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1)
비슷한 시각, 트라이 사옥.
이경복의 방송을 모니터링하는 건 어깨만이 아니었다.
여느 때라면 퇴근했어야 할 마케팅 팀원들은 세미나실에 모여 방송을 보고 있었다.
<이번 이벤트 대전! ‘세트로 붙자’도 시끄럽게 만들겠습니다!>
이내 데시벨의 참여가 결정되자 다들 하나 같이 손뼉을 쳤다.
“됐어!”
“데시벨 님 확정!”
“와, 다행히 빨리 결정해주셨네요.”
팀원들은 안도한 표정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팀장은 만면에 미소를 띠다가 크게 손뼉을 한 번 더 쳤다.
“자! 이걸로 라인업은 이제 확정됐지? 참가자 분들 중에 특별한 문제 생기시는 경우 없으면 진행에 차질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안심하고 일 해보죠.”
“예!”
“알겠습니다!”
팀원들의 대답에 그는 바로 스크린을 돌렸다. 이경복의 방송 전까지 하던 작업물이 화면에 비춰졌다.
“피드백은 마지막에 할 테니까 일단 다 자유롭게 브레인스토밍 해보자고.”
팀원들은 그에 고개를 끄덕이며 삼삼오오 머리를 맞댔다.
[세트로 붙자 응원전 배너 문구]
그 사이 팀장은 화면에 비춰진 문구를 보며 실소를 흘렸다.
‘응원전이라니.’
지금 마케팅 팀이 고심하는 내용이었다.
‘하긴 편파해설도 하는 마당인데.’
이경복과의 미팅에서 나온 아이디어, ‘편파해설’에 대해 보고한 뒤 진행 확인을 받았다.
하지만 트라이에서만 진행할 수는 없는 바, 세렝게티 쪽에도 전달해 협의를 거쳤다.
‘대표라는 사람들 생각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세렝게티도 그를 수락하고 방한울 대표에게도 이야기가 들어간 모양, 그에 ‘편파해설’은 양측 모두 진행하기로 결정이 됐다.
그런데 거기서 나아가 위쪽에서 또 다른 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다들 명문대 출신이라 그런가?’
그게 바로 양 플랫폼의 ‘응원전’이었다.
명문대로 유명한 연상대와 고련대의 정기전, ‘연고전’ 혹은 ‘고연전’이라는 명칭으로 모든 것을 경쟁하는 그 행사처럼 이벤트 홍보 배너를 만들어보라는 주문이었다.
사내에서 따로 아이디어를 올린 바 없으니 양쪽 대표들끼리 협의를 한 게 분명했다.
“퇴근도 못 하고 이게 뭐냐 싶을 수도 있을 겁니다. 솔직한 말로 그냥 메탈펀치 대회였으면 제 선에서 커버 쳤을 거예요.”
팀장은 고심하는 팀원들을 보며 다시금 중요성을 부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퍼플 님과 어깨 님이 양측 대표로 나왔습니다. 이거 못해도 기본 시청자 5만, 잘 하면 10만 넘게도 볼 수 있는 거 다들 알죠?”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답을 듣고자 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는 가볍게 얘기했지만, 이거 사실상 양 플랫폼 마케팅 실력을 겨뤄보자는 겁니다. 플랫폼이든 참가자 밈이든 일단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걸로 쏟아내요. 필터링은 제가 책임질 테니까.”
“옛!”
“알겠습니다!”
직원들이 다시금 의욕적으로 대답했다.
이번 이벤트에서 서로 경쟁하는 건 비단 스트리머들만이 아니었다.
* * *
이경복과 데시벨은 그 후로 몇 가지 곡을 더 플레이 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1부 종료의 시간이 다가왔다.
-비트 스워드 개꿀잼이네 ㅋㅋㅋ
-ㄹㅇㅋㅋ 이렇게 재밌는 건줄 몰랐네
-데눈나처럼 노트 썰면서 노래 부르면 기분 째질 듯
-진짜 듣기만 해도 스트레스 다 풀림 ㅋㅋㅋ
-아 ㅋㅋ 코인 노래방 왜 가냐구웃!
흥겨워하는 채팅창에 이경복도 웃으며 소감을 밝혔다.
