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 잘 하면 재미있다, 너도 그렇다. (4)
아이노는 흉성을 내지르며 강너울과 세브루스에게 달려들었다. 이내 화면이 전환되며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이 바깥으로 튕겨나갔다.
“빌어먹을! 우리도 잡혀왔다고!”
“말이 통한다고 대화로 해결되는 건 아니라더니.”
사람 머리 크기의 주먹을 땅에 디디며 다가오는 아이노의 모습에 둘은 얼굴을 찡그렸다.
“미안하지만 봐줄 생각은 없어.”
두 사람이 자세를 취하며 컷신이 끝났다. 통제권이 돌아오니 아이노의 체력바가 표기됐다.
-7배네? 7배여?
-2스테이지라고 난이도 상승보소 ㅋㅋㅋㅋ
-브롤 모드니까 따로 기믹 또 있을 듯?
-설마 여기에 또퍼아머?
-아니;; 그건 좀 선 넘지
시청자들의 우려에 이경복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슈퍼아머는 아닐 것 같아요. 보스 특성에 따라 기믹을 달아주는 것 같거든요? 토사는 안드로이드니까 기본 슈퍼아머고, 아이노는 다를 것 같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아이노는 지능을 갖춘 고릴라거든요? 기믹은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어깨가 옅은 미소와 함께 긍정했다.
“그럼 확인해보죠!”
이경복은 아이노를 향해 접근했다. 당장은 보스를 상대하는 게 우선이었다.
아이노는 그런 이경복을 바라보며 콧김을 뿜어내더니 퍼즐에 사용된 발판을 움켜쥐었다.
-???
-저거 탈착식이었음?
-설마 무기를 쓰는 거?
시청자들이 그에 놀란 사이 아이노는 우악스럽게 발판을 반으로 쪼개 달려오는 이경복을 향해 던졌다.
그 속도와 기세는 마치 공성병기인 발리스타와 유사했다.
‘이건 가불기네.’
느껴지는 위협으로 가드는 의미가 없음을 알아챈 이경복은 곧바로 몸을 비틀어 회피했다.
하지만 이를 기다렸다는 듯 아이노가 시간차를 두고 2번째 발판을 던졌다.
“으흠, 대충 알겠네요.”
그러나 그마저도 예측한 바, 이경복은 가볍게 공중제비를 돌아 피하며 착지했다.
“지능이 높아서 도구를 잘 쓰네요. 가불기 원딜이 기믹인 것 같습니다.”
그 설명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격겜에 원딜러를 넣었다?!
-그냥 원딜도 아니고 가불기 원딜 ㅅㅂㅋㅋㅋㅋ
-게다가 발판도 다시 나오네?
-명륜진사원딜 무냐구웃!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곸ㅋㅋㅋ
-그래도 접근만 하면 되는 거 아님?
-ㄹㅇㅋㅋ 또퍼아머 보다는 훨 낫네
시청자들은 놀랐지만 이내 안심했다. 일반인들에게야 어렵겠지만 조금 전과 같이 이경복과 어깨는 충분히 피할 수 있지 않겠나.
아이노에게 접근만 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기믹일 터였다. 시청자들 예상대로 두 사람은 날아드는 투사체를 피하며 아이노를 향해 거리를 좁혔다.
‘원딜이 전부가 아니었네.’
도중 이경복은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아이노가 무릎을 굽히는 게 아닌가.
이어지는 아이노의 행동은 시청자들의 예상을 엇나갔다.
-뭐임? 대체 뭐임?!
-뛰었어?
-와씨 ㅋㅋㅋ 그냥 퍼즐 때문에 2층 만든 게 아니었네
-히로카츠쉑 너무 비열한 거 아니냐구웃!
-킹부러! 어떻게든 어렵게 할라고!
아이노는 비약적인 도약과 더불어 벽을 짚고 대번에 2층으로 올라갔다.
단순히 자리를 옮긴 건 아니었다. 아이노는 곧바로 2층의 파이프를 잡아 뜯었다.
이어 쐑하는 파공음과 함께 우그러진 파이프가 투창처럼 날아들었다.
“이번 보스전도 코옵이 필요하긴 하겠네요.”
-맞네 ㅅㅂ
-1층에 한 명, 2층에 한 명 따로 상대해야 하는 듯?
-아 ㅋㅋ 바로 파악 끝났쥬?
