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 오프라인 방송의 여파 (4)
박주호는 가볍게 손을 털어냈다.
“끝났다.”
그의 말에 다들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니, 벌써?”
“기준만 세우면 정리는 금방이지.”
박주호는 팬카페 게임추천 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을 추천 횟수 순으로 분류, 기준에 따라 게임을 선별했다.
“이 게임들이 추천 수 6천 이상이다. 장르별로 구분해뒀으니 비교도 편할 거다.”
분류 기준은 6천 회 이상의 추천을 받은 게시글이었다.
“그럼 최소 절반 이상은 좋아하는 게임이라는 뜻이지?”
라이브 방송의 시청자들을 고려한 수치였다. 최근 시청자 숫자가 최소 1.2만에서 1.8만 사이였기에 결정된 숫자였다.
“크으, 역시 빠릿빠릿하네.”
“매니저 님 진짜 대단하시네요.”
“와…… 말 그대로 일목요연이네요.”
다른 직원들의 감탄에 박주호는 짐짓 헛기침을 했다. 이경복은 그 모습에 웃으며 손을 움직였다.
[판타지]
[(퍼플) 갓플이 갓작을 하는 건 당연하잖아? ‘엘븐 스크롤’ 무적권 추천!]
판타지 장르에서 무려 9천이 넘는 추천수로 1위를 장식한 게임은 바로 ‘엘븐 스크롤’이었다.
“아, 엘븐 스크롤 명작이지.”
“이거는 안 해본 스트리머가 없죠.”
“나도 봤을 정도니까.”
매드맨의 말에 최병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웬일로 총도 안 나오는 게임을?”
“나와.”
“응?”
“총기 모드도 있더라고.”
그녀의 말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엘븐 스크롤 하면 또 모드지.”
“순정도 좋긴 한데 완성은 모드죠.”
엘븐 스크롤은 게임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다양한 모드 지원으로 지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어떤 모드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정체성이 달라질 정도였다.
[(퍼플) 아 ㅋㅋ ‘더 워쳐’는 못 참지 ㅋㅋㅋ]
[(퍼플) 갓플은 진짜 갓이 나오는 ‘워 오브 갓’을 해야 되는 거 아님?]
[(퍼플) ‘어쌔신 크레딧’ 제발 한 번만 해주세요 ㅠㅠ]
그 외에 다른 판타지 장르도 누구나 알 법한 작품들이었다. 최병훈은 그 목록을 보며 탄사를 흘렸다.
“햐, 이거 보니까 새삼 캡슐 경력이 짧다는 게 느껴지네.”
“아, 진짜 그러네요. 추천해주시는 게 전부 다 알만한 대작들이라.”
조대한이 이에 동조하며 웃음을 흘렸다.
“그 정도야? 그럼 이거는 따로 스크랩을 해둬야겠네.”
“그건 내게 맡겨라.”
박주호는 그리 말하며 다음 장르 목록을 불러왔다.
[어드벤처]
[(퍼플) 퍼지컬이면 ‘카타콤 레이더’가 딱이자너 ㅋㅋㅋ]
[(퍼플) ‘언트레블드’아십니까? 진짜 갓겜입니다!]
“아, 이것도 좋지.”
“사장님 실력이면 이거는 진짜 어울리네요.”
두 게임 모두 고대 유적과 같은 곳에서 보물을 찾는 게임이었다. 각종 함정을 피하는 건 물론 퍼즐을 풀고, 경쟁자들과 전투까지 벌여야 했다.
“이거 좋네요! 그림이 아주 괜찮게 나오겠어요!”
가장 들뜬 반응을 보인 사람은 매드맨이었다.
“거대한 유적을 배경으로 빌런들과 벌이는 총격전. 엄폐물을 오가며 벌어지는 택티컬한 건 파이트……!”
그녀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짙은 미소를 지었다.
플레이도 좋지만 그 배경이 되는 고대 유적지와 자연 환경은 아름다움은 물론 스케일도 빼어났다.
“그럼 이 게임들도 잊지 말아야겠네요.”
이경복이 웃으며 답하자 다음 목록이 나왔다.
[공포]
[(퍼플) 이 스머가 무서움을 알까요? ‘드레드 스페이스’ 해줘잉!]
[(퍼플) 갓플 놀라는 거 한 번 보고 싶음 ㅋㅋ ‘사일런트 헤븐’ 츄라이츄라이!]
