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 블랙기업에게 OT란? (3)
암운이 드리운 하늘 아래 놓인 대저택.
그 3층에는 해골과 허수아비, 그리고 희멀건 두 유령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군,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명령을……!”
이클립스가 부복하며 말했다.
1층 현관에서 시작하는 엑소시스트, 지놈이 바로 올라올 터였다.
그 말에 이경복은 웃음을 흘렸다.
“아니, 미스틱도 아닌데 오더는 필요 없죠.”
그의 신기와 육감을 이용하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게임 시스템상 일정 거리 이상 벌어지면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았다.
“알아서들 잘하셔서 업무 끝내도록 합시다.”
그 말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사내분위기가 왜 그런가 했더니 사장 명령이었쥬?
-아 ㅋㅋㅋ 실적만 가져오라고
-블랙기업특) 교육기간이라면서 돈은 조금 주는데 가르쳐주는 거 없음
-야앀ㅋㅋ 이러다가 진짜 블랙기업인줄 아는 사람도 있겠다
-퍼지데이 그런 기업 아님니다^^
-논란일자 오해
-순진한 트수들 홀리지 말라고 ㅋㅋㅋ
이내 다른 세 사람이 답했다.
“사장님, 스피릿 버스터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니까 조심하십쇼.”
“일단 만나면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임무를 반드시 완수하겠나이다. 옥체 보존하소서!”
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네 사람은 각기 흩어져 결계방으로 향했다.
“보니까 그 스피릿 버스터가 총을 들고 있던데, 영화에서처럼 레이저를 쏘나요?”
이경복은 여유롭게 복도를 거닐며 질문을 던졌다. 사운드 플레이에 집중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ㅔ
-원거리 공격이 좀 사기임 ㅋㅋㅋ
-직선이 아니라 막 지그재그로 날아와서 피하기가 어려움
-원작 고증이라서 너프도 못하고 ㅅㅂㅋㅋㅋㅋ
-미리 선택하면 욕먹을까봐 게임 시작 전에 꺼낸 지놈클라스
-추놈이 또 추해버렸다 이말이야
-사원 교육 제대로 부탁드립니다^^
-아 ㅋㅋ ‘퍼펙트-교육’은 킹정이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경복의 피지컬이라면 잡담을 나누면서도 사운드 플레이가 가능할 터였다.
“그래요? 과연 지 사원 실력이 어떨지 참 기대가 됩니다.”
시청자들 반응에 그는 웃음을 흘리며 목적지인 결계방의 문을 열었다.
“그러려면 지 사원이 올 수 있게 해 줘야겠죠?”
-엑소시스트를 피하지 않는 지박령 ㅎㄷㄷ
-이거 완전 악령 마인드 아님? ㅋㅋㅋ
-아 ㅋㅋ 처음 해도 고인물이라니까!
-지박령 첫 플레이 (고인물)
-상대가 어렵다? 오히려 좋아!
-아 ㅋㅋㅋ 퍼배깅 오늘 보나요
-퍼배깅은 또 뭔뎈ㅋㅋㅋ
채팅창에 즐거움이 가득해지는 사이 이경복은 결계로 향했다. 엑소시스트로 플레이 하면서 다른 멤버들의 플레이를 봐 왔던 터라 뭘 해야 할지는 알 수 있었다.
은은한 빛을 발하는 마법진에 손을 올리자 눈앞에 게이지 바가 나타났다.
‘이래서 손을 뗐다 뺐다 했구나.’
이경복은 첫판에서 박잡초가 그의 접근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이유를 실감했다.
게이지가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마법진의 빛이 시야를 서서히 메우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웅웅거리는 울림이 귓가에 울려 주변 소음을 차단했다.
결계 해제 중에는 감각을 교란해 엑소시스트의 공격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박령도 해제를 기다리기만은 하지 않았다.
“이거죠? 건드리면 해제가 가속되는 게? 다른 사람들이 손을 막 움직이던데.”
그저 손을 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게이지가 차오르지만 그 속도를 앞당기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마법진 곳곳에 무작위로 나타나는 균열이었다.
-ㅇㅇ 그거 맞음요
-효율 높이려면 지금 해야 됨!
