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 평화로운 전초전 (3)
해적 룰렛은 따로 규칙을 소개할 필요도 없이 간단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진행자인 정소윤에게는 맡은바 책무가 있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순서부터 정해야겠죠? 그런데 이 순서 정하기도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
그녀는 인질(?)로 잡힌 해설진을 대신해 목소리를 더욱 높이며 텐션을 올렸다.
“바로 확률 상 먼저 찌르는 쪽이 불리하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누가 선을 잡느냐에 따라 또 승패가 달라질 수가 있어요!”
이내 화면은 갑판 위 허공을 비추었다. 반짝 거리는 빛과 함께 은화 하나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러니 공정성을 위해 순서는 동전 던지기로! 그리고 그 동전 역시 시스템이 정확한 50%의 확률로 던집니다!”
-현명추
-ㄹㅇㅋㅋ 갓플이나 어깨는 피지컬로 어떻게 할지 모름
-둘 다 굇수라 엄지 컨트롤로 순서 정할 듯 ㅋㅋㅋ
-논란 없이 바로 시스템 써버리기 ㅋㅋㅋ
시청자들 모두 그 결정을 인정했다. 이윽고 돌아가던 동전이 갑판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훅! 훅!”
통 안에 묶여있던 지놈이 꿈틀거리며 입김을 불었다. 그 모습에 채팅창에 웃음이 번졌다.
-고새를 못 참고 또 추한 짓을!
-미쳤냐고 진짜 ㅋㅋㅋㅋㅋ
-부끄러운 걸 보니 우리 추놈이 맞습니다!
-입김이 저기까지 닿으려면 얼마나 폐활량이 좋아야 되는 거임ㅋㅋㅋ
이윽고 떨어진 은화는 몇 번 튕기다가 멈추었다. 이윽고 화면에 잡힌 로고는 바로.
“아! 트라이 팀 로고! 순서는 퍼플 님이 먼저 입니다!”
트라이였다.
정소윤의 말과 함께 채팅창은 물론 지놈도 탄식했다.
“아…!”
-아니;; 이게 이렇게 되어버리네
-갓플의 운 상태가…!?
-이거 추놈이 입김 불어서 그런 거 아니냐구웃!
-뭐임? 나온 쪽이 원래 좋은 거 아님?
-트수들 태세전환 뭔뎈ㅋㅋㅋ
-아 ㅋㅋ 무효로 해달라고
그런데 정작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네요.”
이어지는 그의 말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또 어려운 걸 좋아하는 그의 성미가 동한 것일까.
“먼저 하는 게 좋죠. 덕분에 어깨 님 반응을 먼저 살필 수 있잖아요? 심리전에서 선공을 잡은 겁니다.”
이경복은 채팅창 가득한 물음표를 보며 설명했다.
“아! 퍼플 님, 여기서 다시 한 번 또 특유의 자신감! 퍼자감을 선보이네요!”
-여기서 오히려 좋아가 나왔어?
-아아, 이것이 진짜 ‘자신감’이라는 것이다.
-근데 일리가 있을 지도?
-ㄹㅇㅋㅋ 첫 턴에 끝날 확률은 20%밖에 안됨
-퍼펙트 아이로 심리파악까지 하면 더 낮아질 듯 ㅋㅋㅋ
그에 분위기가 반전되자 어깨가 웃음지었다.
“그렇게 쉽게 읽을 수는 없을 겁니다.”
“한 번 해보면 알게 되겠죠.”
이경복은 곧바로 칼을 잡고 통 앞으로 다가갔다.
‘이미 답은 알고 있긴 하지만.’
5개의 홈 중 어느 쪽이 함정인지는 신기로 이미 파악이 끝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경복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지지 않는 방법일 뿐이지.’
함정을 피하는 것만으로 해적 룰렛은 끝나지 않는다. 이기려면 어깨를 함정으로 유도해야 했다.
‘일단 한 번 볼까.’
이경복은 안전한 구멍을 검으로 겨누며 어깨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단 하나의 실마리도 주지 않겠다는 듯 무표정을 유지했다.
“으흠…”
이경복은 침음을 흘리며 차례대로 모든 홈에 검을 겨누며 반응을 떠보았다.
“아, 퍼플 선수! 일단은 정석적으로 가고 있어요! 어깨 선수 반응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체크합니다! 그런데 역시 동요가 없어요!”
