 흉터투성이의 호랑이 인간으로 변하자 채팅창에서 즉각 반응이 나타났다.

[>헐? 엘리님 라그넬?]

[>와 ㅋㅋ 이걸 직관할 수 있다고?]

[>엘리펀트님 멱살 잡아주세요!]

그렇게 챔피언 선택이 끝나고 배경이 뒤바뀌었다.

그리고 이내 상대 팀을 확인한 순간, 엘리펀트는 헛숨을 내뱉었다.

“……바르잔이라고?”

도복을 입은 닌자 대신 황금색 갑옷을 입은 군주의 초상화.

그것을 확인한 엘리펀트는 울적해졌다.

“이건 이겼다!”

“와, 이게 딱 카운터가 나오네.”

“운이 좀 따라주는 것 같네요!”

“오더 해 주시면 무조건 따릅니다.”

반면 다른 팀원들은 의기양양해 목소리를 높였다.

공교롭게도 라그넬이 바르잔의 카운터 챔피언이기 때문이었다.

* * *

한편, 이경복도 상대 팀 챔피언들을 확인했다.

-무친;;; 라그넬을 들고 왔네

-하필이면 카운터 픽 ㅎㄷㄷ

-상성 무엇?

-라그넬이 글케 셈?

-엘리펀트가 가장 잘하는 정글챔임

-이번 겜 진짜 빡겜될 듯 ㅋㅋㅋ

동시에 챔피언을 확인한 시청자들은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센가?’

이경복은 그 반응에 의아해했다. 아무리 상성이 나빠도 실력으로 극복하면 되지 않겠나.

-MP.GG 승률 29%:71%임;;;

-바르잔이 71임?

-않이ㅋㅋㅋ 라그넬이 71%라고!

-둘이 10번 붙으면 거의 7번은 라그넬이 이김

-괜히 카운터가 아니라 이 말이야.

-킹치만 퍼르잔이라면 다를지도?

마침 시청자 중에서도 미스틱 리그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누군가 승률을 알려 주었다.

“쓰읍, 하필이면 라그넬이네요.”

지놈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이에 그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우리 사장님 실력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다만, 상대가 그냥 플레이어면 모를까 하필 엘리펀트 님이라는 게 문제죠.”

-ㄹㅇㅋㅋ 킹반인이었으면 걱정도 안함

-킹직히 엘리펀트가 실력은 다이아는 아니잖슴;;

-안 그래도 육식형 정글러 전문인데 ㅋㅋㅋ

-갱킹이랑 정글 싸움 밀리면 너무 힘들어짐;;

-이거 결국 붙긴 해야 되는데 ㅎㄷㄷ

엘리펀트는 라그넬과 같이 갱킹과 정글싸움으로 성장하는 육식형 정글러의 대가였다. 크립 사냥에 열중하기보다 이경복을 찾아다닐 확률이 높았다.

시청자들이 동의하자 지놈이 이경복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어떨지 모르지만 만약 컨디션이 좋다면 승세를 장담하기는 힘들 겁니다.”

“그렇다면 소신이 주군을 보좌하겠소.”

그 말을 듣고 있던 이클립스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경복은 이에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뇨, 탑 라인을 비울 수는 없죠.”

-기사도 ON!

-너무 자연스러워서 왜 거절하나 했네 ㅋㅋㅋㅋ

-진짜 ㅋㅋ 컨셉 뭐냐구웃!

-아 ㅋㅋ 탑은 무적권 지켜야지

-투구 벗으면 킹무룩 하고 있을 듯 ㅋㅋㅋ

-???: 힝, 주군께서 날 쳐냈어…

-힝 ㅇㅈㄹ ㅋㅋㅋ

이클립스의 말로 분위기가 다소 풀렸다. 이경복은 이에 웃으며 오더를 내렸다.

“이번에는 좀 길게 보겠습니다. 다들 라인에서 성장에 집중해 주세요.”

“예? 하지만 만약 인베가 오면요?”

“주군, 혼자서 다니시는 건 위험합니다!”

