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 공포에 질린 (2)
돈 다마스의 본진.
스트리머 돈값은 잿빛으로 변해버린 풍경을 보며 황망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필승전략이라 생각했다.
그 역시 미스틱 리그의 팬이었던 바, 퍼펙트 야미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확신이 있었다.
야미의 스킬 발동 조건인 수인(手印)은 그 동작이 무척이나 까다롭다. 섬세함을 요구하는 만큼 조작체계를 어그러뜨리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터였다.
‘그 상태에서 수인을 맺을 수 있다고?’
그러나 그의 예상은 틀렸다.
직접 본 ‘퍼펙트’ 야미는 달랐다. 2단계나 1단계 같은 비교적 단순한 수인도 아니었다. 이경복은 그 이상의 인술을 자유롭게 사용했다.
‘미치겠네……’
그 결과 기습은 실패였다.
그나마 그가 희생해 원딜러는 살려냈지만, 피해는 여전히 막심했다.
“형!”
돈값은 고개를 돌렸다.
가장 먼저 죽은 서포터, 그의 동생도 그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이제 어떡해?”
“생각 중이잖아.”
“아니, 답이 있어?! 어떻게 공포 효과가 안 먹힐 수가 있지!?”
“천재라고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돈값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아직 초반이었다. 벌써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전략 수정은 불가피해.”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굴렸다.
눈앞의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공포’는 이경복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정글은 포기해야겠어.”
“뭐?”
“나 혼자 야미를 잡을 수는 없어. 아니, 셋으로도 부족했잖아? 지금 정글링을 하면 야미한테 자금을 헌납하는 꼴이야.”
“그러면…… 어쩌려고?”
정글러인 형의 포기 선언에 동생은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차순위를 노려야지. 너는 라인에 집중해!”
잿빛 시야에 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부활과 동시에 달려갔다.
“다들 멘탈 잡아! 게임은 이제 시작이야! 나랑 서포터만 죽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그는 팀원들을 다독였다.
한타의 핵심인 원딜러와 미드라이너, 그리고 탑 라이너 모두 살아 있었다.
“아직 밸류는 우리 쪽이 높아! 스노우볼? 우리가 더 많이 굴리면 돼!”
그가 향한 곳은 탑 라인이었다.
“처남!”
돈값은 타워로 물러나 있던 탑 라이너, 처남을 불렀다.
“형님!?”
“작전 변경이야. 가이엔을 자르자.”
그는 퍼지데이의 차순위 견제 대상, 이클립스로 목표를 바꾸었다.
원래는 정글에서 나와 갱킹을 하는 게 정석이지만, 지금은 정글에 갈 수 없었다. 그러니 라인을 따라 습격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반 게임이었다면 탑 라이너가 바로 욕을 박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네, 안 그래도 좀 버겁더라고요.”
“만만한 상대가 아니긴 하지.”
관심이 이경복에게 집중되어 있을 뿐, 이클립스 역시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것이 1:1 승부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CS는 안 뺏을 테니까 걱정 말고 일단 각을 좀 만들어줘.”
“네, 형님!”
처남이 다시 미니언들을 따라 나아가는 사이 그는 빠르게 미니맵을 확인했다.
‘야미는 정글링 중인가?’
공개된 시야에 이경복의 위치는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정글 시야가 가려져 있기에 확신은 없었다.
‘시야 확보는 야미가 나온 다음 해도 될 거야.’
그는 애써 불안함을 억누르고 탑 라인을 살폈다. 이클립스와 처남이 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달려가 흉성을 터트렸다.
“웃……!”
이클립스는 순간 비틀거리더니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보호막을 두른 그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래! 원래는 이게 맞잖아!’
다행히 이클립스는 이경복과 같이 그 효과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돈값은 안심과 함께 억울함을 느꼈다.
전진과 후진이 바뀌는 것.
