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 인연(人緣) (3)
다음 날, 이른 아침.
이경복은 티어 원 합숙소를 찾았다.
“오! 경복아!”
미리 약속을 잡아둔 터였기에 백강민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선생님.”
이경복은 꾸벅 그에게 인사를 하고 옆 사람을 돌아봤다.
“안녕하세요. 스트리머 퍼플, 이경복입니다.”
백강민과 달리 바짝 긴장하고 있던 엘리펀트는 한 박자 반응이 느렸다.
‘아니, 이건 반칙 아냐?’
그는 스트리머 퍼플이 어떤 사람일지 계속 궁금했기에 관련된 영상을 전부 찾아봤다.
그 역시 시청자들처럼 얼굴 공개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고 외모 콤플렉스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생겼는데 게임까지 잘한다고?’
다행히 그는 프로(?)였기에 충격에서 빠져나오는 데 익숙했다.
그가 바로 넙죽 허리를 숙였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엘리펀트, 정상준입니다!”
백강민이 그의 등을 가볍게 쳤다.
“기껏 경복이가 일찍 와줬는데 애들 다 깨우려고?”
“아, 아뇨. 그건……”
엘리펀트는 그제야 실수를 깨닫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초청을 받았다지만 다른 선수들에게 이경복은 외부인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그는 되도록 신경 쓰이지 않게 약속 시간을 일찍 잡았다.
“아하하, 아닙니다. 밤에 또 방송해야 되니까 일찍 잡은 거예요.”
“아! 어제 방송도 정말 잘 봤습니다. 정말 어떻게 그렇게 잘하시는지……!”
방송 얘기에 엘리펀트가 눈을 빛냈다. 어젯밤에도 퍼지데이 합방을 보고 잔 터였다.
백강민은 그런 엘리펀트를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어이구, 누가 보면 경복이가 프로게이머인줄 알겠다. 자자, 일단 들어가자.”
세 사람은 숙소 안으로 들어섰다. 이경복은 가볍게 탄사를 흘렸다.
‘역시 티어 원이라고 해야 하나.’
합숙소의 시설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양규리와 함께 식사했던 고급 호텔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내가 여기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거네.’
이경복은 티어 원 단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이내 웃음을 흘렸다.
결국 그것은 만약일 뿐이었다. 지금 그는 스트리머 퍼플로서 이곳을 찾아왔다.
“아, 혹시 음료수 좀 준비해드릴까요?”
엘리펀트의 물음에 이경복은 거절하려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커피도 있나요? 괜찮으면 아메리카노로 마시겠습니다.”
“오, 그래. 우리 커피머신이 또 괜찮거든. 상준아 커피 3잔만 뽑아 와라.”
“넵!”
엘리펀트는 즉시 커피를 주문했다. 로봇 팔이 바로 제조를 시작했다.
그렇게 응접실에 자리를 잡은 세 사람은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본론을 꺼냈다.
“직접 상대해 봐서 알겠지만, 이 친구가 기복이 심해. 잠재력은 정말 괜찮은데……”
엘리펀트가 약간 주눅 든 얼굴로 커피를 홀짝였다.
“이번에 1군으로 복귀는 했다. 근데 아직은 로스터를 확정짓지를 못해서 말이다. 만약 이 기복차를 줄일 수만 있으면 스타팅 멤버로 넣을 거거든.”
“예, 그래서…… 염치 불구 퍼플 님께 부탁드리려합니다.”
그는 바로 머리를 숙였다.
“말로는 설명 드리기 어렵지만…… 분명 퍼플 님과 승부한 게 도움이 됐습니다!”
“이 친구 말로는 너랑 한 ‘찐막’이 다른 ‘찐막’과는 차원이 달랐다더라. 이번에 1군 승격도 다 네 덕분이라고 하고……”
백강민은 그리 말하고는 같이 옆에서 머리를 숙였다.
