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 인연(人緣) (1)
첫 게임 이후에도 팀 퍼지데이는 연승을 이어나갔다. 미스틱 리그에서 처음으로 합을 맞췄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성공적인 합방이었다.
그렇게 팀 퍼지데이의 데뷔 방송이 마무리된 이후.
[속보) 블랙기업 퍼플 상장과 함께 상한가 (999+)]
[추놈 부러우면 개추 ㅋㅋㅋ(999+)]
[제로백 버스 타본 서폿입니다 (인증有) (941)]
[미스틱 리그의 진정한 왕은 퍼르잔뿐! (932)]
[퍼지데이는 진짜 믿고 본다 ㅋㅋㅋㅋ (871)]
미스틱 리그 커뮤니티는 관련된 이야기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게임이 훌륭했지만 모두가 최고라 뽑은 게임은 하나였다.
[지금부터 라그넬 카운터 픽이 바르잔임 ㅋㅋ (999+)]
[퍼르잔 식 이속템 빌드 분석(999+)]
[카정의 새로운 패러다임 (999+)]
[무친 뒤주 엔딩 ㅋㅋ (999+)]
[퍼펙트 바르잔 VS 풀컨 엘리펀트.avi (999+)]
바로 첫 번째 게임.
그중에서도 티어원의 프로게이머 엘리펀트와의 승부였다.
[아니 3:7 승률인데 이걸 어떻게 이기냐고 ㅋㅋㅋㅋ
그것도 엘리펀트가 컨트롤하는 라그넬을 이겨버리기 ㅋ
ㅋㅋ
갓플은 퍼펙트 야미도 그렇고 진짜 챔피언 리워크 장인인 듯 ㅋㅋㅋ]
[-리워크 ㅇㅈㄹ ㅋㅋㅋㅋ]
[ㄴ근데 리워크 수준이 맞긴 해 ㅋㅋ]
[ㄴ리워크(파일럿교체)]
[ㄴ진짜 내가 알던 바붕이랑 완전 다르자너 ㅋㅋㅋ]
[ㄴMP.GG 빅데이터가 다 뭐냐! 그에게는 퍼지컬이 있다!]
[-창술은 대체 어디서 배워 온겨?]
[ㄴ갓플이 창 쓰는 캐를 해본 적이 없는데ㅋㅋㅋㅋ]
[ㄴ진심 개놀람 ㅋㅋㅋ 그냥 바로 전문가 됨]
[ㄴ아아, 그것이 ‘퍼펙트-마스터’니까]
처음 하는 챔피언임에도 숙련된 플레이와 카운터 극복.
[분석은 개뿔
갓플만 할 수 있으니까 따라하지 마라 ㅅㅂ
랭겜에서 바르잔 이속 템 빌드 가는 트롤쉑들 다 리폿하고 박제해버린다 진짜]
[-낚시추]
[-아 ㅋㅋ 진짜 퍼르잔 흉내낼 놈들 생각하니까 개빡친다]
[-뱁새들 또 등판할 거 생각하니 어질어질하쥬?]
[-???: 저 새는 해로운 새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아이템 빌드.
[진짜 정글러가 희귀하긴 한데 ㅋㅋㅋ
이런 식으로 카정치는 건 처음 봤다
않이;; 어떻게 크립을 그 빠른 시간에 다 먹어버리누?
진짜 무친 플레이였다 ㅋㅋㅋ]
[-정글에서 독식!]
[ㄴ강제 초식 메타 ㅋㅋㅋㅋ]
[ㄴ코끼리 초식동물 맞자너~]
[ㄴ멸종사유) 퍼플]
[ㄴ킹직히 이건 갓플이 잘못했네 ㅋㅋㅋ]
[즉위식 원래 버프빨로 1:1 확정 킬 각 보거나 그냥 가두고 팀원들 탈출 각 보는 거 아님?
와씨 ㅋㅋㅋ 퍼지컬 정도 되면 바르잔 궁을 저렇게 쓸 수가 있네
갓플이 하면 진짜 다르긴 하다 ㅅㅂ]
[-뒤주 ㅅㅂ 제목 미쳤냐고ㅋㅋㅋ]
[ㄴ궁을 저렇게 써먹겠다는 사고방식부터 천재임 ㅋㅋㅋ]
[ㄴ3:1 버틴 것도 놀라운데 그 와중에 2명을 죽임 ㅋㅋ]
[ㄴ나는 탈출한 엘리펀트가 더 신기하더라 ㅋㅋㅋㅋ]
[ㄴ진짜 프로는 프로임ㅋㅋㅋ]
프로게이머를 상대로 과감한 혹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전략의 성공.
[프로 대회도 아니고 이 정도 퀄의 승부가 나올 수가 있나?