-무친;;; 진짜 미동도 없네
-격겜 피지컬에 얼굴 근육 컨트롤도 있음?
-5252, 격겜러가 아니라 포커 선수냐구웃!
-스샷 찍으면 복붙이라고 해도 모를 듯ㅋㅋㅋㅋㅋ
정소윤과 시청자 모두 어깨의 대응에 감탄을 표했다. 그러나 이경복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답이 바로 나왔네요.”
그 한 마디에 모두가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이경복은 바로 칼을 꽂았다.
“으허어어어억!?”
기습적으로 꽂힌 칼에 지놈이 식겁에 비명을 내질렀다.
결과는 생존.
지놈은 헛숨을 들이키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아니! 사장님! 다음에는 말이라도 좀 해주세요!”
그의 애원에 채팅창에 웃음이 번졌다.
-아닠ㅋㅋㅋ 이건 찐텐으로 놀란 건데ㅋㅋㅋㅋ
-여기서 어떻게 안 놀라냐곸ㅋㅋ
-갓플 슨수! 너무 가가매요!
-진짜 고민도 없이 칼찌 ㅋㅋㅋ
-와 ㅅㅂ 근데 진짜 답 알아낸 거?
-완벽한 포커페이스였는데 어케 알음?
-아 ㅋㅋ 퍼펙트 아이 소유자면 보인다곸ㅋㅋ
정소윤은 채팅을 보며 신속히 첨언했다.
“아, 이거 퍼플 선수가 아주 좋은 수를 선보였어요! 어쩌면 모든 게 블러핑일 수도 있거든요? 아무데나 찔러도 첫 턴에는 생존확률 80%니까요! 이번 퍼포먼스로 어깨 선수의 심리를 뒤흔든 거죠!”
진짜로 이경복이 답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보여준 건 그의 말과 행동뿐이었다.
“자, 이제 어깨 선수에게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지금 표정이 심각해졌어요! 과연 어깨 선수! 어떤 선택을 할지!”
실제로 어깨는 조금 전처럼 태연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이경복의 행동을 분석하려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가 검을 잡은 순간이었다.
“아, 아니! 사장님! 저한테 답을 알려주시면 안 되죠!”
지놈이 기겁하며 소리를 높였다. 화면에는 이경복이 지놈에게 귓속말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ㅔ?
-지놈한테 답을 알려줬다고?
-아니;;; 그러면 지놈 때문에 들킬 수 있는 거 아님?
-조금 전 입김 때문에 처벌한 거신가?!
-이게 바로 블랙기업식 인사고과?
-혀엉? 이거 숨겨야 되는 게임인 건 알지?!
-킹부러 하드 모드 노리는 거?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숨겨도 모자를 판에 힌트를 유출하려 하다니? 이길 생각이 있긴 한 걸까?
“와! 이거는, 이거는 정말 놀랍네요!”
그러나 그들과 달리 정소윤은 연신 감탄을 표했다.
“여러분, 지금 속으시면 안 됩니다! 지금 저기 잡혀있는 해설진 분들이 ‘편파’해설가라는 걸 잊지 마세요! 지놈 님 말이 과연 진짜일지, 아니면 퍼플 님이 그렇게 말하라고 시킨 걸지 모릅니다!”
지금 진행하는 해적 룰렛은 단순히 운에 맡기는 게 아니라 심리전이 중요했다. 그리고 심리전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진실이라 여기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라,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지놈 님도 속은 걸지도 모르죠! 중요한 건 지금 퍼플 님이 저 퍼포먼스 단 한 번으로 여러 가지 변수를 창출했다는 겁니다!”
지놈이 정말 답을 들었나? 들었다면 그 답은 진짜인가? 어느 것도 확신은 없었다.
-와 ㅋㅋ 진짜 그럴 수도 있겠네 ㅋㅋㅋ
-어질어질하다 그죠?(진짜임)
-갓플! 나는 생각을 포기하겠다!
-이게 바로 퍼펙트 심리전?
-무친ㅋㅋㅋ 진짜 첫 턴 잡은 게 유리한 거였네
-갓플은 허언을 하지 않는다, 그게 상식이잖아?
-WA! 퍼지컬!
정소윤의 설명에 시청자들 역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깨도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지만.