-ㄹㅇㅋㅋ 게이지 거의 중반 넘어가면 균열 찾는 것도 빡셈
-후반에는 그냥 손 넣다 뺐다 하면서 경계하는 게 좋음
-엑붕이들 신나서 입 터졌네ㅋㅋㅋ
-근데 이건 갓플이 물어본 거라서 칼질은 안할 듯 ㅋㅋㅋ
시청자들의 대답에 이경복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요? 그냥 빨리 해제하는 편이 더 안전하지 않나?”
그 말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
-아니! 눈뽕 때문에 못 한다니깐!
-아 ㅋㅋ 해보시면 아신다구요
-갓플이면 할 수 있을지도?
-아아, 그것이 ‘퍼펙트-해제’니까.
-엑붕이들 ‘못’과 ‘안’의 사용법 좀 배워야겠누
이경복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대신 그는 웃으며 손을 움직였다.
균열에 손을 댈 때마다 게이지에 ‘>>>’표시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시청자들의 말처럼 게이지가 차오를수록 마법진의 빛은 더욱 강렬해졌고, 울림 또한 커졌다.
-와씨 ㅋㅋㅋ 개빠르네 진짜
-벌써 절반 돌파 ㅎㄷㄷ
-ㄴㄴ 여기까지는 익숙해지면 다 할 수 있음
-갓플은 이게 첫트입니다만?
-아 ㅋㅋ 갓플이 첫트 성공은 익숙하긴 하지
-이거 중간에 삑사리 나면 속도 줄어드는데 한 번을 안 틀리네;;
이경복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
틀리려고 해도 틀릴 수가 없었다. 번쩍이는 빛과 무관하게 균열이 형성될 지점을 그의 육감이 감지해냈기 때문이었다.
“이제 좀 빨라지네요.”
이경복의 멘트와 더불어 균열의 등장 주기가 짧아졌다. 하지만 그의 손은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눈뽕 미쳤다 ㅅㅂㅋㅋㅋ
-으악 내 눈!
-아니;;;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누워서 보던 트수들 강제 개안 ㅋㅋㅋ
-엌ㅋㅋㅋㅋ 방에 불 끄니까 클럽느낌 난다
-아이고 엑붕아! 어떤 클럽에서 하얀 조명만 쏘냐!
-아차차!
-아차차 ㅇㅈㄹㅋㅋㅋ
-아 ㄹㅇㅋㅋ만 치라고
게이지가 급속도로 차오르자 마법진의 빛에 화면이 전부 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그 빛 속에서도 이경복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이정도면 음악 없이 리듬 게임 하는 거 아님?
-ㄹㅇㅋㅋ 이 형 또 혼자 다른 게임 시작함ㅋㅋㅋ
-??? : 그게 보여요?
-와씨 ㅋㅋㅋ 진짜 올콤을 때려버리네
-올콤 전에 코 간지러운 거 ㅇㄷ?
-아 ㅋㅋ 그건 국룰이지
결국 게이지가 전부 채워지자 섬광이 터졌다. 동시에 마법진은 입자로 변해 허공에 흩어졌다.
이경복은 만족스럽게 손을 털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중간에 경계할 필요가 없죠.”
-그렇게 할 수 있으면 다른 지박령이 필요 없는 데요;;;
-혼자서 결계 5개 호로록하면 되자너~
-팀 게임을 또 솔로 게임으로 만들어버리기 ㅋㅋㅋㅋ
-데바엑에 타임어택 모드 언제 나옴?
-무친 ㅋㅋ 지박령 스피드런 ㅋㅋㅋ
시청자들의 익살스런 채팅에 이경복도 웃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생각보다 빠르네.’
그의 신기에 잡힌 지놈의 위치, 그 주변에는 스컬킴과 박잡초가 있었다.
[‘박잡초’가 봉인되었습니다.]
이윽고 나타난 메시지에 시청자들의 주의가 돌아갔다.
-헐?
-개 빨리 잡네;;;
-스피릿버스터면 가능하긴 함 ㅋㅋㅋㅋ
-추놈쉑 만만한 인턴부터 잡아버리쥬?
-사내 갑질 뭐냐구웃!
-스컬킴은 살았나?