-갓플이랑 어깨면 1:1도 쌉가능이지 ㅋㅋ
-아무리 지능이 높아도 퍼지컬 앞에서는 안 된다 이마리야
이경복의 말에 시청자들도 상황을 파악하고 안심했다. 하지만 격겜러들의 의견은 달랐다.
-빡침 포인트 아직 안 나왔쥬?
-일단 당해봐야 안다 이마리야
-모르면 맞아야지 ㅋㅋㅋㅋ
-아무리 갓플이라도 이건 킹쩔 수 없지
그 부정적인 반응에 다른 시청자들이 불쾌하려는 찰나 이경복이 다시 입을 열었다.
“2층에 올라가는 게 쉽지 않기는 하겠네요. 아까 시간차 공격까지 하는 거 보면 사다리 타고 올라갈 때도 노릴 것 같거든요?”
아이노와 달리 두 사람은 점프 한 번으로는 2층에 올라갈 수 없었다. 올라가려면 사다리를 타야 했는데, 올라가는 도중에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야, 이번에도 정확한 판단이시네요!”
어깨는 재차 날아든 파이프를 피하며 손뼉을 쳤다. 그의 인정에 채팅창에는 다시 우려의 목소리가 차올랐다.
-아니;;; 그럼 무조건 맞아야 되는 거?
-사다리가 양쪽에 2개인 거 보니까 한 사람이 미끼가 되어야 하는 듯?
-와씨 ㅋㅋㅋ 이거 둘이 다 올라가면 내려오는 거 아님?
-레벨 디자인 악랄한 거 보소 ㄷㄷ
이경복은 채팅창 반응에 빠르게 눈을 굴렸다.
‘1층과 2층 교대로 1:1을 진행하는 게 정석이긴 한데…’
자신은 물론 어깨도 아이노를 상대로 질 실력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러면 별로 그림이 안 예쁘겠는데?’
어느 한 사람이 싸우는 동안 다른 사람은 구경만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이래서야 ‘코옵’이라고 할 수 없다.
잠시 고민하던 이경복은 결론을 내렸다.
“제가 올라가죠.”
“네, 알겠습니다. 저도 그걸 권해드리고 싶었어요.”
어깨가 그에 순응했다.
“저는 아이노랑 많이 싸워봤으니까요. 퍼플 님이 플레이하는 걸 보여드리는 게 맞습니다.”
이미 여러 번 컨텐츠를 진행한 자신보다는 뉴비(?)인 이경복이 싸우는 게 방송에 어울렸다.
이를 위해서 한 방 맞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에 그가 사다리 쪽으로 가려하자 이경복이 말했다.
“아뇨, 사다리 쓰실 필요 없습니다.”
“네?”
이경복은 한 발자국 물러나 파이프를 피하며 말을 이었다.
“도움닫기로 올라가려고요. 부스트 좀 부탁드릴게요.”
-직접 올라간다고?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거시지?
-오히려 공중이 더 취약한 거 아님?!
-5252, 갓플이 된다면 되는 거라구웃!
-??? : 사고방식 자체가 우리와 다릅니다.
-문제가 되는 건 쓰지 않는다, 그게 상식이잖아?
-아니 ㅋㅋ 맞말이긴 한데 원래 쓰는 게 맞다구욧!
시청자들은 그에 놀랐지만 어깨는 달랐다. 그의 머리는 빠르게 가능성을 점검했다.
‘아이노도 바보가 아니라면 기다렸다가 공격하겠지.’
사다리를 올라가면 둘 중 하나는 피해를 받더라도 확실히 성공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위험이 너무 컸다.
공중에서 몸을 가누는 건 웬만한 격겜러들도 힘겨워하는 일이었다. 그들이 잘하는 건 자동으로 움직이는 ‘스킬’의 시전이지 직접 공중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퍼플 님이라면?’
그러나 이경복은 다르다.
어깨는 이미 수인들과의 협공을 버텨내며 그 실력을 실감했다. 판단을 마친 그는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좋습니다! 가시죠!”
행동은 즉각이었다.
두 사람은 날아드는 투사체를 피해 아이노가 있는 2층 난간 아래까지 주파했다. 어깨는 급정거와 동시에 이경복을 향해 손을 모았다.
“감사합니다!”
감사와 더불어 이경복이 그를 밟고 도약했다. 아이노가 기다렸다는 듯 그를 향해 들고 있던 파이프를 휘둘렀지만.
‘예상대로네.’
