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210화 (210/491)

210화 - 시즌 피날레 (3)

경기는 어느덧 중반부에 접어들었다. 왕검과 해설진은 연신 감탄을 토했다.

“와, 양 팀의 경기력이 아주 대단합니다! 이게 진짜 이벤트 매치가 맞나 싶을 정도예요!”

“그렇습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기, 그것도 프로 쪽이 봐주는 것도 아니고 전력을 다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팽팽하게 경기가 이어집니다!”

“다른 참가 팀을 비하하는 의미는 아닙니다만, 오히려 대회 정규 경기보다 퍼지데이 팀 저력이 드러나는 매치가 아닌가 싶어요!”

시청자들의 감상 역시 비슷했다.

-티어원이 진짜 작정하고 하는 게 보이긴 함ㅋㅋㅋ

-이거 솔직히 UI랑 로고까지 다 지우면 MCK라고 해도 모름 ㅋㅋㅋㅋ

-진짜 이게 어떻게 아마추어 대회냐 ㅅㅂ ㅋㅋㅋ

-갓플 멱살 캐리는 예상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예상보다 개 잘함ㅋㅋㅋ

-ㅇㅇ 이클님 더블 밴 먹었는데도 겁나 잘 버팀

-아 ㅋㅋㅋ 짬바 어디 안 간다니깐!

-미드나 바텀이 구멍일 것 같았는데 의외로 안 죽네

-사장님 말 착실히 들으면서 손실 최소화하는 중ㅋㅋㅋ

그러나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었다. 해설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양 팀의 밸류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어요. 일단 스코어만 봐도 차이가 나거든요?”

“그렇죠. 퍼플 선수가 지금 진짜 잘해주고 있긴 한데 결국 몸은 하나에요!”

“티어원도 전혀 무리를 하지 않습니다. 퍼플 선수 뜨면 바로 빠져요! 프로답게 이득 챙기면서 착실하게 스노우볼 굴리겠다는 의도가 보이거든요?”

“그래도 결국은 승부를 볼 때가 오게 될 겁니다! 이미 양쪽 모두 첫 번째 타워는 싹 밀렸거든요? 이제 곧 한타가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왕검의 기대 어린 목소리에 해설진이 탄식했다.

“한타는 조금 더 기다려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양 팀 모두 매우 신중한 상태에요.”

“저도 동감입니다. 지금 한타 각을 잡으려고 한다면 버프 크립 쪽이 유력하거든요? 듀크나 엘레멘탈 먹으면 판도가 뒤바뀔 수 있어요. 그런데 그만큼 실패의 리스크가 아주 큽니다!”

중요한 버프 크립은 이미 생성이 된 시간대였다. 그러나 해설진은 버프 크립 사냥에 회의적이었다.

“우세한 티어원으로서는 무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퍼지데이 쪽에서 도전을 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것도 쉽지 않아요.”

“그렇죠. 왜냐? 티어원이 프로 중의 프로거든요! 버프 스틸 타이밍을 또 아주 기가 막히게 잡을 수 있습니다! 그거 뺏기는 순간 게임이 끝나버려요!”

버프는 마지막 일격을 성공한 팀에게 돌아간다. 달리 말하면 그 과정이 어떻든 마지막만 노리면 된다는 의미기도 했다.

“아,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퍼플 선수라면 또 솔로 듀크 공략, 노려볼만하지 않습니까?”

“으음, 그것도 조금 힘들다고 봅니다. 야미가 범용성이 좋지만 대부분 화속성을 제외하면 다른 속성은 CC기와 생존기거든요? 마스터 리만큼 빠르게 잡을 수가 없습니다. 퍼플 선수가 듀크에 묶여있는 사이에 다른 팀원들이 너무 위험해져요!”

“맞습니다. 제가 티어원이라면 안 막고 다른 선수들 킬각을 볼 겁니다. 버프를 얻어도 버프 받을 사람이 없으면? 오히려 손해거든요!”

왕검은 그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하, 결국 양쪽 모두 쉽사리 버프를 노릴 수가 없는 상황이네요. 그나마 엘레멘탈 쪽이 더 가능성이 있지 않…… 어?!”

그가 해설을 요약하다가 눈을 부릅떴다.

