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 음악회를 열다 (1)
게임이 실행되자 배경이 백색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경복은 데시벨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 튜토리얼 공간인 것 같네요?”
“네, 맞습니다! 저도 진짜 오랜만에 보는 곳이에요!”
데시벨은 감회가 새로운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좋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아마 시청자 분들 중에도 리듬 게임이 친숙하지 않은 분들이 있을 거예요. 리듬 게임 장인이 계신 만큼, 설명은 데시벨 님께 맡기겠습니다.”
“오! 열심히 하겠슴다! 여러분 리겜 진짜 재밌어요! 제가 잘 알려드릴게요!”
그녀가 의욕을 내비치자 채팅창에도 웃음이 가득해졌다.
-리겜러답게 텐션 좋고좋고!
-아니 ㅋㅋ 픽셀 선글라스 완전 웃음벨임
-ㄹㅇㅋㅋ 보기만 해도 흥겹자너
그 사이 튜토리얼 준비가 끝났는지 이경복 앞에 두 자루의 검이 둥실 떠올랐다.
그러나 일반적인 검은 아니었다. 칼날이 있어야 할 부분에는 각기 빨강과 파랑색 빛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 나왔네요! 이게 비트 스워드의 컨트롤러, ‘라이트 소드’입니다!”
“타임워페어 때 썼던 레이저 소드랑 비슷한 느낌이네요.”
이경복은 웃으며 손잡이를 잡았다. 그와 함께 양옆에 여러 색상의 팔레트가 나타났다.
“이건?”
“아, 라이트 소드의 색을 커스텀할 수 있는 팔레트에요. 여기서 색을 바꾸시면 퍼플 님이 베어낼 ‘노트’의 색도 같이 바뀌죠!”
기본 색상은 빨강과 파랑이었지만 플레이어가 원하는 대로 색을 바꿀 수 있었다.
그에 시청자들은 즉각 채팅을 쏟아냈다.
-이건 무적권 보라색 가야지 ㅋㅋㅋ
-닉값 ON!
-시그니쳐 컬러는 못 참지!
-빨강 대신 보라색 하면 될덧 ㅋㅋㅋ
-절.대.퍼.플.해
-보라보라보라보라보라보라!
-무다무다무다무… 여기가 아닌가?
시청자들의 요청에 이경복은 바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보라색 좋죠. 바로 바꾸겠습니다.”
그가 색상 설정을 마쳤지만 채팅창에는 물음표가 연신 올라왔다. 데시벨 역시 마찬가지로 의아해했다.
“아니, 아니 퍼플님? 서로 다른 색으로 하셔야죠?”
이경복이 두 자루 모두 보라색으로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채도가 달라서 구분이 되긴 하는데…! 이러면 너무 헷갈리시지 않나요!?”
엄밀히 말하자면 한 쪽은 연보라, 다른 한 쪽은 진보라였다.
“이러면 게임이 너무 어려워져요! 저도 지금 입은 옷처럼 형광색으로 설정해뒀는데, 하나는 바꾸셔야 할 것 같아요!”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시청자들은 이경복의 의도를 눈치챘다.
-아 ㅋㅋ 이형 또 이러네
-어떻게든 이 악물고 어렵게 하려고 ㅋㅋㅋ
-셀프 난이도 상승 미쳤고?
-장인도 당황하게 만드는 장오장클라스 ㅋㅋㅋ
-데눈나 당황잼ㅋㅋㅋㅋ
시청자들의 생각이 옳다는 듯 이경복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이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으아… 저는 미리 경고했어요! 그럼 이제 라이트 소드 딱 쥐고 중앙에 서시면 됩니다!”
데시벨의 설명대로 이경복은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멀리 바닥에서 정육면체 하나가 둥실 떠올라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 이게 노트죠? 엄청 직관적이네요. 화살표 방향으로 자르면 되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정말 배우기 쉽거든요!”
데시벨은 마치 자신이 칭찬 받은 것처럼 뿌듯해했다.
그 뒤로 정육면체뿐만 아니라 대각선 방향이 새겨진 삼각형 노트, 방향이 무관한 구체 노트도 등장했다.
이경복은 손쉽게 노트를 베어 처리해냈다.
“사실 튜토는 설명이 따로… 아니, 잠깐 퍼펙트?!”
