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 남돈남산 뒤풀이 (6)
이경복이 운을 떼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렸다. 그는 담담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외모에 관한 칭찬은 많이 들어봤습니다.”
그 첫 문장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경복이 그 일에 별 감흥이 없다는 건 가면으로 가려져 있지만 알 수 있었다.
“물론 칭찬이라는 걸 아니까 감사하는 마음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실감이 나지 않아요.”
신기를 통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즉각 느낌이 오는 이경복에게 있어 외모는 사람을 판단하는데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외면이 멀쩡해도 불쾌한 기운을 발산하는 사람들은 많이 봐왔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방송에서도 한 번 얘기했는데, 천재들은 자기가 천재인 줄을 모른다니까요.”
이에 지놈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이게 또 얼굴 천재여도 마찬가지라니까. 퍼기만이 또 이렇게 나와 버리네.”
-이거 맞말인게 얼굴 천재들은 거의 반응이 2가지임 ㅋㅋ 즐기거나 모르거나 ㅋㅋㅋ
-???: 나 정도면 평균 아닌가?
-누가 말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이쥬?
-후식이라더니 퍼기만 낭낭하게 퍼주고?
시청자들이 지놈의 말에 공감했다. 이경복은 실소를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기만하려는 거 진짜 아닙니다. 그리고 저도 학창시절에 교우관계가 그리 좋지는 않았어요.”
“퍼플 님이요?”
“완전 인싸셨을 것 같은데?”
이어지는 그 말에 모두가 물음표를 그렸다. 채팅창도 마찬가지였다.
이경복은 이에 멋쩍게 웃었다.
“지금이랑 다르게 낯가림이 많이 심했거든요.”
사실 신기로 전해져오는 느낌 때문에 사람을 가려 사귄 것이지만, 그걸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학창시절에는 제가 되게 조용한 편에 속했어요. 다른 학생이랑 잘 어울리지도 않고요. 그러다보니까 저를 좀 멋대로 평가하는 동창들이 많았습니다.”
“아, 나랑 약간 좀 비슷했구나.”
지놈이 공감하듯 고개를 주억거리자 이경복이 슬쩍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 근데 저는 학생 때도 꾸준히 운동을 해 와서 직접적인 괴롭힘은 없었어요.”
“크흠, 이 부분은 편집 부탁드릴게요.”
지놈의 말에 웃음소리가 흘렀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묻어가려다가 바로 후퇴해버리기 ㅋㅋㅋ
-아 ㅋㅋ 낄끼빠빠 좀 하시라고욧!
-응~ 클립 박제야~
-그러게 평소에 운동 좀 하지 그랬어 ㅋㅋㅋㅋ
이경복은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분위기 안 무거워지게 도와주려는 거구나.’
지놈은 눈치가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끼어들 이유가 없었다.
덕분에 지놈이 과거사를 밝힐 때와 달리 분위기는 부드럽게 이어졌다.
“아, 그런데 제가 알기로 지금 퍼플 님 매니저 분이랑 편집자 분이 실친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세영아버지가 적절히 이야기의 중심을 잡았다. 이경복이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두 친구는 편견 없이 저를 대해줬거든요. 만약 그 친구들 아니었으면 아마도 학교 다니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캬 ㅋㅋ 역시 팀 퍼펙트다 이마리야
-찐친은 킹정이지 ㅋㅋㅋ
-그런 좋은 친구들을 블랙기업에?
-헉
-이래서 친구랑 같이 사업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거였고?
-아니 ㅋㅋㅋ 그러면 진짜인줄 안다니깐!
이경복은 채팅창을 보며 웃다가 다시 주제로 돌아왔다.
“아무튼 요점은 이겁니다. 외모가 이점이 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시청자분들에게 ‘게임을 재미있게 하는 스트리머’로 받아들여지고 싶었습니다.”
“아, 순수하게 방송으로만 평가를 받고 싶었다.”
“네, 그렇죠.”
그의 대답에 주변 사람들 모두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단연코 최고라 생각되오.”
“진짜 다른 방송에서는 못 보는 게 막 쏟아지거든요! 이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퍼플 님 방송이 재미없던 적이 있긴 한가요?”
“저는 솔직히 퍼플 님 방송 재미있다는 건 이견이 없을 거라 봅니다.”
멤버들의 반응과 시청자들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킹직히 얼굴로 뜰 생각이었으면 남캠했겠지 ㅋㅋㅋ
-ㄹㅇㅋㅋ 지금 보니까 바로 세렝게티 가도 먹힐 비주얼 아님?
-사실 갓플 얼굴 보려고 방송 보는 건 아니긴 해 ㅋㅋㅋ
-우리가 원하는 건 이름 그대로 ‘퍼펙트 플레이’다 이마리야
-유일등급 스머 닉값 수준 무엇?
-진짜 갓플 정도 플레이 할 정도면 아바타 2D로 해도 됨 ㅋㅋㅋ
-그건 쵸큼;;;
-틈새 ㅆㄷ 쳐내!
