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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294화 (294/491)

294화 - 잘 하면 재미있다, 너도 그렇다. (3)

이빨과 발톱을 드러낸 수인들은 흉흉한 기세로 두 사람을 포위했다.

‘무리를 짓는 습성 같은 건가.’

이경복은 빠르게 눈을 돌렸다. 소수가 다수를 상대하려면 그 수적 우위라는 이점을 지워야 했다. 어깨와 이경복이 서로 등을 붙인 것도 그 이유였다.

“크으, 말 안하셔도 역시 잘 아시네.”

“기본이죠.”

따로 말이 필요 없었다.

두 사람의 행동에 시청자들은 만족을 표했다.

-오 ㅋㅋ 이게 맞지

-이래야 공격 방향이 제한된다 이마리야

-뉴비 짬바 무엇?

-서로 넘모 든든한 거시고요?

-어깨 형 즐겜하는 거 보소 ㅋㅋㅋㅋ

그러나 웃는 것도 잠시, 사방에서 수인들이 흉성을 내지르며 덤벼들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여유로웠다.

“확실히 보안 요원보다는 체력이 높네요.”

“그런데 오히려 더 상대가 쉽지 않습니까?”

“근접전이라 편하긴 하죠.”

심지어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총을 사용하는 보안요원과 달리 수인들은 제 스스로 다가와주니 대응이 오히려 편했다.

‘하지만 마냥 여유만 부릴 수는 없지.’

이경복은 몸을 숙여 발톱을 피했다. 그 공격에서 느껴지는 위협으로 보아 가드는 의미가 없었다.

“츠지모토 생각하면 발톱은 가불기인 것 같습니다.”

“아주 좋은 판단이십니다!”

어깨 역시 위빙 동작으로 발톱을 피해 카운터펀치를 날리며 대답했다.

-겁나 정신없이 싸우는데 목소리 평온한 거 무엇?

-아니 ㅋㅋ 왜 수다를 떠시냐고요

-사운드만 들으면 타악기 카페인 줄 ㅋㅋㅋ

-타악기 카페는 또 뭐야 ㅅㅂㅋㅋㅋㅋ

-가죽 때리는 소리 넘모 찰지고?

시청자들이 그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경복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어깨 님, 파악 끝났습니다. 정리하시죠.”

“오? 그럴까요?”

그의 말에 어깨도 덩달아 환한 웃음을 지었다.

‘퍼플 님 정도면 맞춰드릴 필요가 없지!’

어깨는 브롤 컨텐츠를 진행할 때 상대의 수준에 맞게 공략 속도를 맞춰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결과 난투의 양상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잡몹들을 상대할 때 중요한 건 경직 순서다.’

수인들은 스킬 한 번에 처리할 수 없기에 동작이 큰 스킬을 사용하면 오히려 다른 수인에게 공격을 허용한다.

그러니 짠손이나 속도가 빠른 스킬로 다른 적들을 경직시켜 여유 시간을 버는 게 주효했다.

‘그런데 퍼플 님은…’

어깨는 잽과 훅으로 수인 둘을 경직시키고 달려드는 놈을 어퍼컷으로 띄우며 빠르게 이경복의 상태를 확인했다.

‘완전히 다르단 말이지.’

이경복의 대응법은 그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는 한 번에 덤벼드는 수인들을 제각기 처리하지 않았다.

이경복은 날아드는 발톱을 발로 쳐내 궤도를 틀었다. 그에 돌아간 발톱은 옆의 수인을 찔렀다. 갑자기 피격당한 수인은 고통에 찬 울음과 함께 순간 경직했다.

“가불기라는 게 좋긴 하네요.”

이경복은 이미 그를 예측한 듯 바로 스킬 동작을 취했다. 하단을 노리는 쓸어차기가 적중하자 수인의 몸이 떠올랐다.

이어지는 옆차기에 밀려난 수인은 그 뒤에 달려들던 다른 놈들을 덮쳤다.

-???

-무친 ㅋㅋㅋ 발톱을 틀어버리네 ㅋㅋㅋㅋ

-저게 된다고?

