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 굿즈 출시, 마지막 점검 (2)
굿즈 전문 쇼핑 플랫폼, 샵팬덤의 사옥.
MD팀 팀장은 팀원의 보고에 멀뚱히 눈을 껌뻑였다.
“1차 판매 품목 결정은 내일이잖아? 퍼플 님 투표 아직 안 끝나지 않았어?”
혹시 날짜를 착각했나 싶어 확인해봤지만 아니었다. 아직 투표가 끝나려면 하루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있었다.
“게다가 리셀러 대비라니?”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머리를 헝클었다. 리셀러 문제는 샵팬덤 측도 인지하고 있었다.
‘이거는 마땅히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설명드린다……’
리셀러로 의심 되는 계정이 있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의심에 불과했고 제재를 가할 근거도 없었다.
“아뇨, 팀장님. 저희 쪽 대책을 원하는 게 아니라, 퍼플 님 쪽에서 대비책을 제안하시겠다는 거예요.”
“엉?”
팀장은 보고한 팀원의 말에 잠시 눈을 껌뻑이다 상황을 파악했다.
“아, 우리 보고 대비를 해달라는 게 아니라?”
“네네.”
“이런, 내가 잘 못 들었네.”
그는 민망한 웃음과 함께 손을 내젓고는 다시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그런데 대비책이 있으시다고? 리셀러에?”
“네. 그래서 미팅을…”
“마침 잘됐네. 편한 시간대에 오시라고 해요.”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이내 그들은 넙죽 허리를 숙였다.
“아, 대표님!”
파티션 너머로 샵팬덤의 대표가 웃고 있었다.
“안 그래도 저번에 오셨을 때 인사 못 드린 게 아쉬웠거든요. VIP가 되실 분인데 이참에 직접 인사드리면 좋잖아요.”
그는 흥미로운 듯 턱을 매만지며 말을 맺었다.
“게다가 리셀러 대비책이 있으시다니, 이건 안 들어 볼 수가 없잖아요? 준비 좀 부탁할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래요, 수고해요.”
대표의 허락에 팀원은 빠르게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 *
이경복과 박주호는 사옥에 도착했다.
“금방 다시 오게 됐네.”
“뭐, 좋은 소식이니까.”
굿즈 기획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던 바, 그들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MD팀을 찾았다.
“아,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오시죠.”
“어? 회의실은……”
그런데 이상하게도 팀장은 회의실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이내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대표실이었다.
“아이고, 어서들 오십시오!”
팀장이 노크하자마자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거기까지는 미리 준비해둔 반응이었지만.
‘뭐야?’
이내 들어선 이경복의 얼굴을 본 대표는 진심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렇게 잘생겼다고?’
예상보다 그의 외모가 너무 뛰어났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대표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이런 비주얼이니까 처음제당 쪽에서 노릴 만하지.’
그는 이미 장다예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대표는 그녀가 했던 말을 다시금 납득할 수 있었다.
‘장 대표가 다리를 놔달라는 이유가 있었어.’
그는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당장은 장다예의 부탁을 들어줄 단계는 아니다. 장다예도 중요한 클라이언트지만 이경복과의 관계도 중요한 법이었다.
일단은 서로 신뢰를 쌓은 뒤에 차차 이야기를 꺼내야 할 터였다.
“다시 한 번 저희 샵팬덤을 선택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리겠습니다.”
“워낙 평이 좋은 곳이니까요. 대표님께서 잘 운영해주신 덕분이죠.”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서로 덕담까지 나누었다. 박주호가 가볍게 헛기침으로 주의를 끌고 본론을 꺼냈다.
“저희 큐튜브 채널에서 실시한 수요조사 결과입니다.”
그가 투표 결과를 홀로그램으로 투사했다. 이내 이어지는 설명을 들은 대표는 절로 탄사를 뱉었다.
“와… 제가 그간 굿즈 사업을 꽤 오래 해왔지만 매우 이례적인 결과네요. 이틀 만에 30만 명은 정말 대단하신 겁니다.”
대표는 그간 많은 ‘인플루언서’를 상대했다. ‘Influencer’라는 이름의 뜻처럼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중요했다.