“퍼지데이 팀? 스플릿 푸쉬에 들어갑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그냥 스플릿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131 운영도 아니에요!?”

“탑과 바텀에 둘, 미드에 하나에요. 212? 212 운영? 이런 전략이 있었나요!?”

퍼지데이 팀원들이 각기 라인에 나누어져 라인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 라인의 중요도에 따라 미드 라인에 챔피언이 집중하는 게 정석이었다.

그런데 퍼지데이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 반대였다.

그러나 해설진의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드 라인을 홀로 나아가는 퍼플 선수! 아이템, 아이템이 하나도 없어요!”

“아니,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템이 있었는데요?!”

“노템이라는 건 있는 아이템을 팔았다는 뜻이거든요? 전혀 의도가 예측이 안 됩니다!”

해설진은 물론 시청자들도 의아함을 표했다.

-뭐지? 자기 과시?

-스펙 올려도 모자랄 판에 노템으로 간다고?

-아니 ㅋㅋㅋ 212 푸쉬는 대체 또 뭔데!

-이것이 바로 천재의 발상?

-천재 따라잡기 너무 어렵다아아앗!

-근데 이거 엄청 위험한 거 아닌가? 다른 팀도 아니고 티어원인데?

-ㅇㅇ 이거 완전 자살행위임

걱정과 의문으로 가득해지는 채팅창. 이를 바라보던 해설진은 벼락을 맞은 듯 기함을 토했다.

“아아아! 자살! 그렇죠! 말 그대로 자살행위입니다! 그렇게 보이는 게 목적이에요!”

“와! 이거 퍼플 선수의 오더인가요!?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저랑 시청자분들도 알 수 있게 설명 좀 해주세요!”

그 말에 채팅창도 물음표로 가득해졌다. 왕검의 요청에 해설진은 흥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쏟아냈다.

“지금 퍼지데이 쪽에서 티어원에 이지선다의 선택지를 던진 겁니다. 탑과 바텀, 두 라인을 막을 것인지 아니면 미드 라인의 퍼플 선수를 잡을 것인지!”

“전자를 선택하면 퍼플 선수는 혼자 본진으로 갈 겁니다. 혼자서 본진 공략?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상대가 누구입니까? 퍼펙트 야미거든요! 이건 정문으로 들어가는 백도어예요!”

“그렇다고 퍼플 선수를 막는다? 다른 네 선수가 양각으로 본진 들어가는 거거든요! 퍼플 선수랑 대등하게 싸우려면 최소 셋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티어원이라도 둘이서 4명은 못 막아요!”

-아니 ㅋㅋㅋ 정문 백도어는 또 뭔데 ㅅㅂ

-백도어는 뒷문입니다만?

-말이 안 되는 걸 보니 갓플이 하는 일이 맞네 ㅋㅋㅋㅋ

-(게말콘)(게말콘)(게말콘)

-와 ㅋㅋ 양쪽 다 미끼이면서 미끼가 아님 ㅋㅋㅋ

-이게 그 양자중첩인가 그거냐?

-양자 등판 ㅅㅂㅋㅋㅋㅋ

-슈뢰딩거 푸쉬 뭐냐고 ㅋㅋㅋㅋ

-갓플 혼자 팀 단위 밸류를 가지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거 ㅋㅋㅋㅋ

왕검은 그제야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아! 그래서 노템으로 가는 거네요! 티어원 입장에서는 퍼플 선수만 잡으면 승기를 굳힐 수 있고, 엘리펀트 선수는 개인적으로 최강의 정글러 호칭을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오히려 노골적으로 미끼라는 걸 보여줘서 갈등하게 만드는 겁니다.”

“이 상황, 티어원 입장에서는 무척 고민이 될 거거든요!? 이 상태만 유지하면 이기는 건데, 퍼지데이 팀이 판도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시간이 많지 않아요! 퍼지데이 팀 절반을 지났거든요? 티어원 결정 내려야 합니다!”

“아! 티어원이 움직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미니맵에 집중됐다.

“티어원! 미드 라인으로 갑니다!”

“이렇게 되면 또 한 번의 1:5 한타!”

“과연 퍼플 선수가 이번 솔로 한타도 성공할까요!?”

티어원의 선수들 5명 모두가 미드라인으로 집결했다.

