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189화 (189/491)

189화 - 숙청의 조 (1)

미스틱 리그 개발사, ‘라잇게임즈’의 한국 지사.

다가오는 대회를 준비하는 건 비단 참가자들인 스트리머뿐만이 아니었다.

“어우, 이 시즌만 되면 정신이 없네.”

대회 시즌인 만큼 사내 관련 부처들 역시 바쁘게 돌아갔다. 여러 부처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바쁜 건 역시 ‘E스포츠’ 팀이었다.

“MCK가 흥해서 좋긴 한데, 일하는 거 보면 진짜 부담이 크긴 하다니까.”

정규 리그인 MCK가 한창이니 E스포츠 팀은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가 ‘미친스머프’ 준비를 해야 되는 거 딱 보면 다 이해되지? 저쪽에 비하면 우리는 양반이야, 양반.”

정규 리그만으로도 바쁘니 아마추어 대회까지 맡을 여력은 없었다. 때문에 ‘미친스머프’ 대회는 홍보팀이 주관하는 행사였다.

그렇게 직원들에게 당위성을 주지시킨 홍보팀장은 헛기침을 하며 직원들을 돌아봤다.

“팀 선발은 전부 끝났나?”

“네, 총 12팀에 후보군으로 8팀 선별해 뒀습니다.”

수많은 참가 팀 중에서 최종적으로 대회에 참가할 팀을 추려냈다.

미스틱 리그는 그 대중성만큼이나 즐기는 스트리머도 많았기에 예능 보다는 실력과 인지도 위주로 선발했다.

“그래, 수고했어. 참가 팀에게 결과 통보하고 참가 여부 확정 받아.”

“네, 알겠습니다.”

이내 나머지 회의 안건을 처리한 팀장은 가볍게 손뼉을 치며 일어났다.

“그럼 오늘도 힘내자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한숨을 돌릴 틈도 없이 새로운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안녕하세요. 최 팀장님.”

공손히 인사하며 들어오는 남자는 북미 본사와 업무를 조율하는 커뮤니티팀의 팀장이었다.

“아, 박 팀장님. 많이 기다리셨죠? 회의가 좀 예상보다 늦게 끝났네요.”

“아뇨, 아닙니다.”

“아하하, 그런데 무슨 일로……?”

홍보팀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에게 연락 받았을 때부터 생각해봤지만 커뮤니티팀에서 자신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아, 다름이 아니라 본사 쪽에서 문의가 들어왔는데 일단 직접 얘기를 해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문의요? 본사에서?”

“네네. 그, 혹시 이번 미친스머프 대회 말입니다.”

그는 스스로도 의아한지 연신 고개를 기울이면서 질문을 이었다.

“이번에 통역이나 영자막을……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 있을까요?”

“예?”

홍보팀장은 그가 주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절로 물음이 튀어나올 정도로 황당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역시 어렵겠죠?”

“아니, 그건 갑자기 왜요?”

예상한 답변이라는 듯한 그의 태도에 홍보팀장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추어 대회에서 영어를 지원한 적은 없었는데? 애당초 본사에서는 큰 관심도 없는 이벤트잖아요?”

“네네, 전에는 그랬죠.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좀 달라졌나 봅니다.”

“달라지다뇨?”

“본사 쪽에 문의가 계속 들어온 데요. 물론 본사 쪽도 어렵다는 걸 알고 있지만 공식 답변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홍보팀장은 그 설명에 더욱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대체 왜 외국 사람들이 한국의 아마추어 대회에 관심을 가진단 말인가?

그러나 이내 그는 그 호기심을 접어두었다. 답을 찾기에는 지금 처리해야 할 일이 더 많았다.

“아무튼 불가능합니다. 지금 E스포츠팀도 그럴 인력이 없는데 저희 쪽은 더 그렇죠. 본사 쪽에서 좀 비용을 대준다면 외주로는 알아볼 수는 있겠지만 그럴 거면 MCK에 붙이죠.”

“아, 네네. 저도 충분히 입장 이해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홍보팀장의 말에 그는 빠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이미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던 바였다.

