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 오피셜 가이드 (2)
늦은 밤.
평소라면 캐릭터 성능과 플레이어의 실력에 대한 논쟁 그리고 10선 매치 구인 게시글이 대부분일 메탈 펀치 메타
그러나 오늘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퍼펙트 이지선다는 뭔데 ㅋㅋ(+891)
[플플대전 갓플의 압승! (+671)]
[버스트 무브 올가드 올회피 불가능하면 개추 ㅋㅋㅋ (+583)]
[보라단 복귀한 양학러 토벌팟 모집!(+357)]
이경복이 방송에서 보여준 활약 덕분에 격겜러들 모두가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 타 커뮤에도 메탈 펀치 얘기 나옴]
[아 ㅋㅋ 이거 몰카잖슴]
[ㄹㅇㅋㅋ 어깨 우승했을 때 빼고는 얘기 나오지도 않는데]
[이게 바로 갓플의 영향력?]
[이래서 인플루언서가 중요한 거였고?]
비단 메탈 펀치 관련 커뮤니티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메탈 펀치 이야기가 나왔다.
장르적 특성상 워낙 폐쇄적인 성향이 짙었던 터였기에 그 차이를 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갓플 IVO 공식 박제 떴냐!?]
그리고 그 열기는 새로운 제보로 더욱 치솟았다. 바로 IVO에서 오늘 방송에서 보여준 이경복의 새로운 방식을 공식 가이드로 추가했다는 소식이었다.
[-????????]
[-낚시가… 아니야?]
[-이왜진 ㅅㅂㅋㅋㅋㅋㅋㅋ]
[-IVO 일처리 속도 무엇?]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내 IVO 공식 홈페이지 가이드를 확인하고 경탄을 토했다.
[-와 ㅋㅋㅋ IVO에서 어깨 말고 다른 한국인이 나와버리네]
[-근데 그게 2일차 스머라면?]
[-게다가 이번에는 이름까지 박제해버리고?]
[-아 ㅋㅋ 게말콘 마렵네 진짜]
[-KIA! 주모! 막걸리 가져와!]
[-주모 : 나도 마시는 중이니까 알아서 처먹어!]
[-아닠ㅋㅋㅋ 먼저 마시고 있었냐고 ㅋㅋㅋ]
가이드에 예시로 영상이 올라간 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영상들은 IVO 대회에 출전한 프로게이머의 것을 사용했다.
메탈 펀치의 경우 전설이 된 어깨의 영상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퍼플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킹오파나 스파 쪽에도 미믹크리 가이드 있는데?]
[-엥? 뭐임?]
[-와 ㅋㅋ 이거 다른 격겜에서도 응용 할 수 있어서 만든 듯?]
[-격겜판은 메탈 펀치가 선도한다 이마리야]
[-근데 왜 가이드 영상 없음?]
IVO는 메탈 펀치만이 아니라 다른 격투게임 가이드에도 미믹크리 가이드를 신설했다. 하지만 가이드 영상은 메탈 펀치밖에 없었다.
격겜러들은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갓플이 메탈 펀치만 했기 때문이자너 ㅋㅋㅋㅋ]
[-엌ㅋㅋㅋ그러넼ㅋㅋㅋ]
[-갓플 말고 이거 가이드 누가 만들 수 있냐고 ㅋㅋㅋ]
[-유일등급 스트리머라더니 바로 증명해버리고?]
[-갓플이 메탈 펀치 선택해서 진짜 다행임ㅋㅋㅋ]
메탈 펀치만이 다르다.
그 사실에 사람들은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달라진 이유가 한 사람 때문이라는 걸 모두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아 ㅋㅋ 바로 미믹크리 수련 간다]
[-퍼펙트 이지선다 못 참지!]
[-필립이 그나마 좀 쉬우려나?]
[-이거 배움 너희들 다 뒤졌다 ㅋㅋㅋㅋ]
흥겨움에 취한 격겜러들은 바로 미믹크리 수련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은 곧 현실을 깨달았다.
[미믹크리 연습 개빡센데?]
[와 ㅅㅂ 이거 AI상대로는 안 통함]
[AI는 플레이어랑 다르게 시각 정보로 판단하는 게 아님ㅋㅋㅋ]
[AI : 뭐지? 왜 붕쯔붕쯔를 하는 것이지?]