이번에는 의외의 장르였다.
언제나 차분하고 담담한 모습을 보여준 이경복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이 꽤 있었다.
“와씨, 드레드 스페이스 이거 진짜 개무서운데. 사일런트 헤븐도 다른 의미로 무섭고.”
“그래?”
이경복의 물음에 최병훈이 빠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플레이 스타일은 거의 정반대야. 드레드 스페이스는 우주에서 고립된 채로 괴물들에게서 탈출하는 거고, 사일런트 헤븐은 약간 심리적인 공포 쪽이고.”
“총은 안 나와?”
“…넌 관심이 그쪽밖에 없냐.”
슬쩍 끼어든 매드맨에게 고개를 흔든 최병훈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근데 단순히 무서운 게임만은 아니야. 스토리도 꽤 괜찮고 액션도 나름 좋아서 공포 쪽에서는 알아주는 작품들이지.”
“흠…… 근데 무섭지는 않을 것 같은데. 시청자들이 실망하지 않으려나?”
이경복은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쓸어내렸다.
“야야, 그건 또 그것대로 재미가 있어요. 보통 방송 보는 목적이 2가지거든? 하나는 비슷한 모습에서 공감을 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서 감탄하는 거야. 그런데 넌 대부분이 후자니까 걱정할 게 없지.”
이경복이 놀라면 놀라는 대로 목적 달성이었고,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해도 만족감은 충분했다.
최병훈의 설명에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박주호가 바로 다음 목록으로 넘어갔다.
[레이싱]
[(퍼플) ???: 나 킹전 잘합니다! ‘카트레이서’ 한 번 시참으로 ㄱㄱ?]
[(퍼플) 개쩌는 자동차에 탄 갓플이 그립읍니다 ㅠ ‘모터 호라이즌’ 가즈아!]
조대한이 그 이름에 눈을 크게 떴다.
“오, 이것도 상반된 조합이네요. 한 쪽은 캐주얼이고, 다른 한 쪽은 완전 현실적인데.”
“보니까 시참 쪽 바라는 분들 같아요.”
“이야, 운전은 좀 붙어볼만 하다고 생각하나 보네?”
이경복은 이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OTP 끝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시참을 하기는 좀……”
“그 온라인 외에도 커리어 모드라고 싱글 플레이도 가능하긴 해요.”
“아, 그래요?”
“네네. 크……! 우리 사장님이 스포츠카 타고 달리는 모습 딱 보여주면 해외 팬들 완전 난리 나겠는데요?”
조대한이 헤벌쭉 웃으며 말하자 이경복도 마주 웃음을 흘렸다.
박주호가 이에 눈치껏 목록을 넘겼다.
[대전 격투]
[(펴플) 혀엉! ‘메탈 펀치’ 애들이 뉴비 괴롭혀! 빨리 혼내줘잉!]
[(퍼플) 퍼지컬이면 격겜 씹어먹지 ㅋㅋ ‘킹덤 오브 파이터즈’ 추천합니다!]
[(퍼플) 진짜 파동 나오는 ‘스피릿 파이터’ 한 번 갑시다!]
“오, 격겜이 또 방송용으로는 좋지! 고정 시청자 층이 진짜 콘크리트거든.”
“아, 근데 이쪽 판은 진짜 고일대로 고였잖아요? 특히 ‘어깨’님이 너무 대단하셔서.”
흡족해하는 최병훈 옆에서 조대한이 고개를 기울였다.
“어깨 님이요? 스트리머신가?”
“유저층이 좁아서 구독자는 좀 적으신데 격겜에서 완전 전설이세요. 제가 또 세계 대회는 잘 챙겨보지 않습니까? 1위를 진짜 밥 먹듯이 하십니다.”
“오, 대단하신 분이구나.”
“아, 물론 사장님만큼은 아니죠. 기간 대비 유명세로 따지면 비교가 안 됩니다.”
“에이, 아니에요.”
조대한의 말에 이경복은 민망해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 모습에 박주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목록을 전환했다.
“이게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모두의 눈이 돌아갔다.
[힐링]
[(퍼플) 혀엉! 가끔은 쉴 때도 필요하지 않아? ‘짐승의 숲’으로 와!]
[(퍼플) 휴방할 때라도 틈틈이 즐겨보셔요. ‘스텔라 밸리’ 진짜 좋은 게임임니다!]
