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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302화 (302/491)

302화 – 다 잘 되자고 하는 일 (3)

미팅룸에 순간 적막이 흘렀다.

그러나 트라이의 두 팀장 머릿속은 그리 고요하지 않았다.

‘퍼플 님이 직접 코칭을?’

다른 분야의 실력 있는 스트리머를 소개하겠다는 건 그들도 이미 짐작한 바였다.

그러나 이경복이 마지막 참가자를 가르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격투 게임은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니까.’

남성부와 여성부 모두 3인의 팀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실상 플레이는 1:1로 진행된다.

더욱이 참전하는 캐릭터도 가지각색이 아닌가. 다른 사람을 가르칠 정도면 캐릭터 이해 범위도 넓어야 했다.

그러니 격투 게임에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퍼플 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그러나 두 팀장은 이내 납득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경복이라면 가능하리라 짐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깨 님도 인정한 천재시니까.’

‘퍼플 님은 연습이 필요 없으시기도 할 테고.’

그들의 ‘일반적’인 판단 기준은 이경복에게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메탈펀치 3일 차에 어깨와 비슷한 수준으로 취급을 받고, IVO 가이드에 공식 등재까지 됐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처음 하는 캐릭터도 곧잘 하지 않나.

이경복이 남을 가르칠 자격이 있다는 증거는 너무 많았다.

‘잘 가르치면 그 자체로 이벤트 주목도가 올라갈 거야.’

‘혹시 상대가 못 배우더라도 천재의 고뇌라는 느낌으로 가면 확실히 이슈가 되겠지.’

코칭이 잘 되든 안 되든 트라이 쪽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에 두 팀장은 환하게 웃으며 그의 결정을 반겼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이야, 역시 방송만 생각하신다더니 정말이십니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그들도 염치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저희로서는 도와드리는 게 하나도 없어서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괜히 퍼플 님 바쁘신데 시간만 뺏은 격이라…”

의도는 그렇지 않았지만 정말로 플랫폼이 갑질을 하는 것처럼 되지 않았나.

“음, 그럼 이런 건 어떨까요?”

이경복은 그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지놈 님 인맥을 빌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보답을 좀 하고 싶은데 트라이에서 도와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저희가요?”

“어떤 도움을…?”

두 사람이 귀를 기울이자 이경복은 제안 내용을 밝혔다. 이내 그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이거 진짜 괜찮네요. 지놈 님이면 충분히 자격이 됩니다!”

“정말 퍼플 님 방송이 잘 되는 이유를 알겠네요. 이렇게 기획까지 잘해버리시니.”

“에이, 아닙니다. 그냥 더 재미있는 쪽으로만 생각하는 거죠.”

그들의 칭찬에 이경복은 멋쩍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제안 주신 건 저희가 바로 컨펌 받아놓겠습니다.”

“네, 지놈 님이 승낙만 하시면 문제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놈 님에게는 제가 한 번 권유해볼게요.”

상황을 정리한 이경복과 박주호는 두 팀장의 배웅을 받으며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이경복이 차에 올라타자 박주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너도 참 대단하다.”

“뭐가?”

“어떻게 거기서 그 생각이 바로 나와?”

안전벨트를 맨 이경복이 그에 실소를 흘렸다.

“그냥 연상이 되더라고.”

“연상?”

“플랫폼 개입을 막으려면 내 인맥에서 해결해야 되잖아? 그런데 지놈 형보다 먼저 떠오른 사람이 있었거든.”

“누구? 이클립스 님은 아닐 테고…”

“아니, 메탈 펀치로 연결해야지.”

박주호가 이해가 안 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얏타맨이랑 트리플 님.”

“아.”

이어지는 그의 대답에 박주호가 눈을 크게 떴다.

“하긴 일본 쪽에 메탈 펀치 스트리머가 더 많을 거다. 하지만 언어 문제도 있고, 그리 친하다고 할 사이도 아니니까 힘들겠지.”

“그렇지. 그래서 어쩌나 싶었는데 다른 분야의 스트리머 소개를 해준다고 하니까 생각이 나더라고.”

“아, 얏타맨이 트리플한테 배웠다는 이야기 말이지?”

“어. 그럼 나도 가르쳐보면 되지 않나? 이 생각이 나서 말해본 거야.”

이경복의 대수롭지 않다는 투에 박주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너도 참 난 놈이다.”

“내가?”

“그렇게 방송만 생각하니까 잠깐 스쳐 지나간 것도 캐치하는 거다. 그럼 지놈 님 매니저한테 연락 넣어 둔다?”

“아, 그냥 내가 직접 얘기할게. 좀 이른 시간이니까 톡만 넣어두지 뭐.”

