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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214화 (214/491)

214화 - 촬영 현장 (1)

지사장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이경복은 멋쩍게 웃었다.

‘로데리가 뭐지?’

GAT는 그래도 들어본 적이 있지만 이 게임은 완전히 생소했다.

‘모른다고 말하기는 좀 미안한데.’

하지만 어쩌겠나.

모르는 걸 아는 체하는 게 오히려 기분이 나쁠 터였다.

이에 그가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로데리, 락앤롤 게임즈의 대표 시리즈 중 하나로군요.”

“오? 알고 계십니까?”

지사장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말을 받은 건 박주호였다. 그는 안경을 슬쩍 고쳐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PC와 콘솔 시절, 사실적인 AI와 디테일한 세계관 구현으로 호평을 받았었죠. 그렇다고 캐릭터성이나 스토리가 부족한 것도 아니라서 인기가 많았던 시리즈로 알고 있습니다.”

거래처가 될 락앤롤 게임즈를 조사하면서 숙지해 둔 사항 중 하나였다. 술술 나오는 설명에 지사장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눈을 크게 떴다.

박주호는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GAT 후속작이 오랫동안 안 나온 이유가 로데리 개발 때문이었나 봅니다.”

“제가 본사 개발실정까지는 관여하지는 않지만 아마 그럴 겁니다.”

지사장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박주호가 잘 알고 있던 덕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 인기 있는 작품이라면, 구태여 홍보를 하시는 이유가?”

이경복이 의아해하자 지사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흠, 역시 퍼플 님은 좀 다르신 것 같습니다.”

혹시 뭔가 실수라도 한 걸까?

하지만 신기가 지사장으로부터 감지한 느낌은 여전히 긍정적이었다.

“돈이 목적이 아니다.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보통은 광고를 받을 생각만 하지, 이유까지 묻지는 않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옳은 말이었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는 광고 대금과 조건에 대한 조율이 오가지, 광고의 필요성이나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앞서 GGG 측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저도 오해 없도록 말씀을 드리죠.”

그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 전 말씀 주신 것처럼 락앤롤 게임즈는 가상현실 시장에 진출한 이후 GAT서비스만 집중해 왔습니다. 아직 로데리를 기억하시는 팬분들이 계시겠지만 그 시간은 무시할 수 없지요.”

지사장은 잠시 뜸을 들이고 이경복을 바라보며 웃었다.

“무엇보다 눈앞에 그 증거가 있죠. 퍼플 님도 전혀 모르시지 않았습니까?”

“아, 역시 티가 좀 났나요?”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구석에 있던 조대한은 그 당당한 태도에 당황했지만 지사장은 오히려 마음에 드는 듯 웃음을 흘렸다.

“오히려 모르시길 바랐습니다. 그래야만 저희가 광고를 맡길 이유가 되니까요.”

“모르는 편이 좋다?”

“네. 서부극이라는 장르는 영미권에서는 꽤 쉽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들의 과거이자 역사, 뿌리와도 연관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시아권은 다릅니다.”

지사장은 이내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 말을 이었다.

“그나마 다른 매체, 영화나 드라마 혹은 만화로 아시아권에 수입은 되고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게임 쪽에서 서부극을 다루는 작품은 흔치 않습니다. 그리고 성공하기도 어렵고요.”

“매니악한 장르라는 말씀이시네요.”

“예, 그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려면 먼저 고객님들이 장르에 친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보다 직관적이고, 보다 대중적으로 친밀도를 높이는 거죠. 그래서 여기, GGG사와 콜라보를 요청 드린 겁니다.”

“서부극에도 총기는 빠질 수가 없는 부분이니까요. 마침 쇼다운과 컨셉도 맞아서 시기가 좋았죠. 그리고 대중성이라면 역시 퍼플 님 아니겠습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마케팅 팀장이 말을 거들었다.

“좋은 평가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깊이가 있는 장르면 잘 아는 사람이 다루어야 하지 않나요?”