그것이 고작 클릭 한 번이라고 해도, 단 이틀 만에 30만 명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것도 방송 시작 3개월 만에 이 정도라니……’
더욱이 이경복의 방송 경력이 3개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이들과의 비교가 무의미한 수준이 아닌가.
대표는 새삼 이경복의 가치를 실감하며 더욱 기뻐했다.
“이런 참여율이라면 고객 전환율도 평균보다 높을 것 같습니다. 지금 결정해주신 품목은 바로 생산이 가능하고 판매 페이지도 준비가 끝났죠. 퍼플 님께서 컨펌만 해주시면 바로 시작 가능합니다.”
대표는 들뜬 목소리로 설명을 쏟아냈다. 상대 쪽의 가치를 알았으니 샵팬덤도 노력 중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경복은 그 설명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처리가 정말 빠르시네요. 저희 피규어 쪽도 이미 발주를 넣어뒀습니다. 다만, 피규어 관련해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미팅을 요청 드렸습니다.”
“아, 그 리셀러 대비책에 관련된 내용이시겠군요.”
대표는 그에 눈을 빛냈다.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네, 먼저 피규어 가격으로 20만 원을 책정하려고 합니다.”
“…20만 원이요?”
기대 가득했던 대표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다. 그간의 경험이 무색하게 당황스러운 숫자였다.
‘밈이 아니라 진짜 돈미새야?’
대표는 이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저희도 판매 카테고리를 확충하려고 다방면으로 노력 중입니다. SD피규어 같은 경우는 보통 가격이 2만에서 3만 원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디자인이 복잡하고 IP 파워가 강한 피규어들이면 그보다 비싸긴 한데, 8만 원 선에서 마무리가 되고요.”
아무리 인기가 절정이라고 해도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이 가격에 팔면 충성 팬들이라도 학을 뗄 게 분명했다.
그 정도로 과한 가격이니 재고해보라는 의미를 담은 설명이었다.
“네, 저희도 알아봤습니다. 공장 발주 가격은 개당 1만 8천으로 결정됐고요. 마진은 10% 정도만 가져가려 합니다.”
“10%요?”
대표는 다시금 어리둥절했다. 지금 서로 같은 말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20만 원에 파는데 마진이 어떻게 10%야? 2만 원에 팔아야 되는 거 아닌가?’
다행히 이경복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기서 샵팬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마진을 맞추려면 90% 할인 쿠폰이 필요한데, 발급해주실 수 있을까요?”
할인이라는 키워드가 나오자 대표의 머릿속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저희가 리셀러 대비책으로 준비한 방안입니다. 아마 모르시겠지만, 저희가 예전 이스케이퍼스라는 게임에서 시청자 참여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박주호가 예상했다는 듯 홀로그램으로 자료를 띄웠다.
[<두 유 노우 퍼플?>]
제2회 OTP 참여자를 선발하기 위한 테스트였다. 하지만 이게 지금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당시에는 팬 분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프로세스였습니다. 이 테스트를 개량해 이번 할인코드 발급에 적용하려 합니다.”
“팬 들을 가려낸다……?”
그 설명에 대표의 뇌리가 번뜩였다. 이윽고 그는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
“그렇군요! 리셀러 대비! 진짜 팬들은 할인코드로 2만 원에 사겠지만, 매크로를 쓰는 리셀러들은 20만 원에 사게 되겠군요!”
“바로 이해해주시니 다행입니다.”
이경복은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리셀러가 20만 원에 확보한 피규어를 더 고가에 팔아도 살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진짜 정가는 2만 원이 아닌가.
“매크로를 안 쓰는 리셀러라도 상관없습니다. 제 팬이 아니라면 테스트 통과가 어려울 테니까요. 아마 답을 찾을 때쯤이면 진짜 팬분들이 구매를 완료하고 판매가 종료될 겁니다.”
대표는 입을 가리며 속으로 감탄을 토했다.
‘사실 달가운 일은 아니지.’
쇼핑 플랫폼 측에서 반길 일은 아니었다. 구매하는데 필요한 프로세스가 하나만 추가 돼도 심리적 장벽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 상품일 경우고.’
이 방법이 유효한 건 파는 물건이 구매욕이 남다른 ‘굿즈’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