그게 바로 공포 효과로 뒤바뀐 조작 체계 중 플레이어가 가장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변화였다.
“됐어! 잡아!”
“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돈값과 처남은 빠르게 그를 압박했다. 타워의 사정권에 들어왔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빼지 마!”
“네!”
충분히 잡을 만한 체력이었다.
두 사람은 후퇴보다 다이브를 선택했다.
“끝났……”
그러나 상황은 곧바로 일변했다.
이클립스의 몸에 갑자기 기류가 소용돌이처럼 몰아쳤다.
그와 동시에 이클립스의 후퇴 속도가 증가했다.
“이런! 빼!”
“이건……!?”
돈값의 다급한 지시와 함께 두 사람은 빠르게 사정권에서 빠져나왔다.
“형님, 이거?”
“폭풍의 정수라니 설마……”
목숨을 챙긴 그들은 이변의 원인을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더 어리둥절했다.
속도를 증가시켜 주는 버프.
그것이 퍼지데이 팀에게 돌아갔다는 사실로 알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스톰 엘레멘탈을 벌써 잡았다고?”
* * *
해설진은 화면에 잡힌 엘레멘탈 쉬라인을 보고 함성을 터트렸다.
무너진 잔해 중앙에는 검은 도복의 닌자가 서 있었다.
“폭풍의 전당이 무너졌어요오오!”
“엄청납니다! 속도가 너무 빨라요!”
“퍼펙트 야미에 버프까지 더해지니 완전히 미쳤습니다!”
그 몸 위에는 붉고 푸른 오라가 서로 교차하며 보랏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레드와 블루 전부 먹고 바로 엘레멘탈까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야말로 홍길동이 따로 없습니다!”
“이게 블루 버프를 먼저 먹은 게 아주 큽니다. 차크라가 늘어나니까 넉백, 수속성 인술을 이동기로 써버렸거든요!”
“저는 해설을 떠나 이런 플레이가 나왔다는 게 너무 감격스러워요! 야미 장인은 프로 씬에도 없거든요!? 오직 여기서만, 퍼플 선수만 보여줄 수 있는 플레이입니다!”
그들의 격정만큼이나 시청자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퍼길동 뭔데 ㅋㅋㅋㅋㅋ
-몰랐음? 닌자가 원래 ‘J-홍길동’ 인데?
-도랐냐고 ㅋㅋㅋ
-와씨 ㅋㅋㅋ 바르잔으로 잡았으니까 당연히 솔로 공략은 될 줄 알았는데 ㅋㅋㅋㅋ
-퍼르잔이랑 퍼펙트 야미 격차 개쩌네 ㅋㅋㅋ
-이게 진짜 순삭이지 ㅋㅋㅋㅋ
-스톰 엘레멘탈인데 ㅋㅋㅋ 폭풍이 되지도 못해버렸고 ㅋㅋㅋ
-이정도면 선풍기 미풍 수준 아니냐?
-ㅅㅂ 미풍 엘레멘탈ㅋㅋㅋ
-야잌ㅋㅋㅋ 강풍까진 해줘라!
그러나 감격도 잠시 해설진은 다시 화면에 집중해야 했다.
“퍼플 선수! 내려갑니다!”
“아, 그렇죠! 지금 버프로 팀 밸류가 높아졌습니다! 이 기회 놓치면 안 되죠!”
“쉴 틈 없이 몰아칩니다! 이게 진짜 폭풍이죠!”
이경복은 그들과 달리 감상에 빠져 있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가장 가까운 바텀 라인을 습격했다.
“전부! 전부 피해 버립니다! 어떤 공격도 맞질 않아요!”
“그 와중에 끊어치기! 퍼플 선수가 복싱을 했다고 들었는데, 아주 예술이에요! 수리검이 채찍처럼 찔러 들어갑니다!”
“더블! 더블 킬 나왔어요! 결국 버티지 못했어요! 야미의 인술이 너무 시기적절합니다!”