내가 엘리펀트 쭉 봐왔는데 지금이 찐으로 폼 최상임 ㅋㅋㅋㅋ
이번에 엘리펀트가 져서 아쉽긴 한데 이거 경험삼아 포텐 터질 각이 보인다 ㅋㅋㅋ]
[-진짜 첫 게임부터 바로 레전드 ㅋㅋㅋ]
[ㄴ둘이 붙자마자 바로 장르가 달라짐 ㅅㅂ]
[ㄴ아 ㅋㅋ 이게 진짜 천상계지]
[ㄴ천상계=다이아]
[ㄴ어허, 다딱이들 또 나댄다?]
[ㄴ1:1 미드빵 뜨쉴?]
무엇보다도 두 플레이어의 눈을 뗄 수 없는 승부가 주목 받았다.
그렇게 커뮤니티는 분위기가 뜨거웠지만, 때로 그 열기는 폭발의 전조가 되기도 했다.
[갓직히 엘리펀트가 실력으로 밀린 건 아니지 (999+)]
그 중심에는 한 게시글이 있었다.
[엘리펀트 보는 놈들은 다 알지 않나?
진짜 요즘 엘리펀트 컨디션 난조 개심했음
그놈의 찐막증후군 도져가지고 지금 2군 밑바닥에 처박혀서 못 올라오는데 ㅅㅂ 내가 답답해 뒤지는 줄 ㅋㅋㅋㅋ
그런데 이거 한 게임 또 졌다고 퍼밑엘 ㅇㅈㄹ 하는 새키들 왜케 많냐?
솔직히 미스틱 리그가 한 판으로 실력이 결정 되냐? 아니면 1:1 승부로 결정 되냐?
애초에 팀 게임인데 엘리펀트 내려치기하는 놈들은 미알못 인증하는 거 아님?]
이번 게임만으로 엘리펀트의 실력을 폄하할 수 없다는 골자의 내용이었다.
[-ㄹㅇㅋㅋ 자유랭에서 첨보는 놈들이랑 게임한 건데]
[-팀 짜고 온 퍼플이랑 비교하는 거 자체가 넌센스지 ㅅㅂ ㅋㅋㅋ]
[-아 ㅋㅋ 드디어 미잘알 등판했누]
[-나도 커뮤 분위기 보면서 이게 맞나? 싶었음 ㅋㅋㅋㅋ]
그러나 그 어투가 조금 강했다. 그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 혹은 그 의도와는 다르게 분탕을 치려는 이들이 댓글을 달았다.
[-미잘알 ㅇㅈㄹ ㅋㅋㅋㅋ]
[-킹직히 엘리펀트 컨디션 난조 맞는데 클립 끝까지 안 봄?]
[-ㄹㅇㅋㅋ 후반에는 완전 풀컨 찍었는데]
[-뭔 ㅋㅋㅋ 합 맞추는 거 따지려면 퍼지데이도 랭겜은 첫판이었는데]
[-않이;; 왜 이렇게 다들 화가 났음?]
흐름과는 반대되는 게시글이었던 만큼 반박도 금세 붙었다.
[-비교할 생각 없었는데 글 보고 오히려 퍼밑엘 확정인 듯 ㅋㅋㅋ]
[-ㄹㅇㅋㅋ 갓플이랑 엘리펀트 비교하는 거면 이미 1:1승부로 결정난 거 아님?]
[-아니 ㅋㅋ 애당초 카운터 픽을 발랐는데 그거 말고 더 말이 필요하나?]
[-게다가 갓플은 딜교하면서 오더까지 함 ㅋㅋㅋ]
그 반박의 논거 또한 충분했다. 게임의 승리가 퍼플 쪽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근데 왜 갓플한테 지는 게 무슨 흠처럼 써놨냐?]
[-ㄹㅇㅋㅋ 갓플이 그냥 스머도 아니고 프로지망생이었는데]
[-ㅇㅇ 엘리펀트랑 얘기하는 거 보니까 백 감독이랑 아는 사이 같던데?]
[-킹직히 프로씬 가면 다 씹어먹을 실력임 ㅋㅋㅋ]
[-진짜 스머라고 색안경 끼고 보는 듯 ㅋㅋㅋ]
[-자, 이제 누가 미알못이지?]
모여든 열기는 불씨가 됐고, 커뮤니티는 조금씩 그 불씨에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화재 진압에는 역시 외국물이지!]
[(피자를 가져온 배우가 불타는 실내를 보는 사진)
이번 퍼지데이 방송 보고 개 쪼개면서 리딧에 퍼나르고 번역 쪄왔는데 ㅅㅂ
왜 이렇게 불탐?
내 눈에는 둘 다 개 쩌는데 이걸 꼭 줄 세우기를 해야 되냐ㅋㅋㅋ
아니, 일단 이거 한 번 봐라.
(미친! 혹시 퍼란테임?)