그 명령에 두 사람은 물론 채팅창도 다시금 걱정에 휩싸였다.

-안 그래도 라그넬인데 혼자 정글에 간다고?

-일단 다 같이 움직이는 게 맞지 않나?

-ㅇㅇ 랭겜이니까 인베올 확률이 더 높음

-아 ㅋㅋ 갓플도 다 계획이 있겠지

이에 이경복이 신속히 설명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팀 격차가 있긴 합니다. 티어 차이만 봐도 알 수 있죠.”

그 말에 골드 플레이어 둘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이경복은 이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탓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인베로 5:5 한타가 바로 시작되면 우리 쪽 피해가 클 가능성이 높아요. 그보다는 저 혼자 움직이는 게 후퇴가 쉽죠.”

상대팀은 다이아 하나에 플래티넘 넷이었다. 반면 팀 퍼지데이는 골드만 셋이었다.

이클립스를 제외한다고 해도 그 격차는 무시할 수 없었다.

“으음…… 알겠습니다. 대신 언제든 지원 요청하시면 가겠습니다.”

“소신을 찾으시면 주저 없이 가겠나이다.”

결국 팀원들도 그 의견에 수긍하고 라인으로 흩어졌다. 이경복도 정글로 향했다.

“웬만하면 엘리펀트 님이 혼자 오셨으면 좋겠네요.”

-제발 상대팀 합 안 맞아서 그냥 왔으면 ㅋㅋㅋ

-아무리 갓플이라도 1:5는 쵸큼 어렵쥬?

-퍼펙트 야미면 바로 안심인데 ㅋㅋ

-아 ㅋㅋ 바르잔으로 1:5는 안 되지

-갓플도 걱정이라는 걸 하는구나

시청자들은 그 말을 걱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경복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

“아, 그게 아니라 엘리펀트 님이랑 1:1로 붙어보고 싶어서요.”

그 말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샘솟았다. 1:1이라니? 라그넬이 카운터 픽이라고 설명해주지 않았나. 설마 아까 전에 한 이야기를 모두 까먹은 걸까.

“아마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테니 다시 말씀드리면, 저도 한때 프로게이머를 준비했었거든요?”

그는 그 의문에 웃으며 답했다.

“지금 현역 프로게이머들 실력이 어떨지 좀 궁금해서요.”

-?

-갓플 프로게이머 지망생이었음?

-그걸 모름? 한국인이 아니심?

-뭐지? 이중국적자인가?

-이중국적 ㅇㅈㄹ ㅋㅋㅋㅋ

-라이브 인터뷰 안 보고 왔으면 외국인 맏찌

-오 ㅋㅋ 티어원에서도 오퍼 왔다고 하지 않았음?

-그때 프로게이머 했으면 엘리펀트 선배였을 듯 ㅋㅋ

-퍼플 센빠이!

-ㄴㄷㅆ 쳐내!

그 말에 시청자들은 새삼 그가 밝힌 개인사를 떠올렸다.

-킹치만 그러면 종겜스가 안 됐을지도?

-요즘 프로게이머도 방송은 할 수 있는데 왜 ㅋㅋㅋ

-그런 평행우주는 ‘퍼펙트’하지 않아

-아 ㅋㅋ 여기가 바로 ‘퍼펙트-유니버스’였쥬?

-진짜 퍼자감은 본받아야 된다니깐!

프로게이머를 상대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모습. 이경복의 평소와 같은 태도에 시청자들은 안심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더욱 공고해졌다.

“오, 인베는 아니네요.”

미니맵 각 라인에 상대 챔피언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하돈 1:5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안심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이경복이 갑자기 우뚝 멈추며 눈을 굴리는 게 아닌가.

-????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뭐가 있나?

-아무것도 안 보이는디?

-아 ㅋㅋ 트수 눈에 뭐가 보이겠냐고

실제로 특이한 점은 없었다.

그래서 이경복은 더 즐거웠다.

‘역시 프로게이머라는 건가.’

