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 오프라인 방송의 여파 (3)
서울 도심의 한 피트니스 센터.
이른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운동에 매진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약간 특이한 차림의 남자가 나타났다.
“호흡! 호흡 주의하세요! 숨 쉬는 거 잊지 마시고!”
착 달라붙는 레깅스와 운동복도 충분히 이목을 끌었지만 그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건 바로 가짜 수염과 실리콘 가면이었다.
하지만 그런 차림에도 사람들은 불쾌해하지 않고 웃으며 그를 대하며 감사까지 표했다.
남자 역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사람들을 가로질러 회의실로 향했다.
“근성장!”
그는 문을 열며 특이한 인사말을 건넸다.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그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자, 오늘도 즐겁게 성장을 위한 회의를 시작해봅시다.”
자연스럽게 남자는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피트니스 센터는 큐튜브 채널 ‘머슬갤러리’가 운영하고 있었고 이 남자가 그 주인인 큐튜버, ‘민둥산’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회의에 앞서 먼저 알려 드릴 게 있습니다.”
민둥산은 손에 깍지를 끼며 제작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퍼플 님께 답변이 왔어요!”
“벌써요?”
“어떻게 됐습니까?”
제작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귀를 기울였다. 가면에 가려져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섭외가 성공한 것일까?
이에 민둥산이 흡족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주 정중하게 까였습니다.”
“아……”
그 대답과 함께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민둥산은 그들과 달리 실망하지 않았다.
“제가 미리 말했잖아요. 이번에는 안 될 것 같다고.”
그는 제안을 하면서도 결과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절의 이유도 예상한 대로였다.
“일단 당분간은 오프라인 방송에 나오지 않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 저희만 그런 게 아니고요?”
“네. 세영아버지 님 합방에서 말씀한 것처럼, 외모로 판단 받고 싶지가 않다네요. 그래서 한동안은 온라인 활동에 집중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방송에서는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말한 뒤 오프라인 방송을 전전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민둥산이 즐거운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제가 말했잖아요. 첫인상부터 줏대가 있는 분이라니까요. 크으, 욕심납니다 정말.”
머슬갤러리의 규모를 감안하면 이번 이슈와 관심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경복은 자기가 한 말을 지켰다.
민둥산은 그 점을 높이 샀다.
‘군인 출신이셔서 그런지 이런 걸 정말 좋아하신다니까.’
‘오히려 나온다고 하면 1회성으로 끝났겠지.’
제작팀은 흥에 겨운 민둥산을 보며 따라 웃었다. 이내 그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근데 혹시 퍼플 님 쪽에서 좀 귀찮게 생각하시지는 않을까요? 조금 더 텀을 뒀어야 하는 게……”
안 될 걸 알면서도 민둥산은 제안을 건넸다. 실제로 거절당하니 제작팀에서 걱정이 앞선 것이라.
민둥산은 이에 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아니, 오히려 이번에 확신이 섰어요. 퍼플 님이 그렇게 마음이 옹졸한 분이 또 아닙니다.”
그가 제안을 보낸 건 단순히 퍼플의 됨됨이를 알아보고자 함이 아니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가 우선순위를 오르고 있거든요? 꾸준히 눈도장을 찍어둬야 섭외에 더 가까워지는 겁니다.”
“음, 이게 틀린 말이 아닌 게, 메타게이머 인터뷰에서도 퍼플 님이 밝히셨습니다. 언젠가는 얼굴을 공개하실 거라고 했었거든요.”
다른 제작팀이 동조하자 민둥산이 더욱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퍼플 님이 얼굴 공개를 결정했을 때, 부담 없이 오프라인 방송을 결정했을 때! 그제야 섭외 요청하는 쪽보다는 계속 오퍼를 넣었던 우리를 더 생각해줄 거거든요.”
“아, 실패가 아니라 투자인 셈이군요.”
머슬갤러리의 제안은 이번이 3번째,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이었다. 그 정도 간격이면 이경복 쪽에서 귀찮아할 만한 정도는 아닐 터였다.
