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285화 (285/491)

285화 - 오피셜 가이드 (1)

메탈 펀치 스트리머, 어깨의 집.

그는 초조한 표정으로 방을 서성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얘기가 길어지네…’

그는 플랫폼 대전과 관련해 세렝게티 대표인 방한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트라이 쪽과 상의를 해보고 소식을 전달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가리인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이에 그가 한숨을 내쉰 순간이었다.

우웅하는 진동 소리에 그가 눈을 돌렸다.

‘왔다!’

진동이 두 번째 이어지기도 전에 그는 바로 통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우, 엄청 빨리 받네.>

방한울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이내 그가 전한 내용은 그리 웃을 수만은 없는 내용이었다.

<본론부터 얘기하자면, 이게 좀 애매해졌어.>

“어떤 식으로…?”

<내가 뭐 직접적으로 얘기를 한 건 아니야. 그냥 우리 어깨 쪽에서 기획 좀 한 게 있어서 자리 한 번 마련하고 싶다. 그 정도로 전했거든? 그런데 그쪽도 그것만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모양이더라고.>

이내 방한울은 짧게 혀를 찼다.

<아, 근데 이쪽에서 확답을 안 주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고 뭐 아예 거절도 아니야. 한번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단다. 그런데 자네도 알잖아? 비즈니스에서 ‘긍정적 검토’라는 말은 그리 긍정적인 뉘앙스가 아니거든.>

“아하하… 역시나 쉽지가 않네요.”

어깨는 그리 말하다가 목소리 톤을 올렸다.

“아무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 대표님!”

<그래그래, 너무 처져있지는 말고.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는 거, 이해하지?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더 나가기는 좀 그렇잖아.>

물음이었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방한울은 자기 몫은 여기까지라고 선을 그은 것이었다.

“아유, 물론이죠. 대표님이 직접 움직여주셨는데요.”

<뭐, 검토 끝나고 직접 자네한테 연락 준다니까 일단 기다려봐.>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쪽에서 이렇게 나오는 거 자네 책임도 있어.>

“예?”

갑자기 책임을 묻자 어깨는 당황스러웠다.

<트라이가 미적지근한 거? 다 자네 실력 덕분 아닌가. 그쪽에서도 어깨가 들어온다니 승산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하하, 그 책임을 말씀하시는 거였군요.”

<그래그래, 일이 어떻게 끝나든 나중에 밥이나 한 끼 하자고.>

“예, 감사합니다!”

방한울 나름의 위로였다. 그러나 큰 효과는 없었다.

어깨는 통화를 끝내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응?”

실망에 잠기기도 전에 재차 진동이 느껴졌다. 이에 그는 혹시나 트라이의 연락일까 싶어 눈을 돌렸지만.

아쉽게도 아니었다.

“오, 트리플 상! 히사시부리!”

그럼에도 그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통화 상대는 일본 챔피언인 트리플이었다.

여러 번의 대전으로 연을 맺고 꽤 친숙한 관계인 프로게이머였다.

<아, 방송 중이세요?>

“응? 아닌데?”

<그래요? 형님, 오늘 뭔가 텐션 높으신 거 보니까, 퍼플 님 방송 보셨구나?>

“퍼플 님 방송? 아니, 왜?”

<에?! 방송도 안 하시는데 퍼플 님 방송도 안 보고 뭐 하시는데요?>

어깨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마치 퍼플 방송을 안 보고 있는 게 잘못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 같지 않나.

“아니, 나도 일이 있었지.”

<헤에, 또 뭔가 꾸미시는 겁니까? 아무튼 그래도 빨리 퍼플 님 방송 다시 보세요.>

“뭔데 그래?”

<말해도 못 믿으실 걸요? 직접 보시는 게 가장 빨라요.>

트리플은 이에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형님이랑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려고 알려드리는 겁니다. 한동안은 공략법 연구로 바빠질 테니까요.>

“공략이라고?”

<아무튼 전해드렸습니다! 나중에 치사하다고 하지 마세요!>

“어어, 그래.”

통화를 끝낸 어깨는 눈을 끔뻑였다.