스컬킴은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이경복 역시 이동하다가 의아함을 내비쳤다.
“어? 봉인 위치가 사라지네요?”
봉인과 동시에 표기됐던 박잡초의 위치가 다시 사라지는 게 아닌가?
혹시 버그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거 특능 때문임요 ㅋㅋㅋ
-영화에서 유령 봉인하는 장치 기억나심?
-아 그것도 있음?
-ㅇㅇ 그것도 성능 개 좋음
-오컬트 함정의 강화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이말이야
-이거 사기인 게 결계가 아니라 봉인이라서 시간 지나면 아웃임ㅋㅋㅋ
스피릿 버스터의 특수능력 ‘휴대용 봉인장치’의 효과였다. 함정처럼 설치도 가능하고 지금처럼 휴대도 가능했다.
“오, 다시 나왔다. 근데 이러면 위치가 노출되지 않나요?”
-ㅇㅇ 그게 패널티임
-솔직히 이것도 없었으면 진짜 개 욕 처먹었을 듯 ㅋㅋㅋㅋ
-이때 최대한 이득 봐야 그나마 밸런스가 맏따
잠시 후 다시 박잡초의 위치가 나타났다. 신기에 잡히는 위치와 같은 것으로 보아 지놈이 장치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요? 사실상 페널티라고 하긴 좀 힘들어 보이는데.”
그 말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일단 장치를 들고 다니면 잡힌 사람의 구출은 거의 불가능하고, 위치노출도 저처럼 보고 있을 때만 확인이 가능하잖아요? 결계 해제 중이거나 다른 방향 보고 있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오? 그러네?
-ㅇㅇ 이거 맞음ㅋㅋㅋㅋ
-와 ㅋㅋ 이걸 보자마자 알아차리네
-괜히 퍼지컬이 아니다 이말이야
-그나마 다행인 건 봉인 장치가 하나라는 거 ㅋㅋㅋㅋ
-그래서 붙잡힌 지박령은 버리는 게 맞음
-불쌍하지만 킹쩔 수 없지
-블랙기업특) 인턴은 쓰고 버림
-않잌ㅋㅋㅋ 이걸 이렇게 연결하냐곸ㅋㅋㅋ
-최고잡초야 고맙다!
시청자들은 박잡초를 포기했지만 이경복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 제대로 일도 못 했는데 퇴근을 시켜 줄 수는 없죠.”
-?
-사장님의 퇴근 불가 선언 ㅎㄷㄷ
-추노 ON!
-아니;;; 지박령으로 왜 추노플레이를 해요!
-구출까지 해서 일을 시키겠다 이말인가?
-블랙기업특) 아파도 병가 못 씀
-???: 허나 윤허하지 않았다
-황희 메타 뭔데 ㅋㅋㅋㅋㅋ
-이게 된다고?
-아 ㅋㅋ 말만 번지르르한 추놈과는 다르다 이말이야
-갑자기 맞는 추놈 ㅋㅋㅋㅋ
이경복의 선언에 시청자들은 의아해하면서도 기대를 품었다.
“혼자 한다는 건 아닙니다. 다른 직원들과 협업을 해야죠.”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맞은편 복도에서 해골, 스컬킴이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시청자들은 이에 놀랐지만 이경복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애당초 그는 신기를 통해 스컬킴과 합류하려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아! 사장님!”
스컬킴도 그를 발견하고 안심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아니, 그게……”
그는 기가 차다는 듯 제 두개골을 짚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제가 발소리 듣자마자 경고하고 유인했거든요?”
망을 보던 스컬킴은 지놈을 보고 놀란 척 소리치며 도망쳤다. 그러나 지놈은 그를 뒤쫓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희 플레이 스타일을 아시니까.”
지놈은 바로 박잡초가 있는 결계방을 급습했다. 때문에 박잡초는 은신처에 숨을 타이밍도 없었다.
“그래서 제가 다시 가서 봤죠. 폴더 가이스트 각이라도 나오면 쓰려고. 아니, 그런데……”
지놈과 대면한 박잡초는 심리전 승부에 들어갔다. 첫 공격을 피하고 탈출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수니까 한 번 봐주겠다 그러는 겁니다.”