“조금 놀랐지만, 그 정도 수에 당하지는 않습니다.”
이내 평정을 되찾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검으로 이경복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제가 구태여 불확실한 변수에 집중할 필요는 없죠. 어차피 정답을 알고 있는 건 퍼플 님뿐, 저는 퍼플 님만 보고 판단할 겁니다.”
그의 결론에 다시금 감탄이 터졌다.
“아! 어깨 선수, 능수능란하게 변수의 늪에서 빠져 나옵니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이런 말일까요!?”
-역시 멘탈 갑 클라스ㅋㅋㅋ
-채팅창 대혼란인데 바로 깔끔하게 정리해버리고?
-이게 최정상의 심리전? 딜교 미쳤고?
-근데 추놈은 무시하는 게 맞긴 해
-헷갈리니까 그런 거지? 그런 거 맞지?
-아닠ㅋ 그냥 무시하는 거냐곸ㅋ-추놈 우러욧!
어깨는 자신의 말을 지키겠다는 듯 바로 홈을 겨누었다. 그 역시 하나씩 돌아가며 이경복의 반응을 살폈다.
“아, 퍼플 선수! 웃고 있어요! 시종일관 웃고 있습니다!”
-포커페이스도 아니고 포커스마일임?
-???: (방긋)
-이거 사실 갓플은 어떻게 되도 좋은 거 아님?
-아 ㅋㅋ 게임이 어려워지면 그것대로 좋다고 ㅋㅋㅋ
-이게 그 맑은 눈의 광인인가 그거냐?
-진짜 광기 ㅎㄷㄷ
마지막 5번째 홈까지 이경복의 미소는 변함이 없었다. 그에 정소윤과 시청자들도 깨달았다.
“역시 단순한 미니게임이 아니죠! 첫 시작부터 팽팽한 심리전! 두 사람 모두 플랫폼을 대표할 자격을 입증하는 것 같네요!”
-ㄹㅇㅋㅋ 해적룰렛이 이렇게 쫄깃한 거였냐고
-아 진짜 예측이 안 되네 ㅋㅋㅋ
-역시 도구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이마리야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장오장은 더욱 그렇다.
-무슨 명언이냐고 ㅋㅋㅋㅋ
-??? : 인터넷에서 한 말은 모두 진짜다 (에이브라함 링컨)
방송은 그 컨텐츠도 중요하지만 사람 역시 중요했다.
* * *
“오케이!”
“후아, 살았네요!”
세렝게티 팀의 생존.
될까의 안도와 함께 다시금 차례가 넘어갔다.
“자, 다시 퍼플 선수의 차례! 남은 홈은 2개, 단 2개 뿐입니다! 이러면 심리전 보다는 확률 승부에 더 가깝겠는데요!?”
어느새 양쪽 모두 2개의 검이 남았다. 둘 중 하나, 50%로 승패가 결정될 상황이었다.
과연 이경복은 어느 쪽을 선택할까. 모두가 집중한 와중이었다.
“어깨 님.”
이경복은 검을 들고 어깨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느 쪽을 찌를까요?”
아주 짧은 물음이었다. 그러나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아! 퍼플 선수! 또 과감하게 수를 던지네요! 어깨 선수에게 답을 물었어요!?”
-오? 이러면 어깨가 고민해야 되쥬?
-고단수 미쳤다리 ㅋㅋㅋㅋ
-무친ㅋㅋㅋ 진짜 개고수넼ㅋㅋ
-이거는 아무리 어깨라도 반응 나올 수밖에 없을 듯 ㅋㅋ
-근데 그거 보고 또 갓플이 판단해야 되는 거 아님?
-확률이 아니라 심리전으로 끝장을 보겠다 이마리야
그러나 어깨도 쉽게 당하지 않았다. 그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고는 대답했다.
“알려주면 그대로 찌르실 겁니까?”
돌아온 질문에 정소윤과 시청자들이 반응하려는 찰나.
“진실을 알려주시면요.”
이경복은 마치 준비했다는 듯 즉시 답을 꺼냈다.
“와, 이건 예상 못했는데.”
어깨가 눈이 동그랗게 변해 웃음을 터트렸다. 준비한 반격기에 다시금 재반격이 날아온 격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여기서 승부 한 번 걸어보죠!”