“그럼 제가 메일 하나 드릴 테니까 메일로 한 번 더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마 본사 쪽도 상황은 이해할 테니 이후 다른 문제는 없을 겁니다.”

“예, 뭐…… 알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다시 홀로 남게 된 홍보팀장은 짧게 한숨을 뱉었다.

“허, 도통 이해가 안 가네……”

프로게이머도 아니고 한국에서만 진행되는 아마추어 대회, 그것도 이전 시즌과는 달리 왜 갑자기 이번에 관심을 가진단 말인가?

‘외국인들이 와봐야 얼마나 오겠어.’

그는 짧게 혀를 차고는 머리를 내저었다. 이내 메일이 도착했고 그는 대화를 나누었던 대로 답변을 작성했다.

* * *

며칠 후, 조 추첨 당일.

방송시간이 되자 라잇게임즈 코리아 공식 채널에는 수많은 인원이 몰리기 시작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방송이 시작되자 모인 시청자의 숫자는 5만을 돌파했다.

“안녕하십니까! 전국의 수많은 미스틱 리그 게이머 여러분! 저는 이번 미친스머프의 캐스터를 맡은 ‘왕검’입니다!”

화면이 전환되며 3명의 해설진이 나타났다. 그중 중앙에 위치한 캐스터, 왕검이 힘찬 목소리와 함께 인사했다.

-WA! 1집가수!

-왕명수! 왕명수! 왕명수!

-혀엉! 오프닝 무대 해주는 거 맏찌? 그치?

-??? : 열정은 잃은 아이의 나이는?

-앵콜! 앵콜! 앵콜!

-뭔ㅋㅋㅋ 아무것도 안했는데 앵콜요청이얔ㅋㅋ

채팅창을 확인한 해설진들은 자기소개를 하기도 전에 웃음을 흘렸다.

“어우, 왕검 님 노래를 먼저 듣고 가야 할 분위기인데요?”

“에이, 그러지 마세요. 진짜 오늘 중요한 날이지 않습니까? 나중에 라잇게임즈에서 콘서트 자리 마련해주시면 부를 의향은 있습니다.”

“아? 오히려 콘서트를 개최하시겠다.”

그는 동업인인 정소윤보다 텐션이 더 높고 다른 사람들을 절제시키기보다 오히려 흥을 돋우는 스타일이었다.

채팅창에 웃음이 퍼지자 그는 해설진을 독촉했다.

“당연히 농담입니다. 자자, 얼른 소개 해 주시죠.”

두 해설진마저 소개가 끝나자 그는 바로 진행을 이어갔다.

“자, 오늘은 미스틱과 친한 스트리머 프렌즈! 미친스머프의 조 추첨을 진행할 건데요. 그에 앞서 이번 시즌에는 얼마나 많은 스트리머 분들이 지원해 주셨는지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네, 정말 궁금하네요.”

“저번 시즌에도 엄청 많았거든요?”

왕검은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내저었다.

“저번 시즌은 생각도 마세요. 이번 시즌이 정말 대박입니다.”

“오오, 그 정도인가요?”

“아, 근데 저는 왕검님 말은 잘 못 믿겠어요. 매번 텐션이 너무 높아서 말씀하실 때마다 막 역대급인 기분이라니까요?”

채팅창은 ‘ㅇㅈ’과 ‘ㄹㅇㅋㅋ’로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왕검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거 왜 그런지 아세요?”

“왜죠?”

“미친스머프 대회는 매번 역대급을 갱신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또 참가팀 숫자가 최고기록을 달성했어요!”

“또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참가 신청한 팀 숫자만 해도 무려 200팀! 머릿수로 따지면 5를 곱해야죠? 무려 1천 명의 스트리머 분들이 참가 신청을 해 주셨습니다.”

-헐? 천 명이나 지원했다고?

-아니;;; 왜 진짜 역대급이에요!