“그렇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지 않겠습니까?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시니까 기준도 확실하고 계획적으로 방송을 하시는 거죠.”
민둥산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에게 이경복은.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그때까지 계속 내실 다지면서 준비를 끝내면 되는 거예요.”
충분히 기다릴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 * *
비슷한 시각, 팀 퍼펙트 회의.
이경복은 팀원들에게 거절의 이유를 밝혔다.
“그래서 오프라인 활동은 전부 거절할 겁니다.”
다들 이견은 없었다.
“사장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셔야죠.”
“확실히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오프라인 방송 나가면 좀 깰 것 같긴 해요.”
“그리고 머슬갤러리가 지금 거절했다고 포기할 사람들도 아니거든. 다른 게스트 나오는 영상 보면 요청 여러 번해서 나와 줬다고 감사하는 멘트 많아.”
최병훈의 말에 박주호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대로 끝나도 큰 피해는 없을 거다. 어차피 우리 채널은 운동 컨텐츠가 메인이 아니니까.”
“아, 그래도 나가고 싶은 마음은 있긴 해.”
이경복이 이에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회사 다닐 때부터 머슬갤러리 보면서 운동법을 익혔으니까. 그래도 좀 받은 게 있다는 느낌? 보답할 수 있으면 해주고 싶긴 한데, 더 적절한 시기가 오길 바라는 거지.”
호의에는 호의로 돌려주는 게 그의 기본 방침이었다. 만약 여건이 좋았다면 흔쾌히 나갔을 터였다.
박주호는 이에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외에도 밤사이에 다른 제의도 추가로 들어왔다. 먼저 남성 잡지 ‘MAXIN’에서도 인터뷰랑 화보 촬영 제안이 들어왔어. 가면을 써도 상관없다는 조건으로.”
오프라인 방송에 나간 이후 그를 원하는 건 비단 머슬갤러리만이 아니었다.
“헐? 맥신에서?!”
최병훈이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그는 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탄사를 흘렸다.
“와, 이거 진짜 뜨긴 떴네. 맥신도 메타게이머 만큼 검증된 스트리머만 섭외하는데.”
“그래?”
“그렇다니까? 대표로 달타냥 님이랑 돌연사라고 혼혈 스트리머 한 분 계시거든.”
매드맨이 신기해하자 그가 빠르게 답했다.
“잡지는 또 결이 달라요. 메타게이머 같은 경우는 혹여라도 나중에 문제되면 삭제하면 되니까. 그런데 잡지는 실물로 나오니까 사측에서 어떻게 대처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더 신중하게 고른다니까?”
“아, 맞네. 진짜 인정받는 거구나.”
이경복은 들뜬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짓다가 이내 의아함을 내비쳤다.
“잠깐, 근데 화보촬영인데 가면을 쓴다고?”
“아, 이게 패션 쪽에서는 의외로 가면이 큰 걸림돌은 아니거든요.”
대답은 모델 출신인 조대한에게서 돌아왔다.
“실제로 패션쇼 보면 모델들이 가면을 쓰고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모델보다 패션 쪽을 부각시키거나 아예 가면이 패션 소품으로 활용되는 경우죠.”
이내 그는 진지하게 이경복의 얼굴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장님 정도 비주얼이면 그런 이유보다는 오히려 신비주의? 그런 컨셉으로 쓰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오히려 그쪽이 더 관심 끌기에는 좋을 테니까요. 가린다고 못나 보이는 것도 아니시고.”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인터뷰라고 해도 메타게이머와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아마 화보 촬영 쪽에 더 치중된 제안이라고 본다.”
박주호가 그에 동조하며 다른 제안에 대해 설명했다.
“그 외에 화면 보정 때문에 메이크업으로 톤 다운이 된 걸 캐치한 건지 화장품 협찬, 먹방이 마음에 들었는지 처음제당 말고 다른 식품사들 협찬 제의도 들어왔다.”
“캬,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면 이렇다니까?”