처리된 노트 위로 떠오른 ‘Perfect’ 표시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바로 닉값해버리기 ㅋㅋㅋ
-근데 이건 트수들이 해도 퍼펙이지
-ㄹㅇㅋㅋ 튜토라서 쉽긴 하네
-아무리 붕쯔붕쯔라도 이건 그냥 처리하지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다가 데시벨의 반응을 보고 물음표를 쳤다.
그녀는 곧바로 자신이 놀란 이유를 설명했다.
“와, 이거 튜토에서는 세부 판정 기준 안 알려주거든요? 그런데 이걸 퍼펙트를 때리시네.”
노트를 베어낸다고 끝이 아니었다. 여느 리듬 게임처럼 비트 스워드에도 세부 판정이 있었다.
“일단 소드 휘두르는 속도도 중요하고, 그 각이 있거든요? 노트의 중심에 코어가 있는데 여기에 얼마나 정확하게 맞았느냐에 따라 점수가 달라져요!”
-아 그냥 썰면 끝이 아닌 거네
-여기서도 각을 봐야 된다 이마린가?
-???: 손님! 충돌각이요! 충돌각!
-아니 ㅋㅋ 갓플은 모르고 해도 퍼펙트냐고
-몰라도 완벽히 해낸다, 그게 퍼펙트 상식이잖아?
-유일검 수듄 ㅋㅋㅋㅋ
그리 웃던 시청자들의 주의는 다시 돌아갔다.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노트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이건 건드리면 안 될 것 같네요.”
마치 쇳덩이처럼 거무튀튀하게 생겼고 화살표 방향도 없었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불쾌함이 아니더라도 이경복은 노트의 종류를 직감했다.
“아, 그건 함정이에요! 실수로라도 베어버리면 콤보가 끊어지니까 주의해야 됩니다!”
-아 보이는 족족 다 처리하면 안 되는 거였고?
-다른 리겜이랑 차별화 포인트쥬?
-와씨 ㅋㅋ 노트 처리하는 도중에도 구별을 해야 되네
-그나마 구별이 잘 가서 다행임ㅋㅋㅋㅋ
노트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끝이었다. 하지만 아직 튜토리얼이 남아 있었다.
“저건… 벽인가요?”
이경복이 살짝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같은 형태의 벽이 날아오고 있었다.
이경복은 가볍게 허리를 숙여 피해냈다.
“아, 좋아요! 가만히 라이트 소드만 휘두른다고 끝이 아니거든요. 날아오는 벽에 부딪치면 콤보가 끊긴다는 점! 잊지 마세요!”
-아니 바닥도 쓸고 지나가네
-점프까지 필요한 게임이었고?
-리겜에 피지컬이 필요한 이유가 있었네 ㅋㅋㅋ
-그래도 복잡하지는 않아서 다행인 듯?
벽의 방향은 상하좌우 4종류였다. 이경복은 가뿐하게 벽을 피해냈다.
‘이걸로 튜토리얼은 끝인가 보네.’
감지범위 내에 노트나 장애물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생각이 옳다는 듯 백색공간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 기초 튜토는 여기서 끝이고 이제 응용 파트예요!”
-오 ㅋㅋㅋ 연출 뭐야
-생각보다 화려한 거시고요?
-와 ㅋㅋ 배경 아트 미쳤네
-베이스 둥둥 거리는 거 맘에 든다 ㅋㅋㅋ
응용 튜토리얼 곡이 재생되며 배경이 뒤바뀌었다. 무지갯빛 다리 너머 세워진 거대한 왕성의 모습, 그리고 다리 양쪽에는 도열한 기사들이 보였다.
“와, 엄청 화려하네요? 게다가 박자까지 맞추고.”
배경이 다가옴에 따라 들려오는 음악에 맞추어 기사들이 절도 있게 검을 들어 올렸다. 그들이 든 검은 이경복이 잡고 있는 라이트 소드였다.
“크으! 이게 바로 응용 튜토리얼 첫 곡이자 대표곡! ‘소드맨’이거든요? 저도 처음에 이거 보고 완전 빠졌죠!”
[Swordman]
[BPM – 140]
그녀의 설명에 맞추든 허공에 네온사인으로 된 문구가 나타났다.
“BPM?”
“아, 곡의 속도를 나타내는 거라고 보시면 되요. 튜토 곡답게 적당한 속도감에 노트 개수도 100개가 안 되니까 금방 클리어하실 거예요.”
이경복은 그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라이트 소드를 잡았다.
“그럼 가보죠.”
* * *
데시벨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경복은 가뿐하게 튜토리얼 곡을 클리어했다.
[ALL PERFECT COMBO!]
[Perfect Play!]