“텐션은 지가 더 높구만…”

그는 중얼거리며 트라이 어플을 실행했다. 퍼플의 채널을 막 찾아보려는 순간이었다.

우우웅하는 진동과 함께 그 위로 통화 알림이 왔다.

“예,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방송 플랫폼 트라이 마케팅 팀입니다. 혹시 스트리머 어깨님 되십니까?>

“아, 네네! 안녕하세요.”

예상보다 빠른 회신에 어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성심성의껏 기획한 이벤트 대전에 대해 답했다.

<음, 좋습니다. 세부사항은 미팅 같이하시고 확정 짓도록 하죠. 저희 쪽에서 메일 한 번 드리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미팅 때 뵙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어깨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걱정과 달리 미팅이 너무나 쉽게 성사됐다.

“예쓰!”

그러나 그에 대한 기쁨도 잠시, 어깨의 머릿속에는 의구심이 떠올랐다.

‘그런데 너무 갑작스러운데?’

방한울의 말과는 태도가 다르지 않나. 뭔가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퍼플 님이 뭘 했나?’

트리플의 연락도 그렇고 트라이의 태도도 그렇고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곧바로 퍼플의 방송을 확인했다.

‘이클립스 님? 이클 님도 메탈 펀치로 넘어왔다고?’

이클립스의 등장은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가 생각한 원인은 아니었다. 어깨는 다시보기로 방송의 앞부분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와, 이 자식 이거 자랑하려고 그런 건가.”

이내 얏타맨과 트리플의 등장 장면에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결 양상의 그 표정은 경악으로 뒤바뀌었다.

‘캐릭터 스킬을 재현해?’

그가 느낀 충격은 당사자인 트리플이 느낀 정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거, 이러면 메타가 아예 뒤집힌다.’

같은 프로게이머라도 트리플이 다루는 캐릭터 풀과 어깨의 캐릭터 풀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런 방식이 정착되면 반격기 기믹은 물론이고 타격 쪽도 마찬가지로 티어가 뒤바뀐다. 오히려 스킬 동작이 단순한 쪽이 숙달이 쉬울 테니까.’

격투 게임 장르라고 해도 캐릭터 성능이라는 게 존재했다. 다만 캐릭터보다는 플레이어 실력이 중요한 장르이다 보니 부각이 되지 않을 뿐이었다.

어깨의 머릿속에도 스스로 정리해둔 캐릭터 티어와 상성이 있었지만.

‘완전 대격변이네.’

이경복의 기술 재현에 정리해둔 데이터가 어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걱정이 아니라 기쁨으로 다가왔다.

“햐, 이거 재미있네.”

지금은 메탈 펀치의 전설로 군림하고 있지만, 그 역시 처음 게임을 접했던 시기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하나씩 배워가던, 수없이 많은 패배를 겪고 승리를 다짐하며 머릿속에 새겨뒀던 패턴들.

그 역경을 딛고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을 때의 희열, 그것이 어깨가 생각하는 격투 게임의 원동력이었다.

‘이런 기분 진짜 오랜만인데.’

하지만 그마저도 정점에 올라선 뒤로, 비단 게임 자체만이 아니라 플레이어들마저도 고착화 된 뒤로는 희미해져 버린 추억이었다.

그런데 그 감정이 영상을 보자마자 되살아났다.

추억이 아니라 현실에서 느껴지는 고양감에 어깨는 미소를 지었다.

‘안 봐도 커뮤 쪽은 난리가 났을 거고.’

그제야 어깨는 트리플이 들뜬 이유를 이해했다. 트라이 쪽에서 결정이 빨라진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승산이 있다 이거지.’

새로운 플레이, 급변하는 메타.

그러나 이마저도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어깨의 시간이라면 트라이도 서두를 수밖에 없을 터였다.

‘역시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어.’

어깨는 흡족함을 만끽했다.

퍼플이 들어오자마자 판을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당장 그의 마음속을 차지한 기쁨의 원인은 따로 있었다.

“진짜 제대로네”

순수하게 격투 게임 플레이어로서의 승부욕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한 판 붙어봐야지.”