“감독으로서도 너에게 부탁하마.”
“아니, 그렇게 머리 숙이실 것까지 없습니다.”
이에 이경복은 바로 손사래를 쳤다.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정말입니까!?”
“고맙구나!”
그 대답에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이내 백강민은 멋쩍게 웃었다.
“그런데 부탁하고 이런 말 하는 것도 좀 웃기지만…… 어떤 방법이 있는 게냐?”
“아, 네. 있습니다.”
이경복의 즉답에 두 사람의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까지 엘리펀트를 괴롭혔던 그 고질적인 문제를 고칠 수 있단 말인가?
그 사실도 놀랐지만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사실 엘리펀트 님 상대할 때 깨닫긴 했는데, 제가 주제넘게 나설 수는 없어서요.”
바로 그것을 깨달은 시점이었다.
두 사람의 어안이 벙벙해진 가운데 이경복이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혹시 외부인이 사용할 수 있는 캡슐은 있나요?”
“응? 아, 있지! 많아, 아주 많지!”
“저, 감독님. 퍼플님은 커스텀 모델 사용하시는 걸로……”
바로 일어난 백강민에게 엘리펀트가 말했다. 백강민은 아차 싶은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아, 맞다. 연산력 때문에 아무거나 못 쓰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이경복은 둘의 반응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큐튜브에서 봤단다.”
“영상 전부를 보지 못했지만, 퍼플 님 개인적으로 관련된 건 다 찾아봤습니다.”
“음음, 초대했는데 혹시 실례가 될지도 모르니까 같이 확인했지.”
“물론 구독도 했습니다!”
두 사람의 대답에 이경복은 웃음을 흘렸다.
“아, 캡슐 모델은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해결책은 아니니까요.”
연산력 문제는 상관없었다.
‘엘리펀트님에게 느껴지는 위협수준이 에이든 정도는 아니니까.’
엘리펀트가 알게 되면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가상으로 만들어진 인외의 존재와 진짜 사람이 조종하는 캐릭터에게서 느껴지는 위협의 격차는 상당했다.
“음, 그러면 일단 자리를 다시 옮기자꾸나.”
백강민은 잠시 고민했지만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장소를 옮겼다.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선수들의 연습실이었다.
‘오, 이런 식으로 되어 있구나.’
연습실에는 선수 개인 별로 캡슐이 세팅되어 있었고, 그 외 여분의 캡슐이 뒤쪽에 있었다.
“경복이는 코치가 쓰는 걸 이용하면 될 거다. 그래도 하이엔드 모델이니까 청결 문제는 걱정하지 말고. 나는 밖에서 화면으로 모니터링 하마.”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저도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경복과 엘리펀트는 바로 미스틱 리그로 접속했다. 그리고 연습 모드로 방을 만들어 미드 라인에 섰다.
연습 모드에서는 실시간으로 챔피언 선택이 가능했기에 두 사람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자, 그럼 설명을 드릴 건데요. 그 전에 혹시 제가 엘리펀트님 상대할 때 했던 말 기억하세요? 자극을 받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했었는데.”
“네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엘리펀트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게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말을 기점으로 변화가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네, 그러니까 이건…… 음,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려운데요.”
이경복은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말을 골랐다. 이내 그는 머릿속에 정리한 설명을 꺼냈다.
“엘리펀트 님은 ‘본능형’ 플레이어라고 느껴집니다.”
“본능형이요?”
“네. 그러니까 생각하면서 움직인다기보다는 움직인 다음에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세요?”
그 물음에 엘리펀트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게임 한 번 한 것만으로 그런 것도 보이시나요?”
이경복은 그 모습이 예전에 할머니를 찾아왔던 손님들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을 흘렸다.
자리를 잡기도 전에 할머니가 그들의 용건을 알아맞히면 이런 반응이 나오곤 했다.
“정확히 같지는 않은데, 저도 비슷한 부류거든요.”