이어 나온 결과 창은 모두의 예상대로였다.
-캬 ㅋㅋ 판정 미쳤다리 미쳐따 ㅋㅋ
-결과 창에 원래 아이디 뜨는 거였음?
-아 ㅋㅋ 게임이 플레이어 알아본 거네 ㅋㅋ
-WA! 채신 기술!
-퍼펙트 상식이 적용된 게임이었네 ㅋㅋ
시청자들의 흡족함에 이경복은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튜토리얼은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가보겠습니다. 데시벨 님? 곡 하나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 제가 진짜 퍼플 님한테 추천 드리고 싶은 곡이 많아요. 비트 스워드가 또 인기도 많고 장수하는 비결이 사실 오리지널 곡 보다는 모드 지원이거든요?”
“모드요?”
“네네! 유저들이 직접 곡을 커스텀하는 거죠! 노트 종류에 위치는 물론이고 곡 장르도 엄청 다양하고요!”
그녀는 눈을 빛내며 설명하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근데 너무 아쉽게도 오늘 방송에서는 그 곡들을 소개할 수가 없어요. 이게 전부 비상업용도라서 방송 노출이 힘들거든요. 그러니 오늘은 오리지널 곡만 소개한다는 점, 시청자 분들께도 양해 부탁드릴 게요”
-고것은 킹쩔수 없지 ㅎㄷㄷ
-괜히 했다가 노딱 붙으면 곤란하다 이마리야
-5252, 블랙기업의 수장은 돈 안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구웃!?
-그럼 후원 열고 하면 안 됨?
-그래도 좀 애매함ㅋㅋ 괜히 책잡힐 일 안 하는 게 낫지 ㅋㅋㅋ
시청자들도 그에 상황을 이해했다.
“일단 추천을 드리기에 앞서 퍼플 님 취향부터 알아보는 게 좋겠죠? 선호하는 음악 장르 있으세요?”
“장르요?”
“네! 아, 근데 비트 스워드는 대부분 힙합이나 하우스, 테크노 같은 신나고 빠른 음악이 많거든요. 이 중에서 좀 더 좋아하는 쪽이 있으시다든지?”
이경복은 그 물음에 멋쩍게 웃었다.
“제가 사실 막귀라서요. 음악 쪽은 따로 뭐 가리는 게 없습니다.”
“어, 그럼…”
그 답변에 데시벨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굴렸다.
-엌ㅋㅋㅋ 제일 어려운 주문 나와버렸쥬?
-혀엉? ‘아무거나’는 너무한 거 아니야?
-하잇! 이랏샤이 마세! 데마카세데스!
-데마카세는 뭔데 ㅋㅋㅋㅋㅋㅋ
기다렸다는 듯한 시청자들의 장난스러운 힐난에 이경복은 빠르게 말했다.
“에이, 다들 아시면서 그러시네. 제가 장르는 안 가려도 하나 가리는 게 있잖아요?”
그에 시청자들은 물론 고민하던 데시벨도 그에게 주의를 돌렸다. 이경복은 자신 있게 말했다.
“데시벨 님, 가장 어려운 곡으로 추천해주세요.”
-아 ㅋㅋ 맞넼ㅋㅋㅋ
-곡 선택 기준이 난이도냐곸ㅋㅋ
-???: 쉬운 건 재미 없어
-???: 히히! 어려운 거 조아!
-취향 맞추기 넘모 쉬운 거시였고?
-갓플을 기쁘게 하는 법… 메모…
시청자들은 그에 웃음을 터트렸지만 데시벨의 눈이 흔들렸다. 다행히 픽셀 선글라스를 쓴 덕분에 들키지는 않았다.
‘이거 진짜 권해도 되나?’
어려운 곡을 뽑으라면 당연히 쉽게 나왔다. 그러나 그만큼 곡의 어려움을 아는 그녀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려워도 너무 어려울 텐데.’
보통은 리듬 게임의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암담함을 느끼며 도망갈 터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 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퍼플 님이니까!’
하지만 데시벨은 이경복을 믿기로 했다. 그가 비트 스워드를 해내야만 자신도 메탈 펀치에 도전할 희망을 얻지 않겠나.
“좋습니다! 대신 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분들은 절대! 절대 절대 절대로! 따라하지 마세요!”
-4단 강조 무엇 ㅋㅋㅋㅋ
-뱁새들 듣고 있나?