이경복은 옆으로 몸을 비틀며 회전시켜 그 일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리고 나아가 그 힘을 이용해 발등으로 아이노의 얼굴을 강타했다.
-와 ㅅㅂ 이게 진짜 되네 ㅋㅋㅋ
-그 와중에 반격까지 무엇?
-그걸 못맞춤? 퍼플킥!
-???: 조용히 하세욧! (깡)
-아이노 : 아! 맞췄는데!(못 맞췄다)
-카운터 ON!
자의적인 일격이었기에 피해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생긴 경직은 이경복이 2층에 올라서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깨 님! 갑니다!”
이경복은 혼자 싸울 마음이 없었다. 그는 곧장 아이노의 뒤를 잡고 몰이사냥에 썼던 ‘앞차기’를 시전했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아이노가 난간과 함께 1층으로 떨어졌다.
-WA! 300!
-스파르탄 킥 뭐냐고 ㅋㅋㅋ
-???: This! is! Perfect!
추락과 더불어 바운드 시스템으로 아이노의 몸이 튕겨 올랐고 어깨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즉각 이어지는 공중 콤보에 아이노의 체력바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왘ㅋㅋㅋ 제대로 패버리네 ㅋㅋ
-어깨 형도 사실 아이노 쉑 짜증났었는 듯 ㅋㅋㅋㅋ
-???: 나의 40단 컴보는 자비심이 없다!
-타악기 공연 방송인가요?
-ㅔ
뒤늦게 일어선 아이노는 어깨를 더 강자로 파악했는지 다시 2층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이경복은 그마저 예측을 마쳤다.
“2번은 안 되지.”
그는 뛰어내리며 아이노를 스킬로 찍어 눌렀다. 발꿈치에 얻어맞은 아이노는 그대로 다시 추락해 또 한 번 튕겨 올랐다.
“어우, 속이 다 시원하네요!”
어깨가 그에 호탕하게 웃으며 합류했다. 양쪽에서 이어지는 협공에 아이노의 체력이 녹아내렸다.
-고릴라쉑 아무고토 못하쥬?
-아 ㅋㅋ 머리 좀 써보시라구요
-하필이면 갓플이랑 어깨를 만나서 ㅠㅠㅠ
-도구 쓰는 고릴라 < 그냥 갓플과 어깨
시청자들은 그에 흡족해했고 격겜러들은 그보다 더 통쾌해했다.
-와씨 ㅋㅋㅋ 우정파괴 구간을 그냥 돌파해버리네
-ㄹㅇㅋㅋ 원래 무적권 한 사람이 희생해야 되는 거였는데
-알고 보니 실력이 없던 거였고?
-역시 갓플 센세! 아이노를 뒤집어놓으셨다!
-ㅅㅂ 무대를 뒤집는 거 아니었냐고 ㅋㅋㅋ
무적 판정에 아이노가 일어나긴 했지만 다시 2층에 올라갈 수는 없었다. 이경복과 어깨가 그럴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근접전이 이어지니 아이노의 기믹인 원거리 공격도 원천 봉쇄되어버렸다.
“우호! 우호오오!”
도중 아이노가 긴 울음을 뱉으며 화면이 클로즈업 됐다. 버스트 모드의 발동이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아 ㅋㅋㅋ 최후의 발악 바로 떠버렸쥬?
-이제 와서 우호조약을 맺자는 거신가?
-우호조약이 왜 나와 ㅅㅂㅋㅋㅋ
-알고 보니 봐달라는 거였냐고 ㅋㅋㅋㅋ
버스트 상태라도 역전은 힘들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깨가 신속히 물러나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퍼플 님! 아이노 버스트 무브는 조심해야 됩니다!”
어깨의 당부에도 이경복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에 모두가 의아해했다.
설마 타이밍을 놓친 것일까.
“우호오오오오오!”
그 사이 아이노가 더욱 긴 흉성을 내지르며 이경복을 덮쳤다.
-헐? 잡혔다고?
-와;;; 이건 좀 큰데
-아이노 처음 상대하는 거라서 그런 듯?
-풀피라 다행히 죽지는 않겠네
아이노의 버스트 무브는 잡기 판정이었다. 그 거체가 이경복을 짓누르며 자세를 잡았다.
이종격투기에서 흔히 보는 마운트 자세였다. 이어 아이노의 주먹질이 시작됐다.
시청자들은 그 광경에 경악했다.
