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 수취인 불명의 편지 (1)
이른 저녁, 미국 시각으로는 해가 뜬 시간.
퍼플 큐튜브 채널에 새로운 멤버십 영상이 올라왔다.
[-퍼플의 로데리 영상이 드디어 올라왔네!]
[-퍼펙트 카우보이는 지나칠 수가 없지!]
[-나는 과연 퍼플이 서부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돼]
[-lol, 그는 타고난 총잡이라고!]
새로운 영상을 기다리던 가입자들은 즉시 영상을 시청했다. 이윽고 댓글은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퍼펙트 보이스는 정말 미쳤어!]
[-알렉스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리는데?]
[-옴므파탈이 바로 이런 거지!]
[-멤버십 연장은 선택이 아니야, 필수지!]
극찬으로 가득해지는 댓글들.
그러나 개중에는 몇몇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번 영상은 조금 다른데?]
[-편집자가 색다른 도전을 한 것 같아!]
[-나도 동감이야. 영상별로 스타일이 달라졌어!]
[-Lmao, 편집자도 엄청난 능력자잖아?]
영상별로 연출이 상이했기 때문이었다.
[-열차 강도는 마치 영화 같았어!]
[-퍼플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연출이 아주 좋았지!]
[-lol, 열차 밖에서 창문으로 보는 구도는 아주 멋졌어!]
[-한 편의 서부영화를 보는 기분이었지. Bang Bang!]
[-탑 뷰로 한 번에 볼 수 있는 건 탁월한 선택이었어! 그 강도들이 한 번에 쓰러지는 모습이라니!]
먼저 올라온 열차 강도 상대씬은 전체적인 장면과 속도감 위주였다.
카메라가 열차 밖에서 이경복의 활약을 보여 주거나, 탑 뷰로 전체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줬다.
덕분에 이경복이 다수를 상대로 얼마나 잘 대처했는지 알 수 있었다.
[-퍼플은 정말 엄청난 저격수야. 대체 그 총으로 어떻게 한 거지?]
[-WTF? 보자마자 이 소리가 나왔지. 탄환 카메라로 봐도 엄청난 속도였잖아?]
[-lol, 만약 그 모습만 달랐다면 레이저 라이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슬로우 모션이 없었다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거야.]
그러나 숲속에서 갱단을 저격하는 장면은 연출이 달랐다. 총알을 따라가는 카메라 연출과 슬로우 모션으로 근접 촬영이 잦았다.
[-퍼플의 실력은 좁은 장소에서 더 빛이 나지!]
[-그는 CQC를 배웠을 지도 몰라]
[-내가 알기로 그는 군대 복무 경험이 있어. 한국 남자들은 대부분 그렇지]
[-Damn, 이럴 줄 알았어! 한국인들이 괜히 FPS를 잘 하는 게 아니라니까?]
[-lol, 그는 특수부대 출신인 게 분명해.]
또한 랭카스터 저택의 총격전은 이경복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의 손과 발을 중점적으로 클로즈업 해 액션과 속도감을 강조했다.
한 방송 내에서도 서로 다른 연출에 시청자들은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거 혹시 편집자가 둘인 건 아닐까?]
[-몇 명이든 모든 편집자는 퍼플의 곁에 있을 만한 실력을 갖췄어!]
[-동의해. 퍼플은 이제 한국만의 스트리머가 아니야. 그 규모를 생각하면 혼자일 리가 없지.]
[-lol, 놀랍게도 그는 어떤 회사 소속도 아니야.]
[-WTF? 이 정도의 스트리머를 지원해주는 회사가 없다고?]
[-인터뷰 영상을 다시 보면 알 거야. 그는 친구들과 함께 채널을 운영해!]
서로 다른 스타일의 영상이었지만 불만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최병훈과 매드맨이 심혈을 기울였기에 그 완성도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FXXK!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Lmfo, 다음 생을 노리라고 친구.]
