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화 – 나도, 나도 볼 거야! (1)
늦은 밤, 메탈 펀치 메타에는 수많은 격겜러들이 모였다.
[와 ㅅㅂ 진짜 갓플이 대단하긴 하네]
[커뮤 메탈펀치 강점기 ㅋㅋㅋ]
[렉카들 속도 미쳤고?]
[진짜 별별 커뮤니티에 다 퍼갔네 ㅋㅋㅋ]
격겜러들은 당황하면서도 즐거워했다. 오늘 추첨 방송을 캡처해 만든 게시글들이 들불처럼 커뮤니티에 번지고 있었다.
[요리 커뮤에 왜 메탈펀치를 퍼가 미친놈들앜ㅋㅋㅋ]
[유머게시판 있는 곳에는 다 들어갔다 이마리야]
[근데 확실히 어깨보다는 갓플 위주긴 하네]
[인지도 밀리는 건 킹쩔수 없지]
[근데 ㅋㅋ 퍼펙트 펭귄은 못참긴 해]
특히나 널리 퍼진 건 얼음깨기 승부에서 보여준 펭귄 슬라이딩과 활강 장면이었다.
[BBS에서는 왜 이런 페이크 다큐를 만들어 뒀던 건데 ㅋㅋㅋ]
[만우절 영상임 ㅋㅋㅋ]
[근데 갓플은 진짜 날아버렸고?]
[페이크가 아니라 리얼 다큐자넠ㅋㅋㅋ]
영국 공영 방송, BBS에서 만우절 농담으로 만든 펭귄 영상과 함께 같이 올라온 게시글은 빠르게 추천을 받았다.
덕분에 웬만한 커뮤니티의 유머게시판에는 해당 장면이 빠지지 않고 올라가 있었다.
[글리젠 속도 미쳤다리 ㅋㅋㅋ]
[여기가 나는 법 알려주는 곳인가요?]
[여긴 10선에 미친 놈들밖에 없어! 뉴비들은 어서 돔황챠!]
[ㄹㅇㅋㅋ 정보 보고 싶으면 베스트만 보는 거 추천]
덩달아 메탈펀치가 화제에 오르며 커뮤니티 유입도 늘어났다.
[메탈 펀치 실시간 인기 메타 5위권 진입!]
[이러다가 인싸가 되어버렷!]
[내 동년배들 다 메탈펀치 한다 이마리야]
[ㅅㅂ 어깨 세계대회 우승한 것도 아닌데 ㅋㅋㅋ]
[퍼플 코인 효과 바로 나와버리고?]
[게말콘이 왜 필요한지 실감해버리기 ㅋㅋㅋㅋ]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니 격겜러들도 흡족해했다. 이내 모여든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대회 이야기를 꺼냈다.
[대회 어디서 보는 게 좋음?]
[당연히 세렝게티 가야지 ㅋㅋ]
[트라이로 가는 게 맞는 거 아님?]
[맞긴 뭐가 맞아 ㅋㅋ 님 맞을래요?]
[아니 ㅅㅂ 이걸 고민한다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화제는 바로 플랫폼 선택이었다.
대다수의 격겜러, 그리고 비단 이들만이 아니라 인터넷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플랫폼’에 대한 충성도는 크지 않다.
[격겜판 위해 힘쓰는 갓버지 버려?]
[킹직히 격겜러면 당연히 어깨 응원이 답 아니냐?]
[이번 대회도 어깨가 추진 안했으면 없던 건데 트라이를 가려고 하네 ㅋㅋㅋ]
[아 ㅋㅋ 이거 유입이네]
플랫폼의 편의성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가 있었다.
몇몇 이들은 플랫폼에 소속감을 가지고 타 플랫폼 시청자들을 무시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했다.
[진정한 격겜러라면 어깨도 넘을 생각 하는 게 맞는 거 아님?]