“아하……”
“다시 얘기로 돌아오죠. 본능형은 ‘체화’에 재능이 뛰어납니다. 자전거 타는 법이나 운전을 배우는 것처럼 몸이 기억을 하죠. 덕분에 머리 쪽은 여유가 있어서 전투 중에도 오더를 내릴 수 있고요.”
이것은 그의 신기와는 별개로 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바였다. 이경복은 엘리펀트가 그와 유사한 부류라는 걸 간파해냈다.
“그런데 지금 엘리펀트님 문제는 그 재능이 오히려 무척 뛰어나서 생기는 거거든요.”
“네?”
<경복아, 그게 무슨 소리냐?>
엘리펀트는 물론 옵저버로 지켜보던 백강민도 의아해했다. 재능이 뛰어난 게 왜 문제가 된단 말인가.
이경복은 다시 눈을 굴리며 말을 골랐다.
“제 방송을 보셨으면 아실 텐데,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바로 ‘쉬우면 재미없다.’라고 하거든요?”
“……그거 기만하시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요?”
이경복은 그 반응에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건 시청자분들이 프레임 씌우는 거고. 저는 진짜로 그렇게 느껴요. 아무튼 이게 엘리펀트 님에게도 비슷하게 적용이 됩니다.”
이경복은 엘리펀트와 공방을 나누면서 느꼈다. 그는 전투 도중에도 점진적으로 움직임이 좋아졌다.
“엘리펀트 님은 평소에 그 능력을 전부 활용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 본능이라는 게 전부 깨어나려면 필요한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바로 위협입니다.”
“위협……”
“제가 말한 본능이 생존본능이라고 이해하시면 쉬울 것 같네요. 강적과의 싸움, 죽음의 위기, 막연한 공포. 뭐라도 좋습니다. 경각심을 갖게 해 줄 뭔가가 있어야 엘리펀트 님의 기량이 오르기 시작하는 거죠.”
이경복은 위협이 발생하면 내재된 신기가 곧바로 감지해내 전달해 준다. 그러나 엘리펀트에게는 그런 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근데 말했듯 엘리펀트 님은 실력이 좋고 성장까지 하고 계세요. 그러니까 그 위협을 실감하기까지의 시간이 예전보다 오래 걸리고, 그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스노우볼을 일찍 굴리고 있는 거죠.”
<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았지. ‘찐막’이 아닐 때에는 ‘슬로우 스타터’라고도 많이 불렸고. 혹시 엘리펀트 경기라도 본 거냐?>
백강민의 목소리에 이경복은 멋쩍게 웃었다.
“아, 그게 제가 E스포츠는 잘 안 챙겨봐서요. 게임도 방송 시작하면서 다시 하게 된 거라.”
<아아, 그건 알지. 끼어들어서 미안하다.>
그 사이 엘리펀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굴리다가 물었다.
“그럼, 그럼 해결책은 뭐죠?”
“그게…… 사실 이걸 말씀 드리는 게 주제넘은 거라고 고민했던 부분인데요.”
<편하게 말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거다. 그러려고 널 초대한 거기도 하고.>
“네! 어떤 조언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백강민과 엘리펀트가 바로 답했다. 두 사람 모두 허락했기에 이경복도 결심을 굳혔다.
“알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엘리펀트 님은……”
엘리펀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주먹 쥔 손은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육식형 정글러를 포기하셔야 됩니다.”
이내 돌아온 답에 엘리펀트는 눈을 껌뻑였다. 주먹은 어느새 풀려 혈색이 돌았다.
“그 대신 성장형 정글러로 다시 연습을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네?”
<경복아, 그게 무슨……?>
두 사람은 충격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 이경복의 말은 그간 엘리펀트가 쌓아온 경험을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화를 내거나 그를 무시하지 않았다.