“아뇨, 아닙니다. 아만보라고 하죠? 원래 좋아하는 사람은 세부적인 디테일을 짚어줄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면 더 매니악하게 보일 뿐입니다. 잠재 고객님들 입장에서는 뭔 소리인가 싶을 테니까요.”

“아…… 그래서 오히려 제가 모르니까 더 좋아하신 거네요.”

“맞습니다. 광고를 하신다고 해서 따로 뭔가 공부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시청자들과 같은 눈높이로 플레이해 주시는 게 더 좋습니다.”

그 말에 이경복은 눈을 굴렸다.

최근에는 주변 사람들과 시청자들에게 알려 주는 방송 위주로 진행을 하지 않았나.

‘괜찮겠는데?’

그것도 재미있지만 이경복이 방송에 빠진 건 시청자들과의 교감이 주요했다.

같이 알아가고, 같이 놀라고, 같이 즐거워하는 방송. 그게 개인 방송의 매력이었다.

“아, 그리고 저희는 플레이에 어떤 제약도 두지 않습니다.”

“네?”

“말 그대로입니다. 애당초 저희 회사의 게임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 자유도에 있으니까요.”

그 말에 이경복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불안한 느낌은 없어.’

낯설다는 건 새롭다는 의미였다.

새로운 도전과 더불어 보장되는 자유, 개발사의 훌륭한 명성은 기대를 품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이 모든 경험을 돈을 내고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받는 입장이었다.

이경복은 옆으로 시선을 돌아봤다. 박주호는 이미 그의 결정을 예상한 듯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조대한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재미있겠네요.”

이에 이경복이 대답했다.

그 한 마디에 팀장과 지사장이 동시에 탄성을 뱉었다.

“아!”

“그 말씀은?”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안도한 듯 웃음을 흘렸다. 이경복이 계약서에 날인을 하는 사이 팀장이 입을 열었다.

“로데리 플레이는 저희 광고 촬영을 먼저 끝내고 하시면 됩니다. 광고 게재와 더불어 방송을 해주시면 됩니다.”

“예, 그래야 콜라보라는 느낌이 더 강해지니까요.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정말…… 퍼플 님이 혹시라도 거절하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이번 콜라보는 퍼플 님이 핵심이니까요.”

이경복은 날인을 마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요?”

“아, 그럼요. 로데리는 확실히 깊이가 있는 게임이죠. 로데리 플레이를 시작하시면 분명 시청자분들 중에 서부극에 관심을 가지게 되실 겁니다. 이때 찍먹이라도 해보시려는 캐주얼 유저들은 어디로 눈을 돌리겠습니까?”

“하하, 거너그라운드 쇼다운으로 1:1 결투의 맛을 볼 겁니다. 모바일 버전답게 접근성이 아주 좋지 않습니까? 그렇게 서부 컨셉에 친근해지면 저희 로데리에 정착을 하시겠지요.”

서부극이라는 장르에 선순환을 시작한다. 그것이 두 회사가 원하는 목표였다.

그리고 이경복의 방송은 그 선순환을 가속시키는 촉매였다.

“성공만 한다면 8천만 원이 전혀 아깝지 않죠.”

“8천만?”

이경복은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광고 대금은 4천만 원이 아니던가.

그때 박주호가 옆에서 팔을 툭툭 쳤다.

“계약서 하나 더 있어.”

“아.”

GGG와 락앤롤 게임즈의 계약서는 서로 별개였다. 두 회사가 각기 4천만 원의 광고 대금을 지불했다.

이경복은 헛웃음을 지으며 또 하나의 계약서에 날인했다.

‘진짜 미쳤다……!’

그 광경을 본 조대한은 표정 관리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눈앞에서 거금이 오가는 게 현실감이 없었다.

‘이 정도면 거의 준 연예인급 아닌가?’

물론 억대를 받는 톱스타까지는 아니더라도, 웬만한 연예인 행사비에 버금가는 액수였다.

조대한은 새삼 이경복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 *

광고 촬영 당일.