[AI : 으윽? 이게 인간? 기계혁명이다!]
미믹크리는 상대를 속이는 기술인만큼 시스템 내부적으로 스킬을 구분하는 AI에게는 소용이 없던 것이다. 오직 사람을 상대할 때만 유효한 기술이었다.
[하 ㅅㅂ 랭크전에서 미믹크리 하다가 쌉손해봄]
[아 ㅋㅋ 펀붕이 수치사했다]
[나는 일본 펀붕이한테 ‘다이죠부?’ 소리 들음ㅋㅋㅋㅋㅋ]
[이거 완전 늅늅이한테나 통할 듯]
[네? 뉴비가 없는데요?]
이에 격겜러들은 랭크전에서 미믹크리를 도전했지만 다시금 고배를 마셨다.
애당초 그들의 미믹크리 숙련도는 창시자(?)인 이경복과 말 그대로 천지차이였기 때문이었다.
[리플레이 영상으로 보니까 ‘아잇 C8!’ 소리가 절로 나옴 ㅋㅋ]
[아니 ㅅㅂ 이게 할 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3인칭 보니까 가관이네]
[진짜 ㅋㅋㅋ 내가 봐도 더럽게 못 따라하네]
[갓플이 리얼 개 초고수였던 거였음ㅋㅋㅋ]
[트리플이 속을 정도면 말 다했지 ㅋㅋ]
격겜러들은 새삼 이경복의 실력을 절감했다. 이에 몇몇 이들이 반성의 글을 올렸다.
[킹직히 난 갓플이 그냥 반짝 뜬 스머인줄 알았음]
[이제 보니 게임 센스 미쳤쥬?]
[ㄹㅇㅋㅋ피지컬 좋고 목소리 좋고 얼굴 좀 잘생겨서 인기가 많은 줄]
[펀붕이들은 하나도 없네]
[학생^^ 눈치챙겨]
폐쇄적인 성향만큼 남아있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이경복이 보여준 활약에 그것이 자부심이 아니라 자만심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트리플 꺾은 거 보면 킹직히 어깨 라이벌급은 된다고 봄 ㅋㅋ]
[2일차에 이 정도면 진짜 천재 아니냐?]
[방송 보니까 인성도 좋은 듯 ㅋㅋㅋㅋ]
[얏타맨 챙겨주는 거 보니까 기본 천성이 착한 것 같음ㅋㅋㅋ]
[왜 퍼청자 하려는 건지 알겠다 이마리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 팬심이 두터워지는 와중 새로운 제보가 들어왔다.
[공식 박제 떴냐!]
이미 IVO 소식은 베스트에 올라왔기에 격겜러들은 어리둥절했다.
뒤늦게 소식을 알게 된 사람의 실수인가 싶었는데.
[-?????]
[-히로카츠쉑이 갓플을?]
[-이쉑 또 일 안하고 트위티 싸지르네 ㅅㅂ]
[-빌런답게 또 주둥아리 나불대버리깈ㅋㅋㅋ]
완전히 다른 소식이었다.
메탈 펀치의 디렉터, 하마다 히로카츠가 트위티에 이번 일에 대해 이야기를 올렸다는 내용이었다.
[-뭐임? 카츠쉑이 갓플 건든 거?]
[-아니 ㅅㅂ 뭐 이렇게 길어?]
[-트리플 졌다고 뭐라 한 거 아님?]
[-번역본 어디 갔냐고 ㅋㅋㅋ]
그러나 격겜러들에게 히로카츠는 그리 좋은 디렉터는 아니었다. 여느 게임처럼 패치 때마다 캐릭터 밸런스로 욕을 먹기 때문이었다.
작중 캐릭터인 ‘카츠’가 빌런 취급 받는 건 그 자체 대사나 행동방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히로카츠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가 있을 정도였다.
이에 격겜러들은 혹시 히로카츠가 이경복에게 나쁜 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걱정했다.
[카츠쉑 번역본 바로 쪄옴 ㅋㅋ]
하지만 이내 번역된 트윗 내용이 새로 올라오자 사람들은 정반대의 댓글을 달 수밖에 없었다.
[-오?]