* * *

이경복은 티어원 5인의 접근을 감지해냈다. 그는 즉시 입을 열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전력을 다하겠나이다!]

[>최대한 빨리 끝내보죠!]

[>끝을 보겠습니다!]

[>갑시다아아아!]

팀원들의 채팅 너머, 시야에도 티어원의 선수들이 보였다. 이경복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최대한 본진과 먼 곳에서 전투를 벌이는 게 팀원에게 유리할 터였다.

이경복은 짧게 숨을 가다듬으며 수리검을 잡았다. 쇄도해오는 5명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미간을 꿈틀거렸다.

‘뭐지?’

이경복의 신기는 그들로부터 위협을 감지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5명 중 그 위협 수준이 강렬한 건 3명뿐이었다.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건 위협 수준이 낮은 사람이 엘리펀트와 탑 라이너 챔피언, ‘강철의 준족’ 카마일이라는 점이었다.

‘실력은 이 둘이 더 좋은데?’

이윽고 이경복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엘리펀트와 카마일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라인의 양옆, 정글로 사라졌다.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동선은 이경복의 머릿속으로 전해졌다.

‘휘둘리지 않겠다는 건가.’

나머지 셋은 그대로 퍼지데이 팀 본진으로 향했다. 이경복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빠르게 몸을 틀었다.

캉하는 쇳소리와 함께 수리검과 클로가 불꽃을 튀겼다.

“이렇게 과감한 수를 던지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죠.”

이경복은 빠르게 수속성 수인을 맺어 그를 밀어냈다. 그리고 곧바로 본진으로 뛰어가려 했지만.

“1:1로 붙고 싶었는데, 다음 기회를 노려보겠습니다!”

카마일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다리 양쪽에 장착된 서슬 퍼런 칼날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이경복은 그 공격을 흘려내며 한 손으로는 목속성 수인을 맺었다.

하지만 순순히 당하지는 않았다. 카마일은 자라나는 뿌리를 피해 도약하며 진로를 막았다.

“최강의 정글러 칭호 욕심이 나긴 하지만.”

엘리펀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프로라면 팀의 우승이 최우선이라.”

양쪽에서 시작되는 협공.

이경복은 능수능란하게 그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제시간에 빠져나가는 건 힘들겠는데.’

이경복의 신기가 직감을 보냈다.

이대로라면 지는 건 퍼지데이 쪽이었다.

팀원들은 현재 탑과 바텀, 양쪽을 공략하지만 티어원은 미드라인 하나만을 돌파할 터였다.

방어에 나서지 않으면 먼저 무너지는 건 퍼지데이 쪽 본진이었다.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한다……!’

이경복은 결단을 내렸다.

“모두 귀환! 본진 방어합니다!”

나머지 팀원들이 다른 셋을 저지, 직접 처리하지 않아도 그가 뒤를 노리면 흐름을 뒤집을 수 있었다.

‘포위만 빠져나가면 된다.’

그러나 스노우볼의 차이는 역력하다. 이경복이 합세하지 않으면 3:4의 싸움이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이경복은 팀원들의 귀환을 확인하고 곧장 몸을 빼내려 했다.

“못 보내죠!”

“어떻게든 막아!”

하지만 상대도 그 의도를 읽어냈다.

그들의 목표는 이경복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붙잡아두는 것. 적극적인 승부보다는 진로 훼방에 힘을 쏟고 있었다.

‘하나 정도는 처리하고 가는 게 더 빠르겠어.’

이대로 포위를 뚫어도 둘은 뒤쫓아 올 터였다. 그렇게 되면 본진에서 난전이 펼쳐질 터였다.

이경복은 재차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의 목표는 카마일이었다.

“뭣……!”

카마일은 기겁했다.

분명 적중했다고 생각한 순간 이경복의 몸이 금속처럼 변하며 쇳소리를 낸 것이다.

“조심해!”

엘리펀트가 급히 올가미를 던졌다. 그러나 그것 또한 이경복의 계산에 들어 있었다.

그가 도약하자 올가미는 반격하던 카마일의 다리와 뒤엉켰다. 아군이기에 아무런 효과도 없었지만 템포를 끊기에는 충분했다.

“이런!”

어느새 이경복이 공중에서 수인을 완성시키자 거센 불길이 카마일을 뒤덮었다.