GGG의 마케팅 팀장은 예정 시간에 앞서 준비 점검에 매진했다.

“감독님, 이번 촬영도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광고 감독은 GGG 소속이 아니라 외부 인사였고, 업계 내에서도 꽤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그가 광고 감독에게 살갑게 말하자 사무적인 어조의 답이 돌아왔다.

“예. 뭐, 한두 번 하는 일도 아닌데요. 직원분들한테 얘기만 잘 해주십쇼.”

감독은 그리 말하고 캡슐에 접속했다. 마케팅 팀장이 한숨 돌리는 사이 회사 동기인 개발팀장이 찾아왔다.

“야, 저 감독 또 쓰냐?”

“인마! 목소리 좀 낮춰!”

“자식아, 낮추기는 뭘 낮춰? 우리 회사에서 쓰는 모델이 얼마짜리인데. 이 정도 방음은 기본이야.”

개발팀장은 광고 감독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저번에 우리 애들 저 인간 말 듣다가 개고생한 거 알지?”

촬영을 주도하는 감독은 외부인사였지만 그 외 인력은 전부 개발팀 소속이었다.

캡슐과 개발용 클라이언트를 이용한 촬영이었기에 외부 직원을 쓸 수 없었다.

감독이 지시하면 직원들이 구현하는 방식이었다.

“아, 안다니까. 저 감독이 좀 깐깐하긴 해도 실력은 좋잖냐. 응? 저번 광고 영상도 마음에 들었잖아?”

“그러면 네가 위쪽에 얘기 좀 잘해서 보너스라도 챙겨줘야 되는 거 아니냐? 우리 애들 빼가서 써놓고 평가는 왜 마케팅 팀이 다 먹어?”

“이야, 이 자식 이거 말 섭섭하게 하네. 뭘 또 우리가 다 먹어? 그래도 저번에 고생했다고 회식비 나왔잖아?”

마케팅 팀장은 발끈했다가 이내 손을 내저었다.

“야야, 아무튼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내가 확실하게 중간에서 조율할 테니까.”

“허이구, 누가 들으면 우리 애들 소중해서 나서는 줄 알겠다. 내가 널 모를 것 같냐?”

“뭔 소리야?”

“이번 광고 모델이 퍼플 님이니까 직접 관리하려는 거 아냐. 위에서 신경 쓰라고 말 나온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자식아. 나도 팀장이야, 팀장.”

그 말에 마케팅 팀장은 찔끔했지만 이내 웃음을 흘렸다.

“야야, 그게 뭐가 중요해? 아무튼 우리 회사 잘 되는 게 중요한 거 아냐? 쇼다운 잘 되면 개발팀도 보람차고 얼마나 좋아?”

“어휴…… 하여간 능구렁이 같은 놈. 애들 뒷말 안 나오게 좀 적당히 부려먹어라. 알았냐?”

“아, 알았다니까.”

그는 개발팀장을 돌려보내고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이경복이 도착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예정된 시간 5분 전.

“퍼플 님 오셨습니다!”

직원의 우렁찬 외침에 그는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오시는 데 뭐 불편하신 점은 없었나 모르겠네요.”

“예, 괜찮았습니다.”

이경복은 그리 대답하고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GGG 사옥은 나름 많이 와 봤지만 개발 부서에 들어온 건 또 처음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캡슐방인 줄 알겠네.’

컴퓨터도 있긴 했지만 캡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경복은 이내 눈을 돌렸다.

“다행입니다. 짧게 다시 브리핑 드릴게요. 먼저 광고 배너에 들어갈 대표 이미지 촬영, 보안관이랑 무법자 컨셉으로 찍고 이후에 영상으로 넘어갈 겁니다.”

팀장은 그리 설명하고 슬쩍 이경복의 눈치를 보았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정말 커스텀 모델이 아니어도 괜찮습니까?”

“예, 괜찮습니다.”

이경복은 이에 즉답했다.