[(퍼플) ‘마인크러쉬’ 아직 안했죠? 호불호 갈릴 것 같긴 한데 찍먹이라도?]
“아… 힐링, 좋긴 한데.”
“아무래도 이쪽 장르는 좀 살리기 힘들죠.”
“방송용보다는 진짜 힐링하라는 의미 같네요.”
저마다 형식은 다르지만 메커니즘은 비슷했다. 자원을 모으고 그 자원으로 물건을 만들어 각자의 공간을 꾸미거나 발전시키는 게임이었다.
자극적인 모습보다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장면이 많기 때문에 취향을 많이 타는 장르기도 했다.
“자, 그럼 이 중에서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는 건데……”
이경복이 그리 말하자 박주호가 바로 손을 움직였다. 각 게임의 타이틀이 홀로그램으로 띄워졌다.
‘뭐가 재미있으려나.’
이경복은 추천 목록에 올라오는 게임들을 바라보며 신기를 가늠했다.
“하……”
그리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래도 다 명작이긴 하네.’
어떤 선택에도 이렇다 할 정도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각 게임의 재미가 보장되고 개성적이라는 뜻이었다.
“근데 하나 꼽자니 너무 어렵네.”
“그러니까요. 진짜 하나 같이 다 명작이라서.”
“괜히 추천을 많이 받은 게 아니니까요.”
다른 사람들의 평가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이에 이경복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이거, 컨텐츠로 진행해보는 건 어떨까요?”
“네?”
“컨텐츠?”
다들 의아해하자 이경복이 웃으며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듣자 다른 이들의 입에도 미소가 번졌다.
“오, 그거 재미있겠네.”
“시청자들도 되게 즐거워하실 것 같아요!”
“뭔가 기대 되네요!”
“준비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바로 공지를 올리도록 하지.”
이견은 나오지 않았다.
이경복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오케이, 다들 수고했어요!”
결정이 끝났으니 남은 건 준비뿐이었다.
* * *
늦은 오후.
격투 게임 ‘메탈 펀치’의 메타게이머 커뮤니티, 메탈 펀치메타.
[눈팅하는 놈들 10선 들어와라]
[올만에 업뎃인가 봤는데 너프 먹었네 ㅅㅂ]
[뉴비 가르쳐주실 분^^]
[어깨 플레이는 몇 번을 봐도 웅장해진다]
[아니 ㅋㅋ 어깨는 잠 안 자냐? 승급만 할라 치면 바로 떨구네]
비주류로 대표적인 격투 게임으로 알려졌지만 커뮤니티는 무척이나 활발했다.
하지만 그 분위기와 별개로 문제가 있었다.
[어깨 안자냐고 말할 때냐?]
[ㄹㅇㅋㅋ 맨날 보던 놈들만 보이는데]
[진짜 뉴비는 언제 오냐 ㅠㅠ]
게시글을 올리는 유저들이 항상 보던 사람들뿐이라는 점이었다.
[아니 ㅋㅋ 뉴비가 왜 안 오는지 모르냐고!]
[배려는커녕 배척만 하는 놈들이 뉴비 ㅇㅈㄹ ㅋㅋㅋ]
[느그들이 다 쫓아 냈잖슴?]
[샌드백처럼 줘패놓고 왜 안 오냐 논란]
서로 매번 보는 사람들인 만큼 매번 커뮤니티의 주제도 비슷했다.
[또 쿨탐 돌았냐? 승부의 세계에 배려가 어디 있음?]
[야씨 ㅋㅋ 봐주는 게 기분 더 더럽지]
[그게 진짜 티배깅이지 ㅅㅂ]
[봐주다가 찐으로 붙어서 도망가면 더 허탈하자너 ㅋㅋㅋ]
격투 게임의 유저들이 뉴비를 대하는 태도는 2가지로 나누어진다.
게임의 재미를 붙일 때까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온건파’와 전력으로 붙어서 남을 사람만 남겨둔다는 ‘강경파’가 바로 그것이었다.
[일단 재미라도 붙어야 노력하지 ㅅㅂ]
[줘패면 느그들만 재밌잖아!]
[양학충들이 핑계는 ㅅㅂ]
[아니 ㅋㅋ 걔네들이 실력 쌓을 때까지 얼마나 걸릴 줄 알고]
[패배의 빡침을 견뎌야만 격겜러가 된다 이마리야]
[아 ㅋㅋ 됐고 불만 있으면 10선으로 붙어]
[격겜에서는 승자가 진리다 모름?]
