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223화 (223/491)

223화 - 워라밸을 위하여

심야, 모두가 깊이 잠들 시각.

최병훈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어흐……”

그는 한가득 쌓여 있는 에너지 드링크를 하나 따서 목을 축였다.

‘일단 편집 하나는 끝났고……’

힐끗 시간을 확인해 보고 코끝을 찡그렸다. 평소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도 이번 컨텐츠는 특히 중요하니까.’

단순히 광고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개발사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이번 거는 분명 북미 쪽 시청자에게 먹힌다.’

이번 컨텐츠, ‘로열 데스퍼레이트 리벤지’는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국내보다는 해외 시청자들이 더 좋아할 만한 게임이었다.

때문에 최병훈은 계약이 체결된 시점부터 해외 큐튜브 영상의 스타일을 분석했다.

‘그냥 보는 것도 아니고 멤버십 가입자들이 볼 영상이니.’

일반적인 큐튜버들의 멤버십 가입자들은 대부분 진성 팬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퍼플 채널은 상황이 달랐다.

‘이제 구독 갱신 시점이니까 더 신경 써야 해.’

데몬 머스트 크라이부터 시작해서 미친스머프 대회까지 약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그 말인 즉, 당시 유입된 큐튜브 멤버십 가입자들이 멤버십 연장을 할지 결정할 시기가 됐다는 뜻이었다.

‘대한이 말로는 무조건 따라오는 분위기라고는 했지만…’

멤버십 영상의 댓글들은 전부 호평일색이었다. 조대한은 이에 기뻐하기만 했지만 최병훈은 달랐다.

‘막상 지갑을 열 때가 되면 이성이 돌아오는 게 사람이지.’

구독제 서비스 이용자들의 특성이 그러했다. 하물며 넷플렉스와 같이 많은 신규 콘텐츠가 추가되는 플랫폼도 재구독률로 고생하지 않나.

‘멤버십 영상은 더 차별화 되어야 유지가 된다.’

내용으로만 따지고 보면 일반 영상과 멤버십 영상은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차별점으로 내세운 건 ‘더빙’이었고, 미친스머프에서는 이경복의 시점으로 다시 차별화를 했다.

‘이번에는 북미 감성에 맞춰야지.’

단순히 유지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시청자를 모을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번 컨텐츠는 해외 시청자를 끌어모을 기폭제가 될 수 있었다.

“좋아쓰!”

최병훈은 마음을 다잡으며 빈 캔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팅 하는 쇳소리와 함께 모서리를 맞고 캔이 바닥을 굴렀다.

“에이씨, 이것도 못 넣네.”

그는 캔을 쓰레기통에 넣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PC톡에 알림이 떠 있었다.

그 상대는 매드거너 채널의 운영자, 매드맨이었다.

[>갓플 복귀 하는 거 아니었음?]

[>광고 보고 설렜는데 로데리만 함?]

[>그래도 풀영상 보고 바로 안심함!]

[>로데리가 이번에 진짜 잘 나왔음!]

[>혹시 이번에는 보조 편집자 안 구함?]

최병훈은 이에 실소를 흘렸다.

‘하긴 따지고 보면 얘가 좋아하는 건 거그가 아니지.’

매드맨은 거너그라운드 전문 영상 편집자로 알려져 있지만 친분이 있는 최병훈은 그 이상을 알고 있었다.

‘하여간 총이라면 눈이 돌아간다니까.’

매드맨의 관심 분야는 엄밀히 말하면 ‘총기’였다. 거너그라운드 채널을 운영하는 건 FPS게임의 대명사와 같기 때문이었다.

이경복이 총을 사용하는 게임을 시작하니 바로 달려드는 게 분명했다.

‘도와주면 빨리 끝나긴 할 것 같긴 한데……’

최병훈은 눈을 굴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이번에는 좀 경우가 달라. 검수하고 피드백하면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도.’

매드맨의 실력이야 인정하는 바였지만 그 스타일은 달랐다. 혼자 하는 편이 더 빠를 것 같았다.

이에 그는 답장을 보냈다.

[>그 정도로 빡세진 않아서 ㅋㅋㅋㅋ]

[>대신 나중에 필요해지면 1순위로 연락해줌]

기다리고 있었는지 매드맨은 곧장 답장해왔다.

[>아…]

[>ㅇㅋ 알았음! 대기하겠음!]

[>필요하면 바로 연락 줘야 됨!]

글자에서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최병훈은 다시 편집을 시작했다. 조대한이 보내준 스크립트로 만든 더빙 영상이었다.

‘약간 밀리네.’

한껏 진지해진 표정으로 그는 영상 속 입모양과 들리는 음성을 비교했다.