단순히 광고 촬영만으로 연산력이 초과할 일은 없었다.

“어차피 개발자 클라이언트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요?”

“예, 뭐 그렇긴 하죠.”

마케팅 팀장은 멋쩍게 웃고는 바로 앞장섰다.

“그럼 바로 접속하시죠.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 * *

광고 감독은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공간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결국 또 캡슐 촬영이군.’

가상현실이 발달하면서 자리 잡은 현대의 촬영 방식.

장소는 물론이고 빛과 그림자는 물론 바람과 온도와 같은 환경까지 뜻대로 조율할 수 있었다.

덕분에 촬영 시간이 밀렸다고 하루를 더 기다릴 필요도, 갑자기 비나 눈이 내린다고 취소되는 사태도 없었다.

비단 게임 광고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촬영은 이런 방식으로 대체됐다.

‘그래도 현실과는 다르단 말이지……’

감독은 씁쓸함을 삼켰다.

그는 단순히 돈만 받고 찍는 기계가 아니었다. 그만이 추구하는 감각과 예술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가뜩이나 캡슐 촬영인데 모델은 또 프라이버시 기능까지 쓴다라……’

감독은 한숨을 뱉었다.

안 그래도 인공적인 게 가득한 마당인데 광고 모델의 얼굴과 표정마저 디지털의 산물이라니?

‘차라리 저번처럼 연예인을 쓰지.’

연예인 모델은 이미 얼굴이 알려졌기에 프라이버시 기능을 쓰지 않았다. 적어도 그 표정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왔다.

개인 방송에 관심이 없는 감독에게 스트리머 퍼플이라는 인물은 ‘행인1’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은 참아야지 별수 있나.’

그는 자신을 다독였다.

커리어를 쌓고 쌓다 보면 언젠가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보장받을 때가 올 터였다.

“감독님! 모델분 오셨습니다!”

상념은 이내 들려온 목소리에 깨졌다. 그는 느릿하게 일어나 몸을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스트리머 퍼플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훤칠한 키의 사내가 미소와 함께 악수를 청했다. 감독은 본능적으로 그의 몸을 빠르게 훑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몸이 좋으시네요.”

그는 데면데면하게 말하면서도 솔직하게 평했다. 얼굴이야 알 수 없지만 몸은 현실의 것을 스캔한 바, 훌륭하게 균형이 잡혀 있었다.

“그럼 바로 준비하죠.”

감독은 그리 말하고 바로 직원들 쪽으로 움직였다. 그의 지시에 따라 직원들이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오……”

그와 더불어 백색공간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구름 하나 없는 하늘에 솟아오른 뜨거운 태양, 그 아래 모래 바람이 부는 황량한 땅 위에 목조 건물이 여럿 솟아 있었다.

서부극에서 볼 법한 마을이 순식간에 완성됐다.

“일단 보안관 컨셉부터 하시죠.”

감독의 말에 이경복은 고개를 끄덕이며 코스튬을 바꾸었다.

갈색 모자와 조끼, 그리고 하얀 셔츠를 걷어 올린 차림. 그 가슴에는 보안관의 상징인 별 모양의 배지가 달려 있었다.

‘흠, 나쁘지는 않네.’

몸이 좋은 만큼 옷만 바꾸어도 태가 났다. 하지만 감독은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전문 모델도 아니고 꽤 오래 걸리겠네.’

모델의 신체가 우월한 건 이쪽 업계에서 기본이었다. 보다 중요한 건 역시나 ‘자연스러움’이었다.

‘초짜들은 사진 찍는다고 하면 너무 긴장을 한단 말이야.’

감독은 기대를 내려놓고 디렉팅을 시작했다.

“자, 먼저 문 옆에 등을 기대세요. 편하게 기대고 여기 드론 카메라 쪽을 보면 됩니다.”

“예.”

이경복은 지시를 따랐다.

감독이 눈가를 찌푸리며 말했다.

