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 스텝 바이 스텝 (1)
메탈 펀치 강국으로 손꼽히는 나라는 본고장인 일본과 어깨가 태어난 한국만이 아니었다.
비록 격투 게임의 규모 자체가 다른 장르에 비해 적다고는 하지만 플레이어의 대결, PVP에 집중된 장르인바 세계 대회도 매년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중 격투게임 세계 대회로 가장 유명한 건 ‘International Versus Organization’, 속칭 아이보(IVO)가 주최하는 챔피언십이었다.
아이보는 매년 미국에서 여러 격투게임 세계 대회를 주최했고, 메탈 펀치의 전설이 된 어깨 역시 아이보 챔피언십을 연이어 제패하면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만큼 미국에도 격투게임의 팬이 많았고, 퍼튜브에 구독자인 미국 팬들이 이경복의 메탈 펀치 영상을 리딧에 올린 건 우연이 아니었다.
[-WTF? 이게 1일차 플레이어라고?]
[-Nah, 퍼플이라면 이 정도는 가능하지!]
[-그의 피지컬은 매번 볼 때마다 새로워. 모든 게임 장르에 엄청난 적응력을 보여주잖아?]
[-Damn! 퍼플은 Plugger들을 다루는 방법을 잘 아네!]
[-한국에도 엿 같은 Plugger들이 많은 모양이야 lol]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머저리들은 어디에나 있지]
[-Shit, 근본적으로 메탈 펀치에서는 연결 오류를 악용하는 플레이어들을 쫓아내야 할 텐데]
그들은 랜뽑러에 대한 이경복의 대처에 흡족함을 표했다. 하지만 이내 이어 올라오는 영상들에 대해 점차 감탄을 터트렸다.
[-Wow, 연승 속도가 정말 미쳤는데?]
[-이 속도대로라면 이름답게 보라단까지는 금방 가겠어 lol]
[-퍼플은 1일차지만 이미 IVO 챔피언십에 출전해도 충분할 실력이야!]
[-Guys, 그는 메탈 펀치 프로게이머가 아니야. 아쉽지만 그는 소속팀이 없다고.]
[-어깨라면 그를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하지만 그의 실력과 잠재력을 보면 어깨와 같은 팀보다는 라이벌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해외 격겜러들도 그의 플레이를 보고 어깨와 견줄 정도라 판단했다. 메탈 펀치에서의 어깨의 입지를 생각하면 매우 후한 평가였다.
[-퍼플이 잘하는 건 인정하지만 어깨만큼은 아니지]
[-완전하게 동의해. 어깨는 메탈 펀치의 패왕이라고!]
[-어깨는 수년간에 걸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어. 단 하루의 플레이만으로 동급으로 평가하는 건 퍼플과 어깨, 양쪽 모두에게 실례일 거야]
때문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Yup, 어깨의 라이벌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도중 한 댓글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정확히는 그 내용보다 댓글을 쓴 사람 때문이었다.
[-시디크 애쉬?]
[-진짜 시디크 애쉬인가?]
[-Hey, 시디크! 지금 당신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 분위기가 비슷해!]
시디크 애쉬.
메탈 펀치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리라 생각했던 국가, 파키스탄에서 등장한 플레이어였다.
그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플레이와 뛰어난 실력으로 주목을 받았고, 어깨조차 감탄해 직접 승부하기 위해 파키스탄까지 원정을 갔을 정도였다.
이를 계기로 프로게이머가 되어 IVO 챔피언십에 진출, 연승을 거듭해 어깨와 결승전까지 치른 인물이었다.
[-Huh? 실력은 정말 좋네. 근데 이 정도 실력으로 왜 빨강단에 머무르는 거야? 어뷰징 아니야?]
그는 이경복의 플레이 영상에 이해할 수 없다는 투의 댓글을 남겼다. 뒤늦게 영상을 확인한 그는 댓글이 쌓인 덕분에 이경복이 1일차임을 몰랐다.
[-맙소사, 대체 한국은 무슨 나라야? 따로 메탈 펀치 프로게이머를 키워내는 커리큘럼이라도 있나? 어깨 하나면 충분한 거 아니야?]
이에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짚어주자 시디크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못내 아쉬움을 표했다.
[-Ahh! 파키스탄에서 매칭이 잡히지는 않겠지? 이런 면에서 어깨가 진짜 부러워. 난 로컬 플레이어들만 상대하는데, 어깨는 이런 고수들과 경험을 쌓잖아? 진짜 불공평하다고!]
그 역시 격겜러인 바, 승부욕은 누구 못지않게 강하기 때문이었다.
* * *
비슷한 시각, 어깨의 가상현실 스튜디오.
그는 세렝게티TV에서 방송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와, 이거 생방으로 봤으면 진짜 재밌었겠는데?”