최병훈이 흡족한 듯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사실상 이렇게 협찬이 쌓이면 스트리머 입장에서는 뭘 따로 살 필요가 없어져요. 이게 정말 성공한 스트리머들이 누리는 혜택이거든. 진짜 방송이 순항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느껴져!”
이경복은 이에 헛웃음을 흘렸다.
“야, 어차피 할 생각 없다니까. 그것보다는 컨텐츠 회의로 넘어가자.”
“알았다. 이쪽 제안도 정중히 거절하도록 하지.”
그의 말에 박주호가 정리를 마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로데리 다음 게임이면 비슷한 컨셉은 피하는 게 좋겠죠?”
“어…… 그래도 총은 좀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매드맨이 조심스레 제 사심을 밝히자 다들 실소를 흘렸다.
“아니, 그 저번에 큐튜브 커뮤니티에 시청자 투표 받았던 거 있어. 그거 중에 하나 결정하면 되지!”
최병훈은 회심의 아이디어라는 듯 자신 있게 말했다. 바이오 크라이시스 이후 2번째 컨텐츠를 결정하기 위해 모아둔 데이터가 있었다.
그러나 박주호는 곧바로 그 의견을 기각했다.
“아니, 그건 참여자 숫자가 너무 적어.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시청자 숫자가 너무 많이 차이난다. 유효한 투표라고 볼 수 없어.”
“그건…… 음, 맞는 말이네.”
무어라 반박하려던 최병훈은 바로 수긍했다. 그간 채널의 성장세가 남달랐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 데이터라면 참고할 곳이 또 있잖아?”
두 친구의 대화를 듣던 이경복이 끼어들었다. 이에 시선이 모이자 그는 설명 대신 손을 움직였다.
큐튜브 채널 대신 새로운 웹페이지가 나타났다.
“아, 팬카페에도 있었죠.”
“확실히 표본숫자로 따지면 이쪽이 더 많겠어.”
팬들이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쌓아두는 곳, 바로 퍼지데이 팬카페였다.
* * *
스트리머의 팬카페는 여러 역할을 수행한다.
스트리머와 팬들의 소통 창구가 대표적인 역할이지만 그 소통의 종류 역시 세분화 되어 있었다.
단순한 잡담부터 각종 이슈나 유머, 그리고 팬들이 선물로 제공하는 팬아트나 영상 등 여러 게시판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요청’과 관련된 게시판이었다.
[게임추천]
퍼지데이 멤버들은 게임 전문 스트리머였기에 팬들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게임을 요청받고 있었다.
[(지놈) 형! ‘지거진5’가 나왔네?]
[(지놈) 슈퍼갓겜 ‘나 혼자 어두움’ 해보쉴?]
[(지놈) WA! ‘점프퀸’ DLC 출시!]
[(지놈) ‘닥터 리듬’ 신곡 업뎃했는데 깨야지?]
혼동이 없도록 팬들은 스트리머 별로 말머리를 지정했다.
[(이클립스) 전장이 그대를 기다립니다! ‘키발리’를 평정해주시옵소서!]
[(이클립스) 명예란 무엇인가! ‘노 아너’의 전장에서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이클립스) 경께서는 충분히 기사단장이 될 수 있습니다. ‘마운트&블러드’로 오십시오!]
덕분에 팬들별로 스트리머에게 바라는 게 드러났다.
“햐, 진짜 지놈 님한테는 이 악물고 똥겜만 추천해주네.”
“이클 님은 컨셉대로 중세랑 기사, 검술 쪽 게임이 주류네요.”
이경복을 비롯한 팀 퍼펙트 일동은 게시판을 살펴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럼 우리 쪽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박주호는 그리 말하며 말머리를 선택했다.
이내 펼쳐진 목록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이거 너무 많은데?”
“엄청 쌓여 있네요?”
다른 두 사람과 달리 게임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한눈에 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에 박주호가 바로 해답을 내놓았다.
“추천순으로 다시 정렬하면 됩니다.”
시청자들이 가장 원하는 게임부터 살펴보는 게 합리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