“좋을 대로.”

이경복의 제지에 박주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시동을 걸었다.

차량은 부드럽게 다시 나아갔다.

* * *

이른 오후, 지놈의 스튜디오.

“형, 나 왔어.”

“어, 왔냐. 뭔가 되게 오랜만인 것 같네.”

이경복은 반갑게 지놈과 인사를 나누었다.

“쉬는데 갑자기 불러서 좀 미안하네.”

“야, 미안하긴 또 뭐가. 인마, 그간 내가 누린 코인 효과가 얼만데.”

지놈은 장난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미 예상은 했었어.”

“예상이라니?”

“전부 보진 못해도 네가 어깨 님이랑 섭외 방송 하는 건 봤거든. 한 자리 비었을 때부터 이건 내가 좀 소개를 해줘야겠다 싶었지.”

“어? 그래? 말을 하지 그랬어.”

“아니, 근데 이게 또 도와달라고 얘기도 안 했는데 나대는 건 좀 그렇잖냐. 그래서 일단 지켜만 보고 있었지.”

이경복도 그에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 그러면 조금 덜 고마워해도 되겠는데?”

“아니, 인마 그러면 또 섭하지!”

그리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바로 자리를 잡았다.

지놈은 곧바로 폴더를 열어 장인해부학 원본 영상 목록을 보여주었다.

“와, 많긴 많네.”

“그럼 인마. 이게 괜히 내 대표 컨텐츠가 아니에요. 자, 일단 여성부 참가자니까 당연히 성별로 필터링을 걸고.”

지놈은 그중 여성 스트리머가 출현한 영상들을 골라 선별해냈다.

“일단 다들 각 분야의 장인이시니까 피지컬 하나는 꿀리지 않는 분들이거든? 그런데 격겜에서 필요한 피지컬은 또 다르잖냐.”

이내 그는 다른 파일을 열었다. 영상목록 옆에 수치로 가득한 데이터 시트가 떠올랐다.

“어… 이건 또 뭐야?”

“아니, 너도 했잖아? 유전자 레벨 유격훈련이랑 근딜 원딜 테스트 결과를 정리해둔 거야.”

“와, 이걸 다 정리해뒀어?”

“그렇지. 요즘에는 정보가 자산이잖냐. 나와 주신 분들한테 정리해서 드렸지. 근데 너한테도 보내줬었는데?”

이경복은 그에 눈을 굴렸다. 하지만 이내 솔직하게 말했다.

“본 거 같기도 한데 복잡해서 그냥 껐던 것 같아.”

“그래 뭐, 너야 이런 수치가 무의미할 정도긴 했으니까.”

지놈은 실소를 흘리고는 데이터 시트의 필터를 조작했다.

“근데 이게 또 자료가 구버전인 것도 섞여 있어서. 일단 최근 1년 동안 나와 주신 분들로 압축해볼게.”

목록은 한 차례 더 줄어들었다. 이어 그는 데이터 중 ‘동체시력’과 ‘반응속도’ 항목을 내림차순으로 정렬했다.

“아, 그렇지. 격겜 피지컬은 이 두 개가 중요하더라. 의외로 잘 아네?”

“야, 내가 격겜은 못 해도 이론은 또 좀 알아요. 메탈 펀치는 스킬 동작이 자동으로 실행되잖냐.”

지놈이 장난스럽게 으스대며 손가락을 올렸다.

“일단 여기 있는 분들 다 괜찮은 분들이긴 한데 네가 코칭한다며?”

“그건 왜?”

“아니, 이분들도 나름 장인이라 프라이드가 있거든. 그래도 좀 오픈마인드인 분부터 시도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코칭은 대상의 능력과는 별개로 태도도 중요했다. 자존심이 너무 강하면 코칭을 받는 중 반발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렇긴 하겠네. 형이 더 잘 아니까 좀 부탁할게.”

“그래, 일단 한 분씩 연락해볼게.”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제안할 수는 없었다. 여러 명이 동시에 수락하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근데 이분은 진짜 추천할 만해.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논란 하나 없이 깨끗한 분이시기도 하거든.”

“오, 그러면 더 좋지.”

그리 지놈이 톡을 작성하는 사이 이경복이 말했다.

“근데 이거 맨입으로 도와달라는 건 아니야.”

“응?”

“이번 이벤트에 자리 하나 마련해뒀거든. 트라이랑 협의는 끝났고 형만 오케이하면 되는 자리야.”

“자리라니?”

지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이미 참가자 자리는 다 찼고, 애초에 섭외를 거절하지 않았나.

이내 그는 헛숨을 삼키며 말했다.