(ㄴㄴ 지금은 퍼르잔임)
(ㅅㅂ 뭐임? 상대가 엘리펀트라고? 티어원에? 진심?)
(ㅋㅋㅋㅋㅋㅋ 카운터 픽이 아무 의미가 없네)
(WA! 말 그대로 ‘완벽한 플레이’에 ‘신화적’임, 그가 한 게임이 내가 한 게임이랑 같은지 의심 가네.)
보면 알겠지만 전부 다 극찬임 ㅋㅋㅋㅋ
퍼플의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는데 지금 불타는 건 그거 때문이 아니잖슴?
핵심은 이 사람임
(엘리펀트는 내가 만난 정글러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음. 근데 얘는 누구임? 난 도저히 따라할 엄두도 안 나네)
설마 모르는 사람 없지?
이거 하나로 설명은 충분하지 않나 ㅋㅋ]
이경복의 방송에 대한 해외 반응을 줄곧 번역해 오던 사람의 게시글이었다.
그 아래로 빠르게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번역왜건 어서 오고]
[ㄴ이제는 번역할 거리를 만들어서 오누 ㅋㅋㅋㅋ]
[ㄴ프로번역러 ㅇㅈ합니다]
[ㄴ짤 적절한 거 무엇?]
[-와 ㅋㅋㅋ 샤이안이 이걸 봤다고?]
[ㄴ월클 수듄ㅋㅋㅋㅋ]
[ㄴ외국물이라기에 뭔 샘물인가 했는데 폭포가 쏟아지누 ㅋㅋㅋ]
[ㄴ역시 외신이 믿을만하다니깐!]
[ㄴ외신 ㅇㅈㄹ ㅋㅋㅋ]
[-ㅅㅂ 샤이안인지 사이어인인지 그뭔씹?]
[ㄴ미스틱 하면서 샤이안을 모른다고?]
[ㄴ최연소 미드컵 우승자를 몰라?]
[ㄴ그것도 바르잔 장인이고 우승 스킨까지 나왔는데 ㅋㅋㅋㅋㅋ]
[ㄴ대놓고 아이디 옆에 파나틱 로고까지 붙어있구만]
[ㄴ아 ㅋㅋ 분탕충 바로 자백해버리쥬?]
[ㄴ제발 좀 느그 동네 가서 놀아!]
해외 게이머들의 반응은 물론이고 미스틱 리그 세계대회, 소위 ‘미드컵’이라 부르는 대회의 우승자가 플레이를 보고 놀라움을 표했다.
[-이제 보니 미스틱 안하는 분탕쉑들이 와서 개판친 거였네]
[ㄴㄹㅇㅋㅋ 엘리펀트 못 한다는 소리 없었는데 갑자기 뭔가 싶었다]
[ㄴ분탕쉑들 티어원 갤러리 가서 먼저 이간질했네 ㅋㅋㅋ]
[ㄴ진짜 인생 왜 저러고 사냐 ㅋㅋㅋ]
그 게시글로 인해 분쟁을 조장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이에 관리자 역시 문제가 된 게시글을 삭제 조치했다.
덕분에 논란은 금방 가라앉았고.
[국뽕렉카들 슬슬 시동 걸겠네]
[샤이안 등판은 진짜 예상 못 했다 ㅋㅋㅋ]
[이정도면 퍼르잔 스킨 내줘야 되는 거 아니냐?]
[아 ㅋㅋ 일단 크로마는 보라색으로 바꾼다]
[미친놈들아! 퍼르잔 따라하려고 하지 말라고!]
커뮤니티는 전보다 더 즐거워졌다.
* * *
다음날, E-스포츠 팀 ‘티어 원’의 합숙소.
승격전의 결과가 발표됐다.
미스틱 리그 선수들 모인 가운데 엘리펀트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동료들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야, 오늘 진짜 미쳤더라.”
“진심 역대급!”
“1군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니까!”
“이대로면 MCK는 문제없겠는데?!”
엘리펀트는 1군으로 복귀했다.
그것도 팀원들 전부 인정할 정도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그는 별로 기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유지를 하는 게 중요하지.”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의 만성적인 징크스, ‘찐막증후군’ 때문이었다.
팀원들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야야, 괜찮아.”
“그래, 우리라고 뭐 기복이 없나?”
“다 잘 될 거야.”
엘리펀트는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늘 들어왔던 위로였다. 배려는 고마웠지만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었다.
“자자, 오늘 다들 수고했다.”
그때 들려온 목소리에 선수들이 고개를 돌렸다. 붉은 티어 원의 단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 백강민 감독이 그곳에 있었다.
“상준이는 나 좀 잠깐 보자.”
“예.”
엘리펀트, 정상준은 그 부름에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이 자신을 찾는 이유가 짐작이 갔다.
“오늘, 정말로 잘했다.”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서자 백강민이 가볍게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켜 줘서 고맙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백강민 감독은 이내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하게 말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
“……예.”