어깨를 비롯한 격겜러들은 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는 다수와의 싸움도 1:1의 연속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이경복처럼 주변 환경은 물론 적마저 이용하는 플레이는 생각도 못 했던 것이었다.

-아 ㅋㅋ 갓플류 EEJ는 근본이지 ㅋㅋㅋ

-블랙기업식 인재활용 ㅎㄷㄷ

-내 거는 내 거, 니 거도 내 거라는 심보 ㄷㄷ

-니… 뭐요?

-헉!

-아닠ㅋㅋㅋ 띄어쓰기 했잖슴!

-???: 조심하지 않으면 삽시간에 인간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기존 시청자들은 그에 찬사를 표했다. 그러나 아직 적의 숫자는 많았다.

-근데 왜케 안 줄어드는 거 같지?

-오히려 숫자가 더 늘어나는 것 같은데?

-ㅁㅊ 하울링으로 동료 부르는 듯?

-???: 아주 개 같다 이거에요

후방에 있는 수인들의 울음소리에 다른 수인들이 계속 도착하고 있었다.

이경복과 어깨는 가볍게 숨을 고르며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속도 좀 올릴까요?”

“원하신다면야.”

이경복의 자신 있는 대답에 어깨는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채팅창은 그 대화에 물음표가 차올랐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깨 님은 진짜 고인물이시니까 가능해.’

난투 도중 이경복이 신기로 수집한 건 비단 적들의 행동패턴만이 아니었다. 같이 협력한 어깨의 버릇이나 습성, 그리고 그의 신체적인 한계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머릿속에 현 사태를 해결한 최적의 동선이 그려졌다.

“갑니다.”

그의 한마디가 신호인 것처럼 수인들이 사방에서 그를 덮쳐왔다. 이경복은 다가오는 호랑이 머리를 향해 수직으로 다리를 올렸다.

그대로 시전된 ‘내려차기’는 수인을 대번에 바닥에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쾅하는 둔중한 울림과 함께 어깨는 눈을 크게 떴다.

‘뒤가 열렸어?’

이경복이 그 반탄력을 이용해 뒤로 뛰었다. 어깨는 그 의도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자리를 바꾸자?’

인식과 동시에 행동은 즉각이었다. 어깨는 눈앞으로 날아드는 발톱을 피해 뒤로 몸을 빼내며 함께 허리를 틀었다.

본래는 이경복이 막아야 할 수인 하나가 달려오고 있었다.

‘딱이다!’

어깨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 거리는 준비 동작부터 시전까지 스트레이트 펀치 스킬을 쓰기에 적합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다.

쾅하는 둔중한 울림이 양쪽에서 들려왔다. 어깨는 스트레이트 펀치를, 이경복은 공중제비 차기를 성공한 것이다.

-무친?

-자리 바꾸는 거 뭔데!

-와 ㅅㅂ 존멋 ㅋㅋㅋ

-아니;; 미리 짜고 한 거임?

-짜고 했어도 한 번에 성공한 거 아님?

-이걸 어떻게 짜냐 ㅅㅂ ㅋㅋㅋ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계에 시청자들은 경탄을 토했다. 게다가 그 흐름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거 뭐야?’

어깨는 이 상황이 신기했다.

동료와 등을 맞대고 싸우면 뒤쪽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동료가 싸우는 공간만큼 활동에 제약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했다.

‘퍼플 님이 아예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인데?’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어퍼컷으로 상대를 띄우고 측면을 노리는 공격을 회피해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마치 그럴 거라 예상한 듯 이경복도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며 돌려차기를 시전, 그를 공격하려던 수인이 옆으로 날아갔다.

‘게다가 떨어지던 놈까지 맞췄어.’

날아간 수인은 어깨가 공중으로 띄운 놈과 부딪쳐 밀려났다. 덕분에 어깨는 다시 눈앞에 있는 적만 신경 쓰면 충분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 점차 ‘사각’에 있는 적을 주의하지 않아도 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경복이 완벽히 대응하리라는 믿음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공략 속도는 가속했다.

-아니;; 어떻게 서로 한 번을 안 부딪침?