“자, 이렇게 비트 스워드 체험을 해봤는데요. 제가 느낀 게, 오리지널 곡인데도 퀄리티가 엄청나더라고요. 그런데 여기에 커스텀 곡까지 하면 가성비가 진짜 좋지 않나 싶습니다.”
“아! 퍼플 님이 제대로 보셨네요! 진짜 방송에서 못 보여드려서 너무 아쉬웠는데, 커스텀 곡이 사실상 진국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에 대한 호평이 아닌가. 데시벨은 그에 반색하며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이게 커뮤니티 한번 찾아보시면 금방 아실 거예요. 게다가 외국 곡만 있는 것도 아니고 K POP도 진짜 많아요. 시청자분들이 좋아하는 곡, 무조건 있습니다.”
그리 즐거운 분위기 속에 이경복과 데시벨은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이제 2부를 진행할 차례였다.
“자, 이제 2부로 들어가 볼 건데요. 혹시나 사양하실까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데시벨 님이 합류를 바로 결정해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리겠습니다!”
“에이, 오히려 제가 더 감사드려야죠! 귀중한 기회이니만큼 제대로 한 번 해보겠습니다!”
-데눈나 피지컬이면 기본은 먹고 들어가지 ㅋㅋㅋㅋ
-진심 리겜러들도 피지컬 장난 없다는 거 확인해버렸자너 ㅋㅋ
-세렝게티 지금 비상 걸렸을 듯 ㅋㅋㅋ
-데시벨이 아니라 비상벨이었고?
-혹시 그 벨소리가 ‘가즈아아아아아’인가요?
-아니ㅋㅋ 근데 그 소리가 너무 찰짐ㅋㅋㅋ
채팅창에 박수 이모티콘과 함께 기뻐하는 채팅들이 올라왔다.
“자, 그럼 오늘 준비한 2부! 데시벨 님의 메탈펀치 입문 코칭입니다.”
이경복은 이에 장난스럽게 데시벨을 돌아봤다.
“근데 데시벨 님, 시청자분들이 원하시는 거 같은데 한 번 더 부탁 드려도 될까요?”
데시벨은 그에 눈썹이 들렸지만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는 픽셀 선글라스를 살짝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까짓 거 얼마든지 되죠! 메탈 펀치 가즈아아아아아!”
자신을 내보이니 거리낌이 없어졌다. 그녀는 시원하게 소리를 높이며 메탈 펀치를 실행했다.
-아 ㅋㅋㅋ 이거지!
-격겜러와 리겜러 평행이론 검증 가즈아아아아!
-갓플이 한 말인데 틀릴 리가 있겠냐구웃!
-퍼펙트 코칭 ON!
배경이 뒤바뀌자 데시벨은 이경복을 돌아보며 꾸벅 허리를 숙였다.
“코치님! 잘 부탁 함다! 믿고 따르겠슴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오히려 제가 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네요.”
이경복이 너스레를 떠는 사이 화면이 전환됐다. 기존에 친숙한 로비가 아니라 도장이었다.
데시벨은 메탈 펀치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아 ㅋㅋ 맞네 튜토리얼부터구나
-찐 뉴비 인증 ㅋㅋㅋㅋ
-데눈나는 과연 진입장벽을 어떻게 넘을 거신가!
-벽 피하는 건 또 전문 아니냐고 ㅋㅋㅋㅋ
신경신호 등록을 마치고 커맨드 입력의 차례였다. 튜토리얼을 시작할 캐릭터 목록이 나타났다.
“일단 튜토리얼이니까 한 번 편하게 골라보세요.”
“옙!”
데시벨은 재차 기합을 넣고 눈앞에 나타난 캐릭터들을 살폈다.
“오, 얘가 귀엽네요.”
그녀의 선택은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여성, ‘랑랑’이었다. 이어 도장에 선 그녀는 눈앞의 커맨드에 집중했다.
[↓→RP]
이경복이 했던 것과 같은 커맨드였다.
-과연!?
-킹반인들은 여기서 헤매쥬?
