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 보안관 알렉스 (2)
락앤롤 게임즈는 자유도를 중요시한다. 그렇기에 이경복은 상황을 이해했다.
‘스토리 상 필요한 부분이라는 거겠지.’
악역의 등장에도 다른 대처가 불가능하게 제한해 둔 이유가 있을 터였다.
만약 바꿀 수 있는 상황이라면 1회차에는 악역인 걸 몰라도 이후 다회차 플레이에 다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플레이가 가능했을 터였다.
‘하기야 중심 스토리가 없으면 너무 막막하게 느껴질 테니.’
이경복은 다시 컷신에 집중했다.
연방보안관은 턱짓으로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롬웰이라고 하네. 잠깐 얘기 좀 하지.”
알렉스는 긴장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사무소 뒤편으로 나오자 롬웰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다른 이들은 그 주위에 서서 알렉스를 위압했다.
“한 대 할 텐가?”
“괜찮습니다.”
알렉스가 거절하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담배를 깊이 흡입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낮은 목소리가 나왔다.
“혹시 ‘하이어드 건’ 갱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갱단? 하이어드 건?”
알렉스가 어리둥절해하자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촌구석에 살면 모를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이쪽 방면에 아지트를 차린 거 아니겠습니까?”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이쉑들 왜케 싸가지가 없음?
-뭔가 좀 느낌이 쌔한데
-면전에 대고 담배연기 뱉는 것부터 꿀밤마려움 ㅋㅋㅋ
-대놓고 비호감작 ㅋㅋㅋㅋ
“확실히 느낌이 좋지는 않네요.”
시청자들은 그들의 태도에 불쾌함을 느꼈다. 이에 이경복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도 이 근방 지리는 잘 알고 있겠지?”
“그건 왜……”
“아까 말한 갱단을 잡기 위해서라네. 그런 무법자들을 그대로 놔둬야 되겠나? 놈들은 아주 잔혹한 것들이야. 자네 마을도 안전하지 않을 테지.”
롬웰은 담뱃재를 튕겨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일세. 알렉스 보안관.”
“명령? 아무리 연방보안관이라고 해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알렉스가 이에 불쾌해하자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다가왔다.
“롬웰, 예의를 지켜야지. 아무리 우리가 연방보안관이라고 해도 서로 지켜야 할 선이 있는 법인데.”
그 말에 롬웰은 코끝을 찡그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콧수염을 길게 기른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알렉스의 어깨를 토닥였다.
“미안하네. 내가 대신 사과하지. 그 갱단 놈들이 혹시라도 도망갈까 마음이 급해서 그런 거니 이해해주게나.”
“……괜찮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자네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야. 물론 자네에게도 나쁜 얘기만은 아니지.”
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연방차원에서도 큰 보상을 할 거야. 어쩌면 여길 벗어나 도시로 갈 수도 있겠지. 자네 아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나?”
“그건 어떻게?”
“아,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닐세. 자네 아들이 어찌나 목청이 좋던지! 헌데 그런 아들을 감옥에 가둘 정도이니 자네가 딱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알렉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들 생각하면 또 못참지
-ㄹㅇㅋㅋ 맹자도 교육 때문에 3번 이사갔자너
-낯선 서부극에서 익숙한 학구열의 향기가?
-킹직히 자식 교육은 동서고금 다 통하는 이유라 이말이야
시청자들은 그 심정에 동감을 표했다. 이윽고 알렉스는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아들 녀석만 꺼내주고 가시죠.”
“아니, 아니…… 지금 가야 된다네.”
“예?”
“내 말하지 않았나? 놈들이 언제 또 도망칠지 몰라.”
그는 다시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그냥 길 안내만 해주고 돌아가면 끝이라네. 자자, 얼른 서두르자고. 롬웰, 이 친구는 자네 말에 태워주게나.”
“알겠습니다.”
롬웰과 다른 연방보안관들이 알렉스를 반강제적으로 말에 태웠다.
불안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알렉스의 모습과 함께 화면이 전환됐다.
-넘모 수상하고 ㅎㄷㄷ
-않이;;; 그거 하나 열어주는데 뭐 얼마나 오래 걸린다고
-점점 더 싸하다 그쟈?
시청자들 역시 불안해했지만 이내 주의가 돌아갔다.
어느새 밤이 된 시각, 알렉스는 산을 오르다가 멈추어 서서 앞을 가리켰다.
“저깁니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이 불평을 내뱉었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
“정말 깊이도 숨었네.”
혹여나 발각될까 말을 매어두고 산행을 택했다. 덕분에 다들 지친 표정이었다.
