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319화 (319/491)

319화 – 평화로운 전초전 (5)

정소윤 캐스터가 설명에 한창 열을 올리는 그때, 이경복은 상황을 점검하고 있었다.

‘접착제로 팔다리를 붙이면 이런 느낌이려나.’

펭귄 코스츔에 맞춘 팔다리의 느낌이 묘했다. 팔꿈치는 옆구리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두 다리는 하나인 것처럼 붙어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움직일 수 있는 건 하완 부위와 발목 아래뿐이었다.

‘이정도면 할 만 하겠어.’

그럼에도 이경복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제약이 걸린 건 두 선수들만이 아니죠! 각 해설진 분들은 10초 안에 곡괭이질을 하셔야 합니다.”

그 사이 정소윤의 설명이 이어졌다. 차례가 뒤바뀌면 곡괭이가 10초 안에 날아든다.

‘하긴 제한시간이 없으면 의미가 없지.’

충분히 도망칠 여유를 주게 되면 피지컬을 겨룬다는 의도가 퇴색될 터였다.

이내 그는 게임의 무대를 살폈다.

‘빙판 개수는 총 37개, 중심에서부터 네 단계인가.’

확산된 신기가 정보를 끌어 모았다. 각 빙판에서 느껴지는 불길함도 달랐다.

‘안전구역도 있긴 하네. 아마 저길 치면 다른 곳이 무너지는 거겠지.’

불길함이 희미한 구역도 물론 존재했다. 이경복은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를 주지하며 눈을 돌렸다.

‘문제는 어깨 님을 빠뜨리는 방법인데…’

그 시선의 끝에는 무대 맞은편에 선 어깨가 있었다.

위험구역의 파악은 생존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이 승부에서 이기려면 어깨를 입수시켜야 했다.

‘이런 상태로는 직접 밀 수는 없을 거고, 지놈 형이 노린다고 해도 충분히 빠져나가시겠지.’

그가 승리책을 강구하는 사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아, 세렝게티 로고예요! 될까 님이 선을 잡습니다!”

정소윤의 목소리와 함께 이경복은 전신을 짓누르는 위협을 감지했다.

될까가 곧바로 그가 선 빙판을 향해 곡괭이를 내리쳤기 때문이었다.

-와씨 ㅋㅋㅋㅋ 압박감 무엇?

-이게 장난감?

-갓플 캠으로 보니까 장난없네 ㅋㅋㅋ

-장난감(장난아님)

-무슨 메테오냐고 ㅋㅋㅋㅋ

거센 파공음과 함께 곡괭이가 추락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갓플 왜케 잘 뜀?

-전생에 펭귄이었는덧?

-전생뗑컨 뭐냐고 ㅋㅋㅋㅋㅋ

-바로 적응 완료해버렸쥬?

이경복은 그 불편한 복장에도 능숙하게 빙판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가 가장자리에 도착할 때 즈음 곡괭이가 빙판을 강타했다.

“오?”

이어 쿠르르릉 하는 굉음과 함께 빙판이 들썩였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리는 바닥에 이경복은 충격을 줄이고자 바닥에 엎드려 미끄러졌다.

“와, 이거 재밌네요.”

이경복은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산산이 조각난 얼음 덩어리들이 떨어지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재난영화인줄ㅋㅋㅋ

-그 와중에 재미 찾는 갓플 클라스 ㅋㅋㅋ

-ㄹㅇㅋㅋ 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얼음깨기가 원래 이런 게임이었나 ㅅㅂㅋㅋㅋ

-진짜 박진감 미쳤음 ㅋㅋㅋ

-속보) 찰리 케플린 발언 정정.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꿀잼이다.’

-비극이… 아니야?

-아 ㅋㅋㅋ 재미있는 건 1열에서 보는 게 맞짘ㅋㅋ

시청자들은 이경복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게임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이야, 어깨 님도 잘 피하시네요.”

곧바로 돌아간 지놈의 차례.

어깨 역시 빙판을 내달리며 무너지는 빙판에서 탈출했다.

덕분에 이경복도 쉴 틈이 없었다. 곧바로 될까가 그를 노렸기 때문이었다.

-딜교 넘모 빠른 거시고요?