-와씨 이건 미리 짰다고 해도 빡센데?

-ㄹㅇㅋㅋ 동선 짜도 연습하는데 한 세월일듯

-하지만 천상계 둘은 원트에 성공해버리고?

-5252, 퍼펙트 상식이 적용되어 버린 거냐구웃!

-무친 ㅋㅋㅋ 무슨 믹서기인줄

-진짜 ㅋㅋ 한 바퀴 돌때마다 수인들 날아가는 거 보소

-이거 완전 허리케인인 거신고요?

-퍼펙트 허리케인이다 이마리야

-수인이니까 퍼리케인이 맞긴 해

-아니 ㅋㅋ 도랏맨ㅋㅋㅋㅋ

수인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어갔다. 포위망은 이미 깨진 지 오래였고 마침내 자리 교체가 필요 없을 정도가 되었다.

“보니까 날리면 뒤쪽에 있는 놈들도 데미지가 들어가네요.”

“아, 맞습니다.”

이경복이 뒤돌려차기로 남은 수인을 날려 보낸 후 말하자 어깨가 수긍했다.

보안 요원들은 각자의 사선을 유지하기 위해 겹쳐있지 않아서 몰랐던 사실이었다.

-와 ㅋㅋ 뭔 액션 영화 보는 줄

-극장 왜 감? 갓플 방송 보면 되는데 ㅋㅋㅋ

-매드 무비 편집 왜 함? 그냥 갓플 방송 잘라 쓰면 되는데?

-근데 이건 어깨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는 거잖슴!

-고것도 맞긴 해 ㅋㅋㅋㅋ

-트수들이랑 같이하면 액션 영화가 아니라 코미디 영화임 ㅋㅋ

이윽고 상황이 정리되자 시청자들의 환호로 채팅창이 가득해졌다.

“아니, 여러분. 진짜 신기한 게 뭔지 알아요? 나도 이거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어. 그냥 딱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더라고.”

어깨가 그 채팅을 보며 말하고는 이경복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경복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어깨 님이 해주실 거라 믿고 한 거죠.”

“와, 제가 그래도 자타공인 고인물 중 고인물인데도 정말 신기한 경험하고 갑니다. 퍼플 님 청정수 맞으시네.”

그의 말에 시청자들이 어리둥절해하자 어깨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고인물이 움직이려면 새로운 물이 들어와야 되는 거잖아요? 아, 너무 신선해 진짜.”

-엌ㅋㅋㅋㅋㅋ 그런 청정수냐고

-어깨 정도 고인물이 움직일 정도면 청정수가 아니라 폭포수 아니냐 ㅋㅋㅋ

-청정수(1톤)

-수질과 양 모두 잡아버렸죠?

-와 ㅋㅋㅋ 어깨 형 찐으로 신난 게 보이네

-원래 정점은 외롭다 이마리야

-하지만 갓플은 바로 옆에 서버린거시고요?

-같이 놀 친구가 생겨서 기쁜 아재 ㅋㅋㅋㅋ

어깨가 그리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와중 이경복은 눈을 굴렸다.

이내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신선한 거 좋아하시면 이런 거 어떨까요?”

“네?”

어깨는 물론 시청자들도 그에 관심을 표했다. 이내 이경복이 떠오른 생각을 밝히자.

“와, 브롤 진짜 나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방식은 또 처음이네요.”

-아니 ㅋㅋㅋ 누가 이런 생각을 하냐고 ㅋㅋㅋㅋ

-그게 된다고?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둘이면 가능할 듯 ㅋㅋㅋㅋㅋ

-어차피 실패해도 퍼리케인으로 처리하면 됨!

-아씨 ㅋㅋ 퍼리케인 너무 수상하잖슴!

모두가 즐거워했다.

* * *

검붉게 점멸하는 조명 아래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면 됐나?’

이경복이 어둑한 복도를 내달리고 있었다. 그 뒤로 사나운 짐승의 울음이 들려왔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붉게 발하는 안광이 곳곳에서 번뜩였다.

