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181화 (181/491)

181화 - (주)퍼지데이 인턴 모집 (4)

오디션 참가자 50팀, 100인의 실기 시험이 끝났다. 그 인원수에 비해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팀당 짧으면 1분, 길어도 5분 안에 결과가 나온 덕이었다. 실기 시험 결과 최종 4팀이 선정되었고, 그 4팀은 마지막으로 바텀 라인에서 4강전을 벌였다.

“아! 스컬킴과 박잡초, 골초 팀이 마지막 승리를 가져가게 됩니다아아아!”

지놈이 열의에 찬 목소리로 중계를 마쳤다. 최종결승전에서 우승한 건 본래 그가 영입하려던 멤버, 스컬킴과 박잡초였다.

-골초 우승! 골초 우승! 골초 우승!

-와 ㅋㅋ 역시 합방 경험은 무시할 수가 없네 ㅋㅋ

-상대도 잘하긴 했는데 진짜ㅋㅋㅋㅋ

-이래서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구나

-갓플이 찐으로 알짜배기만 골라놔서 그런 거 ㅋㅋㅋ

-진짜 다 실력자만 뽑긴 했음

-이게 바로 ‘퍼펙트-아이’라 이말인가?

시청자들은 지원자들의 경합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때 이경복이 앞으로 나섰다.

“자, 지금부터 인턴 선발의 최종 과정을 진행하겠습니다.”

그 말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번졌다. 아직 끝이 아니란 말인가?

이경복은 이에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앞서 주주님들의 의견이 반영된다고 공지를 해드렸었죠. 이제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하실 차례입니다!”

그 말과 함께 지놈이 손을 움직이자 시청자들 앞에 투표창이 나타났다.

4강까지 오른 4팀의 이름이 목록에 나열되었다.

-퍼지데이 주주 총회 ON!

-엌ㅋㅋㅋ 의결권ㅋㅋㅋㅋ

-구독자 전용 투표ㅋㅋㅋㅋㅋㅋ

-아직 퍼지데이 주식 안 산 흑우 없제?

-배당으로 꿀잼을 주는 기업이 이따!?

-엌ㅋㅋ 꿀배당은 못 참지!

-깨알같이 비밀투표 무엇? ㅋㅋ

-블랙기업인데 뭔가 다 잘 지킴ㅋㅋㅋㅋ

시청자들의 투표가 빠르게 이어졌다.

“저희 퍼지데이와 함께 할 새로운 인턴은 바로!”

이내 투표가 마감되고 지놈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경복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발표했다.

“최종 득표율 95.6%, 스컬킴과 박잡초입니다.”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바였다.

스컬킴과 박잡초가 곧바로 스튜디오로 초대되었다.

두 사람이 등장하자 채팅창은 박수와 엄지를 치켜세우는 이모티콘으로 가득해졌다.

이경복과 지놈, 그리고 이클립스 역시 박수와 함께 최종 합격자를 환영했다.

“자, 새로 입사한 인턴들 소개에 앞서 이번 오디션에 지원해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놈은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특별히 최종 경연에 참가해 주신 4팀 전원에게는 면접비로 제각기 구독권 10장을 제공해드릴 예정입니다!”

“오?”

“진짜요?”

그 말에 스컬킴과 박잡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정에 없었던 선물이기 때문이었다.

-뭐야? 몰랐던 거임?

-퍼지데이 복지 수듄ㅋㅋㅋㅋ

-블랙기업이라며! 블랙기업이라며!

-쥐놈이 회사 돈 멋대로 쓴다아!

-횡령 멈춰!

시청자들이 장난스럽게 반응하자 지놈도 그에 반응했다.

“아니, 무슨 횡령입니까? 이거 제가 사비로 드리는 겁니다!”

반은 농담, 반은 진담이었다.

원래는 다 같이 부담하기로 했지만 지놈이 그냥 자신이 내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엌ㅋㅋ 알고 보니 셀프 횡령이었고

-셀프 횡령은 또 뭔 말이얔ㅋㅋ

-직원한테 비용을 전가하는 기업이 이따!?

-아 ㅋㅋ 이게 블랙기업이지

-킹직히 지 사원은 돈 내고 회사 다녀야지 ㅋㅋㅋ

-ㄹㅇㅋㅋ 버스비 내야 할 거 아니냐고

-이게 그 친구비인가 그거냐?