-???: 머뭇거릴 틈이 없다!

-이러면 이번 게임은 금방 끝날 듯?

-ㄴㄴ 지금 초반이라 그런 거

-ㄹㅇㅋㅋ 어깨랑 갓플이 가까워지잖슴

빙판은 두 해설자의 곡괭이질에 빠르게 줄어들어갔다. 그만큼 발 디딜 곳이 줄어들면서 두 선수의 거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아, 슬슬 두 선수 이동반경이 겹칩니다! 이러면 해설 분들도 쉽게 곡괭이를 못 쓰죠! 잘 못하면 팀킬이거든요!? 본격적인 게임은 지금부터가 되겠습니다!”

정소윤이 상황을 짚어 주었다.

내려친 빙판이 반드시 무너지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자칫하면 오히려 같은 팀을 공격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었다.

시청자들 역시 그에 동조하려는 찰나였다.

-????

-뭐여?

-헐?

채팅창에 연신 물음표가 떠올랐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지놈은 지체 없이 곡괭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경복과 어깨가 같이 올라선 빙판을 향해 내려쳤다.

-저질렀다! 저질러 버렸어!

-즉.시.배.신

-진짜 추놈이 되어버린 거냐구웃!

-코이츠www 컨셉에 먹혀버린www

시청자들은 경악해 채팅을 쏟아냈다. 다행히 이경복은 무사히 탈출했고, 어깨 역시 빠르게 빙판을 벗어났다.

“다들 뭘 모르시네요!”

하지만 도리어 지놈은 의기양양하게 곡괭이를 돌리며 말했다.

“퍼플 님이라면 알아서 피하시거든요!”

자신이 어디를 노리듯 이경복은 빠져나갈 것이다. 그가 노려야 할 것은 어깨뿐이었다.

그는 양손을 번쩍 들며 웅변하듯 말했다.

“상식이란 무엇입니까!? 상식은 바로 퍼펙트 상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부우운!”

그의 행동은 배신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닠ㅋㅋㅋ미쳤냐곸ㅋㅋㅋㅋ

-그 목소리가 들린다 들려!

-???: 아, 안심하세요. 여기는 퍼튜브에요

-???: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어허헣허헣

-???: 의사양반. 게말콘, 게말콘 좀 갖다주시오…

-???: 퍼펙트 상식 탑재 할 거야 안 할 거야!

-???: 하겠소! 닷씨는 또 하겠소!

-무친ㅋㅋㅋ 대사가 다 찰떡이넼ㅋㅋㅋ

시청자들이 그에 흥겨워하는 사이 상황은 다시금 일변했다.

“어? 지금 퍼플 선수! 펭귄이에요! 진짜 펭귄이 되어버렸어요!”

정소윤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카메라가 이경복의 모습을 잡았다.

그는 이제 뛰는 게 아니라 배를 빙판에 깔고 슬라이딩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속도는 뛰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아닠ㅋㅋㅋㅋ 저걸 또 왜 잘 하냐고욬ㅋㅋㅋㅋ

-???: 펭귄이 내가 된다!

-이것이 펭아일체의 경지?

-EBS가 이 방송을 좋아합니다

-5252, 펭식이 자리까지 노리는 거냐구웃!

-블랙기업 특) 확장할 때 분야를 안 가림

바뀐 이동 방법 때문인지 이경복은 가뿐하게 될까의 곡괭이질을 피해냈다.

“아아! 지금 어깨! 어깨 선수도 퍼플 선수와 같이 배를 깔았습니다!”

이어 어깨도 이경복을 살피더니 그 이동 방법을 따라했다.

-캬 ㅋㅋㅋ 이번에는 어깨가 미믹크리했넼ㅋㅋㅋ

-역시 격겜러의 패왕 답쥬?

-아 둘 다 개커엽네 진짜 ㅋㅋㅋ

-이러니까 TV 시청률이 떡락하지 ㅋㅋㅋ

덕분에 시청자들의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

*       *       *

치열한 공방이 계속된 결과, 남은 빙판의 개수는 이제 14개, 상황은 이미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채팅방의 열기는 식기는커녕 오히려 처음보다 더 뜨거워졌다.