“그런데 정말 여기가 맞습니까? 여긴 곰이 나온다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인데……”
알렉스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묻자 롬웰이 턱짓을 했다.
“그럼 직접 물어보겠나? 왜 이런 엿 같은 곳에 숨었는지?”
그에 알렉스가 눈길을 돌렸다. 곰 굴 안쪽에서 횃불 하나를 든 누군가가 나오고 있었다.
정말 갱단이 숨어 있던 것이라.
“그럼, 저는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놀란 알렉스가 슬쩍 물러서려 하자 롬웰이 그를 붙들었다.
“돌아간다고?”
“안내는 더 필요 없……”
“이것 참 안타까운 일이야.”
콧수염의 남자가 불쑥 그의 말을 끊었다. 그는 두 손가락으로 제 콧수염을 배배 꼬며 혀를 찼다.
“저런 무법자를 보고도 등을 보인다니, 그러고도 보안관인가?”
그 말과 함께 다른 이들이 권총과 소총을 붙들었다.
-않이;;; 얘기가 다르잖아요!
-시간 지난 거 보면 마을에서 꽤 멀 듯
-빌리 저녁도 못 먹고 있는 거 아니냐
-아들 굶는 건 못 참지!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알렉스가 이에 항변하려는 듯 눈을 찌푸린 순간이었다.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떨어졌다.
시청자들이 놀랄 새도 없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보스 말대로네요.”
“멍청한 촌놈 덕분에 일이 쉬워졌습니다.”
“이런 머저리가 보안관이라니.”
이내 암전된 시야에 채팅창이 요동쳤다.
-헐?
-초장부터 통수라고?
-갑자기 알렉스 공격을 왜 함?
-같은 편 아니었음?
무수히 올라오는 물음표에 이경복이 말했다.
“이놈들 이거 아무래도 가짜 같은데요?”
-헐 맞네 ㄷㄷ
-뭔가 다른 증명은 한 게 없잖슴
-알렉스가 배지랑 옷만 보고 착각한 거?
-시작부터 지놈킥 뭐냐고!
이내 암전된 시야가 돌아왔다.
“손이랑 발이랑 전부 묶였네요.”
이경복은 손목과 발목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 앞에 가짜 보안관들이 금괴를 옮기고 있었다.
“오, 벌써 정신이 들었나?”
콧수염의 남자, 아마도 이들의 보스로 추정되는 그가 알렉스를 보며 활짝 웃었다.
“뭐,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우리는 연방보안관이 아닐세. 그래도 이 옷과 배지는 진짜긴 하지.”
-와씨;; 진짜 가짜였네
-갱단이 연방보안관들 죽이고 빼앗은 듯?
-저 금괴 노리고 온 건가?
이죽이는 그를 향해 알렉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이어드 건이라는 게… 당신들인가……?”
“하이어드 건? 우리가 말인가?”
보스는 그리 되묻고는 부하들을 돌아봤다. 그들 모두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알렉스, 우리는 그렇게 무식하고 야만적인 무법자와는 거리가 멀지.”
“그러면 대체……”
“이제 죽을 텐데 그걸 알아서 뭐하겠나?”
보스가 손짓하자 롬웰이 그의 목에 올가미 밧줄을 걸었다.
“알렉스, 나는 이 배지가 정말 탐이 났어.”
보스는 알렉스의 배지를 뜯어내며 웃음을 흘렸다.
“우리가 사람을 죽이면 지금 자네처럼 밧줄이 목에 감기지. 하지만 이 배지가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그는 배지를 바닥에 내던졌다.
작은 쇳소리와 함께 배지가 바닥을 굴렀다.
“문명인답게 처분해 주지. 허나 아쉽게도 여기에는 교수대가 없어서 말일세. 조금 시간이 걸릴 테지만 절벽에 매달기로 하자고.”
알렉스는 몸부림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롬웰은 그를 절벽 가장자리에 내려놓고 발로 그를 밀었다.
팽팽해진 밧줄에 알렉스는 버둥거렸다. 이내 그는 정신을 잃게 되고 화면이 암전됐다.
-끝이야?????
-지금까지 로데리를 플레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네, 재밌었구요. 다음 게임 갈게요
-최단기 명작 ㅋㅋㅋ
시청자들이 장난스럽게 황당함을 표했지만 이경복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죽지는 않죠.”
이내 지지직하는 소음과 함께 이경복은 부유감을 느꼈다. 이윽고 풍덩하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오?
-밧줄 못 버티고 끊어진 듯?
-강에 떨어진 건가?
-아 ㅋㅋ 절벽에서 떨어지면 사는 클리셰였고
-않이;; 근데 손발 다 묶였는데 어케 나옴?