[ㄹㅇㅋㅋ 굳이 어깨 응원할 필요까지는 없자너]
[갓직히 응원전까지 하는데 꿀잼은 트라이가 확정이지 ㅋㅋㅋ]
[갓플 아니면 이렇게 주목 못받았음]
시청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방송을 ‘어디서’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하느냐였다.
플랫폼 자체에 애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좋아하는 스트리머와 BJ가 그곳에 있기에 플랫폼을 찾는 것이었다.
특히나 비주류 장르일수록 해당 게임을 즐기는 방송인이 적었기에, 격겜러들은 플랫폼에 대한 충성도가 더욱 낮았다.
[와 ㅋㅋ 이런 고민은 또 처음이네]
[이전에는 걍 세렝게티 보면 됐는데 ㅋㅋㅋ]
[ㄹㅇㅋㅋ 가끔 트라이에서 스컬킴 대회나 봤었지]
[난 트라이는 IVO 세계 대회 때나 봤는데]
[이번에는 직관이라 결정하긴 해야되는디…]
이에 격겜러들은 주로 세렝게티를 이용하긴 했지만, 특정 플랫폼을 선호하기보다는 이벤트에 따라 옮겨 다니는 철새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스타디움에서 직접 관람해야 하니 양자택일이 필수였다.
[갓플은 어차피 종겜스라 금방 떠날 거 아님?]
[아 ㅋㅋ 그냥 이길 것 같은 팀에서 응원하라고]
[트라이는 단체복 사야돼서 난 세렝게티 간다 ㅋㅋㅋ]
[대충 보라색 옷 입고 가면 되는데 이걸 핑계를 대네 ㅋㅋㅋ]
[모르는 사람이랑 놀 자신 있음 트라이 가는 거지 ㅋㅋㅋ]
[아싸는 세렝게티 인싸는 트라이 각이냐?]
[ㅁㅊ 이걸 또 아싸 인싸로 갈라치기를 하네 ㅋㅋㅋㅋ]
[아 됐고 10선으로 결정하자! 나 이긴 놈은 세렝게티 ㄱㄱ]
[뭔 10선이야 미친놈들아 ㅋㅋㅋ]
몇몇 이들은 이마저도 구실 삼아 게임을 즐기려 했다. 그렇게 커뮤니티가 시끌벅적해지는 와중이었다.
[대박 ㅋㅋ 이번 대회 한국 격겜러만 오는 거 아님]
한 게시글에 분위기가 일변했다.
* * *
북미 커뮤니티 리딧.
격투 게임은 전세계적으로도 비주류 장르에 속했다. 그만큼 관련 이벤트가 적었고, 전 세계의 격겜러들은 이벤트에 목말라했다.
종종 어깨가 주최하는 세렝게티 대회 이야기가 올라오곤 했지만 큰 관심은 받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한국 한정의 로컬 대회였고, 참가자 역시 프로게이머가 아니라 개인방송인이었기에 북미 격겜러들에게는 생소한 인물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어깨가 역대 최대 규모의 대회를 열다]
리딧 인기글에 등재된 글은 초기에는 이전과 같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Wow, 어깨가 또 자선 대회를 열은 거야?]
[-어깨는 정말 대단해. 자기 돈을 들여서 장르를 키우려고 하잖아? 미국에는 왜 이런 인플루언서가 없는 거야?]
[-한국은 격투 게임 유저에게 축복받은 나라야. 어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지 lol]
처음 달린 댓글들 역시 글 내용을 보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쓴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내 내용을 확인한 이후에는 댓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WTF? 퍼펙트플레이? 미믹크리를 시작한 플레이어 아니야?]
[-IVO 가이드에 쓰인 이름과 같아. 이 사람이 맞아!]
[-Guys, Guys! 그게 전부가 아니야! 퍼플은 일본 챔피언 트리플을 꺾은 슈퍼루키라고!]
[-Damn! 어깨가 이번에 거물을 섭외했어!]
다른 참가자들은 몰라도 이경복은 북미 격겜러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그의 참전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더 상세한 내용을 파악했다.
