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312화 (312/491)

312화 - 굿즈 출시, 마지막 점검 (3)

다음날, 늦은 오전.

이경복은 박주호의 차를 타고 있었다.

“랜뽑은 진짜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전부 욕심 때문이지.”

두 사람은 어제 방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도 데시벨 님이 시간 낭비는 안 해서 다행이야.”

첫 코칭이 끝나고 데시벨은 랭크전 방송을 개인적으로 더 진행했다.

1일 차라고 믿기지 않게 금방 노랑단까지 진입했지만, 고질적인 문제인 랜뽑러들 때문에 정체를 겪고 방송을 끝냈다.

“그럼 이제부터는 10선만 연습하는 건가?”

“일단은? 그게 경험상으로는 더 좋거든.”

그리고 어제, 이경복은 2번째 실전 코칭으로 ‘10선 난입’을 택했다. 메탈 펀치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상대 실력을 가늠해 10선 매치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하긴 첫날은 즉석 시참이라 상관없는데 이제는 저격이 붙을 수도 있다.”

박주호도 그의 방식에 동의했다.

첫날에야 스컬킴처럼 그저 선의로 들어오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대다수겠지만 2일 차에는 관심을 노리는 저격러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다행히 데시벨 님이 재미를 좀 붙이신 것 같아. 아무리 스트레스 내성이 좋아도 일단 성공을 맛보는 게 중요하거든.”

“그거 백 선생님이 해주신 말 아닌가?”

이경복은 웃으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다른데 비슷해. 내가 테스트 떨어졌을 때 해주셨던 말이지.”

이경복은 입단 테스트에서 신병으로 결국 테스트를 포기해야 했다.

‘경복아, 너는 천재다. 하지만 아무리 천재라도 좌절의 순간은 있을 수 있어.’

그때 백강민은 합격자보다 이경복을 챙겼다.

‘그래도 네가 지금까지 이루었던 성공을 믿어라. 과거에 사로잡히는 것과 과거의 경험을 믿는 건 다르단다.’

다시는 게임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 경험이 너를 일으켜 세울 거다. 다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의심치 마라.’

최병훈의 제안에 마음을 바꿀 수 있었던 이유.

‘너라면 할 수 있다.’

이경복이 언젠가 다시 그 재능을 발휘하리라 믿은 백강민의 조언 덕분이었다.

“내가 뭐 코칭을 전문으로 배운 것도 아니잖냐. 그냥 백 감독님 흉내 내는 거지.”

“그것도 그럼 퍼펙트 미믹크리겠군.”

박주호는 그에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농담 안에는 진심이 섞여 있었다.

‘이 녀석이 대단한 이유는 재능만이 아니지.’

이경복은 재능 자체도 뛰어나지만, 그에 관한 좋고 나쁜 의견을 판별해 수용할 줄 알았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니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성장 또한 남달랐다.

이경복은 친구의 농담에 웃고는 이내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대한 씨는 같이 안 가? 픽업해서 같이 가는 편이 더 좋지 않나?”

“아, 대한 씨는 먼저 스튜디오 가서 촬영 준비를 돕는다고 했다.”

“아, 그래?”

이경복은 그에 멋쩍은 미소를 흘렸다.

“아니, 진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블랙기업인 줄 알겠네.”

*       *       *

두 사람은 촬영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어… 의외로 좀 큰데?”

“그러게. 나는 무슨 사진관 같은 곳일 줄 알았는데.”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스튜디오 규모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규모 전시회장 정도로 써도 문제가 없겠는데?”

“주소는 여기가 맞다.”

박주호가 재차 주소를 확인했다.

이경복은 그에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거야 당연히 맞겠지.”

이미 안 쪽에서 친숙한 조대한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에 두 사람은 바로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아니, 형님. 진짜라니까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조대한은 헌팅캡을 쓴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목에 걸고 있는 사진기로 보아 사진사로 보였다.

그 뒤에는 샵팬덤에서 파견 나온 MD팀 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오셨네요!”