이경복이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엘리펀트 님의 실력을 전부 선보이려면 ‘위기의식’을 계속 느끼셔야 됩니다. 중요한 건 진짜 위기가 아니더라도 ‘의식’한다는 부분이 중요해요.”
그 기대대로 이경복은 이유를 설명했다.
“기존의 육식형은 ‘승부’에는 좋습니다. 하지만 프로 경기는 한 사람의 승부로 승패가 결정되지는 않아요. 팀을 위해서라면 성장형, 그중에서도 체력이 적어 쉽게 죽을 수 있는 챔피언을 하셔야 됩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게 도움이 된다는 말이냐?>
이경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미 이야기를 꺼낸 이상 주저는 없었다.
“엘리펀트 님 기본 실력은 제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초반에는 그 기량으로 버텨내고 후반에는 성장세를 발판 삼아 게임을 캐리하시면 될 거예요.”
“성장형 정글러를……”
엘리펀트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의 머릿속에는 성장형 정글러 유형의 챔피언들이 빠르게 떠올랐다.
하지만 오히려 더 막막함은 커져갔다.
<이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야. 어떤 챔피언을 고를 지부터 그 챔피언의 스킬과 템 빌드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거다. 그 적응과 별개로 챔피언 조합도 문제일 테고.>
백강민은 감독으로서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생각해 줘서 정말 고맙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경기 일정에 맞출 수 없는 해결책이구나.>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의외로 이경복은 순순히 동의했다. 그에 엘리펀트의 눈이 커졌다.
“그래서 제가 도와드릴 겁니다.”
“퍼플 님?”
이경복은 대답 대신 챔피언을 선택했다. 그와 함께 그의 모습이 고대 닌자, 야미로 바뀌었다.
“제가 말씀 드린 건 장기 플랜이고, 단기적으로 기량을 끌어올리려면 자극을 주는 것으로 충분하거든요.”
그는 수리검을 들어 엘리펀트를 겨누었다.
“경기 전날에는 제가 그 자극제 역할을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럼 방송은 어떻게 하려고?>
백강민의 물음에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길어도 10분인데, 그 정도는 문제없죠.”
엘리펀트의 눈빛이 일변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미친 소리로 치부했을 정도로 광오한 선언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10분은 아닐 겁니다.”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퍼플이었기에 승부욕이 타올랐다.
엘리펀트는 곧바로 라그넬을 선택했다.
* * *
백강민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맙소사……’
이경복과 엘리펀트의 승부 결과 때문이었다.
‘재능이 특별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가 바르잔이 아닌 야미로 전투에 임한 결과.
엘리펀트가 패배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이 아니었다.
‘고작 7분 만에 상준이를……!’
정확히 말하자면 7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그 7분 만에 최고 기량을 끌어냈어!’
이경복의 말처럼 그는 엘리펀트에게 충분한 자극이 되었다.
안 그래도 범용성으로 인정받았던 야미였던 만큼 다양한 공격을 선보인 덕이었다.
‘경복이 말대로 단기적인 문제는 이걸로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렇다면 성장형 정글러로 바꾸는 게 베스트다. 새끼 코끼리가 괴물 코끼리가 되는 거지.’
백강민이 회의적이었던 건 다가오는 경기 일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경복이 직접 앞에서 문제없다는 걸 증명했으니 그 걱정은 사라졌다.
‘성장형으로 전환한다고 육식형 플레이를 잊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전략의 폭이 넓어질 테고, 밴픽을 당해도 상관없을 거야. 이거 비밀무기로도 활용할 수 있겠는데?’
백강민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상시 풀 컨디션의 엘리펀트, 그리고 육식형과 성장형의 투 트랙 조합.
이 두 가지 카드가 판도를 뒤바꿀 수 있을 터였다.
‘역시 너는 천재구나.’
백강민은 새삼 이경복의 재능을 실감했다.
그가 합숙소를 찾은 지 채 1시간이 되지 않았건만, 엘리펀트 개인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된 건 물론 팀 전체의 긍정적인 미래를 그려주지 않나.