-기세 살벌한 거 보소 ㅎㄷㄷ
-아니;; 이건 게임인 거 알아도 개무서울 것 같은데?
-진짜 멘탈이 더 갈릴 듯;;
-엥???
-근데 왜 아이노 체력이 줄어듦?
그런데 상황이 뭔가 이상했다. 아이노가 무자비하게 주먹질을 했지만 오히려 이경복이 아니라 아이노의 체력이 감소되고 있었다.
-뭐임? 대체 뭐임?
-설마 저걸 다 반격하고 있다고?
-커맨드만 12개인데?
-갓플 버스트 무브 처음 당하는 거 아님?
-보고 막았다고?
아이노의 버스트 무브는 잡기 판정인 만큼 가드는 물론 풀기조차 불가능했다. 그러나 장점이 있으면 그만큼의 페널티가 있는 법, 피격자가 커맨드를 입력하면 오히려 반격이 가능했다.
그에 격겜러들은 물론 어깨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 미친 피지컬이네.’
어깨는 새삼 아이노의 커맨드를 되새겼다. 커맨드 조합은 공격 방향인 좌우와 공격수단인 왼손과 오른손, 그리고 강도인 강과 약 조합으로 총 12개의 커맨드로 나누어졌다.
아이노의 동작을 보고 해당하는 커맨드를 파악, 정확한 타이밍으로 입력해야 반격 판정이 나온다.
이경복은 그걸 단 한 번도 틀리지 않고 해내고 있었다.
“후, 당해보길 잘했네요.”
그리 모두가 홀린 듯 넋 놓고 보고 있는 사이 버스트 무브가 끝났는지 이경복이 짧게 숨을 뱉으며 마운트 자세에서 빠져나왔다.
그 결과 체력이 소진된 건 아이노 쪽이었다.
“오랜만에 바짝 집중했습니다.”
이경복은 그 한 마디로 소감을 표명했다. 그리고 버스트 상태가 풀린 아이노를 마무리 지었다.
-아닠ㅋㅋㅋ 일부러 걸린 거였냐구웃!
-어려움 시식 전문가냐고 ㅋㅋ
-이 형은 진짜 심하넼ㅋㅋㅋㅋ
-그 와중에 오랜만 ㅅㅂㅋㅋㅋ
시청자들은 안도하며 웃음 지었다. 그 반응에 이경복이 멋쩍게 웃었다.
“경험은 다양할수록 좋잖아요. 아, 그런데 확실히 밸런스 문제가 있긴 하네요. 버스트 무브 페널티 보니까 아이노는 버프를 좀 받아야겠어요.”
“버프요?”
어깨는 물론 채팅창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여기서 아이노에게 버프를 먹인다?
-아니;;; 제발 킹반인 기준으로 좀 봐주세욧!
-하여간 퍼펙트-아이 보유자의 관점이란!
-아 ㅋㅋ 공격이 안 통하니까 페널티만 보이는 거자너
-오히려 아이노는 너프하라고 난리라구욧!
-ㄹㅇㅋㅋ 히로카츠쉑은 말을 안 처듣는데 ㅅㅂ
그에 어리둥절해하는 이경복에게 어깨가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아니, 저도 이거 익숙해지는 데 정말 개고생했습니다. 버프는 제가 봐도 아니에요.”
어깨도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라고 해도 처음부터 해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경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아, 그런가요? 제가 아직 밸런스를 잘 몰라서요.”
그 대답에 이경복이 멋쩍게 웃는 사이 화면이 전환됐다. 아이노를 클리어 한 이후의 컷신이 시작된 것이다.
“하… 살다 살다 고릴라랑도 싸워보네.”
“일단 여기서 나갈 방법부터 찾자고.”
지친 표정으로 돌아온 세브루스와 강너울은 통제실을 살폈다. 강너울은 아이노가 조작하던 컴퓨터를 살폈지만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젠장, 이거 봐도 모르겠네.”
“상황이 웃기게 됐네. 우리는 고릴라보다 강하지만 멍청한 거잖아?”
“지금 농담이나 할 때가 아니잖아.”
“뭐, 그렇긴 하지.”
세브루스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손바닥으로 기계를 쳤다. 쾅하는 소리에 강너울이 눈을 돌렸다.
“뭐 하는 거야?!”
“원래 기계는 때려야 말을 듣거든.”
“잠깐! 고장이라도 나면 어쩌… 어?”
