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 우리가 누구? (1)
5일, 대진표 추첨이 끝난 뒤 연습을 위해 주어진 기간.
그간 메탈 펀치 메타를 비롯해서 격투 게임 관련 커뮤니티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분위기였다.
[갓플 진짜 밴픽 카드 안 쓸 생각임?]
[세브루스 10선만 찾는 거 보면 찐인 듯?]
[아니 ㅋㅋㅋ 딱 봐도 블러핑이구만]
[ㄹㅇㅋㅋ 방종 겁나 빨리하고 뒤에서 부캐 대비하는 거자너]
그간 이어진 이경복의 방송에서 데시벨은 세렝게티 여성부 대장, 엄마퀸의 주 캐릭터를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엄마퀸도 지금 겁나 헷갈리는 듯 ㅋㅋㅋ]
[ㄹㅇㅋㅋ 주캐랑 부캐랑 번갈아서 방송 하잖슴]
[그래도 엄마퀸은 재규어 대비만 하면 되자너 ㅋㅋㅋㅋ]
[남성부 경기에서 그럼 누구 밴픽함?]
[당연히 어깨 레이지 밴해야지 ㅋㅋ]
그 내막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갖가지 추론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함께 인정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찬스 카드 하나로 지금 얼마나 뒤흔드는 거냐고!]
[진짜 ㅋㅋ 일단 카드 쥐고 있는 것부터 심리전에서 먹고 들어감]
[갓직히 뭐든 이기는 게 최고긴 해 ㅋㅋㅋ]
[격겜판에서는 오직 승리만이 의미가 이따 이마리야]
찬스 카드를 얻었다는 사실 만으로 트라이는 연습 기간에도 심리적 우위를 점했다는 사실이었다.
한편, 퍼지데이 팬카페의 분위기는 여느 커뮤니티와는 달랐다.
[무료 응원소품 아바타 코드 공유요!]
[외국어로 큐글링하는 게 더 나은 듯?]
[브스타 때 쓴 가면 코드 있는 사람?]
[응원 막대 만들어 봤는데 어떰?]
[가서 부부젤라 불어도 됨?]
[부부젤라 ㅅㅂ 되겠냐고 ㅋㅋ]
트라이 시청자 중에서도 팬심으로 공고히 뭉쳐있는 이들인 바, 그들은 응원전 때 쓸 소품 아바타를 찾아 공유했다.
[응원 소품이 다 거기서 거기네]
[퀄 차이만 있고 종류는 그닥 많지 않음 ㅋㅋㅋ]
[획기적인 퍼펙트-소품은 없는 거신가!]
[퍼청자들 뭐하냐구! 얼른 아이디어 내달라구!]
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흔치 않은 직관기회니 만큼 보다 특별한 응원이 하고 싶었다.
그리 팬들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하는 와중이었다.
[(중요!)퍼플데이 응원 지침 하달]
새로이 올라온 글이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내 그 게시글에는 빠르게 댓글이 달렸다.
[-캬 ㅋㅋㅋ 오늘 만큼은 지놈이다!]
[-유전자 레벨로 응원을 잘하는 남자 ㅎㄷㄷ]
[-와 ㅋㅋ 용의주도하게 퍼플 게시판만 쏙 빼놨네]
[-옼ㅋㅋㅋ 그러네 ㅋㅋㅋ 지놈이랑 이클립스 게시판만 올렸네]
[-이 형도 진짜 싱크탱크임ㅋㅋ]
게시자는 바로 지놈이었다.
그 내용을 확인한 시청자들은 즐겁게 동참을 표했다.
[-우리가 갓플을 놀라게 할 수 있다 이마린가?]
[-놀란 갓플을 어케 참음?ㅋㅋㅋ]
[-이거 잘 되면 진짜 개쩔 듯ㅋㅋ]
이번에는 시청자들이 그를 놀라게 만들 차례였다.
* * *
대회 당일 늦은 오전, 이경복의 스튜디오.
팀 퍼펙트는 오프라인 회의 대신 온라인 미팅을 시작했다.
“자, 오늘 스튜디오에서 보기로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경복이 밝게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오늘은 업무가 없거든요. 마음 편히 이벤트 직관해주시면 됩니다.”
그에 가장 먼저 표정이 바뀐 건 조대한과 매드맨이었다. 두 사람이 활짝 웃다가 이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저, 사장님. 오늘이 가장 바쁜 날이지 않나요…?”
두 사람은 팬이었지만 충실한 직원이기도 했다.
큰 이벤트니 업무량 역시 상당하지 않을까. 팬심과 애사심 모두 상당한 터라 걱정이 뒤따랐다.
“괜찮습니다. 이번 방송은 트라이 북미 본사랑 일본 지사 채널에서도 동시 송출이 되니까요. 세렝게티랑 합의를 본 모양입니다.”
대답은 박주호가 대신했다.
전 직원의 업무 스케쥴을 꿰고 있는 그가 설명하는 편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공식 채널 송출이니 채팅창 관리도 트라이에서 맡은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번에 해외 송출이 결정되면서, 실시간 통역과 자막이 제공되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그 번역 스크립트를 따로 전달받기로 했고요.”
“아, 그럼 저는 진짜 할 일이 없군요.”
조대한이 그에 수긍했다. 그러나 편집 팀의 입장은 달랐다.
“일단 나는 논외야. 영상편집 할 게 있거든.”
최병훈의 말에 매드맨이 흠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러면 나도 도와줄게.”
그 모습에 이경복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이 자식이 눈치가 없는 건 아닐 텐데?’
최병훈이 일한다고 말을 해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매드맨은 같은 편집팀이니 저렇게 눈치를 보지 않나.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되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영상은 트라이에서 제공받은 소스로 편집할 거잖아? 대회 끝나고 시작해야 할 텐데.”
박주호도 그에 동조했다.
두 친구의 말에 최병훈은 미소를 지었다.