이경복은 채팅 반응을 확인하며 웃음을 흘렸다.

“우리 지사원이 참 애사심이 대단합니다. 이제 일만 잘하면 되는데……”

“아니, 사장님! 저 일 잘합니다!”

두 사람의 애드립에 채팅창에 웃음이 번졌다.

-사람이 좋다 = 다른 장점이 없다

-엌ㅋㅋㅋ 예전에 거그 운전할 때 생각난다

-???: 저 킹전 잘합니다!

-아 ㅋㅋㅋ 일 못하면 돈이라도 내야지

-알고 보니 특채 전형이 지갑전형이었고?

-기부전형이라는 말 놔두고 왜 지갑인뎈ㅋㅋㅋ

덕분에 분위기가 더 부드러워졌다. 그 증거로 스컬킴과 박잡초도 뒤에서 웃고 있었다.

“자자, 그럼 우리 새로운 인턴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죠.”

“좋습니다. 먼저 스컬킴 인턴?”

두 사람은 제 역할을 다한 것처럼 옆으로 물러났다. 이번 오디션의 주역인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아, 네네. 아직 좀 얼떨떨합니다. 늘 방송으로만 봐왔던 저희 사장님이랑 대리님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요. 정말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어? 잠깐, 저는요? 저는 왜 빠집니까?”

지놈이 슬쩍 끼어들자 스컬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사원 직급이랑 함께한다고 영광은 좀……”

그 대답에 채팅창에 웃음이 터졌다.

-엌ㅋㅋ 이게 맞지 ㅋㅋ

-ㄹㅇㅋㅋ 인턴이나 사원이나 뭐 크게 차이난다고

-괜히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쥬?

-정규직이라고 갑질 하려다가 개같이 멸망ㅋㅋㅋㅋㅋ

-그저 추! 그저 쥐! 대다나다!

-아 ㅋㅋ 그냥 지갑이나 여시라고요

-반박불가라 바로 쭈구리 되는 거 개 웃기네 ㅋㅋㅋ

이경복도 이에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가세했다.

“지 사원? 아직 얘기가 안 끝났는데 그렇게 끼어들면 안 됩니다.”

“아, 넵.”

그가 물러나자 스컬킴은 짧게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어렵게 얻은 기회라 생각합니다. 회사를 위해 ‘분골쇄신’하겠습니다!”

-여기서 골절을 한다고?

-그놈의 골절 진짜 ㅋㅋㅋㅋ

-아 ㅋㅋ [骨]때리네 정말

-ㄹㅇㅋㅋ [骨][骨]대지나 않았으면 다행이지

-골절은 또 뭔데에에에!

-퍼청자들 이런 건 [BONE] 적도 없어서 당황잼ㅋㅋㅋㅋ

-정보) ‘스컬’의 뇌‘절’ + 시청자들의 맞절 = 골절 > 뼈가 들어가는 말 나오면 이모티콘 쓰는 밈

-어질어질하다 그죠?

-[骨]하하하

-골하하하는 뭔뎈ㅋㅋㅋㅋ

이윽고 채팅창에 스컬킴 구독자 전용 이모티콘이 솟아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발언권이 박잡초에게 넘어가자 곧 주의가 돌아갔다.

“어, 저도 스컬이랑 비슷한 기분이고요. 그 유명한 제로백 버스에 탑승하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이제 우승 상금으로 뭐 할지 고민해 봐야겠어요.”

“우승 상금이요?”

지놈은 뭔가 기대하는 듯 눈빛을 주며 질문했다. 박잡초가 이에 싱긋 웃으며 답했다.

“어차피 우승은 퍼지데이 아닌가요?”

-과학을 좀 아는 친구네 ㅋㅋ

-역시 박잡초! 뽑힐 만 했다!

-근데 진짜 어디서든 뽑히겠다고 이름을 박잡초로 지음 ㅋㅋㅋ

-엌ㅋㅋ 시청자들 눈에 ‘밟히겠다’고도 했었음

-이왜진?

-하지만 스컬킴과 같이 놀게 된 그는 의문의 흡연자가 되어버리는데……

조금 전 스컬킴의 팬들처럼 박잡초의 팬들도 나서서 그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아, 박잡초 인턴. 뭔가 잘 못 알고 있어요.”

