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 팝니다. 상품. 팬에게 완벽한 (1)
굿즈 전문 쇼핑 플랫폼 ‘#팬덤’의 사옥은 손님맞이 준비로 분주했다.
“다과 세팅 다 끝났지?”
“네. 음료는 커피, 홍차, 생수 3종류로 준비해뒀습니다.”
“좋아. 다른 팀 직원들 통제 확실히 하고. 괜히 퍼플 님 얼굴 보겠답시고 오는 사람들 없게.”
“네! 다시 전달하겠습니다!”
“퍼플 님 인지도 알지? 입점하면 무조건 VIP야!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상품기획, MD팀 팀장의 지시에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 이른 아침부터 직원들이 비지땀을 흘린 덕분에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팀장님, 퍼플 님 도착하셨습니다.”
1층 인포데스크에서 연락을 받은 직원의 말에 팀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를 비롯해 직원들이 재빠르게 엘리베이터 앞에 도열했다.
띵하는 알림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와.”
“이야…”
팀장은 물론 직원들 모두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양쪽으로 열린 문 사이로 들어선 이경복의 외모 때문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뒤늦게 두 사람이 인사를 건네자 팀장과 직원들은 제정신을 차리고 식겁했다.
“아! 어서 오십시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감사랄 것까지야 있나요.”
이경복이 웃으며 답하자 팀장은 더욱 극진한 태도로 대답했다.
“오시는 길 불편하시지 않으셨나 모르겠습니다. 사실 대표님께서 직접 미팅을 하시려고 했는데 선약이 있으셔서요.”
“아유, 괜찮습니다.”
“양해 감사드립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두 사람은 팀장의 인도에 따라 회의실로 들어섰다. 자리를 잡고 정식으로 인사를 마친 뒤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일단 저희 플랫폼 수익 구조를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팀장은 손을 움직여 프레젠테이션을 띄웠다. 일목요연한 도식이 벽면에 비춰졌다.
“아시다시피 저희 샵팬덤은 인플루언서 분들의 편의를 위해 굿즈 생산과 관련된 과정을 최적화해두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예시인 티셔츠로 간단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는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부드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굿즈의 가격은 2가지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제품 자제의 가격인데, 이 경우에는 품질에 따라 저희가 티어를 구분해두었습니다. 티셔츠 같은 경우에는 원단의 차이가 있죠. 이 티어는 품목을 등록하실 때 설정하실 수 있습니다.”
“이게 원가 개념이로군요?”
박주호가 되묻자 팀장이 빠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맞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인플루언서 님이 디자인 값으로 마진을 잡아주시면, 두 가격을 더해 최종 굿즈 가격이 결정됩니다.”
친절한 설명과 도식 덕분에 이경복은 바로 그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생산비용은 고정이라 조절이 불가능하니까 굿즈 가격은 제 쪽에서 결정하는 거나 다름없네요?”
“그렇죠. 하지만 완전히 고정은 아닙니다. 원가 쪽은 협의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변동성이 있거든요.”
“변동성이요?”
팀장은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기본적으로 굿즈에는 각기 MOQ, 그러니까 최소 주문 생산량이 있습니다. 티셔츠를 예로 들면, 저희가 아무리 주문 생산을 원칙이라고 하더라도 티셔츠 하나만을 생산할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커지니까요.”
“아, 그렇겠네요.”
“예, 그래서 티셔츠는 100장을 기준으로 생산해야 단가가 맞춰지고 이런 기준을 MOQ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팀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다음 프레젠테이션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숫자와 표가 투사되었다.
그것은 생산량에 따른 단가표였다.
“아, 많이 팔수록 단가가 낮아지네요?”
“굿즈라고 해도 다른 상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단가가 낮아지는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죠.”
“추가 판매수익?”
“그게 저희가 내세우는 강점입니다”
팀장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표를 가리켰다.