그 분쟁의 끝은 언제나 게임 승부로 이루어졌다.
[얘네들은 그냥 싸울 핑계 찾는 거 아님?]
[ㄹㅇㅋㅋ 맨날 같은 떡밥에 같은 결과임]
[조금 있으면 인증 올라오겠네 ㅋㅋ]
그로 인해 잠시 커뮤니티가 소강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았다.
[매번 이럴 때마다 현타오드라 ㅋㅋ]
[사실상 격겜은 하향세가 맏따]
[메탈 펀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격겜 다 그럼 ㅋㅋㅋㅋ]
[킹오파나 스파는 그래도 불 뿜고 장풍이라도 쏘지 ㅋㅋㅋ]
[ㄹㅇㅋㅋ 메탈 펀치는 그런 것도 없이 쌩으로 붙어서 더 빡셈]
[그냥 풀메크로 넘어가야 되나…]
[풀메크는 다 좋은데 손맛이 없음]
[쇳덩이 때리는 거 개구림ㅋㅋㅋ]
격투 게임 업계가 전반적으로 인기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기 때문이었다.
[뉴비 찬스 떴다!]
그때 침체된 커뮤니티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ㅅㅂ 초대박!
갓플 다음 게임 후보 중에 메탈 펀치 떴다
아래 내가 공지 긁어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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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겜무 룰렛>
이 스트리머는 무료로 해줍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방송을 만들 수 있는 기회!
시청자 투표에 따라 돌림판의 구성이 달라집니다!
모아둔 채널 포인트로 투표하세요!
<게임 후보>
1. 엘븐 스크롤
2. 더 워쳐
…
15. 스텔라 밸리
16. 마인 크러쉬
<규칙>
2번의 기회는 없다!
제한시간 내 투표해주신 포인트에 따라 게임별로 돌림판의 영역을 차지하게 됩니다!
돌림판 결과로 나온 게임은 즉석에서 구매 후 플레이!
시청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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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메탈 펀치 추천했는데 이렇게 반응 좋을 줄 몰랐다 ㅠ
여기서 메탈 펀치 뜨면 뉴비 유입 장난 아닐 듯 ㅋㅋㅋ
뉴비를 배려하든 줘패든 일단 와야 뭘 할 거 아니냐
제발 철붕이들 힘 모아서 게임 한 번 살려보자!]
새로운 주제에 사람들이 몰린 건 금방이었다.
[-오? 갓플이 메탈 펀치를?]
[-꽤 유명한 사람이네 ㅋㅋㅋ]
[-와씨 이거 진짜 좋은 기회다]
[-ㄹㅇㅋㅋ 저번에 이스케이퍼스도 힙스터 픽이었는데 갓플이 하고 떡상했음]
[-퍼플 코인 각 떴냐?]
온건파들은 순수하게 그 사실에 기뻐했다. 그리고 강경파들 역시 다른 이유로 기대를 내비쳤다.
[-오 ㅋㅋ 퍼플이면 그 피지컬 개쩌는 스머 아님?]
[-다른 커뮤에서 본 적 있는데 그렇게 대단한가?]
[-킹직히 격겜은 또 다르지 ㅋㅋ 심리전까지 있는데]
[-만렙 뉴비? 이건 못 참지!]
[-퍼플이랑 10선 기회다 이마리야]
호승심이 대단한 이들이었으니 이경복과의 승부를 기대한 것이라.
양쪽 모두 이유는 달랐지만 이번 컨텐츠에 참여할 의지는 충분했다.
* * *
그날 저녁.
이경복의 방송이 예정대로 시작됐다.
“제가 이번에 게임 추천 게시판을 죽 훑어봤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더라고요. 이 점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아 ㅋㅋ 추천 게시판은 킹정이지
-ㄹㅇㅋㅋ 퍼플 카테고리는 갓겜판독기로 제대로임
-진짜 추천하려 들어갔다가 오히려 추천 받게 됨 ㅋㅋㅋㅋ
-갓플에게는 갓겜이 어울려서 그런 거자너
쏟아지는 채팅에 이경복은 공감을 표했다.
“네, 진짜 좋은 게임이 많아서 결정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공지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래서 이번에 여러분들 도움을 받아볼까 해요.”
멘트를 마치자 박주호가 바로 준비한 돌림판을 꺼냈다. 이경복의 옆에 거대한, 그러나 아직은 백지 상태인 돌림판이 나타났다.