“와…… 이거 뭐야?”
“코치님이야? 아닌데?”
“저 사람 누구야?”
그리 생각에 몰입하고 있던 백강민은 들려오는 소리에 번쩍 눈을 돌렸다.
“너희들 언제?”
언제 왔는지 다른 선수들이 연습실에 있는 대형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독님, 새로운 멤버예요?”
“아니, 야미로 어떻게 상준이를 잡지?”
“내 말이. 게다가 노템인데?”
“와씨, 수인 맺는 게 퍼펙트 야미 수준인데?”
그리 놀라는 와중 캡슐이 열렸다. 기량을 올려뒀으니 더 승부할 필요는 없었다.
엘리펀트야 조금 더 붙어보고 싶었지만 어쨌든.
“어?”
“뭐야? 왜 다 나와 있어?”
두 사람은 몰려 있는 선수들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강민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일단 다들 돌아가라. 손님 배웅 좀 할 테니까.”
그는 선수들을 물리고 엘리펀트와 함께 이경복을 배웅했다.
“매번 숙소를 찾아올 수는 없으니까 선생님이 필요할 때 연락주세요.”
“그래, 정말 고맙다.”
“친추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엘리펀트는 넙죽 허리를 숙였다. 어디까지나 연습모드 초대를 위해 추가한 친구였지만, 그럼에도 이경복과 소통창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다.
“상준이는 들어가고. 한 번 팀원들이랑 정글러 논의 좀 해 봐라.”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엘리펀트가 들어가고 백강민과 이경복 둘이 남았다.
“오늘 정말 와줘서 고맙다.”
“아뇨, 당연히 와야죠.”
백강민은 바로 택시를 예약했다. 그는 슬쩍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이경복에게 물었다.
“경복아.”
“네?”
“……혹시 지금이라도 프로게이머 할 생각은 없느냐?”
갑작스러울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이경복은 놀라지 않았다. 애당초 스카웃 때문에 만나게 된 인연이니 만큼 예상했던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저는……”
“네 재능이라면 세계대회, 미드컵에서 한국이 우승하는 것도 꿈이 아니다.”
이경복이 합류한다면 티어원이 미드컵에 진출하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그 말에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네요.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 힘든 것과 즐거움은 다르다.’고 하셨죠.”
“그건, 그때는 프로게이머가 막연하게 게임하면서 돈 버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았으니까 그랬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마음가짐이 되지 않으면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스카웃 해 주셨을 때에는 이기는 게 곧 재미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좀 생각이 달라졌어요.”
“지금?”
“네. 방송 시작하면서 여러모로 다른 재미도 찾았거든요.”
만약 스트리머가 되지 않았을 때 백강민과 다시 만났다면 생각이 달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스트리머였다.
“시청자들이랑 소통하는 것도 즐겁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도 없죠. 뭐, 아직 져 본 적이 없긴 하지만.”
이경복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시대가 많이 달라졌어요. 가상현실이라는 게 참 대단하더라고요. 그때는 레전드 리그가 가장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즐길 거리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구나.”
“네, 죄송스럽지만 제안은 이번에도 거절해야겠네요.”
이경복의 대답에 백강민은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옛날처럼 안타까움은 없었다.
“언젠가 네가 인정받을 날이 올 줄은 알았다.”
이경복의 재능은 이제 더 이상 묻혀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즐거워하니 더 권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구나.”
백강민은 이경복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그 역시 마주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언제든 길을 열어두마. 생각이 바뀌면 다른 팀에 가지 말고 티어 원으로 와야 된다?”
“하하, 생각해 볼게요.”
때마침 택시가 도착했다.
이경복은 백강민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래, 또 보자.”
끊이지 않은 인연에는 ‘다음’이 있다. 다시 이어진 인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경복은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가 찾아낸 즐거움.
시청자들에게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