지놈은 박잡초에게 겨눈 총구를 돌렸다. 스컬킴과 박잡초는 그것이 방송을 위한 퍼포먼스라 생각했다.
“그래도 의심스러우니까 잡초가 엄청 주의하면서 옆으로 돌아가는데, 진짜 아예 조준을 안 하더라고요.”
지놈은 제 말을 지키겠다는 듯 총을 아예 옆으로 돌려놓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박잡초가 움직인 순간.
“그때 바로 레이저가 발사되더니 거울에 반사가 돼서……!”
지놈이 방아쇠를 당기자 쏘아진 레이저가 방 안의 거울에 적중했다. 그와 동시에 궤도가 굴절되며 박잡초를 적중했다는 것.
-와 ㅋㅋㅋ 지놈이 잘하긴 하네
-ㄹㅇㅋㅋ 거울반사는 진짜 고인물 테크닉인데
-그만큼 추하게 스피릿 버스터 많이 했다는 뜻 아님?
-이거 분명 심리전에서 놓칠 것 같아서 구라친 거임 ㅋㅋ
-킹직히 지놈 믿은 잡초 잘못도 있음ㅋㅋㅋ
-그걸 믿었음? 지놈킥!
그 증언에 시청자들은 물론 이경복도 웃음을 흘렸다.
“이거 정말 안 되겠네요. 인성 교육 한 번 가야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장님!”
스컬킴이 의욕을 내비치자 그가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이클 대리부터 찾아보죠.”
* * *
지놈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진짜 치사한 거 아닙니까?”
그 뒤에서 박잡초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놈은 이에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한 건데 무슨 문제라도?”
“업보는 돌아옵니다. 반드……”
박잡초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지놈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패널티인 위치노출을 역이용하면 동선에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업보 무서우면 데바엑 못 하쥬?”
-아 ㅋㅋㅋ 진짜 얄밉게 말하네
-ㄹㅇㅋㅋ 킹받는다 이말이야
-더 킹받는 건 추한데 잘한다는 거 ㅋㅋㅋㅋ
-이게 블랙기업의 인재지 ㅋㅋㅋ
-인재? 재난을 말하는 것인가?
시청자들은 장난스럽게 놀리면서도 그 실력을 인정했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그래도 사장님 앞에서는 못 당하쥬?
-퍼사장님 업무 속도 봤냐고 ㅋㅋㅋ
-순수 실력파 블랙기업 사장이 이따!?
-이번 게임 갓플 못 잡으면 무적권 진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 ㅋㅋㅋ
지박령이 된 이경복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지놈 역시 그 사실을 주지하고 있었다.
“진짜 사장님 피지컬은 미쳤다니까? 아니, 동체시력이나 반사신경 보면 빠를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지. 그보다 그 눈뽕을 어떻게 버티시지?”
그 물음에 채팅창은 ‘ㅋㅋㅋ’와 ‘ㄹㅇㅋㅋ’로 가득해졌다. 지놈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이번 판 결계 보호는 포기하는 게 맞고. 그보다는 대리님이랑 스컬 인턴 잡은 다음 사장님이랑 탈출구 앞에서 1:1하는 게 가장 승산이 높아.”
-올ㅋ
-나름 플랜 다 짜뒀네 ㅋㅋㅋ
-???: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갓플을 만나기 전까지는
-ㄹㅇㅋㅋ 갓플 만나면 다 소용없쥬?
시청자들의 말에 지놈은 코웃음을 쳤다.
“아니, 내가 그래서 지금 이클 대리님 동선 쫓는 거 아냐. 스컬 인턴은 바로 런 했고 사장님이 해제한 결계 반대쪽, 여기가 맞다니까?”
이내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결계방이 보이는 복도로 진입했다.
그러나 그는 바로 들어가지 않고 짧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적절한 때를 기다려야 했다.
‘지금이다……!’
커튼 친 창문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시스템상으로 벽을 투과해 보여주는 신호보다 더 빠른 증거였다.
서둘러 뛰어가 벌컥 문을 연 그는 총구를 상대에게 겨누었다.
‘어?’
그런데 예상외로 그곳에 있는 건 이클립스가 아니라 이경복이었다. 순간 지놈은 당황했지만 이내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결계에서 섬광이 터지는 게 빨랐다.