-게임 정하는 것도 컨텐츠로 만드는 당신은 대체?
-바보! 컨텐츠만 생각하는 바보!
-아 ㅋㅋ 블랙기업 주주로서 빠질 수 없지!
-게다가 채널포인트임 ㅋㅋㅋ 올드비들 배려 미쳤고?
-3개월차에 뭔 올드비 부심이야 ㅅㅂㅋㅋㅋ
-아무튼 올드비임! 아무튼 차이남!
즐거워하는 시청자들의 모습에 이경복도 미소를 지었다. 그는 가볍게 손뼉을 쳐서 주의를 끌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포인트를 나누어서 다중 투표도 가능하니까 마음껏 해주시면 됩니다!”
그 선언과 함께 투자가 시작됐다. 백지였던 돌림판에 가지각색의 영역이 번지기 시작했다.
-엘븐 스크롤 가즈아아!
-아 ㅋㅋ 이건 무적권 엘븐 스크롤 아님?
-워쳐가 근본이지 ㅅㅂ
-곰보 장르 왜케 적음?
-곰보 개미들 다 드레드 스페이스로 모여욧!
-아니 ㅋㅋ 모일 거면 사일런트 헤븐이지!
-엌ㅋㅋ 혼란하다 혼란해!
채팅창이 걷잡을 수 없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포인트를 많이 쌓아뒀어도 전체에 비하면 비중이 미약했다.
이에 시청자들은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게임에 투자해주기를 요청했다.
[‘갓플이라면다르다’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킹직히 다 하는 게임 보다는 비주류를 시켜야지! 다들 모터 호라이즌으로 모엿!]
[‘근본갓겜’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속지마라! 트수의 함정이다! 갓겜을 갓플이 하면 갓갓겜이 된다! 엘븐당이여 굳건하라!]
[‘단일화가정답’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격겜러들은 메탈 펀치만 뽑아! 다른 거 가망 없어! 그리고 여러분 퍼지컬로 격겜 하는 거 안 보고 싶습니까!?]
채팅창이 번잡해지자 몇몇 시청자들은 후원창이 열려 있는 걸 파악했다. 이에 그는 후원으로 대대적인 설득에 나섰다.
[‘격겜은진짜ㅋㅋ’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격겜 진짜 고인물 판이라서 악명 높지 않음? 이참에 갓플이 다 깨부수면 되겠다 개추!]
[‘참교육필수’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킹직히 격겜러 중에 양학하는 놈들 짜증나거등요? 갓플이 싹 다 뚝배기 깨야됨 ㅋㅋㅋ]
[‘돈내고쳐맞기’님이 ‘3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진짜 뭣도 모르고 메탈 펀치 샀다가 얻어터지고 바로 환불했음ㅋㅋㅋ 혀엉! 복수 좀 해줘잉!]
개중에는 메탈 펀치 유저들도 있었다. 그들은 강경파의 행태를 비난하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유도했다.
-와 ㅋㅋ 도네 보니까 혹하네
-진짜 격겜러쉑들은 당해봐야 되는데
-갓플 정도면 충분할지도?
-ㅅㅂ 난 메탈 펀치로 간다
그 후원은 일부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시청자들의 후원과 채팅으로 돌림판이 시시각각 혼란해지는 와중이었다.
“자, 제한시간 거의 다 됐으니까 후원은 이제 닫겠습니다!”
투자 종료 시간이 다가오자 이경복이 선언했다. 그에 혼란했던 채팅창은 웃음으로 가득해졌다.
-아 ㅋㅋ 수금 끝났쥬?
-경쟁은 트수가 하고 돈은 갓플 주머니로 간다 이마리야
-지갑을 안 열수가 없자너 ㅋㅋㅋ
-블랙기업특) 주주끼리 싸움 붙임
-퍼펙트 설계에 당해버렸다아아앗!
-5252, 어느새 자본주의의 파동에 휘말렸던 거냐구웃!
시청자들의 놀림에 이경복은 더욱 짙은 웃음을 흘렸다.