하지만 탑 라인에 서는 챔피언답게 체력은 자신 있었다. 카마일을 불길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경복을 향해 돌려차기를 날렸다.

“제가 좀 바빠서.”

그러나 목소리는 아래에서 들려왔다. 착지와 동시에 이경복이 몸을 굽혔다가 발로 그의 턱을 차올렸다.

“컥……!”

프로게이머로서의 상식을 벗어난 행위였다. 야미의 무기는 수리검인 바, 발차기로는 피해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물리작용은 적용되기에 카마일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어지는 수리검 연격과 화속성 인술.

불길에 휩싸인 카마일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퍼펙트플레이 Tier1_Raider]

그와 함께 떠오른 킬 메시지.

엘리펀트는 이에 당황했지만 바로 정신을 차렸다. 이경복이 곧장 본진으로 달려갔기 때문이었다.

‘서둘러야겠어!’

이경복은 미니맵을 체크하며 속도를 높였다. 스컬킴과 박잡초의 체력이 바닥이었다.

아무래도 살아남기는 힘들어 보였다.

‘집요하네!’

이경복은 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느낌에 바로 몸을 틀었다. 간발의 차로 귓가에 파공성이 스쳐 지나갔다.

“궁극기까지 쓰실 줄이야.”

엘리펀트는 클로를 벗었다.

라그넬의 궁극기를 시전해 천공습격으로 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상시 천공습격이 활성화됐으니 벗어나기는 힘들다.

“연습 때는 6분 정도였죠?”

이경복은 결국 엘리펀트까지 처리하기로 결심했다.

“2분으로 줄여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겁니다!”

발톱과 수리검이 격돌했다.

이경복은 그의 연격을 막아내며 한 손으로는 수인을 맺었다.

‘더 빨라졌어?!’

엘리펀트는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전 기량 회복을 위해 했던 연습과는 완전히 경우가 달랐다.

그때는 이경복이 다양한 자극을 위해 인술을 섞어서 썼지만.

‘진짜…… 미쳤네!’

이번에는 오로지 빠른 승부를 위해 최적화된 조합이었다.

엘리펀트는 시시각각 펼쳐지는 인술을 막기에도 벅찼다.

불길을 피했는가 싶으면 뿌리가 얽혀왔다. 그마저도 겨우 피한 순간 흙으로 된 주먹이 눈앞에 있었다. 겨우 공격에 성공했나 싶은 순간에는 오로지 쇳소리만이 들려왔다.

‘아, 그랬지.’

수리검에 유린당하며 그는 깨달았다. 이경복이 그에게 코칭을 하면서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퍼플 님도 위협이 클수록 기량이 높아지는 타입이라고……’

지금껏 그가 연습 때 봐왔던 이경복의 실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더블 킬!]

[퍼펙트플레이 Tier1_Elephant]

이경복은 눈앞에 떠오른 킬 메시지에 즐거워할 시간이 없었다.

‘이클 님이랑 지놈 형도……!’

그사이 남은 팀원들도 모두 사망했다. 반면 티어원의 선수들은 비록 체력이 적긴 했지만 모두 생존해 있었다.

그들은 순조롭게 본진 타워를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아직 가망성은 있다!’

저 셋을 모두 처리하면 전장에는 그 혼자만이 남는다. 그리고 모두가 부활하기 전에 티어원의 본진을 무너뜨릴 자신이 있었다.

이내 곧 그는 본진 입구에 도착했다. 육안으로도 상대 선수 셋이 보일 거리였다.

달리 말해 그들 역시 이경복을 발견했다.

“내가 막을게!”

상대 서포터, ‘광명의 대리인’ 룩소르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 그는 즉시 이경복을 향해 빛으로 만들어진 구체를 던졌다.

스턴 효과가 있는 스킬이었지만 이경복에게 그런 단순한 공격이 통할 리가 없었다.

‘거의 다 왔어!’

이경복은 회피와 동시에 수리검을 날렸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맺은 수인으로 토속성 인술을 발동했다.

수리검 적중과 동시에 스턴에 빠진 룩소르는 덜컥 멈추었다. 이경복은 곧바로 적중한 수리검을 비틀어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트리플 킬!]