“그래, 그러니 1군이라고 해도 후보에 둘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할 거라 믿는다.”
아직 대회 출전 명단, 로스터는 확정되지 않았다. 1군으로 승격했다지만 정작 경기에는 나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신호 같아. 이렇게까지 잘한 적이 없었으니까.”
백강민은 그를 격려했다.
빈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의 실력은 달라졌다.
“한계를 넘어선 만큼 최저치도 올라왔을 거다. 그러니 너무 걱정은 말고, 이 기복 차이만 줄이면 1군이 문제가 아닐 거다.”
백강민은 그의 잠재력을 고평가했다. 그렇기에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1군에 다시 올린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
엘리펀트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와 관련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음?”
“저, 혹시…… 퍼플이라고 아십니까?”
그 물음에 백강민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거 말이냐.”
감독으로서 그는 선수들의 멘탈 관리를 위해 직접 커뮤니티를 살펴왔다. 선수들에 대한 여론이나 의견 중에는 득보다는 해가 될 수 있는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어제 퍼플과 엘리펀트의 승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게임이라는 게 하다 보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지. 너무 기죽을 필요 없다. 상대도 나름 실력 있는 스트리머로 유명하다며?”
“아, 아뇨. 게임에서 진 건 괜찮습니다.”
“응? 그러면?”
“혹시, 퍼플을 개인적으로 아시나 해서요.”
“……개인적으로?”
백강민은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러나 이내 곧 고개를 내저었다.
“음…… 아니, 나도 이번에 알게 된 거라. 어쩌면 스카웃 후보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중에서 스트리머로 데뷔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그래도 퍼플은 감독님을 알고 있는 것 같아서요.”
엘리펀트는 그리 말하며 스마트 링크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그 영상은 메타게이머와의 인터뷰 영상이었다.
“제안을 받은 건 미스틱 리그가 아닙니다. 가상현실이 나오기 전이라고 했으니까, 아마 레전드 리그 같아요. 건강 문제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레전드 리그? 건강……?”
그 설명에 백강민의 표정이 일변했다. 이에 희망을 느낀 것인지 엘리펀트는 다른 영상도 보여 주었다.
“당시에 부모님도 돌아가셔서 결국 흐지부지 됐다고 했습니다.”
백강민의 눈이 부릅떠졌다.
레전드 리그, 고등학생 시절, 건강 문제와 부모님을 잃게 된 아이.
“……경복이?”
그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업계에 몸담은 이래 그와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은 찾지 못할 정도로 특별한 인재였다.
그가 중얼거리자 엘리펀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시는 분인가요? 혹시 지금도 연락을……?”
“아니, 연락은 안 한 지 좀 됐다.”
백강민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친구가 퍼플인지는 모르겠네. 나중에라도 마음 바뀌면 연락하라고 번호도 교환했지만 연락이 없었어.”
“번호는 있으신 거네요?”
“음…… 근데 이게 너무 옛날 번호라서 그대로 쓸지 모르겠는데.”
백강민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한 번만 연락해 주시면 안 될까요? 퍼플 님이랑 승부하니까 컨디션이 회복되는 게 느껴졌습니다! 오늘 플레이도 다 그 덕분이고요!”
그러나 엘리펀트의 간절한 태도에 그는 결국 수긍했다.
“그래, 알았다. 한 번 시도나 해보자.”
번호를 누르자 통화음이 들려왔다. 두 사람 모두 숨죽인 가운데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예, 여보세요?>
“아, 그…… 혹시 경복이 전화 맞습니까?”
엘리펀트는 자기도 모르게 손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이윽고 통화 너머로 돌아온 대답.
<경보기요? 아니요, 잘 못 거셨습니다.>
“예? 아니……”
뚝하고 끊어진 통화와 함께 적막이 흘렀다.
“으음…… 역시 번호가 바뀐 모양이구나. 하긴, 거의 10년 전이니까.”
백강민이 코끝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엘리펀트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쩔 수 없죠. 감사합니다……”
그가 인사를 하고 나서려 하자 백강민이 다시 번호를 눌렀다.
“아니, 어쩌면 이쪽으로 연락이 될 수도.”
“네?!”
엘리펀트의 눈이 다시 살아났다. 이내 통화음이 들리자 방해가 되지 않겠다는 듯 그는 입을 제 손으로 막았다.
다시금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통화음이 울렸다.
그리고 마침내 연결된 통화.
<여보세요?>
엘리펀트는 고개를 기울였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성의 것이었다.
“아, 그 혹시 이경복 보호자분 되십니까?”
백강민이 전화를 건 대상은 바로.
<경복이요? 아이고마, 누구시더라? 나가 백 선생님으로 저장해 놨는데 정리가 좀 안 되가.>
양화보살, 양규리 이모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