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 스텝 바이 스텝 (2)
늦은 아침.
이경복은 평소대로 운동을 끝내고 막 식사를 마친 상태였다.
‘생각보다 맛이 괜찮네?’
그는 빈 샐러드 접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제당 관계자들이 빈말을 한 건 아니었다. 샘플이라며 보내준 제품들은 직원들을 나눠주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했다.
정리를 하는 사이 우웅하는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피규어 배송 모두 완료]
[>바로 후기 올라왔다]
확인해보니 박주호가 보낸 톡이었다. 그 아래에는 친절하게 링크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오.”
이경복은 작은 탄사와 함께 팬페이지에 올라온 후기를 확인했다.
[게마루콘 피규어 키따!]
[와 ㅋㅋ 진짜 이건 말이 안 나온다]
[ㅁㅊ 친필사인지 동봉!?]
비슷하게 도착한 사람들이 많은지 인증글이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었다.
이경복은 이에 웃으며 가장 댓글이 많은 게시글을 열었다.
[어제 즐겁게 방송 보고, 2차로 퍼튜브까지 시청 후 좋아요와 댓글까지 남긴 뒤 늦게 잔 평범한 나.
늘어지게 낮잠까지 조지려는데 이게 웬걸?
아침부터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속으로는 ‘아잇 C8!’했지만 외유내강인 와따시, 눈 비비며 일어나 버린 거시에요.
나가보니 사람은 없고 웬 박스 하나가 덩그러니.
순간 ‘뭐지 ㅅㅂ? 또 하나의 내가 지름신 영접해서 주문한 것이 있었나?’ 하는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려는 데?
박스 표면에 붙은 ‘팀 퍼펙트’가 안구신경 자극하자마자 졸음쉑 ㅋㅋㅋ 바로 빤스런 때려버렸자너
바로 ‘머뭇거릴 틈이 없다!’외치면서 즉.시.개.봉
인증 첫 빠따는 못 참지 ㅋㅋㅋ
바로 사진 먼저 박아야지 했는데 이렇게 글 싸재끼는 이유?
(사진)
캬 ㅋㅋ 갓플 감동 갱킹 수쥰 어디 안 가쥬?
피규어에 예고 없는 친필 사인지 동봉 무엇?
바로 각 잡고 셀프로 ‘조용히하세욧’ 깡 때리고 ‘퍼펙트-인증’ 가기로 했잖슴 ㅋㅋㅋㅋ
(사진)
(사진)
(사진)
(사진)
크으! 여기 디테일 보임?
레이저 각인이 사인지에 적힌 친필 메시지랑 완전 똑같자너 ㅋㅋ
킹직히 이거 그냥 폰트로 때려 박아도 되는데 직접 떴다는 거잖슴
아니;;; 왜 이렇게 혜자에요!?
???: 이렇게 까지 하면 뭐가 남나요?
갓플: 여러분이 남습니다.
이번 OTP 참가는 내 생애 가장 잘한 일 중 2번째로 승격했음
1순위? 아 ㅋㅋ 그건 당연히 갓플 방송 본 거지
내 트수 인생 한 점 부끄럼이 없도다!]
글에서 느껴지는 텐션에 이경복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내 그의 시선은 아래에 달린 댓글로 이동했다.
[-와씨 뭔 글이 이렇게 시끄러워 ㅋㅋ]
[-비글이신가?]
[-외유내강 ㅅㅂㅋㅋㅋㅋㅋ]
[-않이;;; 드립을 혼자 다 치시면 우린 뭐 먹고 삽니까요!?]
[-근데 한정판 굿즈 받으면 나도 저세상 텐션 쌉가능임ㅋㅋㅋㅋ]
[-헐? 이거 한정판임?]
[-아 맞네 ㅋㅋㅋ 친필 각인은 한정판 전용일 듯]
[-굿즈 판매하면 몇 천은 가뿐히 넘을 텐데 그걸 어케 하나하나 다 쓰냐고 ㅋㅋㅋ]
[-사인 각인 정도는 해줄 듯?]
[-그래서 언제 파냐구웃!]
[-ㄹㅇㅋㅋ 일단 팔기나 하시라구욧!]
[-진짜 이거 보니까 더 뽐뿌오네 ㅋㅋㅋㅋ]
[-매일 아침 퍼보충 되는 기분일 듯ㅋㅋㅋ]
수십 개가 넘는 댓글에 이경복의 미소가 짙어졌다.
‘노력한 보람이 있네.’