-스트리머가 그렇게 많나 ㅎㄷㄷ

-킹직히 하꼬들도 일단 신청하고 볼 듯 ㅋㅋㅋ

-ㄹㅇㅋㅋ 나오기만 해도 인지도 떡상이자너

-근데 그거 감안해도 많긴 하다 ㅋㅋㅋㅋ

빠르게 올라오는 채팅에 왕검은 말을 덧붙였다.

“자, 지금 스트리머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것도 맞지만, 그만큼 미스틱 리그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한다는 증거거든요?”

“네, 그렇죠. 아주 정확히 짚어주셨네요.”

“역시 왕검님이십니다. 포인트를 아주 잘 짚어주셨네요.”

-이걸 이렇게 살리네 ㅋㅋㅋ

-자본주의식 캐스터 ㅋㅋㅋㅋㅋ

-올려치기가 어류겐 수준임 ㅋㅋ

-킹검이 순발력이 좋긴 해 ㅋㅋㅋㅋ

-괜히 왕명수가 아니다 이말이야

왕검은 짧게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지원해 주신 분들 모두 모시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여건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라잇게임즈에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총 12팀을 선발했습니다!”

-퍼지데이! 퍼지데이! 퍼지데이!

-승리의 돈 다마스! 승리의 돈 다마스!

-라떼프로 우승! 라떼프로 우승!

-플러스알파 가즈아아아아!

그가 말을 맺자마자 채팅창은 저마다 응원하는 팀명으로 가득해졌다.

이미 각 팀의 팬들은 대회 참가소식을 미리 들었던 덕이었다.

“자, 추첨에 앞서 이번 미친스머프 대회를 처음 보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분들을 위해 간략히 대회 진행에 관한 소개부터 진행하겠습니다.”

왕검이 그리 말하자 ‘A’부터 ‘D’로 4분할된 화면이 나타났다. 각 분할된 화면은 다시 3개의 칸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해 주신 12개의 팀은 각 3팀씩, 보시는 바와 같이 4개의 조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면 팀당 몇 번 경기가 진행되죠?”

“각 조에 속한 경쟁자 2팀과 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하지만 조에서 1승 1패로 동률인 상황이 나올 수 있죠.”

해설진의 대답에 왕검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습니다! 동률인 경우에는 KDA, 팀원들의 기록이 우세한 쪽이 진출하게 됩니다. 단순히 이긴다고 끝이 아니라 경기의 내용도 중요하다는 사실! 킬 하나, 어시스트 하나에 플레이오프 진출이 갈릴 수 있습니다!”

이내 화면은 각 조의 맨 위 칸만 떼어내어 확대되었다. 4개의 칸과 선이 연결되고 중앙에 트로피가 나타나며 4강 대진표로 변했다.

“각 조의 1위는 4강전을 진행, 최종 결승전에서 승리를 거둔 팀은 우승 트로피와 함께 최종상금! 5천만 원의 주인공이 됩니다!”

우승상금 5천만 원.

팀원 당 1천만 원의 상금이 돌아가는 대회였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왕검은 다시 목을 가다듬었다.

“이렇게 대회 소개를 마치고, 많은 분들이 기다리시던 팀 소개와 추첨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아, 저는 방송 전에 엔트리를 봤는데 감탄밖에 나오지 않더라고요.”

“방송 시작 때도 왕검님이 말씀해주셨는데 역대급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대회 소개가 끝났으니 가장 중요한 본론, 팀 소개와 추첨의 차례였다.

“저희 미친스머프를 애청해 주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역시나 이번에 새로 오신 분들을 위해 추첨 방식에 대해서도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왕검은 가볍게 큐카드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팀 소개 순서는 각 팀의 멤버들 평균 티어가 높은 순이고, 추첨은 각 팀의 소개가 끝나면 자동으로 진행이 됩니다.”

“우승 후보가 먼저 나오는 느낌이죠.”

“티어가 곧 실력은 아니지만 경험을 나타내긴 하거든요. 고티어일 수록 승률이 높은 건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해설진이 첨언하자 시청자들도 동의했다.

-경험은 무시 못 하지 ㅋㅋㅋ

-진짜 등호 붙이는 놈들은 입만 살았다니깐!