채팅창 반응을 확인한 세영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자, 좋습니다. 약간 불편할 수 있는 질문인데도 답변 주신 점 다시 감사드립니다. 자, 이제 대회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그는 적절히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화제를 다시 전환했다.
* * *
세영아버지는 진심어린 감탄을 토했다.
“와, 제가 사실 시간 잡아먹을까 봐 자료 화면은 따로 준비를 안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대회 명장면이 뇌내재생이 자동으로 되네.”
-ㄹㅇㅋㅋ 그냥 말로만 하는데 바로 머릿속에서 튀어나옴
-그만큼 강렬하게 남아있다 이마리야
-아 ㅋㅋ 마스터리 듀크 솔플 어케 잊음?
-디에고 5연속 궁은 올타임레전드자너 ㅋㅋㅋ
-생방으로 보면서 진짜 소름 미쳤는데 ㅋㅋㅋ
-미친스머프 안 본 뇌 있으면 바로 산다 진짜 ㅋㅋㅋ
시청자들 역시 그와 같은 감상을 표했다.
“역시 퍼지데이다! 이 말밖에 안 나옵니다. 미스틱 리그 공식 채널에 박제 되는 이유가 다시 또 이해되네요.”
세영아버지는 만면 가득한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일어서서 방문을 열었다.
다른 멤버들이 뭔가 싶어 눈이 동그랗게 변했는데, 열린 문 너머로 큼직한 봉투들이 들어왔다.
“자, 이제 방송을 마무리해야 하는데요. 제가 또 귀한 게스트분들을 빈손으로 보낼 수가 없죠.”
세영아버지는 그들의 놀란 표정에 웃음을 흘리며 봉투를 하나씩 건넸다.
“아니, 이게 뭐예요?”
“아주 귀한 선물이구려!”
“밀키트?”
“어!? 이거 아부지 레스토랑 메뉴 아니에요?”
“밀키트 안 파실 텐데?”
그가 준비한 선물은 본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메뉴를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는 밀키트였다. 하지만 정작 레스토랑에서는 밀키트는 판매하지 않았다.
“아, 이거는 처음제당 협찬 아닙니다. 제가 따로 게스트분들을 위해서 만들어본 거예요. 뭐,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지만 포장만 따로 뽑은 겁니다. 그리고 저희 레스토랑 금액권도 같이 동봉되어 있고요.”
-WA! 비매품!
-아부지가 또 이런 건 잘하시지 ㅋㅋㅋ
-와 ㅋㅋ 진짜 돈 주고도 못 사는 거네
-아부지 레스토랑 예약제라서 진짜 오래 기다려야 되는데
-넘모 부러운 거시고요?
시청자들이 놀라는 사이 세영아버지는 또 뭔가를 가져왔다.
“아,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제가 같이한상을 하면 꼭 게스트 분들에게 받는 게 또 있죠? 바로 사인입니다! 제가 이걸 또 수집하는 취미가 있거든요.”
그가 가져온 건 사인지와 그것을 끼울 수 있는 작은 액자였다. 멤버들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각자 사인을 마치고 돌려주었다.
“와, 정말 감사히 먹겠습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비싸게 팔린 사인이네요.”
“설마 제 사인이 이런 쟁쟁한 분들이랑 같이 자리할 줄이야.”
세영아버지는 그들의 말에 장난스럽게 답했다.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도 더 성공하셔서 이 사인의 단가를 올려주시면 됩니다.”
-알고 보니 투자상품이었고?
-진짜 코인 타는 거였냐구웃!
-아 ㅋㅋ 노후자금 든든하다 이마리야
-하 ㅠ 사인하니까 방종각 보이네
-좀 더 놀다가아아아아!
채팅창은 웃음과 눈물이 공존했다. 사인과 선물 교환이 방송의 마지막 순서였기 때문이었다.
“자, 오늘 퍼지데이 팀과 함께한 같이한상 무척 즐거웠고요. 앞으로 또 좋은 기회 있으면 다시 만나 뵙길 바라겠습니다.”
“진짜 잘 먹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당분간 피‘골’이 상접할 걱정은 없겠네요!”
“그야말로 최고의 만찬이었소.”
“처음제당! 최고예요!”
“정말 즐거웠습니다. 트바!”
이클립스를 제외한 5명 모두 카메라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이내 카메라의 붉은 등이 꺼지자 사방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스태프들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비로소 촬영이 끝난 것이다. 그 사실에 다들 가볍게 숨을 뱉었다.
“아유,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촬영이 길지는 않은데 뭔가 진이 빠지네요.”
세영아버지와 퍼지데이 멤버들 모두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보통 오프라인 방송이면 회식을 했겠지만 먹방을 겸했던 터라 각자 발길을 달리했다.
“아, 퍼플 님.”
“네?”
도중 세영아버지가 이경복을 불렀다.
“이건 개인적인 부탁인데요.”
“아, 네네. 편히 말씀하세요.”
“제가 또 티어원 덕후라서요. 혹시 티어원 쪽이랑 또 자리하실 때 가능하시면 저도 좀……”
그 말에 이경복은 웃으면서도 의아해했다.