[-퍼플의 곁에 있으려면 단순히 친구가 되는 걸로는 부족하지.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없어]
[-퍼플부터 엄청난 노력파라고. 이 몸을 봐! 이건 진짜 그의 몸이라고!]
[-프리셋이 아니야?]
[-퍼플은 몰입도를 최고로 설정하지. 그건 캐릭터의 몸이 그의 몸이라는 걸 의미해]
[-Wow, 이제 보니 진짜 미국인보다 퍼플이 서부시대에 어울리는데? 미국인들은 거의 전부 비만이라고!]
[-lol, 완전히 동의해! 미국 캡슐의 크기 규격은 다른 나라보다 5단계나 더 많지]
[-그 비대한 몸으로 서부시대에 가면 바로 죽을 거야.]
아무리 편집 실력이 좋아도 그 원본이 나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컷신 모음을 보며 시청자들은 그 사실을 다시금 상기했다.
[-진정한 팬이라면 퍼플을 본받아야 해.]
[-동의해. 우리는 완벽, ‘Perfect’에 가까워져야 해. 그게 진짜 삶이잖아?]
[-lol. Practice Makes Perfect. 퍼플에게 아주 알맞은 말이지.]
[-Shit, 아직 한국어 교재도 안 도착했는데! 메이비존에 운동 기구를 추가로 주문해야겠어!]
[-나중에 퍼플이 운동법을 올려주면 좋겠어. 퍼펙트-루틴으로 말이지]
[-이런 해시태그는 어때? ‘#Be The Perfect’. 한국어 공부와 운동 영상에 붙여서 공유하자!]
[-Wow, ‘BTX’에 이어서 ‘BTP’가 인기를 얻겠네]
[-#BTP, 마음에 드는데?]
좋아하는 사람과 닮고 싶은 마음.
그것은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 * *
다시 찾아온 방송시간.
이경복은 치솟는 시청자 숫자를 보며 의아해했다.
‘거의 2배가 됐네?’
1일 차에는 시청자가 약 1만 명을 기록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1.8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와있었다.
‘따로 뭘 했나? 아닌데?’
이렇다 할 원인으로 떠오르는 건 없었다.
이경복은 이내 그 해답을 채팅창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 사람 미어터지네 ㅋㅋㅋ
-이제 스포 걱정 없어서 그렇다 이마리야
-첫날 생방 놓친 거 동서남북으로 울부짖으며 후회 중임 ㅠ
-본방사수 딱 대!
-맘 편하게 걍 무법 성향 가면 됨ㅋㅋㅋㅋ
-갓플 방송 놓치기 vs 무법자되기
-무적권 닥후쥬? 완전 밸붕이쥬?
첫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토리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시청을 자제했다. 하지만 커뮤니티를 통해 스토리 전개가 플레이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뀐다는 게 알려진 결과 안심한 사람들이 다시 라이브 방송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킹직히 자유선택을 누가 따내냐고 ㅋㅋㅋ
-ㄹㅇㅋㅋ 퍼펙트-전개는 갓플 방송에서만 볼 수 있음
-해외 스머 중에도 아직 자유선택은 없던 듯?
-WA! 다회차 플레이!(1회차임)
-자유(트수한테는 아님)
게다가 자유선택을 얻어낸 건 오직 이경복뿐이었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플레이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장면들, 방송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들을 보기 위해 본방사수를 택했다.
‘그럼 원래 시청자 숫자가 이 정도였다는 거네.’
채팅을 통해 상황을 파악한 이경복은 안심했다. 이에 그는 앞으로 나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자, 오늘은 2챕터를 플레이할 차례네요! 그럼 바로 항구도시, 뉴 누아르로 가보죠!”
간단히 잡담을 마친 그는 게임을 시작했다.
[Chapter 2 – Lady Helen]
문구와 함께 시야가 서서히 밝아졌다.
“오, 바로 항구네요.”
이경복은 탄사를 뱉었다.