어깨는 포커페이스를 버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과연 그는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모두가 그 답을 기다리는 와중, 그가 고개를 들었다.
“오른쪽을 찌르면 제가 이깁니다.”
고심 끝에 나온 답이었다.
“자, 과연 어깨 선수 말이 사실… 어어!?”
기다렸다는 듯 정소윤이 멘트를 치려는 순간이었다. 그간의 경력이 무색하게 그녀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찔렀어요!”
이경복이 답을 듣자마자 또 검을 찔러 넣었다. 어깨의 말을 믿는다는 듯 그 방향은 왼쪽이었다.
“으악!”
지놈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결과.
“어? 사, 살았다! 퍼렐루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깨의 말은 진실이었다.
-와씨;;; 간 떨어질 뻔
-진짜 개놀랐네 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 고민 좀 하라구욧!
-무슨 곰보게임인 줄ㅋㅋㅋ
-갓플 반응속도 빠른 게 오히려 안 좋아버리고?
-추놈ㅋㅋㅋ 퍼렐루야 ㅅㅂㅋㅋ
-안전한 거 알자마자 바로 입 나불대버리기 ㅋㅋㅋ
-근데 어깨가 블러핑이었으면 어쩌려고 바로 찌름?
놀란 가슴이 가라안자 채팅창에 의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이리 빨리 결정을 내렸단 말인가.
이경복은 채팅창 반응에 여유롭게 답했다.
“어깨 님 성격이랑 상황 보면 예측이 가능하죠.”
“아니, 지금 퍼플 선수! 예측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안 들어볼 수가 없겠는데요!”
정소윤은 바로 주의를 모았다.
진행자로서의 일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그 이유가 궁금했다. 어깨 본인 역시 흥미가 생겼는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어깨 님이 승부욕의 화신인 건 누구나 다 아실 겁니다. 하지만 그 승부는 어디까지나 정당한 승부죠. 거짓말까지 하면서 이기고 싶어 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이경복은 어깨를 보며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승리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실력으로. 마침 상황이 그에 딱 맞습니다. 제가 어깨 님 말을 믿고 차례가 넘어갔잖아요? 이제 어깨님의 선택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상황이 됐습니다.”
트라이 팀에 남은 홈은 이제 하나뿐이다. 50%의 확률이 100%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어깨가 생존하면 다시 이경복의 차례인 바, 트라이 팀의 패배는 확정이었다.
“제가 어깨 님 말을 믿으면 승패의 결정권이 주어지고, 제가 믿지 않으면 그대로 승리를 차지하실 상황이었죠. 후자는 제가 믿지 않은 것이니까 부당한 방법으로 승리한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입니다.”
그 설명에 채팅창이 요동쳤다.
-와씨 ㅋㅋㅋ 그럼 물어볼 때부터 그걸 다 계산해 둔 거였음?
-질문은 짧았는데 안에 담긴 게 왜케 많아욧!
-이게 바로 퍼펙트 압축?
-무친 ㅋㅋ 천상계 수싸움 수준 뭔데에에!
-어깨 성격 파악한 거 개소름이네 ㅋㅋㅋ
-진짜 ㅋㅋ 합방 한 번 밖에 안 하지 않았음?
-이게 어떻게 격겜 방송?
제 3자인 시청자들이 감탄했으니 어깨는 오죽할까.
“햐, 정말 퍼플 님은 볼수록 대단하시네요! 완전히 읽혔는데 기분이 나쁘지가 않습니다!”
그는 진심어린 미소와 함께 손뼉을 쳤다. 하지만 이내 그 눈빛은 승부사의 것으로 돌변했다.
“그렇다면 이제 제 차례군요. 저도 한 번 도전해보겠습니다. 퍼플 님, 저는 어디를 찌를 까요?”
“이기려면 왼쪽입니다.”
“고민 하시는 모습을 한… 예?”
어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말을 멈춘 사이 돌아온 그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
-이걸 또 즉답한다고?
-5252, 어깨가 같은 질문 할 것까지 예측한 거냐구웃!
-무친ㅋㅋㅋ 다시 고민 돌려버리깈ㅋㅋㅋ
-킹부러! 틈 절대 안 주려고!
-이러면 다시 또 어깨가 머리 굴려야쥬?