-ㄹㅇㅋㅋ 맨날 브=실=골=플 하는 놈들 보면 그 위 티어가 없음

-은근슬쩍 다이아 빠지는 거 뭐임? 다딱이니?

-근데 왜 이런 식으로 함?

-최대한 강팀끼리 피하게 하려는 거 ㅋㅋㅋ

-먼저 뽑아야 안 겹칠 확률이 높지

-그냥 한 번에 다 섞으면 되는 거 아님?

-아 ㅋㅋ 그러면 쫄깃한 맛이 없잖슴!

왕검은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방송 초반이라 아직 시간에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자칫 안심하고 있다가 후순위에 있던 팀을 급하게 넘겨야 할 수도 있었기에 그는 진행을 이어나갔다.

“자, 그럼 바로 공개하겠습니다. 1순위라는 건 평균 티어가 가장 높은 팀이라는 건데요! 과연 그 주인공은?!”

왕검의 목소리와 함께 화면이 전환됐다.

이름부터 티어, 그리고 주력 챔피언까지. 첫 번째 팀의 프로필이 공개됐다.

“첫 팀은 바로 ‘돈 다마스’입니다! 마스터 3인과 다이아 2인으로 구성된 실력파 스트리머들로 구성된 팀이죠?”

“네, 맞습니다. 특히 팀장님인 ‘돈값’님은 모르는 분이 없으실 정도죠.”

“저희 미친스머프를 챙겨 보시는 시청자분들이라면 당연히 알고 계실 겁니다. 지난 시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MVP 아닙니까!”

-돈 다마스! 돈 다마스! 돈 다마스!

-싹빠라다스!

-돈 다 쓸어담는다 이말이야 ㅋㅋㅋ

-2회차 우승 또 가즈아아아!

공개와 더불어 팬들의 응원이 채팅창을 가득 메웠다. 지난 시즌의 우승팀이니 만큼 막강한 우승 후보였다.

이내 화면이 전환되며 대기실에 머무는 ‘돈 다마스’의 팀원들을 비춰줬다.

“아, 돈값 팀장님이 손을 흔들어주시네요. 마치 제집처럼 편안한 모습!”

“지금 전혀 긴장이 안 된다는 거겠죠?”

“아 이게 딱 그거거든요? ‘내가 해 봤는데 별거 아니야’. 이런 느낌이에요!”

팀원들 5명 모두 쉬러 온 것처럼 편안한 태도였다. 왕검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신호를 주었다.

“자, 좋습니다. 돈 다마스는 D조! D조에 배정이 되었습니다. 다른 팀도 추첨이 모두 끝나면 간단히 인터뷰 진행해 보기로 하고. 다음 팀! 공개해 주세요!”

2번째 팀이 공개되자 다시금 반응이 터져 나왔다.

“2번째는 바로 ‘라떼프로’입니다! 돈 다마스 팀과 다르게 전부 다이아예요. 하지만 바로 이분, 이분 때문에 2순위가 됐죠?”

“그렇습니다! 미스틱 리그를 오래 즐겨보신 분이라면 모를 수 없는 분이죠! 전 프로게이머, ‘카페인’님이십니다!”

“이번 대회 유일한 그랜드 마스터에요.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이렇게 말씀 드릴 수가 있겠어요!”

-라떼프로! 라떼프로! 라떼프로!

-그마면 말 다 했쥬?

-킹직히 팀원들 전부 카페인한테 코칭 받아서 다이아는 아님 ㅋㅋㅋ

-진짜 이정도면 준 프로팀 아니냐?

-이건 무적권 정배지 ㅋㅋㅋㅋ

첫 번째와 같이 화면은 이내 대기실로 바뀌었다. 다만 그 양상은 처음과는 180도 달랐다.

“지금 아주 기합이 바짝 들어갔는데요? 저 허리 직각으로 선 거 보세요! 팀원들을 아주 호되게 다루는 것 같습니다!”

“왕검님, 그러면 시청자분들이 진짜 그러시는 줄 아시잖아요.”