“뭐야? 설마 이거 섭외 안 되면 진짜 나 여장해야 되는 거야?”

“아니, 무슨 미친 소리야.”

이경복은 그에 웃음을 흘리며 질색했다.

“이거도 나름 대회잖아. 대회에 해설이 빠져야 되겠어?”

“해설자로 날 넣겠다고?”

“어. 그런데 그냥 해설이 아니라 플랫폼 대전이니까 ‘편파해설’로 진행해보자고 제안했거든.”

이경복이 트라이 팀장들에게 한 부탁이 이것이었다.

참가자들이 양 플랫폼의 ‘대표’가 나서는 바, 해설자 역시 ‘대표’로 나가는 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였다.

“형이 하면 잘할 것 같아서.”

엘든소울에서 이클립스와 결투를 할 때 지놈이 해설을 맡았다. 이경복은 당시 시청자들이 매우 즐거워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지놈의 눈은 그 제안에 놀란 듯 커다랗게 뜨였다. 이내 그 커진 눈만큼 입도 벌어졌다.

“야씨! 이건 당연히 하지! 이런 빅 이벤트를 누가 거절해?! 와, 진짜 고맙다야!”

“에이, 고맙기는 내가 고맙지.”

이경복은 그 반응에 흡족해하며 웃었다.

“트라이에서 다 잘 되자고 하는 일이라 그러더라고. 나는 그중에서도 내가 아는 사람들이 더 잘 됐으면 하거든.”

“크으! 아주 바람직한 마인드고?”

두 사람이 그리 흡족해하는 와중이었다. 지놈이 손을 움직이더니 그를 돌아봤다.

“오, 답장 바로 왔다야.”

“그래? 뭐라셔?”

“어… 한 번 직접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네?”

“직접?”

이경복은 그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오히려 좋지.”

* * *

이경복과 지놈은 그녀의 방문을 기다리는 동안 장인해부학 영상을 시청했다.

“햐, 이건 진짜 다시 봐도 미쳤네.”

“진짜 장인 타이틀 다실만하다.”

지놈의 감탄에 이경복도 수긍했다. 그만큼 영상 속 그녀의 퍼포먼스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이제 이분 때문에 따로 테스트를 준비한 이유를 알겠냐?”

“확실히 원래 하던 근딜이나 원딜 테스트로는 측정이 어려운 부분이긴 하네.”

이경복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보니까 격겜러가 될 잠재력은 충분하신 것 같아.”

“그래? 아, 오셨네.”

지놈이 일어나자 이경복도 그를 따라 일어섰다. 스튜디오 접속 요청 알림이 뜬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빛 무리와 함께 곧 그녀가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와아! 안녕하세요!”

밝은 목소리와 함께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보며 이경복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화사한 형광색의 바람막이에 목에 걸친 헤드셋에선 RGB 조명이 깜빡였다. 차림새만 보면 홍대나 강남 쪽에서 자주 볼법한 인상이었다.

‘컨셉 확실하시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선을 사로잡은 건 픽셀로 된 선글라스였다. 그 익살스런 분위기에서 그녀 역시 스트리머라는 게 느껴졌다.

“아, 어서 오세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놈이 빠르게 나서서 둘 사이에 섰다. 양쪽 모두 초면이니 소개를 위해서였다.

“이쪽은…”

“와, 진짜 퍼플 님이시다! 퍼플 님은 너무 유명하셔서 소개가 필요 없죠! 만나서 정말 영광이에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우와, 진짜 목소리 엄청 좋으시다. 직접 들어보니까 방송이 퍼플 님 목소리를 전부 못 담는 거였네요.”

그녀는 그리 말하다가 아차 싶었는지 선글라스를 벗었다.

“아이고, 제가 너무 긴장해서 실례했네요. 사람이 눈을 보고 대화를 하는 게 예의인데.”

“정말 여전히 하이텐션이시네요.”

지놈이 그에 실소를 흘리다가 헛기침을 흘리고 그녀를 가리켰다.

“자, 이분이 바로 DJ PRO 대회는 물론이고 댄스 디스크 로테이션 대회까지 석권! 거기에 비트 스워드 세계 랭킹 5위권 상시 거주하시는 자타공인 리듬 게임의 거두!”

리듬 게임.

웬만한 격투 게임 보다 더 동체시력과 반응속도를 요구하는 장르였다.

“아니, 지놈 님! 거두라고 하면 뭔가 나쁜 사람 같잖아요!”

그녀는 지놈의 설명에 민망한 듯 웃으며 눈짓했다. 그러나 지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개를 마무리지었다.

“리듬 게임 전문 장인, 데시벨 님이십니다!”

그 장르의 1인자가 바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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