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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270화 (270/491)

270화 - 오프라인 방송의 여파 (2)

지놈의 방송.

그는 프라이버시 기능 없이 원래의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얘들아, 나 왔다.”

지놈은 가볍게 인사를 하며 실소를 흘렸다. 평소대로라면 잡담을 하며 시청자가 모이기를 기다렸을 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지하!

-혀엉! 반응속도 뭔데에에!

-오늘만큼은 우리형이 트최피다

-형! 화난 거 아니지?!

-너무 빨리 방송 킨 거 아님?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시청자 숫자가 폭증했다.

빠르게 올라오는 채팅에 지놈은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일단 제목은 이렇게 썼는데 원래 방송 또 하려고 했어. 얼공 첫날인데 그냥 끝나기 아쉽잖냐. 뒤풀이 방송도 좋긴 했는데 그래도 협찬이라 편하게 얘기를 또 못하니까.”

단순히 게시글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 시작한 방송은 아니었다. 그는 이내 짧게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생각지도 못한 글이 올라와서 말이지. 이거 먼저 대답해야 방송을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 뭔 내용인지 모르는 사람은 미안한데 트나잇가서 같이 띄워놓고 보든지 해, 따로 설명하면 더 시간 잡아먹으니까.”

-ㅇㅇ 그건 알아서 하는 게 맏찌

-나는 보자마자 화나던데 ㅅㅂ

-아직 형 대답 안 나왔는데 선 넘지 마라

-일단 ㄹㅇㅋㅋ 만 치라고

-괜히 나대지 말고 우리 형 말부터 들으라 이마리야

지놈은 올라오는 채팅을 보며 피식 웃고는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그 글이 진짜인지부터 알아야겠지?”

인증이라고 해도 이름은 가려진 앨범 하나뿐이었다. 관심을 받고 싶은 분탕일 수도 있지 않겠나.

이에 지놈은 먼저 확인을 거쳤다.

“앨범 그거 맞아. 정확히 말하면 내가 다녔던 학교 중 하나고 졸업년도도 보니까 맞더라고.”

-와씨 차라리 분탕이길 바랐는데 ㅅㅂ

-개뻔뻔하네 진짜 ㅋㅋㅋ

-아니;;; 사과하러 온 사람이잖슴

-아 ㅋㅋ 게놈들 또 선 넘네?

-이쉑들 분탕 아녀?

-제발 그냥 좀 듣기만 하라구웃!

진위여부가 확인되자 채팅창이 더욱 불타올랐다. 이에 지놈은 혀를 차며 손을 움직였다.

“얘들아, 내 생각 해주는 거 진짜 고마운데 머리 좀 식혀라. 이모티콘 채팅으로 바꿔둘 테니까 내 얘기부터 들어.”

그가 설정을 바꾸자 채팅창에는 이모티콘만 올라왔다. 그마저도 여러 이모티콘으로 번잡스러워졌지만 직접적인 채팅보다는 나았다.

“일단 확실히 해둘 게, 그 사람이 나쁜 건 아니야.”

지놈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여기서 학교 안 다녀본 사람 없잖아? 입장 바꿔 생각하면 이해는 되지. 잘못하면 나도 휘말릴 수 있거든 안 그래도 어릴 때니까 무섭잖아. 나라도 모르는 척했을 것 같아. 너희들도 비슷할걸? 그러니까 일단 비난은 절대 하지 마.”

몇몇 시청자들은 화난 이모티콘을 썼지만 대다수는 긍정하는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이에 지놈은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다시 설정 풀어줄 테니까 비난하고 싶으면 다른 데서 해. 여기서 하면 밴이다. 장난 아니고 진짜야.”

그의 경고에 채팅창은 처음과 달리 차분해졌다. 평소와 다른 지놈의 태도에 그들도 분위기를 파악한 덕이었다.

-킹직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이건 학교 측 대처도 문제가 있음 ㅅㅂ

-매일 봐야 되는데 나서기 쉽지 않긴 해

-형? 그럼 사과 받아주는 거?

-오늘은 중인배 말고 대인배 킹정합니다!

시청자들은 지놈이 사과를 받아주고 용서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사과는 안 받을 거야.”

그 대답에 채팅창은 물음표로 가득해졌다. 조금 전 한 말과 다르지 않나?

“확실히 해둘 게, 이해와 용서는 같은 말이 아니야. 그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서 내가 느낀 바가 달라지지 않아. 이건 내가 그 사람을 이해했듯, 그 사람도 내 입장을 이해해줘야 된다고 생각해.”

담담했던 지놈의 목소리에 이전과 달리 힘이 들어갔다.