완벽은 언제나 디테일로 결정된다.

‘조금만 더.’

다시, 또다시.

그는 심혈을 기울였다.

* * *

다음 날.

최병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으어……?”

비몽사몽한 와중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쾅쾅쾅하는 소리가 현관 쪽에서 들려왔다.

“어우……”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소음에 절로 짜증이 치솟았다.

이내 그 소음은 삐빅거리는 전자음으로 바뀌었다.

최병훈이 힘겹게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는 사이 문으로 누군가 들이닥쳤다.

“병훈아!”

“야, 최병훈!”

“편집자님!”

그의 두 친구와 조대한이었다.

“뭐……”

최병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반쯤 뜨인 눈을 억지로 붙들었다. 그제야 사람들의 표정이 보였다.

모두 걱정이 한가득한 얼굴이었다.

“너 괜찮냐?”

“열 같은 건 없어?”

“어우, 다행이네요.”

최병훈은 손을 흔들어 이마를 짚는 박주호의 손을 떼어냈다.

“아니, 뭐… 갑자기 뭔데……”

목이 까끌거렸고 속도 좋지 않았다. 최병훈은 힘겹게 목소리를 냈다.

“너 지금 몇 시인 줄은 아냐?”

박주호가 짧게 한숨을 뱉으며 물었다. 그 물음에 철렁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

창문으로 들어오는 쨍쨍한 햇빛, 그리고 평소와 달리 더 기울어져 있는 그림자.

“회의 시간은 됐는데 안 오셔서 기다리다가 연락까지 안 받으셔서 급히 찾아온 거예요.”

조대한의 설명으로 그는 상황을 파악했다. 최병훈은 질겁하며 스마트 링크를 찾았다.

[부재중 통화 – 27건]

커다래진 동공은 갈피를 잃었다.

“어, 어어… 진짜 미안하다. 아니, 분명히 알람을 10개나 맞춰뒀는데……”

그리 말하던 도중 최병훈이 벌떡 일어났다.

“자, 잠깐! 욕해도 좋은데 나중에! 지금 편집해야 돼!”

원래는 회의를 끝내고 하려고 했던 분량이 남아 있었다. 그가 급히 컴퓨터로 가려 하자 이경복이 그를 제지했다.

“야야, 괜찮아. 일단 좀 앉아서 쉬어.”

“아니……”

“그거라면 매드맨 님한테 넘겼다.”

“뭐라고?”

박주호의 말에 그가 눈을 돌렸다.

“야, 그걸 왜 네 멋대로……!”

“멋대로가 아니라 일정 관리는 매니저의 일이다. 그게 싫었다면 네가 시간 관리를 제대로 했어야지.”

발끈하는 최병훈에게 박주호는 못마땅한 눈초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이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이건 경복이의 결정이기도 하고.”

어물거리던 최병훈의 입이 닫혔다. 딱딱해진 분위기에 이경복은 두 친구를 번갈아 보며 중재에 나섰다.

“야, 얘가 뭐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냐. 대한 씨한테 얘기 들었어. 거의 아침까지 영상 검수했다며?”

“저는 아침에 일어나셔서 톡하신 줄 알았어요.”

조대한이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경복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노력해 주는 건 진짜 고마워. 그런데 그렇다고 이렇게 잠까지 줄이진 말자고 했잖냐. 이러다가 진짜 너 탈난다니까? 이러려고 우리가 멤버십하는 거 아니잖아.”

“죄송합니다. 제가 더 스크립트를 빨리 전달했어야 되는데……”

조대한이 오히려 죄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아뇨, 대한 씨 잘못은 아니에요.”

“저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보조편집자를 썼고.”

두 친구의 말에 최병훈은 고개를 숙였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병훈아.”

“어……”

“이번 로데리 방송은 전부 보조편집자 쓴다. 이거는 사장으로서 내린 결정이야.”

이경복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슬슬 프리랜서가 아니라 정식으로 편집팀을 만들어야 할 때인 것 같기도 해.”

“정식으로? 직원을 뽑겠다고?”

이번만큼은 최병훈도 침묵할 수 없었다. 그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선고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판단을 부정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본인에게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최병훈, 너는 너무 감성적이야. 지금 우리는 네가 부족하다고 질타하는 게 아니야.”

박주호가 최병훈의 표정에서 그 생각을 읽어냈다.

“오히려 네가 가진 역량이 필요하니까 보조편집자를 구하는 거지.”

“그래. 지금 너 없으면 퍼튜브는 완전히 멈춰 버린다고.”

이경복이 옅은 미소와 함께 동의했다.