어깨는 이경복의 10선 승부를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진짜 개꿀잼있다니까? 그거 때문에 메탈 펀치 메타 완전히 난리 났었어.”
그의 맞은편에는 친한 동생이자 어깨가 소속된 프로게이머 팀 ‘DRS’의 일원인 ‘채널’이 있었다.
“솔직히 시디크 처음 나왔을 때보다 더 장난 아니야. 아니, 처음 보는 버스트 무브를 다 막아버렸는데 이거는 놀랄 수밖에 없지.”
채널의 말에 어깨는 탄사를 표했다.
“그러니까 내 말이. 퍼플 님은 진짜 괴물 신인이다 괴물 신인이야. 정말 마음 같아서는 시디크 때처럼 바로 만나러 가고 싶을 정도야.”
“근데 지금 상황이 파키스탄 가는 거보다 더 어렵잖아.”
채널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어깨가 미간을 찌푸리며 탄식했다.
“아, 진짜 내 말이…! 진심 세렝게티만 아니었으면 바로 합방 요청했을걸?”
“그럼 형 대신 내가 요청해볼까?”
채널이 놀리듯 어깨를 약 올렸다.
같은 팀이지만 방송하는 플랫폼이 다른 덕이었다. 채널은 세렝게티가 아니라 트라이 파트너 스트리머였다.
“야, 맞을래?”
“아니, 당연히 농담이지. 내가 형처럼 다른 사람들 이벤트 상품 먹을 정도로 뻔뻔한 줄 알아? 일면식도 없는데 다짜고짜 합방하자고 하게?”
“아니, 인마! 그건 컨텐츠지, 컨텐츠!”
어깨의 반응에 채널은 웃음을 터트렸다. 어깨도 피식 웃고는 헛기침으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야, 진지하게 세렝게티랑 딜을 좀 해볼까?”
“딜? 어떻게?”
“지금 분위기 올라왔을 때 이어나가야 되잖아. 퍼플 님이 흥미 잃기 전에 이슈를 좀 만들어줘야 판이 살지.”
“그거야 그렇긴 한데…”
채널은 그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머리를 내저었다.
“근데 지금 퍼플 님 주가가 장난이 아니잖아. 이렇게 뜬 라이징 스타가 없어요 또.”
“그러니까 기회지!”
“아니, 형 좀 끝까지 들어봐. 그러니까 더 세렝게티 쪽에서 견제할 수밖에 없지.”
어깨처럼 채널도 진지한 투로 말을 이어갔다.
“세렝게티 입장에서 생각해 봐. 안 그래도 트라이에서 퍼플 님이 활약 중이잖아? 솔직히 되게 마음에 안 들 거거든. 왜냐? 시청자들 다 그쪽으로 몰리니까. 그런데 여기서 형이랑 합방을 한다?”
“하… 역시 좀 그렇지?”
“좀 그런 수준이 아니지. 이거 트라이로 시청자 넘어 갈까 봐 무서워서 못 한다니까? 세렝게티 쪽에서는 득보다 실이 너무 커요.”
어깨는 그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마른세수를 했다. 그는 장난 반, 진심 반이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야, 그럼 이건 어때? 합방 안 시켜주면 내가 트라이로 이적한다고 하는 거지.”
“참나, 형이 안 그럴 거 누구나 다 알아. 세렝게티 후원으로 연 대회가 얼마나 많은데…”
채널은 그리 대답하다가 눈을 번쩍 떴다.
“잠깐, 대회?”
“응?”
“형, 그러지 말고 두 플랫폼 전부 끌어들이는 거 어때?”
“뭔 소리야? 얼른 말해봐.”
어깨가 흥미를 보이자 채널이 떠오른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세렝게티도 대회 때는 트라이 스트리머들 와도 별말 안 했잖아.”
“어, 그랬지. 뭐… 워낙 메탈 펀치 하는 사람이 적기도 했으니까.”
“그래, 솔직히 한국에서는 ‘어깨 주최 메탈 펀치 대회’가 곧 아이보 챔피언십이나 다름없는 거거든.”
“크흠. 야, 말을 또 뭘 그렇게…”
“중요한 건 우리나라 메탈 펀치 대회는 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거지.”
“아하…”
그 말에 어깨도 채널이 의미하는 바를 눈치챌 수 있었다.
“세렝게티와 트라이, 플랫폼 대항전을 진행해보자?”
“그렇지! 세렝게티 대표 팀이랑 트라이 대표 팀 대결을 진행하는 거야. 당연히 형은 세렝게티 대표가 되겠지?”
“물론 그래야지.”
“그래, 그러면 세렝게티도 딱 각이 나오거든. 형이 또 우승하겠구나 싶잖아. 그럼 세렝게티가 트라이를 상대로 이기는 그림이 나온다고.”