-아 ㅋㅋ 킹직히 그냥 해낼 듯
-데눈나랑 킹반인이랑 같냐고 ㅋㅋㅋ
시청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와중 데시벨이 움직였다. 가볍게 몸을 숙이고 앞으로 나가며 오른손.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어? 이게 아닌가?”
이펙트도 없는 평범한 주먹질이었다. 채팅창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뭐지?
-제대로 한 거 같은데?
-왜 이럼?
-어뜨케 된 겨 어뜨케 된겨?
-왜 손이 먼저 인식됨?
-버그난 거 아님?
-카츠야! 이게 게임이냐?
시청자들도 데시벨도 눈앞에 나타난 그녀의 커맨드를 올려보았다.
[↓RP→]
데시벨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의욕을 다졌다.
“이상하다? 순서대로 했는데? 한 번 다시 해볼게요.”
이어지는 재도전.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진짜 버그 아님?
-보통 움직이는 걸 실수하지 않나?
-손 커맨드가 꼬이는 건 처음 보는디;;
-ㄹㅇㅋㅋ 주먹질을 누가 틀리냐고
차라리 움직임이 틀렸다면 이해했을 터였다. 데시벨은 채팅 반응에 난처한 얼굴로 이경복을 돌아봤다.
그런데 이경복은 뭔가 짚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데시벨 님?”
“넵!”
“아무래도 비트 스워드 하시던 버릇 때문인 것 같아요.”
그의 말에 채팅창은 물론 데시벨의 머리 위에도 물음표가 떴다. 버릇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데시벨 님은 최근 고난이도 곡만 하셨을 거잖아요?”
“네? 아, 그렇죠.”
“제가 해본 곡들 보니까 벽을 피하면서 노트도 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습관이 굳어져서 동작과 동작 사이에 손 신경 신호가 더 빨리 반응하는 것 같아요.”
시스템적인 결함이 갑자기 생겼다기보다는 데시벨이 특수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
그것이 이경복의 판단이었다.
“급하게 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렇게 한 번 해보시죠.”
그리고 그는 그에 대한 대처도 생각을 해두었다.
“긴장하지 마시고 템포가 아주 느린 곡을 플레이한다고 생각하세요. 한 BPM 60대 정도? 초보들이 플레이하는 곡, 튜토리얼에 나온 ‘소드맨’처럼 벽이랑 노트가 따로따로 나오는 게 좋겠네요.”
그 설명에 시청자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했지만 데시벨은 손뼉을 치며 반색했다.
“아, 바로 이해되네요! 감사합니다! 한 번 해볼게요!”
그녀는 바로 재도전에 착수했다.
이윽고 너무나 간단하게도 이펙트와 함께 타격기인 ‘비익장(飛翼掌)’이 시전 됐다.
“와! 됐어요! 주먹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치는 거였구나.”
-????????
-버그가 아니었다고?
-와 ㅋㅋ 킹반인은 반사속도가 느려서 문제인데 데눈나는 반대네 ㅋㅋㅋ
-ㄹㅇㅋㅋ 오히려 너무 빨라서 손이 먼저 인식된 거였고?
-ㅁㅊ 갓플이 괜히 1부 체험 컨텐츠 한 게 아니었네ㅋㅋㅋ
-진짜 ㅋㅋ 솔루션 바로 나오는 거 무엇?
-아아, 이게 바로 퍼펙트 눈높이 교육이라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그에 경탄을 표하자 이경복이 미소 지었다.
“메탈 펀치는 속도로 승부하는 게임은 아니거든요. 정확한 대처가 더 중요하다는 점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넵! 바로 입력했습니다!”
그리 순조롭게 튜토리얼을 마친 두 사람은 로비로 돌아왔다.
“자, 그럼 이제 코칭을 해야 하는데 일단 가장 먼저 해야 될 게 있죠?”
이경복은 그리 말하며 연습모드를 실행했다. 그와 함께 화면에 50명의 캐릭터 목록이 나타났다.
“데시벨 님이 연습할 주 캐릭터를 먼저 선택하셔야 합니다.”
랑랑은 빠른 튜토리얼 때문에 선택한 캐릭터였다. 이벤트 대전에 대비해 연습할 캐릭터를 결정할 차례였다.