푸른 바다와 수평선, 정박한 선박들과 화물을 나르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엌ㅋㅋ 화면에서 짠내 날 거 같음
-바다냄새 RGRG
-생각보다 규모가 크네?
-괜히 도시가 아니자너 ㅋㅋㅋ
-개척시대 배경이라 항구가 먼저 발달할 수밖에 없음
-건물도 나무가 아니라 벽돌로 잘 지어놨음 ㅋㅋㅋ
항구에 이어 도시의 전경이 펼쳐지자 시청자들도 감탄을 표했다. 챕터 1의 장소도 크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마을’에 불과했었다.
보다 현대식에 가까워진 건물들과 그 많은 숫자는 ‘발전’의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내 열차에서 알렉스가 내렸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자를 고쳐 썼다.
-크으…… 분위기 미쳤고?
-아아, 퍼펙트-탐정의 등장이랄까?
-하이어드 건 쉑들 딱 대!
-복수의 때가 왔다!
시청자들은 그에 기대를 내비쳤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여의치 않았다.
[몇 주 후]
화면이 암전되며 나타난 문구와 함께 컷신이 시작됐다.
벌컥 문을 연 알렉스는 사무소 관리인을 바라보았다. 관리인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도 별다른 소식이 없습니다.”
그 말에 이경복과 시청자들은 상황을 눈치챘다.
“아직 편지를 발견 못 했나 보네요.”
-아 맞네. 편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니까
-무한대기 ㅎㄷㄷ
-그래서 몇 주가 지난 거임?
-그래도 게임이니까 이제 도착할 때가 된 거 아니겠음?
-ㄹㅇㅋㅋ 실제로 기다려야 되면 개빡칠 듯
알렉스는 목표인 레이디 헬렌의 편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의 실망한 표정에 관리인이 미간을 찡그렸다.
“혹시 정보가 잘못된 건 아닐까요?”
“잘못? 무슨 뜻입니까?”
“그 랭카스터라는 놈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프레스턴 탐정 사무소나 연방보안청이나 죽은 무법자에게 휘둘리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몇 주간의 기다림에 지친 것인지 관리인은 회의적인 어투였다.
-헐? 설마?
-아주 킹능성이 없지는 않은데……
-마지막에 빅엿을 선사했다 그말인가?
그 말에 몇몇 시청자들이 놀랐다. 하지만 이경복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굳이 그렇게 꼬아봤자 재미보다는 불쾌함만 생기지.’
그리고 그와는 다른 이유로 알렉스도 그 의견을 부정했다.
“랭카스터는 그 정보를 밝히고 목숨을 구걸했습니다.”
“네?”
“만약 살려고 거짓말을 했다면 먼저 거래를 제안했을 겁니다. 반대로 우리를 엿 먹이려고 했다면 이미 죽음을 각오했을 테고.”
-오 ㅋㅋ 맞네
-서순이 문제라 이말이야
-하긴 ㅋㅋㅋ 엿먹이고 살려달라고 하는 건 좀 이상하긴 해
관리인의 말이 옳다면 랭카스터의 행동은 부자연스러웠다. 시청자들은 물론 관리인도 납득했다.
“과연…… 거짓말일 가능성은 적다는 거로군요. 그렇다면 하이어드 건 놈들이 신중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네요.”
“어쩌면.”
관리인의 대답에 알렉스의 눈이 예리해졌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뜸을 들이자 관리인은 물론 채팅창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왜 그러십니까?”
“어쩌면 이미 편지가 도착했을지도 모릅니다.”
“예?”
이내 그의 입이 열렸지만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커졌다.
-이게 뭔 소리임?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편지가 왔는데 아직 모른다?
-사무소와 보안청이 무능하다?
-트수들 두뇌 풀가동!
채팅창이 의문으로 가득해지는 사이 알렉스가 입을 열었다.
“우체국을 감시하는 건 연방보안청이죠.”