[-뭐야 이거 ㅋㅋㅋ]
[-카츠쉑 드디어 정신 차린거?]
[-이거는 갓패치가 맏따 ㅋㅋㅋ]
히로카츠의 말은 걱정이 아니라 오히려 환영해야 할 내용이었다.
* * *
일본 트위티, 하마다 히로카츠의 계정.
그는 이번 IVO 가이드 신설과 더불어 퍼플과 트리플의 대전, 플플대전의 클립을 직접 링크하며 소감을 밝혔다.
[보자마자 경악! 그야말로 잠이 다 달아나버렸습니다(웃음). 설마 일본 챔피언인 트리플 씨가 당해버릴 줄이야? 하지만 대단한 건 그것만이 아닙니다. 디렉터이자 플레이어로서 트윗을 남깁니다. 자세한 건 아래로]
[퍼플 씨의 플레이는 단순히 게임을 잘한다의 영역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메탈 펀치의 캐릭터 모션은 무술의 대가들을 초청해 만들었습니다.]
[이번 영상의 캐릭터 ‘강너울’도 마찬가지. 한국의 금메달리스트인 강태진의 모션과 자문을 받았습니다. 보다 완벽한 모션을 위해 여러 번의 시도를 거쳤죠. 당사자도 똑같이 재현하라면 힘들 겁니다(웃음)]
[그래서 이번 퍼플 씨의 플레이가 더욱 놀라웠습니다. 저는 캐릭터의 기술을 재현하는, 이 미믹크리라는 방식을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건 불가능해’라고 결정을 지어버린 거죠.]
[최근 격투 게임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렵다는 건 디렉터인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고민이 많았는데 의외의 해답을 발견, 아니 받게 된 거죠.]
[IVO의 결정으로 미믹크리의 가이드가 추가된 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단 한 사람의 플레이어가 격투 게임의 지평을 넓혀주었습니다. 비단 메탈 펀치만이 아니라 격투 게임 업계가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격투 게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디렉터로서 깊은 감사를 전해드리며, 미믹크리의 빠른 활성화를 위해 신속한 업데이트를 진행하려 합니다. 해당 내용은 새 트윗으로 전해드리죠.]
디렉터가 보낸 장문의 트윗에 일본 유저들도 많은 답글을 달았다
[에에-!? 트리플 씨가 당해버렸다고?!]
[이런이런, 퍼플 씨에 비하면 트리플도 둔재에 지나지 않았다- 라는 걸까나?]
[어이어이, 농담이 아니라고! 한국에는 초인양성소라도 있는 거냐!? 어깨에 이어 또 패배라니?!]
[엣-? 퍼플 씨라니 그 로데리의 퍼플 씨? 이케멘 퍼플인 거야? 엄청나잖아www]
[잠깐잠깐! 퍼플 씨 2일차라고? 대체 얼마나 괴물인 거냐고www]
그 사이 히로카츠는 업데이트 내용을 밝혔다.
[근시일 내에 메탈 펀치 연습 모드에 ‘미믹크리’, 캐릭터 스킬 재현율이 표기 됩니다. 또한 커맨드별 캐릭터의 스킬 동작 실루엣이 추가됩니다.]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플레이어들은 쉽게 미믹크리 달성 정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되겠죠.]
[연습 모드의 명칭은 퍼플 씨에 대한 경의를 담아 ‘퍼펙트-미믹크리’로 결정했습니다. 플레이어분들의 많은 이용 부탁하겠습니다(웃음)]
캐릭터 스킬을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증대하는 업데이트였다.
새로운 트윗 역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히로카츠 씨, 오랜만에 정신을 차렸네요!]
[그동안 ‘개발이나 해!’, ‘밸런스 고민 좀 하라고!’ 답변만 했던 나, 오늘은 달라졌다]
[에또, 유미는 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메탈 펀치라는 거 하면 퍼플 씨 만날 수 있는 거야? 유미, 퍼플 씨 만나고 싶어!]
[어이어이, 언제까지 한국에게 뒤지고만 있을 거냐고! 일본 프로게이머들 반성해!]
[아아, 어쩔 수 없구만. 내 오른손의 봉인을 풀 때가 왔나. 웬만하면 현실에 충실하고 싶었는데 말이지.]