“에이, 제가 진짜 돈에 미쳤으면 포인트가 아니라 현금으로 결정되는 걸로 했겠죠. 저는 정말 순수하게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이어 그는 자리를 잡아가는 돌림판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거 영역이 넓다고 안심하시면 안 됩니다. 결국 확률이거든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
-진짜 ㅋㅋ 갓플의 운이면 어떻게 될지 모름
-만해의 갓플이다 이마리야
-후원금으로 했는데 확률 적은 거 나오면 얼탱이 바로 터질듯ㅋㅋㅋㅋ
-아 ㅋㅋ 포인트라서 웃을 수 있는 거자너
시청자들의 공감이 쏟아지는 와중 제한시간이 끝났다.
이경복은 크게 손뼉을 쳐서 투표의 종료를 알렸다.
“자, 이제 투표가 끝났습니다! 그럼 최종 결과를 보도록 하죠!”
이경복의 말과 함께 돌림판 옆에 각 게임의 영역 비중이 나타났다.
[게임 후보]
[1. 엘븐스크롤 – 63.8%]
[2. 언트레블드 – 14.3%]
[3. 모터 호라이즌 – 11.7%]
[…]
[14. 메탈 펀치 – 2.6%]
[15. 킹덤 오브 파이터즈 – 0.5%]
[16. 스피릿 파이터 – 0.3%]
추천수가 가장 많았던 게임답게 엘븐 스크롤이 돌림판의 절반을 차지했다.
-와 ㅋㅋㅋ 딱 봐도 3파전이네
-엘븐 스크롤, 언트레블드, 모터 호라이즌이네
-아 곰보 장르가 단일화를 했어야 되는 건데…
-와씨 ㅋㅋ 격겜은 거의 멸망이네 ㅋㅋㅋㅋ
-메탈 펀치 언급한 후원 많은데 저거밖에 안 됨?
-그나마 해서 저 정도인 거임 ㅋㅋㅋ
-진짜 하향세긴 하구나 ㅅㅂ
시청자들 중 메탈 펀치 유저들은 이에 씁쓸함을 숨기지 않았다. 평소 꾸준히 방송을 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도 있었다.
“자, 결정의 시간이죠?”
이경복이 돌림판을 붙잡았다.
“결과는 무조건 승복이고, 번복이나 리트 없습니다.”
그 선언에 채팅창이 웃음으로 가득해졌다.
“그럼 갑니다!”
이경복은 세차게 돌림판을 돌렸다. 이번에는 진짜 무작위로 뽑기 위해서 신기도 발현하지 않았다.
-엘스? 엘스? 엘스?
-제발 모터 호라이즌!
-워쳐 진짜 재밌는데 ㅠㅠ
-곰보 겜 아무거나 한 번만!
-이러다가 막 스피릿 파이터 걸리는 거 아님? ㅋㅋㅋ
시청자들은 제각기 자신이 투자한 게임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내 돌아가던 돌림판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아 ㅋㅋ 속도 보니까 엘스네
-킹직히 절반 넘었는데 ㅋㅋㅋㅋ
-넘모 아까운 것이고요?
-근데 엘븐 스크롤이 재밌긴 해
-곰보 모드 받아서 해보쉴?
돌림판의 눈금은 절반을 차지한 엘븐 스크롤을 훑듯이 움직였다. 하지만 눈금은 멈출 듯 멈추지 않았다.
-오? 오오?
-아직 속도가?
-오!? 엘븐 스크롤 아닌데?
-넘어가나? 넘어가나? 넘어가나? 넘어가나?
-않이;;; 설마 또 만해라고?
눈금은 기어가듯 엘븐스크롤의 끄트머리에 걸쳤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눈금이 부드럽게 멈추었다.
그리고 그 결과.
-왘ㅋㅋㅋㅋㅋㅋㅋㅋ
-무친? 이게 걸리네
-아니 ㅋㅋㅋ 다른 의미로 게말콘 마렵네
-엘븐 스크롤 투자한 트수들 멘붕 ㅋㅋㅋ
-역시 단일화가 답이었고?
이경복은 결정된 게임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결정이 났네요! 이번에 할 게임은 바로!”
박주호가 재빠르게 멘트에 맞추어 게임 로고를 띄웠다.
“메탈 펀치입니다!”
그 자신 있는 선언에 시청자들은 흡족해했다.
-이와 이렇게 된 거 도장깨기 가즈아!
-야! 고인물! 퍼펙트 뉴비, 갓플이 간다!
-격겜 판에도 퍼펙트 상식을 전파해주겠다 이마리야
-아 ㅋㅋ 10꽉 딱 대!
이경복이라면 그 악명 높은 격투게임 판에서도 활약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