“네?”

“어차피 우승은 퍼지데이. 이건 맞는데 우승 상금이 사원들 몫으로 반드시 돌아간다, 이런 보장은 없거든요?”

지놈의 말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 ㅋㅋ 그건 맏찌

-ㄹㅇㅋㅋ 타임워페어 때도 갓플이 독식해버렸쥬?

-근데 쥐놈은 그런 말 할 자격 없지 않음?

-진짜 ㅋㅋㅋ 그때 반역모의 했다가 바로 추해버렸고

-사장이 이익을 독식한다, 블랙기업의 상식이잖아?

-그놈의 상식 진짜 ㅋㅋㅋㅋㅋ

지놈의 말에 이전 거너 그라운드 이벤트 대전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금 더 잡담을 나눈 후 인터뷰가 끝나고 이경복이 앞으로 나섰다.

“자, 다시 한 번 지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오늘 끝까지 지켜봐 주신 주주 여러분께 더 큰 감사를 드립니다.”

“놀랍게도 퍼지데이의 업무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사실! 앞으로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지놈이 그렇게 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쓱 훑었다.

“오늘 시청 감사합니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겠소!”

“다음에 봐요!”

“다음 방송도 ‘본’방 사수!”

“트바!”

5명의 마무리 인사와 함께 방송이 끝났다. 하지만 그들 모두 바로 헤어지지는 않았다.

“늦게까지 고생하셨습니다.”

“아유, 아닙니다.”

“진짜 재미있었어요.”

그들은 스튜디오에 배치된 원탁에 자리를 잡았다.

“너무 길게 붙잡지는 않겠습니다. 그냥 간단히 짚고 넘어갈 것만 얘기하고 끝낼게요.”

이경복이 가볍게 말했다.

이제 한 팀이 되었고 공동의 목표가 있기에 간단한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었다.

“미친스머프가 아마추어 대회긴 해도 대회 룰이 적용되다 보니 무엇보다도 우리 팀에 중요한 건 밴픽 대비입니다.”

지놈이 뒷말을 받으며 설명했다.

의외로 그 논의의 중점은 새로 들어온 두 사람이 아니었다.

“스컬이랑 잡초 님은 원래 미스틱 리그 방송을 해서 괜찮아요. 지금 가장 빨리 서브 챔피언을 준비해야 하는 건 이클립스고.”

“예, 알고 있습니다.”

이클립스는 익숙한 챔피언이 정의기사, 가이엔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대비할 사람은 또 있었다.

“퍼플도 서브 챔피언을 늘릴 필요가 있어.”

바로 이경복이었다.

야미와 바르잔, 2명의 챔피언을 숙달했음에도 그가 지목된 이유.

“확실히 제가 상대편이어도 퍼플 님 픽은 밴할 것 같아요. 워낙 잘하신다는 게 밝혀졌으니……”

“이번 대회에서 야미랑 바르잔은 게임에 나올 기회가 없지 않을까 합니다.”

너무 실력이 뛰어난 만큼 집중 견제의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미스틱 리그를 주로 즐겼던 만큼 스컬킴과 박잡초도 바로 동의했다.

“네, 저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클립스가 2순위가 되겠죠. 이번 오디션 때 또 보여준 게 있으니.”

이경복도 수긍하고 이클립스를 돌아봤다.

탑 라이너로서의 실력은 물론 원딜러를 능수능란하게 상대하는 모습도 노출이 됐으니 밴픽 후보가 될 터였다.

“음…… 적성에 맞는 챔피언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래, 일단 당장 급한 건 그 정도고 다음 합방 일정은 따로 정하는 걸로 하죠.”

지놈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일어섰다. 스컬킴과 박잡초가 일어서면서 웃음을 흘렸다.

“뭔가 기분이 묘하네요. 미스틱 리그 경력은 제일 짧으신데 밴픽 대상이라니.”

“나도 뭔가 좀 어색해.”

그 반응에 지놈이 감격한 얼굴로 말했다.

“와…… 드디어 내 심정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생겼네요.”

이에 두 사람이 눈을 껌뻑이자 지놈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진짜 이런 천재들이랑 있으면 인지부조화가 자주 오거든요. 그래도 곧 익숙해질 겁니다. 앞으로도 많이 겪게 될 테니까.”