-와;;; 숫자 개많네 진짜

-이거 괜찮은 거 맞음?

-아 ㅋㅋ 갓플이면 된다니깐!

-그래도 예상보다 너무 많지 않나;;;

-어씨 또 불러온다!

그를 뒤쫓는 수인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갈림길마다 울음소리에 이끌린 다른 수인들이 무리에 합류했다.

‘이제 더 없는 거 같네.’

이경복은 신기로 적들의 위치를 가늠하며 판단을 마쳤다. 준비가 끝났다는 생각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왔다.

“많으면 오히려 좋죠. 이제 된 것 같습니다.”

그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더 이상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통로 가득히 울리며 거리감에 혼동을 줄 정도였다.

‘어깨 님도 자리 잡았고.’

일자형 통로에 진입하며 이경복은 어깨의 위치를 파악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는 통로를 빠져나오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시작합니다!”

그 한마디와 함께 이경복은 몸을 돌렸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통로가 발소리로 가득했다.

이윽고 조명 아래 수인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마치 덩어리처럼 보일 정도로 밀집한 놈들의 모습에 이경복은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커맨드를 입력하자 왼발이 쿵 소리를 내며 바닥을 디뎠다.

“아주 좋네요.”

이빨을 드러내며 덤벼드는 최선두의 수인을 향해 무릎을 들었다.

쾅하는 타격음이 울음소리를 일시에 지워냈다. 강너울의 벽치기 콤보로 자주 활용되는 ‘앞차기’였다.

-캬 ㅋㅋㅋㅋㅋ 광역댐 미쳤다

-쭉 밀려나가는 거 보소 ㅋㅋ

-도미노 넘모 좋고요?

-이게 진짜 되네 ㅅㅂ ㅋㅋㅋ

날아간 수인이 뒤로 밀려나며 체력바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갑니다!”

수인들 너머에서 어깨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통로의 반대쪽에서 후미에 있는 수인을 맡았다.

그 역시 스트레이트 펀치로 수인을 밀어내 연쇄 작용을 일으켰다.

-샌드위치 ON!

-옴짝달싹 못 해버리고?

-뒤주엔딩ㅋㅋㅋㅋㅋㅋ

-ㅈ간이 미아내ㅠㅠㅠ

-???: 인간이… 밉다!

-맹자! 당신은 틀렸어!

-속보) 성악설 주장한 순자 논란, ‘ㅋㅋ 내가 뭐랬냐’ 트위티에 올리고 바로 삭제했지만 박제

-아니 ㅅㅂ 순자가 트위티를 왜 해 ㅋㅋㅋㅋ

출구가 가로막힌 수인들은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양쪽에서 이경복과 어깨가 스킬을 반복하자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어 갔다.

-압착기 성능 미쳤네 ㅋㅋㅋㅋ

-아니 ㅋㅋㅋ 누가 격겜에서 몰이사냥을 하냐고 ㅋㅋㅋ

-이게 그 핵앤슬래쉬 맞죠?

-ㅔ

-코이츠www 장르를 또 바꿔버리는www

양쪽에서 치인 수인들은 결국 모두 사망했다. 중앙에서 다시 이경복과 만난 어깨는 웃음을 터트렸다.

“와, 진짜 퍼플 님 방송 왜 보는지 알겠습니다. 아니, 이거 너무 재미있네.”

“재밌다니 다행이네요.”

“아니, 빈말이 아니고 진심. 여러분, 대체 어디서 이런 방송을 보겠어요? 격겜에 머리가 굳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 절대 못 해요.”

이경복은 그에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냥 횡스크롤 생각하니까 그게 떠오르더라고요. 혹시 ‘와리가리’라고 아세요? 무한 콤보 넣는 꼼수인데.”

“아! 알죠, 당연히 알죠.”

“네, 사실 와리가리가 정확히 이런 건 아닌데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제안해본 거예요.”

-와 ㅋㅋ 와리가리 진짜 추억돋네

-거기서 여기까지 발전시켰다고?

-5252, 응용력 천재냐구웃!

-엌ㅋㅋㅋ 아재감성이 한 건 해버리고?