-랑랑은 하여자가 이미 찜해놔서 ㅋㅋㅋ
-중복도 되긴 하는데 비교 될 것 같긴 함 ㅋㅋㅋ
-데눈나 노트 써는 거 보면 츠지모토 각 아님?
-옼ㅋㅋ 나도 그 생각했는데
-이클님은 남성부라 괜춘할 듯?
비트 스워드에서 보여준 활약 덕분인지 시청자들 대부분이 검을 쓰는 츠지모토를 예상했다.
그에 데시벨도 이경복에게 물었다.
“츠지모토 추천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해볼까요?”
그 물음에 이경복은 짧게 침음을 흘렸다.
“음, 일단 츠지모토는 별로 권장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 이클립스 님이랑 캐릭터가 겹쳐서…”
“아뇨. 그건 아니고, 이건 한 번 경험해보시는 게 더 낫겠네요. 츠지모토 선택해보시겠어요?”
“넵!”
데시벨은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츠지모토를 택한 그녀가 다시 도장에 섰다.
“한 번 편하게 검을 휘둘러보세요.”
이경복의 권유에 그녀는 일본도를 휘둘렀다. 그 방식이 비트 스워드의 그것과 비슷했지만.
-어…
-뭐지? 뭔가 좀 어색한데?
-원래 이렇게 휘둘렀었나?
-이게 아니었는데?
시청자들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동작에는 어색함이 묻어나왔다. 빠르게 올라오는 채팅에 데시벨이 멋쩍게 웃었다.
“아, 사실 칼 쓰는 다른 게임 찍먹할 때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메탈 펀치는 좀 다른가 싶었는데 아니네요.”
“오히려 다른 게 정상입니다.”
“네?”
이경복의 말에 데시벨이 눈을 돌렸다.
“데시벨 님한테 익숙한 라이트 소드는 칼날이 빛으로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무게가 느껴지질 않고 손잡이만 휘두르는 느낌이거든요.”
그는 일본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지금 드신 것과 같이 진검을 잡으면 밸런스가 다르게 느껴지시죠. 어색하지 않으면 오히려 못 만든 게임이라는 증거입니다.”
그 말에 데시벨이 번쩍 눈을 떴다.
“아, 어쩐지! 제가 예상한 것보다 속도도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무게 때문에 그랬구나!”
-그런 차이가 느껴진다고?
-트수들은 붕쯔붕쯔하면서 제 몸 건사하기도 바쁘쥬?
-ㄹㅇㅋㅋ 검에 몸이 끌려가는 경우가 더 많음
-뭐예요! 나도 느끼고 싶어요!
-???: 아! 그런 건 모르겠고! (진짜모름)
-하여간 천재들의 대화란!
시청자들이 웃는 사이 데시벨은 더욱 눈을 빛내며 이경복을 바라보았다.
“코치 님 추천대로 하겠슴다! 하나 찍어주십쇼!”
“사실 하나 생각해 둔 게 있긴 합니다. 선호하는 캐릭터가 없으시면 추천해드릴까 해서요.”
옅은 미소와 함께 돌아온 대답에 데시벨은 즉시 캐릭터 선택 창으로 돌아왔다.
“말씀만 하세요! 바로 픽하겠슴다!”
“아니, 그래도 설명은 드려야죠. 이유를 이해해주시면 더 동기부여가 되실 테니까요.”
“아, 새겨듣겠슴다!”
-무지성 수용 뭐냐고 ㅋㅋㅋㅋ
-퍼펙트 코칭은 그게 맞긴 하지 ㅋㅋ
-ㄹㅇㅋㅋ 갓플보다 잘할 자신 없으면 들으라 이마리야
-갓플 픽은 과연 누구?!
모두의 기대 속에 이경복은 캐릭터 목록에 눈길을 돌렸다.
“아직 이벤트 일정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아마 연습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단기간에 숙달하시려면 데시벨 님이 적응하기 쉬운 캐릭터를 하셔야겠죠.”
-오 ㅋㅋㅋㅋ 고것도 맞지
-그게 바로 파악이 됐다고?
-역시 우리 형은 다 계획이 있구나?
-눈! 저 눈!
-퍼펙트 안목 덕분이다 이마리야
-박자감 생각하면 카포에라 아님?