“그렇게 되면 세렝게티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고?”
어깨와 채널 모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두 사람 모두 메탈 펀치에 애정이 있어 프로게이머가 된 바, 게임판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야, 이거 괜찮네. 바로 내일 얘기 좀 해봐야겠다.”
어깨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거 성사되면 퍼플 님 무조건 참가할 거야. 내가 방송 보니까 딱 알겠더라고.”
격투게이머에게는 비단 실력만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분도 승부욕 진짜 강하신 분이야. 격겜러 자질이 있으시다니까.”
격투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승리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 * *
이른 새벽.
이클립스는 방송을 켜고 미스틱 리그를 플레이하고 있었다.
[패배]
그의 분투에도 게임은 패배로 끝났다. 시청자들은 이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클 경이 탑은 완전히 장악했는데 ㅅㅂ
-팀 밸류차이 무엇?
-티어 올라오니까 확실히 팀빨 받긴 하네
-ㄹㅇㅋㅋ 오히려 저티어에서는 이클 경이 솔로 캐리했는데
티어가 높아질수록 개인의 실력보다는 팀워크와 전체적인 밸류가 중요해졌다. 이에 따라 이클립스의 선전에도 패배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전투에 만약은 없소.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도망치는 것은 기사의 수치, 가신들의 걱정은 고마우나 더 거론할 필요는 없소이다.”
시청자들의 아쉬움에 이클립스는 그들의 주의를 돌렸다.
“시간이 늦었구려. 가신들도 각자의 의무를 행해야 하는바,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야겠소.”
-소인은 아직 생업에 종사하지 않소이다 ㅠㅠ
-이클 경! 마지막은 승리로 장식해야 하는 것이 아니오!
-진정 충심을 보인다면 이클 경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법이거늘!
-간자다! 간자들을 쳐내라!
-이클 경, 다음 전장에서 다시 뵙겠소!
-오늘도 기사도를 충전하고 갑니다
이클립스는 방송을 마쳤다.
채팅창이 사라지고 그는 자신의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흠…”
그러나 그는 당장 캡슐에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침음과 함께 생각에 잠겼다.
‘슬슬 미스틱리그는 관둘 시점일지도 모르겠어.’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그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 점이었다. 마지막 게임처럼 그의 실력과는 별개로 부당하게 느껴지는 결과를 자주 접한 덕이었다.
‘다시 프롬 게임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으려나…’
문제는 그의 게임 경험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머리를 내저었다.
‘일단 퍼플 님 방송이나 좀 볼까.’
막 방송을 끝낸 참이라 그런지 스트레스가 쌓여 있던 그는 휴식을 위해 퍼튜브를 확인했다.
최신 영상으로 올라온 메탈 펀치 영상이 스튜디오 스크린에 비춰졌다.
“오…”
이클립스는 격투 게임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금방 영상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단순히 이경복의 플레이가 대단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엘든 시리즈랑 유사한 점이 많네.’
1:1의 승부, 치열한 심리전과 촌각을 다투는 피지컬 싸움. 메탈 펀치는 엘든 시리즈에서 즐겨했던 결투와 일맥상통하는 면모가 많았다.
엘든 소울에서 느꼈던 긴장감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미스틱과도 비슷한 면이 있고.’
떠오르는 건 엘든 시리즈만이 아니었다. 커맨드에 따라 캐릭터마다 정해진 스킬이 발동된다는 점은 미스틱 리그와도 유사한 면이 있었다.
즐겨했던 두 게임을 버무린 듯한 게임성이 느껴졌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퍼플이 플레이까지 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아쉽게도 격투 게임이라…’
들떴던 기분은 이내 가라앉았다. 오직 검술만을 단련해왔던 그였고 방송의 컨셉도 기사였으니 신체 그 자체를 무기로 삼는 ‘격투’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이윽고 영상이 끝나자 이클립스는 캡슐을 나가려 했다.
“…이건?”
그런데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바로 영상이 끝난 뒤에 나온 관련 영상 목록이었다.
큐튜브의 알고리즘은 평소 검술에 매진하는 그의 취향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에 검술과 메탈 펀치를 결부시킨 알고리듬은 이클립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영상을 후보로 보여주었다.
“의적, 츠지모토?”
그리고 알고리즘은 그의 흥미를 정확히 잡아냈다. 덕분에 이클립스는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격투 게임인데도 검을 쓰는 캐릭터가?’
메탈 펀치의 캐릭터 중 하나인 츠지모토는 검을 사용했다. 비록 이클립스가 주로 익혀온 ‘중검’과 달리 ‘쾌검’에 적합한 일본도였지만 상관없었다.
‘이거라면 나도…!’
이클립스는 다시 자리를 잡고 츠지모토에 관련된 영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