어깨는 어떤 식으로든 퍼플과의 승부를 보리라 마음먹었다.

* * *

이경복과 이클립스는 연승에 연승을 거듭했다.

[퀘스트 성공!]

[‘니가그러케싸움을잘해?’ 님이 ‘5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퀘스트 성공 메시지에 이경복과 이클립스 모두 감사를 표했다.

“아, 벌써 100인 연속 격파 끝났나요? 재미있는 퀘스트 감사드립니다!”

“그대의 공헌에 깊이 감사드리오!”

시청자들도 그에 같이 기뻐해주었다.

-2시간도 안 지났는데 50만원이 타버리네 ㅋㅋㅋ

-사실상 퀘스트가 아니라 후원하고 싶었던 거 아니냐곸ㅋㅋ

-닉넴을 싸움이 아니라 쌈으로 했으면 결과 달라졌을 텐데 ㅉㅉ

-ㄹㅇㅋㅋ 싸움 잘하는 건 팩트인데 쌈 잘 싸는지는 모름

-근데 퍼펙트-쌈이면 존맛일 듯

-아니 뭔ㅋㅋㅋ 상추쌈이냐곸ㅋ

이경복은 시청자들 드립에 실소를 흘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예상보다 늦은 시각이었다.

‘그래도 이클 님 수입이 연관된 부분이니까.’

퀘스트가 아니었더라면 이보다 앞서 방송을 끝냈을 터였다. 이경복은 가볍게 손뼉을 쳐서 주의를 환기시켰다.

“자,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 한마디에 채팅창에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히히 못가!

-좀 만 더 해줘잉!

-시간이 이렇게 된 건 자연현상입니다. 그냥 무시하시죠^^

-아시아가 시시하면 월드 매칭 ㄱㄱ

-ㄴㄴ 갓플은 씨도 안 먹힘 ㅋㅋ 이클 님 공략해야 됨

-이클립스 경! 더 하고 싶지 않소?

-???: 더 하고 싶다고 말해!

이경복은 그 반응에 웃으며 이클립스를 돌아봤다.

“시청자분들이 이클립스 님을 많이 찾으시네요. 한 마디 소감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주 귀중한 시간이었소. 퍼플 경 덕분에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깨달을 수 있었소이다.”

이클립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여, 본인은 퍼플 경을 보낸 뒤에도 진검승부인 순위결정전에 도전해볼 생각이오.”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조금 더 메탈 펀치 방송을 보고 싶은 분들은 이클립스 님 방송을 봐주세요!”

이경복은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며 멘트를 던졌다.

“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트바!”

작별 인사와 함께 화면이 암전됐다. 박주호가 바로 이클립스 방송을 호스팅해 시청자들을 옮겨주었다.

“으으음……!”

이경복은 캡슐에서 나와 기지개를 켰다. 스트레칭과 더불어 몸에 활력이 돌아왔다.

‘오늘도 재미있었네.’

그는 새삼 방송을 돌아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왔다. 이제 샤워를 마치고 잠을 청하면 오늘 하루는 끝이었다.

“응?”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기던 그는 연이은 진동소리에 눈을 돌렸다.

확인해보니 팀 퍼펙트 단톡방이었다.

[>대박! 진짜 대박이네요!]

[>와, 우리 사장님 또 월클 인정하셨네]

[>진짜 입사하길 잘했습니다ㅠㅠ]

가장 최근 채팅은 무척이나 감격한 조대한의 것이었다.

[>아, 퍼플 님 오셨나 봐요!]

[>야 ㅋㅋ 지금 개 쩌는 일 일어났음]

[>일단 상황 설명이 먼저다.]

이내 이경복이 확인했음을 알았는지 다른 사람들의 채팅이 이어졌다.

[>뭐야? 무슨 일인데?]

[>오늘 플레이 영상 관련 문의가 들어 왔어.]

[>야씨 ㅋㅋ 다른 데도 아니고 IVO다 IVO!]

이경복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IVO? 거기는 격겜 대회 주최하는 협회 아닌가?’