팬들이 기뻐해주는 모습을 보니 헛된 일이 아니라는 게 실감된 덕이었다.
[>준비 다 됐나?]
[>5분 내로 도착한다.]
이내 떠오른 박주호의 톡에 그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빠르게 답장을 했다.
[>ㅇㅇ 금방 내려감]
이경복은 즉시 옷을 갈아입고 아래로 내려갔다. 박주호의 차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는 차에 올라타며 인사를 건넸다.
“아침부터 고맙다야.”
“고맙기는. 매니저의 일이지.”
박주호는 실소를 흘리며 네비게이션을 조작했다. 목적지는 피규어를 만들어준 3D프린터 업체였다.
“뭐, 간밤에 따로 회의할 안건이 생긴 건 아니지?”
“어, 특별한 사항은 없다.”
오늘은 팀 퍼펙트 회의 대신 업체와 미팅이 잡혀 있었다. 부드럽게 엑셀을 밟으며 박주호가 입을 열었다.
“굳이 네가 직접 갈 필요는 없긴 한데.”
“에이, 그래도 내가 한 번은 봐야지. 샵팬덤이랑 미팅하기 전에 미리 업체랑 협의는 해둬야 되잖아.”
이전 지놈과의 상담으로 알게 된 쇼핑 플랫폼 ‘#팬덤’, 그곳에 입점하기 전에 굿즈 생산에 대해 업체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내가 사장인데, 아무것도 몰라서야 되겠냐?”
“확실히 그것도 그렇지.”
“그리고 굿즈 판매를 계속하게 되면 쭉 관계 유지해야 되잖아. 직접 얼굴 보는 편이 낫지.”
이경복은 싱긋 웃으며 말을 맺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졌어도 결국 마지막은 사람이 하는 거니까.”
사람 보는 눈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 * *
미리 약속을 해둔 덕에 업체에 도착한 두 사람은 바로 사장과 대면할 수 있었다.
“저희가 규모는 좀 작아보여도 직접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그는 너털웃음과 함께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공정을 소개해주었다.
‘호인이시네.’
신기로 느껴지는 감각에 걸리는 건 없었다. 이에 이경복은 마음 편하게 그의 소개를 들을 수 있었다.
“여기가 제조섹터입니다. 이게 전부 다 3D프린터죠.”
“사람을 많이 안 쓰시네요?”
“일의 대부분은 3D프린터가 전담합니다. 직접 보셔서 아시겠지만, 디자인만 입력해주면 그대로 출력되거든요.”
“그렇죠. 정말 퀄리티가 괜찮았습니다. 선물 받으신 분들 전부 만족하시더라고요.”
이경복의 대답에 사장은 기분이 더 좋아졌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저희가 쓰는 프린터 모델이 정밀한 거기도 하지만, 품질 관리를 또 엄격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죠.”
“품질관리요?”
“이쪽으로 오시죠.”
사장을 따라간 이경복은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여기는 또 직원분들이 많으시네요?”
“그렇습니다. 이게 아무리 기계가 정밀하더라도 결과물의 마감까지 완벽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저희 직원들이 제품을 검수하고 마감까지 확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서 디테일이 깔끔했구나.”
“맞습니다. 알아주시니 다행이네요!”
짧은 순방을 마친 세 사람은 응접실로 향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지금부터였다.
“대량 생산을 생각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사장이 먼저 운을 띄웠다.
“저희로서는 무척이나 기쁜 이야기입니다만, 하나 확실히 말씀 드릴 게 있습니다.”
그는 미소를 머금으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주셔도 모든 생산 라인을 계약하실 수는 없습니다.”
“네?”
이경복이 놀라 되물었다. 대량 생산을 위해서라면 최대한 많은 라인을 가동시켜야 되지 않나.
“저희 회사, 그리고 저와 제 직원들이 지금까지 먹고사는 건 전부 단골 고객님들 덕분입니다. 비록 정기 계약을 한 건 아니지만 모든 기계를 할당하면 그분들이 필요하실 때 쓸 수가 없으니까요.”
“아…”
이경복이 그 말에 작게 탄성을 흘렸다. 일종의 동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해외 팬들이 늘어나도 우리나라 시청자들을 생각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려나.’
그 사이 박주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업체 사정은 이해합니다. 단기 계약 때문에 기존 충성 고객님들을 놓치면 장기적으로 손해일 테니까요.”
“옳은 말씀입니다. 오히려 사장님께서 수완이 좋으시니 안심이 되네요.”