“아! 정말 모습은 너무 귀여운데 분위기는 완전 F1이에요! 이거 주최측이 생각한 그림이랑은 좀 많이 다르지 않나 싶거든요?!”

이경복과 어깨 모두 전력으로 가속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레이싱을 방불케 했다.

-장르변경 권위자가 또?!

-진짜 ㅋㅋ 이 형은 뭐만 했다하면 장르를 바꿔버림ㅋㅋㅋ

-원래는 아등바등하다가 넘어지고 뭐 그런 장면 생각했을 듯

-아 ㅋㅋ 어림도 없지! 바로 스피드레이싱 갈겨버리기!

-속보) IOC, 긴급회의 개최 ‘동계 올림픽 종목에 얼음깨기 추가할 것인가?’ 논의 중.

-아닠ㅋㅋ 이걸로 올림픽을 왜 하냐고 ㅋㅋ

-근데 하면 개꿀잼이긴 할듯ㅋㅋ

시청자들은 웃으며 감상했지만 무대 상황은 긴박감이 넘쳤다.

두 선수가 빠르게 이동하는 만큼 두 해설진의 곡괭이질 역시 멈추지 않았다.

“빙판 개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두 선수와 해설진이 대결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추격하듯 떨어지는 곡괭이에 두 사람이 지나온 빙판이 연쇄반응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이변이 벌어졌다.

“아! 앞이 무너졌어요! 브레이크, 브레이크으으으으!”

될까가 내리친 빙판 대신 두 선수의 앞에 있는 빙판이 무너져 내렸다.

어깨는 그에 놀라 다급히 제 날개로 바닥을 찍으며 속도를 줄였다.

-????

-혀엉!?

-헐? 타이밍 놓침?!

그러나 이경복은 달랐다.

오히려 그는 더 속도를 높이려는 듯 빠르게 날개로 바닥밀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춰야지!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찬스카드 공평하게 하나씩 받게 하려고?

-킹부러! 또 어렵게 하려고!?

-혼란하다 혼란해!

채팅창에 연신 물음표가 올라왔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추락이 아닌가?

‘대체 왜?’

그에 가장 의문을 품은 건 다름 아닌 어깨였다. 그가 본 이경복은 쉽게 승부를 양보할 인물이 아니었다.

‘아니, 잠깐…’

이어 벼락처럼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번뜩였다. 그는 미끄러지면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이미 두 사람이 지나온 빙판은 모두 무너졌고, 앞길은 끊겼다. 덕분에 빙판 하나에 둘 다 고립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지금은 지놈 님 차례…!’

이번에는 지놈이 곡괭이질을 한다. 그리고 그는 이경복이 있다고 해서 멈추지 않았다.

파악을 마친 그는 다급히 날개를 돌려 재차 속도를 내려 했지만.

“이런…!”

이미 위쪽에서는 거대한 곡괭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어깨는 이경복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느새 가장자리에 도달했다.

“아니, 지놈 님! 주저 없이 내려칩니다!?”

정소윤의 비명 같은 외침과 함께 곡괭이가 빙판을 강타했다.

콰직하는 파열음과 함께 빙판 전체가 수면을 아래로 밀어냈다.

‘이걸 노리신 건가…!’

아래로 누르면 그에 대한 반발력으로 위로 솟는다. 더욱이 지놈이 그 빙판의 중심을 노린 바, 파쇄와 더불어 빙판은 가장자리가 위쪽으로 들린다.

“와, 진짜 대단하시네.”

어깨는 추락을 느끼며 순수하게 감탄을 표했다. 그의 시선 너머에는 하늘로 솟아오른 펭귄, 이경복이 보였다.

“퍼플 선수! 날았어요오오오오!?”

정소윤은 진심으로 놀라 소리를 높였다. 이경복은 이미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짧은 날개를 펼치며 활강 자세를 취했다.

그는 그 자세 그대로 다음 빙판에 미끄러지며 안착했다.

“착지! 착지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번 게임의 승리 역시 트라이 팀이 가져갑니다아아아!”

어깨는 얼음물에 떨어졌고 이경복은 생존했다. 정소윤의 승리 선언이 시청자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펭귄은 날 수 있다, 그게 상식이잖아? 펭귄은 날 수 있다, 그게 상식이잖아?