“아하……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습니다.”

“퍼플 님께 갱킹 당했을 때 절절하게 느꼈죠.”

세 사람은 그들만의 동질감을 느끼며 웃음을 흘렸다. 이경복과 이클립스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자자, 그럼 마지막으로 파이팅하게 구호 외치고 파하죠.”

지놈은 생긋 웃으며 손을 뻗었다. 구호가 무엇인지 따로 논의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우승은?”

그가 바로 말하자 5명 모두 미소를 지었다.

“퍼지데이!”

그렇게 퍼지데이 팀의 결성은 순조롭게 끝났다.

* * *

다음 날, 번화가의 스터디 룸.

이경복과 친구들은 넓은 방에서 회의를 시작했다.

“하투킬, 금마는 진짜 징하다 징해. 어떻게 그렇게 밉상 짓만 하냐?”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최병훈이 말을 꺼냈다.

“예전보다 더 악화된 것 같더라.”

“아, 내 말이! 예전에는 그래도 방송 중에 그렇게 티는 안 냈는데. 어우, 이번에는 방송 중에도 가증스러움이 묻어나오던데?”

최병훈은 옛날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가능하면 서류 심사에서 떨어뜨렸을 텐데 말이지.”

“뭐, 내가 직접 떨어뜨렸으니까 괜찮잖아?”

박주호가 아쉬워하자 이경복이 말을 받았다. 최병훈은 바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야, 금마 성격상 서류에서 떨어지면 그걸로 지랄했을걸? 아마 억울하다고 어그로 땡겨서 이슈 만들고 조회수나 뽑으려고 했겠지.”

“오히려 깔끔하게 처리가 됐다고 생각하면 되겠군.”

“그래, 어차피 이제 볼 일도 없고. 진짜 마음 같아서는 최대한 추하게 편집하려다가 말았다. 그걸로 또 괜히 엮이려고 할까 봐.”

“그래,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잘한 거다.”

박주호가 그리 말하고는 스마트 링크를 조작했다.

“이제 우리 쪽 오디션도 결정을 지을 차례다.”

그와 함께 스터디 룸에 벽면에 서류가 빼곡하게 채워졌다. 그들 모두가 팀 퍼펙트의 번역가에 지원한 사람이었다.

“기본 스펙으로 필터링하고 활동내역으로 또 필터링해서 골라낸 지원자들이야.”

“어우, 그렇게 걸렀는데도 꽤 많네?”

“이것도 나름 깐깐하게 거른 거다. 활동 내역에서 흠 잡을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으니까.”

두 친구가 말하는 사이 이경복의 눈이 빠르게 서류를 훑었다.

“총 48명인가.”

“와씨, 그걸 바로 다 세냐?”

“여기서 최종면접자들을 선발해야 되는데, 아무래도 내가 하기보다는 네가 직접 하는 게 좋겠지.”

박주호는 객관적인 조건을 분석하는 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고르는 건 이경복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와…… 근데 시청자분들 중에 똑똑한 사람들 진짜 많네.”

“나도 좀 놀랐다. 통번역 대학원 나오신 분도 있고, 해외명문대 출신도 있고, 4개 국어도 가능한 분이 있고……”

“너무 좋아서 고르기가 진짜 빡세겠다.”

최병훈은 혀를 내둘렀다.

두 친구의 말에 이경복은 피식 웃고는 차근차근 서류를 훑어봤다.

그때 문득 좋은 생각이 낫다는 듯한 얼굴로 최병훈이 입을 열었다.

“야, 이거 지원자분들 생년월일만 따로 정리해서 이모님께 사주 좀 봐달라고 하면 안 되겠냐?”

“……넌 그걸 말이라고 하냐?”

박주호가 바로 눈을 흘겼다.

“바쁘신 이모님 귀찮게 하는 건 물론이고 개인 정보를 그렇게 멋대로 외부로 유출하면 안 되는 거 몰라?”

“아, 그런가?”

“……너는 계속 편집만 해라.”

이경복은 그런 친구들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모님 사주 못 보셔.”

“응?”

“할머니께서 사주를 안 보셨거든.”

사주라는 말에 이경복은 옛 기억을 떠올렸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장례까지 마친 후, 그는 할머니에게 거두어졌다.