-리겜 장인이 이렇게 할 정도면 진짜 어려운 거 골라줄 듯 ㅋㅋ
-잠재 리겜러를 잃을까 걱정하는 장인센세 ㅠㅠㅠㅠ
-장르가 달라도 비주류 고인물들은 심정이 비슷하다 이마리야
시청자들이 그에 웃는 사이 그녀는 곡 목록을 불러와 검색창에 제목을 입력했다.
[PHANTOM]
[BPM – 248]
[NOTE – 2812]
이내 화면에 뜬 곡 정보에 채팅창 분위기가 일변했다.
-?
-BPM 바로 200 돌파 무엇?
-아까 소드맨의 거의 2배 정도 되는 거 아님?
-아니 ㅅㅂ 그것보다 노트 수 뭔데 ㅋㅋㅋ
-오타 난 거 아님? 노트가 2천 개 넘는다고?
-아니;;; 진짜 어렵잖아욧!
-형? 이거 맞아? 튜토 끝나고 바로 하는 거 맞아?
시청자들은 플레이 전부터 튜토리얼 곡과의 격차를 실감했다. 단순히 곡 정보에 표기된 수치만 비교해도 충분했다.
“퍼플 님, 이 곡이 오리지널 곡 중에서는 진짜 제일 어려운 거예요. 정말 하실 거예요?”
데시벨은 채팅창 분위기가 변한 걸 보고 다시 물었다. 지금이라면 다른 곡으로 바뀌어도 모두가 이해할 터였다.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러나 이경복은 주저 없이 곡을 재생했다. 더불어 배경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저질렀다! 또 저질러 버렸어!
-아니 ㅋㅋ 진짜 이형은 ㅋㅋㅋ
-다들 정신 잃어! 퍼펙트 상식 탑재해!
-튜토가 끝나면 2천개의 노트를 처리한다, 그게 리겜러의 상식이잖아?
-아니 ㅋㅋ 퍼펙트 상식은 갓플 한정이라구욧!
-???: 그러면 접어요;;
이경복의 선택이 끝나자 채팅창 분위기는 다시금 바뀌었다. 데시벨은 그 변화를 보며 작게 입을 벌렸다.
‘퍼플 님이 말씀하신 게 이거구나.’
그녀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실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방송 방향을 정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시청자들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이 나를 따르도록 만드는 거야.’
그녀는 이경복이 말했던 ‘중심’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시청자들의 믿음을 얻고 난 뒤의 이야기지.’
시청자들이 순순히 이경복의 결정을 따르는 건, 그가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온 덕이었다.
-오우;;; 튜토 곡이랑 분위기가 완전 반대네
-완전 깜깜쓰!
-갑자기 곰보 장르 무엇?
-팬텀이라더니 공동묘지였고?
-배경부터 플레이어를 조지겠다는 느낌이 난다 ㅋㅋㅋㅋ
그 사이 배경이 뒤바뀌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양옆에 묘비가 가득했다. 마치 공동묘지를 빠져나가는 듯한 연출이었다.
“그럼 가볼게요.”
그 가운데 이경복이 양손에 보랏빛 라이트 소드를 쥐었다. 그 색감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기묘해졌다.
-예상보다 곡이 안 빠른데?
-시작부라서 그런 듯?
-아니 ㅋㅋㅋ 초장부터 막 쏟아내겠냐고 ㅋㅋㅋ
-난 왜 오히려 긴장되냐 ㅋㅋㅋ
첫 시작은 노트 몇 개가 나오는 수준이었다. 이에 시청자들이 안심하는 순간 음악이 점차 고조되기 시작했다.
“퍼플 님 방해 안 되게 방송 채널만 열게요.”
데시벨이 이에 마이크를 설정하고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 특히 어려운 게 바로 이 부분이에요.”
곡의 난이도는 비단 속도와 노트 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곡의 구성도 어려움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었다.
“작곡가가 진짜 악랄한 게, 첫트에는 무조건 리타이어 시키려고 이렇게 안심하는 구간을 만들었거든요.”
공포나 스릴러 영화의 음악처럼 서스펜스를 강조하는 구간이었다. 긴장을 놓는 순간 다시 원래의 템포로 돌아오기 힘들 터였다.
-헐?
-무친ㅋㅋㅋㅋㅋ
-노트 폭격이다!
-아닠ㅋㅋ 무슨 개틀링 건이냐구웃!
-와씨 ㅋㅋ 이러니까 2천개가 넘짘ㅋㅋㅋ
이를 증명하듯 순식간에 곡 템포가 뒤바뀌었다. 공포에 질린 사람의 심박 수처럼 격동하는 베이스에 맞추어 노트가 무더기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퍼플 님이라도… 응?”