[퍼펙트플레이 Tier1_OneKind]

이제 남은 건 둘, 미드라이너와 바텀 원딜러였다.

‘양각이라니.’

그러나 두 선수는 이경복의 습격에 대처하기 위해서인지 한 곳에 몰려 있지 않았다.

그들은 본진 양쪽에서 공격과 스킬을 퍼붓고 있었다.

이경복은 둘 중 위협이 강한 미드라이너를 향해 쇄도했다.

“그냥 계속 쏴!”

미드라이너가 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경복의 인술과 공격에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본진에 공격을 집중했다.

[쿼드라 킬!]

[퍼펙트플레이 Tier1_Lord]

남은 건 오직 하나.

그러나 이경복은 안심할 수 없었다. 본진의 체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즉시 원딜러를 향해 쇄도했다.

“제발, 제발……!”

원딜러는 질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경복은 그를 향해 수리검과 화속성 인술을 시전했다.

남은 체력이 몇 없었기에 이것만으로 죽이기에 충분했다.

[펜타 킬!]

[퍼펙트플레이 Tier1_Trigger]

원딜러의 죽음과 함께 떠오른 킬 메시지.

이경복은 웃음을 흘렸다.

“아깝다.”

그가 시선을 돌렸다.

죽기 전, 마지막 원딜러가 쏜 탄환이 본진에 적중했다. 그 한 발에 본진의 빛이 차오르더니 섬광이 터졌다.

[패배]

이벤트 매치는 티어원의 승리였다.

* * *

이벤트 매치가 끝나고 시작된 인터뷰.

“공든 탑이 무너지겠냐는 속담이 있습니다.”

티어원 대표로 엘리펀트가 마이크를 잡았다.

“정말로 아슬아슬한 승부였습니다. 마지막 퍼지데이 팀, 퍼플 님께서 내건 이지선다에 정말 고민이 많이 됐어요.”

“아, 그렇죠. 212 운영은 아주 생소한 전략이었거든요.”

“예.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민했습니다. 저희 5명 전부 나서면 잡을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도 아마 셋은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4:2잖아요? 어느 쪽을 택하든 승리하는 선택지가 아니더라고요.”

엘리펀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이벤트 매치니까. 그냥 여기서 퍼플 님 잡고 최강의 정글러 칭호 받자. 그런 욕심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희는 프로니까, 우승만을 노리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역시 MCK 우승팀다운 마음가짐입니다! 어떤 경기라도 우승만을 노린다! 사실상 그 결정이 탁월했죠. 이건 방송을 보신 모든 분들이 인정할 겁니다.”

왕검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마지막에 본진만 노리지 않았으면 결과가 전혀 달라졌을 겁니다. 퍼펙트 야미가 솔로 백도어에 성공한 전례가 이미 있었거든요? 퍼플 선수로서는 극딜셋 맞추고 빈집 들어가면 끝이었어요!”

-진짜 ㅋㅋㅋㅋ 마지막에 심장 멈추는 줄

-와 진짜 간발의 차이였는데

-아니 어떻게 펜타킬이랑 패배랑 같이 뜰 수가 있냐고 ㅋㅋㅋㅋ

-본진 체력 눈금 하나만 남았어도 퍼지데이가 이긴 건데 ㅠ

이에 채팅창도 적극 동의했다. 왕검은 목을 가다듬으며 주의를 돌렸다.

“하지만 이런 작은 차이, 조그마한 스노우볼의 차이가 결국 승패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런 경기를 명승부라고 부르죠! 정말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기라고는 믿기 힘든 장면들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내 화면은 엘리펀트에서 이경복으로 전환됐다. 퍼지데이는 지놈 대신 그가 소감을 밝히기로 결정을 내렸다.

“퍼플 선수, 이번 이벤트 매치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경복은 게임에서 진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은 표정이었다.

“네.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름 준비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물론이고 좀 더 직원들을 독려해야 했나 싶은 아쉬움이 있네요.”

이내 그는 장난스럽게 팀원들을 돌아봤다. 지놈이 과장스럽게 몸을 움츠리자 채팅창에 웃음이 터졌다.

-독려(아님)

-독려의 독이 맹독이었나?