어깨는 그에 헛웃음을 흘렸지만 이내 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럼 갑니다!”
그가 검을 찔렀다.
방향은 왼쪽, 이경복을 신뢰하겠다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어어어? 으아아아아아아!”
철컥하는 기계음과 함께 될까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멀어지는 비명과 함께 풍덩하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게…”
어깨는 황망한 표정으로 바다와 이경복을 번갈아 보더니 헛숨을 뱉었다.
“역시!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퍼멘! 퍼렐루야!”
-엌ㅋㅋ 통수잼ㅋㅋㅋㅋㅋ
-추놈 바로 기살아버리기 ㅋㅋ
-???: 나만 아니면 돼에에에에!
-5252, 퍼펙트 거짓말에 걸려버린 거냐구웃!
-그걸 믿었음? 퍼플킥!
-될까 날아가는 거 개웃기네 진짴ㅋㅋㅋ
-쇼츠각 바로 나와버리고?
채팅창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어깨는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눈빛에 이경복은 실소를 흘렸다.
“거짓말을 한 건 아닙니다.”
“예?”
“주어를 생략한 거죠.”
이기려면 왼쪽이다.
그러나 누가 이긴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깨 님이라면 똑같이 되갚아 주실 줄 알았습니다.”
-???: (내가) 이기려면 왼쪽
-아 ㅋㅋ 이래서 한국말은 잘 들어봐야 된다니깐!
-근데 이미 상황부터 말리긴 했음 ㅋㅋ
-ㄹㅇㅋㅋ 갓플이 믿었는데 어깨가 어떻게 안 믿냐고
-진짜 여기서 안 믿으면 바로 하남자행ㅋㅋㅋㅋ
-퍼펙트 설계에 걸려버렸쥬?
어깨는 그에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미소 지었다.
“좋습니다. 깔끔하게 승복해야죠! 하지만 이번에 당한 거는 제대로 갚아줄 겁니다.”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어깨는 이어서 빛무리로 사라졌다.
“자! 이렇게 해적 룰렛 게임의 승자는 트라이 팀, 퍼플 선수가 가져갑니다!”
그에 정소윤이 바로 진행을 이어나갔다.
“정말 미니게임이 이렇게 치열할 줄은 몰랐네요! 하지만 놀랍게도 아직 남은 순서가 더 많습니다! 해설진 분들은 이제 돌아와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지놈이 싱글벙글 웃으며 꿈틀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제 처지를 깨달았다.
“어, 사장님? 저 좀 꺼내주시겠어요?”
묶여있는 상황이었으니 자의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에 이경복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꺼내달라고 하셨죠?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네, 부탁 좀… 어? 어어어어! 칼 내려놓으세요!”
지놈의 애원이 무색하게 이경복은 바로 남은 홈에 검을 집어넣었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지놈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제게 시간과 예산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며어어언!”
상황을 직감한 지놈은 즉석에서 애드립을 쳤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닠ㅋㅋㅋㅋ 대사 뭔뎈ㅋㅋㅋ
-아 ㅋㅋ 고전 꿀잼 만화 폰타나 존스에 나오는 박사 대사인 걸 누가 아냐고
-할배요 ㅋㅋ 아는 척 해도 됩니닼ㅋㅋㅋㅋ
-근데 진짜 3류 악당처럼 날아가넼ㅋㅋㅋ
-육성으로 쪼갰다 진짴ㅋㅋㅋ
-결국 두 다 입수엔딩 ㅋㅋㅋㅋ
-갓플의 방송 센스는 세계제이이이이일!
-시청자가 원하는 걸 아는 갓플 센세 ㅠㅠ
이어 풍덩하는 애처로운 물소리가 들려왔다.
* * *
잠시 정비를 마친 해설진은 자리로 돌아왔다.
“아니, 지놈 님. 아바타는 원래대로 하고 미역 붙여 오시는 건 넘 작위적이시잖아요.”
“아니, 이거 누구 미역이야!?”
정소윤의 웃음기 섞인 말에 지놈은 어깨에 메고 온 미역을 치웠다.
-이형은ㅋㅋㅋㅋ 진짴ㅋㅋㅋㅋ
-???: 아저씨, 어깨에 있는 새 이름이 뭔가요?
-???: 아잇 깜짝이야!