데시벨은 심각하게 설명하다가 말을 멈추었다. 그 가운데 이경복은 평온하게 미소 짓고 있기 때문이었다.
“와씨.”
이내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리며 픽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 앞에 보라색 섬광이 춤추기 시작했다.
-아! 갓플 슨수! 웃고 있어요!
-아니 ㅋㅋ 이제 보니 공포영화의 살인마 역할이었고?
-엌ㅋㅋ 맞넼ㅋㅋㅋ 다 썰어버리자넠ㅋㅋㅋ
-무친? 양팔 교차하는 구간도 있네?
-아니;;; 저게 구별이 된다고!?
-야잌ㅋㅋ 색 구분 안 되니까 더 어지럽네 ㅋㅋ
-눈! 저 눈!
-그 와중에 올 퍼펙트 무엇?
연속으로 처리되는 노트 숫자 만큼이나 화려하게 판정 문구가 떠올랐다.
조금 전까지는 공동묘지였지만 지금은 마치 불꽃놀이 축제마당이 된 것 같았다.
데시벨은 그 광경에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와! 솔직히 아무리 퍼플 님이라고 해도 한 번은 실수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저는 그러면 색상 커스텀 다시 할 때 추천 드리려고 속으로 색 고르고 있었는데! 아니, 진짜 미치셨네!”
진심으로 놀라 말이 두서없이 나왔지만 오히려 시청자들은 그에 기뻐했다.
-아닠ㅋㅋ 저희도 놀랐다구욬ㅋㅋㅋ
-데시벨님 찐 텐션 개웃기넼ㅋㅋ
-얼굴에 게말콘 띄워버리기 ㅋㅋ
-아 ㅋㅋ 한강 왜감? 갓플 리겜하는 거보지!
-ㄹㅇㅋㅋ 이래서 내가 한강 불꽃 축제 안 간다니까
-안 가는 거임 못 가는 거임?
-헉?
-학생^^ 노트 되고 싶어?
-썰어버릴 셈이냐곸ㅋㅋㅋ
그리 놀라움과 흥겨움에 취한 데시벨과 시청자들은 이내 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뭐 설정 이상한가요? 데시벨 님 목소리 안 들리는데 채팅창에 얘기가 올라오는데?”
이경복이 그 수많은 노트를 처리하면서 입을 연 덕이었다. 데시벨은 그에 다시 쓰려던 선글라스를 또 벗어야만 했다.
“아니, 챗창을 보신다고요!?”
-거기서 멘트를 친다고?
-저거 하면서 채팅을 봐?
-(게말콘)(게말콘)(게말콘)
-5252, 다들 잊고 있었던 건가? 그는 옥타코어의 소유자라고?
-이게 바로 퍼펙트 태스킹?
-아 ㅋㅋ 갓플한테는 이 정도 난이도는 거뜬해버렸고?
데시벨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웃음소리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올라오자 그녀가 설명했다.
“와, 아니 제가 방송하면서 진짜 많이 듣는 소리가 ‘그게 보여요?’ 이거 거든요? 솔직히 저는 그거 보면서 이해가 안 됐어요. 당연히 보이니까 처리를 하는 거니까! 근데 그분들이 어떤 심정인지 이해가 바로 되어버리네.”
데시벨이 헛웃음을 지으며 환하게 웃었다.
“저는 근데 퍼플 님한테 이렇게 묻고 싶어요. ‘그게 보여요?’가 아니라 ‘그게 쉬워요?’라고.”
그녀의 말에 채팅창에 웃음이 번졌다.
-엌ㅋㅋㅋ 거울치료 효과 확실하고?
-그게 쉬워욬ㅋㅋㅋㅋㅋㅋ
-이거 완전 실전 압축 질문 아니냐?
-데눈나가 관통해버렸다 이마리야ㅋㅋㅋ
-장인도 놀라버리게 만드는 장오장 클라스 ㅋㅋㅋ
-ㄹㅇㅋㅋ 이게 진짜 장오장이지
-???: 자눼의 장인이쉰 퍼! 회장님 미테서 일하고 이쮜
-페이퍼 타올 아저씨가 왜 나왘ㅋㅋ
-아닠ㅋㅋ 그 장인이 아니잖슴ㅋㅋㅋ
아는 만큼 보인다.
그녀 스스로가 장인이기에 더욱 더 이경복의 능력이 선명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