그의 신기는 상대, 엘리펀트로부터 전해져 오는 위협을 감지해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건 물론 수풀 흔들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어디 한 번……’

이경복은 슬쩍 주위를 훑어보는 척을 하면서 그에게 등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수풀에서 라그넬이 말 그대로 ‘튀어’ 나왔다.

족히 높이 5m는 될 법한 도약과 함께 순식간에 줄어드는 거리. 라그넬의 패시브 스킬, ‘천공습격’의 효과였다.

‘저런 높이에서 떨어지는 거면 익숙해지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엘리펀트의 강습 속도는 놀라웠지만 이경복의 반사신경은 그보다 빨랐다.

그는 몸을 돌려 접근해오는 엘리펀트의 모습을 신속히 분석했다.

‘공중에서도 밸런스 제어가 좋아. 무서워하지도 않고 똑바로 날 바라보고 있어.’

상대는 이름만 프로게이머가 아니었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이야.”

캉하는 쇳소리에 이어지는 작은 탄사. 이경복의 창이 어느새 그의 클로를 튕겨냈다.

-와씨 ㅋㅋㅋㅋ

-벌써 은신하고 있었다고!?

-반응속도 뭔데!

-처음부터 레전드 각 잡는 거냐구웃!

-ㅁㅊㄷㅁㅊㅇ

시청자들이 한 박자 늦게 감탄을 토했다. 엘리펀트 역시 인상이 깊었는지 미소를 지었다.

“티어원의 엘리펀트입니다. 퍼펙트 야미를 보나 싶었는데 좀 아쉽네요.”

인사와 더불어 연격이 이어졌다. 이경복은 이에 창을 휘둘러 막아내며 답했다.

“오? 저를 아시나 보네요.”

“정글러니까요.”

대화와 함께 격렬한 공방이 이어졌지만 그 숨소리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내 이경복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죄송합니다. 저는 이번에 엘리펀트 님을 처음 알게 돼서……”

그는 빈말로라도 아는 체를 할까 하다가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나중에 방송을 보면 몰랐던 게 티가 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멕여버린다고?

-멘탈 공격 뭐냐고 ㅋㅋㅋㅋ

-프로게이머를 상대로도 기만을 하는 스머가 이따!?

-퍼기만 ON!

-그거 아시나요? 퍼르잔 스킬 중에 기만 숨결이 있다는 사실!

-이건 플레이어 패시브 스킬이라니깐!

두 사람의 경합에 놀라던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혹시 백강민 코치님은 아직도 계신가요?”

“감독님을 어떻게?”

“아, 이제 감독 되셨구나.”

이어지는 문답에 시청자들의 웃음은 더욱 진해졌다.

-않이ㅋㅋㅋ 싸우면서 차분한 대화는 뭔데!

-몰라봐서 어색하니까 말 돌리는 거자너 ㅋㅋㅋㅋ

-아 ㅋㅋ 아이스 브레이킹 모르냐고

-지금 서로 뼈를 부러뜨리려는데 본 브레이킹 아님?

-본 브레이크 ㅇㅈㄹ ㅋㅋ

-근데 갓플 찐으로 지망생이었네 ㅋㅋㅋ

-헐? 그럼 백 감독님은 갓플 개인적으로 아는 거?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순간이었다. 공방이 격해지자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물었다.

-와씨;;; 엘리펀트도 미쳤네

-오늘 컨디션 좋은 듯?

-근데 이거 스킬 상성으로 보면 너무 안 좋음;;

-라그넬이 너무 악착같이 달라붙누

-그래야 스킬 봉쇄가 되니까 ㅋㅋㅋ

-지금 버티는 건 순수 피지컬임

-ㄹㅇㅋㅋ 그냥 바르잔이었으면 끔살ㅋㅋㅋ

바르잔의 스킬은 근접전에서는 별 효용이 없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엘리펀트는 거리를 벌리지 않았다. 때문에 이경복은 순수 창술만으로 대응해야만 했다.

‘허점이 허점이 아니야.’

그리고 그 사실은 엘리펀트가 가장 실감하고 있었다. 빈틈인가 싶어서 노린 곳에는 어느새 그의 창으로 가로막혔다.