“티어원 합숙소 가셔서 요리도 해주셨잖아요?”
“에이, 그건 또 경우가 다르죠. 저는 제가 요청해서 찾아갈 수 있었던 거잖아요. 하지만 퍼플 님은 티어원이 찾는 분 아니십니까.”
“아하하, 알겠습니다. 기회가 되면 잊지 않고 얘기할게요.”
“제가 원래는 부담되시니까 이런 부탁 안 하는데, 또 특별한 경우라서요.”
“아유, 전혀 부담 아닙니다. 밀키트도 맛있게 먹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살펴가세요!”
이경복은 그의 배웅을 받으며 스튜디오를 나섰다. 이내 주차장에 가보니 픽업을 하러 온 박주호가 보였다.
‘응?’
그런데 박주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들도 이경복을 발견하고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 퍼플 님 오셨네요!”
“오늘 방송 정말 좋았습니다!”
두 사람은 처음제당의 관계자들이었다. 이경복이 웃으며 감사를 표하자 그들이 말을 이었다.
“매니저님께도 말씀 드렸거든요. 혹시 얼굴 완전히 공개하실 때 되시면 연락 한 번 주시면 좋겠어요.”
“저희 제품 라인에 다이어트나 건강을 생각한 것들도 많거든요. 괜찮으면 샘플도 좀 보내드릴까 해서요.”
“아, 네네. 감사합니다. 따로 연락 한번 드릴게요.”
이경복은 이에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두 사람은 그 말에 눈을 빛내며 자리를 떠났다.
“광고주가 꽤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명함도 받아 놨어.”
“그래? 다행이네.”
이경복은 웃으며 차에 탑승했다. 차가 출발하자 그가 입을 열었다.
“야, 오늘 보니까 확실히 오프라인 방송은 결이 다르더라.”
“결이라면?”
이경복 역시 캡슐 언박싱 때 오프라인 방송을 해본 적은 있었다.
“촬영에 필요한 스태프부터 장비까지 규모가 완전 다르네.”
그러나 본격적인 오프라인 방송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경복은 화면 밖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스태프들을 떠올렸다.
“팀 퍼펙트 직원 늘어나면서 나름 꽤 커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까 아직 멀었다는 게 느껴지더라.”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그래도 착실히 성장하는 건 맞다. 우리가 하는 일도 적지 않잖아?”
박주호는 이에 실소를 흘리며 자연스럽게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 쪽 이모티콘은 작가님께 메일로 제안을 드렸다. 아직 회신은 안 돌아왔고.”
“이모티콘 작가님이야 우리 직원이 아니니까. 본인 일정이 있으시겠지.”
“그래, 기한이 정해진 일은 아니니까. 오늘 촬영 영상은 끝나자마자 최병훈이 받아서 편집 중이다. 그래서 OTP 영상은 매드맨과 대한 씨가 맡아서 작업 중이야.”
그 말에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직원 늘어나니까 다방면으로 돌아가긴 하네. 확실히 성장하고 있긴 한 것 같다.”
“그렇다니까.”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경복은 창 바깥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야.”
“왜.”
“나도 지놈 형처럼 하면 유명세 이용하려는 사람들 차단할 수 있을까?”
이경복과 지놈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렇다면 그 대처도 비슷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박주호의 대답은.
“아니, 힘들 거다.”
부정이었다.
그는 가볍게 안경을 고쳐 쓰며 이유를 설명했다.
“지놈 님은 가해자의 잘못이 명확하다. 학폭위원회까지 열렸다면 물증도 충분하지. 하지만 네 경우는 달라.”
“그런가….”
“옆에서 본 나나 최병훈은 확실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자식들이 한 험담이나 퍼뜨린 헛소문은 제3자의 입장에서는 해석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
녹음하지 않는 이상 말은 뱉으면 사라진다. 결국 옛이야기를 꺼낼 때에는 기억에 의존해야 했다.
“그 자식들은 당연히 이렇게 말할 거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네가 오해한 거다’라는 식으로 적반하장으로 나오겠지.”
“으음…… 하기야 확실히 잘잘못이 가려질 일이었으면 문제도 아니었겠지.”
“그래, 결국 진흙탕 싸움이 될 거다. 물론 네 팬들은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겠지만, 방송에 잡음이 끼어드는 건 당연할 거다.”
이경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지놈 형이 얼공하는 거 보니까 약간 좀 부럽더라고.”
“부럽다니?”
“뭐라고 해야 하나, 한 걸음 더 시청자들에게 다가간 느낌?”
박주호는 그 말에 웃음을 흘렸다.
“급할 거 없다. 오히려 이후 지놈 님 활동 보면서 얼굴 공개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
“그건 그렇지. 지놈 형이랑 합방하면서 많이 배웠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것 같긴 해.”
이경복은 처음 합방을 반추했다. 생각해보면 지놈에게 배운 점이 많지 않나.
“나중에 나도 그렇고 이클 님도 얼굴 공개하면 오프라인 합방도 할 수 있겠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번에 잘 보고 배워야겠다.”
바라는 미래는 막연한 기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경복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