-퍼펙트 야미에 버프까지? 이걸 어케 이김? ㅋㅋㅋㅋㅋ
-와씨 진짜 몸놀림 무엇?
-갓플 닌자학과 출신임?
-닌자학과가 어딨어 ㅅㅂㅋㅋㅋ
-골초듀오 호응도 개좋음 ㅋㅋㅋ
-ㄹㅇㅋㅋ 스컬킴 탄막으로 견제하는 거 지렸다
-박잡초가 둔화 걸어서 더 죽을 맛일 듯
-진짜 나였으면 바로 서렌쳤다
그의 갱킹과 더불어 스컬킴과 박잡초가 가세하니 상대도 버틸 수가 없었다.
이경복은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대단한 게 미스틱 리그 데미지 판정은 힘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거든요! 무기와 상대의 접촉! 그 횟수를 늘리는 게 관건입니다!”
“맞습니다! 보통 속도를 내려면 힘을 써야 되거든요? 근데 그러면 동작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손을 뻗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출수와 회수의 간격이 딜량을 결정해요!”
“아, 그런데 지금 퍼플 선수는 그 간격이 아주 짧아요! 필요한 부분만 딱! 불필요한 동작 없이 최적의 공격을 선보입니다!”
해설진은 조금 전의 활약에 대해 빠르게 설명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또 다시 교전이 벌어졌다.
“아! 이번에는 미드입니다! 퍼플 선수 멈추지 않아요!”
“이건, 이건 도망가야 해요! 돈 다마스! 줄초상 치르기 싫으면 빼야 됩니다!”
“으아! 화염벽! 지놈 선수 절묘하게 퇴로를 막았어요! 호응이 미쳤어요오오오!”
지놈이 즉시 합류해 스킬을 시전했다. 라인을 따라 도망치려던 미드라이너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오쒯? 추놈이 이걸?
-당신 누구야! 우리 추놈 어디 갔어!
-아 ㅋㅋㅋ 그래도 우리 형이 센스는 좋다니깐!
-인턴에게 뒤질까 발버둥치는 사원의 모습입니다만?
-사장님 시찰 왔는데 어떻게 가만있겠냐고 ㅋㅋㅋㅋ
-쥐놈이 승진을 못해서 그렇지 사실 경력은 제일 오래됨ㅋㅋㅋ
-그건 더 문제 아니냐? ㅋㅋ
둘의 합공에 죽음은 순식간이었다.
“트리플! 퍼플 선수가 트리플 킬에 성공합니다!”
“이건 더 이상 딜교가 아니죠! 팀 이름 그대로 숙청! 반대파를 처형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가 않습니다!”
“숙청이요? 아닙니다! 이건 그냥 자연재해에요! 퍼플 선수가 스톰 먹고 스스로 폭풍이 되어버렸습니다! 지나가는 라인마다 초토화되고 있거든요!”
“다시! 퍼플 선수 또 움직입니다! 이번에는 올라가요! 지금 전장을 아래에서 위로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펜타킬을 노리나요!”
이경복은 탑 라인으로 달렸다. 이에 놀란 돈값과 처남은 황급히 몸을 빼냈다.
“아! 돈 다마스 후퇴합니다! 타워, 아니? 2번째 타워까지 가나요?”
“이거 현명한 판단이에요! 본진까지 가야 됩니다! 타워 하나로는 퍼펙트 야미를 막을 수가 없어요!”
“그렇습니다. 상황 판단 제대로 한 거예요! 타워 허깅하고 있으면 바로 백업 오거든요? 게다가 탑이면 이클립스 선수인데 그럼 킬각 확정입니다!”
“아, 진짜 본진까지 뛰어가네요. 이렇게 되면 다른 팀원들 부활할 때까지가 아니라면 적어도 레드나 블루 버프 빠져야 나올 수 있겠는데요?”