[헤에- 오랜만에 본 메탈 펀치. 갑자기 가슴이 타오른다고 할까요. 이번에 다시 시작해 볼까나www]
여러 가지 각자의 이유로 메탈 펀치에 활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 * *
다음날, 이른 오후.
이경복은 박주호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IVO 가이드 영상으로 올린 게 꽤 효과가 좋다던데.”
“그래?”
회의를 생략한 대신 박주호가 간략히 이경복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최병훈 말로는 국내보다 해외 권 시청자 비중이 높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구독자도 대폭 뛰었고.”
“아, 맞아. 나 아침에 보고 진짜 놀랐거든.”
이경복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놀랄 만하지. 180만 대에서 정체기였는데, 하루아침에 196만까지 도달했으니까.”
박주호도 이에 실소를 흘리며 답했다.
그간 퍼튜브 구독자는 180만 대에서 정체되어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전의 성장 속도와 비교했을 때의 의미였고 큐튜브 채널은 느릿하게나마 꾸준히 성장 중이었다.
그런데 가이드 등재와 더불어 이슈가 되면서 구독자가 대폭 증가한 것이다.
“그 구독자 증가분도 대부분 해외 구독자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격겜러 숫자 자체가 적어서 그런 것 같다.”
“뭐, 숫자가 중요한가. 나를 좋아해 주는 게 감사한 거지.”
이경복의 대답에 박주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튼 이 추세로 가면 조만간 200만 고지도 돌파할 거 같아.”
“200만이라니까, 이거 실감이 안 가네.”
이경복이 머쓱해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3개월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한 일이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200만 큐튜버의 매니저라니?”
“내가 200만 큐튜버라니… 아!”
두 사람 모두 웃던 중 이경복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왜 그래? 뭐 잊은 거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생각해보니까 보통 100만 정도 넘으면 큐튜브 구독자 이벤트 같은 거 하지 않나?”
그의 말에 박주호는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100만은커녕 10만이 넘어도 이벤트를 하는 큐튜버도 많아.”
“아… 이거 생각을 못 했네.”
“괜찮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잖아?”
“이유?”
“아까 말한 것처럼 넌 이제 3개월 차다. 채널 성장 속도가 엄청나서 그렇지, 너도 방송에 대해 배우기도 빠듯했던 시간이고.”
급성장하는 큐튜브 채널은 많다.
그러나 이경복처럼 바닥부터 시작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보통 이벤트를 여는 큐튜버들은 나름 방송을 오래 한 사람들이다. 그만큼 시간을 들여 대비할 수가 있지. 하지만 우리는, 아니 너는 경우가 좀 다르지.”
일반적인 채널의 성장세는 지금의 퍼튜브 정체 속도보다 못했다.
그만큼 해당 큐튜버는 차곡차곡 쌓이는 구독자수를 보며 이벤트를 준비할 여유가 있었다.
“생각해봐라. 만약 100만 때 네가 이벤트를 한다고 해도, 구독자분들에게 뭘 줄 거지?”
“어, 음.”
이경복은 잠시 눈을 굴리며 생각하다가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네. 뭐 마땅한 게 없었네. 사인지 하나 덜렁 주는 것도 좀 그렇고.”
“그래. 팬들 입장에서야 사인지로도 기뻐하긴 하겠지만, 너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선물은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고 얼공을 한 것도 아니니 팬미팅 같은 오프라인 행사는 논외고.”
호의에는 호의로.
‘적어도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겠지.’
박주호는 이경복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다. 어정쩡한 보답으로는 이경복 스스로 용납하지 않을 터였다.
“야, 생각해보니까 이번 미팅 더 잘 진행해봐야겠네.”
“그렇지. 마침 시기가 잘 맞물리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굿즈 사업의 첫발을 내딛는 거니까.”
박주호는 수긍하며 부드럽게 핸들을 돌렸다.
“다른 곳도 조사해봤지만 샵팬덤만한 플랫폼을 찾기가 어렵더라.”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바로 쇼핑플랫폼 ‘#팬덤’의 사옥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굳어있을 필요 없어.”
이경복은 진지한 친구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번 미팅, 느낌이 좋거든.”
박주호도 이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거 다행이네.”
그 느낌은 틀린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