그러나 그 과정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왜? 왜 몰랐는데?’

당시 이경복은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부모님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기에는 이른 나이였다.

이에 그에게는 이유가 필요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다는, 그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설명’이 필요했다.

‘할머니 무당이라며! 대단한 무당이라면서!’

그 요구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로 향했다. 원망까지 뒤섞인 그 물음에 할머니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흔히 무당들은 사람의 운명을 사주로 점치려고 하지.’

사주(四柱).

태어난 연월일시, 그 4가지의 시기를 기반으로 무당이 운명을 점치는 방법.

‘허나 사람의 운명은 그리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그러나 할머니는 여느 무당과는 달랐다.

‘경복아, 너는 언제 태어났느냐?’

‘내 생일도 모른다는 거야?’

‘생일? 경복아, 네가 생일에 태어났느냐?’

할머니는 이경복의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다시 물으마. 며늘아기가 너를 뱃속에 품었을 때, 너는 죽어 있었느냐?’

‘그건……’

‘너의 삶은 언제 시작되었느냐? 산부인과 의사가 너를 며늘아기 뱃속에서 꺼내주었을 때부터? 정녕 그리 생각하는 게야?’

이경복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내 비록 며늘아기를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그날은 기억한다. 손주가 생겼다며 기뻐하던 두 사람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주름진 뺨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경복아, 부모님은 널 언제부터 사랑하였느냐? 너의 손과 발이 생기기도 전부터 그러했을 것이다. 네가 너 자신의 존재를 알기 전부터 그러했을 것이다.’

이경복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부모님을 잃었지만, 할머니는 자식을 잃었다.

그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니 어찌 무당이라고 삶의 시작을 이해하겠느냐. 정확한 사주를 알아내는 건 인간의 능력 밖이란다. 같은 사주인데 삶이 다른 경우가 얼마나 많을 진데……’

할머니는 크게 숨을 들이쉬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경복아, 운명을 제대로 가늠하고 싶다면 그 사람을 직접 만나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더욱 짙게 배어나왔다.

‘나의 업보는 아들놈과 며늘아기를 자주 만나지 않은 것이다. 손윗사람이라는 고집에 먼저 찾지 않은 것이다. 내가, 내가 먼저 찾았더라면……’

이경복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할머니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던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이 할미는 두 사람의 넋을 달래며 맹세했다. 경복이, 너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할머니가 부모님을 걱정했듯 그의 부모님도 이경복을 걱정할 터였다.

진짜 부모라면, 자식의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할머니는 자신의 슬픔을 삼키고 그 앞에서 의연한 척을 했던 것이다.

‘이모님 말씀 들으면 아직도 걱정하시고 계신 것 같지만.’

이경복은 양규리가 해 준 꿈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기억을 갈무리했다.

“결정했다.”

“벌써?”

“크으! 역시 인간감별사 클라스.”

이경복의 말에 두 친구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에 웃으며 말했다.

“전부 면접 보자.”

그 말에 상반됐던 두 친구의 표정은 하나로 통일 됐다.

“뭐?”

“엉?”

이경복은 스마트 링크로 펼쳐진 서류들을 다시금 한데 모았다.

“이 사람들 모두 기준을 통과한 사람들이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단순히 돈 벌려고 지원한 것도 아니고, 날 좋아해 주는 분들인데 그냥 이런 글자만 보고 결정하기보다는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옛 기억을 떠올리며 이경복은 새삼 할머니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직접 만나보면 더 잘 알 수 있을 거야.”

그 말에 두 친구는 시선을 마주하더니 이내 웃음 지었다.

“사장님 결정이 그렇다면야.”

“확실히 스캐너는 바코드를 직접 찍어봐야 정확하지.”

“또 휴먼스캐너, 그 소리냐.”

이경복은 두 친구의 대답에 마주 미소 지었다.

“그럼 장소 섭외하고 연락 돌릴게.”

“그래, 부탁할게.”

따로 사무실이 없는 만큼 면접을 위해서는 별도의 장소가 필요했다.

“잘 맞는 사람이 오면 좋겠다.”

“이 중에 하나는 있겠지.”

“4번째 멤버인가.”

팀 퍼펙트의 새로운 멤버.

세 사람 모두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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