“단가가 낮아지면 당연히 수익이 커지게 됩니다. 이걸 저희가 챙기는 건 옳지 않은 일이죠. 그래서 일정 판매량 구간을 돌파할 때마다 감소된 단가를 추가 수익으로 잡고 입점해주신 셀러분들께 정산해드립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셀러 쪽만 이득을 보는 구조는 아니지 않습니까? 판매 수수료는 수익에서 발생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박주호가 날카로운 눈으로 팀장을 돌아봤다. 언뜻 보면 셀러 쪽만 이득인 것 같지만 플랫폼도 수익을 확실히 챙기는 구조였다.
“하하, 예리한 지적이시네요. 오해가 없도록 바로 다음 장에 설명드릴 예정이었습니다.”
팀장은 당황하지 않고 다음 프레젠테이션으로 넘어갔다. 원형의 그래프가 조각조각 나누어져 있었다.
“저희가 제공하는 기성 굿즈가 판매된 이후의 수익 정산 비율입니다. 플랫폼이 70%, 셀러분들 께서는 30%를 정산 받습니다.”
“30%요?”
이경복은 순간 놀랐지만 이내 그래프를 다시 보고 이해했다.
“아, 하긴 우리 쪽에서는 디자인만 결정하면 되는 거니까.”
생산과 검수 및 배송, 그리고 고객관리 등등.
그래프의 70%를 차지하는 플랫폼에는 세부 항목이 여럿 있었다. 반면 셀러 쪽 그래프는 단 하나 ‘디자인’뿐이었다.
플랫폼에서 들이는 품을 생각하면 70%는 과도한 비율이 아니었다.
“30%도 동종 업계에 비해 꽤 높은 편이다. 다른 플랫폼은 10%에서 20%대거든.”
박주호가 이경복에게 낮게 속삭였다. 지놈이 괜히 추천하는 플랫폼이 아니었다.
“이해해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몇몇 분들께서는 비율만 보시고 저희를 사기꾼처럼 여기시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비즈니스 감각이 있으신 분은 오랜만입니다.”
두 사람의 수긍에 팀장은 진심어린 감사를 표했다.
“흠흠, 잠깐 얘기가 샜군요. 퍼플 님께서는 자체 제작 굿즈로 피규어를 판매하고 싶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네, 아쉽게도 피규어는 항목에 없더라고요.”
“아하하, 이게 디자인에 따라 퀄리티가 달라지니까요. 이쪽은 저희가 제공하는 제품군은 아니라서 별도 협의가 필요합니다.”
팀장은 그리 말하며 프레젠테이션을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렇다고 저희가 전례가 없는 건 또 아니거든요. 가이드라인이 또 있습니다. 보시면 셀러가 직접 준비한 굿즈 판매는 비율이 다릅니다.”
“15%? 이건 완전히 다르네요?”
“예, 이런 경우에는 저희가 생산에 일절 관여하지 않으니까요. 배송 및 고객관리 수수료로 15%만 저희가 정산을 받습니다.”
팀장은 그리 말하며 스마트 링크를 조작했다. 투사된 홀로그램이 축소되어 각자의 앞에 나누어졌다.
“이것으로 안내를 마치겠습니다. 피규어 건은 생산 쪽이 정해지면 차차 이야기를 나누시죠.”
“그래서 준비해왔습니다.”
“네?”
팀장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 사이 박주호가 준비해온 가계약서를 전달했다.
‘보통 이렇게까지 준비해온 분들이 흔치 않은데, 역시 성공한 사람은 다르네.’
그는 속으로 감탄하며 계약서를 빠르게 훑었다. 이어 그는 헛숨을 삼켰다.
“피규어를 1만, 1만 개나요?”
계약서에 적힌 수량은 꽤 충격적이었다. MD팀에서 일하면서 수없이 많은 굿즈를 팔아왔지만 이런 적이 없었다.
‘아니, 처음 굿즈 파시는 거 아닌가? 그런데 1만 개를 소화할 수 있다고?’