“원래 카페인님이 꼰대 컨셉을 좋아하시거든요? 퍼포먼스로 저렇게 하시는 거니까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왕검은 두 해설진의 말에 아쉽다는 듯 과장스럽게 입을 다셨다.

“저도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개인적으로 억하심정이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방송을 더 재밌게 하고 싶은 욕심이었고요. 자, 지금 결과가 나왔네요! 라떼프로는 A조! A조가 되었습니다!”

“아! 다행입니다! 돈 다마스 팀이랑 갈렸네요.”

“그렇죠. 두 팀이 붙으면 바로 결승전 느낌 나거든요? 이건 좀 아껴줘야 합니다.”

채팅창도 이에 공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곧바로 이어지는 3번째 팀의 공개.

“3번째 팀은 ‘플러스알파’ 팀! 다이아 티어의 멤버들과 마스터 티어의 팀장, ‘프라이드’님이십니다! 하지만 이 역시 평범한 분은 아니십니다!”

“여러분 모두 놀라셨죠!? 저도 진짜 놀랐습니다. 아니, 이분이 여기에 나오실 줄이야?”

“프라이드 님이 미스틱 좋아한다고 곧잘 방송에서 얘기는 하셨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하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해설진들의 반응처럼 채팅창도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프라이드 모르심? ㅋㅋㅋㅋ

-사격 금메달리스트 모르냐구웃!

-은퇴한지 좀 되긴 했자넠ㅋㅋ

-진짜 승부욕에 미친 사람이다 이말이야 ㅋㅋㅋㅋ

-한 번 파면 끝을 봄ㅋㅋㅋ

-미친스머프도 금메달 가즈앗!

이내 플러스알파 팀의 대기실로 바뀐 화면. 왕검은 헛숨을 삼키며 멘트를 시작했다.

“아, 이거 편파 논란 있는 거 아닙니까? 플러스알파 팀만 좁은 대기실을 준 것 같아요! 다들 몸 크기가 엄청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착시입니다!”

“이게 멤버들 전부 체육 쪽에 몸담았던 분들이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시청자들이 그에 웃는 사이 추첨이 종료됐다. 그 결과 이번에는 진짜로 헛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플러스알파, A조! A조에 들어갔습니다!”

“아니, 이게 이렇게 되어버리네요! 이번 대회, 예측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라떼프로도 대단하지만 체육인의 잠재력, 무시할 수가 없거든요!”

“어느 쪽이든 라떼프로와 플러스알파, 둘 중 하나는 플레이오프 진출이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아, 지금 돈 다마스 팀 대기실! 아까보다 더 웃음이 커진 것 같은데요? 제 착각일까요!?”

화면은 각 팀의 대기실을 번갈아 보여 주었다. 같은 조에 배치된 두 팀 모두 표정이 심각해졌다.

“자, 그러나 추첨 결과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대진운도 대회의 한 부분이니까요. 그럼 바로 4번째 팀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왕검이 상황을 정리하자 화면이 전환됐다. 그와 더불어 가장 큰 반응이 터져 나왔다.

“아! 이번 대회의 다크호스죠?! 4번째 팀은 바로 ‘퍼지데이’팀 입니다! 다이아 티어 4명과 플래티넘 1인으로 평균 티어는 앞서 다른 팀보다 낮지만 그게 다가 아니죠?!”

“맞습니다! 팀장인 지놈 님은 사실 지난 시즌에서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었거든요? 그러나 이번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바로 이분! 이분을 모르면 게이머가 아니다! 아니, 한국인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핫한 분이죠! 바로 ‘퍼플’님이 계시다는 겁니다!”

이전 소개와는 완전히 다른 텐션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퍼지데이! 퍼지데이! 퍼지데이!

-숙청의 날이 다가왔다!

-핫하! 숙청 파티다!

-???: 신은 존재하고, 그는 한국인이다

-갓플 강림! 갓플 강림! 갓플 강림!

-또전드 ON! 또전드 ON! 또전드 ON!

-아 ㅋㅋ 벌써 대회 끝났네

-어우퍼! 어우퍼! 어우퍼! 어우퍼!

채팅창도 그 못지않은 열기로 가득해진 덕이었다.