오히려 그렇게 유인당해 가슴이 철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에 그는 더욱 집중 상태에 빠져들었지만.

“기복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풀 컨디션은 아닌 것 같네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는 순간 주춤하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헉

-??? : 내가 기대한 실력이 아닌데?

-이거 정글싸움이 아니라 멘탈싸움이냐고 ㅋㅋㅋ

-퍼르잔은 마뎀도 준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마법 데미지가 아니라 마음의 데미지인 듯 ㅋㅋㅋ

-근데 진짜 여유 있어서 반박을 못함 ㅋㅋㅋ

-지금까지 서로 유효타 하나 없는 거 실화임?

-엘리펀트 처음 맛보는 퍼기만에 충격!

시청자들은 그것을 기만이라 해석했다. 하지만 엘리펀트의 감상은 달랐다.

‘설마 이걸로 내 상태를 알아차렸다고?’

아무리 부진한 컨디션이라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없을 터였다.

진짜 차이는 프로 경기에서나 느껴지는 법이었다.

‘그냥 찔러본 건가 아니면……’

엘리펀트는 대답 대신 다시 공세를 취했다. 그 사이 이경복은 깃발을 바닥에 박으며 말을 이었다.

“자극을 좀 받으시면 더 잘하실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내 그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

상대를 놀리거나 자만이 아니라 순수한 즐거움이 묻어나오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그 표정과는 별개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자세가?’

엘리펀트의 습격과 더불어 근접전을 유도했던 바, 이경복은 지금까지 짧게 창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잠깐의 틈으로 거리가 벌어진 사이 그가 창을 더 길게 잡은 것이다.

제3자에게는 그리 큰 차이가 아니었지만 당사자인 엘리펀트에게는 달랐다.

“갑니다.”

그 한마디와 함께 쇄도해 오는 이경복의 창끝.

엘리펀트는 전혀 달라진 창의 궤도에 다급히 클로를 세웠다.

‘완전히……’

금속의 마찰과 함께 불꽃이 눈앞에서 튀어 오르며 시야가 순간 가려졌다. 그러나 그 잠깐의 순간 동안 섬뜩함이 전신을 휘감았다.

사각에서 날아온 창날에 그는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방어에 성공했다.

‘다르다!’

깃발의 이속 버프와 더불어 달라진 창격은 엘리펀트를 순식간에 몰아세웠다.

프로게이머로서, 그리고 그 특유의 징크스 때문에 쌓아올린 경험이 아니었다면 이미 쓰러졌을 터였다.

그러나 그 경험도 조금의 시간을 벌어줬을 뿐 결과를 바꿔주지는 않았다.

“컥!”

결국 허용한 첫 타격과 더불어 체력이 쭉 빠졌다. 하지만 그는 웃었다.

‘이거다.’

충격과 더불어 머릿속을 뒤덮은 경각심, 그 위기와 함께 깨어난 생존본능은 전신의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에 그는 직감했다.

‘이게 바로 찐막이지!’

그간 경험해 왔던 ‘찐막’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전까지는 물 밑에서 헤엄치며 도구에 의존해 숨을 쉬고 있었다면, 지금은 완전히 육지에 올라온 기분이었다.

“기분이 좀 나아지셨나 보네요.”

이경복은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며 가볍게 물러나 창을 돌렸다. 엘리펀트는 그런 그를 향해 웃었다.

챔피언이 호랑이 인간이었기에 큼직한 송곳니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백강민 코치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는데 요즘에는 안 하시나요?”

이경복도 마주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아직 자주 하십니다.”

엘리펀트는 대답과 함께 덤벼들었다. 두 사람의 공방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그 둘뿐만 아니라.

-싸움 수준 실화냐?

-이건 드립이 아니라 진짜 가슴이 웅장해지는데ㅋㅋㅋ

-이게 어떻게 초반 노템 정글싸움?

-아 ㅋㅋ 파일럿이 갓플이랑 엘리펀트인데 뭔 템이 필요하냐고

-찢었다 진짜 ㅋㅋㅋㅋ

시청자들 역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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