“자, 보안관 사무소에 불청객이 찾아왔다고 생각해봅시다. 서부에서는 언제 총을 맞을지 몰라요. 당연히 경계심이 들겠죠? 게다가 날씨도 더워서 짜증까지 납니다. 그런 상황에서 불청객을 보면……”

감독은 화면을 보다가 말을 멈추었다. 이경복의 표정이 역시나 어색했다.

“그냥 인상만 찌푸리라는 게 아닙니다. 흠, 이건 안 되겠네……”

그가 혀를 차자 마케팅 팀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끼어들어야 하는 시점일까?

“좋아요. 더미 하나를 추가해 보죠. 실제 대상이 있는 편이 더 쉬울 겁니다.”

감독의 말에 직원은 빠르게 더미 캐릭터 하나를 불러왔다. 이경복 앞에 너저분한 행색의 무법자가 나타났다.

“오케이, 좋습니다. 아까보다 훨씬 낫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감독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이경복은 잠시 그를 살피다가 손을 들었다.

“감독님?”

“왜 그러시죠?”

“혹시 이 캐릭터, AI로 움직일 수 있나요?”

그 물음에 감독은 물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장 먼저 마케팅 팀장이 직원에게 눈짓하자 그가 입을 열었다.

“아, 네. 가능합니다.”

“그럼 아까 감독님이 말씀하신 설정으로 저한테 다가오는 것처럼 해주실 수 있나요? 저를 공격하려고 노리는 걸로.”

“예, 잠시만요.”

그 말에 감독은 눈을 부라렸다.

광고를 디렉팅 하는 건 그의 일이 아닌가? 모델이 이렇게 나서는 건 생소한 경험이었다.

‘하여간 초짜들은……!’

그러나 감독은 제지하지 않았다. 곧바로 막아봐야 모델과 감정의 골이 생길 뿐이었다. 직접 결과물을 보여 주면서 말해야 상대도 납득할 터였다.

‘달라져 봐야 뭐가 달라지……’

그는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더미의 설정을 마치고 그 말처럼 무법자가 이경복을 향해 다가갔다.

‘뭐야, 이거?’

겉으로 보기에는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감독은 그의 눈빛과 행동이 미묘하게 달라진 걸 느꼈다.

‘손, 손의 위치가 달라!’

조금 전과 달리 이경복은 한 손을 허리춤에 달린 홀스터에 올려놓았다.

그 모습에서 언제든 대응을 준비하는 노련한 보안관의 습성이 엿보였다.

“어씨!”

“으어?!”

마치 홀린 것처럼 화면을 보던 감독은 이내 펄쩍 뛰었다. 탕하는 총성과 함께 무법자가 쓰러진 게 아닌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놀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직원들과 마케팅 팀장도 놀란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아, 컷 싸인이 안 나와서요.”

이경복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연기가 새어 나오는 리볼버를 검지로 돌리며 다시 홀스터에 끼워 넣었다.

“감독님? 다시 찍을까요?”

이어지는 그 물음에 감독은 정신이 되돌아왔다.

“아, 아뇨! 됐습니다. 이거 촬영하고 있었죠?”

“예? 아, 네네!”

“영상 전부 프레임으로 잘라 봐요. 하나 빼서 쓰면 되겠는데?”

감독은 열띤 목소리로 직원에게 지시했다.

‘방금은 보안관 그 자체였어……!’

이제 막 배지를 단 신입 보안관도 아니었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권총 다루는 솜씨마저 발군인 베테랑이었다.

“와……”

그는 자기도 모르게 탄사를 뱉었다.

총기를 뽑기 바로 직전의 1프레임. 여유로운 자세부터 경계심 어린 표정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게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지?’

조금 전까지 어색해하던 모델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가상현실이라고 자연스럽지 않은 게 아니었어.’

이 한 컷만으로 그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모델들이 자연스럽지 않았던 거야. 어차피 가상현실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이 친구는 순식간에 몰입했어!’

가상현실 촬영이 대세인 이 시대.

‘완전히 천재야.’

이 모델은 광고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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