그리 놀란 팀장에게 박주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1차로 1만 개, 판매 추이를 봐서 2차 판매도 생각 중입니다.”
“아, 그리고 하나 다시 확인하고 싶은데요.”
옆에 있던 이경복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단가가 줄어들고, 줄어든 비용은 셀러에게 환원해준다. 이게 플랫폼의 방침인 거죠?”
“예? 아, 네. 그렇습니다. 저희는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지 않습니다.”
자체 제작 굿즈의 경우에는 생산 단가가 낮아져도 플랫폼은 상관이 없었다. 팀장은 그에 의아해하면서도 대답했다.
“그런데 지금 피규어 같은 경우에는 플랫폼이 부담하는 비용은 배송과 고객관리뿐이잖아요? 그러면 이런 건 어떨까요.”
이경복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객 응대 횟수가 기준보다 적으면 수수료를 조정해주실 수 있습니까?”
“수수료 조정이요?”
“네. 응대 횟수가 적을수록 플랫폼 측에서는 비용이 적어지는 게 맞잖아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팀장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입을 다물고 눈을 굴렸다.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음, 죄송하지만 이 제안은 제 권한 밖이라… 잠시 통화 좀 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아, 물론입니다.”
“네, 양해 감사드립니다!”
팀장은 부리나케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이경복과 박주호는 음료로 목을 축였다.
의외로 팀장은 금방 돌아왔다.
“대표님께 답변을 받았습니다.”
“다행이네요.”
이경복은 미소와 함께 답했지만 팀장은 더욱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대표님은 퍼플 님 의견이 타당하시다고 판단하셨습니다. 다만, 리스크에는 리턴이 있어야 하는 게 비즈니스라고 답변을 주셨습니다.”
“리스크라면 수수료 감면일 테니, 리턴은 수수료 증가겠군요.”
박주호의 추론에 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고객 응대 횟수가 기준을 초과하면 수수료를 20%로 상향하는 조건으로 특약을 맺으라고 하셨습니다.”
“음, 나쁘지 않네요.”
이경복은 즉답했다.
별달리 불길한 느낌이 없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고객 응대 횟수에 따라 수수료 구간을 3구간으로 나눈다는 특약이 계약서에 추가되었다.
날인까지 마친 후에야 MD팀장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제가 계약을 수없이 해봤지만 이런 제안을 해주신 분은 또 처음입니다.”
“그런가요?”
“네. 아무래도 자체 제작 굿즈는 여러모로 신경 쓰기가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CS, 고객응대 횟수가 적지 않거든요? 그런데 퍼플 님은 뭔가 다른 것 같습니다.”
이경복은 그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가 사람 보는 눈은 자신이 있거든요.”
* * *
비슷한 시각.
플랫폼 ‘#팬덤’의 대표는 MD팀장과 통화를 끝내고 멋쩍게 웃었다.
“잠시 이야기가 끊어졌네요. 실례했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편하게 통화하시라고 했으니까요.”
“하하, 양해 감사드립니다. 장 대표님.”
그는 눈앞의 여성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옅은 미소와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얘기를 어디까지 했던가요?”
“아, 스위티즈 수수료 문제까지 얘기하셨습니다.”
그 대답에 그녀, 스위티즈 소속사 ‘드리밍’의 대표 장다예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죠. 이게 참 소형 기획사의 비애예요. 간판스타 말고는 너무 푸대접을 한다니까.”
기획사 ‘드리밍’은 규모로 따지면 소형에 속했다. 대표적인 아이돌 ‘스위티즈’를 제외한 다른 아티스트들은 아직 성과를 거두기엔 이른 시기였다.
“우리 애들 볼모로 잡고 비율 조정한다는 말 듣고 얼마나 열이 뻗치던지.”
소형기획사인 만큼 자체 굿즈샵을 운영할 여력은 없었다. 이에 장다예는 굿즈 판매를 위해 플랫폼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기존 플랫폼이 드리밍 소속 아티스트의 입점을 조건으로 스위티즈 굿즈의 정산 비율을 조정하려 하자 그녀는 플랫폼 이전을 결정했다.