“아마 나랑 같은 처지인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리고 나랑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 사실 그건 아무 상관이 없어. 이 자리에서 내가 말 하는 건 오로지 내 이야기니까.”

그는 카메라를 향해 검지를 치켜들었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뿐이야. 누가 됐든 지금까지 나와 연이 끊어졌다? 그러면 그대로 내 삶에서 좀 빠져. 진심 어린 사과? 용서를 받고 싶다? 그런 일들을 정작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거든.”

-아 ㅋㅋ 이게 맏찌

-우리형 말이 맞말인 게 사과도 당사자가 받고 싶어야 의미가 있는 거

-일방적인 사과는 죄책감 덜기 용이쥬?

-진짜 ㅋㅋ 겨우 잊고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왜 끼어드냐고

시청자들의 지지에도 지놈은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지금 이 사람 말고도 날 알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확실히 말해둘게. 당신들이 뭘 어떻게 하든 나한테는 아무런 보상이 안 돼. 나한테 사과를 하든, 자기 잘못을 만천하에 공표하든 그게 내 지난날을 바꿔주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감정이 북받치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지놈은 잠시 숨을 고르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당신들은 이제 내 삶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아. 내가 달라진 건 전부 내 노력이었고, 나와 같이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준 시청자들 덕분이야.”

-캬…! 이거지!

-지놈! 지놈! 지놈! 지놈!

-아 ㅋㅋ 감동갱킹 배워왔네

-우리형이 진짜 말은 잘 해 ㅋㅋ

-형이 또 진지할 때는 확실하게 진지하자너 ㅋㅋㅋ

-아주 으른이야 으른!

시청자들은 그의 말에 흡족해했다. 지놈은 그제야 다시금 웃음을 찾았다.

“이 자식들, 이거. 평소에 좀 이렇게 잘해줘 봐라. 아무튼 처음부터 얼공한 건 이런 사과나 받겠다고 한 게 아니니까 얘기는 여기서 끝!”

지놈은 크게 손뼉을 쳤다.

“앞으로 비슷한 일 없도록 확실히 말하는데. 커뮤니티에 뭔 글이 올라오든, 그랜절을 박든 사과문을 쓰든 나는 일절 대응 안할 거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든, 뻔뻔하게 자랑하든 마음대로 해도 좋은데 내 앞에만 보이지 마.”

-아 ㅋㅋ 관심 없다고요

-게라웃 오브 마 라잎!

-이게 베스트네 ㅋㅋㅋㅋ

-ㄹㅇㅋㅋ 시간 쏟을 가치가 없음

그의 결론에 채팅창은 더욱 격렬히 동조했다.

* * *

이경복은 작게 탄사를 뱉었다.

“와, 이런 식으로……”

그는 지놈의 말을 곱씹으며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보았다.

‘하긴 나도 비슷한 느낌이겠다.’

과거의 악연과 이제 와서 얽힐 이유가 없었다. 그들의 삶은 이경복에게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내 그는 실소를 흘렸다.

지금만이 아니라 예전부터 그래왔을지도 모른다.

‘병훈이랑 주호.’

학창시절부터 줄곧 힘이 되어주고 지금의 생활을 만들어준 계기까지 마련해준 친구들.

‘양규리 이모님.’

알게 모르게 그를 신경써 주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생각해 쉽게 접근하지 않았던,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가족에 가까운 사람.

‘백강민 감독님.’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아무런 이득이 없음에도 자신의 일처럼 도와준 어른.

‘그리고 대한 씨와 매드맨 님까지.’

그가 직접 면접을 거쳐 이어진 인연들까지. 신기를 통해 사람들을 가려 사귀었고 지금은 좋은 사람들만이 곁에 남지 않았나.

‘이미 잘라낸 인연을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지.’

물론 그들도 개심해서 다시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영역이었다.

‘그 시간에 내 사람 챙기는 게 낫다.’

이미 확실한 사람들을 놔두고 그들에게 시간을 쏟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방송을 시작한 이후 신기의 활용법도 터득해 나가고 있던 바.

‘그리고 앞으로 만날 새로운 인연을 챙기는 게 더 확실하고.’

이 신기를 통해 새로이 맺을 인연, 지놈과 이클립스와 같은 사람들을 신경 쓰는 게 더 나았다.

‘지놈 형 덕분에 바로 정리가 되네.’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지놈의 대처로 또 한 번 배웠다. 그는 마음 편히 잠자리에 몸을 눕혔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신경 쓰자.’

이경복은 눈을 감았다.