-아닠ㅋㅋ 누가 와리가리 보고 이걸 생각하냐구욬ㅋㅋㅋ

-아재감성이라면서 다 아는 트수들 뭔데 ㅋㅋㅋㅋ

시청자들도 그에 흥겨워했다.

이경복은 가볍게 손을 털어내며 주의를 돌렸다.

“아무튼 이걸로 잡몹들 정리는 끝났네요. 이제 이동하죠.”

“좋습니다. 가죠!”

두 사람은 다시 전진했다.

어깨는 이경복의 뒤를 따라가며 슬쩍 속삭였다.

“여러분, 제가 1스테이지에서 말한 거 좀 정정할게요.”

채팅창에 물음표가 떠오르자 그가 실소를 흘렸다.

“아니, 제가 다른 격겜러들은 빠른 클리어만 노리지만 퍼플 님은 몰입이 뛰어나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보니까 몰입에 신선하시기까지 하고 스피드도 완전 빠르시네.”

-고건 맞지 ㅋㅋㅋㅋ

-갓플은 즐기는 게 빨리 깨는 법이라 이마리야

-이미 로데리 때부터 증명된 사실이었고요?

-ㄹㅇㅋㅋ 스피드런 비공식 세계 1위가 괜히 됐겠냐고 ㅋㅋ

시청자들도 그 정정을 적극 환영했다.

* * *

몰이사냥으로 텅텅 빈 통로를 지나오기를 잠깐. 앞서가던 이경복은 이내 널찍한 공간에 들어섰다.

“오? 이건 또 뭐죠?”

그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벽 전체가 거대한 철판으로 되어 있었고 그 겉면에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Control Room]

영어에 자신이 없는 이경복이었지만 이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컨트롤 룸이면 통제실이죠? 근데 이 발판은 또 뭐지?”

철벽 앞에는 사람 하나가 설 만한 발판이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가로세로 각각 5개씩, 총 25개의 발판이 놓여 있었다.

“격겜이라고 몸만 쓰는 건 또 아니거든요. 저기 한번 올라가서 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어깨가 그에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가 가리킨 방향에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었다.

이경복은 바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전망을 보라는 듯 마련된 장소가 있었다.

다가가 보니 디스플레이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발판의 위치를 본뜬 5x5와 그 외곽에 적혀있는 숫자들.

이경복은 보자마자 그것이 퍼즐임을 눈치챘다.

“아, 이거 뭐라고 하죠? 네모네모 로직인가?”

-ㅇㅇ 노노그램이라고도 부름

-격겜에서 머리를 쓴다?

-아 ㅋㅋ 위에서 한 사람이 보고 아래에 있는 사람이 발판 누르는 거인 듯?

-오 ㅋㅋ 협동 퍼즐인거네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한 퍼즐이었다.

-솔플러는 여기서 또 빡침ㅋㅋㅋ

-외골격 슈트 다음 2차 빡종구간ㅋㅋㅋ

-킹직히 퍼즐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AI가 개 답답하자너 ㅋㅋㅋ

-명령 반응 속도 개느림 ㅅㅂ 그냥 혼자서 왔다갔다 하는 게 더 속편함

-메탈펀치 AI는 너무 전투 특화라서 ㅋㅋㅋㅋ

격겜러들이 불평을 토하는 사이 어깨가 아래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확인하셨죠!? 어디가 좋으세요? 직접 누르실래요?”

이경복은 잠시 디스플레이를 바라보고 아래를 내려 보며 대답했다.

“내려가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채팅창에 웃음이 가득해졌다.

-몸 쓰는 게 편하긴 해 ㅋㅋㅋ

-어깨는 고인물이라 보면 바로 답 나올 듯

-ㅇㅇ 이거 패턴도 몇 개 없어서 보기만 하면 바로 답 나옴

-격겜인데 빨리 싸우기나 하자구웃!

이경복이 내려오자 어깨가 사다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내 삑하는 알림음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퍼플 님?”

이경복이 빠르게 발판을 누르고 있었다. 눌린 발판이 은은한 빛을 뿜었다.