이경복이 웃으며 첨언했다.
“저희도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 고객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이해해주신다니 거듭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전에 만든 피규어를 굿즈로 판매하실 예정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다행히 저희도 굿즈용 제품을 몇 번 만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판매 기간은 상시 판매 쪽으로 생각 중이십니까?”
그 물음에 박주호가 손을 내저었다.
“상시는 아닙니다. 아무래도 첫 판매이다 보니 신중하게 접근할 예정입니다.”
“네, 일단은 1일 한정 판매로 진행해서 최대한 재고량을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잡아보려고요.”
이어지는 이경복의 말에 사장이 손뼉을 쳤다.
“아, 정말 좋은 생각이십니다. 혹시라도 상시 판매 쪽이면 조심스럽게 다른 방식을 권유 드리려고 했거든요.”
그는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리듯 눈을 굴리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판매량 예측을 잘못해서 재고 떠안은 분들 몇 번 봤습니다. 어우, 근데 정말 답이 안 나오시더라고요. 간혹 환불 요청까지 하시는데 이게 또 맞춤 제작이다 보니 어렵거든요. 서로 얼굴 붉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 그러네요.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일단은 판매량을 적게 잡고 늦게라도 추가 생산을 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사장은 이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넌지시 물어봤다.
“저번에 발주 주신 129개 보셔서 아시겠지만, 퀄리티는 문제가 없었거든요. 하루 200개에 4주 계약으로 해서 일단 4천 개로 잡아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 물음에 이경복과 박주호는 서로 눈빛을 나누었다.
“그게 최대일까요?”
이경복이 조심스럽게 되묻자 사장은 눈을 껌뻑였다.
“처음 만드시는 굿즈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네, 처음입니다.”
“어, 음… 제 경험상 4천 개도 꽤 많은 양이실 텐데요. 중간에 재고가 남는다 싶으면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는 게…”
사장은 혹여나 고객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했다.
‘굿즈 만들 때는 다 희망에 부푼단 말이지.’
앞서 재고에 관해 얼굴 붉힌 이유를 얘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판매량을 너무 높게 잡으면 서로에게 좋을 일이 없었다.
“혹시 1만 개를 맞추려면 4주로는 부족할까요?”
그러니 이어지는 이경복의 물음에 사장은 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1, 1만이요?”
“어디까지나 1차 판매량으로 잡은 수치입니다.”
박주호가 옆에서 설명을 덧붙이자 사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1차라면 2차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건 과대평가라고 생각할 수치가 아닌데?’
어중간한 숫자였으면 기존 경험을 토대로 거절하든 설득을 하든 했을 터였다.
하지만 눈앞의 고객에게 나온 수치는 그 기준을 초과해버렸다.
‘생각보다 엄청 유명한 사람인가?’
사장의 머리는 재빠르게 돌아갔다.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 아유! 당연히 가능합니다! 저희가 원래 주 5일 근무를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지만…”
기본 1만 개 발주라면 최악의 경우 얼굴을 붉히더라도 해야 할 규모였다.
“주말 출근 희망자 한 번, 뽑아보겠습니다!”
사장은 당차게 의지를 피력했다.
눈앞의 손님들은 그 예상보다 더 큰 손이었다.
* * *
이경복은 업체와 가계약을 맺고 자리를 떠났다.
“그럼 이제 플랫폼이랑 미팅을 진행하면 되겠네.”
“샵팬덤에 오퍼 넣어둘게. 입점이 확정되고 생산을 시작하면 될 거 같다.”
일단 ‘#팬덤’에 입점이 결정되어야 판매루트가 확보될 터였다. 굿즈 생산을 먼저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박주호는 번화가에 천천히 차를 세웠다.
“여기면 될까?”
“어, 땡큐.”
이경복이 이에 내리려는 순간 박주호가 그를 붙잡았다.
“이거 쓰고 다녀라.”
“마스크?”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하관만으로 이경복을 알아볼 사람은 거의 없을 터였다. 그러나 박주호는 가능성이 0이 아닌 이상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래, 뭐. 고맙다야.”
“방송 때 보자.”
“어, 운전 조심해라.”
이경복은 마스크를 쓰고 번화가를 거닐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친숙한 얼굴이 보였다.
“퍼, 아니 어서 오세요.”
반갑게 그를 맞이하는 사람은 바로 이클립스였다. 이경복이 눈웃음을 지으며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세요.”