-이게 바로 퍼펙트 펭귄? 내가 알던 펭귄은 대체?

-아닠ㅋㅋ 우리가 알던 펭귄이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잖슴!

-캐리필터가 부릅니다, ‘펭귄 날다’

-오리 ㅇㄷ?

쏟아지는 채팅과 함께 시청자들은 승리를 만끽했다.

“와, 이건 정말 과감한 승부수였거든요? 그런데 이게 지금 보니까 꼭 착지를 못 해도 상관이 없었어요! 누가 ‘먼저’ 바다에 떨어지느냐가 문제였으니까요!”

정소윤이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이경복이 성공하긴 했지만 착지에 실패했어도 승패는 이미 결정돼 있었다.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가장자리에 가까운 선수가 승리할 상황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어깨 선수는 브레이크를 잡았던 시점부터 진 거였어요!”

-오? 그러네?

-갓플의 판단력이 열일했다 이마리야

-아니 ㅋㅋ 근데 여기서 어떻게 브레이크를 안 잡냐곸ㅋㅋ

-ㄹㅇㅋㅋ 소윤이모도 브레이크 소리 질렀는데

-아아, 모르는가? 그것은 ‘퍼펙트-담’의 소유자만이 얻을 수 있는 승리다.

-겁 부모 : 경찰서죠? 실종 신고를 하려고 하는데요 ㅠㅠ

-아 ㅋㅋ 겁이 없어졌다고욧!

-아닠ㅋ 겁 부모는 또 누군뎈ㅋ

시청자들도 상황을 파악하고 재차 감탄했다. 그 사이 지놈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으흐흐, 이제 승부가 결정됐으니 업보를 청산하실 때로군요.”

그는 과장스럽게 웃음을 흘리며 곡괭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는 이경복이 선 빙판을 바라보며 곡괭이를 들었다.

하지만 이내 내려친 손은 빈손이 되어 있었다.

“응?”

“자, 이제 찬스 카드를 뽑아야 하거든요? 보물 상자를 놓을 장소가 있어야 하니 곡괭이는 이만 회수하겠습니다.”

정소윤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어… 아직 퍼플 님 못 들으시는 거죠?”

지놈은 그에 슬쩍 눈을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하하하! 장난입니다!”

시청자들의 미소는 끊이지 않았다.

-논란일자 ‘장난’ ㄷㄷ

-여윽시 추놈답게 뒤끝 쩔어버리고?

-아닠ㅋㅋ 이 형도 오늘 텐션 진짜 제대로 올랐넼ㅋㅋㅋㅋ

-진심 개쪼겠다 ㅋㅋㅋㅋㅋ

-트최입 자리는 결코 안 뺏기겠다는 의지 ㅋㅋㅋㅋ

-이게 진짜 프로 팡머다 이마리야 ㅋㅋㅋ

진행부터 해설, 그리고 선수들까지 모두 자신들을 즐겁게 해준 덕이었다.

*       *       *

정비를 마친 해설진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두 해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이거이거, 정말 치열한 승부였는데 아쉽게 됐습니다?”

“예, 마지막 한 번의 판단이 운명을 갈랐습니다.”

지놈은 의기양양했고 될까는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퍼플 님의 순간 판단력과 추진력으로 완성된 피지컬의 승리였습니다. 이건 부정할 수가 없네요.”

그럼에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정소윤은 중립적인 입장인 바, 어느 한쪽이 침체되는 걸 막아야 했다.

이에 그녀는 바로 진행을 이어갔다.

“네, 그렇습니다! 결국 2번째 찬스 카드도 트라이 팀의 것이 되었는데요. 하지만 아직 어떤 카드가 나올지는 모를 일이거든요?”

“맞습니다. 해적룰렛에서는 동전을 요청하셨거든요? 이번에는 주사위를 요청할 지도 모르겠네요.”

될까도 침울함을 떨쳐내려는 듯 수긍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경복이 상자 하나로 다가가는 게 아닌가?

“어? 이번에는 바로 결정 하나요!?”