“아, 올라가실 필요 없습니다.”

“네?”

“다 풀었거든요.”

그가 빠르게 발판을 밟아가며 대답하자 어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

-그거 도안 잠깐 봤는데 답이 나왔다고?

-아니;;; 5x5가 쉽긴 한데

-ㅅㅂ 나는 도안 기억도 안 나는데 ㅋㅋㅋㅋ

-퍼지컬이 또 나와버리는 거냐구웃!

-이스케이퍼스 짬 나오나?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 모두가 놀라는 와중 이경복은 답을 완성했다.

“답이 카츠 시큐리티 로고더라고요.”

발판으로 완성된 그림은 보안요원 전투복에 박혀있던 로고였다.

완성과 함께 쿠웅하는 소리와 함께 철벽이 좌우로 열리기 시작했다.

“와, 이걸 진짜로 맞춰버리시네.”

어깨는 그에 놀라면서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본적으로 머리도 좋으신데, 미믹크리도 그렇고 퍼플 님은 형상 기억 능력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그 나름대로 상황을 이해하는 동안 화면이 전환됐다.

“아, 컷신이 또 있네요.”

통제실의 문이 완전히 열리자 강너울과 세브루스가 경계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통제실이라니까 여기서 격리를 해제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랬으면 좋겠네. 짐승 대가리를 머리에 달기는 싫다고.”

그리 조심스럽게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누가, 들어온 거지?”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그에 멈칫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오? 생존자인가?

-통제실 관리자라든지?

-근데 뭔가 목소리가 좀 어눌하지 않음?

-쫄아서 그런 거 아님?

시청자들은 목소리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그것은 작중 두 캐릭터도 마찬가지였다.

“그쪽이야 말로 누구지?”

“생존자인가? 싸울 생각은 없어!”

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다시 시선을 교환했다.

“일단 얼굴 보고 얘기하자고!”

“그래, 어차피 같이 갇힌 처지잖아? 같이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지!”

둘은 다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타닥거리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키보드?”

“일단 조심하자고.”

검붉은 조명 대신 안쪽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두 사람은 빛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같은 처지가 아니다. 나는 다르다.”

그와 함께 상대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어 화면에는 놀란 두 사람의 표정이 클로즈업 됐다.

-????

-뭐야? 뭔데?!

-보스 삘?

-아군은 아닐 듯 ㅋㅋㅋ

시청자들 역시 궁금해 하는 와중 화면이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커다란 덩치가 보였고, 그 주위에는 안드로이드인 토사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건 또 뭔…?”

“고, 고릴라? 고릴라라고?”

그 덩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털로 뒤덮인 고릴라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내 탁하는 소리와 함께 고릴라의 손이 멈추었다.

“왜 놀라지?”

“짐승 같은 인간이 있다면 인간 같은 짐승도 있다.”

그제야 모두 목소리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 목소리는 고릴라가 입력한 내용을 음성으로 치환한 것이었다.

이내 디스플레이가 지직거리며 문구가 떠올랐다.

[I KNOW]

고릴라는 냉담한 눈으로 둘을 돌아보며 키보드를 눌렀다.

“나는 안다.”

“인간은 적이다.”

이경복은 그에 작게 탄사를 흘렸다.

“아, 이 캐릭터 이름이 왜 아이노인가 했는데, 이런 스토리였군요.”

이 고릴라는 브롤 모드에서 선택이 불가능한 캐릭터 중 하나인 ‘아이노’였다.

-안드로이드에 이어 고릴라 등판 무엇?

-아닠ㅋㅋㅋ 보스 중에 왜 사람이 없는데!

-히로카츠쉑은 사람 자체를 싫어하나?

-인간 혐오를 멈춰주세욧!

-근데 격겜 하다보면 혐오 걸리긴 해 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이 보스의 정체에 놀라면서도 웃었다.

-하지만 이쪽도 사람이 아니쥬?

-ㄹㅇㅋㅋ 둘 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다 이마리야

-팍씨! 만물의 영장 맛 좀 볼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아이노를 상대하는 이경복과 어깨 역시 같은 사람이라 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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