“하하, 이게 아직 입에 안 붙어서 그런지 어렵네요. 제가 바쁘신데 부른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아, 전혀 아니에요. 마침 나올 일도 있기도 했고, 그 일도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경복은 손을 내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메탈 펀치 시작하신다더니?”
“아, 네네. 어제 퍼튜브 영상 보고 꽂혔거든요. 찾아보니까 츠지모토라고 검을 쓰는 캐릭터가 또 있어서.”
이클립스가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이내 그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이게 연습을 좀 하다 보니 AI는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퍼, 경복 님께 부탁을 좀 드릴까 해서…”
“연습상대요? 그거야 어렵지 않긴 한 데.”
이경복은 의아함을 숨기지 않았다. 메탈 펀치를 연습하고 싶으면 직접 만날 필요가 없지 않나.
“아, 제가 도움을 요청하는 건 메탈 펀치 쪽이라기보다는 검술 쪽입니다.”
“검술이요?”
“예, 제가 주로 중검을 다뤘다보니 츠지모토가 쓰는 일본도는 영 어색해서요.”
“어, 저도 따로 일본도 쓰는 법을 배운 적은 없는데요.”
이경복이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이클립스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경복 님은 안 배우셔도 감각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직접 오프라인 대련을 요청 드리는 겁니다.”
자신 보다 더 확신하는 그 모습에 이경복은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그러면 왜 여기에? 검술동호회 도장이 더 낫지 않나요?”
검술 대련이라면 일전에 이미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이클립스가 약속 장소로 잡은 곳은 바로 AR오락실이었다.
“아, 그게… 아무래도 제가 거기서는 사범으로 여겨지고 있지 않습니까. 서양 검술 동호회인데 일본도 잡기가 좀 눈치가 보여서요.”
이클립스는 민망한 듯 뒷목을 쓸어내리며 이유를 밝혔다.
“아, 그리고 거기에는 일본도가 없기도 하고요.”
“그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네요.”
이경복은 이에 웃고는 눈을 돌렸다. 일련의 상황으로 보아 이클립스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REAL 메탈 펀치]
AR오락실 버전으로 나온 메탈 펀치.
그것으로 대련을 하자는 게 분명했다.
“오락실도 되게 오랜만이긴 한데 한번 해보죠.”
“정말 감사드립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넙죽 감사하는 이클립스에게 이경복이 웃으며 답했다.
이클립스는 신속히 2인용 요금을 지불하고 AR 스테이지로 들어섰다.
“이게 보호 슈츠입니다. 이렇게 파츠 별로 끼우시면 됩니다.”
“오, 신기하네요.”
“헬멧은 고글이 있으니까 꼭 내려주세요.”
“아, 고글도 있구나.”
두 사람은 슈츠 착용까지 마치고 ‘츠지모토’ 캐릭터 전용으로 준비된 모형 검을 잡았다.
“뭔가 애들 장난감 같은 느낌이긴 한데.”
“홀로그램이 입혀지면 그래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두 사람은 지정된 위치로 움직였다.
“오? 뭐야?”
“리얼 메탈 펀치이야?”
“와, 이거 아직 하는 사람 있구나.”
그 사이 오락실 손님들 몇몇이 흥미를 보였다. ‘리얼 메탈 펀치’는 AR게임 중에서도 특히 몸을 많이 쓰는 게임이었기에 하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다.
그리고 몸이 힘든 것보다 사람들이 꺼리는 이유가 있었다.
“저 사람들 낮술한 거?”
“아닌 거 같은데?”
“와, 이거 맨정신으로 하기 힘든데.”
“아니면 벌칙게임이라도 하는 건가?”
“어느 쪽이든 개꿀잼이겠다.”
아무리 AR로 홀로그램이 입혀진다고 해도 그 동작은 그대로 반영이 됐다.
일반인이 게임 속 캐릭터와 같이 움직일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이에 당사자들은 진심어린 플레이를 한다고 해도 제3자의 눈에는 허우적거리는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기계음과 함께 홀로그램이 슈츠에 투사됐다. 두 사람 모두 메탈 펀치의 캐릭터, ‘츠지모토’의 모습으로 구현됐다.
또한 장난감 같았던 모형 검은 예리한 일본도로 덮어 씌워졌다.
파이트 선언과 함께 두 사람이 움직였다.
실실 웃고 있던 구경꾼들의 웃음소리가 멎은 것도 그때였다.
“뭐야?!”
“미친…!”
“아니, 개 쩌는데?”
그리고 웃음소리의 빈자리에는 경악에 가까운 탄사가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