생존자 2인은 라인을 따라 본진에 도착했다. 그 모습에 해설진은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엌ㅋㅋㅋㅋ 더추빤
-근데 이건 진짜 무서워서 도망가야됨ㅋㅋㅋㅋ
-ㄹㅇㅋㅋ 이 상황에 속옷도망 못 참지
-오? 바로 라인 푸쉬 가나?
이경복은 굳이 그들을 뒤쫓지 않았다. 그 대신 각 라인에서 다른 멤버들이 타워 철거에 나섰다.
“아, 지금 승기를 잡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지금 전 라인이 비었어요. 이거 푸쉬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승세가 급격히 기울게 됩니다! 지금 돈 다마스 자금 수급도 어렵고, 시야도 제한 당하게 됩니다!”
“아, 그 사이 퍼플 선수 본진으로 복귀합니다! 기분 좋게 쇼핑을 하러 가네요!”
“이게 돈을 벌었으면 써주는 게 또 맞거든요.”
이경복은 본진으로 복귀해 아이템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챔피언 킬로 자금은 충분했다.
“지금 템 빌드가…… 전부 딜이네요? 극딜 세팅으로 갑니다!?”
“어우, 퍼플 선수가 완전히 작정을 했어요! 이거 보이면 바로 죽이겠다는 뜻이거든요!?”
“와, 이거는 진짜 돈 다마스가 버티기 힘든 상황이에요. 팀 밸류도 지금 거의 퍼지데이 팀으로 기울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퍼플 선수가 템 세팅 맞추고 버프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건 한타를 해도 극심한 손해만 남습니다!”
“그렇죠! 지금 돈 다마스가 상대해야 하는 건 그냥 퍼펙트 야미가 아닙니다. 모든 조건을 갖춘, 풀 퍼펙트 야미예요!”
이경복은 아이템 구입을 마치고 다시 전장으로 달려갔다. 반면 돈 다마스의 멤버들은 쉽사리 본진을 빠져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우주방어 가나욬ㅋㅋㅋㅋ
-아 ㅋㅋ 풀 퍼펙트 야미는 못 이기지 ㅋㅋㅋㅋ
-이 정도면 풀 퍼펙트 야미도 스킬에 공포효과 있는 거 아님?
-엌ㅋㅋ 오히려 공포 효과에 걸린 건 돈 다마스였쥬?
-피어스틱 : 뭐예요! 내 스킬 돌려줘요!
-자 이제 누가 공포의 형상이지?
퍼지데이 팬들은 안심하고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이미 승세는 누가 봐도 명백했다.
해설진의 눈에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돈 다마스의 전략이 나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대가 퍼플 선수였다는 게 변수였어요.”
“그렇죠. 아니, 저도 그렇고 다른 두 분도 ‘공포’효과가 무력화 될 줄이야 알았습니까? 이건 돈 다마스의 실수가 아닙니다. 그저 퍼플 선수가 규격 외였을 뿐이거든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돈 다마스는 물론 저희도, 그리고 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확실히 알게 된 게 있습니다.”
왕검의 멘트에 해설진이 눈을 모았다.
“퍼펙트 야미를 오픈한다? 그 결정에 대한 대가가 바로 이 상황이라는 거죠! 제가 장담하는데 다른 세트에서는 야미는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겁니다.”
1세트는 결국 퍼지데이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리고 왕검의 말처럼 모두가 깨달았다.
-진짜 퍼펙트 야미는 전설이다…
-이 정도면 돈 다마스는 야미 트라우마 걸릴 듯 ㅋㅋㅋㅋ
-ㄹㅇㅋㅋ 다른 전략 다 필요 없고 풀퍼펙트 야미만 있으면 되자너
-아 ㅋㅋ 전략 열심히 짜보시라고요
-이건 풀퍼펙트 야미야, 게임을 이겨
퍼펙트 야미.
그 존재가 바로 필승전략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