“원체 게임을 잘하시기도 했지만 이번 MCK를 보신 분들이라면 도저히 잊을 수가 없죠?”

“네, 맞습니다. 엘리펀트 선수가 개막식 인터뷰에서 퍼플 님을 언급해서 또 화제가 됐죠.”

“프로게이머를 도와주는 아마추어? 이거 벌써 말이 안 되거든요? 그런데 퍼플 님이라면 말이 됩니다!”

“게다가 퍼플님만 계신 것도 아니에요. 이클립스님도 진짜 피지컬이 엄청나신 분이거든요. 게다가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스컬킴과 박잡초, 골초 조합도 케미가 좋은 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흥분한 해설진들이 말을 쏟아냈다. 정소윤 캐스터라면 이럴 때 자제시켰겠지만 왕검은 달랐다.

“어? 지금 말씀하시는 거 듣다 보니까 지놈 님 얘기는 전혀 안하시네요? 그래도 팀장님이신데 말씀 안 해주시면 섭섭해 하시지 않을까요?”

“아, 지놈 님은……”

그가 농담을 던지자 해설진도 짐짓 말문이 막힌 듯 입을 가렸다.

-헉!

-말을 잇지 못하는… (눈물콘)

-플랜트위키/왕검/논란

-공개 처형 뭐냐고 ㅋㅋㅋㅋㅋ

-제대로 돌려버리네 ㅋㅋㅋ

-추놈 네 이놈! 왕검에게 무슨 업보를 또 저지른 게야!

-아무튼 지놈 잘못인 거냐곸ㅋㅋ

시청자들이 놀리자 왕검이 양손을 들며 말했다.

“당연히 농담입니다. 지놈 님은 올라운드 플레이어시라서 티가 안 나서 그래요. 저번 시즌에도 매우 유동적인 플레이를 선보여주셨거든요?”

“네, 그렇습니다. 감히 밴픽에서 가장 자유롭다고 말할 정도로 유동적이시죠.”

“이번 대회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을…… 어? 갑자기 뭐죠!?”

멘트를 이어나가던 해설진은 이내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시청자들도 이내 그 원인을 깨달았다.

-Where is purple?

-Hello! korean guys!

-Viva Purgeday! Viva Purgeday!

-Hey guys, don’t interrupt them.

-미안. I’m learing korean, but my skill is not that good.

갑자기 채팅창에 영어가 불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시청자 숫자는 순식간에 7만을 돌파했다.

해설진은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어…… 갑자기 외국인 시청자분들이 들어오셨네요? 지금 보면 퍼플 님과 퍼지데이 팀을 찾고 있어요.”

“아무래도 해외 팬들이 와주신 모양입니다! 아시는 분은 또 아시겠지만, 퍼플 님이 또 월클이시거든요?”

“미친스머프 사상 이렇게 많은 외국인이 들어온 건 또 처음이네요! 아니, 애당초 외국인분들이 오신 적이 있긴 했나요?”

-ㅁㅊㄷㅁㅊㅇ

-역시 월클이다 이말이야 ㅋㅋㅋ

-로컬 대회가 글로벌 대회가 되어버리쥬?

-갑자기 격 높아지는 거 무엇 ㅋㅋㅋ

-이게 바로 퍼플코인? 이 떡상은 대체?

-외국인? 난 한국인 밖에 안 보

이는데?

-아 ㅋㅋㅋ 퍼튜브 보면 한국인 맏찌

-재외동포 애껴욧!

왕검은 빠르게 눈을 굴렸다.

그래도 진행의 프로답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사전에 들은 이야기도 있었다.

‘외국인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더니……’

방송 진행에 앞서 라잇게임즈 홍보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청 많잖아?’

다만 그 규모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진행 방침 정도는 정해두었던 터였다.

“자, 해외 팬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이번 방송에서는 외국어 지원이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코리안 온니, 언더스탠? 제가 이 정도로 짧은 영어밖에 못 하거든요.”

그의 짧은 영어에도 채팅창은 ‘yes’와 ‘ok’로 가득해졌다. 그들 역시 다른 걸 기대하고 온 건 아닌 모양이었다.