이내 조대한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 반갑게 양손을 들었다. 그는 사진사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양측의 소개를 마쳤다.

“제가 모델 일 할 때 진짜 신세 많이 진 작가님이시거든요. 특별히 부탁드려서 모셨습니다.”

“아니, 이 친구가 어제 갑자기 통 사정을 하더라고요. 진짜 찍을 가치가 있는 모델이라고 해서 내기까지 했습니다.”

인사를 나눈 후 사진사는 웃으며 가벼운 잡담을 꺼냈다.

“내기요?”

“예. 저희가 또 지내온 정이 있으니까 원래 특별가로 해주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만약 내 성에 안 찬다? 그러면 정가 받겠다고요.”

그는 이내 이경복과 박주호를 번갈아 보더니 침음을 흘렸다.

“쓰읍, 그런데 지금 보니까 특별가로는 못 해드리겠어요.”

“아니, 형님…!”

조대한이 이에 당황해 눈을 부릅뜬 순간이었다.

“아니, 왜? 모델 분들 보니까 내가 특별가에서도 추가로 할인을 해줘야겠는데?”

“아, 진짜 형님, 쫌!”

이어지는 말에 안도한 조대한이 눈치를 주었다. 이경복과 박주호는 그에 웃음을 흘렸다.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프라인 모델 촬영은 저희가 처음이라서요. 많은 도움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진사의 농담 때문에 초면에도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그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홀로그램 스튜디오는 처음이신 거죠?”

“네, 맞습니다.”

“역시. 들어오실 때 보니까 신기해하시는 게 느껴지더라고.”

“일반 스튜디오랑 많이 다른가요?”

두 사람이 의아해하자 조대한이 대신 답했다.

“영상 쪽은 가상현실 촬영이 대세인데 사진은 또 다르거든요. 특히 의류나 음식처럼 ‘실제 제품’의 광고 사진은 오프라인 촬영만 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법이요?”

“아무리 똑같이 구현해도 가상현실 속 물건들은 ‘디지털 재화’에 속한다. 그래서 가상현실 속 사진을 쓰면 ‘허위광고’가 되지. 퍼지데이 뒤풀이가 오프라인 방송인 것도 그것 때문이다.”

박주호도 이를 알고 있었는지 첨언했다. 이경복이 그에 고개를 주억거리자 사진사가 실소를 흘렸다.

“뭐, 덕분에 저도 밥 먹고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자, 나머지는 촬영하면서 설명드리죠.”

“아, 환복부터 하시죠. 탈의실은 이쪽입니다.”

사진사의 말에 조대한이 나서서 움직였다. 그는 MD팀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곱게 접힌 후드티가 놓인 카트를 밀고 왔다.

“오, 엄청 잘 나왔네.”

“옷감이랑 색상도 좋군.”

준비된 후드티 색상은 3가지, 블랙과 화이트 그리고 퍼플이었다.

“아, 제가 피부 톤 보니까 어울리는 색상이 딱 느껴졌습니다.”

사진사는 각기 색을 지목하며 말을 이었다.

“블랙은 매니저 님, 화이트는 네가 입고, 퍼플은 사장님이 입으시면 되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갈아입고 오죠.”

세 사람은 바로 탈의실로 향했다.

*       *       *

먼저 환복을 마친 이경복은 스튜디오를 보며 신기해했다.

“와, 진짜 같네요?”

“하하, 요즘은 눈감았다 뜨면 신기술이 나와 있다니까요?”

사진사는 스튜디오에 배치된 홀로그램 장치를 이용해 배경을 자유자재로 바뀌었다.

그가 손을 움직이자 도심, 골목, 초원 등 여러 배경이 나타났다.

“조금 전에 말했지만 법적으로 제한된 건 ‘제품’이거든요. 배경은 예외라서 로케이션 촬영보다 홀로그램을 많이 씁니다.”