“엇!”
갑자기 시야가 번쩍이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경복이 사선에서 벗어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에이!”
지놈은 짧게 투덜거리며 다시 그를 노리고 레이저를 발사했다. 총구에서 발사된 광선이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며 날아들었다.
“아니!”
이내 지놈은 눈이 휘둥그레져 소리쳤다. 이경복이 그 광선을 말끔하게 피해낸 게 아닌가.
“지금입니다!”
이윽고 이경복이 소리를 높였다.
‘설마 함정이라고!?’
지놈은 이경복이 미끼가 되는 사이 다른 지박령이 박잡초를 구하려는 건 아닐까해 흠칫하며 몸을 돌렸다.
그러나 복도는 고요했다.
“이런 페이크…… 억!”
지놈이 바로 다시 돌아선 순간 그의 눈에 뭔가가 철퍽하며 달라붙었다.
‘미친! 눈갱이라고!?’
지박령의 또 다른 견제기인 ‘엑토플라즘’이었다. 야구공만한 크기의 엑토플라즘을 엑소시스트의 눈에 정확히 맞추면 일정 시간 시야가 가려지는 기술로, 소위 ‘눈갱’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이경복은 그걸 처음하면서 성공시킨 것이다.
“됐습니다!”
새하얗게 가려진 시야 속에서 이경복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등에서 우지직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숨어 있었어!?’
대기하고 있던 이클립스와 스컬킴이 폴더가이스트 능력으로 휴대용 봉인장치를 뜯어냈다.
“탈출!”
“고생했어!”
박잡초와 스컬킴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지놈은 다급히 총을 겨누었다.
시야가 회복되면 한 사람이라도 맞출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니, 잠깐!”
눈갱이 풀리자마자 다시 날아온 엑토플라즘에 의해 상태는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클립스와 스컬킴, 그리고 박잡초까지 3번 연속으로 당했다.
“좋습니다! 업무 복귀하죠!”
마지막 눈갱이 풀리기 전에 이경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업보는 돌아온다고 했죠?”
“아이고, 이거 고장 나서 어쩌나.”
“지놈 경, 평소에 마음을 곱게 쓰시지 그랬소.”
세 사람의 목소리가 서서히 멀어져갔다. 이어 엑토플라즘이 떨어지자 지놈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드러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업보 바로 돌아오는 거 무엇?
-이러려고 추놈 캠 보는 거지!
-이제 보니까 친목 도모가 맏따
-친목(쥐놈제외)
-쥐놈 대신 갓플 끼니까 협력 미쳤쥬?
-아 ㅋㅋ 역시 사장님이 직접 운영을 해야 된다니깐!
-이제 보니까 개구멍이 엑소시스트용이었네
-이거 진짜 일반겜이었으면 바로 빡종각 ㅋㅋㅋ
-???: 이래도 퇴사를 안 해?
-퇴사권고였냐고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일련의 상황에 흡족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 방송을 보는 사람들 모두 지놈이 당하는 걸 즐기는 애청자(?)였던 터였다.
“와, 진짜……”
지놈은 헛웃음을 흘리며 일어섰다. 제대로 당하기는 했지만 아직 게임이 끝난 건 아니었다.
“제가 이렇게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그 말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놈은 과장스럽게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맺었다.
“탈출구 캠핑하고 거기서 싹쓸이 간다. 스피릿 버스터가 왜 사기인지 보여주겠어!”
그 결의를 시청자들은 적극 환영했다.
물론 그들이 바라는 건.
-아 ㅋㅋㅋ 이래야 추놈답지
-마지막까지 쌥쌥이를 써버리겠다?
-5252, 믿고 있었다구웃(?)
-정신 아직 못 차렸쥬?
-인성교육 2차 가나요 ㅋㅋㅋㅋ
-아 ㅋㅋ 사장님한테 그게 통하겠냐고 ㅋㅋㅋ
-지놈이 이길 때까지 숨 참습니다 흡!
-부검의 : 라고 써져있는데요?
-죽을 때까지 못 이긴다 이 말이야 ㅋㅋㅋㅋ
지놈의 바람과는 정반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