몇몇 시청자들의 해답은 바로 나왔다. 전환된 화면 속에서 알렉스가 벌떡 일어났다.
“허억… 허억……”
그는 거칠게 숨을 뱉으며 황망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있는 곳은 작은 천막이었다.
“깨어나셨소.”
이내 천막으로 들어온 남자.
그는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지닌, 미대륙 원주민이었다.
-아 ㅋㅋ 네이티브는 무적권 우리 편이지
-킹직히 악역으로 그릴 수가 없긴 해
-네이티브 아메리칸이 악역 맡으면 현지에서 난리 날 듯
-진정한 미국인니뮤ㅠ
시청자들이 안도하는 사이 알렉스가 물었다.
“여, 여기는? 대체 어떻게……?”
“당신은 강에서 떠내려 오고 있었소. 시체인 줄 알았는데 용케 목숨이 붙어 있었지.”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물 좀 드시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질 못했으니……”
그가 물 잔을 내밀었지만 알렉스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틀? 이틀이라고요?”
질문을 던졌지만 답은 기다리지 않았다. 알렉스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일어났다.
“빌리! 맙소사……! 빌리!”
그러나 몸 상태가 온전치 못했는지 그는 비틀거렸다. 원주민이 차분하게 그를 부축해주었다.
“진정하시오.”
“어서, 어서 돌아가야 합니다. 아들이, 제 아들이…”
-어우;; 이러면 눈 돌아가지
-이틀 동안 감옥에 갇혀있으면 ㅎㄷㄷ
-그래도 마을 주민들이 챙겨주지 않을까?
-오히려 작은 마을이라서 괜찮을 듯
시청자들은 알렉스의 심정을 바로 이해했다. 원주민은 그의 설명을 듣더니 곧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소. 말은 탈 줄 아시오?”
“말은……”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내 도와주겠소. 이쪽으로 오시오.”
이내 천막을 나오니 옆에 말 한 마리가 매여 있었다.
“아, 승마 튜토리얼인가 보네요.”
원주민의 부축에 말에 오르자 통제권이 돌아왔다. 고삐를 쥔 이경복은 원주민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 원래 말을 타봤음?
-바로 배우는 거 무엇?
-이거 승마도 디테일하게 만들었을 건데 ㅎㄷㄷ
-ㅇㅇ GAT에서도 몇 번 실패해야 자동 운전 모드 활성화시켜줌
-딱 봐도 전생에 몽골인이었네 ㅋㅋㅋ
-아 ㅋㅋ 전생이면 인정해야지
이경복이 능숙하게 말을 몰자 시청자들은 놀라움을 표했다. 그리고 그것은 원주민도 마찬가지였다.
“온순한 아이지만 이토록 잘 따르는 건 처음인 것 같소. 마치 말을 타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 같군.”
“감사합니다. 일이 끝나면 다시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경복의 대답에 원주민은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것 없소. 나는 이 아이의 친구지 주인이 아니니까. 이 아이는 당신과 더 지내고 싶어 하니 잘 챙겨주시오.”
“아, 네. 알겠습니다.”
이경복은 가볍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고 고삐를 잡았다. 서서히 속도를 높이자 선선한 바람이 피부에 와 닿았다.
마을 쪽 방향을 가늠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미니맵과 포인터가 명확히 방향을 잡아주었다.
“와, 그냥 NPC인데도 뭔가 깊이가 있는 느낌이네요.”
-진짜 ㅋㅋ 원주민이 해줄 말 같았음
-주인이 아니라 친구다 크으……
-락앤롤이 이런 디테일이 좋음 ㅋㅋ
-지금 그냥 말 타는 것만 봤는데 재밌어 보임
-아니 ㅋㅋ 풍경이 너무 개사기네
-그냥 휴양이라 생각하고 게임 해도 될 듯 ㅋㅋㅋ
이경복은 시청자들과 짧게 잡담을 나누며 마을로 향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웃을 수 없었다.
“어?”
언덕 아래로 보이는 마을의 모습이 사뭇 달랐다. 이경복은 물론 시청자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 다 타버린 거?
-갑자기 왜 이렇게 됨?
-이런 무친 ㅎㄷㄷ
-빌리는!?
몇 채 되지도 않은 건물들이 까맣게 그을려 마을이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이경복은 다급히 박차를 가했다. 마을이 가까워지니 더욱 참혹한 풍경이 드러났다.
“아니, 이게……”
이경복이 무어라 말해야 할지 당황하는 사이 통제권이 사라졌다.
알렉스는 바들바들 턱을 떨면서 말에서 뛰어내렸다.
“빌리? 빌리!”