놀란 강너울이 막으려는 사이 스크린이 지직거리더니 화면에 녹색표시가 떴다.
이어 슉하는 소리와 함께 벽면이 열렸다.
“오? 승강기다! 거봐, 때리면 말을 듣는다니까?”
“아니, 이게 된다고?”
호탕하게 웃는 세브루스를 보며 강너울은 허탈해했다. 이내 두 사람은 승강기에 올랐다.
-강너울 표정 개웃기네 ㅋㅋㅋ
-얼굴에 ‘이왜진?’ 쓰여있음ㅋㅋ
-아 ㅋㅋ 상식을 버리라 이마리야
-퍼펙트 상식 세계관이었냐고 ㅋㅋㅋ
시청자들이 그에 웃는 사이 화면이 전환됐다. 승강기가 멈추며 다시 문이 열렸다.
“여기는 멀쩡하네?”
“밖으로 나가는 길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쉽게도 여전히 시설 내부였다. 그나마 다행히 이전과 달리 안은 말끔했다.
두 사람은 복도를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웬 생선들이 이렇게 많아? 무슨 수족관 같은 곳인가?”
“이쪽은 동물인데?”
두터운 유리벽 너머에는 갖가지 생물들이 격리되어 있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시청자들도 의아해했다.
-이번 스테이지는 그냥 동물들이 상대인 거?
-그러면 오히려 난이도 하향 아님?
-ㄹㅇㅋㅋ 수인 상대했는데 동물이랑 싸우겠냐고
-수인들 만드는 데 쓴 실험재료 같은 거 아님?
시청자들이 이번 스테이지에 대해 추측하는 도중이었다.
“거기, 거기 누구 있어요!?”
복도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흠칫하며 멈추어 섰다.
“설마 또 고릴라는 아니겠지?”
“아니, 이번에는 목소리가 뚜렷하잖아.”
들려오는 음성은 확실히 합성음은 아니었다. 이에 두 사람은 걸음을 재촉해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아! 여기! 여기예요!”
유리벽을 두드리는 건 분명한 사람이었다. 흰 가운을 입은 여성이 다급한 표정으로 말을 쏟아냈다.
“저, 저 좀 꺼내주세요! 웬 괴한들이 저를 잡아뒀어요!”
“잠깐, 그 전에 당신 정체부터 밝혀요.”
강너울이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멈추며 말했다.
“저는, 저는 그냥 여기서 동식물을 관리하는 직원이에요. 제발, 제발 좀 도와주세요…!”
-5252, 눈나를 도와주지 않을 거냐구웃!
-처음으로 멀쩡한 사람이다 이마리야
-근데 직원이면 카츠 부하 아님?
-보안요원은 아닌 것 같은데 탈출 도와주는 NPC일 듯?
-시설 관리하는 거면 나가는 길 알겠네 ㅋㅋㅋ
시청자들은 그녀의 정체를 추론했지만 이경복은 알 수 있었다.
‘단순한 직원은 아니겠네.’
그녀로부터 느껴지는 불쾌감은 익숙한 악인의 그것이었다.
-그저 웃지요 ㅋㅋㅋㅋㅋㅋ
-일단 구출은 해야지 ㅋㅋㅋ
-얼른 무브 무브!
이미 스토리를 아는 격겜러들도 스포일러라 말을 안 할 뿐이었다.
“여기서 나가는 길을 알려준다면 도와주지.”
“물론이에요! 저도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어요!”
그녀의 대답에 강너울과 세브루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내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움직이니 관리실이 나왔다.
두 사람이 벌컥 문을 여니.
“이건 또 뭐야?”
“그 괴한들인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이들이 안쪽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들 역시 두 사람을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내 눈빛을 나눈 복면인들은 제각기 일본도를 꺼내 들자 컷신이 끝났다.
-아니;;; 이거 누가 봐도 츠지모토랑 관련있잖슴!
-츠지모토 의적 아님?
-5252, 아군이 아니었던 거냐구웃!
-이번 스테이지 잡몹은 의적들인가보네
복면인의 복색과 일본도에 시청자들은 츠지모토와의 관련성을 쉽게 유추해냈다. 설정대로라면 선한 인물들이지만 일단은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싸워야 되나?’
이경복은 잠시 고민했다. 실제로 그들로부터 느껴지는 위협과 별개로 불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내 그는 직감했다.
‘안 그래도 될 것 같은데?’
꼭 이들과 싸울 필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