실제로 이경복은 상자를 보자마자 결정을 끝냈다. 풀 버스트 카드를 뽑은 덕분에 가장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상자는 하나로 좁혀진 덕이었다.

“열었습니다!”

“아, 이번에도 아주 과감한 선택을 하시네요.”

“자, 과연 이번에는 어떤 카드일지…!”

화면에 비춰진 이경복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여지없이 좋아하는 얼굴이었다.

이내 그가 들어 올린 카드는 바로.

[밴 픽(Ban Pick)]

[캐릭터 하나를 선택 불가 상태로 만듭니다]

트라이 팀의 약점이 될 수 있는 카드였다.

“나왔어요오오오오오오!”

-떴다아아아아아아!

-역시 우리 형이야! 역시 우리 형이야! 역시 우리 형이야!

-아 ㅋㅋㅋ 갓플이 뽑는데 불안해한 사람 없제?

-바로 강운 적용해버리기 ㅋㅋㅋ

-이 정도면 상자 틈 사이로 보이는 거 아님? ㅋㅋㅋㅋㅋ

-트라이 우승! 트라이 우승! 트라이 우승!

-이거 보고 픽업 이벤트에 꼬라박기로 했읍니다^^

-아닠ㅋㅋㅋ님은 갓플이 아니잖슴 ㅋㅋㅋ

-곧 천장 찍을 뱁새입니다

-과연 ‘천장’일지 ‘천 장’일지 ㅋㅋㅋㅋ

-ㄹㅇㅋㅋ 천장 없는 가챠겜일수도 있음

-퍼렐루야! 퍼렐루야! 퍼렐루야!

지놈과 채팅창은 바로 축제분위기를 즐겼다.

그 열기가 조금 잦아든 후에야 될까는 입을 열었다.

“크흠, 이제야 좀 양 팀의 밸런스가 맞겠네요.”

“아, 그 의견은 존중하겠습니다.”

지놈은 그 말에도 싱글벙글 웃으며 대꾸했다.

“그런데 그 말을 처음부터 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좀 마음이 꼬인 분들은 그 발언을 이제 와서 변명하는 것처럼 오해하실 수도 있거든요.”

-왜 자기 얘기를 남 얘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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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꼬인 분 = 추놈

-진짜 ㅋㅋㅋ 개얄밉네 ㅋㅋㅋ

-게놈이지만 우리 게놈이라 다행ㅋㅋㅋ

-편파해설 특화 수듄 ㅋㅋㅋ

-돌리고~ 돌리고오~

-될까가 괜히 손해만 봤다 이마리야

-딜교 손해 미쳤고 ㅋㅋㅋㅋ

정소윤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자자, 아직 밴 픽 카드가 어떻게 쓰일지는 또 모르거든요! 이 역시 풀 버스트 카드와 이벤트 당일! 본방송에서 확인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녀는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또렷한 목소리로 진행을 이어갔다.

“이렇게 양 팀 소개와 더불어 찬스카드 쟁탈전까지 모두 끝났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보다 더 중요한! 핵심 과정이 남아있죠?”

“그렇습니다! 어디까지나 오늘 방송은 ‘대진표 추첨’ 방송이 아니겠습니까.”

“예, 맞습니다. 찬스카드까지 모두 공개가 됐으니, 그 활용도를 유념하면서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되겠습니다.”

두 해설진도 이내 진지하게 진행에 임했다. 시청자들 역시 그 말에 공감을 표했다.

-대진운은 무시 못 하제ㅋㅋㅋ

-진짜 이게 가장 중요한 거임ㅋㅋㅋ

-찬스카드 각이 잘 나와야 될 텐데…

-갓플 님이 다 해주실 거야!

-아니 ㅋㅋㅋㅋ 갓플이 뽑는 게 아닌데 어케 해주냐곸ㅋㅋ

-???: 자고로 신앙을 잃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법이며…!

-아무튼 강운임! 아무튼 잘 뽑힘!

-지금까지는 가벼운 전초전이었다 이마리야

전투에 이겼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비록 전초전이라고 하더라도.

-???: 하지만 이겼죠?

-대충 캡틴 짤

-아 ㅋㅋ 고것도 맞지

-다 이겨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구욬ㅋㅋㅋ

이긴 쪽이 유리한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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