보안관 사무소는 그나마 형태가 온전한 건물 중 하나였다. 그는 거칠게 문을 열어젖혔다.
“빌리……?”
알렉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감옥을 살폈다.
-아 제발……
-초장부터 스토리 너무 매운데
-설마 아니겠지
이경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신기를 통해 결과를 짐작했다.
감옥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 어디로 간 거지?”
“손들어!”
안도와 더불어 당황한 알렉스의 뒤쪽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말끔한 양복을 입고 총을 겨눈 남자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그래도 착한 쪽이네.’
이경복은 그들의 기운을 읽어내고 속으로 안도했다.
“우리는 프레스턴 탐정 사무소 요원이다. 당신은 누구지?”
“탐정……?”
“질문은 우리가 했다. 정체를 밝혀라!”
-탐정?
-빌리 보호하고 있는 거 아님?
-얘들도 가짜 아녀?
-아니;; 설마 통수를 또 치겠냐고
시청자들은 그들의 정체에 대해 헷갈려 했다. 알렉스도 그와 비슷한 이유로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설명했다.
“제 이름은 알렉스 캘러한, 이 마을의 보안관입니다.”
“보안관이라고?”
요원이 동료에게 눈짓하자 그는 수첩을 뒤적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과 인상착의가 일치합니다.”
“이런, 실례했습니다.”
그들이 사과하며 경계를 풀자 알렉스가 바로 입을 열었다.
“혹시 여기 있던 제 아들 못 봤습니까? 이름은 빌리고 저처럼 금발 머리에 키는 제 어깨 정도 옵니다.”
그의 말에 요원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모자를 벗었다.
“아, 음……”
“알렉스 씨, 정말 유감입니다.”
“저희가 왔을 때 이 마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불타버린 시신들뿐이었죠……”
알렉스는 천천히 눈을 껌뻑였다.
그 말을 부정할 기운조차 없는지 천천히 고개만을 내저었다.
“시신을 수습하는 게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훼손이 심해서 아드님이 어디에 묻혔는지는……”
“애도를 표합니다.”
알렉스의 눈동자가 클로즈업됐다.
그 동공에 사무소 창문 너머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 나무를 꺾어 만든 십자가들이 비춰졌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아니,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알렉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는 아내에 이어 자식마저 잃었다. 아들과의 마지막 대화가 무엇이던가. 좀 더 반성하라는 설교가 전부였다.
-와, 이건 진짜……
-평생 후회 속에서 살겠네
-감옥에 가두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도망쳤을 테니까
-스토리 아주 빡세고 ㅠㅠ
-(눈물콘)(눈물콘)(눈물콘)
채팅창도 안타까움과 눈물로 가득해졌다.
그 사이 탐정들이 그에게 다가갔다.
“아마…… 하이어드 건 놈들 짓일 겁니다.”
“마을 하나를 이렇게 만들 정도의 무법자들은 많지 않아요.”
“저희는 그 갱단을 추적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말에 알렉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하이어드 건.”
그가 작게 이름을 곱씹자 가짜 보안관이 그의 배지를 뜯어 내던진 장면이 오버랩됐다.
-헐?
-와씨 갱단 놈들이 배지 보고 찾아온 거네
-그 짜가쉑들이 금괴 훔쳐갔잖슴!
-알렉스랑 마을 사람들이 가져간 줄 알고 습격한 거?
-오 맞네 ㅅㅂ
알렉스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러나 그 활기의 연료는 분노였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주먹 쥔 손에서 배어 나오는 핏물이 그 증거였다.
그는 탐정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했다.
“연방보안관을 사칭? 다른 갱단인가?”
“그렇다면 하이어드 건은 놈들을 뒤쫓고 있겠군요.”
“혹시 놈들의 얼굴은 기억하십니까?”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분노를 억누르는 그 음성에 탐정들은 흠칫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협조를 청했다.
“알렉스 씨, 저희를 도와주면 놈들을 더 빨리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인상착의를 설명해 주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알렉스는 그리 말하고 일어섰다. 그리고 사무소 바닥을 더듬다가 판자 하나를 뜯어냈다.
그 아래에는 흙 묻은 달러 뭉치와 리볼버, 그리고 탄약이 숨겨져 있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알렉스는 돈과 리볼버를 챙기고 탄환을 채워 넣었다.
“놈들은 내 손으로 잡아야 합니다.”
그 말과 함께 철컥하며 리볼버 실린더가 장착됐다.
이윽고 암전되는 화면.
[Prologue - Alex Callahan]
[End]
프롤로그의 끝을 알리는 문구가 나타났다.