괜히 스튜디오가 큰 게 아니었다. 이경복이 감탄하는 와중 다른 두 사람도 환복을 마쳤다.

“자, 좋습니다. 일단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간단히 확인부터 해볼게요.”

조대한이 의욕적인 목소리로 말하며 두 사람을 카메라 앞으로 이끌었다.

“일단 두 분 모두 가장 편한 자세를 알아야 되거든요? 한 번 자연스럽게 서보시겠어요?”

“자연스럽게요.”

“음.”

이경복과 박주호는 그 지시를 따랐다. 사진사는 카메라 프레임에 담긴 모습과 실제 모습을 번갈아 보더니 탄사와 더불어 안타까워했다.

“햐, 진짜 얼굴까지 살리면 압도적인 비주얼인데… 이거 너무 아깝다, 진짜.”

조대한은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들은 것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분 지금 좀 힘드시죠? 그냥 서 있는 것뿐인데 불편하시죠?”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원래 평소에는 별생각 없어도 카메라를 인식하면 어색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거든요.”

“확실히 그런 면이 있습니다.”

“편하게 한다고 했는데 완전히 편하진 않네요.”

두 사람의 긍정에 조대한은 눈을 빛냈다. 이번에는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였다.

“자, 그 문제가 뭐냐? 바로 손입니다, 손. 초보 모델들 대부분이 고민하는 게 바로 손의 위치거든요.”

“오, 맞아요.”

“확실히 손을 어디 둬야 할지 어색한 느낌이……”

조대한이 돌아온 대답에 방긋 웃었다.

“제가 또 그럴 줄 알고 준비를 해왔죠. 바로 쓸 수 있는 방법이2가지가 있거든요? 일단 첫 번째는 손을 숨기는 겁니다.”

“숨겨요?”

“네. 후드 주머니도 좋고 아니면 바지 뒷주머니에 넣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이경복과 박주호는 그 지시를 따랐다. 이내 그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오? 뭔가 편해졌어.”

“저는 뒷주머니보다는 후드 주머니가 더 편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2번째는 뭐냐? 바로 소품 활용입니다.”

조대한은 신이 난 듯 카트 아래를 뒤지더니 뭔가를 꺼냈다.

“그건?”

“OTP 텀블러잖아요?”

그것은 바로 이번에 같이 출시할 텀블러였다. 조대한은 두 사람에게 텀블러를 건네며 말했다.

“뭔가 손에 쥐고 있으면 또 안정이 되거든요. 자, 로고는 보이게 잡아주시고. 저희 굿즈인데 PPL을 또 해줘야죠.”

“이야, 대한 씨가 준비를 많이 하셨네.”

이경복이 그에 웃으며 칭찬하자 조대한의 광대가 절로 올라갔다.

“아주 잘해주시고 계세요. 손은 그렇게 2가지만 기억해주시고, 다음은 하반신. 발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그는 이내 직접 시범을 보였다.

“먼저 이렇게 한 발 앞으로 내밀어주세요. 다음으로 정면을 그대로 바라보지 마시고. 살짝, 살짝만 옆으로 돌아 서주세요.”

“네네, 아주 좋습니다.”

사진사도 카메라 프레임을 확인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두 분 다 키가 큰 편이라 비율이 좋게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자세를 잡아주시면 구도가 상하로 더 확장되면서 카메라로 찍었을 때 비율이 더 좋게 잡히거든요.”

“우리 대한이가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하죠.”

사진사가 장난스럽게 농담을 던지자 조대한이 그를 흘겨보았다.

“아니, 형님.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요?”

“아, 웃자고 한 소리지.”

그에 두 사람이 실소를 흘린 순간 셔터가 눌렸다.

“오케이, 자연스러운 미소 좋았습니다.”

사진사는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보고는 이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와, 진짜 처음 맞나? 너무 좋은데? 근데 이거 더 좋은 샷 나올 것 같은데…”

“형님, 이제 시작한 거잖아요. 아직 두 분 다 몸에 힘이 들어가계신다니까.”