그가 챙겨야 할 이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그리고 얼굴은 모르지만 자신을 응원해주는 시청자들을 상상했다.

‘역시 내가 즐거워야 해.’

재미있는 방송을 만드는 것.

그가 고민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야 행복하지.’

행복하기에도 바쁜 게 인생이었다.

* * *

다음 날, 이른 오후.

팀 퍼펙트 회의에 앞서 박주호가 테이블 위에 봉투를 올렸다.

그에 다들 뭔가 싶어 쳐다보자 그가 웃으며 매드맨과 조대한 쪽으로 봉투를 밀었다.

“게말콘 피규어입니다.”

그 한 마디에 두 사람은 눈을 번쩍 뜨며 곧바로 봉투를 꺼냈다.

“와! 진짜 잘 나왔네요!”

“사진으로 본 것보다 잘 뽑혔는데요?”

두 사람의 말에 이경복과 최병훈도 수긍했다.

“오, 그러네. 난 말풍선이 이음새가 얇아서 부러질까 걱정됐는데.”

“트수 캐릭터 놀란 느낌이 잘 살았어. 다른 시청자분들도 이거 진짜 좋아하겠다야.”

시청자, 소위 ‘트수’를 ‘T’자가 박힌 가면을 쓴 캐릭터와 느낌표, 그리고 그 옆 말풍선 안에 게와 말, 그리고 물음표가 박혀 있었다.

세부적인 요소가 많음에도 디테일이 잘 살아 있었다.

박주호가 옅은 미소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전에 완성품이랑 배송지 최종 체크 끝냈다. 두 사람 거는 내가 직접 가져다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지. 괜히 배송비를 더 낼 필요는 없으니까.”

“오?! 그럼 저희가 제일 먼저 받은 거네요!?”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두 사람이 밝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하자 박주호가 손을 내저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 배송은 이틀 내로 완료될 거다.”

“금방이네.”

이경복은 이에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뭔가 생각 난 듯 눈을 크게 떴다.

“아, 나중에 나 얼공 다 하면 직접 굿즈 배송하는 것도 좋겠다. 그러면 시청자분들이 더 기뻐하시지 않을까?”

“오? 완전 좋은데? 역시 방송만 생각하는구만!”

최병훈이 그 말에 크게 웃었다.

“짤막하게 인터뷰 따면 그림 나오겠는데? 일종의 찾아가는 팬미팅 느낌? 분량도 충분할 거 같고.”

“아니, 그런데 그때쯤 되면 해외배송 해야 되는 거 아닐까요?”

“해외배송이요?”

이경복이 되묻자 조대한이 상상만 해도 좋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이번 멤버십에 올라간 OTP 영상 반응이 아주 좋거든요! 자기들도 참가하고 싶은데 한국어를 몰라서 너무 아쉽다고 학구열이 장난이 아니에요. 한국어 공부하면 참가할 수 있지 않겠냐면서요.”

“이러면 밈이 아니라 진짜 구독자들이 한국인 되는 거 아니에요?”

매드맨이 이에 장난스럽게 말하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댓글하니까 생각났는데 이거 하나 먼저 확인이 필요할 거 같아”

이내 박주호가 손을 움직였다.

그가 홀로그램으로 띄운 건 퍼플 큐튜브였다. 그중에서도 최근에 올라온 세영아버지와의 합방 영상.

[-뭐예요?! 저희 방송도 나와줘요!]

[ㄴ아닠ㅋㅋ 이번이 몇트임?]

[ㄴ역시 근성이다 이마리야]

[ㄴ간절해서 더 웃기네 ㅋㅋㅋ]

따로 고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추천을 받아 상단에 노출된 댓글이었다.

이경복은 그 댓글을 쓴 계정의 아이디를 보고 웃음을 흘렸다.

“아, 섭섭하시긴 하겠네.”

그 계정은 바로.

[머슬갤러리]

운동 전문 큐튜브 채널, 머슬갤러리였다.

그리고 이경복에게 가장 먼저 오프라인 합방을 요청했던 곳이기도 했다.

“머슬갤러리에서 섭외가?”

“진짜 끈기가 대단하시네요.”

“이번에 세영아버지 님 방송 보고 다시 제안을 주신 것 같습니다.”

조대한과 매드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경복이 오프라인 방송에 나온 걸 보고 다시 합방을 요청한 것이라.

박주호가 이경복을 돌아보며 물었다.

“생각 바뀌지는 않았지?”

합방 제안은 머슬갤러리가 댓글을 달기 전에 왔었다.

“물론이지.”

그리고 이경복은 이에 대해 답변을 결정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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