[-OMG! 드디어 어깨가 트라이에서 방송을 하는 건가?!]
[-Nah, 제대로 봐야지. 로컬 플랫폼에서도 방송을 하는데 이번에 확장하는 거야]
[-트라이에서 방송하는 거면 우리도 볼 수 있는 거잖아?]
[-Fxxking Awesome! 스타디움에서 직접 볼 수 있다고? 이건 완전히 미쳤어!]
[-What? IVO 공식 대회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Ahh! 한국과 시차가 얼마나 되지? 젠장, 시간이 맞나?]
내용을 읽어갈수록 사람들은 흥분했다. 어깨와 이경복의 대결 그 하나만으로도 이 대회를 관람할 가치가 있음을 느꼈는데 스타디움에서 직접 볼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IVO에 공지가 없는데?]
[-이건 IVO와 전혀 관련이 없는 행사야. 한국에서 방송 플랫폼이 스폰서로 후원하는 것 뿐이라고]
[-잠깐, 그러면 해설은? 중계는?]
[-God plz no…! 이 이벤트는 한국어로만 진행이 된다고 하네]
이내 그 흥분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한국 한정 이벤트라는 사실에 외국인으로서는 불편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난 보러 갈 거야. 어차피 대결만 볼 거면 한국어를 몰라도 되잖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 대결에는 말이 필요 없지!]
[-응원전도 준비되어 있다는데? 아무래도 보라색 유니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
[-Guys! 한국 커뮤니티에서 이런 사진을 찾았어! 이게 공식 유니폼이야!]
[-오? 후드티 디자인 멋진데? 역시 한국인들은 패션에 신경을 많이 쓴다니까]
[-Wow, 이 ‘Pefecet-common Sense’라는 건 대체 무슨 의미지?]
누군가 퍼펙트 굿즈 사진을 구해 올리자 사람들은 웃음을 흘렸다. 그에 적힌 문구는 밈을 알지 못하면 어색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퍼플에게만 적용되는 상식이라는 뜻이지. ‘CCBH’와 비슷한 밈이야]
[-lol, 모르는 사람이 보면 원칙주의자처럼 보일 수도 있겠는데?]
[-동의해. ‘완벽한 상식’을 갖추라니? 물론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지.]
[-Oh no… 쇼핑몰을 찾았는데 아쉽게도 해외 배송은 안 한다네]
[-그럴 줄 알았어! 언제나 한국인들만 특혜를 누리지! :(]
[-나는 어깨의 팬이니까 세렝게티라는 로컬 플랫폼으로 갈 거야!]
[-Yup! 굳이 트라이를 고집할 이유는 없지]
그에 몇몇 이들은 세렝게티 가입을 시도했지만 금방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OMG, 해외라서 그런가? 아무 채널이나 들어갔는데 렉이 엄청나잖아!]
[-스크린으로만 봤는데 이 정도면 스타디움에서는 시간 이동을 하겠는걸? XD]
[-Shit, 그냥 스크린으로 볼 거면 트라이를 쓰는 게 낫지!]
[-로컬 플랫폼은 로컬인 이유가 있지 lol]
[-해외 접속의 한계는 어쩔 수가 없어]
해외에서 세렝게티 방송을 시청하면 지연이 상당한 탓이었다. 그에 결국 사람들은 세렝게티 선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깨가 우승했을 때 몇 명 정도 봤지?]
[-IVO 세계대회 말하는 거 맞지?]
[-어깨가 우승한 대회가 한둘이 아니니까 lol]
[-그거라면 아마 9만 명 정도로 기억해]
[-이번에는 일반 한국 시청자들도 포함될 테니 그 이상이겠지]
[-Yeah, 시청자 숫자를 생각하면 트라이가 유일한 답이야]
세계대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전망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로컬보다는 글로벌 플랫폼을 택하는 게 상책이었다.
* * *
비슷한 시각, 세렝게티 사옥.