“처음부터 말했지만 편집은 모두 너에게 맡길 거야. 보조편집자 후보도 전적으로 네가 선정할 거고, 시기도 네가 정해. 전부 네 실력을 믿으니까 맡기는 거다.”

최병훈은 그 말에 마른세수를 했다. 기분이 무척이나 복잡했다.

“하, 그래…… 일단 고맙다.”

그는 제 뺨을 세게 두들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진지하게 고려해볼게. 제일 중요한 건 결국 방송이 잘 되는 거니까. 아무튼,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

다시 돌아온 그 표정에 이경복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 그러면 밥이나 쏴라. 밥 먹고 회의하자.”

“사장이 직원한테 밥을 쏘라니? 이거 컨셉에 너무 심취한 거 아니냐고!”

최병훈도 이에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그 와중 박주호가 진지하게 말했다.

“피자 어떠냐. 이번에 스위티즈랑 콜라보해서 포토카드를 주는 데가 있는데.”

조대한은 그 세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이경복의 팬 중에는 잘 나가는 사람도 많지만.

‘이게 진짜 B컷이지.’

자신이 가장 성공한 사람이었다.

* * *

영상편집자, 매드맨의 집.

방 양쪽에 세워진 찬장에는 모두 총기로 가득했다. 물론 진짜 총이 아닌 모델건이었다.

권총부터 시작해서 자동 소총은 물론 저격소총과 산탄총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콜트 싱글 액션 아미…… 아주 클래식하네.’

매드맨은 모니터 속 이경복이 들고 있는 리볼버를 보며 미소 지었다.

‘역시 자동권총과는 또다른 맛이 있다니까.’

영상 속 울려 퍼지는 총성이 가슴을 뛰게 했다. 매드맨에게 있어 그 소리는 감미로운 음악과도 같았다.

‘이번 방송으로 사람들이 리볼버에 대해 좀 관심을 가져주려나?’

매드맨은 자신이 빠진 총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총기 관련 큐튜브 영상을 제작했다.

하지만 그 영상은 주목받지 못했다. 자신과 같은 매니아들로부터 인정은 받았지만 그것은 원하는 바와 달랐다.

그래서 더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매체, 게임을 선택했다.

“하, 내가 총만 잘 쐈어도……”

그러나 아쉽게도 그 실력은 총에 대한 애정의 티끌만도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매드맨은 노선을 바꾸어 ‘총을 잘 다루는 사람’을 조명해주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먹고살 만한 수입도 얻고 총기에 대한 매력도 그럭저럭 전파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았다.

‘그래도 갓플을 만나서 다행이야.’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눈앞에 있는 이 스트리머의 플레이를 보고 기준이 달라졌다.

‘방아쇠는 당겨져야, 총알은 총구를 떠나야 의미가 있지.’

도구는 사용되어야 그 진가를 발한다. 아무리 멋진 총이 있더라도 그걸 잘 다루지 못하면 무의미했다.

이경복은 매드맨이 느끼는 총기의 매력을 100%, 아니 그 이상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게 진짜 예술이지!’

박한 평가를 받는 총기라도 그의 손에 쥐어주면 걸작이 된다. 심지어 엉망진창으로 개조한 총마저 완벽하게 사용하지 않나?

‘락앤롤이 어떤 개발사인데, 이 스펙은 실제로 적용되는 걸 거야.’

매드맨은 황홀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명중률 최하와 탄속 최고로 개조된 볼트액션 라이플로 저격에 성공하는 장면은 몇 번이고 봐도 전율을 느끼게 했다.

“개쩐다 진짜.”

매드맨은 만족스럽게 편집을 마치고 영상을 보냈다. 최병훈이 검수를 마칠 때까지 다각도로 이경복의 활약을 감상했다.

[>오케이! 땡큐!]

[>검수 이상무!]

도중 떠오른 톡.

최병훈의 답장이었다.

매드맨은 방긋 웃음 지었다.

그리고 이내 이어지는 톡에 그 웃음은 더욱 커졌다.

[>역시 확실히 총만 관련되면 포텐이 터지네ㅋㅋㅋ]

[>이번 로데리 방송 전부 도와줄 수 있음?]

또 다른 영상을 맡기겠다는 내용에 바로 답장을 하려는 찰나였다.

[>대신 지금도 좋은데 다음부터는 완전 빡세게 가능함?]

[>다음부터는 나만 검수 하는 거 아니고 퍼플도 같이 볼 거라서.]

곧바로 이어지는 톡에 매드맨의 눈이 크게 뜨였다.

답장은 이모티콘 하나로 충분했다.

[>(당근빳다죠쉬바!)]

이경복의 영상이라면 이미 모든 노력을 쏟아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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