-오 ㅋㅋ 에드워드면 나름 괜찮을 듯?
이경복은 웃으며 손가락을 들었다.
“이게 데시벨 님한테 딱이죠.”
그 손끝을 따라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데시벨은 잠시 눈을 껌뻑이다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재규어?”
이경복의 선택은 잡기 전문 캐릭터, 레슬러 ‘재규어’였다.
* * *
데시벨은 이경복의 지시대로 재규어의 커맨드 표를 살펴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어질어질한데?
-혀엉? 이거 진짜 맞아?
-아무리 봐도 초보용이 아니잖슴!
-내가 아는 단기간이라는 말이 다른가?
-이형 또 자기 기준으로 판단한 거네 ㅋㅋㅋ
시청자들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암담함을 표했다.
기본적으로 타격계 캐릭터는 커맨드 표가 복잡하지 않다. 개별적인 스킬을 조합해 콤보를 짜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규어는 달랐다.
-무슨 다단계 사업인줄 ㅋㅋㅋ
-ㄹㅇㅋㅋ 자꾸 가지가 뻗어나감
-재규어 하는 사람들은 이걸 다 외워두고 있는 거?
-진짜 격겜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깐!
기본적인 타격 스킬은 물론 잡기 전문 캐릭터답게 잡기 커맨드가 추가되어 있었다.
그 커맨드도 단순하지 않았다.
상중하 3가지 판정으로 나누어진 잡기를 시작으로 파생되는 연속잡기 커맨드가 여러 갈래로 이어졌다.
-단기간이면 차라리 한방캐인 필립이 낫지 않나?
-오 ㅋㅋ 템포랑 심리전 익혀서 승부 보면 나쁘지 않을지도?
-아니면 손이 빠르니까 소룡도 괜춘할 듯?
-소룡도 킹능성 이따 ㅋㅋㅋㅋ
그에 시청자들은 대안을 몇 가지 제시했지만 데시벨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일단 직접 해보겠슴다!”
그녀는 이경복의 선택을 믿었다. 이에 곧바로 목인을 대상으로 잡기를 걸었다.
-오?
-뭐야?
-헐?
-3단 성공!
-옼ㅋㅋㅋㅋ5단 가나욬ㅋㅋㅋ
재규어는 연이어 목인을 넘어뜨리고 패대기치며 연속잡기를 이어나갔다.
이에 흥미롭게 바라보던 시청자들은 곧 경악했다.
-ㅁㅊ 첫트에 10단까지?!
-아니;;; 10단 콤보를 다 외웠다고?
-어뜨케 한 겨 어뜨케 한 겨!
-???: 찢었다아아아아아!
-왜 진짜 찢었어요?!
-천재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더니!
-진짜 열까지 알아버렸고? ㅋㅋ
-퍼펙트 안목에 걸린 수듄ㅋㅋㅋ
그녀가 대번에 10단까지 잡기를 성공한 덕이었다. 덕분에 목인의 체력은 20%이하로 떨어져 붉게 점멸했다.
데시벨은 그에 자신 있게 답했다.
“리겜 족보 보던 때랑 비교하면 별로 복잡하지 않더라고요.”
족보.
리듬 게임의 노트 배치를 정리한 일종의 해법서였다.
장인 수준이 되기 전 그녀는 반복적인 플레이는 물론 족보를 보면서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곤 했었다.
‘이 정도 커맨드 암기하는 건 일도 아니지.’
그녀는 내심 뿌듯해하며 이경복을 돌아봤다. 이렇게 잘했으니 그도 만족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경복은 침음과 함께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으음, 데시벨 님?”
“네?”
“피드백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일단 다시 한 번 더 해보시죠.”
그 말에 그녀는 물론 시청자들도 의아해했다. 누가 봐도 성공적인 콤보가 아니었나.
“목인이 아니라 저한테 쓰시면 됩니다.”
이경복은 이내 강너울로 도장에 섰다. 데시벨은 잠시 눈을 껌뻑이다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실례하겠슴다!”
그녀는 지시대로 잡기 콤보를 넣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깔끔하게 잡기가 이어졌다.
그렇게 4단까지 들어간 순간이었다.