-와 ㅅㅂ 몰입도 미쳤고
-중간에 나도 모르게 숨도 안 쉼ㅋㅋㅋ
-난 알렉스 울 때 좀 찔끔함 ㅠ
-이게 로데리지!
-진짜 로열, 데스퍼레이트, 리벤지 다 들어가 있음 ㅋㅋㅋ
-시작부터 동기부여 개빡세다 진짜
-이웃에다가 아들까지? 이건 무적권 복수해야지
그와 함께 채팅창도 격동했다. 이경복도 이에 공감했다.
“와, 저도 동감인 게. 중간에 물리작용까지 다 느끼고, 마을 사람이랑 얘기도 해 봤잖아요? 그러니까 몰입도가 진짜 남다릅니다.”
이경복은 탄사를 흘리며 바로 다음을 눌렀다.
[Chapter 1 - Private Detective]
[몇 개월 후]
문구가 사라지며 시야가 바뀌었다. 알렉스는 웬 건물 뒤편에 서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탐정의 의무와 이론은 충분하시군요. 이제 마지막 심사만이 남았습니다.”
옆에 있던 남자의 말에 이경복과 시청자들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 갑자기 왜 몇 개월이 건너뛰나 했더니 ㅋㅋ
-탐정 사무소 들어간 거?
-빠른 진행 좋고좋고
프롤로그 이후로 알렉스는 사무소에서 교육을 받은 것이다. 남자, 심사관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희 사무소는 알렉스 씨처럼 귀중한 인력을 잃지 않기를 원합니다. 무법자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시선을 돌려 서로 다른 거리와 위치에 배치된 표적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 시험 결과에 따라 요원 등급이 결정될 겁니다. 제 지시를 잘 듣고, 목표를 찾아서 사격해 주십시오.”
-아 ㅋㅋ 사격 튜토네 ㅋㅋㅋ
-이거는 뭐 ㅋㅋㅋㅋㅋ
-갓플한테 사격을 알려준다?
-물고기한테 헤엄치는 법 알려주는 거 아님?
-장인해부학도 아닌데 그냥 프리패스지 ㅋㅋㅋ
-프리패스? 퍼펙트-패스가 맞는 표현이다 이말이야
시청자들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통제권을 되찾자마자 이경복은 심사에 응했고.
“3, 오. 7, 맙소사. 11, 허어……”
심사관은 숫자와 감탄을 번갈아 터트리며 눈을 크게 떴다. 지시와 동시에 표적지 정 중앙이 뚫렸기 때문이었다.
이내 그는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제가 수많은 예비 요원의 심사를 봤지만, 이토록 정확하고 빠른 사격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솜씨라면 어떤 총잡이가 와도 문제가 없을 것 같군요.”
“칭찬 감사드립니다.”
“예의까지 바르시다니, 이런 신사분이 명사수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겁니다.”
심사관은 웃음과 함께 뭔가를 끄적이고는 눈을 굴렸다.
“알렉스 요원이라면 제가 등급을 정하는 게 아니라 직접 선택하는 쪽이 더 좋겠군요.”
-오? 원래는 알아서 결정해줌?
-ㅇㅇ GAT도 자동으로 조절됨
-게임 도중에 안 죽으면 난이도 올라가는 식임 ㅋㅋㅋ
-근데 갓플은 너무 쩔어서 니 맘대로 해라 인 듯 ㅋㅋㅋ
그는 그리 말하고는 펜과 종이를 이경복 쪽으로 돌렸다.
[프레스턴 탐정 사무소]
[요원 – 알렉스 캘러한]
[등급]
[수습 ( )]
[입문 ( )]
[일반 ( )]
[전문 ( )]
[달인 ( )]
이에 시청자들은 이경복의 선택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웃으며 펜을 움직였다.
[달인 (V)]
[해당 난이도는 최고난이도로, 게임 도중에 바꿀 수 없습니다. 확실하십니까?]
[(첫 플레이는 일반 등급 이하를 추천드립니다.)]
체크와 더불어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게임이 쉬우면 재미없죠?”
이경복은 망설임 없이 확인을 눌렀다.
그 결정에 시청자들은.
-아 ㅋㅋ 1회차부터 최고난이도는 넘모 당연하고?
-여윽시 퍼자감이다 이말이야
-달인이 달인을 선택하는 데 무슨 문제라도?
-달인 수준은 너무 저평가라 오히려 불만이쥬?
-ㄹㅇㅋㅋ ‘갓’플이 달‘인’이 될 수가 있나
-갓플의 실력을 담기에는 인간의 기준이 너무나 작다 이말이야
-킹직히 신급이 있었으면 그거 골랐음
오히려 더 어려운 난이도가 없다며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