“예, 저희 사무소는 결국 사설기관이니까요. 우편을 확인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프레스턴 탐정 사무소과 연방보안청은 하는 일이 비슷하지만 엄연히 성격이 달랐다.
우체국 조사, 우편물을 확인하는 건 공식기관인 연방보안청의 권한이었다.
“아, 이거 보안청도 정보 독점을 하려는 거 같은데요?”
이경복은 그 대화에 알렉스의 의도를 눈치챘다.
-오?
-와 맞네!
-프레스턴 쪽도 레이디 헬렌 정보 독점하려고 했잖슴!
시청자들의 반응과 동시에 관리인도 눈을 크게 떴다.
“보안청이 편지를 숨기고 있다?”
“그렇죠. 사무소 쪽에서는 편지가 왔는지 안 왔는지는 전적으로 보안청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예측한 전개가 이어지자 시청자들은 어처구니없어 했다.
-이 상황에 권력싸움 무엇?
-기싸움 미쳤고 ㅋㅋㅋㅋ
-근데 보안청에서는 좀 자존심 상하긴 할 듯 ㅋㅋㅋ
-ㄹㅇㅋㅋ 사법기관한테 정보 받고 수사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자너
-범죄자 검거보다 체면이 우선? 이거 완전?
-어허! 그마내!
-자~ 잠시 소란이 있었어요~
그 사이 관리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만약 그렇다면 사무소는 완전히 수사에서 배제될 겁니다. 그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해요.”
“뭔가 방도가 있습니까?”
“지금으로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3가지 정도로 압축될 것 같습니다.”
관리인은 그리 말하며 도시 지도를 가져와 펼쳤다.
“먼저, 그 의혹은 아직 증거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대기하면서 보안청의 협조를 기다리는 거죠.”
“흠……”
“달리 말하면 저희 쪽에서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우체국 관계자를 따로 심문해 보는 것도 방법일 겁니다.”
관리인은 지도에서 우체국을 짚으며 말했다.
“나머지 하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위험한 선택이죠.”
그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는 지도 중심에 있는 건물을 짚었다.
“연방보안청사, 그곳에 직접 들어가 자료실을 확인하는 겁니다.”
그의 말과 함께 컷신이 끝나고 통제권이 돌아왔다.
선택의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1번은 무적건 제외지 ㅋㅋㅋ
-그냥 대기 타는 건 보안청 뜻대로 되는 거잖슴!
-일단 스토리 전개는 되긴 할 것 같은데 ㅋㅋㅋ
-그래도 2번이 낫지 ㅋㅋㅋ
-ㄹㅇㅋㅋ 증거 잡아서 기강잡자
-근데 2번도 잘못하면 스토리 꼬일 듯?
-ㅇㅇ 심문하다가 보안청에 얘기 들어가면 어케 될지 모름
-갓플에게 ‘잘못’은 없습니다만?
동시에 쏟아지는 채팅에 이경복은 의아해했다.
“이건 듣자마자 3번 각 아닌가요?”
그로서는 1번과 2번은 고려조차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ㅔ?
-보안청사에 직접 들어가겠다?
-연방보안관들이 득실대는 곳인데요?
그에 시청자들이 황당해 했지만 그마저도 잠시였다.
이경복이 누구던가.
-이 형 또 이러네 또!
-어려울수록 오히려 좋아 ㅋㅋㅋ
-않잌ㅋㅋㅋㅋ 조금이라도 고민을 좀 해달라구욧!
-그거 어려움? 바로 고!
-무슨 척수반사냐고 ㅋㅋㅋㅋ
-퍼수반사 뭔데 ㅋㅋㅋㅋ
-아 ㅋㅋ 어려운 건 못 참지!
-갓플 방송은 이게 맞긴 해 ㅋㅋ
-이 스트리머가 어려움을 알까요?
어려울수록 흥미를 느끼는 남다른 취향을 지닌 스트리머.
그에게는 위험천만한 3번이야말로 이상적인 선택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