놀라움보다는 의아함이 앞섰다. 오늘 플레이 영상과 대회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혼잡하니 설명은 내가 하지.]

[>IVO는 대회 개최도 하지만 플레이어 양산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그 예로 격겜 진입장벽인 불친절한 튜토리얼 대체를 위해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지.]

[>그 가이드에 새로운 항목을 개설하고 싶은데 이번 영상을 쓰고 싶다는 요청이 왔다.]

박주호의 차분한 설명에도 이경복은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IVO에 대해서는 알겠는데 가이드랑 나랑 무슨 상관이야?]

[>야야, 이거 한 번 봐봐.]

[>(사진)]

최병훈이 불쑥 사진 하나를 전송했다. 이경복은 해당 사진을 클릭해 홀로그램으로 투사했다.

“미…믹크리?”

그것은 IVO에서 전달해준 신설 가이드 페이지 예시였다.

[Mimicry]

[This is the new skill of ‘Metal Punch’. Streamer ‘PerfectPlay’ is the first player who use ‘Mimicry’. Mimicry means that You can copy the skill of character to…]

이어지는 내용 설명 모두 영어였던 지라 이경복은 읽기를 관두었다.

[>이거 3줄 요약 가능?]

[>아! 가능합니다!]

[>1. 사장님이 최초 사용자임]

[>2. 해당 기술은 미믹크리(흉내내기)라고 명명]

[>3. 격투 게임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이자 강력한 무기가 될 것]

이경복의 물음에 바로 조대한이 답했다.

[>헐? 이게 뭐라고?]

[>야, 인마 이럴 줄 알았다ㅋㅋ]

[>확실히 그렇긴 한데 정말 나와 버리는군]

[>사장님한테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 않다는 거죠 ㅋㅋㅋ]

단톡방이 웃음으로 가득해지자 이경복도 실소를 흘렸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오늘 플레이 영상을 가이드에 예시로 올리고 싶다는 요청이다.]

[>아마 트리플 님이 먼저 IVO에 제보를 한 모양이다.]

[>메일에는 영상 사용에 대해 트리플 님 허락이 불필요하다더군]

[>역시 월클은 월클끼리 알아보네요!]

[>사장님의 2번째 공식 박제! 미스틱 리그랑은 또 차원이 다릅니다!]

조대한은 그 사실 자체에 기뻐했지만 최병훈은 실리적인 이유를 언급했다.

[>이번 건은 단순 명예만 얻는 게 아니지]

[>IVO에서 뭐 따로 챙겨준다거나 한 건 아닌데, 우리로서 메리트가 크거든.]

[>일단 저 페이지에 올라가는 영상이 우리 거잖아? 그러면 전 세계 격겜러들한테 광고가 되는 셈이에요 ㅋㅋㅋㅋ]

[>꼭 채널로 안 와도 광고 봐주면 수입이 또 짭짤할 거거든 ㅋㅋㅋ]

시청자 유입과 더불어 광고 수익이 발생할 건 분명했다.

이경복은 기뻐하는 팀원들의 모습에 미소 지었다.

[>그럼 거절할 이유는 없겠네]

[>좋은 일이라 다행이다.]

[>나머지는 부탁할게. 난 샤워하러 감!]

그리 톡을 남기고 이경복은 화장실로 들어섰다. 하지만 진동은 그 이후로도 더 이어졌다.

[>WA! 월클 박제!]

[>격겜러 중에 이제 우리 사장님 모르는 사람이 없겠네요 ㅎㅎ]

[>근데 내용 보니까 엄청 중요한 것 같던데?]

[>총겜만 하는 제가 봐도 가이드 문구가 되게 세던데요?]

[>ㅇㅇ 격겜 쪽에서는 완전히 혁명 수준인 플레이인 듯?]

[>청정수 유입으로 물갈이 된다더니 진짜로 될 것 같음 ㅋㅋㅋㅋ]

[>밈이 밈이 아니게 되어 버렸자너 ㅋㅋ]

팀원들은 새삼 실감했다.

[>원래 천재가 세계를 바꾸는 법이지.]

자신들이 어떤 사람과 같이 일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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