늦은 밤이었지만 방한울은 대표실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진표 추첨 방송을 모니터링한 이후 그는 오랫동안 통화를 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일단 간부회의를 거쳐보고 공식적으로 답변을 드리도록 하죠.”
상대는 트라이 코리아 대표였다.
통화를 마친 방한울은 짧게 혀를 찼다.
‘확실히 차이가 느껴지긴 하는구만.’
본래 합의 조건은 양쪽 모두 공식 채널에서 방송을 송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트라이 북미 본사와 일본 지사에서 중계요청이 들어왔다는 애기였다.
계약서에는 ‘한국’ 공식 채널로 명시되어 있었으니 트라이 코리아에서 단독 처리할 수 없어 연락이 온 것이었다.
‘저쪽에서 머리 숙이니 기분이 좋기는 한데…’
방한울은 트라이 쪽에서 부탁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감을 누렸지만 한 편으로는 씁쓸함도 같이 느꼈다.
‘결국 우리는 한국 한정 플랫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지.’
그 감정과는 별개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글로벌 기업인 트라이는 전 세계에 서버를 두고 있기에 트래픽 부담이 적었다. 하지만 세렝게티는 상황이 달랐다.
‘무리해서 해외 송출까지 해버리면 국내 시청자도 지연을 겪을 수밖에 없어.’
한국 서버만 이용하는 세렝게티로서는 해외 트래픽까지 감당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하나도 못 잡는 게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결국 허용하면 트라이만 좋은 꼴인데.’
경쟁기업에 득이 되는 선택을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로 거절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확실히 이번에는 스케일이 다르단 말이지.’
이전 어깨가 단독으로 대회를 주최했을 때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하나였다.
‘퍼플, 그 친구가 있어서야.’
애당초 해외에서 관심을 표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들이 한국 스트리머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리 없었다.
이번 참가자들 중 어깨를 제외하고 해외에서 알만한 스트리머는 오직 한 명뿐이었다.
‘경영은 눈앞에 이익만 쫓아서는 안 되지.’
방한울은 가볍게 소파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머릿속에서는 빠르게 손익 계산이 돌아갔다.
‘우리가 대회를 후원하는 이유는 단순히 시청자 확보만이 아니지.’
뷰어십을 늘리는 건 단기적인 이득에 불과했다. 대회를 후원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브랜드 홍보와 이미지 제고였다.
‘어차피 볼 사람은 다 볼 거다.’
해외 송출은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좁은 격겜판이야. 격겜러들은 언어의 장벽을 상관하지 않을 테지.’
트라이 쪽에서 해외 시청자들의 편의를 위해 한 부탁이었다. 이걸 거절한다고 해서 시청자들이 대회 시청을 포기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 쪽 이득을 챙기는 편이 낫겠지.’
세렝게티의 ‘허락’으로 해외 송출이 가능해졌다. 그 사실이 해외 시청자들에게 알려지면 해외 인지도와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터였다.
트라이 대표도 그 정도 계산을 하고 제안을 한 것이 분명했다.
‘비록 지금은 여건이 안 되지만.’
쇼파를 두드리던 손가락은 이내 멈추었다. 방한울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렇게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고 인지도가 쌓여야 투자도 받고 기회가 오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 정리를 마쳤다. 세부사항은 간부들과 회의를 하면서 맞춰봐야 할 터였다.
이내 방한울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것 참…”
그는 새삼 이경복의 가치를 실감했다.
‘계산을 다시 해야겠어.’
원래는 트라이와 이경복의 계약 기간이 끝나게 되면 적극 영입하려고 했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그때가 되면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이경복의 성장세가 예상보다 엄청났다. 이런 추세라면 플랫폼이 그를 ‘영입’하는 게 아니었다.
‘이미지 관리에 더 집중하는 게 오히려 가망성이 있겠군.’
선택은 어디까지나 강자의 몫이었다. 그리고 장차 이경복은.
‘그래야 우리를 선택하겠지.’
플랫폼을 고르는 위치에 서게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