“자, 좋습니다. 잠깐 시간이 지체됐는데 바로 퍼지데이 팀의 추첨 시작해 주세요!”

그의 멘트와 더불어 추첨 결과가 화면에 나타났다. 순간 해설진 누구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잠깐, 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아까부터 지금까지 예측 불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내 번쩍 정신이 든 세 사람은 동시에 소리를 높였다. 오디오가 겹쳤지만 세 사람 모두 그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퍼지데이가 A조에 들어갔습니다! A조가 지금 난리가 났어요!”

“아니, 이렇게 되면 2,3,4 순위 팀 중 하나밖에 살아남지 못해요! 퍼지데이가 A조에 들어가는 게 확률적으로 9분의 1이거든요? 이게 높다면 높긴 한데……!”

“아니, 안 높죠! 이렇게 되지 않을 확률이 9분의 8입니다! 그걸 빗겨나간 거예요! A조가 완전히 죽음의 조가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빠르게 화면이 전환됐다. 라떼프로와 플러스알파는 이전보다 더 심각해진 표정이었다. 그들 역시 이런 상황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을 터였다.

“서로만 견제하려고 했는데 퍼지데이 참전에 완전히 판이 엎어졌어요!”

“당황스럽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면 플레이오프 진출 자체가 불투명해지거든요!”

“어? 뭐죠? 퍼지데이 팀 분위기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나 퍼지데이 팀의 대기실은 그 분위기가 달랐다. 환하게 웃는 이경복을 위시한 팀원들은 담담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도중 지놈이 카메라 쪽을 향해 뭔가를 꺼냈다.

“아, 지금 지놈 팀장님이 뭔가 꺼냈는데요?”

“저게 뭐죠?”

“아, 전광판. 휴대용 전광판이에요!”

해설진은 물론 시청자의 얼굴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갑자기 저건 왜 꺼낸단 말인가?

지놈은 전광판에 뭔가를 입력하더니 카메라 쪽으로 돌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놈 팀장! 역시 지놈이에요!”

“올라운드라고 말했던 거 취소하겠습니다! 지놈 팀장님의 특기는 그게 아니에요!”

해설진은 웃음기 섞인 탄사를 터트렸다.

왜냐하면 화면에 잡힌 전광판에는.

[‘어우퍼’ Is Science]

단 한 문장이 쓰여 있기 때문이었다.

“이 상황에서 도발입니다! 지놈 팀장, 다른 팀의 멘탈을 뒤흔들고 있어요!”

“지놈 님이 방송에서 자신을 유전자 레벨로 입 터는 남자로 소개하거든요? 과연 명불허전이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올라운더가 아니라 입라운더에요! 입이 동그랗게 벌어져서 도통 다물지를 않네요!”

그 하나로 해설진이 유쾌하게 멘트를 칠 정도로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않잌ㅋㅋㅋ 미쳤냐고 진짴ㅋㅋㅋ

-입라운더 ㅅㅂㅋㅋㅋㅋㅋ

-7만 시청자 앞에서 이정도의 도발을?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어우퍼가 과학은 맞는데!

-그 와중에 왜 어우퍼만 영어가 아닌 건데 ㅋㅋㅋㅋ

-ㄹㅇㅋㅋ 외국인 시청자 신경써줄 거면 확실히 할 것이지

-추놈이 또 추해버렸다 이말이야

걱정하던 시청자들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이 가득해진 채팅창은 이내 자신감으로 가득해졌다.

이경복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밝게 엄지를 치켜세웠기 때문이었다.

-긴장 하나 없는 거 무엇?

-아 ㅋㅋ 퍼자감은 갓플의 근본이지

-그마고 금메달리스트고 다 뭐냐! 퍼지데이에는 갓플이 있다!

-A조는 죽음의 조? 아니죠! ‘숙청’의 조가 맞습니다!

시청자들은 그에 안심했다.

‘죽음의 조’로 결정된 A조.

그러나 퍼지데이는 죽음을 ‘선사’하는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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