조대한이 그리 말하고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제 복부를 가리켰다.

“자, 지금 두 분 다 아직 어깨가 긴장된 게 느껴지거든요? 일단 전체적으로 힘을 빼시고, 복근에만 힘을 딱 주세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가슴이 펴지고 등이 말리는 걸 방지해주거든요.”

“오, 좋아 좋아. 아주 좋습니다 지금.”

피드백을 받아들인 두 사람의 포즈에 사진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케이, 기본은 잡혔네요. 세부 조정은 촬영하면서 해보도록 합시다.”

본격적인 촬영은 지금부터였다.

*       *       *

이른 오후, 샵팬덤 MD팀.

직원들 모두 이경복의 굿즈 출시 준비 마무리에 한창이었다.

“이제 통상적인 건 다 체크했고. 그, 할인코드 쪽도 다 됐나?”

“예, 테스트도 마쳤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후드티 사진만 받으면 개점 준비는 끝이네.”

MD 팀장은 가볍게 숨을 돌렸다. 그는 이내 시간을 확인하고 직원들에게 말했다.

“아마 후드티 쪽은 시간 좀 걸릴 거야. 사진 촬영하고 A컷 선별부터 후보정까지 하면……”

팀장은 잠시 말끝을 흐리고는 헛기침을 했다.

‘야근이야 뭐 어쩔 수 없지.’

시간대를 보면 야근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알려주느냐에 따라 직원들 사기가 또 달라지는 법이었다.

팀장이 격려 멘트를 구상하는 사이였다.

“어?”

한 팀원의 목소리에 모두의 눈이 돌아갔다.

“팀장님? 사진 왔습니다.”

“응?”

“벌써?”

“이렇게 빨리?”

순식간에 팀원들이 웅성거렸다. 그들 역시 야근을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홀로그램으로 띄워봐.”

팀장의 지시에 촬영 사진이 사무실 중앙에 투사됐다. 그와 더불어 모두의 눈이 크게 뜨였다.

“와…”

“이게 뭐야?”

“진짜 미쳤다.”

그와 함께 터진 탄사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게 우리 광고 사진이라고?’

골목을 배경으로 스트릿 패션의 느낌을 살린 블랙 후드티 모델, 대학교 캠퍼스를 배경으로 자연스러움을 살린 화이트 후드티 모델, 그리고 탁 트인 하늘이 보이는 공원을 배경으로 서 있는 퍼플 후드티 모델까지.

사진이 넘어갈수록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크게 벌어졌다.

“이야, 이건 나도 사고 싶은데?”

“보라색 후드티는 진짜 이쁘다.”

“남친한테 사다 줄까?”

“배경도 그렇고 진짜 데이트룩으로 딱인데?”

배경과 색상만 다른 같은 제품인데 분위기가 전부 달랐다. 그런데 그게 어울렸다.

몇몇 직원들은 구매욕이 동했는지 서로 속삭였다.

그때 그들 뒤에서 웬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아, 대표님!”

뭔가 싶어 모두가 돌아간 시선의 끝에는 대표가 웃으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이야, 이거 진짜 기대 이상이네요.”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감상을 표했다.

“디자인 좋은 거야 알고 있었는데, 이거 모델 구성도 아주 좋네. 모델 분들 키가 전부 달라서 고객님들 선택이 더 쉬워지겠어요.”

기존 마네킹 사진의 경우에는 모두 동일한 마네킹을 썼기에 구매자 입장에서는 상상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 사람 모두 키가 각기 달랐으니 팬들로서는 후드티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 쉬울 터였다.

“아마 다들 느끼셨겠지만, 퍼플 님 쪽에서는 다 완벽하게 준비를 해주셨어요. 그렇죠?”

대표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직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저희만 잘하면, 이번 굿즈 무조건 대박입니다.”

절호의 기회인 만큼 실수는 용납할 수 없었다.

“손님맞이 준비, 제대로 해보죠.”

퍼펙트 굿즈의 출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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