-갓플한테 중독된다는 점에서 맞말이긴 해 ㅋㅋㅋ

-5252, 거기서 얼마나 더 쥐어짤 셈이었냐구웃!

-이미 대회에서 여럿 갈리지 않았냐고 ㅋㅋㅋㅋ

-직접 갈린 쥐놈 질겁하는 거 보소 ㅋㅋ

-갈아야 소화가 잘되긴 하자너ㅋㅋㅋ

-마지막까지 컨셉 유짘ㅋㅋㅋ

“그래도 아까워서 더 재미있는 경기였습니다. 채팅창을 보니 시청자분들도 모두 즐겨주신 거 같아 더 기쁜 시합이었어요.”

이경복은 이내 티어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급작스러운 부탁이었는데 응해 주신 티어원 선수들과 관계자분들, 그리고 자리를 마련해 주신 라잇게임즈와 트라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배포 남다른 거 보소 ㅋㅋㅋㅋ

-아 ㅋㅋ 이 맛에 갓플 본다 이말이야

-나였으면 아까워서 미칠 것 같은데 ㅋㅋㅋ

-주변 사람들 챙기는 거 뭐냐고! 블랙기업 사장이 그래도 되냐고!

-아 ㅋㅋ 블랙기업 오너리스크 온다 또

-방송도 잘하고 인성도 좋으면 어쩌라는 거?

이경복의 말에 엘리펀트가 첨언했다.

“아, 저희는 오히려 감사합니다. MCK끝나고 좀 느슨해진 느낌이 있었는데, 오히려 좋은 자극이 됐습니다.”

그는 이내 이경복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다음에는 꼭 퍼플 님의 퍼펙트 스코어를 깨고, 최강의 정글러 칭호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그의 말에 채팅창 분위기가 일변했다.

-어?

-퍼펙트 스코어?

-생각해보니 이벤트 매치도 0데스였넼ㅋㅋㅋㅋㅋ

-이런 ㅋㅋㅋㅋ 무친ㅋㅋㅋㅋ

-코이츠www 퍼펙트 그 자체가 되어버린www

-진짜 이 기록은 아무도 못 깨겠다 ㅅㅂ ㅋㅋㅋㅋ

-아 ㅋㅋ 갓플한테 그런 게 한둘이냐고

시청자들이 새삼 그 사실을 깨닫는 사이 양 팀 선수들은 인사를 나누었다.

“자, 이렇게 모든 일정이 마무리가 됐네요!”

“정말 파란만장했네요.”

“너무 즐거웠습니다. 진짜.”

이제 막을 내릴 시간이었다.

왕검과 해설진은 방송을 마무리 지었다.

“역대급을 갱신한 이번 미친스머프 대회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즌에는 더 좋은 모습, 그리고 더 재미있는 대회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봐요!”

인사와 함께 올라오는 스탭롤.

채팅창에는 눈물 이모티콘과 아쉬움이 가득해졌다.

-진짜로 끝이라고?

-바로 내일 또 스크림 할 것 같은 이 기분 ㅋㅋㅋㅋ

-넘모 아쉽고 ㅠㅠ

-그래도 개꿀잼이긴 했다 ㅋㅋㅋ

-이러면 다음 시즌은 어떻게 역대급 갱신하냐 ㅋㅋㅋㅋ

-퍼지데이가 또 나오면 된다 이말이야

-엌ㅋㅋ 바로 해결해버리기

시청자 숫자는 쉬이 줄지 않았다. 그들은 채팅창에 남아 여운을 즐겼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했다.

그들이 느끼는 이 여운과 감정은.

-근데 진지하게 퍼지데이 나오면 글로벌 대회도 가능할 듯 ㅋㅋㅋ

-ㄹㅇㅋㅋ 이번 대회에 퍼지데이 보려고 중계채널까지 열렸자너

-월클이 나오면 대회도 월클이지ㅋㅋㅋ

-미스틱 역사에 남을 장면들이 하나도 아니고 막 우수수 쏟아짐ㅋㅋㅋ

-어떻게 국제 대회 이름이 미친스머프? 엌ㅋㅋㅋㅋ

-개웃기네 진짜 ㅋㅋㅋ

-이미 해외 커뮤도 다 난리 났을 듯ㅋㅋㅋ

국적과 상관없이 게임을 좋아하면 느낄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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