“엇!?”
순조롭게 이어지던 잡기 콤보가 끊어졌다. 이경복이 중간에 커맨드를 넣어 빠져나온 덕이었다.
거기까지는 시청자들도 그러려니 했지만.
-????
-데눈나 왜 저럼?
-허공잡기 뭔데 ㅋㅋㅋㅋㅋ
-갑자기 붕쯔붕쯔행 ㅋㅋ
-아ㅋㅋ 이거 선입력된 거넼ㅋ
데시벨이 그대로 잡기를 이어나가자 상황을 눈치 챘다. 하지만 이내 시청자들은 다시금 의문을 떠올렸다.
-근데 이거 갓플은 어케 알음?
-어? 그러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콤보였는디;;;
-퍼펙트 아이가 또?
-아닠ㅋㅋ 퍼펙트 아이면 커맨드 입력도 보이냐고욬ㅋㅋㅋ
직접 풀어 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경복은 처음 데시벨의 시연을 보고 바로 눈치채지 않았나.
이경복은 선입력된 동작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대답했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위화감이 느껴졌거든요.”
“네?”
데시벨은 그에 고민했다.
완벽하다니 칭찬인가 싶은데 위화감이라니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일단 가만히 있자.’
이에 그녀는 눈치껏 이경복의 피드백을 기다렸다.
“격겜 콤보는 정해진 노트를 처리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지정된 커맨드를 입력하는 건 맞지만 상황에 따라 대처를 하셔야 해요.”
이경복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데시벨에게 말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무리 빨리 반응한다고 해도 판단이 필요합니다. 이때 반드시 ‘지연’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데시벨 님 잡기 콤보에는 그게 없었어요.”
-와앀ㅋㅋㅋㅋ 그걸 알아차렸다고? -ㅁㅊ 너무 잘해서 들켜버림ㅋㅋㅋㅋ
-이 형 눈썰미는 진짜 미쳤다
-나도! 나도 퍼펙트 눈썰미 줘잉!
-눈썰매는 안 됨? 재밌는데 제발!
-이거 돌갱이가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그 설명에 웃으며 감탄했지만 데시벨은 웃을 수 없었다. 압축하면 아무 생각 없이 스킬만 썼다는 말이 아닌가.
“격겜이랑 리겜은 비슷하지만 확실히 다릅니다. 상대는 살아있는 사람이니까요. 리겜 식으로 말하면 어떤 변주가 나올지 몰라요. 선입력은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이경복의 설명에 데시벨은 빠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한테 맞춰서 설명해주시려고 노력해주시는 구나.’
이경복의 배려 덕분에 이해는 빨랐다. 변주라고는 하지만 불쑥 튀어나오는 함정 노트와는 또 달랐다.
‘어떤 게 나올지 모르니까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거지.’
그녀는 이에 솔직하게 실수를 인정했다.
“늘 하던 대로 올 콤을 하려는 습관이 나온 것 같아요. 주의하겠슴다!”
리듬 게임에서는 날아올 노트를 미리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메탈 펀치는 달랐다.
그녀는 새삼 피드백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졌다.
-캬 ㅋㅋㅋ 척하면 척이고?
-못해서 피드백 받는 게 아니라 잘해서 피드백을 받냐고 ㅋㅋㅋ
-이게 퍼펙트 코칭? 내가 알던 코칭은 대체?
-고인물이 고인물을 가르치면 이렇게 된다 이마리야
-둘 다 뛰어나니까 성장속도 미쳤다리 ㅋㅋㅋㅋ
이경복은 그녀의 반응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기대한 대로 적응 속도가 빠르시네요. 이제 그럼 본격적으로 코칭을 해보죠.”
그 말에 시청자들은 다시금 웃었다.
-엌ㅋㅋㅋ ‘이제’ 본격적이라고?
-알고 보니 튜토리얼이었던 거시였고?
-천상계 육성법 뭔데에에에!
-아 ㅋㅋ 카츠쉑 강화시술 왜 받음? 그냥 갓플 초청하면 되는데
-히익! 괴물! 우리마을에 좀 와줘!
-오히려 초대하는 거냐고 ㅋㅋㅋ
지금부터가 2부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