“어우, 정말 속상하셨겠어요. 장 대표님, 진짜 잘 결정하신 겁니다. 저희는 그런 몰상식한 일은 절대로 안 합니다. 인지도나 규모로 차별대우? 팬들이 진짜 싫어하잖아요.”
그는 질색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단순히 위로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러니까요. 진즉에 샵팬덤에 입주할 걸 그랬네.”
“지금이라도 잘 결정하신 겁니다. 이번에 드리밍 아티스트 오시면 입점 기념으로 특별전 이벤트도 기획해보겠습니다.”
“그래주면 정말 고맙죠.”
두 사람은 이에 웃음을 흘렸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정리된 바, 장다예가 슬쩍 질문을 던졌다.
“제가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퍼플 님도 입점하나 봐요?”
“아, 장 대표님도 퍼플 님을 아십니까?”
그가 놀라자 장다예가 실소를 흘렸다.
“알다 뿐이겠어요? 요즘 꽤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죠. 게다가 저만 그런 것도 아니고요.”
“그럼 또 누가?”
“방송계 쪽에서도 눈길을 주고 있어요. 처음제당 마케팅 팀이랑 엔터 쪽 메이크업 아티스트들 이야기로 알음알음 소문이 나고 있거든요.”
“어떤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돌아온 질문에 장다예가 잠시 뜸을 들였다. 쉽게 나오는 정보는 그만큼 가치가 없어 보인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에이, 장 대표님. 저 입 무거운 거 아시잖아요.”
“비밀로 할 이야기까지는 아니에요. 개인방송만이 아니라 공중파에 진출할 때가 기대되는 인재다, 그 정도 평가를 받고 있다 정도?”
“처음제당에서요? 이야…”
장다예는 감탄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이런 말씀 드리는 거, 대표님이면 잘 아실 것 같은데.”
“네?”
순간 눈을 굴리던 그는 이내 방긋 미소 지었다.
“아, 물론입니다. 나중에라도 기회 되면 제가 다리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두 대표의 대담은 그렇게 웃음으로 마무리되었다.
* * *
한편 ‘#팬덤’의 사옥에서는 여전히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가 본론이네요!”
잠깐 휴식시간을 가진 뒤 다시 모인 회의실에서 MD팀장은 열의를 보였다.
피규어 굿즈 계약은 끝났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네, 이쪽은 MD팀의 안목이 더 필요하니까요.”
“많은 도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경복과 박주호도 그에 화답하며 집중했다.
“일단 판매량이 좋은 품목들 시제품입니다. 직접 보시면 아시겠지만 퀄리티는 흠잡을 게 없거든요?”
팀장은 휴식시간 동안 직원들이 준비해둔 기성 굿즈의 시제품을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기에 디자인만 결정되면 바로 생산 및 판매에 들어갑니다.”
플랫폼이 제공해주는 메리트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경복이 굿즈로 판매하려는 건 비단 피규어만이 아니었다.
‘시청자들도 피규어만 살 수 있으면 아쉽겠지.’
다른 인플루언서들은 여러 제품을 판매하는데 이경복만 피규어를 팔 이유도 없었다.
선택은 팬들의 몫이지만 선택권을 주는 건 그의 몫이었다.
“이게 굿즈라고 해도 인플루언서분들의 특성에 따라 포인트를 다르게 잡아야 합니다. 그걸 도와드리는 게 저희 일이거든요.”
괜히 MD팀이 미팅을 담당한 게 아니었다.
“퍼플 님은 스트리머시잖아요? 스트리머 굿즈의 핵심은 하나로 귀결됩니다.”
그는 자신 있는 어조로 강조했다.
“바로 ‘밈’입니다!”
팬들이 좋아하는, 그리고 팬들이 만들어준 포인트.
스트리머 퍼플에게 붙은 ‘밈’이 곧 상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