-고대원시 썰 응용 뭔뎈ㅋㅋㅋㅋ
-어떻게든! 카메라에 한 번 잡힐라고!
-될까 옆에서 은근히 눈치 보는 거 보소 ㅋㅋㅋ
-아닠ㅋㅋ 저런 거 안 해도 된다곸ㅋㅋ
분위기를 가볍게 환기시킨 정소윤은 다시 진행을 이어나갔다.
“자, 다시 진행 이어가보겠습니다. 이번 미니게임 승리로 찬스카드는 트라이 팀에 돌아왔거든요? 이제 그 찬스 카드를 확인할 차례입니다!”
해설진의 화면이 작게 분할되며 다시 카메라에 이경복이 잡혔다. 그 앞에는 5개의 보물 상자가 있었다.
“지놈 님, 어떤 찬스가 나오는 게 좋을까요?”
“음, 당장 저희가 확보할 카드는 바로 ‘밴픽’입니다.”
지놈은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하게 답했다.
“이게 상대 견제용으로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이번에 등장한 다크호스, 데시벨 님과 이클립스 님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합니다.”
“네, 맞습니다. 두 분다 실력이 뛰어나지만 주캐가 재규어랑 츠지모토, 각각 딱 하나 뿐이시거든요? 만약 밴픽 카드로 주캐가 아웃되면 끝이거든요.”
될까가 첨언하자 지놈은 그에 고개를 내저었다.
“에이, 그건 또 너무 편파적인 해석입니다. 만약에 뽑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닙니다.”
“오? 무슨 방법이 있나요?”
정소윤이 묻자 그가 자신 있게 답했다.
“데시벨 님을 바로 고수로 만들어준 코치가 누굽니까? 바로 퍼플 님이시거든요! 밴픽 카드 대비로 부캐 또 가르치면 그만입니다! 데시벨 님은 물론 이클립스 님도 워낙 기반이 탄탄하셔서 금방 또 배우실 겁니다! 연습시간 5일? 아, 이정도면 차고 넘칩니다!”
-캬 ㅋㅋ 이게 편파해설이지
-하지만 킹능성 넘모 높쥬?
-ㄹㅇㅋㅋ 지금 데눈나 습득 속도만 봐도 쩌는데
-나름 경험도 쌓여서 타격계 캐릭터 해도 잘 할 듯?
-이클 경도 검을 고집해서 그렇지 기본 피지컬은 개쩔긴 해 ㅋㅋ
-응~ 밴픽해봐~ 부캐 키우면 그만이야!
-퍼펙트 코칭, 그것은 완벽한 코칭을 말하는 것입니다 (끄덕)
정소윤은 더 과열되지 않도록 바로 끼어들었다.
“자, 정리해보면 최선책은 그래도 ‘밴픽’카드를 뽑는 거네요. 과연 이번에도 퍼플 님의 강운이 따라 줄지! 한 번 결과를 지켜보시죠!”
이내 카메라가 줌인하며 이경복의 모습을 잡았다. 그는 5개의 보물상자를 번갈아 보았다.
그런데 그 표정이 여느 때와 달리 심각했다.
“아, 퍼플 선수! 지금 고민하고 있어요? 너무 당연한 일인데 이게 또 낯서네요?”
“퍼플 선수도 지금 밴픽 카드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겁니다. 신중하게 고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전부 찬스카드니까 다른 카드가 나쁜 건 아니거든요? 그냥 운을 믿고 선택하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해설진이 바쁘게 오디오를 채웠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 달리 정작 이경복의 고민은 달랐다.
‘이거 어떻게 한다…’
눈앞에 놓인 5개의 보물 상자에서는 당연하게도 긍정적인 기운이 발산됐다.
문제는 아무리 집중해서 그 정도를 가늠해도 선택지가 하나로 좁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둘 중 하나인데.’
설마하니 같은 카드가 두 상자에 들어있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기운의 정도가 동일했다.
‘어느 쪽을 택해도 아쉬울 것 같은데.’
이경복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그는 카메라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소윤 캐스터 님?”
“아, 네네! 퍼플 선수 호출이네요! 무슨 일이시죠!?”
갑작스러운 그의 부름에 모두가 주의를 돌렸다.
이경복은 웃으며 자신의 결정을 밝혔다.
“코인 한 번만 튕겨주시겠어요?”
진짜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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